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캐럴 - 반인간선언 두번째 이야기
주원규 지음 / 네오픽션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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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로 검색하면 찰스 디킨스의 소설들이 먼저 나온다.

너무나도 유명하고 무수히 많은 번역본이 존재하는 책이라 주원규 작가의 책은 순위가 뒤로 밀린다.

책 제목에 작가 이름을 더하니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가끔 이런 일이 있다.

2016년에 나왔는데 영화로 제작되면서 띠지를 바꿨다. 흔한 일이다.

그리고 아주 뛰어난 가독성과 잔혹한 소년원의 풍경으로 나를 이끌고 들어간다.

만약 실제 소년원이 이런 모습이라면 그 존재 가치가 사라진다.


주일우. 쌍둥이 동생 주월우가 죽은 후 복수를 위해 괴물이 되었다.

스타벅스에서 난동을 부린 후 소년원에 왔다. 이 일로 소년원에 갇힌다.

일진 문자훈은 주일우가 소년원에 들어온다는 소식에 놀란다.

문자훈과 그 친구들은 주월우의 죽음과 관계 있다. 작가는 두 개의 시간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하나는 현실의 시간을 따라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월우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월우의 죽음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숨겨진 사실이 무엇인지 하나씩 드러난다.


크리스마스 이브, 주월우의 시체가 아파트 17동 지하 물탱크실에서 발견된다.

시체가 말하는 수많은 증거들을 경찰 등은 무시한다. 아파트 입주자들도 조용하길 바란다.

현실적으로 십 대의 주일우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는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가장 가능성 높은 문자훈 일당을 쫓아 소년원에 왔다.

현실적인 문제는 그냥 넘어가자. 복수에 대한 갈증이 흘러 넘친다.

주일우의 존재감이 조금씩 부각된다. 공포가 조금씩 스며 든다.


한 소년의 입소를 두려워하는 일진 무리들. 이런 일진도 가볍게 억누르는 교정 교사.

가혹한 폭력으로 아이를 공포에 잠기게 하면서 소년원을 억누르는 교사 한희상.

주일우가 입소했을 때 그가 보여준 폭력의 광기는 독자를 놀라게 한다.

그리고 작가가 묘사하는 참혹한 생존의 몸부림과 잔인하고 뒤틀린 욕망들.

하나의 폭력 너머에 존재하는 더 잔혹한 폭력. 고통. 공포. 생존 욕구.

조금 더 안락한 삶에 대한 갈망은 잔인한 폭력으로 표현된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야기다.

철거 용역에 고용된 월우의 행동과 심리 묘사는 그 행위의 이면 하나를 잘 보여준다.


읽다 보면 문자훈 패거리가 저지른 폭력과 주월우의 죽음 사이의 간극이 드러난다.

월우의 죽음을 조금 뒤로 돌리면 숨겨진 이야기들이 하나씩 흘러나온다.

문자훈 패거리가 저지르는 폭력과 일우가 왜 이런 복수의 살기를 키우게 되었는지를.

공포는 조용히 사람의 몸과 영혼을 잠식한다. 그 반격도 공포 때문에 일어났다.

하지만 이 공격이 괴물로 변한 일우를 더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이다.

일우가 세상에 나와 어른들에게 배운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씁쓸하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학생들을 돌보고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할 두 곳이 폭력의 온상이다.

그 두 곳은 학교와 소년원이다. 일진은 이 두 곳에서 그 힘을 일반 학생들에게 발휘한다.

문제가 있는 소년을 교화해야 할 소년원은 관리의 편의성 때문에 교사의 폭력에 눈을 감는다.

학교는 어떤가. 수많은 학교 폭력과 집단 따돌림의 온상이 아닌가.

소설 속 손환은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참혹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또 얼마나 잔혹한가. 그를 희생양으로 내놓고 대신 자신들의 욕망을 채운다.

이 상황과 장면을 조금만 비틀어도 우리 사회의 일면을 그대로 반영한다.


주월우가 누구에게 죽었는지 보여줄 때, 그만은 아니길 바랐다. 그런데 그였다.

