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대여점 - 무엇이든 빌려드립니다
이시카와 히로치카 지음, 양지윤 옮김 / 마시멜로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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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의 영향인지 모르지만 일본에서 ‘변신술을 펼치는 동물’하면 너구리가 먼저 떠오른다. 한국에서 여우가 둔갑술을 사용해 사람들을 현혹하는 이야기가 있지만. 처음 소설 속에서 외모 대여를 여우가 한다고 했을 때 든 생각들이다. 재밌는 것은 이 여우들의 변신이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여우들을 부릴 수 있는 능력자를 여우술사라고 부른다. 이 능력은 피를 통해 전해지고, 오직 남자만이 여우술사가 될 수 있다. 이런 정보들은 소설이 진행되면서 하나씩 흘러나온다. 읽으면서 든 개인적 생각은 외모를 대여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인가가 생략된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어쩌면 나의 이해력이 딸리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가게- 이름은 ‘무엇이든 대여점 변신 가면’이다. 상당히 많은 물품을 대여해준다. 그 중 하나가 의뢰자가 원하는 외모도 있다. 외모를 빌려준다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가면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에서는 변신술을 사용하는 여우와 혼을 바꿔 자신이 원하는 외모를 가진다. 기한은 하루, 혼자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일정한 거리에 변신 여우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 외모를 가지고 범죄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대여금액은 정확하게 적지 않았지만 청소년들이 용돈을 모으면 이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아주 적은 것은 아닌 듯하다. 예약제이고, 예약할 때 자신이 원하는 외모를 적어 놓아야 한다. 그러면 점장은 그에 맞는 여우를 선택한다.


이 가게는 대학1년생 점장 아즈마 안지와 네 마리의 변신 여우가 운영한다. 구레하와 사와카는 나이를 알 수 없이 오래된 여우고, 쌍둥이 여우 호노카와 마토이는 상대적으로 어린 여우다. 어린 여우들은 요력이 불안정해서 오랫동안 사람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나이 대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도 힘들다. 실제 이들이 변신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인간 세상에 대한 이해도 아직 부족하다. 가끔 오랫동안 사람의 모습을 한 채로 있으면 자신들도 모르게 여우로 변한다. 하지만 다른 변신 여우들처럼 아주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다. 아름답고, 귀엽고, 멋지고, 뛰어난 외모를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이 변신 여우들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해 그들의 욕구를 충족해준다. 그리고 그 일들은 자주 나의 예상을 벗어난다. 너무 자극적인 이야기에 중독된 것 같다.


다양한 연령대의 계약자가 나온다. 가장 어린 11세부터 54세까지, 성별도 남자 넷, 여자 여섯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들이 우연히 발견한 사이트를 통해 외모 대여를 신청하는데 가장 먼저 한 생각은 가면이나 분장으로 자신들이 바라는 외모를 바꿔 줄 것이란 예상이다. 그런데 그 변신이 너무 간단하고, 완벽하다. 변신 여우와 등을 맞대고 선 채 점장이 주문을 외우면 끝이다. 그리고 대여자와 여우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행동한다. 외모를 빌리는 사람의 사연도 모두 제각각이다. 일상에서 누구나 한 번쯤 생각했을 것들이 나오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가는 도중에 변신 여우와의 대화를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있다. 섬세하게 읽을 부분이 상당히 있다.


