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계약서는 만기 되지 않는다
리러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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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K-스토리 공모전 대상 수상작이다. 최근 이런 공모전이 늘어났다.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나에겐 좋은 일이다. 이 소설의 설정 자체가 놀랍고 신선하다. 아주 큰 주택이 지옥의 리모델링 때문에 빈방을 임차했다고 하니 대단한 발상이다. 당연히 일반 주택이라면 집 주인이 지옥에게 방을 내줄 리가 없다. 하지만 이 집은 아주 낡았고, 세입자도 겨우 두 명 뿐이다. 집 주인 할머니는 건강에 문제가 있고, 어릴 때부터 이집에 들어와 살고 있는 서주는 세 주는 일에는 전혀 관여를 하지 않는다. 할머니와 전혀 혈연 관계가 없는 서주는 하숙 일을 도우며 살아갈 뿐이다. 대학을 휴학하고 현재는 식당에서 알바를 하면서 등록금을 모으는 중이다.


지옥에 세를 주면 어떻게 될까? 그 첫 장면은 할머니와 함께 밥을 먹고 있는 망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가 먹고 있는 음식들은 오래 전 거지들이나 먹을까 말까 한 음식이다. 그는 지옥에서 생전에 남긴 음식을 먹는 중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이나 장면에서 놀라고 기겁하겠지만 서주는 깜짝 놀라는 수준에서 멈춘다. 다른 빈방에서는 지옥의 형벌을 받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린다. 정상적(?)이라면 견딜 수 없는 현실이지만 집을 떠나면 갈 곳도, 돈도 없는 서주에겐 유일한 쉼터다. 그리고 집 없이 떠돌던 그녀를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주고 키워준 할머니가 사는 집이다. 저녁 알바를 나가는 그녀를 할머니는 취직할 줄 안다.


식당에서 알바를 하는 서주를 좋아하는 연하남이 있다. 그의 노골적인 대시를 서주는 거부한다. 현실이 삶이 버거운 그녀에게 연애는 어쩌면 사치다. 식당 앞에서 싸움이 벌어지면서 누나를 바래다주겠다고 하지만 그녀는 괜찮다고 말한다. 자신이 사는 집이 어떤지 알기에 더욱 거부한다. 어느 밤 늦게 집에 가니 대문이 잠겨 있다. 담을 넘는다. 다른 문도 잠겨 있다. 어떻게 들어갈까? 고민 끝에 방법을 하나 발견한다. 그 문으로 들어가니 지옥도가 펼쳐진다. 악마가 사람을 고문하는 중이다. 기겁할 일이지만 그냥 인사하고 지나간다. 이때 본 악마가 출근하기 전 미숫가루를 타 놓았던 의문의 인물이다. 그 미숫가루를 먹고 뱃속에서 탈이 났지만 말이다.


우연한 기회에 서로 안면은 튼다. 뿔을 단 악마가 계약할 때 부엌을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고 한다. 미숫가루미 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냥 알고 있던 악마가 자꾸 마주치다 보니 조금 가까워진다. 집밖에서 싸움이 나면 악마는 맛있게 그 싸움을 먹는다. 그의 존재는 나중에 서주를 짝사랑하는 승빈이 억지로 바래다줄 때 연적처럼 보인다. 승빈의 마음은 서주를 향하지만 그녀는 일상의 힘겨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식당가를 배회하는 의문의 사람은 서주가 생각할 때 할머니의 둘째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할머니의 유일한 재산인 집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할머니는 첫째 아들이 집으로 숨었을 때 경찰이 와 잡아간 후 집에 경찰을 들이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한다. 만약 둘째 아들이 집에 쳐들어와도 서주는 경찰에 쉽게 연락하지 못한다.


