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일라이저의 영국 주방 - 현대 요리책의 시초가 된 일라이저 액턴의 맛있는 인생
애너벨 앱스 지음, 공경희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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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에 ‘현대 요리책의 시초’라는 문구가 있다. 아주 매력적인 문구다.

요리책을 거의 읽지 않지만 가끔 레시피가 적힌 것들은 찾아본다.

내가 요리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궁금해서 찾아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이야 블로그나 인스타 등으로 간단하게 찾아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종이를 통해 알았다.

자취를 할 때면 이런 레시피는 좋은 안내서가 된다. 뭐 거의 해 먹지는 않았지만.

요리책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거기에 적힌 계량 등에 대한 불만이다.

요리 방송을 볼 때도 이 불만은 존재한다. 집에 계량 컵 등이 없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에 나오는 방송이나 요리책은 예전보다 쉬운 편이다.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해도 맛이 없는 것은 나의 손맛이 별로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프렌차이즈 식당들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최근에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자신도 다른 집에서 요리하면 실수를 한다고 한다.

도구와 불의 세기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도 그런데 과거의 요리는 어떻겠는가?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주방 상황인데 말이다.

그리고 일라이저 이전의 요리책들은 집에서 요리하는 사람들을 위한 친절한 요리책이 아니었다.

이 소설의 도입부는 한 시인 지망 여성의 좌절과 새로운 도전의 순간을 잘 보여준다.


소설은 두 여성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첫 부분은 일라이저와 함께 요리를 만들었던 주방 보조 하녀였던 앤의 현재 이야기다.

앤은 밤에는 한 남자의 정부고, 낮에는 그 남자의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 같은 존재다.

이런 그녀에게 한 권의 요리책이 선물로 전달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 요리책의 상당 부분은 미스 일라이저의 요리책을 표절한 것이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두 여인이 어떻게 만났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준다.

이 과정에 작가는 앤의 존재를 더 부각시킨다.

이 시대의 다양한 계층을 이해하는데 좀더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일라이저는 여성 시인으로 시집을 내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요리책 집필을 의뢰받는다.

결코 원하지 않는 일이지만 아버지의 파산이 그녀의 삶을 살짝 비튼다.

앤은 어머니가 정신병을 앓고 있고, 줄로 앤과 연결되어 있다.

줄이 풀려 나체로 마을을 돌아다닌 전력이 있다. 불안하고 불편한 상황이다.

아버지는 다리 하나를 잃었고, 엄마를 목 졸라 죽이려고 한 적이 있다.

이런 둘이 하나의 접점을 이루게 되는 것은 일라이저와 엄마가 하숙집 보다이크 하우스를 연 것이다.

일라이저는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앤은 주방 하녀로 고용이 되었다.

이 둘이 좋은 콤비가 되는 데는 앤의 아주 탁월한 미각이 한몫 했다.


일라이저가 예전 집을 떠나면서 기존의 요리책에 불만을 품었다.

자신이 쓰는 레시피에서 시의 가능성을 본 것은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다.

부정확하고 불명확한 기존의 요리책을 뛰어넘는 요리책을 집필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 노력은 결코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소설 말미에 10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말한다. 대단한 열정과 노력의 결과다.

그리고 요리책에 대한 이야기보다 이 두 여성의 삶과 현실에 지면을 할애한다.

서로 비밀을 숨기고 있다가 하나씩 교환하면서 생기는 연대 의식은 또 어떤가.

그 시대의 삶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작가의 노력은 멋지다.


솔직히 말해 미스 일라이저의 레시피가 나오는데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재료 손질하는 법과 요리 도구 등도 지금과 많이 다르다.

몇 가지 음식을 제외하면 나의 입맛을 돋우는 요리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요리책에는 영국의 가정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들의 레시피가 담겨 있다.

일라이저가 이 책 집필에 열의를 다하는 것도 점점 사라지는 영국 요리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국 요리가 맛없다는 것도 이 책에 나온다.

그 맛없는 요리의 이유는 재료와 전통 음식에 대한 전승 부족 탓이다.

부분적으로 상당히 가독성이 좋지만 교차하는 두 여인의 삶이 그렇게 강렬하지 않다.

