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증인 - The Last Witness
유즈키 유코 지음, 이혁재 옮김 / 더이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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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 김성종의 소설이 먼저 떠올랐다. 오래 전 아주 재밌게 읽었고, 형사 오병호에 매혹되었던 소설이었다. 그런데 작가 이름이 낯익다. 작년에 <달콤한 숨결>로 나를 사로잡은 작가다. 위시리스트에 두 권을 올려두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서점에서 검색을 하니 구판본이 보인다. 다른 출판사, 다른 번역으로 나왔던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책들이 더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절판된 책이 나온다는 것은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해설을 읽다 보면 다른 소설들도 상당히 많다. 미출간 책들도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이 정도 무게와 가독성을 가진 작가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소설 속 변호사 사가타 사다토는 검사 출신이었다. 하나의 사건을 경험한 후 검사를 그만 두고 변호사가 되었다. 재밌는 것은 이 소설 이후 사가카 검사 시리즈가 출간되었다는 것이다. 변호사 사가타와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 같은데 언제 번역되어 나올지 모르겠다. 실제 이번 소설에서 사가타가 나오는 분량은 그렇게 많지 않다. 중요한 변론을 맡고 있지만 그가 발로 뛰면서 증거 등을 모으는 장면은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다른 검사의 일상과 그가 변론을 맡은 사건의 관계자의 과거를 차분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작가는 이 부분에서 살짝 트릭을 사용해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만든다.


이 사건 7년 전 한 소년이 음주운전자의 차에 치여 죽었다. 의사 다카세의 아들이다. 아이가 잘못했거나 다른 요인이 있었다면 죽은 아들을 가슴에 안고 살아갈 수 있지만 이 운전자는 술을 마신 상태에서 과속까지 했다. 당연히 법의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역 공안위원장이란 직위가 그를 불기소처분으로 결론 짓게 한다. 경찰이 사건을 조작한 것이다. 당연히 법의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한 부모에게 이 소식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이유를 알기 위해 전화하고, 경찰서까지 찾아가지만 조사서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그를 밖으로 밀어내려고만 한다. 이때 담당 형사가 나타나 분노한 아버지의 손찌검을 받으면서 쫓아낸다. 형사의 행동이 이 결과를 더욱 의심스럽게 만든다.


소설은 재판 3일을 다루면서 과거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낸다. 사가타가 이 도시에 온 감회를 처음에 풀어낼 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의 과거가 하나씩 흘러나온다. 검찰의 기대를 크게 받던 그의 갑작스러운 퇴직과 그 이유가 말이다. 그리고 이 일은 이 소설에서 핵심으로 삼고 있는 부분이다. 죄를 지었으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 강하다. 사가타 변호사와 대립하는 쇼지 검사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이 부분은 점점 더 강해진다.


다카세 가족에게 일어난 일은 읽는 내내 분노하게 했다. 분명한 증인이 있는데 어린 학생이란 이유로 증언이 무시된다. 다카세 부부가 바란 것은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지만 권력은 이것을 무마시킨다. 현실에서 비일비재하게 생기는 일이다. 하지만 음주운전자가 반성하지 않고 다시 술 마시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면 억누르고 있던 분노가 폭발한다. 이런 종류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들이 분노하지만 행동하지 않은 모습에 대단하다고 느낀다. 나라면 무엇인가를 들고 가서 복수를 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물론 이 복수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현실의 대다수 사람들은 다카세 부부들처럼 행동할 것이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겹치게 되면 살의는 더욱 커지고, 행동으로 옮겨진다. 작가는 이 부분을 아주 잘 만들고, 독자로 하여금 공감하게 했다.