주월우가 괴물로 변해 일진 패거리와 그 용병 고병천과 싸우는 장면은 참혹하지만 재밌다.

박진감 넘치는 장면 묘사와 광기와 공포의 발산은 그 장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읽다 보면 이런 폭력을 맨몸으로 견디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진짜 잔혹한 폭력은 이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몰아 세운 문자훈과 한희상의 폭력이다.

복수의 폭력은 처절하고 피가 튀는 잔혹함이 있지만 일진 등의 폭력은 악의적이고 잔인하다.

이 일진의 폭력은 또 무수한 암묵적 동의자들을 만든다. 이 또한 우리 사회의 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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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지구
윤재호 지음 / 페퍼민트오리지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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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는 영화감독이다. 이 책은 그의 첫 소설이다. 장르는 SF 액션 판타지이다.

윤재호 영화감독이 만든 영화 중 본 영화는 현재 없다. 최근에 영화를 거의 보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의 영화 제목은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아도 익숙한 편이다.

검색해 영화 내용 등을 확인하면 영화 소개 방송 등에서 얼핏 본 것 같다.

추천평을 쓴 세 명의 배우들은 모두 윤재호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다.

이들의 추천평은 소설을 읽고 난 후 개인의 취향 등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가장 좋다.


환경 오염으로 지구를 떠난 최후의 인류가 정착한 곳이 바로 세 번째 지구다.

지구와 최대한 환경이 비슷한 이 행성에서 인류의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200년 후의 시간을 배경으로 제3지구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작가는 한 명의 주인공을 내세워 하나의 시선으로 그려내지 않고,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킨다.

이 행성은 12개의 구역으로 나누고, 귀족 등이 사는 중앙이란 곳이 있다.

각 구역에 사는 사람들은 행운 추첨으로 중앙으로 가는 것을 꿈꾼다.

다른 방법 중 하나는 구역이 파이터가 되어 중앙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주인공 중 한 명인 해성은 8구역 최강의 파이터다.


이 행성은 아주 불평등하다. 착취 구조가 견고하게 이루어져 있고, 1%의 엘리트들이 상부 구조를 이룬다.

각 구역의 사람들은 노예처럼 노동에 종사하고, 값싼 마약이나 술로 자신들의 삶을 위로한다.

이런 삶에 반기를 든 반군 조직이 있다. 바로 레볼트다. 이 반군을 쫓는 인물이 플릭 제1팀장 크루거다.

그는 독재자의 사냥개가 되어 레볼트를 무너트리려고 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레볼트에게 죽은 애인이다.

사랑했던 그녀가 죽은 후 레볼트에 대한 반감이 더 높아졌다.

하지만 자신이 쫓는 무리와 그 과정에서 만난 한 여인을 통해 자신의 일에 의문을 품는다.

사실을 왜곡하고, 현실을 가리는 조직과 그가 아는 사실이 충동한다.


여기에 레볼트에 지원하는 해성의 친구 헤나, 해성의 숨겨진 능력을 개발하려는 아리아4세 등이 나온다.

이들의 시선과 경험은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이 행성의 다른 면을 알려준다.

프롤로그에 나온 이야기 이외 다른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이야기 규모를 더 키운다.

액션 판타지를 강화하기 위한 설정 중 하나인 괴물의 등장은 이야기에 속도감을 더한다.

자르고 죽여도 재생하는 이들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현대 무기로 대적하기는 어렵다.

이 괴물들의 정체가 밝혀지고, 황제 케이를 중심으로 한 권력 투쟁이 조용히 벌어진다.

그리고 이 행성에서 채취되는 레드, 블루, 블랙 다이아몬드는 아주 강력한 힘을 품고 있다.


작가는 거대한 이야기의 도입부라고 말하면서 많은 설정을 풀어놓았다.

수많은 등장인물, 이 행성에 거주하는 포식자 괴물들, 인간에서 괴물로 변신하는 존재들.

강하게 고착된 지배 구조,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는 듯한 사람들의 생활 모습.