요리책 집필의 초기 부분만 다루는 것도 역시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 속에 담긴 서로 다른 계급 여성의 우정과 연대는 놀랍고 재밌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하는 일라이저의 열정과 매력적인 음식 묘사는 아주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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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10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
이승훈 외 지음 / 마카롱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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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모전도 이제 10회가 되었다. 즐거운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공모전 수상 작품들에 관심을 두고 읽는다.

이번에도 반가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앞의 세 편을 보고 주제가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세 편은 모두 안드로이드를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이다.

아마 다른 두 편이 아니었다면 특정 주제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전처럼 이 다섯 편을 재밌게 읽었다.

약간의 취향 차이는 있지만 생각할 거리와 웃을 거리로 가득했다.

이승훈의 <야구규칙서 8장 ‘심판원에 대한 일반 지시’>는 바짝 다가온 현실이다.

야구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심판의 판정 문제다.

이제 중계 화면에 가상의 스트라이크 존이 설정되어 나오고, 시청자는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

판정에 의문을 품고 있을 때는 이의를 제기해 영상으로 그 장면을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모든 일을 사람이 하는데 이것을 안드로이드로 대체한다면 어떨까?

안드로이드로 대체된 야구장의 현실을 다루면서 그 문제도 같이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왜 야구 선수들이 이 경기에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말한다.

야구와 야구를 사랑하게 된 안드로이드와 마지막 반전이 재밌다.

김단한의 <울다>는 해녀 순향과 안드로이드 잠수 로봇의 이야기다.

해녀 순향의 과거사가 먼저 흘러나오고, 인간의 욕심으로 바다 생물이 점점 사라진 미래를 보여준다.

바다 생물이 없으면 해녀도 필요가 없다. 순향의 마지막 남은 해녀다.

울다는 AI 인어공주이자 최초의 수중 로봇이다.

아쿠아리움에서 인어공주 역할을 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아쿠아리움에는 바다가 아닌 수족관에서 태어나고 살아가는 바다 생물들만 가득하다.

울다는 순향을 만난 대화를 나누고 싶어한다. 그 이유가 나중에 밝혀진다.

조금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마지막 장면은 강렬한 밝음을 내보여준다.

고반하의 <인간다운 여름>은 안드로이드의 사랑 이야기다.

지나는 인간형 안드로이드다. 안드로이드란 표식을 문신으로 가린 채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녀의 직장 동료들은 그녀가 인간이란 사실을 모른다. 일 잘 하는 에이스로 생각한다.

그녀의 친구 유리는 어느 날 편의점 휴머노이드 도현을 보고 반한다.

유리는 지나에게 도현이 자신을 사랑하게 도와 달라고 말한다.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사랑이다.

이것을 방송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내보내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그런데 문제는 도현을 해킹해 유리를 사랑하게 했는데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밝혀지는 새로운 사실은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한다.

휴머노이드의 존재와 인간과의 관계 등은 고전 SF에서 다루었지만 이 소설은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다.

함서경의 <too much love will kill you>는 좀비물이다.

보통의 좀비물과 다른 설정이다. 이 소설의 설정 중 일부는 코로나 19의 상황과 닮았다.

좀비로 변한 사람들을 치료해 다시 정상인처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좀비였을 때 외형은 복원되지 않는다. 이들은 치료자로 불린다.

주인공이자 약사인 나와 옆집 남자의 기묘한 관계는 읽는 내내 의문이 들었다.

머릿속에서 왠지 모르게 둘의 성별이 혼란스럽게 뒤섞였다. 덜 집중한 것일까?

옆집 남자의 사연을 들은 후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진다. 무서운 일이다.

개인적으로 설정은 마음에 들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부분은 취향에 맞지 않다.

강솟뿔의 <여보, 계(Hey, chicken!)>는 비루하고 잔인한 현실을 보여준다.

영화감독 준규의 입봉 작품은 투자자 등의 간섭으로 누더기가 되어 망한다.

두 번째 영화를 찍기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유학 간다는 여친은 노견 푸들 아롱이를 맡겨 두고 분당 부잣집에 시집을 갔다.

아롱이가 죽은 후 자살하려고 마음먹는 데 비 맞은 병아리들을 얻는다.

한 마리 살았는데 조연 배우 현 선생의 말대로 그 이름을 ‘여보 계’라고 이름 짓는다.

열심히 병아리를 돌보고, 여보 게를 외치는 좋은 일이 생긴다.

