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 - 우리가 영화를 애정하는 방법들
김도훈 외 지음 / 푸른숲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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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김미연, 배순탁, 이화정, 주성철 등 다섯 시네필의 영화 이야기를 엮은 에세이다. 영화에 대한 정보가 한정적이었던 과거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영화 잡지가 그 무엇보다 큰 매출을 자랑하던 시절 이야기도 나온다. 이런 과거 이야기와 더불어 현재 영화 방송 <방구석1열>의 PD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내가 얼마나 많은 영화를 놓치고 있는지 알려준다. 실제 최근 몇 년 동안 거의 영화를 보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본 영화를 제외하면 몇 년 전 조조로 본 <기생충>이 유일하다. 혹시 봤다고 하면 어떤 액션 영화일 텐데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행이라면 가끔 케이블 등에서 나오는 영화를 조금씩 보는 정도다.


가장 낯익은 인물 한 명을 꼽으라고 하면 주성철 기자다. 라디오와 방송으로 가끔 본 탓에 가장 낯익다. 영화를 잘 보지 않으면서 이쪽 분야의 글도 잘 읽지 않으면서 다른 기자들도 낯설다. 음악 평론가는 더 낯설다. 요즘에야 신곡이라도 듣지 2년 전만 해도 음악을 거의 듣지 않았다. 한정된 시간 안에 들어야 할 다른 것들이 많다 보니 뒤로 밀렸다. 영화도 책에 밀렸다. 짧은 시간 보는 것은 스포츠에 밀렸다. 오래 전 여행 가서 졸리는 친구를 옆에 두고 영화 이야기를 한참 하던 나의 모습은 지금 완전히 사라졌다. 한때는 얼마나 열심히 청계천 시장을 돌면서 영화 비디오 테이프를 모았던가. 이제 그 테이프들이 모두 짐이다. 귀하게 구한 몇 편도 그냥 정리 차원에서 판 적이 있다. 영화를 너무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 생긴 일들 중 하나다.


다섯 명의 시네필이 들려주는 이야기 중 잡지에 나온 명작들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는 말은 정말 나의 경험과 맞닿아 있다. 평론가들이 말한 작품을 보고 싶어 얼마나 많은 비디오가게를 돌아다녔던가. 일본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하이텔 통신으로 사고, 보고 싶었던 영화들도 마찬가지였다. 아! 그때 비디오 구매 사기도 당했다. 사촌 형을 따라 영화 동아리 등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다. 그때 본 영화 한 편이 <살로, 소돔의 120일>이었다. 뭔지도 모른 채 보러 간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처음 일본 영화가 개봉되고 비디오로 나왔을 때 그 유명한 영화들을 보다가 얼마나 졸았던가. 실제 영화관에 가서 정말 많이 졸았다. 비디오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를 틀어 놓고 잠든 적은 셀 수도 없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영화 팬에게 늘 추천하는 작품이다.


나의 영화 리스트가 멈춘 지 꽤 오래 되었다. 10년은 넘은 것 같다. 비디오 키드 시절 토요일 밤에 비디오를 빌릴 때면 오락용, 묵직한 이야기, 흥행작 등 골고루 3편을 골라서 봤다. 하지만 그때만큼 시간도 없고 열정도 없는 지금은 영화를 본다면 오직 오락용에 치중한다. 감독 이름에, 영화제 수상작에 이끌려 본 수많은 영화들을 보면서 얼마나 졸고, 잠들고, 욕을 했던가. 그리고 평론가들의 의견에 휘둘리면서 괜히 할리우드 대작들에 뒤틀린 시각을 가지고 아는 채 한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당시 기억과 경험들이 하나씩 튀어 올랐다. 두 편을 같이 보고, 같은 영화를 또 보던 그 시절도. 이제는 기억도 희미해진 종로 영화가를 말할 때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긴 줄을 섰던 순간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좋아하는 영화나 감독 이야기는 과거 영화에 대부분 머물고 있다. 요즘 감독을 말하면 거의 모른다. 영화를 봐도 제목만 겨우 기억하고, 거의 보지 않으니까. 영화 기자나 평론가를 영화인으로 보지 않아 생기는 일을 이야기할 때 당혹스러웠다. 기자 시사회 풍경을 생각하면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영화 유통에 어쩌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들 중 한 명이 기자인데 말이다.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가득한 이들이 영화인이 아니라면 누가 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읽는 내내 추억 여행을 하고, 내가 놓친 수많은 영화들에 대한 열정이 쪼금 생기고, 잠시 잊고 있던 친구들을 떠올렸다. 한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부천까지 전철을 타고 가고, 누구보다 먼저 보기 위해 시사회를 신청했던 그 순간들이 생각났다. 읽는 내내 이 영화 라테 참 맛있게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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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지음, 남명성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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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재밌게 읽었던 <렛미인>의 저자 소설집이다. 모두 다섯 편이 실려 있다.

