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피터의 고백 - 프란츠 카프카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마히 그랑 지음, 서준환 옮김, 프란츠 카프카 원작 / 늘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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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래픽노블의 원작은 프란츠 카프카다. 부제로 ‘프란츠 카프카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가 붙어 있다. 솔직히 말해 표지만 보고는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래픽노블이란 사실을 모른 채 부제를 보곤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오래 전 읽었던 카프카의 소설들을 생각하면 난해한 책에 대한 거부감이 점점 심해지는 나에게 맞지 않은 책이다. 그런데 출판사 리뷰가 나를 유혹했다. 그래픽노블이고, 책장을 덮고 나면 정말로 무대에서 상연되는 한 편의 모노드라마를 감상한 듯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유혹에 살짝 넘어갔다. 그리고 기대한 것처럼 빠르고 재밌게 읽었다.


한때 연극배우 추송웅 씨가 이 원작을 연극으로 올렸었다. 추송웅이란 이름보다 나중에는 영화배우 추상미의 아버지로 더 알려졌지만 나는 그 이름을 기억한다. 카프카의 단편집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데 아직 읽지 못했다. 이 그래픽노블을 읽기 전이나 읽은 후 원작을 한 번 읽었다면 이해의 폭이 더 넓어졌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게으름을 생각하면 가능성이 없는 일이지만. 작가 마히 그랑이 해석하고 연출한 그래픽노블로 이해해야 한다. 몇몇 대목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 이 소설에서 그것은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빨간 피터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해야 한다.


턱 수염이 덥수룩한 한 남자가 연설 연습을 한다. 그가 간 곳은 한 학술원이다. 담배를 물고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5년 전 사냥꾼들에게 포획될 때부터다. 맞다. 그는 사람이 아니다. 침팬지였다. 총에 맞은 후 배에 실려 옮겨진다. 처음에는 나무 상자에 갇혀 있었고, 나중에는 철창에 갇힌다. 그가 왜 빨간 피터로 불리는지도 이때 알려준다. 두렵지만 호기심 많은 그는 뛰어난 관찰을 통해 선원들의 행동을 모방한다. 처음에는 동작을 따라한다. 작가는 이 부분을 아주 간결하게 보여준다. 선원들이 피우는 담배를 건내줄 때 실수를 하기도 한다. 술은 또 어떤가. 그러다 인간의 말을 내뱉는다.


원숭이가 인간의 말을 한다고? 대단한 흥행의 요소다. 쇼는 성공하고, 점점 인간의 삶을 모방하고 배우는 빨간 피터는 사람의 모습을 닮아간다. 암컷 침팬지와 하룻밤을 보내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특히 낮 동안은 대면하고 싶지 않다. “그 망연한 표정, 길들여진 짐승의 눈길에 어쩔 수 없이 고여 있는 슬픔 때문이죠.” 빨간 피터도 인간의 말을 하지 못했다면 우리에 갇힌 채 이 암컷과 비슷한 표정과 눈빛을 가졌을 것이다. 그럼 그는 인간성을 가졌을까? 인간성의 정의는 또 무엇일까? 장 지로두의 “인간성이란 인간적 한계를 넘어서려는 어떤 시도이다.”란 정의는 인간적 한계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간다. 그 학술원에 있는 학자들이 빨간 피터의 보고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알려주지 않는 것도 재밌는 부분이다.