그의 삶에 빛이 내린다고 생각하는 순간 벌어지는 일들은 삶의 잔인함이다.

코믹하고 재미있지만 마지막 장면까지 씁쓸함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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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브이 안전가옥 오리지널 23
박서련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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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오리지널 23권이다.

처음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검색하니 <모던테일> 속 단편 한 편을 읽은 적이 있었다.

사실 이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아직 읽지 않고 제목만 기억하는 소설 때문이다.

이 소설의 제목은 프로듀서의 말에 나오는데 언제 시간 내어 읽어 봐야겠다.

그리고 제목의 그 로봇은 내가 예상한 그 로봇이 맞았다. 바로 ‘태권 브이’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태권 브이라고 한 번도 말하지 않지만 바로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우람이 말한 것처럼 내 나이가 그런 사실을 바로 알 수 있는 나이대인지도 모르겠다.

거대 로봇의 형태와 탑승자 이름을 정하는데 나이가 있는 권력자 등의 권력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주인공 우람은 탁월한 로봇 조종 실력을 가지고 있다.

국제 경기에 나가서 자신이 만든 로봇으로 준우승까지 한 전력이 있다.

그의 지도 교수가 거대 로봇 프로젝트 브이의 탑승자로 그녀로 정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방송에서 이 거대 로봇의 탑승자를 뽑는 대국민 오디션을 벌인다고 한다.

그 프로그램의 이름은 ‘프로젝트 브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몇 가지 자격 조건이 있다. 나이와 성별과 태권도 1단 자격증 등이다.

다른 것은 문제가 아닌데 남성만 지원이 가능하다. 우람은 여자다.

지원 불가능하지만 쌍둥이 오빠 보람의 이름 등을 빌려 지원한다.

서류 통과는 문제없이 되었고, 이제 방송에 직접 나오는 첫 관문이 남았다.


우람이 방송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다른 남자들과 경쟁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몇 가지 부분에서 그녀의 체력 등이 남성에 비해 부족할지 모르지만 다른 부분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500명에서 100명으로 줄어 들고, 최종적으로 3명이 남는 방식이다.

이런 오디션 방송은 이미 기존의 방송에서 본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각 단계의 과제와 이것을 풀어나가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미 작은 로봇을 만들고, 탑승해 조종한 적이 있는 그녀에게는 상대적으로 쉬운 과제다.

당연히 그녀의 성적은 항상 최상위에 놓여 있다.

과연 작가는 우람을 어디까지 끌고 가서 그녀가 여성이란 사실을 밝힐지 궁금하다.


이 프로그램에서 우람의 룸메이트 정훈은 계속 턱걸이로 생존한다.

백 명 중 100등, 20명 중 20등, 10명 중 10등 같은 방식이다.

그는 정석대로 행동하고, 열정적이고 활기 찬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기술 등은 열정 등으로 보완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에겐 최고의 선생이 옆에 있다. 바로 우람이다.

우람의 핀 포인트 과외는 그의 열정과 노력과 맞물려 최상의 결과를 만든다.

그렇다고 작가가 정훈의 분량을 특별히 다루지는 않는다.

팬들은 정훈과 우람의 로맨스를 기대하지만 정훈은 동성애자가 아니고 우람은 관심이 없다.


프로젝트 브이. 외형은 태권 브이. 조종사는 원작 만화영화대로 훈이.

이 프로젝트는 바로 훈을 뽑는 것이다.

이 이름과 외형으로 인해 수많은 논쟁이 오간다는 말이 중간중간 나온다.

이 부분은 과거 한국의 콘텐츠 표절 등의 문제와 엮여 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 기획자 등에게는 추억과 국뽕의 환상을 심어주는 이름이다.

이 만화 영화가 얼마나 인기 많았는지 말할 필요도 없다.

오래 전 이 태권 브이를 웹툰으로 다시 부활시키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진행사항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국회의사당 지붕 이야기는 이 소설에서도 다룬다.


이 오디션을 보면서 예전에 한국 최초의 우주인을 뽑는 방송이 떠올랐다.

그 프로그램이나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 등이 구성이나 세부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런 방송 등을 거의 보지 않는 내가 세부적인 부분을 알아채는 것은 불가능하다.

작가는 악마의 편집이라고 부르는 장면을 의도적으로 거의 넣지 않았다.

그리고 거대 로봇의 조종사로 우람을 설정하면서 일반적인 인식을 깨트린다.

