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도 살인사건
윤자영 지음 / 북오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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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과 밀실처럼 섬을 꾸민 살인사건을 엮었다. 세월호 이후 바뀐 수학여행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현직 교사가 느낀 학생에 대한 감정이 어느 정도 녹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자극적이다. 현직 학교 생물교사가 쓴 글이다 보니 그 내용이 소설 곳곳에 스며 있다. 그리고 어떤 대목에서는 노골적으로 학교 수업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별개로 이 소설은 가독성이 아주 좋다. 살인자가 누군지는 파악하는데 크게 무리가 없지만 진짜 범인이 누군지 하는 것은 전혀 예상 밖이다. 독자의 취향에 따라서는 사족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물 교사의 화학 지식과 청소년들의 일탈과 잔혹함을 잔인한 살인사건으로 풀어낸다. 재밌고 빠르게 잘 읽힌다.


이 소설에서 탐정 역할을 하는 학생이 한 명 있다. 바로 영재다. 반에서 외톨이처럼 지내는데 그는 뛰어난 관찰력과 묘사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십자로로 들어오는 와중에 쓴 글이 섬의 모습이나 특성을 아주 간결하면서도 잘 잡아낸다. 이런 그에게 다가온 친구가 부회장 민선이다. 반 회장 장희종이 엄마의 돈을 믿고 망나니 짓을 할 때 반의 일을 묵묵히 처리하는 학생이 민선이다. 실제 이 십자도로 수학여행을 오게 된 것도 장희종이 바란 것이다. 세월호 이후 학년 전체 수학여행은 불가능하지만 반 단위로 교육적 목적으로 떠나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런 말썽쟁이들과 함께 수학여행 가는 것을 담임 고민환 선생은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희종의 엄마에게 넘어간 교장은 희종의 엄마와 함께 선생의 약점을 잡고 성사시킨다.


인천 서창고등학교 2학년 7반 23명은 담임과 부담임 이지현 선생과 함께 배를 타고 오지섬 십자도에 들어간다. 이 섬에는 여름 휴가철이 되어야 사람들이 들어오는 곳이다. 하지만 희종의 엄마가 돈을 뿌려 학생들이 3박 4일 동안 머물 수 있게 된다. 섬은 휴대폰이 터지지 않고, 유일한 연락 방법은 이장집 유선전화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평소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배가 없고, 수학여행 마지막에 들어올 예정이다. 그 동안은 섬은 거대한 밀실이 된다. 학생과 교사 이외에 이장과 학생들 식사를 담당하는 이씨 부부와 청년회장이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이 몰래 들어온 것이 아니라면 범인은 이들 중에 있다. 공정한 추리 소설이라면 당연한 것이다.


첫날 밤 어느 수학여행과 다름없이 학생들은 몰래 가지고 온 술을 마신다. 선생은 학생의 술을 적발하지만 희종은 돈으로 이장을 유혹한다. 고민환 선생은 이장이 술을 팔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엄청난 가격을 말하는 희종에게 넘어가려고 한다. 이때 청년회장이 나타나 이 거래에 끼어든다. 이장의 술을 자신이 사고, 자신이 이 술을 희종 무리에게 판 것으로 만들어 죄의식을 살짝 덜어준 것이다. 정상가격의 열 배가 넘는 돈을 주면서 안주까지 부탁한다. 술과 안주를 제공하면서 좋은 경치를 보여주는 술자리로 등대까지 추천한다. 이 정도면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어른이다. 희종 패거리가 어른을 깔보는 것도 이런 어른들 영향이 있다.


첫날 밤 시체를 발견한 인물은 영재다.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산책을 나갔다가 등대에 비친 시체 윤곽을 보고 선생에게 말한다. 처음에는 고민환 선생에게 말하려고 했지만 그는 술에 취해 잠들어 있다. 결국 이지현 선생을 깨운다. 등대에 가기 전 청년회장도 깨워 같이 간다.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목을 메단 이장의 시체다. 자살처럼 보인다. 하지만 관찰력이 뛰어난 영재는 자신이 처음 발견한 당시 쓴 글을 돌아보면서 타살 가능성을 제기한다. 자살이 아니라면 누가 왜 죽였을까? 그리고 둘째 밤에 범인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의심한 이씨가 범인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는 다음 날 아침 학교 식당에 자살한 것처럼 꾸며진 채 발견된다. 독자에게 작가는 타살임을 분명하게 알려줬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 영재만 사건 현장을 돌아보고 의심을 품고 과학적 사실을 알아챈다. 이 사실을 민선과 이지현 선생과 공유한다.


