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식의 고전 유람 - 이상한 고전, 더 이상한 과학의 혹하는 만남
곽재식 지음 / 북트리거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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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제 분류를 보면 인문, 자연과학, 문학 등에 걸쳐 있다. 사실 나는 소설로 생각하고 선택했다. 목차를 읽고 난 후에도 고전을 새롭게 풀어 쓴 소설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착각은 첫 번째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소설보다는 인문, 과학 에세이에 더 가깝다. 인문과 과학을 덧붙인 것은 고전들을 인용하고, 현대 과학의 발견 등을 이야기 속에서 녹여내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오랫동안 작업해온 고전들에 과학지식과 상상력을 덧붙였다. 이 글들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혹은 최근 동화나 전설 등을 비틀고, 나름의 가설을 세웠던 일들이 떠올랐다. 물론 작가처럼 전문적이지도, 그렇게 많은 이야기도 아니다.


4부, 열여섯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읽은 부분은 1부 괴이한 생명체를 다룬 것이다. 이무기, 원숭이, 여우, 혼백 전이 등의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흥미로웠다. 첫 이야기는 나도 한 번쯤 어딘가에서 상상했던 것이고, 원숭이 이야기는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에 대한 조금은 새로운 해석이다. 여우 이야기는 늘 반갑다. 혼백에 씐 사람 이야기는 최근 많은 판타지 무협에서 다루고 있는 환생이나 영혼 전이 등을 떠올리게 한다. SF소설로 넘어오면 전뇌 같은 설정과도 맞물린다. 멀리서 보면 간단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실제 적용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많은 사소하고 큰 문제들이 놓여 있는지 알 수 없다.


과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때 세상에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된다. 달콤한 이슬(감로)에 대한 해석은 낯설지만 재밌고, 멸망 전 백제에서 일어난 자연재해 중 하나를 적조현상과 엮은 것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카메라오브스쿠라로 우리가 본 기이한 모습을 해석한 것은 재밌다. 알고 보면 별것 아닌데 말이다. <금오신화> 속 ‘남염부주지’를 다룬 이야기는 이 소설에 대하 호기심을 더욱 키웠다. 예상을 벗어난 전개가 이어진다고 하니 더욱 그렇다. 우리가 생각하는 저승에 대한 다른 시선은 눈길을 우주로까지 돌리게 한다.


이상한 믿음을 다룬 3부에 오면 비약과 주문과 주술의 세계가 나온다. 도교의 영단법이 중금속중독이란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이것을 발해와 연결한 것은 조금 과한 것 같다. 세종의 며느리 휘빈 김씨가 남편 문종의 사랑을 얻기 위해 부린 술법을 해석한 부분은 누구나 한 번 이상 경험한 것들이다. 발표편향에 대한 것은 우리 주변에 수없이 일어나는 일들이다. 주문과 질병 치료를 엮은 이야기도 이것과 관계 있다. 성종이 불꽃놀이를 좋아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된 것이고, 이 기술이 군사 무기와 관계 있다는 지적은 재밌다. 폭죽의 어원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마지막은 우주에 대해 다루는 데 조금 내 취향과 맞지 않는 부분도 나온다. 직성이란 단어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지만 이성계가 금성을 숭배한 이유를 외계인과 엮은 것은 너무 나간 것 같다. 궁예와 왕건에 대한 예언을 토성과 엮은 것은 우주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역시 과학적 상상력은 더 먼 곳까지 나간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속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이 책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다. 그냥 보통 지나갈 수 있는 부분을 세세하게 기록했다는 부분이다. 이 소소한 이야기들이 열하 여행기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후대에 많은 참고가 되었다고 한다. 고이 모셔 둔 <열하일기>를 언젠가 읽고 확인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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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
듀나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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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작가 듀나의 미스터리 단편집이다. 모두 여덟 편이 실려 있다. 작가의 말에서 “저는 미스터리 작가인데요.”라고 말하는데 그래도 SF작가 이미지가 더 강하다. 그의 해명을 듣고 싶다면 작가의 말을 읽으면 된다. 장르에 대한 이해도 상당히 넓혀주는 글이다. 이 단편집에 실린 상당히 많은 소설들이 잡지 미스테리아에 실린 글들이다. 잡지를 거의 읽지 않지만 잡지 제목 정도는 알고 있다. 한 번 읽어볼까 생각했지만 밀려 있는 다른 책들 때문에 손을 내밀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손탁 호텔은 정명섭의 소설에서 만난 적이 있어 낯익다.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궁금했지만 역사적 공간이란 점 이외는 작가의 창작들이다.


