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 안전가옥 앤솔로지 9
최구실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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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앤솔로지 9권이다. 언제부터인가 안적가옥 시리즈가 기업과 협업을 하고 있다. 이번 책은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안전가옥의 네 번째 공모전 수상작 모음집이다. 그런데 소재가 재밌다. 히어로가 아닌 빌런이다. 얼마 전 빌런도 아닌 빌런의 조수 역할을 하는 사람을 다룬 소설을 읽었다. 점점 소재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이 재밌다.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이 어쩌 영웅과 악당 들만 있겠는가. 그리고 스테레오타입의 영웅보다 가끔 악당들이 더 흥미를 자아내는 경우도 많다. 하는 일은 악한 일이지만 그 대상이 악당인 경우에 한정하는 소설들도 요즘은 많이 나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런 소설들을 좋아한다.


최구실의 <샐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란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 것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란 영화다. 제목의 패러디인가? 하지만 소설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두 명의 샐리가 서로 하나의 연구를 위해 만난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세포를 가진 김샐리의 연구다. 그들의 연구는 성공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성공의 이면을 파고 든 이야기다. 달콤한 성공의 열매를 나누어야 할 때 최샐리가 사라진다. 그리고 이 연구의 성과를 누리는 사람들이 이상한 일을 경험한다. 당연히 그 악당이 누군지 금방 알 수 있다. 진짜 이야기는 김샐리의 원하는 것을 잊어버리는 일에 대한 것이다.


김상원의 <수정궁의 유령>은 메타버스를 이용해 새로운 빌런을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빌런이 누군지, 어떤 악행을 저지르는지 보다 메타버스수사계 범죄행동분석팀 양익수 팀장과 김도반 경장이 이 낯선 세계 속에서 활약하는 소소한 장면들에 더 눈길이 갔다. 단숨에 원하는 곳으로 휙~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실재처럼 헉헉거리면서 움직인다. 현실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면서 메타버스 속에서는 돈까지 들여가면서 운동한다. 만약 어딘가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을 묘사한 글을 읽었다면 머릿속에 몇 가지 이야기가 떠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 김도반 경장이 재밌는데 시리즈로 나와도 좋을 것 같다.


<우세계는 희망>은 16년간 배우 우세계를 뒷바라지 한 팬 카페 이야기를 다룬다. 개인적으로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어 낯설다. 기사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본 팬들의 마음은 대충 짐작할 뿐이다. 팬클럽 ‘우세희’의 운영진과 친한 세진은 그곳에서 김마리를 만난다. 그녀는 말기 암 환자다. 극성 팬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나오고, 팬클럽 회장이 죽으면서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김마리가 팬클럽 회장이 된 것에 분노한 세진의 조사와 팬심은 뒤섞인다. 사생팬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들에게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기에 완전히 긴장감을 풀 수 없다. 결말에 오면 나의 예상 중 많은 부분이 무너지고, 우세계에게 최고의 빌런은 누굴까 하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엄성용의 <치킨 게임>은 sf판타지 소설이다. 인구 폭발 때문에 우주 진출을 바라는 지구인과 식량 부족 문제를 겪는 타이탄 인의 교류가 이루어진다. 두 행성의 과학 수준은 비슷한데 우주 항해 연료 기술은 타이탄이 더 뛰어나다. 타이탄을 위한 식량을 실고 우주탐사선 ARK가 날아간다. 냉동 상태에 있다가 도착 일주일 전에 깨어날 예정이었는데 5년이나 먼저 정비팀 성식이 깨어난다. 먹고 살기 위해 닭을 꺼낸다. 해동한 후 닭볶음탕을 만들 예정이다. 그런데 이 닭이 살아 움직인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탄생한 수퍼 닭이다. 성식과 대화를 통해 공생하고자 하지만 성식은 닭은 닭일 뿐이다. 이후 벌어지는 사건들은 약간 황당하지만 그것만 무난히 넘어간다면 상당히 재밌다.