대단한 가독성을 보여준다. 다카세 가족에게 일어난 일이나 사가타의 사연 등은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다. 작가는 이 두 사건을 같은 이야기 속에 녹여 내면서 검사와 경찰의 균형을 잡았다. 좋게 말하면 견제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권력 유착 비리를 보여준다. 이런 부패와 비리에 희생되는 것은 언제나 선량한 피해자들이다. 작가는 이 작품 속에서 피해자를 잘 녹여내었다. 철저하게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을 보여주고 변론하면서 사실에 한 발 한 발 다가간다. 그리고 밝혀지는 최후의 증인과 그의 증언이 만들어낸 현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다시 한번 왜 이 작가의 작품들을 독자들이 칭찬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나도 그런 독자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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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나서 - 자칭 리얼 엠씨 부캐 죽이기 고블 씬 북 시리즈
류연웅 지음 / 고블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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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웅을 주로 단편집에서 만나다 경장편으로 만났을 때 이 작가 이름을 완전히 기억하게 되었다. 한 편을 제외하면 그의 소설들은 주로 앤솔로지에서 만났다. 나의 저질 기억력이 그 소설들을 모두 기억할 리는 없고, 이 글을 적으면서 찾아보니 기발한 발상에 놀란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표지를 보고 무슨 소설이지 의문을 품었는데 과거 이력을 보니 조금은 고개가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주인공 외모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왠지 괴물 같은 이미지를 사전에 심어주는데 이 소설은 힙합 뮤지션에 대한 이야기다. 책소개에도 그렇게 나온다.


아직 나에게 힙합은 어렵다. 하지만 작가는 힙합의 가사나 비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힙합 음악과 그 주변 세계를 그려낼 뿐이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내가 손에 꼽을 정도로 본 프로그램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쇼미더머니>란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우원재란 뮤지션에 입감한 듯한데 이 뮤지션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언제 시간이 나면 한 번 들어보고 싶다. 이 뮤지션에 대한 호평을 이전에 한번 다른 래퍼에게서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다시 음악을 듣기 시작했는데 이 이름은 잊고 있었다. 어떤 부분에서 나의 취향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


릴뚝배기와 조헤드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서로 다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둘은 같은 인물이다. 무명의 래퍼 릴뚝배기가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우승하면서 생긴 캐릭터가 조헤드다. 실제 이 두 이름은 하나에서 갈라져 나왔는데 그 이름을 여기서 적기가 조금 민망하다. 처음 릴뚝배기의 시간 제한 미션이 먼저 나온다. 고등학교 중퇴하고 모든 것을 힙합에 바친 릴뚝배기가 1집을 내고 랩을 버리려고 한다. 이때 나타난 인물이 있다. 스스로 ‘힙합의 신’이라고 부른다. 고등학교 중퇴할 때 내뱉은 “제가 만약 힙합을 버리려고 한다면… 가차 없이 저를 뒤지게 해주세요.”란 맹세가 불러온 현상이다.


릴뚝배기가 올린 동영상에 항상 달린 댓글이 하나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란 문장이 붙어 있다. 진짜 팬을 찾기 위해 신이 하루의 시간을 준다. 그리고 조헤드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우승으로 유명해졌다. 소속사도 생기고, 이전 동료 무알콜과 헤어졌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 얼마나 많은 지 잘 모르지만 방송 한 번의 효과는 분명하다. 조헤드의 이야기가 나올 때 평행우주를 이 이야기에 끌고 들어왔나?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조헤드가 SNS에 올린 글 하나가 문제가 되면서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엮어내는 것을 보고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ㅈ같다.” 여기서 ‘ㅈ’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단어다. 방송국 쇼케이스를 준비하던 중이고 유명해진 래퍼의 이 문장은 큰 반향을 불러온다. 1집 발매 쇼케이스가 취소될 수도 있다. 이것을 무마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급박하게 진행된다. 한국이라서 가능한 하루만의 뮤직비디오 촬영과 편집을 현실과 편집 기술을 통해 책 속에서 구현한다. 처음 나온 릴뚝배기의 이야기가 다시 교차하고, 그의 간략한 과거사를 찾아간다. 무엇보다 그의 동영상에 꾸준히 댓글을 단 진짜 팬을 찾고 싶다. 이 과정에서 힙합의 무대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조금씩 보여준다. 이 현실적 변화가 시선을 끈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진짜 팬의 등장과 분 단위로 쪼개진 마지막 장면은 리얼 부캐와 진짜 캐릭터의 합체로 이어진다. 여기에 예상하지 못한 멘트가 시선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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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테일 안전가옥 FIC-PICK 2
서미애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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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동화를 재해석한 앤솔로지다. 최근 고전 동화 등을 재해석한 소설들이 많이 나온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동화가 떠오르는 경우도 있지만 가끔 낯선 느낌을 주는 동화도 있다. 분명히 내가 읽었던 동화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기억이 흐려진 듯하다. 이 앤솔로지에 참여한 다섯 작가들은 낯익은 작가들이다. 최근 즐겨 읽는 작가도 있고, 오랜만에 만난 작가도 있다. 검색하니 처음 만나는 작가도 있다. 낯익은 이름이라 한 번 정도는 읽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가끔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문제 때문에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뭐 이 때문에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된 것도 좋은 일이다.