나의 머리가 점점 굳어간다고 느낀 작품이 바로 <성호 삼촌의 범죄>다. 밀실 트릭을 하나 놓고, 성호 삼촌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설명과 그 배경 등을 하나씩 들려준다. 성호 삼촌은 할아버지의 재혼 상대가 데리고 들어온 아들이고, 잘 생겼고, 서울대 출신이다. 방송에서는 실장님 전문 배우다. 이런 배경과 어떻게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우발적이고, 실수다. 살짝 변호한다면 운이 없었다. 하지만 이 살인은 은폐한 것은 큰 잘못이다. 피살자의 시체를 그의 공간으로 옮긴 후 밀실로 만들어 그가 범인이란 가능성을 지웠다. 잠시 그를 의심하는 부패 형사가 나오지만 말이다. 사실 이 트릭은 너무나도 많은 추리소설에서 이용한 것이다. 알고 나면 나처럼 자신을 탓하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는 아주 잔혹한 살인 사건이 나온다. 우발적인 살인이 아니고 계획적이다. 연쇄살인이다. 참혹한 시체 모습은 잠깐 상상력에 제동을 걸고 싶다. 형사는 이 살인 사건을 좇으면서 단서를 하나씩 발견한다. 범인이 놓친 지문도 발견한다. 한국에서 지문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범인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범인의 행적을 찾을 수 없다. 연쇄살인범을 알지만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다만 그의 자식을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작가는 화려하게 범인의 마지막을 보여주지만 왜 그가 이런 연쇄살인을 저지르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괜히 장면들을 가지고 상상할 수밖에 없다.


표제작 <그 겨울, 손탁 호텔에서>는 이제는 약간 시들해진 것 같은 연예게 미투 운동과 관계 있다. 날짜와 시간을 표시하고, 화자를 이 영화에 참여한 배우로 정했다. 한 편의 영화 제작을 둘러싼 분위기와 권력 관계를 보여준다. 감독의 의도가 아닌 제작자의 입김이 더 강해지면서 망가지는 영화는 그렇게 낯설지 않다. 배우의 연기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히 재밌게 풀어낸다. 그리고 살인은 나중에 일어난다. 이 살인이 자살이나 실수로 마무리된다. 일기의 화자가 마지막에 깨닫는 진실을 솔직히 나는 깨닫지 못했다. <돼지 먹이>는 왠지 읽고 난 후 머릿속에서 줄거리나 이미지가 사라졌다. 몇몇 장면에서 실웃음이 난 것은 기억난다. 언젠가 다시 읽으면 다르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본다.


<콩알이를 지켜라>도 문단 내 성폭력 운동과 관계 있다. 오랫동안 그림책 콩알이로 사랑받아온 작가가 남편을 죽였다는 다른 여성 최은비의 전화를 받는다. 그녀를 강간하려는 것을 저항하다 저지른 살인이다. 보통 이런 경우라면 경찰에 연락하고, 자수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성폭행하려고 한 것을 아는 순간 콩알이에게 모성애 같은 것이 생긴다. 이후 진행되는 상황이나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더 추악하다. <누가 춘배를 죽였지?>는 과거 의문의 실종 혹은 살인 사건과 그 당시 감독의 아들이 새롭게 제작한 영화를 엮어서 풀어낸 소설이다. 그 당시 배우였지만 지금은 철학박사가 된 여인이 화자다. 시간의 흐름 속에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이 나오고, 용의자들은 한 명씩 사라진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감독의 의도는 상당히 흥미롭게 진행된다. 작가의 문제점이 하나 녹아 있다.


