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도시 속 인형들 1 안전가옥 오리지널 19
이경희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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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시기가 확정되어 있지 않은 미래의 메가시티 평택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이버펑크 범죄수사물이다. 왜 평택이란 도시를 지정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지만 책 속에 나오지 않는다. 이 도시를 이미 다르 작품에서 선보인 적이 있다고 하는데 읽은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소설은 두 번째다. 다른 앤솔로지에서 단편으로 만난 적이 있을 뿐이다. 작가 목록을 보면 낯익은 제목과 낯선 제목들이 교차한다. 생각보다 많은 소설들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 책은 연작소설집이다. 메가시티 평택의 샌드박스를 배경으로 한 시리즈 중 한 권일수도 있다. 작가와 프로듀서의 말에 의하면 가능성이 아주 높다.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χ Cred/t>는 안전가옥 스토리 공모전에 당선되어 <대스타>란 앤솔로지에 실렸던 이야기다. 아직 <대스타>를 읽지 않아 재밌게 읽었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유튜브 같은 플랫폼의 극단적인 모습과 경계가 무너진 인간 복제 및 유전자 조작 등의 이야기를 다룬다. 처음에 ‘χ Cred/t’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고민되었는데 작가가 친절하게 카이 크레디트라고 말해준다. 카이는 넷 소아이어티 사상 최고의 수퍼스타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의 아이가 아니다. 유전자 조작 등을 통해 만들어진 아이다. 놀라운 것은 이 카이를 100개나 복제해 방송을 만든다는 것이다. 방송 중 카이들 중 한 명이 죽이고,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 수사를 진강우 검사와 주혜리가 해결한다. 실제 현장에서 고생하는 인물은 주혜리다.


<저 디지털 세계의 좀비들>들은 좀비들에게 쫓기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잠시 과거로 돌아간다. 힘든 알바를 하고 있는데 강우 검사에게 연락이 온다. 시간 의뢰다. 의체를 사용하고 있는 노인들이 다른 노인들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 원인을 찾아내고 해결하란 것이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미래의 노인들도 현재의 노인들처럼 자식들에게 등골을 빼먹히는 현실을 그려낸다. 그리고 바이러스에 의해 의체를 단 노인 등이 다른 노인들을 공격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프로그램 언어다. 너무나도 쉽게 프로그램을 짤 수 있는데 문제는 이 쉬운 일 뒤에 숨겨져 있는 욕망이다. 미래에 이런 좀비도 가능할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 흥미진진하다.


<파멸로부터의 9호 계획>은 음모론자들의 해킹으로 생긴 문제를 다룬다. 사건 해결을 위해 해커를 쫓던 혜리는 범인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갇힌다. 문을 열고 나가면 되는데 열림 화면이 없다. 방법은 하나, 화면에 나온 게임을 클리어하면 된다. 고전게임 둠이다. 갇힌 공간 속에서 둘이 주고받는 이야기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음모론을 배경으로 한다. 대표적인 음모론 중 하나가 지구평평설이다. 샌드박스 속 고속엘리베이터가 폭주하고, 충돌 직전까지 간다. 긴박한 과정 속에 터져 나오는 작은 유머는 살짝 웃게 한다. 작은 소품이지만 재밌는 캐릭터의 등장으로 아주 흥미진진했다.


<슈퍼히어로 프로듀서>는 예상한 설정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설정이 겹쳐 있다. 이 단편 속에 주혜리의 과거가 조금 흘러나오고, 한국 교육시장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 있다. 만들어진 슈퍼히어로 스위치와 빌런의 존재, 여기에 방송이 곁들여지면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슈퍼히어로가 필요 없는 사회가 가장 좋지만 현실의 부폐와 비리는 오히려 자신들의 욕망을 대신 해소해 줄 히어로를 갈망한다. 연출과 사실이 교차하고, 성적 제일주의에 빠진 한국 부모를 구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씁쓸한 것은 그렇게 나쁜 교육 현장을 경험한 부모들이 자신의 성공에 취해 자신의 아이들을 아동학대로 내몬다는 것이다, 부모의 사랑이란 이름으로.