<렛미인>의 외전 <지나간 꿈은 흘려보내고>가 실려 있다.

읽으면서 기이한 설정과 마무리로 나를 혼란스럽게 한 <마지막 처리>는 다른 장편 <언데드 다루는 법>의 뒷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한다.

다섯 편 중 두 편이 다른 장편의 후속작이다.

솔직히 말해 <렛미인>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희미한 기억 속에 재밌게 읽었다는 것만 남아 있다.

표제작 <경계선>과 <언덕 위 마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후반부로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경계선>의 티나가 가진 능력보다 그녀의 삶과 과거가 트롤이란 정체를 마주하면서 폭발한다.

인간의 아이로 태어나고 자란 그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알게 된 이후의 삶은 많은 것을 떠올린다.

<언덕 위 마을>은 그냥 평범한, 하지만 특별한 취미를 가진 요엘의 일상을 따라간다. 그러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아파트의 기울기가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존재와 연결한다. 화장실 장면은 정말 섬뜩하다.

<임시교사>초등학교 동창 마테의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와 사진 한 장으로 서늘함을 느끼게 한다.

정신병원에 있었던 마테가 들려주는 과거의 한 시간과 잠시 머문 임시교사에 대한 이야기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지나간 꿈은 흘려보내고>는 <렛미인> 속 사건을 담당한 경찰이 나온다.

하지만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인물은 다른 사람이다. 우연히 앞집에 그들이 살았을 뿐이다.

열여섯 살 차이의 남녀가 진한 사랑을 나누고, 화자는 이들의 친구가 된다.

남자의 췌장암과 서로를 지독하게 사랑하는 마음과 마지막에 그들의 집에 남겨진 한 장의 사진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 처리>는 읽으면서 어떤 대목을 나 자신도 토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 이전을 다룬 장편이 있었다니 갑자기 호기심이 생긴다.

살아 있는 시체 혹은 부활자로 불리는 존재와 이들을 연구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를 막으려는 사람들 이야기다.

기이하고 괴이하고 섬뜩하고 잔혹한 장면들이 가득 든 소설이지만 잘 읽힌다.

묵혀둔 책은 읽어야겠고, 사야 할 책 목록은 또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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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주의자 고희망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97
김지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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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종말에 대한 소설을 쓰는 중학생 작가가 고희망이다. 이 소설의 첫 장면은 고희망의 소설이다. 희망의 소설은 인터넷 플랫폼에 올라가는데 이 소설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이니셜로 표시된다. 희망은 H, 지수는 J, 도하는 H로. 이 소설은 그렇게 인기가 많지 않지만 끝까지 읽어주는 독자들이 수십 명은 된다. 이전까지 두 편을 완결했다고 하니 대단하다. 앞의 두 작품 모두 종말을 다루고, 인간은 모두 죽었다. 왜 열다섯 중학생 소녀는 이런 종말에 대한 소설을 쓰는 것일까? 작가는 희망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그 이유와 가족의 화해 등을 그려낸다.


책을 선택하는 이유 중 한 가지가 책 표지다. 보통 나에게 크게 작용하지 않지만 이 책은 서점에서 왠지 나의 시선을 끌었다. 약간의 착각과 종말주의자란 단어에 혹했다. 평소에 잘 읽지 않는 청소년 소설이지만 최근에는 조금씩 읽고 있다. 웹소설 쪽으로 가면서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룬 소설들이 넘쳐난다. 그 유명한 <나는 전설이다>도 그런 소설 중 하나이지 않는가. 뭐 내가 이 소설에서 그런 것을 기대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류의 종말은 언제나 시선을 끈다. 고희망이 쓴 소설 속 장면들은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인간의 모습을 다루지 않는다. 갑자기 생긴 종말 속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모습만 보여줄 뿐이다. 이 갑작스러운 종말은 우리 삶에서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는 갑작스러운 사건이나 일과도 관계 있다.