이 그래픽노블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진화론을 인용한 그림과 만나게 된다. 인류가 유인원에서 진화했다는 사실을 빨간 피터의 보고를 통해 간결하게 보여준다. 물론 5년만에 말을 배우고 인간처럼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지는 않다. 현실을 여기에 대입하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그를 작가는 아주 멋지게 표현한다. 가독성을 높이고, 곳곳에 의미 있는 그림을 넣어 놓았다. 성공한 원숭이가 인간처럼 행동하다가 원숭이의 옷을 입고 무대로 나가는 마지막 장면은 아주 의미심장하다. 카프카의 소설을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왠지 모르게 카프카의 소설을 이해한 듯한 착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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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크 머리를 한 여자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 지음, 이지민 옮김 / 혜움이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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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자신이 북아메리카 원주민이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도 아메리카 원주민과 관계 있다. 화려한 추천글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호로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나도 이렇게 끌려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이 소설의 구성과 전개 등이 예상과 달랐다. 과거의 실수에 대한 복수극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심리와 행동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가해자들이 느낀 혼란과 공포 등이 뒤섞여 풀려나오는 이야기는 나에게 낯설었다. 왠지 모르게 잘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어떤 대목은 빠르게 읽을 수 있었지만 가해자들이 느낀 감정들이 흘러나올 때, 그 감정이 예상하지 못한 행동으로 이어질 때 몰입감이 떨어졌다. 어쩌면 좀 더 천천히 읽어야 했는지 모르겠다.


네 명의 원주민들이 엘크 떼를 사냥한다. 금지 구역에 들어가 사냥을 하면서 부족 전체에 엘크 고기를 먹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사냥을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사냥하지 말아야 할 것을 사냥한다. 이 실수를 묻어둔 채 이 네 명의 남자들은 헤어져 각자의 삶을 산다. 이들은 캐시, 리키, 루이스, 게이브 등이다. 10년이 지난 후 이들은 한 명씩 죽는다. 가장 먼저 죽는 것은 리키다. 술집 밖에서 몸싸움 도중 사망했다는 기사 보도가 있지만 그가 그날 본 것은 다른 것이다. 엘크 머리를 한 여자를 봤고, 그가 저지르지 않은 행동이 술집 손님들과 다투게 만들었다. 읽다 보면 그가 환상을 보고 저지른 잘못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루이스는 백인 아내와 잘 살고 있다. 리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10년 엘크를 죽였고, 문제의 엘크 가족을 여전히 보관하고 있다. 그날의 실수를 가슴속에 품은 채 살고 있고, 이 사실을 그의 아내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팬을 고치려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가 엘크의 환영을 본다. 그 동안 숨겨둔 죄의식이 고개를 든다. 루이스의 이야기를 통해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독자들은 알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때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참혹한 장면이 나오지만 그것이 평소의 사냥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죄의식과 공포가 만들어내는 참극은 아주 잔혹하다. 그가 오해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야기 마지막까지 읽게 되면 의문을 다시 품게 된다.


두 사람이 죽은 후 남은 두 명은 같은 곳에 여전히 살고 있다. 캐시와 게이브는 절친으로 잘 살고 있지만 현실과 환영이 뒤섞인 일로 서로 의심한다. 호칭에도 변화가 있다. 엘크 머리를 한 여자를 ‘너’라고 부른다. 루이스가 죽을 때 데리고 있던 엘크 새끼와 관련이 있다. ‘너’는 마지막 복수를 위해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이 복수는 두 사람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공간 중 하나가 등장한다. 스웨트 로지란 문화적 공간과 그곳에서 경험하는 환상 체험이다. 빅터 옐로 테일 경관이 아들 네이트를 위해 계획한 것이다. 설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증막이 떠오른다. 캐시와 게이브의 개인사가 조금씩 드러나고, 불안감이 고조된다.