외모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발언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외모를 무시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다. 이 소설 속 등장하는 대여자들 중 너무나도 못생겨서 외모를 빌리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외모에 불만인 학생조차 상당히 예쁜 얼굴이다. 어떤 남자는 많이 비쩍 마른 학생의 몸을 원한다. 여러 번 각각 다른 외모를 빌리는 여성도 있다. 이들의 목적은 제각각이다. 이 소설의 재미는 바로 아 부분에 있다. 각자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사연 말이다. 그리고 이 소설 속 세계와 안지 등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왠지 모르게 이 소설 연작으로 계속 나올 것 같다. 설정과 등장인물이 매력적이라 그냥 한 편으로 끝내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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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볼루션 - 어둠 속의 포식자
맥스 브룩스 지음, 조은아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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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풋 스릴러다. 빅풋의 정의는 위키백과에 의하면 미국, 캐나다의 록키 산맥 일대에서 목격된다는 미확인 동물이다. 사스콰치는 캐나다 서해안 지역 인디언 부족의 언어로 ‘털이 많은 거인’이라고 한다. 현대에 이런 괴인들은 그렇게 큰 공포가 아니지만 갇힌 공간과 총과 같은 무기가 없을 경우 아주 큰 위협이 된다. 작가는 생태주의 마을 그린루프와 레이니어 화산 폭발이란 설정을 통해 갇힌 공간을 만들고, 인간의 자연 동물에 대한 맹신을 비틀어 공포를 자아냈다. 무기로 무장하지 않은 인간들이 얼마나 상위 포식자에게 허약한지, 오랜 세월 다른 종을 멸종시킨 기억에 의한 착각 등을 뒤섞어 아주 참혹한 광경을 만든다.


구성은 간결하다. 그린루프를 처음 들어온 케이트의 일기를 시간순으로 나열하고, 그 사이사이를 전문가의 인터뷰 등을 덧붙여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이 간결한 구성 때문에 처음에는 솔직히 조금 지루하고 더디게 이야기가 다가왔다. 최첨단 고급 친환경 공동체인 그린루프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하나씩 보여주기 때문이다. 레이니어 화산이 폭발한 후 그들이 자랑하던 최첨단 시설들은 하나씩 무너진다. 인터넷이 끊어진 환경 속에서 정보는 차단되고, 클라우드를 통한 서비스도 중단된다. 현대인들이 얼마나 편리한 시설에 중독된 채 살아가는지 잘 보여준다. 자신들이 고립되었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릴 수도 없다.


친환경 상황에서 태양열 전지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고, 이것을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개별적으로 둔 것은 현대인의 능력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고립된 채 살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3D 프린트로 유리 공예를 하는 모스타르는 이런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반응을 한다. 각 집에 보관하고 있는 식량의 리스트를 작성하라고 말한다. 하루 칼로리를 제한해서 최대한 오랜 시간 생존할 수 있게 할 목적이다. 너무나도 풍족한 환경에서 살아온 미국인들에게는 낯선 모습이다. 그들이 칼로리를 계산하는 이유는 다이어트가 목적이었다. 그리고 차고를 식량 생산을 위한 밭으로 꾸민다. 물론 이들은 농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전혀 없다. 책도 없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그들은 각자의 집만 신경 쓴다. 연대하는 모습은 없다. 케이트의 남편 댄이 태양열 패널의 먼지를 청소하자 그의 노동력 대신 자신들의 식량을 겨우 내놓는다. 그러다 케이트가 밤에 큰 바위 같은 생명체를 발견한다. 모스타르는 덫을 놓아 토끼를 잡아 식량으로 삼는다. 이 모습이 케이트에게는 너무 낯설다. 낯선 환경은 계속 이어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생명체가 보이고, 한때 주변을 맴돌던 크고 작은 동물들이 사라진다. 사스콰치의 존재가 처음으로 잡혔을 때 이 마을 주민들의 대화는 아주 이상적으로 흘러간다. 동물이 자신들을 먼저 공격할 리 없다는 환상을 주장한다. 미지의 그 거대한 존재도 마찬가지다. 빅풋이 타악기를 두드릴 때 인간의 인식으로 그와 똑 같은 박자를 연주한다. 그들과 소통했다는 확신을 가진다. 문화와 환경의 차이를 감안하지 않은 인간의 오만이다.


일기 중간중간 삽입된 전문가의 인터뷰 장면 등은 일기 속 상황에 대한 해석이기도 하다. 자연에 대한 잘못된 맹신과 인간의 오만한 판단이 상황을 최악으로 몰아간다. 유일하게 생존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모스타르의 행동을 그냥 바라만 본다. 케이트 부부만 모스타르를 도와줄 뿐이다. 대나무를 깎아 식칼 등을 꽂은 창을 만들고, 함정을 판다. 최소한 할 수 있는 무장을 한다. 인간들의 평화주의가 상대방에겐 호구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은 망각한다. 퓨마가 어린 아이를 공격하려고 할 때 다른 주민들이 보여준 반응은 너무나도 낙관적이다.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해야 하는지 아직 그들은 모른다. 빅풋이 공격했을 때조차도 그들은 무력하기만 했다.