희망에게는 남동생 소망이 있었다. 이 동생이 희망이와 놀다 교통사고로 죽었다. 소망의 죽음은 가족의 삶을 뒤흔들고 뒤틀었다. 가라앉은 삶에 변화를 준 것은 할머니의 국밥집이다. 동네 노포인데 식당 위로 집을 증축해서 온 가족이 한 건물에 살고 있다. 엄마는 약을 먹고 슬픔에 잠겨 있고, 아빠는 표정이 없다. 이런 환경에서 희망은 삼촌 요한과 가장 잘 지낸다. 한국 최고 대학을 나왔고, 최고의 기업에서 일한다. 잘 생겼다는 표현까지 나온다. 희망은 삼촌의 서재에서 삼촌이 읽은 책들을 따라 읽었다. 그 나이에 어려운 책이지만 좋아하는 삼촌이라 호기심도 작용했다. 이런 희망의 삶에 다시 한 번 큰 변화가 생긴다. 삼촌이 게이란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희망은 우연히 남자와 키스하는 장면을 봤는데 사내 통신망에 사진과 글이 올라온 것이다.


커밍아웃을 하기 쉽지 않고, 했다고 해도 사람들의 시선은 결코 좋지 않다. 요한이 게이란 사실이 밝혀진 후 일어나는 이야기는 흔한 일들이다. 아주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할머니에게 다른 신자들이 말하는 것이나 퀴어 페스티벌에 참여해서 생기는 일들은 사실적이고 우리 사회의 한 면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 사건은 희망의 가족을 강하게 억누르던 죽음의 무게를 조금씩 들어내는 계기가 된다. 서로가 마음 속으로 품고 있지만 말로 내뱉지 않고 묵혀 두었던 감정들이 밖으로 튀어나오면서 소망의 죽음을 정면에서 마주할 기회를 가진 것이다. 그리고 각자가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어둠의 조각을 밖으로 드러낸다. 오해와 착각 등이 죄의식으로 변해 그들을 억눌렀다. 앞으로 한 발 나아가는 기회는 이렇게 종말처럼 갑자기 생긴다.


종말주의자란 단어 때문에 무거운 소설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전혀 아니다. 무거운 몇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희망과 친구들의 생활은 그렇게 무겁지 않다. 작가도 청소년들의 작은 로맨스를 적절하게 녹여내고, 낯익은 모습과 상황으로 그 무게를 들어낸다. 삶에서 우린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을 마주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이 있지만 즐길 수 없는 상황도 있다. 하지만 그 상황을 피하기만 한다면 평생 도망쳐 다녀야 한다. 이 상황을 마주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요한 삼촌이 퀴어 페스티벌의 단상에 올라간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엄마와 희망이 서로의 속내를 드러낸 것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소망의 죽음을 자책하는 희망에게 한 말에는 고개를 끄덕인다. 성장은 청소년만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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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 대여점 - 무엇이든 빌려드립니다
이시카와 히로치카 지음, 양지윤 옮김 / 마시멜로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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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의 영향인지 모르지만 일본에서 ‘변신술을 펼치는 동물’하면 너구리가 먼저 떠오른다. 한국에서 여우가 둔갑술을 사용해 사람들을 현혹하는 이야기가 있지만. 처음 소설 속에서 외모 대여를 여우가 한다고 했을 때 든 생각들이다. 재밌는 것은 이 여우들의 변신이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여우들을 부릴 수 있는 능력자를 여우술사라고 부른다. 이 능력은 피를 통해 전해지고, 오직 남자만이 여우술사가 될 수 있다. 이런 정보들은 소설이 진행되면서 하나씩 흘러나온다. 읽으면서 든 개인적 생각은 외모를 대여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인가가 생략된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어쩌면 나의 이해력이 딸리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가게- 이름은 ‘무엇이든 대여점 변신 가면’이다. 상당히 많은 물품을 대여해준다. 그 중 하나가 의뢰자가 원하는 외모도 있다. 외모를 빌려준다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가면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에서는 변신술을 사용하는 여우와 혼을 바꿔 자신이 원하는 외모를 가진다. 기한은 하루, 혼자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일정한 거리에 변신 여우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 외모를 가지고 범죄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대여금액은 정확하게 적지 않았지만 청소년들이 용돈을 모으면 이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아주 적은 것은 아닌 듯하다. 예약제이고, 예약할 때 자신이 원하는 외모를 적어 놓아야 한다. 그러면 점장은 그에 맞는 여우를 선택한다.