정치 무관심과 마약 중독. 파이터 경기로 욕망을 분출하는 재미, 행운 추첨으로 중앙으로 가는 기회.

작가는 이런 설정들을 깊이 있게 파고 드는 대신 가볍고 빠른 액션 등에 집중한다.

사람들은 무수히 죽어 나가고, 저장소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문제가 더 심해진다.

하지만 황제를 물리치고 제3지구에 평화와 평등을 가져다 줄 해성의 각성은 늦기만 하다.


전체적인 가독성은 상당히 좋다. 완성도만 놓고 보면 잘 쓴 웹소설보다 못한 부분이 있다.

설정의 허술함은 상황의 변화를 쉽게 만들고, 죽음을 너무 쉽게 다룬다.

최악의 장면은 20만 명의 미친 인간들을 모두 죽였다는 대목이다. 그것도 두 사람이.

영화로 만든다면 이 허술함을 영상이나 연기 등으로 가릴 수 있지만 소설은 아니다.

우림지대 전투에서 중요 등장인물들이 죽거나 팔이 잘리거나 죽기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 생긴다.

그런데 이것을 한 사람의 천재 과학자가 해결한다. 둔재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다.

이 책의 매력 하나를 더하고 싶어졌다. 바로 이 행성에 사는 괴물들에 대한 일러스트다.

아쉬움은 있지만 후속작이 나오면 보고 싶다. 아직 궁금한 것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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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살인 협동조합
김동식 지음 / 요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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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작가의 공포, 스릴러 단편집이다.

재밌는 점은 오디오 드라마와 동시에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오디오드라마 원작이 15편, 신작 5편 합쳐 모두 20편이다. 적지 않은 숫자의 단편들이다.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대표 단편집 <회색 인간>은 24편이나 된다.

대표작은 아직 읽지 않았지만 앤솔로지 등에서 만난 단편들은 아쉬운 경우가 조금 있었다.

그런데 한 권을 통째로 읽으니 완전히 느낌과 재미가 다르다. 좋다. 흐름이 다르다.


이 단편집의 재밌는 점 중 하나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재활용한다는 것이다.

작가의 성향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번 단편집만 그런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같은 주인공이 계속 등장한다면 만화책 주인공처럼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을 텐데 그것도 아니다.

그냥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힘들게 찾아내서 단편마다 다르게 쓰는 것이 귀찮았던 것은 아닐까?

동명이인이 많은 현실을 감안하면 이런 상황이 전혀 불가능하지도 않다는 쓸 데 없는 변명도 해본다.

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열 개 이내의 이름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20편이 되는 단편들의 모든 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쉽지 않고 큰 의미가 없다.

기발한 발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단편들도 있고,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노출한 단편도 있다.

어떤 단편은 마지막 장면을 읽고 감탄을 자아내고, <죽음의 방탈출>처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단편도 있다.

<칠판의 이름> 같은 경우는 마지막이 굉장히 노골적이다. 그리고 탐나는 살인 방식이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동명이인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는 원초적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실제 이 단편에서도 같은 이름이 계속 반복되어 나오고 있지 않은가.


<낚시터로 찾아온 사내>의 강박과 착각은 마지막에 드러나는데 <언젠가 냉장고 문을 열 테지만>은 기대와 착각이 만들어낸 상황을 잘 보여준다.

표제작 <청부살인 협동조합>은 협동조합의 필요성을 역설하는데 서늘하고 신박한 재미가 있다.

<왜 나를 살려 뒀을까>의 반전은 기발하다. 이것을 <기업 경영 AI>와 연결하면 돈과 효율이 엮인다.

<1분만 조종할 수 있다면>은 복수와 돈을 재밌게 엮었다. 복수만을 위한다면 <칠판의 이름>으로 충분하다.

<어차피 과거로 돌아갈 거면>은 타임슬립과 인간의 욕망을 직관적으로 엮었다.

<귀신 보는 내 친구>는 과도한 인정욕구가 만들어낸 비극을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보여준다.