재밌는 부분은 우람과 함께 가장 강력한 후보를 게이로 설정한 것이다.

성별과 성 문제를 출연자 속에 바로 녹여내면서 사회의 인식을 깨트린다.

뛰어난 가독성, 매력적인 캐릭터, 예상하지 못한 마지막 반전 등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 싶게 한다.

최근 AI와 로봇에 대한 소설들이 많이 나오는데 거대 로봇은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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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너희 세상에도
남유하 지음 / 고블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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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하의 세 번째 단편 소설집이다.

이전에 나온 단편집은 아직 읽지 못했다.

이번 단편집을 읽고 관심이 생겼는데 언제 읽을지는 모르겠다.

최근 이런 작가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읽어야 할 책들은 더 높이 쌓여간다.

읽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작가의 말’에서 살짝 맞을 때는 괜히 기분이 좋았다.

여덟 편의 단편 중 한 편 <화면공포증>은 다른 앤솔로지에서 이미 읽은 소설이다.

최근 앤솔로지를 자주 읽게 되면서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앞에서 살짝 맞았다는 표현을 쓴 소설은 <에이의 숟가락>과 <이름 먹는 괴물>이다.

<에이의 숟가락>에서 에이가 답이 정해진 수학을 좋아한다는 표현 때문이다.

이 단편에서 에이가 주운 숟가락은 가공할 살인 도구이자 뒤틀린 욕망을 대변한다.

너무나도 날카롭고 무시무시한 이 숟가락은 그녀의 소유욕을 살인으로 나타난다.

이 감정이 극대화된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해 임신했을 때 드러난다.

<이름 먹는 괴물>은 이름을 부르는 죽는다는 게임을 한 학급 내에서 판타지로 구현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가 학급에 떨어지고, 이름이 불린 학생이 이 괴물에게 먹힌다.

또 다른 이름이 불리면 그가 괴물에게 끌려가 이전 아이와 합쳐진다.

생존을 위해 이름을 부르지 말자고 하지만 조그만 갈등이 이것을 깨트린다.

이런 게임에서 가장 유리한 학생은 누굴까? 당연히 이름도 절 기억나지 않는 학생이다.


<반짝이는 것>은 <다이웰 주식회사>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변형 좀비 바이러스가 감염된 아버지와 그 아들 부부의 이야기가 아주 씁쓸하다.

기존 좀비처럼 사람을 마구 물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의식의 일부가 점점 사라진다.

다이웰 주식회사에 가서 안락사를 시킬 수 있지만 아들 부부는 돈 때문에 하천에 유기한다.

유기된 아버지가 편안한 죽음을 위해 찾아간 곳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더 비참하다.

<뇌의 나무>는 탐욕의 비극을 간결한 이야기 속에서 보여준다.

누구나 향유할 수 있던 지혜와 사랑의 감정을 독재자가 독점하려고 하면서 생긴 비극이다.

가지지 못하면 파괴하려는 모습은 에이의 행동과도 닮아 있다.


<미래를 기억하는 남자>는 기시감과 선택의 문제를 다룬다.

어느 날 갑자기 기시감을 느끼는 남자. 선택의 기로에서 기시감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정과 기시감과 선택의 문제가 엮이고 꼬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마지막 장면은 황당하지만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면 나의 선택은 어떨지 궁금하다.

<목소리>를 읽으면서 <전지적 독자 시점>의 오프닝이 떠올랐다.

누군가를 죽여야만 살아남는 나. 물론 세부적인 설정은 다르다.

죽이지 않으면 갑자기 죽는다. 이렇게 죽는 사람들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인다.

차로, 칼로, 다른 도구를 이용해 죽이려고 달려든다.

이 잔혹한 세계에서 삶에 대한 욕망이 이성을 마비시킨다. 부부사이도, 혈연관계도 없다.

이 설정은 좀비 소설의 변형처럼 느껴진다.


표제작 <부디 너희 세상에도>는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순간을 그린다.

주인공은 인기 없는 소설가. 창작 아이디어가 번쩍이는 곳은 목욕탕.

이 곳에 침입한 좀비 한 명. 이어지는 감염. 그런데 주인공의 인식과 세계가 이상하다.

주인공이 소설 속 인물이란 자각이 들고, 창작자의 의지가 들려온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차원을 넘어 가면서 제목에는 생략된 부분이 서늘함을 전한다.