할머니는 말한다. 지금 세상이 지옥이라고. 세 준 지옥의 풍경보다 현실 세계가 더 지옥 같은 모양이다. 누군가에게는 분명 현실이 더 지옥 같을 것이다. 서주는 집 안팎에서 불안과 공포에 시달린다.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아들과 할머니의 건강 때문이다. 할머니의 건강검진을 위해 알바로 모은 돈을 쓸 생각도 한다. 착하다. 어쩌면 외로운지 모른다. 홀로 남겨진 외로움 때문에, 갈 곳 없는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에게 더 애정을 쏟는지 모른다. 그녀 주변에 있는 모카 언니나 짝사랑 연하남 승빈이 있지만 쉽게 그들과 친해지지 못한다. 그녀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찾아다니는 사람의 정체도 밝힐 수 없는 현실이라니.


지옥이 나온다고 해서 참혹한 장면으로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물론 문안으로 보이는 지옥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지옥을 그대로 재현했다. 하지만 그 지옥을 벗어난 사람들이 집에 나타나고, 그를 데리고 다시 들어가는 악마가 있다. 그런데 그 악마가 서주와 이상한 관계를 맺는다. 집주인 가족에 대한 호의라고 하기에도, 그녀의 결핍을 먹는다고 하기에도 이상하다. 그리고 서주도 이 악마가 현실의 사람보다 더 마음이 간다. 악마의 유혹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나의 예상은 심사평에 나온 것처럼 조금씩 빗나간다. 웃픈 현실을 보여주면서 시선을 계속 끌어당긴다. 황당하지만 코믹하고 아련한 소설이다. 소설 후반부 악마의 존재는 예상한 것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나를 매혹시킨다. 미니 시리즈로 만들면 좋을 것 같은데 지옥 풍경 때문에 공중파는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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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
요아브 블룸 지음, 강동혁 옮김 / 푸른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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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볼 수 없는 이스라엘 판타지 소설이다. 작가의 전작 <우연 제작자들>을 보지 않았지만 좋은 평을 받은 것을 봤기에 선택했다. 이 책을 펴기 전까지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쉽게 빗나갔다. 생각보다 더딘 초반 전개에 약간 곤혹스러웠다. 작가가 그려낸 세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문장도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단계를 넘어가자 소설이 나에게 문을 살짝 열어주었다. 왜 나는 출판사 소개글처럼 초판 몰입도에 깊게 빠지지 못했을까? 솔직히 말해 이런 도입부는 그렇게 아주 기발한 것은 아니다. 최소한 나에게는.


내 이름이 나오는 책을 서점에서 발견하게 되면 어떨까? 소설 속 주인공 벤은 서점에서 자신의 이름이 적힌 책을 들고 나온다. 이 소설의 첫 장면은 그렇게 산 책을 펼쳐 읽는 자신을 묘사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현실과 책 속 내용이 같다. 그리고 그가 이 이전에 경험했던 일들이 흘러나온다. 울프라는 친하지만 친밀하지 않은 노인이 남긴 위스키 두 병을 유산으로 받고, 책을 사고, 집에 온다. 집밖에 수상한 누군가가 있지 않았다면 책 속 내용을 따라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 내용이 현실이 되고, 술병에 적힌 이름을 찾아 ‘바 없는 바’라는 술집까지 온다.


‘바 없는 바’의 오스나트는 이곳에서 몇 년 동안 일했다. 가끔 이상한 이름의 술을 찾는 사람이 찾아오면 주인 벤처 부인에게 데리고 간다. 그녀가 일하는 밤 중에 한 남자가 들어온다. 낯선 남자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술은 마신 후 갑자기 둘은 연인처럼 대화를 나눈다. 이 상황이 나에겐 너무 이상했다. 나중에 이 상황을 이해할 이야기가 나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소설의 핵심인 ‘경험’의 강렬함을 표현하기에 너무나도 간단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 둘은 연인 관계가 아니었고, 남자가 넣은 경험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것이다. 만약 스테판이 넣은 양이 많았다면 평생 그 경험에 휩싸여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이 경험이 가짜라는 것을 아는 순간이 나오고, 벤처 부인에게 이런 현상에 대한 설명을 듣는 순간 이야기의 문이 나에게도 열렸다.