앞부분이 조금 더딘 전개였다면 빅풋과 대결하는 후반부는 정신없이 달린다. 잔혹한 폭력과 생존을 위한 대결은 처참하다. 평화와 공존을 바라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현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읽는 내내 미국인데 총 한 자루 없다는 사실에 놀란다. 체격과 힘을 차이가 나는데 이것을 극복할 방법은 인간의 지식을 이용해 무기를 만드는 것이다. 원시 시대 인류가 다른 포식동물들 속에서 살아남은 것처럼. 소설 제목인 데볼루션은 권력 이양이란 의미가 있는데 인류의 공격에 의해 깊은 산속으로 숨은 빅풋이 갇힌 사람들을 보고 다시 포식자로 변한다. 다른 유인원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알려주는 간단한 정보는 이 마을 사람들이 잘못된 지식을 바로 잡아준다.


단순히 빅풋과의 대결만 다루는 소설이 아니다. 곳곳에 삽입된 전문가의 인터뷰와 정보 등은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행동을 하는지 보여준다. 평화주의자의 말이 가진 매력에 그냥 넘어갈 때 상대방의 폭력은 더 거세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낙관주의가 불러온 최악의 상황 중 하나가 히틀러를 탄생시켰다.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에 대한 평가는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포식자의 공격에 반격을 가하는 인간들의 곁에는 인류의 기술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도구들이 있다. 이 도구로, 기술로, 전술로 반격을 가하지만 훈련받지 않은 사람들의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인류가 어떻게 지구상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는지 보여준다. 작가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분명하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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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의 섬 아르테 미스터리 8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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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소설 <보기왕이 온다>로 유명한 작가의 본격 미스터리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서늘함과 높은 가독성을 좋아한다. 지금까지 세 편을 읽었는데 현재까지 모두 좋았다. 이번 소설의 경우 표지가 너무 올드한 느낌이 있는데 옛날 일본 그림 느낌이 강하게 난다. 그리고 역자가 말한 것처럼 이 소설을 영상화하는 것이 상당히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어떤 기발한 발상을 가진 감독이 나와서 영상화하는데 성공한다면 정말 대단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영상화하기 힘든 소설로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꼽는다. 소설만으로 느낄 수 있는 반전과 충격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초능력이나 초자연적인 것을 방송에서 열심히 방영한 적이 있다. 최면을 이용해 전생을 본다거나 영적인 장소를 찾아간다거나 하는 방송 등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방송을 나오면 채널을 돌렸지만 상당히 오랫동안 나왔다. 이 소설의 첫 도입부는 그런 방송 시대의 한 풍경을 다룬다. 당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우쓰기 유코가 한 섬에서 촬영을 하는 중이다. 이 장면을 보는 한 소년이 있고, 그의 눈에는 방송 스탭이 웃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우쓰기 유코가 이 섬에 원령이 있다고 말한다. 산을 올라가자고 하면서 끝난다. 20년 전에 우쓰기 유코가 마지막으로 활약한 곳이다. 이 방송은 제대로 방영되지 않았다.


소사쿠는 직장내 상사의 가스라이팅과 괴롭힘으로 자살하려고 했다. 아버지가 자살하려는 그를 발견해 집으로 데리고 왔다. 어떤 영적인 것이 작용했다고 말한다. 낯가림이 심한 편인 소사쿠에게 친구는 많지 않다. 그 중 한 명이 아마미야 준이다. 이들과 함께 노는 친구로 미사키 하루오가 있다. 준과 하루오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의기소침해진 소사쿠를 불러내 말을 나눈다. 그러다 여행을 가기로 한다. 여행지는 어린 시절 그들이 열광했던 우쓰기 유코의 마지막 예언이 일어날 무쿠이 섬이다. 자신이 죽은 20년 후 저 너머의 섬에서 참극이 일어나고, 6명이 죽는다는 예언이다. 이들에게는 이 예언은 단순히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재밌는 추억 여행일 뿐이었다. 소사쿠의 상처 입는 마음을 달래는 목적도 같이.


