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내내 좋아했어
와타야 리사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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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수상 이력을 가진 작가다. 왠지 모르게 와타야 리사의 소설들을 모두 가지고 있거나 읽었다. 물론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 읽은 것은 아니다. 아주 가끔 이런 작가들이 있다. 나의 수집욕과 이벤트 등이 겹쳐서 생긴 우연이다. 보통 이런 작가의 경우 출간 목록이 늘어나게 되면 놓치는 책들도 늘어난다. 한때 열심히 모으려고 한 작가들 몇몇은 너무 많이 나와 포기했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일본 작가로는 미미여사와 히가시노 게이고 등이 있다. 다른 나라 작가까지 포함하면 너무 늘어나니 여기서 멈추자. 인터넷 검색하다 낯익은 표지들이 보여 간단히 적어보았다.


와타야 리사의 소설 중에서 드물게 두툼한 책이다. <꿈을 꾸다>가 400쪽이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다른 책들은 200쪽 안쪽이거나 300쪽에 미치지 못한다. 처음에 책을 받고 두툼한 두께에 놀랐던 이유다. 솔직히 말해 퀴어 로맨스 소설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책소개를 제대로 읽지 않고 소설을 읽을 때만 해도 아이가 처음부터 좋아한 선배 소우와의 사랑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연히 여행지에서 소우의 친구와 함께 온 연예인 사이카를 만났을 때는 작은 이벤트 정도로 생각했다. 두 커플이 어린 시절 추억의 공간에서 만나 술 마시고 놀 때도 마찬가지였다. 천둥 번개를 무서워하는 사이카에 조금 놀랐지만 전혀 생소한 장면은 아니다.


행복해 보이는 두 커플, 문제라면 사이카가 이제 인기를 얻고 있는 연예인이라는 것 정도다. 사이카의 현재 연인도 그녀가 먼저 대시를 했다. 아이는 소우와 결혼을 꿈꾸고 있다. 천둥 번개 사건 이후 사이카는 아이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쌓아간다. 흔한 우정 정도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진상 고객으로 고생할 때 도와준 것도 친구이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아이가 소우와 결혼할 것이라고 하면서 사이카의 상태가 나빠진다. 연기 활동에 지장을 줄 정도다. 사이카를 찾아갔는데 그녀가 고백을 한다. “처음부터 내내 좋아했다.” 라고. 학창시절부터 좋아한 선배와 미래를 꿈꾸던 아이에게 이 말은 황당한 일이다. 한 번도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이카도 남자 친구가 있지 않은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관계. 그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관계. 이런 관계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감정은 사아카에게서 아이에게로 흘러가고 결국 뒤섞인다. 자신이 짝사랑했던 남자친구를 떠나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이카에게 간다. 작가는 여기서 동성애 성향이 아이에게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양성애자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아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이카이고, 그녀가 여자라고 말할 뿐이다. 타고난 천성에 의해 여성만을 좋아하는 동성애자와 이 둘은 다르다. 아이이기에, 사이카이기에 좋아한다.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방법도 서툴다. 낯설다. 남자에 익숙한 몸 동작은 둘 사이의 행위에 불편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느끼는 희열과 사랑은 결코 이전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한 작가의 묘사는 아주 섬세하다.


연예인과의 연애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성 간의 스캔들도 문제인데 보수적인 일본에서 동성애는 더 문제가 된다. 이제 인기를 더 얻어가는 사이카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동성이기에 사이카의 집에 아이가 들어와서 사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속사도 그렇게 생각한다. 둘 만의 행복한 보금자리에서 사랑은 더욱 커진다. 그러다 터진 스캔들. 소속사가 큰 돈으로 막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이 둘이 헤어질 것을 강요한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수 있다는 사이카와 현실을 생각하는 아이의 충돌. 미래에 대한 기대와 약속 등이 교차한다. 예상하지 못한 파국이다. 그 이유도 믿었던 사람에 의한 것이라니. 예상하지 못한 전개의 연속이다.