이 가게는 대학1년생 점장 아즈마 안지와 네 마리의 변신 여우가 운영한다. 구레하와 사와카는 나이를 알 수 없이 오래된 여우고, 쌍둥이 여우 호노카와 마토이는 상대적으로 어린 여우다. 어린 여우들은 요력이 불안정해서 오랫동안 사람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나이 대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도 힘들다. 실제 이들이 변신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인간 세상에 대한 이해도 아직 부족하다. 가끔 오랫동안 사람의 모습을 한 채로 있으면 자신들도 모르게 여우로 변한다. 하지만 다른 변신 여우들처럼 아주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다. 아름답고, 귀엽고, 멋지고, 뛰어난 외모를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이 변신 여우들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해 그들의 욕구를 충족해준다. 그리고 그 일들은 자주 나의 예상을 벗어난다. 너무 자극적인 이야기에 중독된 것 같다.


다양한 연령대의 계약자가 나온다. 가장 어린 11세부터 54세까지, 성별도 남자 넷, 여자 여섯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들이 우연히 발견한 사이트를 통해 외모 대여를 신청하는데 가장 먼저 한 생각은 가면이나 분장으로 자신들이 바라는 외모를 바꿔 줄 것이란 예상이다. 그런데 그 변신이 너무 간단하고, 완벽하다. 변신 여우와 등을 맞대고 선 채 점장이 주문을 외우면 끝이다. 그리고 대여자와 여우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행동한다. 외모를 빌리는 사람의 사연도 모두 제각각이다. 일상에서 누구나 한 번쯤 생각했을 것들이 나오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가는 도중에 변신 여우와의 대화를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있다. 섬세하게 읽을 부분이 상당히 있다.


외모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발언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외모를 무시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다. 이 소설 속 등장하는 대여자들 중 너무나도 못생겨서 외모를 빌리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외모에 불만인 학생조차 상당히 예쁜 얼굴이다. 어떤 남자는 많이 비쩍 마른 학생의 몸을 원한다. 여러 번 각각 다른 외모를 빌리는 여성도 있다. 이들의 목적은 제각각이다. 이 소설의 재미는 바로 아 부분에 있다.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사연 말이다. 그리고 이 소설 속 세계와 안지 등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왠지 모르게 이 소설 연작으로 계속 나올 것 같다. 설정과 등장인물이 매력적이라 그냥 한 편으로 끝내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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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볼루션 - 어둠 속의 포식자
맥스 브룩스 지음, 조은아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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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풋 스릴러다. 빅풋의 정의는 위키백과에 의하면 미국, 캐나다의 록키 산맥 일대에서 목격된다는 미확인 동물이다. 사스콰치는 캐나다 서해안 지역 인디언 부족의 언어로 ‘털이 많은 거인’이라고 한다. 현대에 이런 괴인들은 그렇게 큰 공포가 아니지만 갇힌 공간과 총과 같은 무기가 없을 경우 아주 큰 위협이 된다. 작가는 생태주의 마을 그린루프와 레이니어 화산 폭발이란 설정을 통해 갇힌 공간을 만들고, 인간의 자연 동물에 대한 맹신을 비틀어 공포를 자아냈다. 무기로 무장하지 않은 인간들이 얼마나 상위 포식자에게 허약한지, 오랜 세월 다른 종을 멸종시킨 기억에 의한 착각 등을 뒤섞어 아주 참혹한 광경을 만든다.


구성은 간결하다. 그린루프를 처음 들어온 케이트의 일기를 시간순으로 나열하고, 그 사이사이를 전문가의 인터뷰 등을 덧붙여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이 간결한 구성 때문에 처음에는 솔직히 조금 지루하고 더디게 이야기가 다가왔다. 최첨단 고급 친환경 공동체인 그린루프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하나씩 보여주기 때문이다. 레이니어 화산이 폭발한 후 그들이 자랑하던 최첨단 시설들은 하나씩 무너진다. 인터넷이 끊어진 환경 속에서 정보는 차단되고, 클라우드를 통한 서비스도 중단된다. 현대인들이 얼마나 편리한 시설에 중독된 채 살아가는지 잘 보여준다. 자신들이 고립되었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릴 수도 없다.


