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은밀한 감정 - Les émotions cachées des plantes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백선희 옮김 / 연금술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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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고, 공쿠르 수상 작가가 쓴 책이라 선택했다. 가끔 이런 선택이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주는 경우가 있다. 지금 이 책이 그렇다. 솔직히 말해 재미는 바라지 않았다. 내가 잘 몰랐던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좀 읽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상당한 재미를 누렸다. 새로운 정보와 지식들이 쏟아져 나왔고, 어떤 대목에서는 판타지 소설 속 장면들과 결합했다. 이 책에서 반복해서 말하는 주장 중 하나가 있다. 식물은 인간 없이 살 수 있지만 인간은 식물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이다. 인간이 사라진 공간을 다시 채우는 것은 식물이다. 인간보다 먼저 이 지구에서 살아온 것도 식물이다.


열다섯 장에 나누어 식물의 삶과 감정에 대해 말한다. 과학자들의 끈질긴 연구 결과에 의해 밝혀진 수많은 식물 관련 정보는 대단히 방대하다. 이미 알고 있는 몇 가지 정보도 있지만 저자가 풀어낸 이야기 속 식물의 삶은 나의 상상력을 초월한다. 사실에 기반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믿기 어려운 것들도 상당히 나온다. 특히 멕시코 농부 호세 카르멘의 놀라운 업적은 내가 알고 있던 농업 지식을 완전히 뒤흔든다. 특별한 비료를 사용하거나 지질이 특별한 곳에서 농사를 짓지 않는데도 그의 농산물은 다른 농산물을 압도한다. 어떻게 보면 마법사처럼 보인다.


식물의 수확량이나 건강을 위해 클래식 음악이 좋다는 이야기는 이미 여러 번 들었다. 뉴스에도 여러 번 나왔다. 그런데 음악을 이용해 병충해 등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유전자변형 작물이 처음에는 높은 생산성을 보여주지만 점점 내성이 생긴 병충해에 의해 더 강하고 많은 농약 등을 뿌려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 책 전에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행성> 속 쥐들이 떠올랐다. 인간의 유전자 조작을 쥐들의 개조를 통해 이겨내는 장면이다. 원래 그 식물 자체가 병충해를 이겨내기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개를 끄덕이지만 다른 곳에서 낯선 병충해 등이 왔을 때 너무 쉽게 무너진 인류의 역사를 보면 전적으로 여기에 의존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과학을 뛰어넘는 듯한 이야기는 개인적 체험으로 채워져 있으니 잠시 유보하고 싶다. 하지만 식물이 종의 번식과 안정을 위해 하는 행위들은 충분히 과학적이다. 모습을 바꾸고, 동맹을 만들고, 음모를 꾸미고, 그들의 공포와 고통과 기쁨 등을 전달한다. 또 한곳에 머물지만 다른 매개체를 통해 자신들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 번식을 위해 꽃들이 색이나 향기 등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알려주는 대목은 낯익지만 여전히 재밌다. 식물이 느끼는 공포나 슬픔 등의 감정을 보면 판타지 속 외계생물체가 보여준 모습이 전혀 황당하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회사에 있는 화분들이다. 사 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씩 죽는다. 예전에는 이상한 곰팡이 같은 것이 피었는데 이제는 그냥 마른다. 처음 올 때의 싱싱함이 사무실의 탁한 공기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죽어간다. 쉽지 않다. 읽다 보면 식물의 감정을 풀어내지만 그 시각은 인간의 시각이다. 감정도 인간의 감정으로 해석한다. 인간이 제대로 알 수 없으니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 해석이 식물을 이해하고, 우리와의 공생을 위한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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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1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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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시리즈 마지막 편이다. <고양이>, <문명>으로 이어져 온 이 시리즈는 이번 <행성>으로 끝을 맺었다. 6권으로 완결되었는데 이전에 나온 <제3인류>의 권수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전편에서 제3의 눈을 가진 쥐의 왕 티무르를 피해 뉴욕 항에 도착하는 장면에서 이번 이야기가 시작한다. 그들이 바란 것은 미국이 개발한 강력한 쥐약으로 평온한 일상을 사는 미국이었다. 하지만 도착해서 본 풍경은 온통 쥐로 뒤덮여 있다. 그들의 배를 보고 쥐들이 바다를 헤엄쳐 온다. 닻을 타고 배에 올라온다. 첫 장면부터 쥐떼와의 대결이 펼쳐진다. 이 전투에서 배에 탄 수많은 사람들과 동물들이 죽는다. 바스테트의 친구들도 많이 죽었다. 이 시리즈를 읽다 보면 가까운 동물이나 사람들이 계속 죽는다.