10년 전 엘크를 죽인 후 네 명 모두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 유일하게 그 전에 아이를 가진 인물이 게이브다. 그의 딸 데노라는 아주 뛰어난 농구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뛰어난 실력은 백인들이 혐오 감정을 담아 노래를 할 정도다. 이 소설의 제목과도 관계 있는 “좋은 인디언은 오로지 죽은 인디언뿐”이란 노래다. 농구는 루이스의 이야기에서도 중요한 장면이다. 하지만 데노라가 나온 이후는 엘크 머리를 한 여자와 1대1 농구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이 농구와 함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그들의 미래가 얼마나 닫혀 있는지 등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엘크 머리를 한 여자의 참혹한 복수극이다. 하지만 그녀를 화자로 두지 않고, 화자를 그녀에게 좇기는 사람들에게 두면서 다른 감정으로 이 장면들을 보게 한다. 그리고 내가 평면적으로 인식한 아메리칸 원주민의 삶을 엿보게 한다. 강한 집중력으로 읽어야 하는 부분이 많다.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장면에서 잠시 한 눈을 팔면 나처럼 의문을 더 품게 된다. 단순히 표면적으로 드러난 장면 너머의 의미도 파악할 수 있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의문을 품게 하는 장면들이 많지만 지금 이 순간 몇 장면이 머릿속에서 여운을 남기고 강하게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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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제9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
정욱 외 지음 / 마카롱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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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수상 작품들을 자주 읽는다. 단편 수상작품집도, 장편 수상작도 기회가 되면 읽고 있다. 취향을 살짝 벗어나는 소설도 있지만 대부분 만족하면서 읽고 있다. 이번 단편집을 받고 이 수상작품집도 상당히 오랫동안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억의 혼란에 의한 착각이었다. 장편과 엮이면서 오래 전부터 읽은 것으로 헷갈린 것이다. 2021년 9회를 맞이했다는 사실도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다섯 작품이 선별되었고, 나의 시선을 끄는 작품도 상당히 많다. 개인적으로 심사평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독자와 작가의 시선이 갈리는 부분이 눈에 더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정욱의 <네 딸을 데리고 있어>란 제목을 보고 단순 유괴 사건으로 생각했다. 읽기 전에는 몰랐는데 마지막 단어 ‘있어’와 ‘있다’의 의미 차이는 상당하다. 아마 일반 유괴범이라면 ‘네 딸을 데리고 있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 의미 차이를 알려주는 과정에 흘러나오는 학교 폭력과 아동 학대는 예상을 벗어난 전개로 이어지게 한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는 평생 트라우마 속에 살지만 가해자는 인플루언서로 승승장구하는 모습은 최근 몇 년 동안 연예인에 대한 폭로와 맞닿아 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잠시 어리둥절했다. 앞의 문장을 다시 읽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최소 경장편으로 바꾸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이담의 <조립형 인간>은 생각하지 못한 설정으로 이어졌다. 힘들게 대기업 인턴에 들어갔지만 정규직 채용까지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첫날부터 희주의 눈길을 사로잡은 남자 인턴이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그의 비밀을 알게 된다. 어떻게 보면 조금 황당한 설정일 수 있지만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는 현실을 돌아보면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욕망이, 강박이 담겨 있다. 치열한 경쟁과 욕망이 뒤엉키는 와중에 생긴 작은 사건보다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정규직 채용 과정에 벌어지는 남녀 차별이다. 비극도 그 속에서 잉태했다. 의문을 품게 하는 마지막 반전도 눈길을 끈다.


청예의 <웬즈데이 유스리치 클럽>은 한방을 꿈꾸는 지우의 삶을 세밀한 심리 표현으로 보여준다. 코로나19로 중소기업에서 문자 해고된 후 취준생이 된 그가 바라는 것으 한방으로 부자가 되는 것이다. 제목의 모임에 가입해 열심히 재테크 공부를 하는 것 같지만 속내는 한방에 있다. 이 클럽에 특별 게스트가 와 주식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다른 멤버들이 연 10% 수익을 말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그에게 대박을 꿈을 불어넣으며 특별 게스트와 모임장이 유혹한다. 불안감이 강하게 느껴지지만 욕망과 분위기에 휩쓸린다. 이 소설의 강점은 이 분위기와 심리 표현에 있다. 그리고 누구나 예상 가능한 결과와 예상하지 못한 지우의 반응이 씁쓸한 재미를 준다.