김구일의 <송곳니>는 가장 흥미 있게 읽은 단편이다. 조금 거친 면이 있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와 빌런의 탄생 과정이 계속 시선을 끈다. 투견장을 운영하는 악당과 그 악당의 개를 훔친 수기의 대결은 섬뜩한 대목들이 많다. 동물과 대화하는 능력을 가진 수기가 투견용 개 등을 구하고, 그 과정에 이 마을의 작은 비밀들이 하나씩 나온다. 수기의 친구 동물 병원 원장의 아들 율과 그에게 폭력을 가하는 깡이라는 동창까지 등장해 이야기의 볼륨의 키운다. 수기가 구한 19호가 깡을 공격하는 장면에서 수기가 보여준 거대한 어둠은 아주 인상적이다. 아직 자신의 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녀가 한 명의 빌런으로 자라는 과정은 섬뜩하지만 재밌다. 장편이나 시리즈로 나와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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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저벨
듀나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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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평원의 혈투>에 나온 링커 우주를 다룬 연작 소설이다. 링커 우주라고 하지만 이 소설에서 다루는 공간은 행성 크루소 하나다. 이 행성의 크기나 기후적 특징은 자세하게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전 이야기에서 풀어낸 링커 바이러스의 영향과 올리비에 등은 그대로 나온다. 재밌는 것은 여전히 이 행성에서 진화를 하는 것이 인류라는 점이다. 만약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를 읽지 않았다면 좀더 낯설 수도 있다. 링커 바이러스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싶다면 그 책 속 <안개 바다>도 좋다. 바이러스가 인간의 생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인간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모두 네 편이 실려 있다. 소형 함선 제저벨을 타고 항해하는 선원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첫 단편 <로즈 셀라비>의 함장 이야기는 쉽게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다. 다만 행성간 이동을 위해 필요한 아자니를 받아주는 올리비에가 없어 다른 행성으로 나갈 수 없다는 설정에 눈길이 간다. 인류가 낡은 차를 개조해서 아자니를 타고 링커 우주 속으로 날아간 것과 비교하면 이 행성은 현재 지구와 비슷하다. 갇혔다고 하기엔 행성은 크고, 다양한 대륙 등에서 삶은 계속 이어진다. 도서관 큐브를 둘러싼 이야기인데 다른 연작들처럼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가 반전처럼 펼쳐진다. 갑자기 다른 행성으로 갈 수 없다는 사실은 현재의 자가격리처럼 다가온다. 물론 그 규모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소문과 음모가 뒤섞여 있는데 왠지 머리속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시드니>는 제저벨의 이야기꾼 의사를 구해준 인물의 별명이다. 본명인가? 그가 어떻게 구함을 받았는지 들려주는데 재밌다. 더 재밌는 설정은 토요일을 두고 두 진영이 2차 대전 게임을 한다는 것이다. 독일과 러시아로 나누어서. 의사와 제저벨 승무원은 시드니가 요청한 일을 하기 위해 이 대륙에 간다. 황당한 설정이 이어지고, 그 삶에 빠져든 사람들이 나온다. 게임이라고 했지만 죽을 수 있다. 실제 많이 죽는다. 의사 일행은 시드니가 부탁한 일이 단순히 섹스 인형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하는 물건을 회수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독일 진영에 간다. 그리고 이 세계 속 이상한 일들이 하나씩 흘러나온다. 이름도 상당히 직관적이다. 블랙 지하드, 교회 마피아 등처럼.


<레벤튼>은 제저벨 항해사의 고향이다. 생존을 위한 실험이 벌어지는 곳이다. 이 단편 속에서 무시무시한 벌레가 등장한다. 한 과학자가 만든 말씀이 입력된 벌레다. 종의 오염을 막아준다고 하면서 교회 마피아에 팔았다. 자신들의 세력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한 수장은 이 벌레를 산다. 단순히 괴이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의 종교와 엮으면, 정치와 엮으면 수많은 이야기들이 파생되고, 바로 떠오른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다 보니 기존 세계의 이야기를 끌고 오지 않을 수 없다. 낯선 이름, 기이한 모습, 링커 바이러스의 변이 등이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뒤섞인다. 그리고 이전 편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연결된다. 천천히 읽으면서 관계도 등을 그려야 했을까?