닺을 올려 쥐떼 군단의 공격을 막아내지만 이제는 갈 곳이 없다. 그러다 뉴욕의 높은 빌딩의 신호를 본다. 앵무새를 보내 협상을 하려고 하지만 앵무새는 돌아오지 않고, 드론이 날아와 짚라인 줄이 내려온다. 고층 빌딩을 이런 짚라인으로 이동하고 있다. 뉴욕의 고층 빌딩에 약 4만 명의 인간과 수천 마리의 고양이와 개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의 주식은 주로 쥐 고기이고, 야채 등은 빌딩에서 키운다. 식수는 비로 충당하고 있다. 바스테트 일행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상당히 안정적으로 이 도시가 유지되고 있었다. 그리고 강력한 쥐약의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쥐약에 대한 내성이 생긴 쥐의 탄생으로 무력화되었다고 한다. 이 군단의 왕은 알 카포네로 불린다.


쥐 군단의 서해전술은 무시무시하다. 천적이 사라지고, 인류가 만들어 놓은 식량 등이 이들을 더욱 번성하게 한다. 쥐의 왕은 제후들을 거느리고 인간의 고층 빌딩을 공략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쥐의 이빨로 빌딩의 하단부를 갉아내어 무너트리는 것이다. 빌딩을 지을 때 쓴 재료의 강도에 따라 건물이 무너진다. 사람들은 더 높고 더 강한 빌딩으로 몰린다. 하지만 이때 우리는 이 빌딩도 언젠가는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빌딩에서 이전에 강력한 쥐약을 만든 유전자 과학자를 만난다. 그리고 드디어 인류의 연락망을 망가지게 한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 개발된다. 도박이지만 성공하면서 세계가 연결된다. 문제는 이 인터넷을 통해 프랑스의 티무르가 바스테트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된 것이다.


인류가 쌓아 올린 과학 기술은 대단하다. 사람이 없어도 자동 항법으로 대양을 건너는 것이 가능하다. 프랑스와 미국의 두 군단의 쥐가 뉴욕에서 만난다. 일단 티무르가 꼬리를 내린다. 미국 쥐는 덩치가 더 크다. 하지만 티무르는 제3의 눈을 가지고 있다. 불을 사용할 수 있다. 인류의 지식이 인류의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 쥐의 이빨에 강한 건물도 불은 견딜 수 없다. 인간과 바스테트는 대응법을 만들어내지만 거대한 쥐 군단을 압도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쥐들은 티무르의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들을 더 압박한다. 뉴욕을 벗어나야 하지만 쉽지 않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기갑부대마저 쥐의 공격에 무력회되지 않았던가. 핵폭탄 이야기가 나오지만 뉴욕만 폭격한다고 해결된 문제도 아니다. 작가는 지식과 서해전술을 엮어 인간의 종말이 다가왔음을 암시한다.


