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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나는 죽어도 좋았다
김병종 지음 / 너와숲 / 2022년 10월
평점 :
오랜만에 화가 김병종의 에세이를 읽었다.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기회가 닿으면 그의 에세이를 읽었다. 그렇다고 모두 읽은 것은 아니다.
마지막이 아마도 <자스민, 어디로 가니?>였던 것 같다. 그때 쓴 글과 표지를 보니 생각난다.
작년과 올해 <시화기행>이 두 권 나왔는데 아직 읽지 못했다. 계속 나올 것 같다.
옛 기억이 희미해진 지금 예상하지 못한 에세이가 나왔다. 반가웠다.
전체적으로 그가 여행한 곳에 대한 풍경, 기억, 감상 등을 적은 글이다.
특유의 화풍을 보여주는 그림도 같이 실려 있다. 그림만 대충 보면 아이가 그린 것 같다.
대충 휘적휘적 그린 듯한 그림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눈길을 잡아 끈다.
동양화가란 것을 이전에도 인식하고 봤는지 모르겠지만 색감, 질감 등을 보면서 서양화가 먼저 떠올랐다.
동양화 붓질 특유의 느낌이 있지만 서양화가들도 이런 그림을 그린 것을 봤다.
색감이나 인물의 질감 등을 보면서 나의 얕은 지식이 섣부른 판단을 한 것이다. 다음까지 기억하려나?
푸른 바다의 색감은 오랫동안 나의 시선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런 느낌 오랜만이다.
화가는 많은 곳을 여행했고, 그곳의 풍경을 그렸고, 감상을 적었다.
내가 잠시 스쳐간 곳도 있지만 대부분 가보지 못한 곳이다. 낯설고, 신기하고, 가고 싶다.
화려한 수사보다 자신의 감상을 그대로 적은 글은 담담하게 읽힌다.
내가 간 곳에서 내가 놓친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지금 당장 달려갈 수 있는 곳은 자꾸 오라고 손짓한다.
얼마 전 읽었던 라오서의 <찻집>에 대한 이야기는 반가웠지만 ‘카더라 통신’은 조금 아쉽다.
읽으면서 <라틴화첩기행>의 흔적을 더듬어 본 것도 있다. 아주 희미하지만.
장소 중 호텔 이야기는 사실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아마 경험치가 달라 그럴 것이다.
네팔 공항 이야기는 두 번 나오는데 편집 과정에서 놓친 것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세 단계의 여행 이야기를 할 때 자신 있게 나는 2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화가는 1단계와 2단계 사이라고 말한다. 순간 나의 오만함을 반성했다.
얼마나 많은 것은 내가 놓치고 있기에 이런 오만한 말을 했을까 하고.
폐허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우리의 문화에 대한 천박한 감성을 엿볼 수 있었다.
치앙마이의 타패가 얼마나 많은 여행객을 끌어당기고, 긴 여운을 나에게 남겼는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나일강변의 잠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서늘함보다 모기 걱정이 먼저였다. 감성 파괴자인가?
바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지루하고 어려웠던가.
한국, 중국, 일본의 정원 이야기를 읽으면서 실제 셋 모두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베르사유 궁전의 거대한 정원은 솔직히 감흥이 없었다. 그냥 넓고, 넓었다.
몽마르트르의 기억도 그렇게 좋지 않다. 수많은 흑인 삐끼들 때문일까? 아니면 제대로 보지 못해서일까?
파리 도시 속 수많은 갤러리와 수많은 미술품 등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 싶다.
동네의 작은 다리 퐁네프도 다시 걸으면 기분이 달라질까? 기억을 환기시키는 곳들이 보인다.
작가처럼 거기서 죽어도 좋아하는 곳은 당장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짧은 여행 경험 속에서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은 늘 있다.
아마 다시 간다면 그때의 감성은 사라졌겠지만 또 다른 감상이 그 빈 곳을 채워줄 것이다.
한국 속에서도 늘 가야지 생각만 한 곳 중 하나가 섬진강이다. 스쳐 지나만 갔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으로 둘러본 곳을 다시 갔을 때 다른 느낌을 받았는데 아이와 다시 가면 어떨까?
남미에 대한 환상과 두려움이 교차하는데 언제 이것을 풀어낼까? 다시 살짝 아바나에 가고 싶다.
장소, 기억, 사람 등이 시간과 엮여 빗어내는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 한 곳을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