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월드 영 월드 1
크리스 웨이츠 지음, 조동섭 옮김 / 시공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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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미국의 각본가, 프로듀스, 감독이다. 솔직히 말해 최근 영화를 잘 보지 않는 나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영화 제목을 보면 아주 낯익다. 그리고 이 책소개에 나오는 <헝거 게임>이나 <메이즈 러너> 등은 영화로 본 적이 없다. 소설도 읽은 적이 없다. 집에 책들은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 관심이 생긴 것은 전염병으로 어린이와 어른은 모두 죽고 청소년만 살아남은 세상을 다루었다는 점이다. 굉장히 범위를 좁혀 놓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소설의 설정대로라면 인류는 몇 년 안에 멸종할 수밖에 없다. 실제 도입부에 워싱턴스퀘어의 리더 워싱턴이 나이가 차면서 죽는다. 아주 암울한 세상이지만 이 암울한 세상에서도 작은 희망과 각자 자신들만의 삶을 꾸리는 무리들이 나온다.


형 워싱턴이 죽으면서 제퍼슨이 워싱턴스퀘어의 무리를 이끈다. 형이 죽는 날 업타운의 무리들이 돼지를 끌고 와 여자 둘과 바꾸자고 한다. 이 무리에겐 황당한 일이다. 업타운 무리와 실랑이가 벌어지고, 돼지는 죽는다. 업타운 무리는 떠나고, 워싱턴스퀘어 무리는 이 고기로 오랜만에 파티를 한다. 즐거운 일이지만 워싱턴의 죽음이 그들의 현실을 일깨워준다. 제퍼슨은 미래를 꿈꾼다. 이 무리의 브레인인 브레인박스가 전염병의 원인을 찾을 수 있는 논물에 대해 알고 공립 도서관에 가봐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라면 지하철이나 버스 등을 타고 쉽게 갈 수 있지만 이젠 그곳으로 가는 도중에 수많은 집단의 위협 속에 놓인다. 조각 조각 나누어진 무리들이 자신들만의 구역에서 암울한 현실을 견디며 살아간다.


소설은 두 화자가 번갈아가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두 시점은 제퍼슨과 제퍼슨의 소꿉친구이자 짝사랑 상대인 돈나다. 제퍼슨은 이야기꾼이자 적은 희망도 버리지 않는다. 돈나는 총을 든 저젹수이자 활발한 소녀다. 브레인박스는 뛰어난 과학 실력을 바탕으로 워싱턴스퀘어의 전력 등을 만든다. 그의 지식이 이 무리에 큰 힘이 되지만 미래까지 책임질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그가 가진 지식으로 바꾸어 나가는 현실의 몇몇 장면들은 우리에겐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사회 기반 시설이 무너진 세상에선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필요 지식이다. 실제 전투 등에서는 거의 무력하지만 그의 지식이 빛을 발할 때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그는 청소년들이 모르는 과학을 설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어른들이 모두 전염병으로 죽는 과정을 보면서 어떤 대목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의 코로나19 팬데믹이 떠올랐다. 2014년에 출간된 소설임을 감안하면 초기 미국 뉴욕의 대처와 상황이 이 소설 속 장면 일부와 맞닿아 있다. 살아남은 아이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보여주는 장면은 각각 다른 공간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선택에 의해 나누어진다. 공립 도서관에 사는 유령 같은 아이들이 보여준 삶의 방식은 참혹하다. 강력한 무기도 없고, 농사 지을 땅도, 힘도 없는 이들이 선택한 생존 방식 중 하나가 드러날 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도서관에 도착한 제퍼슨 일행을 공격하는 이들이 나오는데 바로 업타운 무리다. 이들의 공격으로 제퍼슨이 타고 온 차량은 불탄다. 이제 이들은 도보로 움직여야 한다.