쥐 군단과 인간과 고양이 등을 포함한 동맹의 대결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고층 빌딩에 머무는 수많은 사람들은 102개의 인간집단으로 나누어져 있다. 재밌는 점은 총회의 회장이 힐러리 클린턴이란 것이다. 교묘한 방식으로 총회를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이끈다. 하지만 위기 앞에서 이 정치력은 너무 쉽게 무력화된다. 이 틈을 파고들어 고양이들을 103번째 집단으로 인정해달라고 한다. 이 총회의 가입 조건이 쥐의 왕들을 죽이는 것이다. 이때 쥐의 왕은 자유의 여신상을 머리를 날리고 자신들의 얼굴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곳에 머문다. 인간들은 드론을 통해 이 상황을 지켜본다. 택배 드론은 그렇게 무겁지 않은 작은 고양이를 실고 날아갈 수 있다, 재밌는 발상이다. 이런 상상력이 이 소설 곳곳에 나온다. 실존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읽으면서 수많은 생각이 오간다. 서해전술을 막을 방법이 과연 없을까? 기갑차량을 고장 나게 한 원인은 고치면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은 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들이 어떻게 위기 상황을 넘어갔는지 감안하면, 그 어마 무시한 숫자를 생각하면 내가 생각한 몇 가지는 금방 무력화된다. 실제 인간이 세운 요새들이 쥐 군단의 공격에 무너지는 광경을 보면 숫자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행위와 지속적인 공격이 지닌 무서움을 깨닫는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마지막에 내놓았을 때 지독하게 인간의 역사와 닮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 위기 상황에 대한 해결책으로 전 생물종의 공존과 협력을 이야기할 때 다시 생각이 많아진다. 언제나처럼 이 소설의 가독성은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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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도 살인사건
윤자영 지음 / 북오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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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과 밀실처럼 섬을 꾸민 살인사건을 엮었다. 세월호 이후 바뀐 수학여행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현직 교사가 느낀 학생에 대한 감정이 어느 정도 녹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자극적이다. 현직 학교 생물교사가 쓴 글이다 보니 그 내용이 소설 곳곳에 스며 있다. 그리고 어떤 대목에서는 노골적으로 학교 수업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별개로 이 소설은 가독성이 아주 좋다. 살인자가 누군지는 파악하는데 크게 무리가 없지만 진짜 범인이 누군지 하는 것은 전혀 예상 밖이다. 독자의 취향에 따라서는 사족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물 교사의 화학 지식과 청소년들의 일탈과 잔혹함을 잔인한 살인사건으로 풀어낸다. 재밌고 빠르게 잘 읽힌다.


이 소설에서 탐정 역할을 하는 학생이 한 명 있다. 바로 영재다. 반에서 외톨이처럼 지내는데 그는 뛰어난 관찰력과 묘사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십자로로 들어오는 와중에 쓴 글이 섬의 모습이나 특성을 아주 간결하면서도 잘 잡아낸다. 이런 그에게 다가온 친구가 부회장 민선이다. 반 회장 장희종이 엄마의 돈을 믿고 망나니 짓을 할 때 반의 일을 묵묵히 처리하는 학생이 민선이다. 실제 이 십자도로 수학여행을 오게 된 것도 장희종이 바란 것이다. 세월호 이후 학년 전체 수학여행은 불가능하지만 반 단위로 교육적 목적으로 떠나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말썽쟁이들과 함께 수학여행 가는 것을 담임 고민환 선생은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희종의 엄마에게 넘어간 교장은 희종의 엄마와 함께 선생의 약점을 잡고 성사시킨다.


인천 서창고등학교 2학년 7반 23명은 담임과 부담임 이지현 선생과 함께 배를 타고 오지섬 십자도에 들어간다. 이 섬에는 여름 휴가철이 되어야 사람들이 들어오는 곳이다. 하지만 희종의 엄마가 돈을 뿌려 학생들이 3박 4일 동안 머물 수 있게 된다. 섬은 휴대폰이 터지지 않고, 유일한 연락 방법은 이장집 유선전화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평소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배가 없고, 수학여행 마지막에 들어올 예정이다. 그 동안은 섬은 거대한 밀실이 된다. 학생과 교사 이외에 이장과 학생들 식사를 담당하는 이씨 부부와 청년회장이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이 몰래 들어온 것이 아니라면 범인은 이들 중에 있다. 공정한 추리 소설이라면 당연한 것이다.


