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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 집을 샀어 ㅣ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최하나 지음 / 몽실북스 / 2022년 7월
평점 :
언제부터인가 강남이 성공의 기본이 되었다. 오래 전 방송에서 강남에서 산다고 했을 때 연예인이 성공했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욕이 나왔다. 대본에 있는 말이라고 해도 최고의 MC에 있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것과 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방송을 보고 아주 놀랐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나의 감각은 조금씩 무디어 갔다. 솔직히 말해 강남이라고 통칭하지만 진짜 노른자 부분은 한정되어 있다. 사람들의 욕망은 이 한정된 부분을 확장하고, 그 확장된 공간 속에 자신이 살고 있다는 환상을 사랑한다. 강남이 부와 성공의 상징처럼 다루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말이다. 이 소설은 그런 환상을 아주 빠르게 다룬다.
주인공 건동은 10년을 공시생으로 보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눈 높이는 점점 낮아졌지만 시험에서 계속 떨어진다. 집에 손 벌리기도 무섭다. 10년 동안 자신이 한 일에 대한 회의감이 생긴다. 이때 잡은 일자리가 학원 실장이다. 학원 실장이란 이름이 좋아보이지만 현실은 온갖 잡일을 하는 사람이다. 급여는 겨우 200만원 정도. 오랜만에 나간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들은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지만 자신은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다. 이런 그를 유혹하는 목소리가 유튜브를 통해 흘러나온다. 소위 말하는 부동산 갑부가 되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동영상이다. 자신의 성공담을 멋지게 포장해서 말하니 현실이 암담한 독자들은 혹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건동은 부동산 성공 함정 속으로 빠져든다.
사실 건동의 탐욕이 아주 거대한 것은 아니다. 평범한 중산층의 꿈을 꾸고 있지만 현실은 갑질하는 원장과 저임금의 노동뿐이다. 유튜브에서 부동산 부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건동 같은 사람들을 유혹해서 돈을 번다. 그 유혹은 현실의 삶이 비루할수록 더 강하다. 부동산 물건을 보기 위해 걸어간 그를 부동산 중개사무소 사장이 그를 어떻게 봤는지 보여주는 장면은 그가 왜 허세를 부리는 삶을 살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실수령 2백만 원도 되지 않고, 고시원에 살면서 벤츠를 리스해서 타고 다닌다. 옷도, 신발도 비싼 것 비싼 것으로 바꾼다. 사람들이 그보다 그가 타고 온 차와 옷차림 등으로 평가한다는 사실에 기반했다. 당연히 삶은 더욱 퍽퍽해진다. 하지만 그에겐 꿈과 희망이 있다.
가용할 돈이 부족하고, 부동산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은 그는 갭투자로 작은 집을 산다. 얼마 전 같은 부동산 부흥기라면 이 갭투자가 돈을 벌어주었겠지만 그가 산 물건은 결코 좋은 물건이 아니다. 부엌을 만들면 안 되는 불법 건축물이 되면서 벌금을 내거나 부수어야 한다. 분노의 망치질은 그의 삶을 더욱 나락으로 이끈다. 이때 다가온 사기꾼의 손길은 너무나도 달콤하다. 젼형적인 사기 수법이지만 그 속에 있는 사람은 결코 보지 못한다. 그를 속이기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그 과정에 떡고물이 그에게 떨어진다. 꿈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작은 실수가 파국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건동에게 초점을 더 맞추었지만 실제 삶이 더 불행한 사람들은 그의 명의로 된 빌라 등에 사는 입주자들이다. 자신들이 힘들게 모은 돈들이 공중으로 사라진 그들의 삶은 또 어떤가. 모두가 부동산 사기꾼의 피해자들이다. 소설은 피해자들보다 건동에게 초점을 맞추었으니 그의 삶을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가 학원 등에서 당하는 모욕과 폭력 등은 그를 이런 상황 속으로 더 몰아간다. 그 적은 월급마저 없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부모의 갑질을 그대로 따라하는 딸을 보면서 또 한 번 놀란다. 결코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갑질과 부동산 사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가. 죽음으로 내모는 경우도 있다.
소설 첫 장에 지하철 임산부석에 앉은 건동을 두고 임산부 남편과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그가 내뱉는 ‘강남에 집을 샀어’라는 외침이나 강남에 집도 없는 것들이 애들을 낳는다고 말하는 대목은 이야기 후반으로 가면서 서서히 이해가 된다. 긴 장편이 아니다 보니 아주 빠르게 몰락으로 넘어가는데 살짝 아쉬운 대목도 있다. 그리고 높아지는 이자율에 무리한 대출로 고생할 것이 뻔한 사람들의 삶이 살짝 보인다. 이 시기가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될 것이고, 누군가는 또 나락의 순간이 될 수도 있다.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이번에 카카오페이지와 책을 동시에 번갈아 가면서 읽었는데 역시 가독성은 책이 좋다. 하지만 짧은 시간이 날 때 책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카카페는 좋은 읽을 거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