이후 제퍼슨 일행이 걸으면서 처음 이 전염병이 퍼진 섬으로 가려고 한다. 160킬로미터다. 과거 차로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이젠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가는 도중에 만날 무리들이 얼마나 호의적일지도 생각해야 한다. 실제 이 소설의 매력 중 하나는 곳곳에서 만나는 이 무리들이다. 각각의 무리들이 어떤 선택을 했고, 그 무리를 어떻게 유지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제퍼슨 일행 각자의 능력과 개성도 이야기 속에 적절하게 녹아들면서 소소한 재미를 만든다. 미국의 현재 모습을 간략하게 보여주는 역할도 한다. 재밌는 점은 제퍼슨 형제가 혼혈이고, 피터는 혼혈이고, 시스루로 불리는 작은 소녀도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경험하고 말하는 과거와 현재는 이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변함없이 적용된다. 1권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다음 권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과연 어떤 식으로 이들의 미래가 이어지고, 변화가 생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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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딸이다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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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여왕으로 불리는 애거사 크리스티가 1952년에 메리 웨스트매콧이란 필명으로 낸 소설이다.

다른 이름으로 낸 이번 소설은 추리소설이 아니다.

현재 나온 책은 개정판이고, 이전과 달라진 것은 해설이 덧붙여져 있다는 것 정도다.

세부적인 번역의 차이가 어느 정도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절판된 책이 새로 나오는 일은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왠지 연극 무대에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앤의 집을 배경으로 상당히 많은 일이 벌어지고, 대사나 행동 등이 연극적으로 다가온다.

“아들은 아내를 얻을 때까지만 아들이지만, 딸은 영원히 딸이다.”이란 문장은 상당히 편협적이다.

아들인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딸과 엄마의 관계가 분명히 있겠지만 모든 것을 일반화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소설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 데 시간의 흐름과 그들의 상황과 엮여 있다.

1부는 엄마 앤 프렌티스가 딸 세라를 스위스로 3주 동안 여행을 보낸 후 이야기다.

딸을 그리워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앤은 외롭게 살고 있는 리처드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감정에 빠져 당연히 딸도 그녀의 결혼을 축복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세라는 리처드의 외피만 보고 결혼을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리처드 또한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어리석고 싸우는 두 사람에 사이에 낀 앤은 고통받는다.

결국 선택의 기로에 서고, 자신의 미래 하나를 포기한다.

2부에서 변한 앤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간다.

외모도 바뀌고, 집의 인테리어도 바꾸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바쁘기만 할 뿐 내면은 공허하다.

이 내면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파악한 인물은 데임 로라다.

이번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세라의 결혼이다.

위험한 남자이자 결혼을 세 번 했고 아주 부유한 남자의 청혼이다.

돈으로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행복일까?


작가는 복잡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는다.

앤과 세라의 상황을 보여주고, 그들의 선택을 알려준다.

이 선택 이면에 놓인 감정을 3부에 날카롭고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딸과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상대방의 선택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개인적으로 감초 역할을 하는 하녀 이디스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이 집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이 두 모녀를 도와준 그녀의 통찰력은 놀랍다.

친절하지 않지만 자신이 할 일에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는 그녀다. 퉁명스러운 그녀가 어느 순간 사랑스럽다.

연극적으로 갈등을 만들고, 이 갈등을 키우고, 해결하는 과정을 거친다.

애거사 크리스티란 이름을 생각하고 읽으면 조금 밋밋하지만 상당히 가독성이 좋다.

그리고 상류층의 삶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데 약간 거부감이 생긴다.

그들이 노동이나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해 보여주는 시각 때문일 것이다.

소설 곳곳에 통찰력을 보여주는 문장들이 나오고, 공감할 대목들이 보인다.