<폭력 앱>은 폭력의 먹이사슬을 잘 보여준다.

<벌레들의 긴급한 밤>은 <죽음의 방탈출>의 경쟁과 심리전과 탐욕이 같이 눈에 들어온다.

<천국이냐 지옥이냐>는 읽으면서 ‘혹시’했던 부분이 사실로 드러났다. 사람에 대한 평가 기준은 무엇일까?

<총이 든 무기 상자>의 마지막 장면은 인터넷 악플러에 대한 가장 멋진 반격이다.

<몇 층을 누르실 겁니까>는 벌어진 틈 사이로 들어온 악마의 속삭임과 탐욕이 자리하고 있다.

예상하지 못한 마지막 장면을 나란히 보여주는 <유품 경매인>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개인적으로 가장 암울하고 디스토피아적이고 현실적인 단편이 <기업 경영 AI>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행복과 생존은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최근에 있었던 SPC 참사와 연결하면 더욱 암울한 현실이다.


몇 편을 빼면 대부분의 단상을 적었는데 인간의 욕망, 기발한 발상, 예상하지 못한 반전들이 가득하다.

소설로 이 상황을 소비하기에 쉽게 도덕적 윤리적 기준으로 예단할 수 있지만 현실이라면 어떨까?

<무서운 침묵>의 마지막 질문이 주는 그 함축된 의미는 얼마나 무섭고 무거운 것인가?

돈 앞에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는 사람들의 모습은 현실에서 너무 자주 너무 쉽게 볼 수 있다.

따뜻한 것 같은 느낌으로 시작한 <아내의 동영상>의 마지막은 얼마나 끔찍한가?

이 단편집으로 살짝 묻어둔 작가의 다른 단편집으로 시선이 옮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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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도시 탐구 - 우리나라 도시에 숨겨진 과학 이야기
곽재식 지음 / 아라크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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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판타지 작가로 먼저 각인된 작가다. 그런데 다른 분야의 책도 상당히 많이 낸다.

자신의 전공과 전문 분야를 엮어서 다양한 책을 내는데 이 책도 그런 종류 중 하나다.

실제 글을 읽으면 발로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실제 원고의 많은 부분이 <김영철의 파워FM> ‘곽재식의 과학 편의점’ 시간에 다룬 것이라고 한다.

라디오는 듣지 못했지만 책으로 이렇게 만났으니 늦었지만 다행이다.


모두 열 도시다. 적지 않은 도시 숫자다.

개인적으로 가장 낯선 도시는 청주와 여수다.

청주는 분명 가본 곳인데 회사 워크샵 등으로 간 것이라 인상이 너무 흐릿하다.

여수는 어릴 때 스쳐 지나간 곳이다. 그때 정보가 많았다면 아마 한 번 이상 머물렀을 곳이다.

다른 여덟 도시 중 가장 최근에 간 곳은 제주이고, 대전은 KTX로 지나만 다닌다.

하지만 이 열 도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일들과 사람들이 수시로 떠올랐다.

이전에 자주 갔지만 이제는 왠지 모르게 쉽게 발길이 그곳으로 향하지 않는 곳도 있다.


청주 이야기를 읽으면서 배터리 회사가 있다는 사실이 처음 알았다.

인터넷으로 청주 배터리공장을 치니 화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청주 두꺼비를 검색하니 양서류생태공원이 보인다. 이렇게 서로 다른 결과가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

청주 이야기를 읽으면서 <곽재식의 고전 유람>속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대전은 가장 최근에 간 것은 오래 전 회사 직원의 결혼식이다. 살짝 옆구리만 보고 왔다.

오래 전 회사 일로 이곳에 간 적이 있는데 역시 정보가 많지 않고 길게 머물 생각도 없었다.

이런 대전에 관심을 두게 된 데는 이곳의 칼국수 등에 대한 팟캐스트를 듣고 난 다음이다.

철도와 국수의 상관관계를 말할 때 고속도로 휴게소 우동이 생각났다. 맛있게 먹었던 그 우동.