마지막 단편 <트윈플렉스>는 휴머노이드와 또 다른 안드로이드의 학대를 다룬다. 실제 인간의 유전자 복제 등을 통해 만들어진 이 안드로이드는 그 본체의 시선 등을 공유한다. 텔레파시가 통하는 쌍둥이 같다는 표현이 더 맞을 지도 모른다. 이 단편 속에는 성차별, 성 취향, 강요된 폭행과 학대 등을 넣고, 뒤틀린 욕망과 권력이 만들어 낸 현실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법 위에 올라선 부유층의 존재는 읽는 내내 불편했고, 이것이 미래의 상상만이 아니란 사실에 조금 암울했다. 그리고 작가가 소개하는 몇 가지 놀라운 무기 등은 앞으로 펼쳐질 액션 등에 멋지게 활용될 것 같다. 과연 어떤 식으로 이 세계를 키우고 가꿀지 궁금하다. 더 읽고 싶은 작가가 또 한 명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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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증인 - The Last Witness
유즈키 유코 지음, 이혁재 옮김 / 더이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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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 김성종의 소설이 먼저 떠올랐다. 오래 전 아주 재밌게 읽었고, 형사 오병호에 매혹되었던 소설이었다. 그런데 작가 이름이 낯익다. 작년에 <달콤한 숨결>로 나를 사로잡은 작가다. 위시리스트에 두 권을 올려두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서점에서 검색을 하니 구판본이 보인다. 다른 출판사, 다른 번역으로 나왔던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책들이 더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절판된 책이 나온다는 것은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해설을 읽다 보면 다른 소설들도 상당히 많다. 미출간 책들도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이 정도 무게와 가독성을 가진 작가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소설 속 변호사 사가타 사다토는 검사 출신이었다. 하나의 사건을 경험한 후 검사를 그만 두고 변호사가 되었다. 재밌는 것은 이 소설 이후 사가카 검사 시리즈가 출간되었다는 것이다. 변호사 사가타와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 같은데 언제 번역되어 나올지 모르겠다. 실제 이번 소설에서 사가타가 나오는 분량은 그렇게 많지 않다. 중요한 변론을 맡고 있지만 그가 발로 뛰면서 증거 등을 모으는 장면은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다른 검사의 일상과 그가 변론을 맡은 사건의 관계자의 과거를 차분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작가는 이 부분에서 살짝 트릭을 사용해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만든다.


이 사건 7년 전 한 소년이 음주운전자의 차에 치여 죽었다. 의사 다카세의 아들이다. 아이가 잘못했거나 다른 요인이 있었다면 죽은 아들을 가슴에 안고 살아갈 수 있지만 이 운전자는 술을 마신 상태에서 과속까지 했다. 당연히 법의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역 공안위원장이란 직위가 그를 불기소처분으로 결론 짓게 한다. 경찰이 사건을 조작한 것이다. 당연히 법의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한 부모에게 이 소식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이유를 알기 위해 전화하고, 경찰서까지 찾아가지만 조사서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그를 밖으로 밀어내려고만 한다. 이때 담당 형사가 나타나 분노한 아버지의 손찌검을 받으면서 쫓아낸다. 형사의 행동이 이 결과를 더욱 의심스럽게 만든다.


소설은 재판 3일을 다루면서 과거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낸다. 사가타가 이 도시에 온 감회를 처음에 풀어낼 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의 과거가 하나씩 흘러나온다. 검찰의 기대를 크게 받던 그의 갑작스러운 퇴직과 그 이유가 말이다. 그리고 이 일은 이 소설에서 핵심으로 삼고 있는 부분이다. 죄를 지었으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 강하다. 사가타 변호사와 대립하는 쇼지 검사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이 부분은 점점 더 강해진다.


다카세 가족에게 일어난 일은 읽는 내내 분노하게 했다. 분명한 증인이 있는데 어린 학생이란 이유로 증언이 무시된다. 다카세 부부가 바란 것은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지만 권력은 이것을 무마시킨다. 현실에서 비일비재하게 생기는 일이다. 하지만 음주운전자가 반성하지 않고 다시 술 마시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면 억누르고 있던 분노가 폭발한다. 이런 종류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들이 분노하지만 행동하지 않은 모습에 대단하다고 느낀다. 나라면 무엇인가를 들고 가서 복수를 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물론 이 복수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현실의 대다수 사람들은 다카세 부부들처럼 행동할 것이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겹치게 되면 살의는 더욱 커지고, 행동으로 옮겨진다. 작가는 이 부분을 아주 잘 만들고, 독자로 하여금 공감하게 했다.