한동안 손 놓고 있던 추리소설에도 눈길을 주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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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강 캐트린 댄스 시리즈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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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트린 댄스 시리즈 4권이다. 5년만에 나왔다. 캐트린 댄스는 링컨 라임 시리즈에 비중 있는 단역으로 나왔다가 새로운 시리즈의 주인공이 된 인물이다. 역시 두툼하고, 재밌고, 예상 외의 반전에 놀란다.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인간의 감정이란 것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깨닫는다.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동 속에는 극단적 이기심이 자리잡고 있다. 이번 소설 속 악당은 이런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테러를 펼친다. 밀폐된 공간과 화재가 맞물리면서 벌어지는 첫 장면은 결코 소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안과 공포는 우리 사회의 기저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한정된 공간만이 아니다. 괜히 공포 마케팅이란 단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읽다 보면 과연 저런 상황에서 나는 이성을 유지하고 다르게 움직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클럽 솔리튜드크리크에서 공연 중에 화재가 난 것 같은 냄새를 맡는다. 불이 났을 때 최대한 빨리 피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비상구가 거대한 버스로 막혀 있다는 것이다. 이성이 날아간 사람들은 조금 열린 비상구로 나가려고 서로를 밀친다. 이 과정에 3명이 죽는다. 여러 명이 부상을 입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작가는 한 발 더 나아가 이 사건의 희생양을 찾으려는 욕망을 그려낸다. 트럭 운전수의 실수라고 단정한 희생자 가족들이 보여주는 폭력은 또 다른 공포를 만든다.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기 보다 자신의 감정을 먼저 폭발시키는 사람들의 모습은 결코 낯설지 않다. 이들을 조금 더 파고들어 간략하게 풀어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캘리포니아 연방수사국(CBI)의 동작학 전문가 캐트린 댄스는 마약밀매 조직을 수사하는 중이다. 그녀는 용의자 심문에 실패하고 총까지 빼앗긴다. 이 일로 징계를 받고 민사부로 전출된다. 이때 솔리튜드크리크 사건을 맡는다. 댄스가 이 장소에 와서 상황 등을 보고, 단서를 따라가면서 단순 화재 사건이 아님을 알게 된다. 실제 불이 나지 않았고, 냄새만으로 공연장 관객들을 패닉으로 몰아간 것이다. 왜,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일까? 단순한 재미라고 하기엔 너무 치밀하다. 그리고 일회성 사건도 아니다. 자기계발서 작가의 사인회에서 벌어진 참극은 또 어떤가. 비상구를 열어두었지만 그 앞에 총을 던 악당이 총을 쏘면서 다가온다. 달아날 곳은 단 한 곳. 창밖 바다뿐이다. 이성적으로 문을 닿고, 경찰에 연락하면서 시간을 벌어야 하지만 공포는 많은 사람들의 이성을 날려버린다.


이 공포로 최악의 상황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인물이 있다. 안티오크 마치다. 그는 이런 상황을 연출하고 패닉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온라인에 올려 판매한다. 새로운 추악한 사업이다. 잔혹한 사진을 다운받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 자신들이 바라는 장면을 연출해주기를 바란다. 마치는 이 일에 최적화된 악당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타인의 죽음과 고통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존재가 있다. 그는 이것을 겟(GET)이라고 부른다. 이 겟을 만족시켜야만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 나중에 그가 어떤 일을 벌였는지, 어떻게 이 사업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보여주는데 크게 놀랄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사업과 연결했다. 물론 이 과정에 다른 한 명이 끼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인물은 마치다.


댄스는 이 마치의 사건을 수사하면서 여전히 마약밀매 조직 수사를 놓지 않는다. 한 지역 사건만을 다루지 않다 보니 관할권 문제가 여전히 있다. 민사부로 전출된 댄스가 이 수사에 참여하면 안 되지만 그녀는 몰래 끼어든다. 그녀의 심문 기술은 아주 탁월하고, 다른 단서를 쫓는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야기의 중심은 솔리튜드크리크 사건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마치의 작업 대상이 될 수 있기에 시 정부는 이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행사를 미루라고 말한다. 그러다 또 하나 사건이 발생한다. 이번엔 엘리베이터다. 역시 밀폐된 공간이다. 다행이라면 아주 많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고, 불행이라면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타고 있다는 것이다. 사건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번 이야기에는 댄스의 아이들 비중이 조금 더 되는 것 같다. 이전 작품들을 읽은 지 오래되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다. 동작학 전문가이지만 자신의 아이들의 동작을 정확하게 읽지 못하고 실수하는 모습은 엄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들 웨스와 관련된 이야기를 읽다 보면 미국 학생들이 얼마나 역사에 무지한지 알 수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그리고 잔혹한 게임에 대해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이 게임이 아이들에게 끼치는 악영향에 대해서. 하지만 이 연구 결과가 결코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 실제 그 게임을 하는 인물들은 수없이 많고, 그 게임의 영향이라고 단정한다고 해도 다른 영향을 결코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게임 중독은 결코 좋게 볼 수 없다.