오승현의 <밸런타인 시그널>을 읽고는 당혹감을 느꼈다. 천문학 전공자 조는 현재 백수다. 그의 유일한 재산은 어머니가 물려준 수도권 재개발 아파트다. 외계의 존재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하나씩 풀어놓는다. 평온한 일상 속에 유일하게 그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은 전 여친이 대학교수가 되어 방송에 나오는 것이다. 작은 열등감이 있다. 이때 윗집에 꼬마들을 데리고 한 부부가 이사 온다. 백수라 낯에도 집에 있는 그에게 아이들이 쿵쾅거리는 소리는 너무 시끄럽다. 그리고 우주로부터 이상한 신호가 잡힌다. 층간소음 문제도 발생하고, 외계의 신호는 그를 혼란으로 몰아간다. 어느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틀어진다. 부동산, 층간소음, 담배 냄새 등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현실을 그려내면서 한방에 판을 돌려버린다.


임수림의 <너에게>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인간과 놀아줄 목적으로 만든 로봇이 인간의 감정을 가지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다룬다. 로봇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인간처럼 행동한다. 이 로봇의 외양은 만든 박사의 죽은 아들과 닮았다.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아는 순간 박사는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라고 한다. 이 호칭에 담긴 감정은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이야기는 이 로봇이 수안이란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다. 자신의 탄생과 수안에게 느낀 감정과 그 후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담담한 듯한 이야기이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혹시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연작을 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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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
곽재식 지음 / 비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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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열심히 글을 쓰는 작가다. 오래 전 <모살기>란 단편집으로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아! 이 책은 아직 읽지 않았다. 이후 그의 이름을 여기저기에서 자주 발견했다. 소설에서만 발견했다면 그냥 다작이구나, 하고 넘어갈 텐데 과학, 인문, 어린이 등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글을 쓰고 있다. 실제 이 책을 읽기 전 그의 이름만으로 나온 책을 읽은 적이 없다는 것도 조금 의외다. 혹시 그의 소설을 한 편도 읽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의심에 목록을 검색하니 다행스럽게도 몇 권의 단편집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하게 되었다. 집에 그의 소설집 몇 권이 있는데 왠지 손이 나가질 않아 아직까지 읽지 않고 있는 것은 다른 작가들과도 비슷한 부분이다.


이 단편집에 실린 글들은 모두 ‘환상문학웹진 거울’에 연재된 소설이다. 이 웹진의 이름을 자주 보지만 제대로 들어가서 소설들을 읽은 적은 없다. 이 웹진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본 것도 작가의 말이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이 단편집에 실린 소설들의 간단한 정보를 알려준다. 모두 읽은 후 보면 나의 감상과 다른 느낌과 예상하지 못한 의도를 알 수 있다. 이런 것과 상관없이 이 단편집은 재밌다. 읽다 보면 공감할 부분도 상당히 많다. 황당해서 ‘뭐야?’라고 외칠 정도의 소설도 나온다. 마지막 문장이 반전처럼 다가와 앞의 이야기를 곱씹어야 할 경우도 있다. 웃음을 터트리지만 왠지 그 웃음이 씁쓸한 경우도 있다.


헌혈을 독려하기 위해 쓴 글이 표제작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이다. 작가의 말에 나온 이야기이니 참고하시길. 이 단편의 미덕은 황당함을 능청스럽게 밀고 나간 것이다. 헌혈 후 주는 빵에 황당한 기능을 부여한 부분은 황당과 막말의 극치다. 혹시 갑자기 헌혈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면 외계인들이 문제의 빵을 획득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이상한 녹정 이야기>는 안면인식 프로그램에서 같은 사람으로 판정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1960년대, 1980년대, 2000년대에 모두 똑같이 생겼다는 설명에 다른 소설이 떠올랐지만 작가는 신라시대 최치원을 끌고 와 황당한 이야기를 펼친다. 마지막 장면을 읽은 후 인류가 모두 채식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시간여행문>은 SF소설의 흔한 소재인 시간 여행을 다룬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생각한 이 시간 여행을 위해서라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기계가 처음 생긴 시대부터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고 지금까지 읽은 시간 여행자 이야기는 모두 가짜란 말이야!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신들의 황혼이라고 마술사는 말했다>는 게임이 끝난 후 게임 속 마술사와 게임 플레이어 사이의 기묘한 관계를 간략하게 풀어내었다. 게임 속 캐릭터가 더 역동적으로 나온 것이 상당히 흥미롭다. <슈퍼 사이버 펑크 120분>은 한국의 극악적인 액티브X 정책을 아주 긴박하고 사실적으로 재현한 소설이다. 지금도 은행 사이트에서 검색이나 송금하려면 공동인증서와 보안프로그램 등을 깔아야 한다. 읽다가 나의 답답했던 경험이 울컥 치솟았다.


