과거는 어째서 자꾸 돌아오는가 문지 에크리
백민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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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 에크리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이 시리즈를 아주 띄엄띄엄 읽고 있다.

나에게 백민석은 소설가로 인식되어 있다.

오래 전 읽었던 책들이 모두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목화밭 엽기전>이다.

희미한 기억에 의하면 상당히 엽기적인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른 소설도 한두 권 읽었고, 몇 권은 읽으려고 사 놓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 그가 절필했다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유가 이 책에 나온다.


작가는 자신이 쓴 산문을 두 부류로 나누었다. 정치적인 것과 미학적인 것.

하지만 읽다 보면 이 분류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앙코르와트의 미학이 킬링 필드의 정치와 엮일 때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바다의 문명화 과정]은 전시회 작품을 미학적으로 분석했다고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정치는 또 어떤가.

나의 의혹에 약간의 억지가 끼어 있지만 그의 글 속에는 정치적인 요소가 곳곳에 배여 있다.

읽다 보면 그가 분석과 인용에 이용한 책에 관심이 간다. 읽을 자신은 없다.

현대문학의 <몬터규 로즈 제임스> 같은 책이라면 언젠가 읽고 싶다.

이 소설에 대한 평은 아주 인상적이고, 마지막 문단은 그것을 함축한다.


묵직하지만 상당한 흡입력을 보여주는 산문집이다.

W. G. 제발트의 소설 <아우스터리츠>로 문을 연 [타자의 장소] 는 소설의 해석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여행하면서 지켜본 몇몇 상황들이 우리가 놓친 삶의 현실을 보여준다.

스페인 팜플로나 축제에서 외떨어져 있던 흑인들이나 프랑스 니스의 테러 사건 등이다.

이것은 다시 한국의 세월호와 촛불 집회 같은 현실로 이어진다.

사유의 연속은 다른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읽은 내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자신의 과거와 연결해서 풀어낸 이야기는 오래된 기억을 더듬게 한다.

[공포의 만화방]은 예상과 다른 내용이었다.

공포 문학과 심리학을 연결한 것과 과거 출판 현실을 다룬 부분은 흥미로웠다.

또 하나 과가의 기억을 더듬게 한 것은 [내가 처음 읽은 책’]에 나오는 김남주 시인 이야기다.

재수생이 시를 배우기 위해 간 그곳에서 마주한 김남주 시인은 운동가가 아닌 시 창작 선생이었다.

소설가로만 기억하고 있던 그가 평론가 상을 수상한 소감을 쓴 것을 보니 놀랍다.

천천히 다 읽은 뒤 조금씩 뒤적이다 보면 많은 이야기들이 불쑥 튀어 오른다.

올해 안에 백민석의 소설 한 권 정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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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살해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9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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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베크 시리즈 9권이다.

언젠가 한 번 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읽었다.

책상 위에 시리즈 첫 권 <로재나>가 놓여 있은 지 몇 년이나 되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번 소설 속에 ‘로재나’를 죽인 범인이 등장한다.

혹시 이 사실이 <로재나>를 읽을 때 재미를 반감시킬까?

이 소설을 모두 읽은 후 사실 그런 생각은 많이 사라졌다.

작가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누가 범인인지보다 다른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소설 속에는 다른 소설 속 살인범이 또 한 명 등장한다.


도입부는 간결하지만 아주 강렬하다.

버스를 기다리는 한 여자. 그녀의 목숨이 남은 시간은 이십칠 분. 다가오는 승용차.

낯선 곳을 가는 자동차. 서로 아는 듯한 모습, 여자의 기대. 남자의 살인.

시체 유기와 남자가 내뱉은 욕설, 진흙 구렁을 덮는 남자.

여자가 받아 마땅한 결말을 맞았다는 생각을 하는 살인자.

이 장면 다음은 마르틴 베크와 동료 콜베리가 절도와 살인사건의 용의자 림판을 감시하는 것이다.

영리한 림판은 훔친 장물을 팔지 않고 어딘가에 숨겨둔 상태다.

경찰은 그를 감시하면서 실수하기를 기다리거나 다른 절도 행위를 사전에 예방한다.