이렇게 이 단편집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욕망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연히 읽으면서 ‘나의 상황이라면’이란 가정을 할 수밖에 없다.

잔인하지만 현실적인 상황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이 단편집,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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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자에게 잊혀진 시체 보관 기록 쿤룬 삼부곡 3
쿤룬 지음, 진실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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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룬 삼부곡의 마지막 3편이다.

2편을 먼저 읽은 후 1편을 읽었는데 나쁘지 않은 순서인 것 같다.

2편 <선생님이 알아서는 안 되는 학교 폭력 일기>가 외전 같은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편은 전편에서 가진 의문들이 하나씩 해결된다.

가장 궁금했던 청소업자와 다비도프의 정체가 밝혀진다.

여기에 스녠에 대한 잭 조직원들의 반격이 펼쳐지면서 피 튀는 액션이 더 가미된다.

앞에 나온 책들과 마찬가지로 잔혹하고 역겨운 장면들도 여전하다.

비위가 약하거나 이런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독자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시체를 수거해 가는 업자가 된 촨환. 그는 기억을 잃었다.

다른 업자 오소리와 함께 수습사원으로 시체 수거를 한다.

이 무시무시한 세계에서 살인으로 인한 사회 문제가 크게 펼쳐지지 않는 것은 이들 덕분이다.

살해당한 사람들은 매년 사라지는 사람으로 갈음할 수 있지만 시체는 다른 문제다.

시체가 드러나면 공권력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업자들이 이 시체를 수거해 가니 살인마들에게 얼마나 편한 일인가.

이런 시스템을 누가, 왜 만든 것일까? 그 시체는 어디에 사용되는 것일까?

이 의문 중 한두 개는 나중에 해소되지만 시체의 사용 부분은 완벽하지 않다.

공장에 온 시체들이 소각되어 사라지는 것 같은데 모두 그런 것인지는 의문이다.


스녠에 대한 잭 조직원들의 공격이 펼쳐진다.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스녠은 그들의 협공으로 위기에 처한다.

부상당한 몸을 가지고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닥터 야오의 병원뿐이다.

이하오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가는 데 문제가 하나 있다.

이 병원 지하에서 괴물이 된 페이야가 촨환을 찾으면서 계속 살인하기 때문이다.

폐이야에게 스녠은 아버지를 죽인 살인마다.

만약 둘이 마주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물론 이 둘이 부딪히면서 생기는 사건을 기대하는 닥터 야오 같은 사람도 있다.


제목에 ‘업자’가 들어가 있듯이 이번 책에서는 기억을 잃은 촨환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업자인 촨환의 이름은 ‘사자’다. 그는 다른 수거업자와 달리 아직 이성을 가지고 있다.

이 이성이 다른 업자처럼 행동하는 와중에 정신을 완전히 놓는 것을 막는다.

업자로 계속 활동하게 되면 촨환을 찾으려고 계속 살인하는 페이야를 만날 수밖에 없다.

나중에 이 둘은 만나고, 서로 엇갈린 반응을 보여준다.

여기에 촨환은 공장 밖을 돌아다니다 한 소녀를 만난다.

그녀는 촨환의 상의에 도청 장치가 있다고 말해준다. 옷을 벗어놓고 둘은 잠시 대화를 나눈다.

이 소녀 탄화의 정체는 무엇일까?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물론 이 의문도 후반부에 가면 하나씩 풀린다.


잭의 조직원들이 스녠을 잡기 위해 닥터 야오의 병원에 들어온다.

이들에게 다른 사람들은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일 뿐이다.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사람들을 죽인다. 이들의 돌입은 닥터 야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이하오는 어떻게든 닥터 야오를 보호해야 한다.

살의와 광기가 폭발하고, 이성을 잃지 않은 잭의 조직원들이 조금 더 실력이 좋다.

몰래 다가가 사람을 공격해 정신을 잃게 하는 페이야의 실력은 드러난 곳에서 너무 무력하다.

이 싸움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어간다.

그리고 그 다음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처참하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액션으로 가득하다.

상당히 아껴가면서 매일 조금씩 읽었는데 마지막에 오면 그냥 멈출 수가 없다.

한국에서 웹툰으로 제작된다고 하는데 한 번 봐야겠다.

더불어 쿤룬의 새로운 소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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