빠른 속도감을 보여준다. 단 며칠 동안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다시 아픈 미국의 역사를 본다. 미국이 눈을 가린 수많은 인권 문제 중 하나를 다룬다. 솔리튜드 크리크에서 있었던 2차 대전 당시 있었던 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소 문제다. 현재로 넘어오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등에 대한 폭격은 입을 다물고 있는 현실이 있다. 선별적 인권문제는 정치적 목적과 이어져 있다. 마치가 만들어낸 영상을 구독하는 인물들보다 더 큰 비극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미국 작가가 이 문제까지 파고들어 이야기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이 있다. 바로 삼성 제품을 곳곳에서 말하고 있는데 PPL인가 하는 의문이다. 재밌고,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예상하지 못한 반전에 놀란다. 다음 댄스 이야기는 언제쯤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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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의 목격자
E. V. 애덤슨 지음, 신혜연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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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책소개를 읽고 내 머릿속은 이 다섯 명의 목격자들이 각각의 의견을 내놓는 설정을 그렸다. 실제 읽으니 두 사람의 화자가 교차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두 명은 그 사건의 목격자 중 한 명인 젠과 그녀의 친구인 벡스다. 혹시 다른 사람들도 화자로 등장할까 하는 생각으로 계속 읽었지만 끝까지 둘만 나온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감정 등은 한때 언론인이었던 젠의 이야기 속에서 나온다. 이 교차하는 시선 속에서 어떤 대목은 조금 지루하기도 했지만 그 지루한 장면도 나중에 반전으로 이어진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범인과 그 범인의 심리 상태는 서늘함과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빌드 업이 탄탄하게 진행되는 소설이다.


젠은 자신의 개인 이야기를 컬럼을 썼었다. 상당히 인기가 좋았다. 사실적이고 개인적이고 솔직함이 대중에게 먹힌 것이다. 높은 연봉으로 승승장구하던 그녀가 어느 날 한 방에 무너진다. 그녀의 진솔함이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말이다. 이런 사실과 함께 5년 동안 사귀었던 남자 친구 로렌스와 헤어진다. 그녀에게 나쁜 일이 점점 많아진다. 이런 현실 속에 최악의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밸런타인데이에 자신의 눈앞에서 연인이 싸우고, 남자가 여자를 죽인 후 자살한 것이다. 소설의 첫 부분은 런던의 명소에서 벌어지는 이 살인 자살극을 직접 보는 것이다. 이때 이 장면을 함께 본 사람들이 다섯 명이고, 조깅하던 한 남자는 이 장면을 보고 달아났다. 만약 그가 자살한 남자 댄을 제이미와 힘을 합쳐 막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참혹한 살인과 자살 현장을 본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이때 있었던 사람들은 젠, 댄을 막으려고 한 제이미, 국회의원 줄리아, 살인 순간에 자고 있던 수련의 아예사 아메드와 소년 스티븐 등이다. 이상하게 목격자 중 한 명인 제이미의 연인 알렉스는 빠져 있다. 하지만 알렉스는 이 장면들을 찍고, 촬영했다. 의식적인 행동이 아니라 연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사진을 찍고 있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촬영물 중 하나에서 중요한 장면 하나가 나온다. 그것은 달아난 남자의 얼굴이 얼핏 잡힌 것이다. 젠은 그 남자가 누군지 금방 안다. 당연한 일이다. 5년이나 사귄 남친 로렌스다. 하지만 이 영상을 들고 그를 찾아갔을 때 그는 이 사실을 부인한다. 수상하다.