두 여성이 사랑한다고 하는데 사회적 제약이 많다. 연예인 활동뿐만 아니라 아이의 집안도 반대한다. 이성과 감정이 충돌한다. 이 소설에서 아이가 사이카를 사랑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일시적이고 충동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 둘의 사랑이 얼마나 단단한 지, 깊은 지는 이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우선이다. 아이와 사이카의 전 남자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관계를 인정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타의에 의해 만나지 못한 시간이 길어졌지만 둘 사이의 사랑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동성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아이가 다른 매력적인 여성에게 눈길이 간다는 표현이 나올 텐데 아니다. 남자에게 눈길을 준다. 하지만 사랑은 사이카에게로 향해 있다. “그 어떤 제약 없이 오직 두 여성의 사랑에만 몰두했습니다. 본래 사랑에는 낡음도 새로움도 없으니까요.” 라는 시마세 연애문학상 수상 소감이 가슴에 더욱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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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머 에프 그래픽 컬렉션
마이크 큐라토 지음, 조고은 옮김 / F(에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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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재밌게 읽고 있는 [에프 그래픽 컬렉션]의 신작이다. ‘람다 문학상’과 ‘골든 카이트 상’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솔직하게 말해 이 상들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른다. 그래서 검색하니 람다 문학상은 LGBT 문학상이고, 곤든 카이트 상은 어린이 책 작가 및 일러스트레이터 협회에서 수여하는 상이라고 한다. 더 자세하게 들어가면 더 많은 내용이 나오겠지만 여기서 멈추자. 람다 문학상을 받았다는 의미는 이 그래픽노블에서 게이를 다룬다는 것이다. 최근 LGBT 문학을 다룬 작품들이 대중 속으로 퍼지고 있고, 생각보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다양성과 현실적인 문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 이야기의 시간적 배경은 1995년이다. 이때는 아직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강할 때다.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는데 그 당시는 더 심했다.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을 담은 자전적 요소가 있다. 작가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그래픽노블이다. 이 이야기에서 한 소년 에이든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다룬다. 남자들만 모인 보이스카우트 캠프가 공간적 배경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 전에 참여한 캠프인데 이야기 속에 학교 폭력 등이 나온다. 에이든은 중학교 시절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와 이 캠프가 주는 즐거움에 빠져 있다. 아직 자신의 성 정체성을 잘 모르고 있다.


아이들의 장난과 농담 속에는 혐오의 표현들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있다.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아직 이 시기는 그 정도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남자 아이들이 장난치는 장면에서 게이란 표현이 나오고, 혐오의 감정이 깔려 있다. 친구끼리 장난칠 때 그냥 웃고 지나갈 수 있는 상황이 대부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불안과 두려움을 주기도 한다. 작가는 이런 순간들을 이야기 속에 잘 녹여냈다. 아이들의 저질 장난에 동조하면서 웃는 아이들과 불편한 감정으로 이 상황을 보는 에이든의 모습은 앞으로 벌어진 상황에 대한 암시와 같다. 그리고 착하고 멋진 일라이어스의 존재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에이든은 필리핀계 미국인이다. 그의 외모를 비하하는 행동이 나온다. 이 혐오 감정은 현재도 진행중이다. 친절한 일라이어스는 외로움을 덜어주고, 그에게 자꾸 시선이 가게 한다. 일리이어스 입장에서는 진한 우정을 생각했지만 어느 날 에이든의 돌발적 행동으로 혼란과 두려움에 빠진다. 이 감정은 에이든도 마찬가지다. 기존 가치관에서 동성애는 문제가 많다. 자신이 남자에게 끌린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을 혐오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과 좌절을 느낀다. 펜팔 친구 바이올렛에게 이 감정을 표현했는데 답장이 오지 않아 더 불안하다. 절친의 의미로 나눈 팔찌도 버려지면서 이 감정은 더 심해진다. 극단적인 생각을 한다. 나의 불안감도 커진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속내를 마음 놓고 터 놓은 바이올렛마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이 혼란과 두려움과 불안과 절망과 자기 혐오 속에서 가장 중요한 말을 한다. “설령 그 모두가 너를 버렸다 해도… 너는 너 자체로 충분히.”라고. 이 문장은 이 상황 이외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공포와 불안감을 끝없이 조성하는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삶에 말이다. 있는 나 자체가 아니라 남에게 보여지는 모습에 더 신경 쓰면서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이다. 작가의 말에서 “두려움과 희망은 우리의 마음속에 자신의 결함, 존엄함과 더불어 다 같이 묶여 있다.”고 말한다. 에이든에게는 이 위험한 순간 좋은 친구가 옆에 있다. 정말과 공포 속에 작은 희망의 불씨가 타오른다. 거칠고 간략한 선으로 그림을 표현하고 있지만 구성이나 곳곳의 배경이 상당히 섬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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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붕의 메타버스 이야기 - 디지털 신대륙에 사는 신인류, 그들이 만드는 신세계
최재붕 지음 / 북인어박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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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 사피엔스>를 재밌게 읽었다. 거대한 시대 변화의 한 축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기존에 알고 있던 정보들과 저자만의 이해가 곁들여지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코로나 19 이전에 읽었던 시대 변화의 연장선을 다루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최근 가장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메타버스다. 이 단어의 유래를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우 크래시>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오래 전 재밌게 읽었던 소설이다. 단순히 사전적 정의로 보면 “메타버스는 ‘가상’, ‘초월’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가상세계를 가리킨다.”이다.