<호가스>에서는 <시드니>에 나왔던 로봇이 또 등장한다. 호가스 베들레헴 수용소에 갇힌 42호가 바로 그 시드니다. 로봇 시드니의 경험담이 흘러나오고, 링커 기계의 핵심인 올리비에에 대한 이해와 의문이 더 깊어진다. ‘로저 셀라비’ 호에서 제저벨 선장이 본 올리비에가 다시 등장한다. 이 기계가 함선을 개조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설명한 것은 한 편의 멋진 호러물 같다. 그리고 이 행성에서 기존 학설과 다른 존재가 발견된다. 이야기가 더 복잡해진다. 이전에 나왔던 인물이나 상황이 새롭게 해석되고, 또 다른 이야기의 가지가 펼쳐진다. 혼란스럽지만 이상하게 끌리고, 세부적인 부분들이 재밌다. 작가가 이 링커 우주를 어디까지 끌고 가서 확장할 지 궁금하다. 언젠가 올리비에의 정체도 말해주면 좋겠는데 그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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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짐승아시아하기 문지 에크리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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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 에크리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에크리는 프랑스어로 씌어진 것 혹은 ‘쓰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책은 시인 김혜순의 아시아 여행기다.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읽는 여행기와 많이 다르다.

흔히 여행기하면 어느 곳인지 지명 등이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이 여행기는 장소가 대부분 불명이다.

목차에 나온 티베트, 인도, 실크로드, 산동성, 운남성, 산서성, 청해성, 미얀마, 캄보디아, 고비사막, 타클라마칸 사막, 몽골 등도 내용 속에서는 구분되지 않고 있다.

티베트만 해도, 인도만 해도 그 광대한 지역에 수많은 마을이나 도시가 있는데 표시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디인지 알려면 책 내용에 나오는 장소나 상황이나 전설 등을 참고해서 찾아야 한다.

솔직히 말해 읽으면서 많이 궁금했지만 그 곳이 어디인지 찾고자 하는 노력은 없었다.

작가에게 그 장소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바리공주. 내용을 잘 모르겠다. 어릴 때 동화 등으로 만났을 텐데 말이다.

책머리에 우리가 제일 모르는 것을 말한다. 아시아인, 짐승, 여자. 이것을 붙이면 책 제목이 된다.

작가는 “나의 시는 한사코 나이면서 나와 다른 것, 나 아닌 것, 낮은 것, 분열된 것, 작은 사람들을 향해 가는 하기의 작용이다.”라고 말한다.

시인의 시집을 한 권도 읽지 않은 나에게 이 문장은 낯설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처음 이 글을 읽을 때 난해함에 헤맸다. 천천히 글에 집중하니 생각보다 매력적인 내용들이 나왔다.

그런데 전체적인 윤곽을 잡으려고 하니 그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여행기에 매몰된 나의 독서법이 장벽에 부딪힌 것이다.

<눈의 여자>와 <쥐>를 읽을 때 심리적 흐름 한 줄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생각은 딴 곳으로 흘렀다.

그 글들 속에 나오는 그 지역의 문화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삶은 우리에게 사라진 것 같지만 은연중에 흘러다니는 것들이다.

많은 글들에서 그 지역의 문화를 보여주지만 어딘지 모르다 보니 검색해서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

‘붉음’을 다룬 38편의 짧은 글들은 어떤 대목에서는 사진 한 컷을 해설하는 것 같고, 어느 편은 시 한 편을 읽는 느낌이다.

글 곳곳에 군과 제국주의의 폭력이, 남녀 성차별이 담겨 있다.

그래서 <밤에 만나서 새벽에 헤어지는 부부> 이야기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다만 관광상품으로 변하는 현실은 아쉽다.