경험과 기억은 다르다. 작가는 이 부분을 강조한다. 울프는 사람들의 경험을 축출해서 술에 타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행동에서 경험한 것을 뽑아 술에 넣는다. 이 술을 마신 사람은 경험자들과 똑 같은 경험을 한다. 이 경험 속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녹아 있고, 그 강렬함은 경험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 이 설정을 읽으면서 머릿속에서는 몇 가지 가상현실이나 대체경험 등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실제 그 사람이 한 것을 경험한다. 조금 황당한 설정이긴 하지만 벤이 다양한 무술 등의 경험을 마시면서 뛰어난 실력자인 스테판과 싸우면서 절대 밀리지 않는 실력을 보여준다. 경험이 근육의 기억까지 새롭게 재구성해주지 않는 한 사실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울프가 개척한 경험의 축출과 실제적인 대리 경험은 많은 사람들의 요구와 맞아 떨어진다. 위험한 곳으로, 자신이 원한 곳으로 가지 못한 사람들에게, 혹은 시간 문제 등으로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이 술 한 잔으로 그 경험을 그대로 간직한다. 당연히 더 자극적인 경험을 찾는 사람이 생기고, 자신만의 경험을 만들어오길 바라는 사람도 나타난다. 이 경험 대리가 하나의 사업으로 발전하고, 거대한 부를 이룰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아직 현실의 권력을 실제 권력자들이 쥐고 있고, 이들의 성장은 생각보다 빠르지 않고, 경쟁도 치열하다. 이런 현실 속에 이들을 죽이는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스테판이다. 그가 왜, 어떻게 이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오스나트를 홀린 술의 원천도.


울프가 남긴 술병을 우연히 얻은 벤, 그 술병을 얻었지만 방치한 오스나트, 그 술병을 뺏으려는 스테판. 이렇게 세 명의 남녀들은 서로 엮이고 꼬인다. 악역의 스테판에게 대항하는 벤과 오스나트. 하지만 오스나트의 경험 속에는 아직 스테판에 대한 강렬한 애정이 남아 있다. 술이 약한 벤. 그는 경험이 가득 든 술의 힘으로 놀라운 실력을 얻는다. 이전에 묘사한 삶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이들이 울프의 유산을 둘러싸고 벌이는 싸움은 강렬한 액션을 동반하고, 반전을 품고 있다. 여기에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책이 한 권 있다. 바로 ‘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다. 제목 그대로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안내서다. 벤과 오스나트는 이 책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작가는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책 속에 넣어 여운을 남긴다. 초반과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책을 덮었다. 작가의 다른 책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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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망자의 고백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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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원제는 <고해>다. 처음엔 원제를 모른 채 읽었다. 모두 읽은 후 우연히 원제를 알게 되면서 작가가 마지막에 들려준 이야기가 완전히 이해되었다. 이번 소설은 이전까지 읽었던 야쿠마루 가쿠의 소설과 조금 다른 느낌이다. 피해자 가족을 중심에 둔 것도 아니고, 가해자에 완전히 몰입한 것도 아니다. 비 오는 날의 뺑소니 사건과 그 사건의 피해자 가족을 보여주면서 하나의 사건이 두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천천히 풀어낸다. 이 사고는 두 가족 모두에게 큰 상처를 준다. 어느 가족이 더 큰 피해를 입었는가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 피해를 수량화해서 나타내는 일은 힘들고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쇼타는 알바 친구들과 술 한잔한 후 집에 들어온다. 여자 친구가 ‘지금 당장 날 보러 오지 않으면 헤어질 거야’란 문자를 보내왔다. 집에 다른 가족들은 없고, 자신이 거둔 길 고양이만 있다. 차에 고양이를 태우고 여친의 집으로 간다. 비 오는 밤이고, 고양이 나나가 이동 장에서 평소와 다르게 운다. 이동 장에 손을 뻗치는 순간 엄청난 충격이 온다. 무언가를 치었다. 백미러에 비친 붉은 빛을 보고 멈추지 않고 그냥 달린다. 다음 적색 신호가 나타날 때까지. 이 프롤로그는 정말 잠깐 동안에 벌어진 이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적색 신호 속에 순간 쇼타의 머리 속을 지나갔을 생각은 그려내지 않았다. 다만 차안에서 쇼타가 느낀 냉기에 대해서만 말한다.