대단한 가독성을 보여준다. 다카세 가족에게 일어난 일이나 사가타의 사연 등은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다. 작가는 이 두 사건을 같은 이야기 속에 녹여 내면서 검사와 경찰의 균형을 잡았다. 좋게 말하면 견제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권력 유착 비리를 보여준다. 이런 부패와 비리에 희생되는 것은 언제나 선량한 피해자들이다. 작가는 이 작품 속에서 피해자를 잘 녹여내었다. 철저하게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을 보여주고 변론하면서 사실에 한 발 한 발 다가간다. 그리고 밝혀지는 최후의 증인과 그의 증언이 만들어낸 현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다시 한번 왜 이 작가의 작품들을 독자들이 칭찬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나도 그런 독자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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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나서 - 자칭 리얼 엠씨 부캐 죽이기 고블 씬 북 시리즈
류연웅 지음 / 고블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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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웅을 주로 단편집에서 만나다 경장편으로 만났을 때 이 작가 이름을 완전히 기억하게 되었다. 한 편을 제외하면 그의 소설들은 주로 앤솔로지에서 만났다. 나의 저질 기억력이 그 소설들을 모두 기억할 리는 없고, 이 글을 적으면서 찾아보니 기발한 발상에 놀란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표지를 보고 무슨 소설이지 의문을 품었는데 과거 이력을 보니 조금은 고개가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주인공 외모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왠지 괴물 같은 이미지를 사전에 심어주는데 이 소설은 힙합 뮤지션에 대한 이야기다. 책소개에도 그렇게 나온다.


아직 나에게 힙합은 어렵다. 하지만 작가는 힙합의 가사나 비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힙합 음악과 그 주변 세계를 그려낼 뿐이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내가 손에 꼽을 정도로 본 프로그램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쇼미더머니>란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우원재란 뮤지션에 입감한 듯한데 이 뮤지션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언제 시간이 나면 한 번 들어보고 싶다. 이 뮤지션에 대한 호평을 이전에 한번 다른 래퍼에게서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다시 음악을 듣기 시작했는데 이 이름은 잊고 있었다. 어떤 부분에서 나의 취향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


릴뚝배기와 조헤드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서로 다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둘은 같은 인물이다. 무명의 래퍼 릴뚝배기가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우승하면서 생긴 캐릭터가 조헤드다. 실제 이 두 이름은 하나에서 갈라져 나왔는데 그 이름을 여기서 적기가 조금 민망하다. 처음 릴뚝배기의 시간 제한 미션이 먼저 나온다. 고등학교 중퇴하고 모든 것을 힙합에 바친 릴뚝배기가 1집을 내고 랩을 버리려고 한다. 이때 나타난 인물이 있다. 스스로 ‘힙합의 신’이라고 부른다. 고등학교 중퇴할 때 내뱉은 “제가 만약 힙합을 버리려고 한다면… 가차 없이 저를 뒤지게 해주세요.”란 맹세가 불러온 현상이다.


릴뚝배기가 올린 동영상에 항상 달린 댓글이 하나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란 문장이 붙어 있다. 진짜 팬을 찾기 위해 신이 하루의 시간을 준다. 그리고 조헤드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우승으로 유명해졌다. 소속사도 생기고, 이전 동료 무알콜과 헤어졌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 얼마나 많은 지 잘 모르지만 방송 한 번의 효과는 분명하다. 조헤드의 이야기가 나올 때 평행우주를 이 이야기에 끌고 들어왔나?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조헤드가 SNS에 올린 글 하나가 문제가 되면서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엮어내는 것을 보고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ㅈ같다.” 여기서 ‘ㅈ’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단어다. 방송국 쇼케이스를 준비하던 중이고 유명해진 래퍼의 이 문장은 큰 반향을 불러온다. 1집 발매 쇼케이스가 취소될 수도 있다. 이것을 무마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급박하게 진행된다. 한국이라서 가능한 하루만의 뮤직비디오 촬영과 편집을 현실과 편집 기술을 통해 책 속에서 구현한다. 처음 나온 릴뚝배기의 이야기가 다시 교차하고, 그의 간략한 과거사를 찾아간다. 무엇보다 그의 동영상에 꾸준히 댓글을 단 진짜 팬을 찾고 싶다. 이 과정에서 힙합의 무대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조금씩 보여준다. 이 현실적 변화가 시선을 끈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진짜 팬의 등장과 분 단위로 쪼개진 마지막 장면은 리얼 부캐와 진짜 캐릭터의 합체로 이어진다. 여기에 예상하지 못한 멘트가 시선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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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테일 안전가옥 FIC-PICK 2
서미애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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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동화를 재해석한 앤솔로지다. 최근 고전 동화 등을 재해석한 소설들이 많이 나온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동화가 떠오르는 경우도 있지만 가끔 낯선 느낌을 주는 동화도 있다. 분명히 내가 읽었던 동화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기억이 흐려진 듯하다. 이 앤솔로지에 참여한 다섯 작가들은 낯익은 작가들이다. 최근 즐겨 읽는 작가도 있고, 오랜만에 만난 작가도 있다. 검색하니 처음 만나는 작가도 있다. 낯익은 이름이라 한 번 정도는 읽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가끔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문제 때문에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뭐 이 때문에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된 것도 좋은 일이다.