<판단>은 회사 상사가 후배 직원에게 쏟아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마 나도 이런 종류의 말을 자주 했을 것이다. 당연히 많이 듣기도 했다. 이 소설의 매력은 마지막 문장에 있다. <차세대 대형 로봇 플랫폼 구축 사업>은 갑질과 아는 척이 결합해 만들어낸 황당한 상황극이다. 로봇의 원래 기능보다 자신에게 익숙한 조종법을 강요한 갑질의 끝은 황당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로봇 개발팀의 의도와 발주한 개발청의 인식 차이가 만들어낸 현실극이다. <멋쟁이 곽 상사>는 IMF 시대를 배경으로 곽 상사라는 노인과의 기억을 풀어낸다. 화자의 의욕적인 업무 추진을 안되는 사유를 찾아 사사건건 방해한다. 왜? 그런데 온 동네의 존경을 받는다. 그리고 들려주는 현대사의 비극과 이 비극을 넘어선 코미디가 재밌다. 마지막 문장은 전설을 의심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집중력이 가장 깨어진 단편이 <기억 밖으로 도주하기>다. 알 수 없는 시설에 감금된 후 탈출에 성공한 그가 기억하는 것은 한 여성의 얼굴뿐이다. 읽으면서 사이버 공간을 연상했다. 탈출한 그가 보게 되는 수많은 간판과 지역 정보가 간략하게 표기되어 이런 생각을 강화시켰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에서 아! 하고 놀랐다. <지상 최후의 사람일까요>는 사람이 단 한 명 남은 아주 먼 미래 이야기다. 최후의 인간은 치명적 바이러스도, 핵전쟁도, 로봇의 반란도 아닌 출산률 감소의 결과다. 읽다 보면 이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말이다. 홀로 남은 사람의 결단과 그 탄생 이면이 묘하게 머릿속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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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치 1 - 악당 기지로 출근하는 여자
나탈리 지나 월쇼츠 지음, 진주 K. 가디너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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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기지로 출근하는 여자’란 부제가 붙어 있다. 호기심을 자극한다. 빌런에게 고용되어 온갖 잡무를 하는 사람을 ‘핸치’라고 부른다. 영화나 만화 등을 볼 때 늘 배경처럼 생각했던 인물들이다. 대부분의 히어로물이 히어로나 빌런에 초점을 맞춘다. 조금 비중이 올라가면 악당 옆에 선 비중 있는 역할 정도가 전부다. 그런데 이 작가는 아예 우리가 눈길도 잘 주지 않는 직종을 들고 나와 히어로물의 서사를 비튼다. 히어로의 빌런 진압 과정에서 생긴 문제도 부각시킨다. 이 문제는 이미 다른 작품에서 다루어진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당사자가 주인공인 경우라면 어떨까? 주인공 프리랜서 헨치 애나는 빌런 옆 조연으로 있다가 히어로의 작은 손짓에 다리가 부러진다. 무시무시한 힘이다.


