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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리처드 파워스 지음, 이수현 옮김, 해도연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평점 :
처음 만난 작가다. 하지만 이 작가의 다른 소설은 늘 나의 위시리스트에 올라 있다. 2019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오버스토리>다. 워낙 두툼한 분량이라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혹시 다른 책이라도 읽은 적이 있는지 확인해 봤지만 본 책이 없다. <갈라테아 2.2>란 책만 보인다. 낯설다. 2021년 부커상과 전미도서상 동시 노미네이트되었다는 소식이 있지만 수상은 못했다. 한국 작가들이 부커상 인터내셔널 후보에 이름을 올리면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아직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뭐 이미 가지고 있는 책이라고 그런 것도 있지만 말이다. 이런 문학상 수상 소식은 예전처럼 나의 관심을 그렇게 강하게 끌지 않는다. 다른 문학상에 더 눈길이 가기 때문이다.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 소설의 번역 제목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이다. 벌들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하는 소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읽지 않았다. 원래 제목은 다른 것<bewilderment>인데 바뀌었다. 더 강한 인상을 남긴다. 사전을 보면 어리둥절, 혼란, 당혹 등의 뜻이 보인다. 이 감정을 소설을 읽으면서 자주 느꼈다. 우주생물학자 시오의 아들 로빈이 앓고 있는 병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시오가 아들의 치료를 거부하는 그 감정의 기저에 깔린 것은 무엇인지 등이다. 로빈과 함께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도 낯설다. 외계 행성을 자신들이 들여다보는 듯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 상상력의 대화가 내 우주와 관련해서 이해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화자는 시오다. 그의 아들 로빈은 분명하게 장애가 있다. 의사에 따라 병명이 달라진다. 과학자인 아버지는 아이가 약을 먹고 멍해지길 바라지 않는다. 학교의 생각은 다르다. 약을 먹기를 바란다. 쉽게 충돌을 예상할 수 있다. 실제 학교에서 사건이 하나 일어난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서로 입을 다물어 정확한 답을 말하지 않지만 맞은 아이의 부모가 말해줘 사실의 일부를 알게 된다. 로빈의 엄마 얼리사는 지구상의 모든 존재를 사랑한 동물권 활동가였다. 차 사고로 죽었다. 그 장면을 본 사람이 없다. 추측만 가능하다. 얼리사의 죽음은 아빠와 아들에게 큰 슬픔이자 부담이다. 이 소설 속에 얼리사의 기억과 활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들과 자연으로 나아가 보고, 만지고, 느낀다. 이 여행에도 얼리사의 기억은 따라온다. 아홉 살이지만 로빈은 채식주의자다. 추수감사절에 일어난 사건 하나는 이 아이가 겪는 혼란과 슬픔을 그대로 보여준다. 짧게 묘사된 조손 사이의 화해 장면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이 아이의 장애가 개선되는 상황이 생긴다. 실험 단계에 있는 ‘디코디드 뉴로피드백’ 치료를 받은 다음이다. 이 치료는 얼리사와 시오가 이전에 다른 방식으로 실험에 참여한 적이 있다. 로빈은 얼리사의 감정 지문을 자신의 뇌 속에 조금씩 받아들인다. 아이의 사고나 행동이 많이 좋아진다. 하지만 얼리사의 기억들이 아이의 말과 행동에 조금씩 묻어나온다. 이 부분은 대니얼 키스의 <앨저넌에게 꽃을>이란 SF소설을 떠올린다. 실제 작가는 초반에 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앨저넌에게 꽃을> 읽은 것이 너무 오래되어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재미있게 읽은 것만 기억난다. 이후 이 소설은 새롭게 번역되어 많이 나왔고, 영화나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이렇게 다른 소설 속에서 이 책을 만나면 다시 읽고 싶다. 디코디드 뉴로피드백 치료로 증상이 개선되는 장면과 이 소설이 겹쳐진다. 역자 후기에도 이 부분이 나온다. 증상이 개선된 아이를 논문에 올리고, 더 많은 연구비와 특허를 받고 싶어 한다. 시오는 아이의 의사를 묻어 익명으로 영상을 올린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익명은 곧바로 실명으로 이어진다. 아빠에게는 이 문제는 혼란스럽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다. 아이는 자신의 유명세가 자신이 주장하는 생명체의 생존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소설 속에서 펼쳐지는 정치적 사회적 모습은 가장 먼저 트럼프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기후 위기가 불러온 재앙이 나오고, 광우병 바이러스가 소들을 쓰러트린다. 밀을 재배하는 지역을 초토화시키는 바이러스가 나온다. 집권 세력은 이런 사실들은 뒤로 숨긴다. 시오 등의 우주과학자들이 바라는 우주망원경 개발과 건설에 대한 논의도 쉽지 않다. 인종 혐오와 음모론이 판 친다. 개인의 삶과 별로 상관없는 듯한 정치권의 변화가 어떻게 이 가족에게 스며드는지 작가는 잘 보여준다. 아이가 광우병에 걸린 소가 쓰러지는 장면에 발버둥칠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앞을 보면 분명해진다. 가상의 미래를 다룬 듯해서 어떤 대목은 SF소설 같다. 예상한 것보다 가독성은 조금 부족하지만 묵직하고, 다층적이고, 현실적이며 사실적인 이야기가 머릿속을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