루비 이야기를 다룬 곳이 궁금해 찾아보니 미얀마다.

독재자가 어떻게 종교를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지 보여주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많은 이야기가, 현실이, 문화가 담겨 있는데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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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런 킹덤 전설의 언어술사 5 - 초등 어휘 학습 만화 쿠키런 킹덤 전설의 언어술사 5
전판교 지음, 정수영 그림, 이선희 감수 / 서울문화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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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만화다. 어른인 내가 보기엔 아쉬운 점이 많지만 아이는 좋아한다. 아이와 서점에 갔을 때 3권을 샀다. 다른 책도 선택했는데 엄마가 그 책은 잘랐다. 나중에 도서관에서 그 책을 빌렸는데 재미없다고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쿠키런 킹덤은 한 자리에 앉아서 다 읽었다. 솔직히 이 두께의 책을 그렇게 집중해서 읽을 줄 몰랐다. 학교 도서관 등에서 빌려온 책들을 대충 보거나 거의 보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다. 아이가 책과 가까워진다고 하니 괜히 반가웠다. 4권을 사 달라고 요청하길래 쌓아둔 적립금으로 질렀다. 역시 받자마자 단숨에 읽었다.


사실 5권도 나보다 아이가 먼저 읽었다. 생각보다 늦게 도착했고, 이런저런 일로 장난을 쳤는데 상황이 꼬이면서 아이가 울기도 했다. 내 욕심과 장난이 빚어낸 실수다. 역시 5권도 한 자리에 앉아서 단숨에 읽었다. <에그 박사>를 며칠에 걸쳐 읽었던 것과 비교되는 속도다. 책 속 언어카드를 펼쳐 장난을 치기도 했는데 용감한 쿠키처럼 제대로 된 사자성어 등을 구사하지 못한다. 몇 가지 속담을 사용하지만 익숙하지 않고 어설프다. 칠전팔기란 단어를 집에 있는 무협지 제목과 헷갈려 소천팔기라고 외친다. 고쳐주려고 하니 자신은 그대로 하겠다고 말한다. 어이구! 그래도 책에 관심을 두고, 몇 가지 속담이나 사자성어를 말하는 게 어딘가! 왜 마법천자문이 그렇게 대박 났는지 알겠다.


사실 이야기의 구조는 간단하다. 쿠키런이란 게임을 하지도 않은 내가 이 캐릭터들을 알지도 못한다. 소개글을 읽고 주인공이나 다른 등장인물들 이름을 기억한다. 천하제일 쿠키 대회란 것도 왠지 <드래곤 볼>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 이번 팔강전에 올라온 인물들은 언어카드를 세 장 가지고 와서 상대방을 공격해야 한다. 대회 입장 전 각자 방에 들어가서 수많은 카드 중에서 단 세 장만 가지고 와야 한다. 신중해야 한다. 앞에서 말한 칠전팔기도 이때 나온다. 만약 아이가 좀더 정독하고, 속담 등에 재미를 많이 붙였다면 속담 관련 최고의 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만화를 다 읽은 후 나오는 언어 카드로 어휘 익히기 등을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만화만 본다. 누굴 탓하겠는가. 나도 그랬는데.


사자성어, 고사성어, 속담, 관용어 등이 다양하게 나온다. 쿠기들에 대한 이름에 형용사나 맛 등을 붙여 구분한다. 이것을 보면서 언제부터인가 닫힌 나의 상상력을 탓한다. 아이가 만화와 동화를 재밌게 읽고, 나를 불어 같이 읽자고 할 때 기분이 좋다. 최근에 어쩔 수 없이 아이의 추천으로, 혹은 아이의 취향으로 동화 등을 읽었는데 재밌었다. 이 쿠키런 킹덤 전설의 언어술사도 마찬가지다. 5권을 먼저 읽었는데 아이 몰래 3권과 4권도 가지고 와서 읽어야겠다. 왠지 모르게 쿠키런 킹덤 시리즈에 눈길이 간다. 마눌님은 만화라고 더 사지 말라고 하는데 말이다. 그래도 사자성어나 속담 등으로 잠깐이나마 놀이를 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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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듀나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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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새롭게 개정판이 나왔다. 내용의 변화는 잘 모르겠다. 개정판 작가의 말이 덧붙여진 것 이외 변화는 없어 보인다. 목차도 똑같다. 10주년 기념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막 사서 모으지는 않는다. 새로운 디자인과 활자의 크기 등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이 책을 모두 읽고 인터넷 서점에서 듀나의 목록을 검색해봤다. 읽은 책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장편으로 마지막 읽은 소설이 <민트의 세계>다. 이 장편을 읽고 이전에 읽고 관심을 살짝 내려놓았던 것을 다시 끌어올렸던 것을 기억한다. 이번 단편집은 또 다른 끌어올림이 될 것 같다.