스파이더맨이었던가? 거대한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한 것이. 너무 자주 인용되는 문구라 출처를 잘 모르겠다. 애나는 주로 데이터를 다루는 업무를 담당하는 헨치다. 가장 친한 친구 준은 냄새에 대한 초능력이 조금 있지만 애나는 그런 능력조차 없다. 빌런이 죽거나 잡히면 헨치는 당연히 실직한다. 그럼 인력센터에 가야 한다. 이 세계에는 히어로도 많지만 빌런도 많다. 끊임없이 생긴다. 일자리도 계속 생긴다. 이렇게 적고 보니 이 직업이 상당히 안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히어로의 빌런 제압 과정에 죽는 헨치들이 상당히 있다. 히어로 영화 등을 보면 사무실에 일하는데 부수고 들어온 히어로에 당하는 수많은 악당 조연들이 있는 것일 생각하면 된다.


애나가 선호하는 직업은 당연히 정규직이다. 히어로에게 늘 당하는 빌런에게 정규직이 가능할까? 안전한 내근직을 선호하는데 어느 날 빌런이 그녀에게 악당 짓하는 현장으로 그녀를 데리고 간다. 흔한 악당의 협박이 벌어진다. 그녀는 어떤 일이 벌어질 지도 몰랐고, 악당의 행위를 돕는 장면이 방송에 나가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늘 그렇듯이 결정적인 순간 슈퍼히어로가 현장에 뛰어들어 빌런과 그 졸개들을 물리친다. 간단히 제압될 것 같지만 상당히 버틴다. 빌런은 달아나고, 그를 쫓는 과정에 슈퍼히어로 슈퍼콜라이더가 툭 친 동작에 그녀는 망가진다.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한다. 그리고 빌런의 인사팀에서 해고통지서가 날아온다.


큰 부상에 해고까지 당한 그녀를 돌봐주는 것은 절친 준이다. 준의 집에 머물면서 그녀는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을 깨닫는다. 슈퍼히어로의 활약으로 죽거나 피해본 사람들에 대한 수치화다. 슈퍼콜라이더가 현장에 나타나 빌런을 잡거나 죽이면서 발생한 생명과 재산 피해는 상당하다. 애나는 이것을 스프레드시트에 정리하고 블로그에 올린다. 그녀의 작은 분노에서 시작한 작업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는다. 이 작업 덕분에 애나는 최고의 빌런 레비아탄의 회사로 스카우트된다. 이제 그녀는 악당 기지로 출근하는 여자에서 슈퍼히어로를 무너트리는 계획을 세우는 잘 나가는 헨치가 된다. 다른 시각에서 본격적으로 히어로물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 세계이 숨겨진 비밀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히어로가 등장하는 소설이다 보니 그들의 능력이 소설 곳곳에 나온다. 슈퍼히어로의 이름이 상당히 낯설지만 그들의 능력까지 낯선 것은 아니다. 어떤 대목은 내가 들은 <더 보이즈>의 설정과 닮은 부분도 있다. <더 보이즈>는 좀더 은밀하게 막 나가는 부분이 있지만 말이다. 히어로물의 조연들이 주연으로 나서게 되면 인간적인 모습이 자주 나올 수밖에 없다. 그들은 노동자이기도 하다. 물론 히어로 편에서 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설 속에 히어로 편에서 빌런으로 넘어온 인물도 나온다. 슈퍼히어로의 육체적 강함은 무적이지만 정신력까지 무적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슈퍼히어로가 쉽게 악당에게 무너지지는 않는다. 작가는 여기서 크고 작은 이벤트를 넣어 시선을 계속 잡아당긴다.


히어로물에 열광하면서 자랐다. 악당을 물리치는 그들에게 환호했다. 나도 그들처럼 악당을 물리치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자라면서 조금씩 희미해졌다. 히어로의 활약과 그 이면과 배경을 보면서 시선이 조금씩 바뀐 것이다. 그렇다고 악당을 응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악당을 응원했다. 일반적인 히어로물의 이분법적 세계가 이 소설 속에서 깨지고, 남성우월주의 타파도 눈길을 끌기 때문이다. 초인의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인간(?)의 삶을 살면서 겪게 되는 일들은 우리와 별다르지 않다. 작가는 곳곳에 정치적인 문제들을 넣고, 판타지의 재미를 풀어놓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슈퍼히어로의 이미지를 대입해서 읽어도 재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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