벡스는 대학 신입생 때 젠을 만났다. 젠은 자신의 부모님이 교통 사고로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벡스의 부모님도 돌아가셨기에 어색해하는 젠을 도와준다. 그렇게 둘은 평생의 친구가 된다. 이 둘이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시기는 벡스가 세계여행을 할 때 뿐이다. 젠이 힘들고 어려울 때면 언제나 벡스가 도와줬다. 로렌스와 헤어져 폭식증에 빠진 그녀를 도와준 것도 벡스다. 높은 수입을 받던 칼럼리스트 젠은 실업자가 되자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이때 그녀를 도와준 인물은 전직 언론인 페넬로페다. 페넬로페의 큰집에서 싼 월세로 그녀는 현재 살고 있던 중이다. 이때 한 통의 SNS 메일이 온다. 단순한 살인 자살 사건에 다른 진실이 있다고. 페넬로페는 이 사건을 더 깊이 파고들어 기사나 책으로 내놓아라고 말한다. 자신의 이야기만 팔아 온 젠에겐 낯선 일이다. 하지만 그녀에겐 선택사항이 별로 없다.


젠은 사건 당시 목격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개인사와 함께 그날의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이 본 것과 별로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 만남은 아주 중요하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알렉스의 동영상이나 달아난 소년의 정체 등이 나중에 하나씩 밝혀지면서 천친히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살인 자살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부모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의 딸과 아들에 대한 솔직하고 사랑 가득한 말들은 그 참혹한 현장을 더욱 가슴 아프게 한다. 젠은 자신이 취재한 사실을 벡스와 페넬로페에게 말한다. 선배 기자인 페넬로페는 좀더 열정적으로 이 사건을 파고들라고 말한다. 그러다 피해자 비키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다. 이 사실은 젠만 비키의 부모에게 들었던 정보다. 누가 이 사실을 언론에 알렸을까? 젠은 페넬로페를 의심한다.


현실 속에서 젠은 불안과 의심 가득한 삶을 이어간다. 그녀를 스토킹하듯이 메시지를 보내는 인물은 또 어떤가! 고조되는 불안감은 긴장감을 불러오고, 어느 순간 하나씩 쌓아올린 이야기는 벡스의 과거사가 흘러나오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이때부터 어느 정도 결말을 예상하면서 혹시 다른 반전이 있지 않을까 의심한다. 나의 의심이 사그라든 그 순간 예상하지 못한 사건 하나가 터진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작가는 왜 이런 사건을 일으켰는지 그 이유를 말한다. 이것은 과거와 이어져 있다. 내가 마지막까지 읽은 후 이 소설 전체의 평가가 좋은 쪽으로 흘러간 것도 이런 약간은 더디지만 확실하게 쌓아올린 서사들 때문이다. 예상한 것과 다른 방식이지만 다섯 명의 목격자들의 삶을 녹여낸 부분도 상당히 좋았다. 다른 작품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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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상자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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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작품이다. 편집자의 후기를 읽기 전까지 이 소설이 이렇게 오래 전에 나왔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집에 쌓아 둔 작가의 소설들을 생각하면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언제 시간 나면 미미 여사의 에도 시대 미스터리 소설들에 빠져 보려고 계획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독서 순서는 출간 연도 순이었다. 그런데 편집자 후기를 읽고 다른 방식으로 읽어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 덕분에 모셔 둔 책들이 아닌 것들도 먼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한참 이 작가의 초기 걸작에 빠져 정신없이 모은 책들이 대부분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숫자에 눌려 감히 도전을 못하고 있다. 올해가 가기 전 에도 시대 시리즈 한두 권 정도는 읽고 싶은데 과연 가능할지는 자신할 수 없다.


인터넷 서점에 장편소설로 소개되어 있다. 그래서 첫 단편이자 표제작인 <인내상자>를 조금은 덜 집중한 채 읽었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중에 펼쳐질 것이란 생각을 했다. 다음 단편을 읽을 때도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비슷한 이름이 나오면 앞 단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나름 열심히 찾았다. 아마 이 찾기는 책 끝까지, 편집자의 후기를 볼 때까지 이어졌다. 미련하고 둔감한 나의 작은 집착이다. 그리고 편집자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놓친 <인내상자>의 숨은 매력을 발견했다. 무심코 읽은 문장의 의미가 새롭게 해석되었다. <나는 전설이다>의 마지막 문장과 그 단편집이 생각난 것도 이 편집자의 후기 덕분이다.