서미애의 소설은 정말 오랜만이다. 노블마인에서 나온 소설들 이후 거의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에 소설들이 조금씩 그 이름이 보인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는 제목에서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바로 떠오른다. 작가는 이 동화를 현대의 가정 폭력과 연결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의 이전 작품들처럼 스릴러를 단편 속에 간결하게 녹여내었다. 현행법 상의 문제가 그대로 드러나는데 작가의 말을 보면 현재 그녀가 작업하는 작품에 대한 기대를 품게 된다. 우리 현실에서 지금 가장 무서운 것은 호랑이가 아니라 사람이고, 그 사람이 가족 중 한 사람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잘 보여준다.


민지형의 <신데렐라 프로젝트>는 제목에서 바로 <신데렐라>의 변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밌는 것은 이 신데렐라 역할을 남자들이 하는 것이다. 요즘 남자 신데렐라 이야기가 가끔 나오는데 이 소설은 그것을 직장 내 성희롱 등과 엮었다. 인턴 사원 중 한 명이 전무 딸이란 소식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직원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주고, 은밀한 직장 상사의 욕망이 조금씩 스며든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과 성 희롱의 간극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대리만족과 시원함을 느끼길 바란다고 했는데 나의 경우엔 느낄 수 없었다. 남자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마지막 장면 때문일까? 아니면 둘 다.


전혜진의 <수경 – 나선 미궁 속의 여자들>은 <숙영낭자전>이 원전이다. 이 원전은 읽은 적이 없다. 이 소설에 대한 줄거리는 작가의 말을 통해 알게 되었다. 막장 드라마 같은 내용이지만 인간의 욕망과 현실은 그 드라마를 뛰어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놀란 부분은 시첩의 존재다. 내가 이제까지 몰랐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이런 존재가 공부에 도움일 될 것이란 것에 또 한 번 놀란다. 이야기를 다 읽은 지금 남성들이 짜 놓은 세상 속에서 평생 맴돌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눈에 들어온다. 저주의 굴레를 깬 뒤의 삶도 궁금하다.


<천사는 라이더 자켓을 입는다>의 박서련은 민지형과 함께 처음 만났다. 소설을 읽으면서 <벌거벗은 임금님>이 먼저 떠올랐지만 <당나귀 가죽>을 비틀었다. 몇 가지 설정만 놓고 보면 한국 대기업의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다. 하지만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더 추악한 현실을 담고 있다. 어떤 대목을 읽다 보면 <도깨비 감투>가 연상되지만 작가가 풀어내고 싶은 것은 분명하다. 이번 소설도 가정 폭력 혹은 강간 문제인데 앞에 깔아 둔 몇 가지 설정과 상황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원작 <당나귀 가죽>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최근 가장 자주 보는 작가 중 한 명이 심너울이다. <나의 퍼리 대통령님>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재탄생시킨 소설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익명의 대통령 저격 글이 만들어낸 현실 풍자는 쉽게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다. 정치에서 발견되는 두 가지 잣대를 보여주는 장면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뒤틀린 사고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사실보다 소문에 더 귀를 기울이고, 이것을 확대 재생산한다. 읽으면서 정치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반지성과 지 부조화가 심한 지 알고 있기에 그냥 웃으면서 지나간 부분도 많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왠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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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진화는 구운 열매에서 시작되었다 - 700만 년의 역사가 알려주는 궁극의 식사
NHK 스페셜 <식의 기원> 취재팀 지음, 조윤주 옮김 / 필름(Feelm)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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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NHK 스페셜 〈식의 기원(Origin of Food)〉 시리즈 5부작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탄수화물, 소금, 지방, 술, 미식이라는 5가지 주제를 다룬다. 처음에는 책 제목을 보고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목차를 보고 급 관심이 생겼다. 그렇게 두툼하지 않은 분량도 한몫했다. 구운 열매와 진화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탄수화물, 소금, 지방에 대한 어떤 해석이 나올까? 얇은 지식으로 저탄고지를 외치는 나에게 어떤 시각을 줄까? 수많은 의문들이 생겼다. 그리고 생각보다 간결하게 전개된 내용은 이 책을 빠르게 읽게 했다. 생각보다 재밌고, 나의 식생활을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했다.