지금은 대덕에서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학교 선배가 먼저 떠오른다. 만나 지 오래된 그 선배.


전주는 당일 여행한 곳이다. 워낙 맛집들로 유명한 곳이라 큰 기대를 하고 갔다.

한옥마을은 솔직히 별로 였고, 줄 서 먹던 집들이나 빵 가게는 이제 서울에서도 쉽게 살 수 있다.

경기전은 생각보다 좋았고, 하천을 돌면서 구경하던 곳도 생각난다.

이 동네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에게 맛집 소개를 부탁했을 때 한 곳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탄소 섬유의 고장이라고? 생각도 못한 공장이 있다. 나의 편향된 시각을 반성하게 한다.

속초. 어쩌면 가장 많이 간 곳이다. 어릴 때 차를 몰고 해돋이를 보기 위해 간 곳이다.

친구들과 가고, 가족들과 가고, 회사 워크샵으로 간 곳이다.

회를 시키면 한때는 오징어 회를 공짜로 계속 주었다고 오랜 추억을 씹는 곳이다.

친구들과 갈 때와 아이들이 끼었을 때 가는 일정이 다른 곳. 겨울 여행이 생각나는 곳.


수학여행의 필수 코스였던 경주. 그때는 정말 별로였다.

친구와 함께 다시 간 경주.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전혀 보이지 않아 고개만 갸웃했다.

방송이나 책으로 이 도시를 소개하는 것을 보면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아이와 다녀온 친구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다. 기억을 새롭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울산은 친구 집이 있어 몇 번 간 곳이다.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도 희미하다.

울산에 가서 울산에서 논 적이 거의 없다. 경주에 가거나 부산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거대한 공장들은 회사 입사 후나 그 이후 여행에서 본 적이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거제 옥포 조선소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울산의 옛 지명이 학성이었다니.


언제부터인가 매년 여행을 가는 곳이 된 제주도.

제주 산업 특산품 반도체 이야기를 할 때 이직해 이곳으로 이사간 후배가 떠오른다.

그 후배의 도움으로 제주 일주를 아주 간결하게 한 적이 있다. 올레길을 모두 돌았다고 할 때 부러웠다.

무수히 많은 신들이 살고 있고, 역사의 비극이 자리한 곳.

가깝지만 잘 가지 않는 곳이 수원이다. 화성도 아내 친구 돌잔치 때문에 간 적이 있다. 좋았다.

아이를 데리고 가고 싶지만 서울을 떠나 가는 데 길이 너무 막힌다.

삼성전자 때문에 너무나도 부유해진 도시. 수원 왕갈비를 먹었던가? 모르겠다. 너무 오래되었다.


여수. 노래 한 곡으로 더 유명해진 곳.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은 향일암이다.

서울에서 너무 멀어 발걸음이 나아가질 않는다. 여수 정유공장들 파이프는 대단하다.

어릴 때 차를 몰고 지나가면서 본 그 거대한 공장들이 정유공장이었을까?

부산은 솔직히 나에게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도 항구 도시였기에.

해운대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간 겨울 바다는 너무 볼 품이 없었다.

가보지 못한 몇 곳에 대한 환상은 있지만 늘 기대하는 음식에는 물음표를 던진다.

한때 방송 때문에 잠시 나의 여행 욕구를 올렸지만 그렇게 끌리지 않는 도시다.

이런 생각을 바로잡을 방법은 실제 그곳을 다시 가보는 것이다.

신발공장과 무수히 많았던 의류 및 섬유 공장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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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상상력 공장 - 우주, 그리고 생명과 문명의 미래
권재술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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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저자다. 출간된 책도 이제 겨우 3권이다.

대중적인 물리학 서적을 쓴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인 것 같다.

2년 전 <우주를 만지다>란 책이 나왔었다. 상당히 평이 좋다.

과학 에세이가 이렇게 많은 서평이 달리고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특히 책 소개에서 물리학을 쉽게 풀어 설명해준다고 한 부분은 나의 시선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예전에 비해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고, 과학에 대한 공부 의지가 많이 사라졌기에 더 끌렸다.