직항 노선이 없는 작은 섬이다. 한 번 배를 놓치면 다음 날 가야 한다. 그러면 예언한 날을 놓친다. 이 섬에무쿠이 섬으로 가는 배에 뒤늦게 타는 통통한 여성이 있다. 준이 관심이 보인다. 섬에 가면 저주를 받아 위험하다고 말하는 인물도 있다. 섬에 도착한 후 예약한 숙소는 원령이 내려온다고 거절하고, 힘들게 다른 숙소에 간다. 이 숙소 주인은 외지인이다. 이 집 곳곳에 숯으로 만든 이상한 깜장 벌레 갯지렁이 모양의 조각이 있다. 원령을 막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숙소의 저녁 풍경은 조금 평범하다. 우쓰기 유코의 예언을 믿고, 그것을 확인하러 온 자칭 영능력자도 있다. 준에게는 강력한 수호령이 있어 무사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섬은 고립된다. 예언의 하나가 이루어진다.


중간에 잠을 깬 준은 하루오가 없는 것을 발견한다. 숙소 밖으로 나가는데 죽은 채 물위에 떠있는 그를 발견한다. 첫 번째 죽음이다. 섬의 경찰은 추락해서 익사한 것처럼 말하고, 시체에 누구도 손을 데지 말라고 한다. 이때 가장 늦게 배에 탄 여성이 자신은 간호사라고 말하면서 고무장갑을 끼고 시체를 짧게 검시한다. 뒤통수에 난 상처를 발견한다. 누군가가 때려 죽인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 정체를 밝힌다. 우쓰기 유코의 손녀 가즈미다. 그녀는 할머니의 영능력이 거짓이라고 말한다. 할머니의 예언들이 누군가에 의해서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과 연결되어 예언의 실현이라고 추앙하는 일까지 생긴다. 우스기의 숭배자 중 한 사람이 자칭 능력자인 레이코다. 그녀는 배에 타려는 사람들을 막은 적이 있다.


타살이란 사실이 밝혀지자 소사쿠는 분노해서 달려나가고, 새로운 죽음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이 과정에 가즈미는 원령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한다. 20년 전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그 사이에 섬에 새롭게 생긴 변화를 안다. 실제 소설 중반에 이 원령의 정체가 드러난다. 하지만 원령보다 더 무서운 것이 존재한다. 이 섬의 참극을 불러온 저주의 속박이다. 원령의 예언에 사로 잡힌 사람들은 어느 순간 이성을 상실한다. 역자가 말한 것처럼 언어의 힘은 소사쿠를 파괴한 것처럼 그것을 믿는 순간 정신을 좀먹는다. 우리사회에서 자주 보는 모습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이끌면서 크게 한방 먹인다.