첫날 밤 어느 수학여행과 다름없이 학생들은 몰래 가지고 온 술을 마신다. 선생은 학생의 술을 적발하지만 희종은 돈으로 이장을 유혹한다. 고민환 선생은 이장이 술을 팔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엄청난 가격을 말하는 희종에게 넘어가려고 한다. 이때 청년회장이 나타나 이 거래에 끼어든다. 이장의 술을 자신이 사고, 자신이 이 술을 희종 무리에게 판 것으로 만들어 죄의식을 살짝 덜어준 것이다. 정상가격의 열 배가 넘는 돈을 주면서 안주까지 부탁한다. 술과 안주를 제공하면서 좋은 경치를 보여주는 술자리로 등대까지 추천한다. 이 정도면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어른이다. 희종 패거리가 어른을 깔보는 것도 이런 어른들 영향이 있다.


첫날 밤 시체를 발견한 인물은 영재다.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산책을 나갔다가 등대에 비친 시체 윤곽을 보고 선생에게 말한다. 처음에는 고민환 선생에게 말하려고 했지만 그는 술에 취해 잠들어 있다. 결국 이지현 선생을 깨운다. 등대에 가기 전 청년회장도 깨워 같이 간다.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목을 메단 이장의 시체다. 자살처럼 보인다. 하지만 관찰력이 뛰어난 영재는 자신이 처음 발견한 당시 쓴 글을 돌아보면서 타살 가능성을 제기한다. 자살이 아니라면 누가 왜 죽였을까? 그리고 둘째 밤에 범인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의심한 이씨가 범인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는 다음 날 아침 학교 식당에 자살한 것처럼 꾸며진 채 발견된다. 독자에게 작가는 타살임을 분명하게 알려줬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 영재만 사건 현장을 돌아보고 의심을 품고 과학적 사실을 알아챈다. 이 사실을 민선과 이지현 선생과 공유한다.


마지막 밤이 되었다. 이번에 그 대상은 누굴까? 둘째 날 아침 명신이 복통을 앓아 누었는데 희종 패거리는 또 술을 마실 생각을 한다. 술은 이장집에 담근 술이 있다. 아이들은 담근 술을 들고 다시 등대로 간다. 술을 마신다. 그런데 평소보다 빨리 취한다. 이상하다. 이때부터 이 소설에서 정말 죽이고 싶은 인물이 누군지 알려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준다. 청소년 범죄의 한 모습이 드러난다. 참혹하고 잔인하다. 무서운 것은 이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이 이 일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아플 때 보여준 행동과 대비된다. 이 살인 계획의 트릭 등은 그렇게 낯설지 않다. 하지만 진짜 반전은 마지막에 나온다. 2014년 연말에 좋은땅이란 곳에서 나온 <십자도 시나리오>란 소설이 있는데 같은 소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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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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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의 신작 시집이다. 책장에 다른 시집을 여러 권 쌓아 두고 있는데 이 시집에 먼저 손길이 갔다. 다른 시인들의 시들이 상당히 어렵게 읽히는 것에 반해 나태주 시인의 시는 상당히 쉽고 잘 읽힌다. 이번 시집도 다른 시인의 시집보다 두툼하지만 훨씬 쉽게 읽혔다. 함축적이고 에둘러 표현하는 시어보다 일상을 포착해 간결하게 표현하는 시들이 대부분이다. 일상에서 걷어 올린 시어들은 한 편의 간단한 산문처럼 읽을 수 있다. 이번 시집은 특히 긴 호흡의 시들이 적다. 그러니 나처럼 시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잘 읽힐 수밖에 없다.