모두 열세 편이 실려 있다. 분량은 모두 제각각이다. 이 단편들 중 두 편은 다른 단편집 <제저벨>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표제작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와 <안개 바다>다. 링커 우주를 다루는데 예상 외의 설정과 잔혹함이 담겨 있다. 특히 표제작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생존 욕구를 극대화한 부분은 너무 담담하게 표현해서 오히려 더 놀랍다. 그리고 이 단편은 링커 우주가 어떻게 지구와 연결되었는지 알려준다. <안개 바다>는 링커 바이러스에 걸린 인류가 우주로 진출해 어떤 한 행성에서 어떤 돌연변이와 진화를 맞이하는지 다양한 사람 등의 시선을 통해 풀어낸다. 이 괴이하고 기이한 세계관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래서 <제저벨>이 더 기대된다.


첫 단편 <동전 마술>은 아주 인상적인 도입과 황당한 마무리로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어떻게 끝부분을 이해해야 할까? <물음표를 머리에 인 남자>의 경우 어느 날 갑자기 여자들의 눈에 자신들의 남편이나 남친 등의 머리 위에 생긴 물음표의 의문을 탐구한다. 결론만 보면 고개를 끄덕인다. <메리 고 라운드>의 구성과 전개는 왠지 모르게 나를 어지럽게 했다. 뭐 가장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단편은 다. 이 짧은 단편을 읽으면서 알파벳을 적고 관계도 연결하면서 읽었다. <호텔>은 한 편의 거대한 리얼리티 쇼를 보는 득한 느낌이다. 내용이 아니라 관계를 다루지만 사전 정보가 없었던 나는 이 단편이 <제저벨>과 이어지는 소설인가 하고 착각했다.


<죽음과 세금>은 므두셀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인류가 불사가 된 세상을 그린다. 영원한 생이 인류에게 재앙임을 암시하고, 갑자기 죽게 된 사람들을 음모론으로 접근하는 채승우를 관찰하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읽은 단편이다. <소유권>의 세계관에서 말하는 시스템의 존재는 무엇일까? 로봇 아이의 성장과 그 이면에 숨겨진 비밀이 예상 밖이다. 간결한 이야기인 <여우골>도 잔혹한 장면이 나온다. 예상한 결말과 다르다. 우리가 알던 그 무서운 여우가 나타났다. <정원사>는 완벽하게 통제된 우주선 속 생태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는데 공포와 함께 인간이 생태계에서 어떤 위치에 존재하는지 말한다.


<성녀, 걷다>는 작가의 말에 의하면 독일제 자동인형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다. 엄청나게 느린 움직임과 그 움직임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보호한 사람들의 모습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마지막 단편 <디북>은 인류가 뇌파로 움직이는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놓고 살아가는 현실을 다룬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상 체험 공간을 그대로 구현해 놓았는데 진짜 이야기는 마지막에 나온다. 인류의 종말이 이렇게도 가능할 수 있구나, 하고 놀란다. 이렇게 한 편씩 돌아보니 이 단편집에 실린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어둡고 생각보다 잔혹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무겁게 마무리했다. 하지만 상당히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아 만족스럽다. 이제 링크 우주로 달려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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