이 메타버스가 세계적인 이슈로 빠르게 발전한 데는 역시 코로나 19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집밖으로 잘 나가지 못하면서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새로운 만남을 이어갔다. 하지만 세상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예상하는 것보다 빠르게 변한다.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혼용해서 사용하기도 했다. 새로운 개념과 약어가 계속 나오지만 관심을 두지 않으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의 차이도 설명을 읽고 정확하게 구분하게 되었다. NFT에 대한 이야기는 여전히 어렵다. 분명하게 과도기인데 과열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투기와 투자의 차이로 다가온다. NFT의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최초 생산자에게 이후 판매 수익의 일부가 지속적으로 돌아가는 구조도 가능하다는 부분이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디지털 세계가 메타버스다. 저자도 이 새로운 대륙에 대해 살짝 걱정을 내비치지만 현 문명이 유지되는 동안은 존재할 것이다. SF소설에 자주 나오는 종말 후 세계를 설정하고 읽다 보면 무슨 짓인가 하고 생각하지만 이 세계가 굳건하게 존재하는 동안은 바뀌고 있는 디지털 세계가 더 발전할 것이다. 이 디지털 신대륙을 두고 각국 혹은 각 기업들이 경쟁하고 있다. 새로운 식민지 전쟁이란 표현까지 사용한다. 저자는 MZ세대를 말하면서 슈퍼 사피엔스의 등장이라고 말한다. 인터넷이 아닌 스마트폰 세대의 탄생으로 바뀐 경제, 문화의 변화를 말한다. 명확하게 규정하기 힘든 실체이지만 분명하게 이 세대는 존재한다. 읽다 보면 과도하게 표현되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주변에서 이런 사람들이 한 명씩 보인다. 기존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과 다르게 살아가는 세대가 말이다.


디지털 신대륙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이 세 가지 있다. 탈중앙화, 팬덤 경제, 오리진 등이다. 탈중앙화의 상징으로 BTS와 ARMY를 말한다. 방탄소년단 초기를 기억하는 나에게 이 책 속 몇몇 부분은 강하게 와 닿는다. 한때 말 많았던 보람튜브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는 다른 아이 콘텐츠와 비교해 눈에 확 들어온다. 팬덤에 대한 기존의 정의가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문화 권력을 이해한다. K-콘텐츠 이야기에 ‘오징어 게임’이 빠질 수 없다. 그 엄청난 열풍을 기억하기 색다를 것이 없지만 ‘아기 상어’가 유튜브 100억 뷰를 넘었다는 사실은 아주 놀랍다. 영어로 ‘baby shark’로 검색하면 정말 그 숫자가 나온다. 몇 년 전 베트남 한 식당에서 이 음악을 들었던 것이 생각난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44억 뷰임을 생각하면 정말 놀랍다.


저자는 메타버스를 설명하기 위해 바뀌고 있는 시장의 흐름을 타고 몇몇 성공한 기업들을 소개한다. 개인적으로 낯선 곳도 있고, 우연히 뉴스에서 본 곳도 있다. 간결하고 단편적인 설명이라 아쉬운 점이 있지만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 장에서 ‘인간다움’을 강조한 것은 이 모든 변화의 중심이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최초나 1등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한다. 하드웨어 최고 사양의 삼성전자 갤럭시 핸드폰보다 애플의 아이폰을 더 선호하는 이유도 나온다. “신대륙은 공감의 대륙”이라고 표현한 것에 눈길이 간다. 이 부분을 보면서 현재 한국에서 점점 강해지고 혐오의 감증이나 서열주의 팽창 등을 생각하면 조금 암울하다. 하지만 저자도 말했듯이 과도기를 거치면서 스스로 자정할 것으로 생각한다.


