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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호가 닿지 않는 곳으로 - 로켓 발사 앤솔러지
곽재식 외 지음 / 요다 / 2022년 5월
평점 :
로켓 발사 앤솔로지다. 얼마 전 발사에 성공한 국산 로켓 누리호 발사 기념 SF 단편집이다. 실제 이 프로젝트 기획은 2021년 10월 누리호 1차 발사가 계기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헸던 장르인 SF이기에 이런 프로젝트는 언제나 환영이다. 그리고 이 앤솔로지에 참여한 작가들도 쟁쟁하다. 수많은 장편과 단편을 내놓은 작가들이다. 물론 내가 이들의 작품을 모두 읽었거나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거나 다른 앤솔로지 등에서 만난 적이 있다. 아! 한 사람은 예외다. 가장 발표한 소설이 적은 최의택 작가다. 그 외의 작가들은 불과 한두 달 전에 만났다. 어떻게 보면 다작이다, 라고 느낄 때도 있지만 이런 다작이 결국 걸작을 만들기도 한다.
여섯 작가 중 첫 번째 작가는 곽재식이다. 얼마 전 그의 단편집을 읽었다. 그때 안 사실이지만 그의 작품 수는 생각보다 훨씬 많다. 최근에 또 SF 장르 관련된 책을 내 놓은 모양이다. <돌덩이일까, 외계인의 로켓일까>는 시종일관 유쾌하고 유머로 가득하다. 2017년에 발견된 오우무아무아의 정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해프닝을 시사와 엮었다. 정권에 따라 하나의 프로젝트가 어떻게 평가받는지 잘 보여준다. 오롯이 로켓 개발에만 거대한 예산을 쏟아 붓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이 거대한 예산이 문제다. 정권에 따라 갈리고, 이것을 이용한 언론전과 국민의 쉽게 변하는 마음이 재밌게 펼쳐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예상하지 못한 한방을 보여준다.
최의택의 <나의 탈출을 우리의 순간들로 미분하면>은 가장 어렵게 읽었다. 가상 지구 밸리와 진짜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폐허가 된 진짜 지구에 내려온 소녀가 밸리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다. 실제 인간을 가상 지구에 업로드하는 과정에 기억의 손실이 있지만 다운로드할 때는 손실이 없다. 진짜 지구에 내려와 경험하는 일들이 조금 혼란스럽게 펼쳐진다. 설정 자체가 어렵다가 보다 작가가 그려내는 세계와 행위들이 나의 머릿속에 바로 입력되지 않는다. 이 작가의 장편이 먼저 나와 있던데 아직은 단편보다 장편에 더 익숙한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풀어내야 할 이야기가 많은 작가란 의미다.
이산화의 <재시작 버튼>은 타임루프 속에 갇힌 우주선 조정사들 이야기다. 자신들의 추락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시작해 이것을 벗어날 방법과 이유를 찾아간다. 이런 상황은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서 이미 본 것이다. 이 리셋을 깨트리기 위한 노력은 실패의 반복으로 연결된다. 이 반복 속에 드러나는 하나의 사실과 그것을 막으려는 어떤 의지의 작용이란 설정도 재밌다. 화려하지 않지만 소소한 재미가 있다. 그리고 이런 타임 리셋 소설을 읽을 때면 오래 전 딘 쿤츠의 소설을 읽을 때 느낀 반감이 많이 사라진 것에 놀란다. 최근 이런 종류의 소설에 익숙해진 덕분일 것이다.
박애진의 <4퍼센트>는 읽으면서 애잔했다. 우주도약항법사였던 엄마가 우주선 결함으로 죽은 후 오보로 인해 그 가족들이 피해를 입는다. 화자인 딸은 우주 식물을 키우는 연구를 하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느 날 자신이 중단한 연구를 인공지능 자매 아랑이 계속 연구해 가능성을 인정받는다. 이 소설은 성공하지 못한 과학자의 삶을 아주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성과를 제대로 보지 못한 연구와 그 연구의 일부를 가지고 기업에 취업한 후 연구를 강탈하는 선배, 가능성 있는 연구를 특허 신청하자 자신들의 돈벌이를 위해 연구를 폐기하기 위해 특허를 사려는 기업 등 말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주로 나아가는 화자와 아랑의 모습과 마지막 장면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해도연의 <천장 우주>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달에 가서 소금을 채취해 돈을 벌겠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는데 예산 문제로 우주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한다. 이 우주 엘리베이터를 처음 본 것이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로켓을 타고 우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읽다 보면 이상한 이야기가 조금씩 흘러나온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와 다르다.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존재하는 천장이 있다. 읽다가 미터의 개념이 다른가? 하는 의심을 했다. 비슷한 이름(나에겐 그랬다)과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뒤섞여 앞부분은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작가가 설정한 우주를 보고 연작이나 장편으로 개작을 바랐다.
전혜진의 <잘 가요, 은숙 씨>는 가슴 먹먹한 이야기다. 은숙 씨는 정말 나쁜 남편을 만나 고생하다 이혼당했다. 다행히 혼자 사는 고모가 있어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남편은 한 마디로 개새끼다. 양심도 없다. 그가 바라는 것은 돈이다. 이혼한 전처의 장례식장에서도 부조함을 노리고 나타난다. 아들 앞으로 갈 유산을 노린다. 이런 은숙 씨가 바라던 것이 하나 있다. 지구를 떠나 우주로 가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했고 사업 감각이 있던 그녀는 생각보다 많은 돈을 유산으로 남겼다. 이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은숙 씨를 우주로 보내고 싶다. 아폴로 13호가 우주로 나간 1969년 태어난 은숙 씨의 바람대로. 이 프로젝트를 위해 고모와 은숙 씨 딸과 친구들이 나섰다. 읽는 내내 먹먹했고, 로켓이 발사되었을 때 살짝 눈시울이 붉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