<그건 너의 피였어>는 범죄 사실을 고백하는 편지 형식이다. 낯익은 설정인데 마지막에 가서야 “그래, 예전에 이것과 같은 설정을 본 적이 있었지!”라고 생각했다.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방 하나 가득 흘러져 있는 피가 살인을 암시한다. 경찰은 이 방에 기거했던 사람들의 기록을 좇는다. 화자의 연인인 장수가 죽었다. 범인이 누군지 우린 안다. 하지만 우리가 안다고 생각한 것이 작가의 의도다.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관계가 드러나고, 숨겨진 섬뜩한 살의가 느껴진다. 재밌다. <햄릿 사건>은 오래 전 하이텔에 쓴 글을 다시 썼다고 한다. 원본이 사라져 다시 썼다고 하는데 이전 텍스터도 궁금하다. 햄릿을 다르게 해석한 시도는 약간 억지 같지만 햄릿을 좋아한다면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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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허풍담 5 - 휴가
요른 릴 지음, 지연리 옮김 / 열림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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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이 시리즈 첫 권을 아주 재밌게 읽은 적이 있다. 그 기억이 이 소설에 대한 관심을 계속 유지하게 했다. 3권까지 나온 후 절판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 5권까지 나왔다. 반갑다. 하지만 정확히 10년 전에 1권을 읽은 후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등장인물에 대한 기억이 모두 사라졌다. 아쉬운 부분이다. 그렇지만 이 시리즈는 그 기억이 사라졌다고 해도 그 재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주인공이 한 명이었다는 나의 뒤틀린 기억을 바로잡고 이야기 속에 빠져들면 그 재미가 다시 살아난다. 황당하면서도 재밌었던 그 기억과 더불어 말이다.


모두 열다섯 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전 기억이 정확하지 않으니 이번 이야기만 한다면 열다섯 개의 이야기가 모두 개별적인 것은 아니다. 몇 편은 앞의 이야기와 이어진다. 그들은 그린란드 북동부 지역에 살고, 그곳은 일 년에 한 번 연락선이 소포와 보급품과 사람을 실고 온다. 조금은 충격적인 사건 하나가 나오는데 이 사건의 당사자를 두고 이 지역 사람들이 보여주는 반응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사건은 할보르가 닐스 영감을 죽여서 먹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이제는 신부 수업까지 받았다. 그가 다시 이 지역에 온 것은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잊어버린 것을 찾으려는 목적이다. 뭘까? 그것은 마지막에 가면 너무 쉽게 나온다.


‘파이프’ 편에서 담배 파이프를 두고 두 노인, 빌리암과 매스 매슨이 다투는 장면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얻었지만 상대방이 원하는 물건의 대여에 억지를 부리는 모습을 보고 조금은 황당했다. 사향소 목장과 휴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몇 가지 에피소드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튄다. 그래서 재밌다. 이번 소설에서 닐스 영감을 먹은 할보르의 출연 빈도가 높은 편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둘의 관계와 최악의 상황에서 도와주는 그림자의 역할은 멋지다. 다른 사람들의 숨겨진 비밀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재미도 더해진다.


웃으면서 발기가 꺼지지 않는 대위의 상황을 진심을 다루는 ‘중위의 딱한 처지’는 이들의 성교육이 얼마나 부실한지 알려준다. 편견과 잘못된 정보가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지만 결국은 아주 좋은 쪽으로 흐른다. 그래도 ‘낭가’ 편에서 그것이 없어도 사랑을 나누는데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스 마 킨 마훈’ 이야기는 이 소설에 여자가 두 번째로 등장한다. 소설을 읽다 보면 등장인물들의 연령대를 생각하게 되는데 이 소설은 그 부분을 의도적으로 생략했다. 나이가 중요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지만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늘 궁금한 것 하나는 왜 이런 오지에서 사는 것일까? 이다. 배도 일 년에 한 번 오고, 파이프를 잃어버리면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식인을 한 동료가 주변에 살고 있다. 물론 이들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초대하고, 자신들이 가진 것을 나누어준다. 멋진 동료애다. 과연 과거에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걸일까? 자세한 것은 다른 편을 읽으면 알 수 있을까? 마지막도 멋진 황당함으로 마무리한다. 상상만으로 오래 전에 사라진 에스키모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놀랍긴 하지만 불가사의한 일은 삶에서 언제고 일어날 수 있어.”라는 문장 이 소설을 핵심적으로 요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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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고바야시 서점에 갑니다
가와카미 데쓰야 지음, 송지현 옮김 / 현익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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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있는 서점을 모델로 쓴 소설이다. 고바야시 서점은 동네 서점으로 70년간 운영한 곳이다. 작가가 서점 기획을 하다 서점 주인 유미코 씨에서 들은 이야기들을 그 책에 실을 수 없어 그 중 일부를 이 소설에 담았다. 일본 정서에 맞춘 이야기들이 많아 현재 우리의 삶과 조금 떨어져 있는 부분도 있지만 따뜻하고 훈훈한 이야기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 가슴에 와 닿을 것이고, 책에 관심을 두려고 한다면 참고할 것이 많다. 소설 속 일부는 실제 사람과 이야기가 나온다. 픽션과 논픽션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주인공은 출판유통회사에서 근무하는 신입사원 리카다.