풍부한 자료와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교적 쉽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전에도 느꼈지만 이것도 재능이다. 최근 암호화 화폐가 폭락하고 수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는데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한 주의도 말한다. 고속 인터넷이 집집마다 깔리면서 엄청난 속도로 인터넷이 우리에게 가까워졌지만 아직 우리의 갈 길은 멀다. 세계 경제대국 일본이 점진적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와 닮은 꼴들이 눈에 들어온다. 디지털 문화에서 일본을 추월했다고 자찬하기 전에 중국에 뒤떨어진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재밌고 빠르게 읽는 와중에 메타버스, 암호화 화폐, NFT 등에 대한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기존 방식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애를 어떻게 키워야 할 지 더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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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지 않아
스미노 요루 외 저자, 김현화 역자 / ㈜소미미디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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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담은 앤솔로지다. 솔직히 말해 이 마음보다 스미노 요루란 작가 때문에 선택했다. 스미노 요루의 장편 소설을 아주 재밌게 읽었기에 단편에 대한 기대도 품고 있었다. 결론 먼저 이야기한다면 장편의 재미를 이번 단편에서는 그렇게 많이 느끼지 못했다. 스미노 요루의 장편을 아주 재밌게 빠르게 읽었던 것을 생각하면 의외의 일이다. 오히려 다른 단편들에서 예상 외의 재미를 느꼈다. <네가 좋아하는/내가 미워하는 세상>과 <핑퐁 트리 스펀지>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왠지 모르지만 이 단편들에 이상하게 집중을 잘 못했다. 체력 저하로 집중력이 깨진 것일까?


가토 시게아키의 <포켓>은 가고 싶은 곳이 어디에도 없는 조스케 이야기다. 그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 안의 이별을 옆에서 본다, 안에게 그는 거짓말로 알르바이트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외국에 가기 위해서라고. 이런 거짓말과 달리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다. 이 마음이 강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나 자신도 이런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내 경우에는 귀차니즘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지만. 예상 외의 마무리를 보고 장편으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가와 센리의 <네가 좋아하는/내가 미워하는 세상>은 초반에 영 집중이 되지 않고, 상황 구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고, 그 상황이 조금씩 이해되면서 그녀가 금요일에 학교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과 실제 취향과 달리 끌려가게 된 팬 사인회의 장면들에 입감했다.


와타나베 유의 <핑퐁 트리 스펀지>도 처음엔 무슨 설정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로봇 없이 외출할 수 없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바뀌고 있는 우리의 삶이 보였다. 아시모프의 그 유명한 로봇 3원칙을 현실에서 적나라하게 까는 모습은 아주 실무적인 태도다. 로봇도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 수 있다는 설정에서, 그에 공감하는 분위기에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로봇을 파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시대의 진보를 뒤집으려는 사람들의 저항(?) 혹은 반발을 느낀다. 고지마 요타로의 <어셥쇼>는 가고 싶지 않은 마음보다 현 상황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다. 매일 아침 침대에서 떨어지고, 이 떨어진 소리를 듣고 천장을 치는 아래층 사람 이야기다. 후반부에 어셥쇼의 정체가 드러나고, 그녀가 남친의 폭력을 가끔 경험한다고 할 때 이 두 여인의 비틀린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오쿠다 미카코의 <종말의 아쿠아리움>도 낯설다. 결혼 후 집에서 잘 나가지 않는 카오의 심리를 다룬다. 사랑하는 남편과의 일상은 좋지만 아이를 바라는 주변의 기대는 이 편한 일상을 뒤흔든다. 오해와 압박이 뒤섞이고, 자신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아이 없이 둘만의 삶을 이어가는 수많은 부부들을 생각하게 한다. 가장 기대한 스미노 요루의 <컴필레이션>은 읽으면서 계속 이 상황에 대한 나만의 해석을 만들어내었다. 기억나지 않는 하루와 처음 보는 오늘의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알고 있는 설정들을 계속 떠올렸다. 매일 새롭게 세팅되는 가상 현실, 혹은 리셋 되는 판타지 설정 등이 대표적이다. 작가는 이 세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있다.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게 해주겠다고 했을 때 아니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어떤 현실이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불친절한 세계에 대한 설명이 머리를 더 복잡하게 한다.