이 소설은 요코미조 세이시의 <옥문도>에 대한 오마주라고 한다. 아주 오래 전에 읽어 정확하게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전 글을 찾아 읽어도 마찬가지다. 중반 이후 원령의 정체가 밝혀진 후 보여주는 섬 사람들의 반응은 그렇게 낯설지 않다. 작가는 이런 상황들을 앞에 조금씩 밝혀 놓았지만 가독성에 많이 놓쳤다. 세심하게 읽었다고 해도 찾아냈을 것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농촌의 문화에 대한 흥미로운 시선 변화를 지적한 부분이 나온다. 언론의 자극적인 편집에 의해 강화된 이야기 부분이다. 작가가 이 소설에서 말한 몇몇의 추리 작가들은 각 지역의 민담이나 공포 이야기를 현실의 욕망 등과 엮어서 잘 풀어낸 작가들이다. 빠르게 읽히고, 재밌고, 생각할 것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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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니아
최공의 지음 / 요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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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미래를 다룬 SF소설이다. 최근 유행하는 인공지능을 넘어 인공의식 이야기를 다룬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하는 것에 반해 인공의식은 스스로를 의심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의지다. 기존의 SF소설에서 인공지능을 가진 안드로이드 등이 인간처럼 되길 갈망하는 바를 다루었다. 인간의 감정이 중요한 핵심이었는데 이 소설 속 인공의식을 가진 엑스는 80대 노인 레인과 대화하면서 점점 인간처럼 변한다. 그 대표적인 행동이 인간의 감정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다.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학습한 감정은 말 그대로 데이터일 뿐이다. 인간의 불완전성과 불안전성이 제거된 상태다. 작가는 이 불안전성과 불완전성을 내세워 엑스에게 자유의지를 건낸다. 그리고 그 결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아이오니아란 기업이 인공지능을 탑재한 제품을 만들면서 인간들은 둘로 나뉘어진다. 이것을 반기는 쪽과 거부하는 쪽이다. 인공지능이 생활의 편리함을 정확하게 전달해주는데 이로 인해 일자리가 사라진다. 인간 30명이 할 수 있는 일을 인공지능 하나가 해치우는 현실은 거대한 실업을 불러온다. 이 인공지능을 기업에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은 인간들이다. 그 당시에는 자신들도 해고의 대상이 될 줄 몰랐다. 뒤늦은 후회와 반성은 뒤바뀐 시대에 따라가지 못한 탈락자의 감상일 뿐이다. 청소업체에 일하면서 로봇을 박살낸 레인의 친구 에피소드는 또 다른 추락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이 미래의 시대는 대규모 실업이 존재한다. 기본소득을 제공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충분한 돈이 없다면 좋지 못한 환경과 음식을 감수해야 한다. 늙은 레인이 통조림을 들고 오다 쓰러졌을 때 풍경은 생존 앞에 도덕은 너무나도 무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차지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더 효율적이고 안전하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이용한다. 그를 인터뷰한 레이철의 본신 에밀리와 바에서 나누는 대화는 엑스와의 대화와 다른 방식으로 이 사회의 한 축을 잘 보여준다. 인공지능을 뛰어넘은 존재의 탄생을 바라는 인간의 욕망이 그곳에 담겨 있다.


레인은 아이오니아 야간 경비직에 뽑히기 전 일체의 인터넷 사용을 그만두었다. 전화도, 이메일도, 전자화폐도 사용하지 않는다. 전철에서 힘들어하는 그를 보고 인공지능 로봇이 라멘집을 소개해 주었는데 그가 현금을 내는 것을 보고 가게 주인이 곤혼스러워한다. 그리고 라멘집 주인이 왜 인공지능 로봇을 라멘집에 놓아둘 수밖에 없는지 설명할 때 대중의 기호와 맞물려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뒷배경과 인터뷰의 몇 가지 대답이 그를 뽑는다. 처음 엑스와 만났을 때 인공의식 엑스가 얼마나 많은 질문을 던졌던가. 노인인 레인은 최선을 다해 그에 답해준다. 주저하는 모습도 자주 보여준다. 인간은 인공지능 같은 연산능력도 기억도 없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이 소설에는 SF소설하면 흔히 떠오르는 액션이나 화려한 볼거리는 거의 없다. 오히려 철학적 질문과 답변이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사람에 대해,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해, 인간의 느림에 대해. 수많은 질문은 엑스가 점점 인간처럼 변하는데 도움을 준다. 작가는 여기에 한 가지 변수를 넣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을 만든다. 바로 인간의 죽음이다. 인간처럼 의심하고, 판단하고, 감정의 싹을 가진 인공의식 엑스가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도 인간적이면서도 인공지능적이다.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가독성에 비해 상당히 무거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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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생각 - 유럽 17년 차 디자이너의 일상수집
박찬휘 지음 / 싱긋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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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자의 이력에 먼저 눈길이 갔다. 페라리,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등 유럽 자동차 회사에서 활동한 디자이너라는 이력은 한국에서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선택은 책소개에 나온 몇 줄의 글들을 읽은 다음이다. 간결한 문장과 자신이 생각한 바를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흥미를 끌었다. 여기에 목차는 또 어떤가. 스물두 개의 명사 각각에 달린 간단한 부제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왠지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하는 이름들이 곳곳에 보인다. 만약 뻔한 성공담을 다루었다면 나의 시선은 딱 그곳에서 멈추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일상기록은 그의 생각을 담고 있고, 나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읽다 보면 몇 가지 실수가 먼저 들어온다. 자동차의 발명을 헨리 포드라고 말한 부분이다. 현대적 공정을 발명한 인물이 포드인 것은 맞지만 자동차는 이미 그때도 있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혼자 그린 것처럼 설명한 부분도 눈에 살짝 거슬린다. 어쩌면 사소한 것들인데 아쉬운 디테일이다. 어쩌면 의도적인 생략일 수도 있지만 눈길이 그곳에 머무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이런 사소한 부분으로 그의 글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여러 부분에서 낯선 경험을 시켜주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기 때문이다. 단순히 과거에 머물면서 회상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현재 속에 녹여내면서 이야기를 상당히 맛깔스럽게 풀어낸다.