편집자의 후기에서 말했듯이 어떤 소설은 여러 번 읽어야 그 의미가 제대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학창 시절 선입견과 편견으로 단편을 엉망으로 해석한 적이 있다. 나중에 다른 단편을 여러 번 읽으면서 작가의 의도를 열심히 파악하려고 한 글은 생각보다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이런 과거가 이 글을 읽으면서 떠올랐다. 이번 단편집에 실린 글들도 마찬가지다. 나의 집중도와 해석에 따라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무심코 읽었던 단편의 의미가 편집자의 해석을 통해 새롭게 다가올 때 다시 앞으로 돌아가 문장을 확인하고 그런 의미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십육야 해골>이다. 내가 놓친 문장과 숨은 의미는 이 소설을 다르게 읽게 한다.


<유괴>란 단편에서 유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유괴나 납치의 의미를 소설 속에서 풀어낼 때 크게 공감했지만 일반적인 생각만으로 현실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지막에 흘러나온 말과 그 시대의 사건 해결 방식 등은 낯설지만 재밌다. <도피>도 예상을 벗어난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무라이를 보디가드로 고용해 집으로 돌아오는데 일어난 사건은 그 사무라이 때문에 어긋난다. 재밌는 이야기는 그 뒤에 나오는 사무라이의 과거 이야기다. 그리고 그의 검술 실력에 대해 얼버무린 부분은 또 다른 재미다. <무덤까지>는 읽으면서 앞에 나온 <유괴>의 다른 모습으로 삶의 철학이 바뀐 부부의 숨겨진 비밀을 엿보았다. 미아였다가 이 집의 양자 등으로 들어온 아이들의 비밀스러운 사연도 섬뜩하면서 가슴 아프다.


<음모>는 한 관리인의 다른 면모를 잘 보여주는데 마지막 반전이 재밌다. 한 사무라이의 집에서 발견된 관리인에 대한 다른 기억들은 우리의 삶이 아닌가 생각한다. <저울>은 읽으면서 하나씩 풀려나오는 이야기에 그냥 빠져들었다. 처음 음식을 버린 사연에 공감할 때 기울어진 두 여인의 삶이 가슴속에 들어왔다. 거부의 후처가 된 친구에 대한 질투의 감정은 친구의 약점을 듣는 순간 갈등으로 이어진다. 선택의 순간은 언제나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녀의 과거사를 읽다 보면 어떤 선택을 해도 공감할 것 같았다. <스나무라 간척지>는 현실에서 시작해 과거의 추억으로 넘어간다. 그 시절 힘들었던 삶의 기록이 나오고, 숨겨 둔 감정은 어느날 갑자기 밖으로 드러난다. 물론 여전히 가린 채 있어야 하는 비밀도 있다.


이 단편집을 읽다 보면 정말 이 시대에 화재 사건이 많았던 모양이라면서 놀란다. 목재를 사용해 집을 짓던 시절이니 화재에 약할 수밖에 없다. 나무와 불은 조금만 소홀하게 다루면 화재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런 화재 속에 가려진 인간의 욕망은 그 불을 더 키운다. 내가 <인내상자>를 읽고 난 후 다른 단편들을 이 ‘인내상자’ 속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 것도 이 욕망들 때문이다. 어떤 불은 자신의 사랑 때문에, 어떤 불은 처참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불은 저주에서 달아나기 위해서다. 그리고 조금씩 흘러나온 비밀들은 화재 등과 엮일 때 더욱 잔혹하다. 나이가 들면서 느끼게 되는 기억력 감퇴를 편집자가 말할 때 다시 나의 저질 기억력을 떠올린다. 단편을 모두 읽은 독자라면 편집자의 후기까지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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