리카가 3년만에 오사카에 온다. 5년 전 처음 오사카에 왔다. 출판유통회사 다이한에 입사한 후 오사카 지점으로 발령 나 온 것이다. 리카는 독서를 좋아하지도 않고, 서점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단지 큰 회사에 다니고 싶어 입사했다. 책 덕후들이 가득할 것 같은 회사에서 그녀가 어떻게 성장하고, 책을 좋아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고바야시 서점 주인 유미코 씨다. 유미코 씨가 서점을 유지하기 위해 한 일들이 그녀가 장벽에 부딪혔을 때 돌파하는 열쇠가 된다. 고바야시 서점에 가면 그녀 앞에 놓은 벽이 무너지고, 한 뼘 성장한다.


고바야시 서점 주인 유미코 씨가 서점의 생존을 위해 선택한 첫 번째 사업이 우산 판매다. 지금도 가장 중요한 사업 아이템 중 하나다. 위치가 특별하게 좋지 않은 동네 서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획을 해야 한다. 베스트셀러를 많이 받아야 많은 책을 팔 수 있지만 작은 동네 서점까지 올 물량이 그렇게 많지 않다. 이런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유미코 씨는 발로 뛰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낸다. 아무리 뛰어난 기획이라고 열정과 노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는 것도 계속 말한다. 이런 삶의 자세가 작은 동네 서점을 계속 유지하게 한 것이다. 아마존을 이겼다는 에피소드는 거대한 제목과 달리 소소한 것이지만 많은 것을 담고 있다.


회사 근처 대형 서점이 있어 자주 간다. 신간을 확인하기 가장 좋은 곳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항상 신간을 소개하지만 실물을 보면 화면 속 책과 다른 경우가 많다. 소개글만 보고 별로 라고 생각했는데 실물을 보고 반한 경우도 많다. 많은 직원들이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쌓인 책들과 정리되는 책들. 오늘 있던 책들이 갑자기 매대에서 사라진다. 갑자기 오래 전 나온 책이 가장 좋은 위치에 놓인다. 내가 보지 않은 방송의 영향이다. 왜 재미도 없는 책이 이렇게 오랫동안 좋은 자리를 차지할까 의문을 품을 때도 있다. 서점은 차분하게 들여다보면 굉장히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더 느낀다.


서점 이야기니까 책에 대한 많은 소개가 나올 것이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작가는 평범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독서하는 사람들이 소수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한다. 이 소수가 다수가 되는 일은 이제 거의 불가능하다. 다른 재밌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래도 한 해에 한 권도 읽지 않는 독자들을 한두 권 정도 읽게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두꺼운 책보다 얇은 책들이 서점을 더 많이 차지하는 것도 이런 사람들을 생각한 것 아닐까? 사실 나도 요즘 두꺼운 책이 조금 버겁다. 이런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책에 관심을 갖게 하는 이야기가 이 책에는 담겨 있다. 화려한 이야기가 아니고, 이야기를 감성적으로 풀어내지 않기에, 사실을 담고 있기에 소설의 울림은 더 커진다. 다만 앞에서도 말한 일본적 감성은 우리에게 조금 비현실적인 부분도 있다. 이효석 작가의 <메밀꽃 필 무렵>이 문고본에 나왔을 때는 괜히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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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에게 자비는 없다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강지영 외 지음 / 몽실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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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와르를 소재로 한 앤솔로지다. 한국 장르소설에서 유명한 다섯 작가가 참여했다. 프랑스어로 검다는 뜻이지만 프랑스 암흑가 영화로 더 낯익다. 이에 대한 개념으로 “어둡고 진지하고 비정한 분위기의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섯 편의 단편들을 읽다 보면 그 분위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이 다섯 편 중에서 암흑가를 다루지 않는 소설도 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가장 가까운 것은 표제작 <프리랜서에게 자비는 없다>이지만 이 소설의 분위기는 어둡지만 코믹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읽은 단편도 표제작이다.