솔직히 앞의 몇 가지 에피소드는 그냥 무덤덤했다. 이미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다른 곳에서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연필’부터 나의 과거 기억과 경험들이 저자의 글들과 엮이면서 재밌어졌다. ‘종이’의 질감을 말할 때 어릴 때 그 까칠함이 생각났다. 그렇지만 저자의 아버지가 그렸다는 태극기가 더 놀라웠다, ‘카메라’ 속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옛날 앨범 속 사진들이 생각났고, 불필요하게 마구 찍은 사진들이 떠올랐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상황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커피’는 그 속에 든 이야기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인상적이다. 그의 수집품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고, 그렇게 된 사연이 따라온다. 당연히 나의 수집욕도 같이.


‘라디오’ 속 아버지의 사연은 노래를 몇 번이나 들으면서 가사를 적든 시절이 떠올랐다. 좋아하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위해 얼마나 반복해서 들었던가. 유럽의 하늘색도 파란색이란 부분에서 왠지 낯설다. 빛과 색에 대한 이야기는 쉽게 잊는 부분이다. 그의 전문 분야인 ‘자동차’ 이야기는 재밌지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사장단에게 거액을 들여 만든 이미지 체험을 하게 했더니 실물을 직접 보지 못해 화를 낸 부분이나 전기차로 인해 부자 사이의 경험이 사라진 이야기는 특히 기억에 남는다. 시대의 변화 속에 우리의 반응이 어떻게 갈리는지 알 수 있다. 저자의 아들이 구형 폰의 터치감을 이야기할 때도 잊고 있던 추억 하나가 떠올랐다.


‘시계’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장 놀란 것은 이탈리아에서 역사 시간에 시계 보는 법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한때 나의 팔목에 항상 차고 있던 시계가 이제는 귀찮아서 떼어버렸는데 이 시계가 좋다고 차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것도 아주 무거운 것을. 추억이 담긴 물건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고가의 물건이란 이유가 많다. ‘와인잔’의 단순함을 예찬할 때 단순과 simple을 비교한 부분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개인적으로 좀더 간결하고 단순한 것을 선호하는데 그 안에 담긴 수많은 반복과 노력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세탁기’의 독일 브랜드 <밀레>를 예찬했는데 솔직히 커피 머신의 밀레는 정말 별로였다. 정밀한 독일 기계 등에 대한 예찬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소설이나 다른 곳에서 본 독일과 다른 부분이 많아 살짝 고개를 갸웃거린다.


‘볼트’와 ‘비행기’ 이야기는 발상의 전환을 다룬다. 영국 디자인 대학에서 볼트를 진열해 대상을 받았다거나 집에서 서독으로 넘어가기 위해 비행기를 몇 년에 걸쳐 만들었다는 부분은 가장 기본적인 것과 대단한 의지와 열정을 담고 있다. 왼손잡이 아들을 보고 세계적인 인물들이 왼손잡이란 사실과 비교해 좋아하던 아버지와 이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면서 교정하려고 한 한국 교육의 과거 현실을 꼬집은 부분도 좋은 이야기다. 이렇게 이 책은 자신의 경험과 사물에 대한 사유가 뒤섞여 있다. 디자이너가 본 사물의 모습과 변화는 잠시 동안 나를 추억속으로 끌고 들어갔고, 잊고 있던 단순함을 떠올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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