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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 - 제1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고요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2년 5월
평점 :
제1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 한때 가장 즐겨 읽었던 문학상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좋아하는 문학상들이 조금씩 바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문학상 수상작에 눈길이 간다. 문학상 수상과 함께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장례식장 아르바이트가 끝난 후 진짜 우리의 밤이 시작된다는 소개글이었다. 20대 남녀의 방황과 성장, 죽음의 의미를 깊고도 무겁지 않게 그린 작품이란 소개는 눈길을 확 끈다.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왠지 모르게 긴 시간 집중을 하지 못했다. 어렵고 난해한 문장이 있거나 지루한 이야기가 아닌데 말이다. 체력 저하로 집중력이 떨어졌던 것도 아니다. 단순히 취향 탓을 하기엔 궁금한 점도 많았고, 잘 읽혔다. 왜 그랬을까?
이 소설 속 두 남녀 재호와 마리는 모두 정규직을 바란다. 두 사람의 대화 속에 수많은 아르바이트 이력이 나온다. 공채도 넣어보고, 공무원 시험도 보지만 그들의 형편상 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고 경쟁도 치열하다. 이 두 남녀가 장례식장 알바를 끝내고 24시간 영업하는 맥도날드에 간다. 이 밤의 풍경은 결코 낯설게만 보이지 않는다. 장례식장은 서대문 근처인데 마리의 집은 동인천이다. 택시 타고 가면 알바비의 반 이상이 날아간다. 첫 전철을 타고 가는데 이때 맥도날드는 좋은 휴식 공간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재호가 마리 곁에 있어 준다. 그리고 밤의 도시를 거닌다. 이 밤의 풍경은 내가 술을 마시고 차를 기다리던 그 풍경과 다르다.
이들이 밤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지역은 대부분 광화문과 종로 일대다. 나중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공간을 확장하지만 마리의 집에 가는 전철이 1호선이다 보니 그곳에서 계속 돌아다닌다. 그리고 재호의 집은 서대문에 있다. 그의 기억과 추억이 강하게 묻어 있는 곳이다. 밤의 도시를 돌다 재호는 마리가 잠든 줄 알고 자신이 누나를 목 졸라 죽였다고 고백한다. 위험한 목 조르기 게임을 하다가 죽였다고. 자신이 목 졸릴 때 느낀 희열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날 이후 그는 흰 뱀을 본다. 장례식장 나무에서도, 집의 나무에서도, 환상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살인에 대해 의문이 생기지만 나중에 풀린다. 딸의 죽음은 부부를 헤어지게 한다.
재호의 아버지는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란 모임을 만들었다. 줄여서 ‘아죽사’라고 부른다. 은행 지점장을 은퇴한 후 이 모임을 이끌면서 사람들의 죽음을 돕는다. 상조회사 천국상조의 팀장이 아버지를 좋아한다. 재호가 밤 거리를 돌아다닐 때 이 상조회사의 옷을 입고 다닌다. 이혼한 부부이고, 엄마가 재혼해서 다른 아이를 낳았지만 옛날 집에 가끔 온다. 전처와의 관계 때문에 팀장과의 관계가 나아가지 못한다. 묘한 상황이 벌어진다. 재호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일본인 히로시는 고베 대지진으로 부모를 잃고 한국에 머물고 있다. 아죽사 멤버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과거의 죽음이 이야기 속에 진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밤의 도시는 낯과 다르다. 이 소설의 많은 부분이 밤의 도시를 묘사한다. 한때 내가 즐겨 다녔던 공간들이 나와 반가웠다. 물론 낯선 곳도 있다. 재호와 마리의 가족 풍경은 흔히 말하는 보통 가족의 모습이 아니다. 재호는 이혼한 엄마가 재혼 후 낳은 아들과 함께 오고, 마리의 아버지는 도박 중독이라 딸에게 돈을 강탈해간다. 마리가 이런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대단하다. 이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꿈꾸지만 취업난으로 이것도 쉽지 않다. 취업난이란 단어를 볼 때와 구인난이란 단어를 볼 때면 늘 이 어울리지 않는 비대칭에 의문이 생긴다. 단순히 고강도, 저임금 문제만 있다면 금방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도 아니다. 더 자세히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밤의 풍경 속에 환상적인 장면도 나오고, 낯의 결심을 다룬 장면도 나온다. 과거의 흔적을 따라가 예상하지 못한 만남과 사연을 듣는다. 여기도 죽음이 관련되어 있다. 재호의 발걸음을 따라가면 도시의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살면서 발로 걷고 눈으로 봐야 알 수 있는 변화다. 알바 동료인 두 사람이 연인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이다. 지진이 주는 공포가 잊고 있던 감정을 떠올려주었다. 히로시의 부모님이 고베 대지진으로 죽은 것과 대비된다. 소설은 많은 공백을 가지고 있다. 자세한 설명이나 상황은 생략되어 있다. 가끔 현실과 환상을 뒤섞는다. 정규직에 대한 열망과 희망을 가지고 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의 앞날에 좋은 결과가 오길 바란다. 괜히 밤의 종로가 그립다. 너무 변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