서미애의 소설은 정말 오랜만이다. 노블마인에서 나온 소설들 이후 거의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에 소설들이 조금씩 그 이름이 보인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는 제목에서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바로 떠오른다. 작가는 이 동화를 현대의 가정 폭력과 연결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의 이전 작품들처럼 스릴러를 단편 속에 간결하게 녹여내었다. 현행법 상의 문제가 그대로 드러나는데 작가의 말을 보면 현재 그녀가 작업하는 작품에 대한 기대를 품게 된다. 우리 현실에서 지금 가장 무서운 것은 호랑이가 아니라 사람이고, 그 사람이 가족 중 한 사람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잘 보여준다.


민지형의 <신데렐라 프로젝트>는 제목에서 바로 <신데렐라>의 변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밌는 것은 이 신데렐라 역할을 남자들이 하는 것이다. 요즘 남자 신데렐라 이야기가 가끔 나오는데 이 소설은 그것을 직장 내 성희롱 등과 엮었다. 인턴 사원 중 한 명이 전무 딸이란 소식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직원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주고, 은밀한 직장 상사의 욕망이 조금씩 스며든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과 성 희롱의 간극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대리만족과 시원함을 느끼길 바란다고 했는데 나의 경우엔 느낄 수 없었다. 남자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마지막 장면 때문일까? 아니면 둘 다.


전혜진의 <수경 – 나선 미궁 속의 여자들>은 <숙영낭자전>이 원전이다. 이 원전은 읽은 적이 없다. 이 소설에 대한 줄거리는 작가의 말을 통해 알게 되었다. 막장 드라마 같은 내용이지만 인간의 욕망과 현실은 그 드라마를 뛰어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놀란 부분은 시첩의 존재다. 내가 이제까지 몰랐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이런 존재가 공부에 도움일 될 것이란 것에 또 한 번 놀란다. 이야기를 다 읽은 지금 남성들이 짜 놓은 세상 속에서 평생 맴돌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눈에 들어온다. 저주의 굴레를 깬 뒤의 삶도 궁금하다.


<천사는 라이더 자켓을 입는다>의 박서련은 민지형과 함께 처음 만났다. 소설을 읽으면서 <벌거벗은 임금님>이 먼저 떠올랐지만 <당나귀 가죽>을 비틀었다. 몇 가지 설정만 놓고 보면 한국 대기업의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다. 하지만 작가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더 추악한 현실을 담고 있다. 어떤 대목을 읽다 보면 <도깨비 감투>가 연상되지만 작가가 풀어내고 싶은 것은 분명하다. 이번 소설도 가정 폭력 혹은 강간 문제인데 앞에 깔아 둔 몇 가지 설정과 상황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원작 <당나귀 가죽>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최근 가장 자주 보는 작가 중 한 명이 심너울이다. <나의 퍼리 대통령님>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재탄생시킨 소설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익명의 대통령 저격 글이 만들어낸 현실 풍자는 쉽게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다. 정치에서 발견되는 두 가지 잣대를 보여주는 장면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뒤틀린 사고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사실보다 소문에 더 귀를 기울이고, 이것을 확대 재생산한다. 읽으면서 정치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반지성과 지 부조화가 심한 지 알고 있기에 그냥 웃으면서 지나간 부분도 많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왠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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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진화는 구운 열매에서 시작되었다 - 700만 년의 역사가 알려주는 궁극의 식사
NHK 스페셜 <식의 기원> 취재팀 지음, 조윤주 옮김 / 필름(Feelm)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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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NHK 스페셜 〈식의 기원(Origin of Food)〉 시리즈 5부작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탄수화물, 소금, 지방, 술, 미식이라는 5가지 주제를 다룬다. 처음에는 책 제목을 보고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목차를 보고 급 관심이 생겼다. 그렇게 두툼하지 않은 분량도 한몫했다. 구운 열매와 진화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탄수화물, 소금, 지방에 대한 어떤 해석이 나올까? 얇은 지식으로 저탄고지를 외치는 나에게 어떤 시각을 줄까? 수많은 의문들이 생겼다. 그리고 생각보다 간결하게 전개된 내용은 이 책을 빠르게 읽게 했다. 생각보다 재밌고, 나의 식생활을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했다.