제목에 나온 도망자란 단어 때문에 쇼타가 경찰에 잡히지 않고 계속 도망다니는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작가는 우수한 경찰에 잡힌 순진한 대학생 뺑소니 사고자를 바로 알려준다. 왜 작가가 차종을 말했는지, 이 차종이 어떤 단서가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쇼타는 자신이 뺑소니란 사실을 숨기지 못한다. 다만 사람을 치었다는 것을 그 당시 알지 못했고, 왜 그 늦은 밤에 나갔는지 거짓말한다. 부모가 변호사를 선임해 재판에 들어가지만 그는 음주, 뺑소니, 살인치사 등의 죄목으로 4년 10개월 형을 받는다. 검사가 구형한 6년에 거의 비슷한 형량이다. 피해자 가족에게 이 편결은 부족한 느낌이다. 그리고 피해자의 남편은 이 재판 과정을 아들에게 녹음해서 와 달라고 요청한다. 왜 그럴까?


2장으로 넘어가면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쇼타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를 마중 나온 사람은 엄마가 유일하다. 뺑소니 사고로 유명한 방송 출연 교수였던 아버지는 추락했고, 부모는 이혼, 누나는 파혼했다. 아버지가 방송에 나가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누나의 파혼 등은 솔직히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산산조각난 가족의 현재를 보여준 후 엄마와 함께 살고 특이한 성을 엄마의 성으로 바꾸라고 말한다. 하지만 쇼타는 파혼한 누나를 보는 것도, 자신의 뺑소니 사고를 아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렵다. 가석방의 기회가 있었지만 사회의 시선이 두려워 그 기회를 차 버린 적이 있었다. 엄마의 도움으로 작은 집을 구하고, 일용직으로 겨우 살아간다. 그의 마음 속에서는 항상 망령이 떠돌고, 그의 과거를 아는 누군가가 지적할 것 같은 두려움이 가득하다.


작가는 쇼타가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변호사가 피해자 가족을 만나 분명하게 사과할 것을 말하지만 황금 같은 20대의 거의 5년을 감옥에서 보냈다는 생각에 이를 거부한다. 제대로 된 반성이 아직 부족하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의 뒷담화를 통해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비치는지 알게 된다. 그가 죄의식을 가지고 평범한 일용직으로 건실하게 보낼 때 옆에 다가온 인물은 쇼타를 어둠 속으로 끌고 가려는 자칭 사고사 출소인이다. 그는 아주 조금씩 쇼타에게 다가와 그의 마음에 사회에 대한 불만의 씨앗을 심어둔다. 이 소설에서 쇼타가 과연 어떻게 이 인물을 대처할 것인가 하는 것도 재미 중 하나다. 쇼타를 보면서 범죄자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이고 일괄적인 거부감과 선입견을 돌아보게 된다.


이야기의 또 다른 한 축은 쇼타에게 죽은 피해자 가족이다. 그 중에서 피해자의 남편은 쇼타에 대한 관심이 유별나다. 탐정 사무소를 통해 쇼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그의 아내가 늦은 밤 빗길에 나간 것도 당시 그의 고열 때문이었다. 5년이 흐른 후 그는 치매가 있어 가끔 아들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삶은 다른 누군가의 표상이 되었기에 후배 선생이 자주 찾아온다. 탐정의 얄팍한 상술은 치매 노인의 조사를 더 연장하고, 쇼타가 사는 곳까지 가게 한다. 그가 쇼타에게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복수일까? 그의 마음 속에 담고 있는 속죄는 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뛰어난 가독성 속에 의문의 씨앗들은 하나씩 꽃을 피운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왔을 때 원제의 의미가 드러나고, 죄의식과 진정한 의미의 속죄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한 순간의 실수를 이렇게 풀어내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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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 축 당첨! 여름휴가 팡 그래픽노블
필립 베히터 지음, 김영진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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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몇 가지 나의 무지와 선입견에 대한 고백부터 하겠다.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이 의미하는 바를 모른다. 볼로나 문학상 정도로 생각했다. 그림체만 보고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프랑스 작가라고 생각했다. <토니 : 티끌 모아 축구화>의 후속작이란 것도 생각도 못했다. 책 마지막까지 프랑스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재밌게 읽었다. 이야기가 끝난 후 작가에 대한 부분을 읽고 나서 독일 작가란 사실을 알았다. 나의 이런 착각은 다른 만화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길지 않은 만화이지만 내용은 결코 적지 않다. 여름 휴가를 가고 싶지만 경제적 문제로 갈 수 없다고 하는 엄마와 다툰다. 여름 휴가 취소에 절망하면서 시까지 짓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그렇다고 포기하지 않는다. 열심히 잡지의 이벤트에 응모한다. 그러다 아주 멋진 최고급 호텔 숙박권에 당첨된다. 아주 행복한 소식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호텔에 간다. 화려하고 멋진 호텔이다. 그런데 이 호텔은 할 수 없는 것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토니가 놀 아이들이 없다는 것이다. 수영장에서 첨벙첨벙 놀고 싶은 토니에게 어른들이 눈치를 준다. 즐겁고 행복해야 할 여름 휴가가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가득한 휴가가 되었다. 이때 엄마가 근처에 사는 친구 크리시에게 연락을 한다. 그들은 쿨하게 하루만 자고 그 멋진 호텔을 떠난다.