이 앤솔로지에 나오는 수많은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은 우리가 살면서 자주 마주하는 일이다. 어떤 때는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어떤 순간은 그 마음을 숨긴 채 가야 한다. 강제된 가야만 하는 상황도 우린 자라면서, 다니면서 자주 경험했다. 대표적인 곳이 학교와 회사다. 이미 한 약속 때문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억누르고 나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의 마음도 역시 많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집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은 얼마나 많은가! 싫은 사람과 앉아 있으면서 가고 싶어한 경우도 많다. 혹시 가고 싶다라는 마음을 담은 앤솔로지도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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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여행자의 주제 넘는 여행기
이지상 지음 / 의미와재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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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이지상 여행가의 책을 읽었다. 그의 첫 글을 언제 읽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글은 타이완 여행기를 다룬 에세이다. 여행에세이를 거의 읽지 않던 시절이라 상당히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기억의 부정확을 조금이나마 바로잡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니 2007년에 처음 만난 것 같다. <낯선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다면>이란 산문집이다. 아마 이 책의 영향으로 다른 책들을 읽은 것 같은데 이때만 해도 여행 에세이는 1년에 한 권도 잘 읽지 않을 때다. 이때 받은 강한 인상이 이 여행가의 글에 관심을 두게 한 모양이다. 내가 이름을 기억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마 집을 뒤지면 한두 정도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카테고리 분류에 인문과 여행으로 들어가 있다. 보통 여행으로 나오는데 이렇게 인문이 들어간 것은 책 속에 담긴 역사 이야기들이 상당한 깊이를 보여주기 때문인 것 같다. 모두 네 꼭지로 나누어져 있는데 처음 두 꼭지인 경상과 충청 부분은 사료를 바탕으로 작가의 분석이 상당한 깊이까지 파고든다. 천년 고도 경주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제주에서 마무리되는데 단순히 풍경이나 음식 이야기가 아니라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보고, 느끼고, 그 의미를 전달한다. 오래된 여행가이다 보니 지난 세월의 기억도 덧칠해서 나온다. 이 덧칠은 온전히 작가의 것만은 아니다. 나의 기억도 그 이야기 속에 같이 엮인다. 내가 가 본 곳일 경우, 그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경우 더욱 그렇다.


코로나 19로 해외로 나갈 수 없는 여행가가 국내를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국내의 잘 발달한 교통은 가볍게 돌아다니기에 편하다. 차가 아닌 도보와 대중 교통을 이용한 그의 발걸음은 여유와 쫓김이 뒤섞여 있다. KTX 등으로 빠르게 이동해서 천천히 그 지역을 둘러보는 여유는 그곳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한다. 차를 운전해서 다니면 주차나 운전에 의한 피로감이 상당한데 이 책에서 그런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버스 등을 기다리는 시간이 때로는 그 지역을 천천히 돌아보는 기회가 된다. 하지만 길지 않은 일정을 생각하면 여행지 곳곳을 돌아다닐 때 시간에 쫓기게 된다. 뭐 이런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은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한국 고대사를 여행지에서 돌아보는 과정 속에 당연히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일본의 역사 왜곡과 관련해서는 <일본서기>와 비교한 부분은 흥미롭지만 단순하게 여행 에세이를 기대한 사람에게는 약간 지루할 수도 있다. 워낙 많은 학설과 이견이 뒤섞여 있는 부분이고, 작가가 정리한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역사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을 바탕으로 그 지역과 유적을 알려주는 대목은 보통의 여행에서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보완해준다. 조금 유연해진 듯한 작가의 시선이 여행지에 대한 관심을 더 불러온다. 읽으면서 아쉽게 느낀 점은 아이와 함께 여행해야 하는 나 같은 경우 쉽지 않은 곳들이란 것이다. 역사에 관심이 더 생길 나이라면 뭐 다르겠지만.


바뀐 시대의 풍경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어디일까? 경주일까? 논산일까? 군산일까? 아니면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목포일까? 학창시절 수학여행으로 간 경주, 친구와 함께 돌아본 경우 모두 다른 느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가면 또 다르겠지! 군에 가는 친구를 배웅하기 위해 간 논산은 기억에 희미하다. 입영 전날 본 영화만 선명하다. 10년 전에 간 군산은 그 사이 얼마나 바뀌었을까? 하루 종일 걷고, 기다리고, 사 먹던 그곳은 어떻게 됐을까? 마지막 제주의 일정을 보면서 관광객으로 돌아다닌 곳과 여행가가 돌아다닌 곳이 다름을 발견한다. 같은 곳도 다른 시선으로 보면서 감상이 달라진다. 이런 글을 볼 때면 왜 더 젊었을 때 배낭 하나 매고 더 많은 곳을 돌아다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바뀐 환경 속 나만의 작은 여행을 하나씩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유적에 대한 관심도 조금 더 기울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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