그리고 마르틴 베크와 콜베리는 도입부에 나온 여성의 실종 혹은 살인 사건 수사를 위해 떠난다.

장소는 스톡홀름에서 멀리 떨어진 스웨덴 남부 안데르슬뢰브다.


안데르슬뢰브 경찰서는 토요일은 쉬고, 일요일 근무에 대한 정보는 없다.

베크가 일요일에는 범죄가 일어나지 않거나 금지한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이 작은 도시에서 이런 실종 혹은 살인 사건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마르틴 베크와 콜베리가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온 것이 이상할 정도다.

이런 이면에는 로재나 사건의 범인이 실종 여성 스그브리트 모르드 옆집에 산다는 것이다.

그는 형량을 마친 후 이 시골 마을에서 자신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경찰에게는 이전 범죄 이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용의자가 된다.


스그브리트 실종 사건의 용의자는 크게 두 사람으로 압축된다.

한 명은 당연히 로재나 사건의 범인이고, 다른 한 명은 그녀의 전 남편이다.

이 두 사람의 알리바이 수사가 이어진다. 불확실한 점은 있지만 알리바이가 있다.

마르틴 베크는 비행기를 타고 오지만 콜베리는 차를 몰고 온다.

왜 같이 비행기를 타고 오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마르틴 베크는 이 경찰서 담당 뇌이드와 함께 움직이면서 수사를 한다.

뇌이드는 상당히 여유롭고 이 한적한 마을을 사랑한다.

그의 이 마을에 대한 애정을 함께 차를 타고 나가면서 하는 설명으로 잘 드러난다.

그리고 이 마음 근방에는 시체를 유기하기에 좋은 곳이 너무 많다.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는 계속된다.

그러다 다른 곳에서 수상한 차량을 검문하려다 경찰이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재밌는 점은 총에 맞은 경찰들은 모두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죽은 경찰의 이유가 밝혀졌지만 경찰을 사실을 밝히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경찰 살해자를 잡기 위해 아주 과도한 경찰력을 동원한다.

이 비효율적인 경찰 동원과 허술한 전술에 대한 부분은 한 편의 코미디 같다.

작가는 이런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복지 국가 스웨덴의 현실을 하나씩 보여준다.

1973년도 이야기이지만 국가가 홍보하고 보여주는 삶 이면을 파헤친다.


이 소설의 진행은 결코 빠르지 않다. 아니 느린 편이다.

현대의 경찰 소설이나 스릴러에 익숙한 독자라면 조금 지루할 수도 있다.

사건의 발생은 단발적이고, 경찰의 수사는 몇일이 지났지만 특별한 진행사항이 없다.

더딘 진행이지만 사건에 대한 생각까지 멈춘 것은 아니다.

가능성을 검토하고, 외압을 견디고, 단서에 집중한다.

이 소설의 재미는 이런 느슨하지만 현실적인 모습과 예상하지 못한 연관성 때문이다.

사실 마지막 장면만 놓고 보면 약간 허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실제 살인 사건들은 이런 이유들 때문에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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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븐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이지수 옮김 / 책세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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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비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중 한 권으로 나온 적이 있다.

출판사와 번역자가 바뀌어 새롭게 나왔다.

절판된 책의 개정판은 언제나 반갑다.

다만 이 책을 읽기 전 이전에 읽었다는 것을 몰랐던 나의 저질 기억력이 문제다.

이전 서평을 찾아보니 나의 과거를 돌아보는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왕따와 학폭은 최근 아주 많이 다루어지고 있다.

학폭이 SNS로 알려지면서 유명 연예인들이 방송에 나오지 못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 드라마 <글로리>는 이 문제의 정점에서 우리를 뒤흔들고 돌아보게 한다.


사시를 가진 나와 같은 편이라고 말하는 고지마. 둘은 열네 살이다.

화자가 니노미야 패거리에게 왕따와 폭행을 당하는 장면은 읽기 힘들 정도다.

이런 강렬하고 잔인한 이야기라면 분명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데 기억하지 못한다.

다시 읽으면서 화장실 물을 마시고, 분필을 먹고, 배구공을 쓰고 축구공처럼 맞는 등의 악질적인 놀이의 대상이 된 것에 놀란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왜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당할까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도 묵인하는 학교와 교사의 행동을 보면 조금 이해할 수 있다.