탄수화물은 인체에 꼭 필요한 요소다. 하지만 당으로 변하는 성질 때문에 당뇨가 있는 사람에겐 큰 적이다. 점점 찌는 살을 보면 저탄고지 다이어트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밥 등의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과 양질의 지방을 먹으면서 살을 빼고 싶다. 하지만 이미 탄수화물 중독에 가까운 몸이다 보니 끊질 못한다. 특히 빵이 문제다. 이 책에서 동양인은 밥을 먹어도 쉽게 살찌지 않는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밥 이외 다른 간식이나 군것질 거리들이 너무 많다. 장내세균 ‘프리보텔라’의 활약은 눈길을 끌지만 나의 시선은 유전자 특질에 따라 음식 혈당지수가 바뀐다는 연구 결과다.


한국인들은 소금의 섭취량이 많다. 한때 살이 너무 쪄 몸에 이상이 생겨 조금 싱겁게 조금 적게 먹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과거의 나로 돌아온 현재를 발견한다. 장인어른이 콩팥이 망가져 거의 혈액투석 전 단계까지 갔다. 얼마나 짜게 드시는지 옆에서 보고 놀란 장면을 지금도 자주 이야기한다. 실제 한국 음식 중에 소금이 가장 많이 들어 있는 것이 칼국수라고 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탄수화물과 짠맛의 조합은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것이다. 실제 한국의 과자들은 너무 단짠이다. 소금의 양이 외국의 짠 과자보다 훨씬 많이 들어있지만 단맛 코팅으로 속이고 있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 소금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얼마나 필요한지 보여준다.


지방이 나쁜 것이 아니란 소식이 나온 것도 이제는 좀 되었다. 모든 지방을 나쁜 것으로 치부하던 때도 있었다. 목초 먹고 자란 소의 지방은 인간에게 나쁘지 않다는 연구 결과를 보았을 때가 지금도 생생하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 한때 오메가 3를 열심히 먹은 적도 있다. 고등어 기름이라 얼마나 비릿했던가! 이제는 아마씨 기름으로 만들어 이런 맛이 사라졌다. 연구가 점점 더 진행되면서 지방에 대한 해석도 달라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지방 중독이란 단어를 보았다. 오메가 3가 스트레스를 줄여준다고 말해 괜히 책상 앞에 놓여 있는 오메가 3를 하나 먹는다.


나는 술에 약하다. 한 잔 술에 얼굴이 붉혀진다. 쌀을 주식으로 먹는 한국, 중국, 일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술을 분해하는 아세트알데하이드 분해 유전자가 약하다고 한다. 술에 대한 글을 읽다 보면 수질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석회가 많이 낀 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맥주 등을 마셔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무알코올 술에 대한 글을 보면서 알코올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것과 기준치 이하로 들어 있는 술을 구분하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쉽다. 실제 무알코올 술을 마시면 처음엔 술 느낌이 나지만 어느 순간 술 맛을 느끼지 못한다. 미각의 문제일까? 아니면 인식의 문제일까? 술이 백해무익하다는 연구가 더 나오는 것 같다.


지금도 맛집을 좋아한다. 눈, 코, 입으로 음식을 맛보고 행복해한다. 언제부터인가 쓴맛 나는 음식도 잘 먹는다. 이전에는 전혀 먹지 못했는데 말이다. 재밌는 실험 하나가 있다. 같은 음식인데 이름을 다르게 해서 미각을 살짝 속인 것이다. 이 이야기를 보고 우리가 맛집에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미식에서 후각의 중요성을 이번 장에서 알려주는데 공감한다. 편식을 줄이기 위한 북유럽의 사페레를 보여주는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상적인 식사에 대한 답을 ‘”인간에게 있어 음식과 식사란 무잇인가를 알고 난 뒤에야 보일 것이다”란 말엔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놀라운 정보 하나가 있다. 디저트를 위한 배가 있다는 과학적 사실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나의 늘어난 뱃살은 다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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