모두 4부로 나누었다. 어떤 기준으로 이렇게 나누었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코로나 19를 경험하면서 느낀 점들이 이 시집에 나오는데 공감할 부분이 많다. “마스크 쓰고 / 눈과 눈썹과 / 이마만 남겼으니 / 다 예쁘다 / 그냥 예쁘다.”(<코로나 시대> 전문)이나 “코로나 이후 / 거리에서 만나는 여인들은 / 눈썹 미인 / 이마 미인”(<눈썹 미인> 부분)을 읽을 때면 나의 경험들이 떠올랐다. 마스크 하나로 얼굴의 느낌이 너무 달라진 사람들 때문이다. 이런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는 장면보다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눈으로만 웃어요 / 눈썹으로 말해요”(<눈썹 미인> 부분)를 읽을 때다. 이전 다른 방식으로 상대방을 인식하는 우리의 능력이 시인의 관찰 속에 시로 태어났다.


<다시 이십대>란 시에서 “창밖에 달빛 / 너인가 싶어 / 혼자서는 쉽게 / 잠들지 못하던 / 그런 시절이 / 나에게도 / 있었더란다.”(전문)를 읽고 머릿속에서 내 청춘의 한 쪽이 펼쳐졌다. 이것은 다시 “그 아이가 문득 / 보고 싶었다.”(<문득> 부분)을 읽으면서 보고 싶은 친구가 떠올랐다. 이전 저런 이유로 잘 만나지 못하고, 이미 늙었을 그 친구가. ‘사랑에게’란 연작시에서 “그래 사랑이란 본래 / 끝없이 서툴고 / 끝없이 설레고 / 끝없이 가난한 마음이란다”(<사랑에게 5> 부분)라고 말했을 때 다시 서툴고 순진하기만 했던 이십대의 내가 생각났다. 그 당시 얼마나 설레고 서툴고 감정적이었던가.


속가에서 차창룡 시인으로 불렸던 동명 스님과 주고받은 시들도 재밌다. 두 시인의 마음이 그들의 시에서 잘 느껴진다. <비원>이란 시의 전문 “돌아가고 싶다 // 꿈은 오직 / 하나 // 집으로, 당신 곁으로”을 읽으면서 다른 곳에서 본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꼭지 없는 차>에서 시인의 딸이 한 말이 역시 나의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순간 뭉클했다. 교보생명 로고의 의미를 <괜한 일>에서 알려줄 때 생각도 못한 것이라 놀랐다. 사람들의 상상력을 막았다고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괜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설명을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돌아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빵점 엄마> 이야기는 육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메리 포핀스>란 시를 읽으면서 같은 이름의 영화가 먼저 떠올랐는데 천천히 읽다 보니 괜히 그곳이 가고 싶어졌다. <사람의 별>에서 BTS를 찬양하는 시가 나오는데 괜히 눈꼴사납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낯선 단어가 나와 사전을 검색했다. 그 중에서 목차를 읽으면서 ‘에움길’을 발견했다. “빙 둘러서 가는 길. 우회로”을 의미한다. <사월 이일>에서 이상 기온으로 벚꽃이 빨리 핀 것을 안타까워하고, 자전거 타고 가는 그에게 “안녕하세요? 말하고 꾸벅 절한 소녀를 천사로 비유한 부분을 보고 역시 놀랐다. 얼마나 주변 사람에게 인사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 아이의 인사를 만날 강조하는 아내가 잠시 떠올랐다. 이 시집에는 수많은 시인을 기리는 시들이 나온다. 개인 취향에는 맞지 않지만 역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다른 시인의 시집으로 넘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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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된 아이 마음을 꿈꾸다 6
전건우 외 지음 / 꿈꾸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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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소설 작가 4명이 모였다. 이 4명 중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대부분 장편으로 만났다. 차무진의 경우 단편만 읽었다. 언젠가 집에 있는 장편을 읽고 싶은데 늘 그렇듯이 장담할 수 없다. 이번 단편집은 유튜브로 세상을 보고 읽는 청소년에 대한 앤솔로지다. 언제부터인가 검색을 인터넷 포털이 아닌 유튜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유튜브 동영상에 금방 빠져든다. 유튜브의 콘텐츠가 풍부해지면서 검색하고 유입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인터넷 초창기처럼 당연히 수많은 문제점들이 생긴다. 영상의 내용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유튜버들은 코인을 위해서라면 아슬아슬하게 불법의 경계선까지 나아간다. 가끔은 그 경계선을 넘어간다.