친환경 상황에서 태양열 전지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고, 이것을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개별적으로 둔 것은 현대인의 능력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고립된 채 살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3D 프린트로 유리 공예를 하는 모스타르는 이런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반응을 한다. 각 집에 보관하고 있는 식량의 리스트를 작성하라고 말한다. 하루 칼로리를 제한해서 최대한 오랜 시간 생존할 수 있게 할 목적이다. 너무나도 풍족한 환경에서 살아온 미국인들에게는 낯선 모습이다. 그들이 칼로리를 계산하는 이유는 다이어트가 목적이었다. 그리고 차고를 식량 생산을 위한 밭으로 꾸민다. 물론 이들은 농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전혀 없다. 책도 없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그들은 각자의 집만 신경 쓴다. 연대하는 모습은 없다. 케이트의 남편 댄이 태양열 패널의 먼지를 청소하자 그의 노동력 대신 자신들의 식량을 겨우 내놓는다. 그러다 케이트가 밤에 큰 바위 같은 생명체를 발견한다. 모스타르는 덫을 놓아 토끼를 잡아 식량으로 삼는다. 이 모습이 케이트에게는 너무 낯설다. 낯선 환경은 계속 이어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생명체가 보이고, 한때 주변을 맴돌던 크고 작은 동물들이 사라진다. 사스콰치의 존재가 처음으로 잡혔을 때 이 마을 주민들의 대화는 아주 이상적으로 흘러간다. 동물이 자신들을 먼저 공격할 리 없다는 환상을 주장한다. 미지의 그 거대한 존재도 마찬가지다. 빅풋이 타악기를 두드릴 때 인간의 인식으로 그와 똑 같은 박자를 연주한다. 그들과 소통했다는 확신을 가진다. 문화와 환경의 차이를 감안하지 않은 인간의 오만이다.


일기 중간중간 삽입된 전문가의 인터뷰 장면 등은 일기 속 상황에 대한 해석이기도 하다. 자연에 대한 잘못된 맹신과 인간의 오만한 판단이 상황을 최악으로 몰아간다. 유일하게 생존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모스타르의 행동을 그냥 바라만 본다. 케이트 부부만 모스타르를 도와줄 뿐이다. 대나무를 깎아 식칼 등을 꽂은 창을 만들고, 함정을 판다. 최소한 할 수 있는 무장을 한다. 인간들의 평화주의가 상대방에겐 호구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은 망각한다. 퓨마가 어린 아이를 공격하려고 할 때 다른 주민들이 보여준 반응은 너무나도 낙관적이다.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해야 하는지 아직 그들은 모른다. 빅풋이 공격했을 때조차도 그들은 무력하기만 했다.


앞부분이 조금 더딘 전개였다면 빅풋과 대결하는 후반부는 정신없이 달린다. 잔혹한 폭력과 생존을 위한 대결은 처참하다. 평화와 공존을 바라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현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읽는 내내 미국인데 총 한 자루 없다는 사실에 놀란다. 체격과 힘을 차이가 나는데 이것을 극복할 방법은 인간의 지식을 이용해 무기를 만드는 것이다. 원시 시대 인류가 다른 포식동물들 속에서 살아남은 것처럼. 소설 제목인 데볼루션은 권력 이양이란 의미가 있는데 인류의 공격에 의해 깊은 산속으로 숨은 빅풋이 갇힌 사람들을 보고 다시 포식자로 변한다. 다른 유인원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알려주는 간단한 정보는 이 마을 사람들이 잘못된 지식을 바로 잡아준다.


단순히 빅풋과의 대결만 다루는 소설이 아니다. 곳곳에 삽입된 전문가의 인터뷰와 정보 등은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행동을 하는지 보여준다. 평화주의자의 말이 가진 매력에 그냥 넘어갈 때 상대방의 폭력은 더 거세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낙관주의가 불러온 최악의 상황 중 하나가 히틀러를 탄생시켰다.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에 대한 평가는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포식자의 공격에 반격을 가하는 인간들의 곁에는 인류의 기술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도구들이 있다. 이 도구로, 기술로, 전술로 반격을 가하지만 훈련받지 않은 사람들의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인류가 어떻게 지구상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는지 보여준다. 작가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분명하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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