‘나’의 고민이 깊어지고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일들은 이런 폭력의 결과다.


이 소설에서 나를 가장 놀라게 하고 혼란스럽게 한 것은 모모세와의 대화다.

모모세는 니노미야 패거리 중에서도 조금 특이한 소년이다.

모모세는 사시가 괴롭힘의 원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연이 일치한 단순한 결과”라고 말한다. 죄책감마저 없다.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고, 그는 타켓이 되었을 뿐이라고 한다.

이 대화에서 가해자의 궤변은 많은 곳에서 우리가 무수히 많이 본 내용이다.

가끔 가해자가 다른 곳에서 피해자가 되는 내용의 소설도 있다.

현실에서 이런 일은 자주 있는 모양이다. 선생하는 친구 말에 의하면 그렇다.


마지막에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엄마가 말한다.

나도 이 말에는 동의한다. 그럼 가해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드라마 ‘글로리’처럼 살인으로 응수해야 할까?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수십 년 동안 학폭과 왕따 이야기를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말하지만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하지만 변화는 언제나 조금씩 진행된다.

그 변화가 이번에 나온 <글로리>를 통해 폭발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같은 편이라고 말해주는 고지마의 존재는 친구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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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클래식 라이브러리 3
버지니아 울프 지음, 안시열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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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의 클래식 라이브러리 3권이다.

오랫동안 읽어야지 하고 마음먹었던 책이다. 드디어 읽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버지니아 울프를 말할 때 항상 나오는 책이기도 하다.

나에게 버지니아 울프는 아주 읽기 힘든 작가 중 한 명이다.

워낙 유명해 몇 권을 사놓았지만 손은 언제나 제자리다.

<올란도>를 아주 지루하고 재미없게 읽었던 기억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사실 <올란도>에서 기대한 것은 흔한 판타지 소설 같은 이야기였다.

작가에 대한 무지가 만들어낸 착각이고, 다른 소설에 손이 나가지 않게 만들었다.


여성이 재산이 가지기 시작한 지 불과 몇십 년 되지 않은 시절.

여성의 참정권이 허락된 지 겨우 9년이 지난 시점.

자기만의 방과 연 소득 500파운드, 작가가 중요하게 말하는 부분이다.

좁게는 영국 문학사, 확장해서는 유럽 문학사를 통해 여성의 소외를 말한다.

남성들이 말하는 여자들이 시를, 소설을 쓸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여성에 대한 폭력이 당연시되던 시절. 그 시절이 지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시대다.

현대 여성들이 활발한 문학 활동을 하면서 우리의 시선을 자신도 모르게 왜곡되었다.

버지니아 울프 이전에 여성 작가들이 얼마나 소수였는지 말이다.


시나 소설을 쓰는 것이 너무나도 쉬워진 현실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그녀의 주장.

며칠 전 읽었던 소설에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시집 출간을 거절한 출판업자가 나온다.

이 출판업자가 여성 시인에게 요구한 것은 요리책이었다.

남성들이 여성을 보는 시각이 어떠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고, 소설이었다.

재산도 가질 수 없었고, 차분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자기만의 방도 없었던 여성들.

그녀들의 시와 소설이 나오지 못하는 것은 재능 문제가 아니라 환경 문제다.

차분하게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여러 번 알려준다.

몇몇 위대한 여성 작가들이 일을 하면서 소설이나 시를 썼지만 이것은 특이한 경우다.


영국의 위대한 시인 12명 중 아홉 명은 대학 출신이다.

나머지 3명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 분석은 환경의 중요성을 잘 부각시킨다.

대영박물관을 돌아다니면서 여성 작가의 책을 찾는다. 거의 보이지 않는다.

현대로 오면서 여성 작가들이 늘어나지만 그때는 아직 절대적으로 부족한 때다.

여성들이 창의성이 부족하다고 비하하는 남성들의 글은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 대한 반론으로 시간과 공간과 금전의 부족을 말한다.

창의성 부족, 문장력 부족 등의 문제가 아니다.