<프리랜서에게 자비는 없다>는 황당한 이야기로 문을 연다. 소설인가? 아니다. 자기소개서다. 느와르 작가가 프리랜서를 그만 두고 정규직으로 가려고 쓴 이력서다. 그가 지원한 회사는 스토리 창작 회사다. 그런데 이 이력서가 엉뚱한 곳으로 간다. 실제 그가 취직한 곳은 조폭들이 일한다. 그의 자소서는 어딘가에서 많이 본 내용이 들어 있다. 평범한 소설가가 조폭 회사에 취직하면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보여준다. 황당한 일이 일어난다. 다 읽고 글을 쓰는 지금 옛날 주성치 영화가 떠올랐다. 나만 그런 것일까? 예상하지 못한 반전도 있으니 끝까지 즐길 수 있다.


강지영의 <네고시에이터 최보람>은 분위기만 놓고 보면 가장 느와르스럽다. 네고시에이터란 직업이 경찰 조직 안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소설 속에서는 사설 직업이다. 그녀는 식물의 삶을 바라지만 현재 돈이 부족하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의 딸이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선배를 만난다. 누가 아이를 납치했는지 바로 안다. 그녀가 속한 조직은 이런 일에 특화된 회사다. 그녀가 할 일은 범인을 잡는 일이 아니라 범인과 피납치 가족 사이의 중재 역할이다. 몸값을 상식선에서 산정해 납치범의 요구를 맞춘다. 당연히 이 사건도 선배의 계좌 정보 등을 이용해 최대한 계산한다. 그런데 납치범이 다른 대리인을 내세워 금액을 확 올린다. 피해자 조부의 재산을 포함해서 말이다. 상당히 부드럽게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과거의 인연이 나타나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마주한다.


윤자영의 <중고차 파는 여자>는 제목 그대로 중고차를 파는 여성 딜러 왕지혜가 주인공이다. 학교 선생인 김현철이 중고차 사기를 당한 후 왕지혜를 소개받았다. 그녀의 활약으로 기존 계약을 해지한다. 이때 활약은 아주 멋지다. 문제는 허술한 김현철이 자식의 자동차 사고 때문에 피해자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이기에 합의한 것이다. 그런데 이 합의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 왕지혜가 탐정처럼 움직이면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한다. 왕지혜의 행동은 대담하고, 자신의 일에 대한 정직성은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다. 개인적으로 이 매력적인 자동차 딜러가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조영주의 <아주 독립 못한 형사> 속 나영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등장한 인물인 모양이다. 처음 나영이 팀장에서 정직당한 후 6개월 동안 삼천 권의 책을 읽었다고 했을 때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든 것을 기억하는 그녀의 능력이 이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두 개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나는 좌천한 그녀를 둘러싼 다른 경찰의 행동이고, 다른 하나는 나영이 책을 사는 서점 주인 안 약사의 의뢰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엄청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을 마구 대하는 이경에 대해 크게 저항하지 못하는 그녀를 보고 굉장히 답답했다. 안 약사의 책방 단골이자 유명한 음악 작곡가의 실종을 수사하는 이야기는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전작들을 읽고 작가가 주석을 단 내용을 확인해보고 싶다.


정명섭의 <작열통>은 연극으로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건의 가해자 부모들이 탄 버스가 납치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 상당히 정적이다. 버스에 탄 부모들이 모두 한 자리하거나 돈이 많다. 처음엔 그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지만 마지막에 가면 그 실체가 나온다. 잔인한 학교 폭력인데 여기서 한 번 더 비틀었다. 진실이 말소된 현실에서 피해자 가족의 반격은 치밀하고 잔혹하다. 작열통의 사전적 의미는 사지에 외상을 입었을 때 그 말단부가 불에 타는 듯이 따갑고 아픈 통증이다. 먼저 자식을 보낸 부모의 마음은 이것을 능가한다. 소설 마지막 장면은 예상을 뛰어넘었고, 그 고통은 이제 멈춘다. 장편으로 개작해서 내용을 더 다듬었으면 좋겠다. 그럼 더 풍성한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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