작가는 이후 토니의 즐거운 하루들을 보여준다. 엄마 친구 집에서 그 집 아이들과 강에서 놀고, 그 집에서 빌린 차와 캠핑 용품으로 바다에 간다. 바다는 사람으로 가득하지만 아이들도 많다. 친구들을 만나 즐겁게 논다. 축구를 하고, 수영도 하고, 보트도 타고, 게임도 하면서. 작가는 이 장면들과 상황을 많지 않은 분량 속에 착실하게 그려 놓는다. 수많은 아이들이 모인 곳에서 스마트폰을 가진 아이가 한 명 밖에 없다고 했을 때 솔직히 조금 놀랐다. 하지만 진짜 놀라운 일은 그 아이와 함께 조가 된 후 일어나는 일들이다. 스마트폰의 위력과 그 위력을 숨기기 위한 노력들이 만들어낸 작은 행위들 말이다. 이 아이들이 게임에서 이겨 받는 것은 큰 빙수 한 그릇이다.


화면을 가득 채운 그림과 사람들의 표정, 생략된 감정들이 눈길을 끈다. 토니는 친구들과 재밌게 놀고, 엄마는 자신만의 휴가를 즐긴다. 아이는 일이 있거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엄마에게 달려온다. 흔한 장면들이지만 그 흔한 장면이 우리의 행복이자 일상이다. 행복한 시간이 지나가면서 토니는 언제 돌아갈지 묻는다. 하지만 엄마의 대답은 며칠 더 있을 거란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연장되고, 토니의 여름 휴가는 계속된다. 그리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된다. 집으로 돌아온 두 사람 뒤에 남은 것은 즐겁고 행복한 추억과 집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이다. 화려함보다 일상의 연속성과 즐거운 놀이로 가득한 휴가가 얼마나 두 사람을 행복하게 했는지 보여준다. 내가 아이와 이렇게 놀아주지 못한 것 같아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든다. 읽으면서 그 뜨거운 햇볕에 살이 벗겨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여름 해변에서 내 피부가 얼마나 자주 피부 물집이 잡혔던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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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비 - 금오신화 을집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9
조영주 지음 / 폴앤니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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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조영주 작가의 장편 소설이다. 집에 작가의 장편이 몇 권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상당히 늦게 읽었다. 솔직히 말해 처음 책소개만 보고는 읽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작가의 이름을 보고 선택했다. 책을 읽기 전 <금오신화 을집>이란 후기를 우연히 먼저 보았다. 아직 한 번도 읽지 않은 고전 <금오신화>를 생각하면서 어떤 이야기가 흘러나올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자 낯선 이야기와 조금은 이해되지 않는 설정들이 나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하지만 가독성이 좋은 편이라 끝까지 읽기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고, 다시 <금오신화>에 대한 관심만 높아졌다.