이 사실은 현재 우리가 읽는 소설 등으로 너무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결코 많은 분량이 아닌 에세이이지만 쉽게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내가 영국 문학을 읽으면서 알고 있던 것, 간과했던 것들이 요약되어 나온다.

이것을 하나씩 논파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이 책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여자 대학인 뉴넘 칼리지와 거턴 칼리지에서 행한 두 강연 일부를 수정했다.

글로 나오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더 정확하게 표현한 것 같다.

인상적인 이야기가 몇 개 나온다.

그 중 하나가 세익스피어의 여동생이야기이고, 다른 하나가 한쪽 성에 치우치지 않는 글쓰기다.

전자는 오래 전의 영화가 한 편 떠올랐고, 후자는 당연하지만 쉽지 않은 부분이다.

100년 전 책이지만 현재에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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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여 안녕 클래식 라이브러리 1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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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의 클래식 라이브러리 제1권이다.

2019년에 낸 책의 개정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 유명한 사강의 첫 소설이다.

아마도 오래 전 다른 번역으로 읽은 것 같은데 너무 오래되어 기억나지 않는다.

최근 사강의 소설들이 새롭게 번역되어 나오고 있는데 솔직히 예전에 읽었던 책을 기억하지 못하겠다.

다만 젊을 날의 내가 사강의 소설들을 재밌게 읽었다는 것만 기억난다.

프랑스 소설 고전의 반열에 올라간 이 소설을 다시 읽어도 좋다.


이 책은 원작의 번역과 사강의 이 소설에 대한 에세이와 사강에 대한 해설로 구성되어 있다.

사강의 삶에 대한 해설은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사강의 삶을 좀더 잘 알게 해주었다.

마약, 스캔들, 자동차 등으로만 알고 있던 그녀의 삶을 다르게 보게 한다.

이 에세이와 해설을 읽으면서 오래 전 한 천재 문학 소녀에 대한 예찬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다시 읽으면서 18세 소녀가 이런 소설을 썼다는 사실에 놀란다.

명확한 문장과 10대 후반의 섬세한 심리 묘사 등이 나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특히 자신의 욕망에 휘둘리면서 타인을 조종해 욕망을 이루려고 하는 모습은 작은 악마와 같다.

하지만 이 감정도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몰라 생긴 것이다.


40대의 아버지 레몽, 아버지의 젊은 연인 엘자, 대입에 실패한 딸 세실.

이 셋은 바닷가로 긴 휴가를 떠난다.

세실은 이곳에서 법을 공부하는 이십 대의 시릴을 만난다.

그와의 관계는 사랑과 욕망 사이에 놓여 있다.

이런 그녀의 일상에 큰 파문이 일어난다. 바로 엄마 친구였던 안의 등장이다.

안은 한때 세실을 돌봐주었고, 지적이면서 도덕적인 여성이다.

감각적이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아버지와 잘 어울리는 여자가 아니다.

안에게 끌린 아버지는 그녀와의 결혼을 말한다.

당연히 엘자는 더 이상 이 휴가 저택에 머물 이유가 없다.

세실의 못된 장난과 살짝 뒤틀린 감정은 아버지의 질투를 유발한다.


굳건한 사랑과 진솔한 삶을 살았다면 이 질투는 없었을 것이다.

아니 안을 불러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아버지와 딸을 내세워 이야기를 계속 풀어간다.

안은 세실의 대입 시험을 위한 공부를 독려하고, 안에게 빠진 아버지는 아직 그 욕망을 다 채우지 않았다.

안은 세실이 시릴을 만나는 것도 반대한다. 어쩌면 이 반대가 세실의 나쁜 생각을 불러왔을 지 모른다.

그녀의 계획은 사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간단하다.

하지만 자신이 젊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중년을 뒤흔들기는 충분하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세실은 자신의 잘못을 말하지만 인간의 감정은 그것을 소화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비극적 사고의 원인은 무엇일까? 자살 혹은 사고?

이 비극은 그녀에게 깊은 슬픔을 전해준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은 이 슬픔에 안녕을 고한다.

지극히 현실적인 욕망과 삶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열여덟 소녀가 이런 감정을 이런 섬세한 문장으로 표현했다니 대단하다.

솔직히 얼마 전에 읽었던 후기 소설보다 이 첫 소설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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