전건우의 <공생>은 유튜브의 생리를 가장 잘 파고든 작품이다. 모종의 기관 직원들이 회의실에 모여 국민 영웅 현우의 유튜브를 시청한다. 일상 브이로그로 국민 영웅이 된 후 전업 유튜버가 된 현우의 영상을 따라가면서 바뀐 초심과 코인 벌이에 대해 보여준다. 처음 그가 한 행동은 우연과 선한 마음 때문이지만 전업이 되는 순간 나온 몇 편의 영상은 의심의 눈길로 볼 수밖에 없다. 많은 시청자가 유입되면서 그의 팬덤이 생기고, 이에 반발하는 사람도 생긴다. 그러다 잠시 고개를 돌려 이 영상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굴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밝혀지는 몇 가지 사실은 제목 그대로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과거 있었던 사기극들이 떠올랐다.


정해연의 <참교육의 날>은 과거 파워 블로거의 유튜브 버전처럼 다가온다. 중학생 세환은 유튜브 알고리즘 추천으로 유튜버 ‘참교육’을 보고 팬이 된다. 후원금을 보낼 정도로 열성적이다. 참교육이 유뷰트에서 보여주는 행동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어느 날 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당이 참교육의 채널에 음식 재사용하는 식당으로 나왔다. 평소 부모님의 삶을 옆에서 본 그에게 믿기 어려운 일이다. 참교육 채널에 자신의 사연을 올리지만 금방 잘린다. 식당은 손님이 거의 오지 않고 폐업 위기에 처한다. 과거 방송 조작을 통해 망했던 업체들이 떠오른다. 세환은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한다. 결국 진실을 알게 되지만 현실은 결코 해피엔딩이 아니다.


정명섭의 <하얀 돌고래 게임>은 청소년을 자살로 몰고 가는 게임에 대한 이야기다. 상태의 친구 한우는 학교 건물에서 떨어져 죽었다. 자살이다. 학교나 집에 문제가 있었다면 이 자살이 이해가 될 텐데 상태가 아는 바에 의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친구 마리와 함께 한우의 집에 간다. 그곳에서 하얀 돌고래라는 게임을 발견한다. 미션을 수행하면 레벨이 올라가는 게임이다. 상태는 정 준혁 아저씨의 도움을 받는다. 이 앱의 정체는 자살을 몰고 간 게임의 아류작이다. 이 앱을 깔고 레벨을 올린 아이들은 그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다. 참혹하다. 편리하고 정보가 많은 틈 사이로 짙은 어둠이 자리 잡고 있다. 장편으로 만들어 긴장감을 더 고조시켜도 좋을 것 같다.


차무진의 <꼬르모의 방>은 ASMR 방송을 다룬다. 이 소설을 읽기 전 ASMR이 의학적으로 증명된 사실로 알았다. 아니다. 민주는 유튜버 ‘꼬르모’가 만든 ASMR에 중독되어 있다. 이 사실을 안 엄마가 민주의 휴대폰에서 앱을 지운다. 노특북으로 보는데 헤드폰을 뺏긴다. 불면증에 빠진 민주는 꼬르모의 ASMR을 듣고 잠에 빠진다. 읽다 보면 꼬르모의 정체는 금방 알게 된다. 판타지 설정을 넣었는데 가볍게 녹아든다. 그리고 진자 이야기가 마지막에 펼쳐진다. 왜 엄마가 민주의 유튜브 감상을 막았는지, 민주에게 어떤 일이 있는지 등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대목이 있지만 가독성은 아주 좋다. 꼬르모가 무슨 의미인지는 발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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