제목이 한글로 <비와 비>다. 이 ‘비’는 중의적으로 사용된다. 하나는 두 인물 이비와 박비의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왕비 공혜왕후를 의미한다. 작가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금호신화 속 이야기를 끌고 와 엮었다.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을 상상력으로 한곳에 모아 조선 초기 정쟁의 결과를 새롭게 풀어낸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은 박팽년의 후손이다. 사육신 박팽년의 일가는 삼족이 멸족했다. 하지만 역사 속에는 항상 이 힘든 시기를 벗어난 후손들이 등장한다. 실존인물이 있다는 사실과 그들이 복원되었다는 것은 후대의 일이고, 이 시기는 아직 압구정 한명희가 살아 있던 시절이다. 박팽년의 손자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를 살리는 것이 하나의 목적이다.


전라 감찰사 이극균의 딸 이비, 전라감영의 관노비 박비. 이 둘은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이 비밀은 나중에 밝혀지는데 이 소설의 핵심과 이어져 있다. 이비는 수양딸이지만 가족들의 사랑을 받고 아주 활발하게 살아간다. 그녀의 곁에는 박비가 있다. 박비는 외모가 아주 출중해 많은 양반집 마나님들이 탐낸다. 자신의 사노비와 교환하자는 요청이 많다고 한다. 이 시기에 사노비와 관노비를 바꾸는 것이 가능했던 모양이다. 박비는 노비이지만 말을 타고 활을 들고 다닌다. 말을 타는 이유는 이비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둘은 주인과 노비 관계이지만 마음이 아주 잘 맞다. 하지만 신분의 벽은 쉽게 감정에 휘둘리게 하기에는 너무 높다.


전라감영에 한명희가 보낸 어사가 오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극렬을 어떻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왔다. 어느 날 이비를 본 어사가 깜짝 놀란다. 돌아가신 왕비 공혜왕후가 복숭아 나무 아래 있는 것이다. 귀신인가? 환생인가? 이 일이 두 비를 떠나게 한다. 이때 나타난 인물이 바로 매월당 김시습이다. 오세 천재 김시습. 놀라운 무술 실력을 가지고 있고, 뛰어난 머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천천히 움직인다. 이비와 박비는 감영을 떠난다. 매월당이 준비한 주막에서 주모의 욕심이 사건을 만든다. 둘은 헤어지게 되고, 이비는 매월당의 제자가 된다. 이제 이야기는 한양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몽유도원도’와 엮인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현재 일본에 있다. 너무나도 유명하지만 우린 진품을 보려면 일본에 가야 한다. 그림도 유명하지만 그 속에 든 시문도 중요하다. 조선 초기 명필 안평대군의 발문도 있다. 이 그림이 수양대군에게 꼬투리가 잡혀 안평대군은 죽었다. 시대를 건너 성종 초기 성종의 형 월산대군은 유명한 화가에게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같은 ‘몽유도원도’을 요청한다. 이 그림 속에는 성종의 죽은 왕후의 얼굴이 들어가 있길 바란다. 인물화로 이름난 화가도 월산대군의 설명만으로 그 얼굴을 그리는 것은 힘들다. 왕비의 소문이 있는 무계정사를 찾아가 영감을 받으려고 한다. 이때 남자로 분장한 이비를 만난다. 전라감영에서 사라진 그녀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새롭게 진행된다.


성종은 죽은 비를 잊지 못해 시름시름 앓는다. 우연히 남장한 이비를 보고 깜짝 놀란다. 죽은 비와 닮았기 때문이다. 남장을 했지만 그의 입술은 이비를 덮는다. 뭐지? <커피프린스 1호점>의 설정이 떠오른다. 박비와 닮은 이에 끌리는 이비. 연락이 두절된 박비. 이 모든 판들은 매월당이 조금씩 준비한 것이다. 물론 이 준비가 완벽할 수는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비다. 이야기는 엮이고, 꼬이고, 뒤틀린다. 닮은 외모와 감추어져 있던 비밀이 하나로 묶인다. 이 사이사이를 채우는 이야기는 <금오신화>의 오마주와 한시이지만 이 부분은 낯설다. 아마도 <금오신화>를 잘 기억한다면 더 재밌을 것이다. 읽으려다 시작도 못한 많은 한국 고전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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