탄수화물은 인체에 꼭 필요한 요소다. 하지만 당으로 변하는 성질 때문에 당뇨가 있는 사람에겐 큰 적이다. 점점 찌는 살을 보면 저탄고지 다이어트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밥 등의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과 양질의 지방을 먹으면서 살을 빼고 싶다. 하지만 이미 탄수화물 중독에 가까운 몸이다 보니 끊질 못한다. 특히 빵이 문제다. 이 책에서 동양인은 밥을 먹어도 쉽게 살찌지 않는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밥 이외 다른 간식이나 군것질 거리들이 너무 많다. 장내세균 ‘프리보텔라’의 활약은 눈길을 끌지만 나의 시선은 유전자 특질에 따라 음식 혈당지수가 바뀐다는 연구 결과다.


한국인들은 소금의 섭취량이 많다. 한때 살이 너무 쪄 몸에 이상이 생겨 조금 싱겁게 조금 적게 먹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과거의 나로 돌아온 현재를 발견한다. 장인어른이 콩팥이 망가져 거의 혈액투석 전 단계까지 갔다. 얼마나 짜게 드시는지 옆에서 보고 놀란 장면을 지금도 자주 이야기한다. 실제 한국 음식 중에 소금이 가장 많이 들어 있는 것이 칼국수라고 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탄수화물과 짠맛의 조합은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것이다. 실제 한국의 과자들은 너무 단짠이다. 소금의 양이 외국의 짠 과자보다 훨씬 많이 들어있지만 단맛 코팅으로 속이고 있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 소금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얼마나 필요한지 보여준다.


지방이 나쁜 것이 아니란 소식이 나온 것도 이제는 좀 되었다. 모든 지방을 나쁜 것으로 치부하던 때도 있었다. 목초 먹고 자란 소의 지방은 인간에게 나쁘지 않다는 연구 결과를 보았을 때가 지금도 생생하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 한때 오메가 3를 열심히 먹은 적도 있다. 고등어 기름이라 얼마나 비릿했던가! 이제는 아마씨 기름으로 만들어 이런 맛이 사라졌다. 연구가 점점 더 진행되면서 지방에 대한 해석도 달라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지방 중독이란 단어를 보았다. 오메가 3가 스트레스를 줄여준다고 말해 괜히 책상 앞에 놓여 있는 오메가 3를 하나 먹는다.


나는 술에 약하다. 한 잔 술에 얼굴이 붉혀진다. 쌀을 주식으로 먹는 한국, 중국, 일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술을 분해하는 아세트알데하이드 분해 유전자가 약하다고 한다. 술에 대한 글을 읽다 보면 수질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석회가 많이 낀 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맥주 등을 마셔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무알코올 술에 대한 글을 보면서 알코올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것과 기준치 이하로 들어 있는 술을 구분하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쉽다. 실제 무알코올 술을 마시면 처음엔 술 느낌이 나지만 어느 순간 술 맛을 느끼지 못한다. 미각의 문제일까? 아니면 인식의 문제일까? 술이 백해무익하다는 연구가 더 나오는 것 같다.


지금도 맛집을 좋아한다. 눈, 코, 입으로 음식을 맛보고 행복해한다. 언제부터인가 쓴맛 나는 음식도 잘 먹는다. 이전에는 전혀 먹지 못했는데 말이다. 재밌는 실험 하나가 있다. 같은 음식인데 이름을 다르게 해서 미각을 살짝 속인 것이다. 이 이야기를 보고 우리가 맛집에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미식에서 후각의 중요성을 이번 장에서 알려주는데 공감한다. 편식을 줄이기 위한 북유럽의 사페레를 보여주는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상적인 식사에 대한 답을 ‘”인간에게 있어 음식과 식사란 무잇인가를 알고 난 뒤에야 보일 것이다”란 말엔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놀라운 정보 하나가 있다. 디저트를 위한 배가 있다는 과학적 사실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나의 늘어난 뱃살은 다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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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봄 : 조선 왕실 연애 잔혹사
원주희 지음 / 마카롱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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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대상 수상작이다. 조선 후기 왕실을 무대로 한 로맨스 미스터리라고 말한다. 내가 이 소설에 끌린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요즘 좋아하는 공모전의 대상 수상작이고, 다른 하나는 미스터리를 다룬다는 것이다. 결론만 먼저 말하면 취향에 맞지 않는다. 가독성이 나쁘지 않아 잘 읽히고, 자료 조사도 상당히 꼼꼼하게 한 듯하지만 어딘가에서 본 듯한 캐릭터와 상황 등이 큰 재미를 주지는 못했다. 간결하고 깔끔하게 이야기를 뽑아내지 않고 어딘가 중간에서 헤매는 듯한 느낌이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인지 모르겠지만.


