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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잡
해원 지음 / CABINET(캐비넷) / 2022년 3월
평점 :
작가 해원의 두 번째 소설이다. 전작 <슬픈 열대>를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 이번 소설도 전작처럼 속도감이 대단하다. 이번에도 주인공은 여성이다. 전작에서 북한 특수요원 순이가 강렬한 액션을 선보였다면 이번에는 우리 사회 이면의 삶을 보여준다. 주인공 연희가 일하는 미래 클리닝은 범죄 현장의 시체를 처리하고 경찰이 알아챌 수 없도록 범죄 흔적을 지우는 조직이다. 그녀가 이 회사에 들어가게 된 이유는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기와 관련 있다. 1998년대 IMF 시절이다. 국가 부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앉고, 일자리를 찾아 돌아다닐 때다. 이후 한국 사채 시장이 엄청나게 커졌고, 불법 추심 문제가 늘 불거지던 시절이었다. 연희도 아버지의 부채를 껴안고 허우적거리던 시절이다.
미래 클리닝의 일자리를 알선한 것은 채권업자다. 처음에는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 이자 빚은 점점 늘어나고, 일자리는 아무리 주변도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청소업체가 한계에 부딪힌 그녀에게 아주 큰 일당을 주겠다고 한다. 한 건 할 때마다 60만 원이다. 처음 이들을 따라 간 현장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범죄 현장의 시체를 처리하고, 현장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이다. 놀라 달아나려고 하지만 바로 잡히고, 돈 앞에 어쩔 수 없이 일한다. 돈의 마력은, 높은 일당은 그녀가 이 회사로 출근하게 한다. 이렇게 연희는 점점 불법 세계에 발을 담근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처럼 건물 붕괴 사고로 가족을 잃은 성수를 만난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성수와 알콩달콩한 사연을 만들거나 이 일을 둘러싼 사회의 모습을 깊게 파고들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이야기를 거절한다. 미래 클리닝의 원칙은 불법적인 현장만 처리하고, 일반 아이와 여성은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황일 때 이런 원칙은 잘 지켜지지만 불황이 되면 원칙은 점점 무너지게 된다. 재밌는 점은 IMF 이후 한국이 외국에 자본 시장을 열어준 것처럼 이런 불법 청소도 외국에 시장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덕분에 업체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가격 경쟁이 벌어진다. 원칙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이 틈을 파고드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작가가 구축한 사회는 철저하게 분업화되어 있다. 누군가가 사람을 죽이면 청소 업체에 의뢰하고, 청소 업체는 깨끗하게 청소한 후 시체를 황천에 보내 분쇄한다. 만약 누군가를 죽일 일이 있다면 망나니라 불리는 조직에 의뢰하면 된다. 이 청소업도 고수익 업종이고, 지역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미래 클리닝은 강남을 맡고 있다. 업체는 협회에서 배정해준 지역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업체 간의 다툼이 생기면 협회가 조정하지만 증거가 없다면 그냥 유야무야된다. 이 소설 속 에피소드 하나가 바로 이 업체간의 경쟁이다. 한참 궁지에 몰린 것 같은 미래 클리닝의 반격은 순식간에 벌어지고,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이끌어낸다. 통쾌하다고 말한다면 너무 잔인한 것일까?
작가가 감상을 제거했다고 말할 수 있는 대목 중 하나가 청소하던 중 발견한 목격자를 데리고 황천으로 가는 대목이다. 연희마저도 그를 구하기 위해 어떤 행위를 하지 않는다. 다만 그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보여준 아주 섬세하고 특별한 능력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이 능력이 앞으로 벌어질 중요한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남들이 무심코 보고 지나간 곳을 그녀는 이상함을 느끼고 파헤친다. 후반부에 이 능력은 빛을 발한다. 앞에 조금씩 깔아둔 설정과 관계가 어느 순간 하나씩 엮이면서 그녀의 일을 쉽게 만들어준다. 쉽다고 했지만 이 표현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까지 오기 전 그녀가 소소하게 해결한 에피소드가 바탕이 된다.
읽다 보면 한국 현대사의 비극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연희 동생이 죽은 붕괴 사고는 삼풍 백화점이지만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누구나 바로 연상할 수 있는 사건이다. 박정희 독재 시절 중앙정부부장을 한 김형욱 사건은 후반부에 중요한 이벤트다. 거대한 비자금을 둘러싼 탐욕의 굴레가 여러 조직과 사람들을 둘러싸고 맴돈다. 짧은 호흡으로 빠르게 몰아치는 이야기는 책에서 손을 떼기 힘들게 한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시체가 계속해서 생긴다. 일상의 작은 틈새로 벌어지는 살인의 원흉이 드러날 때 그것을 덮는 세력가의 모습도 보인다. 지독하게 어두운 사회의 이면이다. 처음 시체 청소란 설정을 보고 기리노 나쓰오의 <아웃> 속 여성들을 떠올렸는데 이 소설이 작가의 이번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궁금하다. 재미와 속도감 모두 대단한데 모두 읽은 지금 씁쓸함도 같이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