태초에서 시작해 태종으로 마무리한다.

그 사이를 채우는 소재들은 존재, 우주, 생명, 정신, 문명 등이다.

태종이란 단어를 보면서 머릿속에는 오래 전 읽었던 <삼체> 시리즈가 떠올랐다.

우주와 외계문명, 생존과 거대한 과학을 아주 화려하게 풀어낸 시리즈였다.

세부적인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거대한 흐름은 항상 머릿속에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제 그 이미지 사이를 채워줄 몇 가지 논리와 이론 등을 조금 알게 되었다.


최초의 시작은 빅뱅이다. 빅뱅이란 단어를 보면 늘 머릿속은 아이돌 밴드 ‘빅뱅’이 먼저 떠오른다.

그 이미지를 지우고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는 우주를 떠올리면 그 속도를 머리가 따라가지 못한다.

얼마나 천천히 돌려야 그 속도의 일부이나마 재현할 수 있을까 상상한다.

저자가 말하는 속도는 인간이 체감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다.

이론적인 숫자는 어지간한 이성의 한계도 넘는다. 그 숫자를 계산해낸 과학자는 과연 그 속도를 체감할까?

양자론에 따른 플랑크 시간과 공간이 10¯⁴³초와 10⁻³⁵미터다. 찰라의 찰라의 찰라 시간이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설명은 다시 나를 영화 속으로 끌고 들아갔다. <인터스텔라>와 다른 SF 영화들이다.

너무나도 강력한 중력에 의해 주인공이 경험하는 시간과 외부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

사실 나의 상상력이 자주 막히는 부분도 이 부분이다. 중력과 시간의 관계 말이다.

물리학이 발달하고,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오고, 이론이 정립되면서 우주를 아주 미세하게 더 알게 되었다.

‘급팽창’ 이란 단어를 어딘가에서 본 듯한데 이번에 좀더 배웠다.

‘존재’에서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를 다루었는데 인식의 영역을 조금 더 확장하게 되었다.

다중우주 이론은 최근 선택에 의한 분기와 우주의 탄생이란 부분이 엔트로피와 엮이면서 복잡해졌다.


‘생명’의 장에서 지구의 탄생과 인류가 지구의 우세종이 된 것이 얼마나 우연인지 알게 된다.

인류세로 불리는 현재를 대멸종과 엮어 간결하게 풀어 설명한 부분도 좋았다.

덕분에 여섯번 째 대멸종에 관심이 생겼다. 나의 생존 시기와는 관계없을 테지만.

유전자에 대한 설명도 조금 어려웠지만 유익했다.

이것을 진화와 이어서 설명할 때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 핵심이라고 배운다.

진화의 무기로 시간을 꼽았는데 인간의 생명이 겨우 100년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창조론의 비과학성을 꼬집고, 외계인 이야기로 넘어가는데 상당히 재밌다.


과학자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하나를 알게 되면 모르는 것이 두 개 늘어난다고 했을 때 공감했다.

한 작가를 알게 되고, 그 작가를 통해 다른 작가를 알게 되면서 읽어야 하는 작가가 늘어났었다.

이런 경험이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새로운 지식도 많이 배웠고, 기존의 지식도 재정립했다.

몰론 여전히 모르는 것은 모르고, 나의 갇힌 사고가 이론의 이해를 방해한다.

자신의 전공 분야를 바탕으로 과학을 우직하고 다채로운 상상력으로 설명한다.

단숨에 모든 것을 읽기에는 조금 버겁지만 차분하게 읽는다면 예상을 뛰어넘는 가독성과 재미를 만난다.

이 책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준다.

제목대로 우주는 우리 상상력의 공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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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2022-11-28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I라는 영화를 보고 강렬한 느낌을 받았었어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뒷부분을 읽을 때 영화 AI를 연상했었죠. 인류가 쉽게 멸종하지는 않을거라고도 생각하지만 우주라는 큰 세계 안에서 백년도 못 사는 인간의 미래는 장담 할 수가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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