첫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보명 공주가 남편을 독살하는 장면이다. 그를 죽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주고, 심한 욕을 하면서 분노를 표출한다. 그리고 연쇄살인범을 쫓는 왕자 자윤의 이야기가 나온다. 자윤의 고백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 지 의문이 생기지만 사건 해결에는 성공한다. 다음으로 나온 인물은 과부 소봉 이야기다. 남편과 합방도 하기 전에 죽으면서 과부가 되었다. 사업에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지만 그녀의 취미는 로맨스 책과 춘화도 등을 보는 것이다. 몰래 봐야 하는 것인데 책방에서 노골적으로 요구한다. 읽으면서 소봉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뭐지?’란 의문이었다. 이야기는 이 셋이 엮이고 꼬이면서 펼쳐진다. 그렇다고 삼각관계는 아니다.


두 여성의 같은 점은 과부란 것이고, 다른 점은 한 명은 남편을 독살했고, 다른 한 명은 낙마로 죽었다는 것이다. 한성의 현금 부자의 딸이자 친구들과 단미란 노리개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소봉은 무거울 수도 있는 이 소설에서 가볍고 귀엽고 당돌하고 당찬 역할을 맡는다. 보명의 화양궁 연회에 참석하면서 절륜미남 시리즈의 주인공인 수안군 자윤을 보고 반한다. 실제 이 소설에서 자윤의 아름다운 외모를 자세히 설명하는데 드라마 등을 만들면 누가 이 배역을 맡게 될까 하는 생각을 계속했다. 소봉이 수안군에게 반해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장면은 황당하지만 아주 재밌다. 수안군이 느끼는 염세의 감정과 그 반대에 있고, 앞으로 이 둘이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하게 한다.


보명 공주의 화양궁은 환락의 공간이다. 시대를 앞선 비밀 클럽이다. 초대받은 사람만 들어올 수 있고, 이곳에 온 사람들은 규칙에 따라 자신의 밤을 불 태울 수 있다. 억눌린 욕망이 자연스럽게 분출되고, 가끔은 의도적인 작업으로 이어진다. 이 화양궁에 오려면 신분이 높거나 돈이 많거나 해야 한다. 퇴폐적이고, 환락적인 곳이다. 보명 공주가 소봉에게 수안군을 유혹하라고 한 것도 하나의 재미다. 하지만 이야기가 더 진행되면 수안군과 보명 공주 사이의 과거가 흘러나오고, 궁궐 내부의 암투와 권력 쟁취와 숨겨진 더러운 비밀이 하나씩 풀려나온다. 이 부분에서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것도 있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장면도 나온다.


참혹한 살인이 자주 나온다. 연쇄살인범이 이렇게나 많은 조선이란 말인가! 무력해진 왕권 탓인지 적도의 침입에 너무나도 무력한 모습을 보여준다. 읽으면서 이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떠올리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살인범을 좇는 수안군의 활약은 부검 보고서를 잘 이해하고, 자신이 처음에 고백한 일과도 관계 있다. 그가 어릴 때 겪은 일을 보면 그가 삶보다 죽음에 더 한 발을 내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이 마음을 돌려놓으려는 인물이 있다. 소봉이다. 부분적으로 보면 상당히 재밌는 장면들이 많다. 하지만 그 흐름을 타고 가다 보면 걸리는 곳이 많이 생긴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왠지 다음 작품도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전형적인 마무리이지만 재기 발랄한 소봉은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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