마지막 밤이 되었다. 이번에 그 대상은 누굴까? 둘째 날 아침 명신이 복통을 앓아 누었는데 희종 패거리는 또 술을 마실 생각을 한다. 술은 이장집에 담근 술이 있다. 아이들은 담근 술을 들고 다시 등대로 간다. 술을 마신다. 그런데 평소보다 빨리 취한다. 이상하다. 이때부터 이 소설에서 정말 죽이고 싶은 인물이 누군지 알려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준다. 청소년 범죄의 한 모습이 드러난다. 참혹하고 잔인하다. 무서운 것은 이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이 이 일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아플 때 보여준 행동과 대비된다. 이 살인 계획의 트릭 등은 그렇게 낯설지 않다. 하지만 진짜 반전은 마지막에 나온다. 2014년 연말에 좋은땅이란 곳에서 나온 <십자도 시나리오>란 소설이 있는데 같은 소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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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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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의 신작 시집이다. 책장에 다른 시집을 여러 권 쌓아 두고 있는데 이 시집에 먼저 손길이 갔다. 다른 시인들의 시들이 상당히 어렵게 읽히는 것에 반해 나태주 시인의 시는 상당히 쉽고 잘 읽힌다. 이번 시집도 다른 시인의 시집보다 두툼하지만 훨씬 쉽게 읽혔다. 함축적이고 에둘러 표현하는 시어보다 일상을 포착해 간결하게 표현하는 시들이 대부분이다. 일상에서 걷어 올린 시어들은 한 편의 간단한 산문처럼 읽을 수 있다. 이번 시집은 특히 긴 호흡의 시들이 적다. 그러니 나처럼 시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잘 읽힐 수밖에 없다.


모두 4부로 나누었다. 어떤 기준으로 이렇게 나누었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코로나 19를 경험하면서 느낀 점들이 이 시집에 나오는데 공감할 부분이 많다. “마스크 쓰고 / 눈과 눈썹과 / 이마만 남겼으니 / 다 예쁘다 / 그냥 예쁘다.”(<코로나 시대> 전문)이나 “코로나 이후 / 거리에서 만나는 여인들은 / 눈썹 미인 / 이마 미인”(<눈썹 미인> 부분)을 읽을 때면 나의 경험들이 떠올랐다. 마스크 하나로 얼굴의 느낌이 너무 달라진 사람들 때문이다. 이런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는 장면보다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눈으로만 웃어요 / 눈썹으로 말해요”(<눈썹 미인> 부분)를 읽을 때다. 이전 다른 방식으로 상대방을 인식하는 우리의 능력이 시인의 관찰 속에 시로 태어났다.


<다시 이십대>란 시에서 “창밖에 달빛 / 너인가 싶어 / 혼자서는 쉽게 / 잠들지 못하던 / 그런 시절이 / 나에게도 / 있었더란다.”(전문)를 읽고 머릿속에서 내 청춘의 한 쪽이 펼쳐졌다. 이것은 다시 “그 아이가 문득 / 보고 싶었다.”(<문득> 부분)을 읽으면서 보고 싶은 친구가 떠올랐다. 이전 저런 이유로 잘 만나지 못하고, 이미 늙었을 그 친구가. ‘사랑에게’란 연작시에서 “그래 사랑이란 본래 / 끝없이 서툴고 / 끝없이 설레고 / 끝없이 가난한 마음이란다”(<사랑에게 5> 부분)라고 말했을 때 다시 서툴고 순진하기만 했던 이십대의 내가 생각났다. 그 당시 얼마나 설레고 서툴고 감정적이었던가.


속가에서 차창룡 시인으로 불렸던 동명 스님과 주고받은 시들도 재밌다. 두 시인의 마음이 그들의 시에서 잘 느껴진다. <비원>이란 시의 전문 “돌아가고 싶다 // 꿈은 오직 / 하나 // 집으로, 당신 곁으로”을 읽으면서 다른 곳에서 본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꼭지 없는 차>에서 시인의 딸이 한 말이 역시 나의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순간 뭉클했다. 교보생명 로고의 의미를 <괜한 일>에서 알려줄 때 생각도 못한 것이라 놀랐다. 사람들의 상상력을 막았다고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괜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설명을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돌아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빵점 엄마> 이야기는 육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메리 포핀스>란 시를 읽으면서 같은 이름의 영화가 먼저 떠올랐는데 천천히 읽다 보니 괜히 그곳이 가고 싶어졌다. <사람의 별>에서 BTS를 찬양하는 시가 나오는데 괜히 눈꼴사납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낯선 단어가 나와 사전을 검색했다. 그 중에서 목차를 읽으면서 ‘에움길’을 발견했다. “빙 둘러서 가는 길. 우회로”을 의미한다. <사월 이일>에서 이상 기온으로 벚꽃이 빨리 핀 것을 안타까워하고, 자전거 타고 가는 그에게 “안녕하세요? 말하고 꾸벅 절한 소녀를 천사로 비유한 부분을 보고 역시 놀랐다. 얼마나 주변 사람에게 인사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 아이의 인사를 만날 강조하는 아내가 잠시 떠올랐다. 이 시집에는 수많은 시인을 기리는 시들이 나온다. 개인 취향에는 맞지 않지만 역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다른 시인의 시집으로 넘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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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된 아이 마음을 꿈꾸다 6
전건우 외 지음 / 꿈꾸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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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소설 작가 4명이 모였다. 이 4명 중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대부분 장편으로 만났다. 차무진의 경우 단편만 읽었다. 언젠가 집에 있는 장편을 읽고 싶은데 늘 그렇듯이 장담할 수 없다. 이번 단편집은 유튜브로 세상을 보고 읽는 청소년에 대한 앤솔로지다. 언제부터인가 검색을 인터넷 포털이 아닌 유튜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유튜브 동영상에 금방 빠져든다. 유튜브의 콘텐츠가 풍부해지면서 검색하고 유입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인터넷 초창기처럼 당연히 수많은 문제점들이 생긴다. 영상의 내용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유튜버들은 코인을 위해서라면 아슬아슬하게 불법의 경계선까지 나아간다. 가끔은 그 경계선을 넘어간다.


전건우의 <공생>은 유튜브의 생리를 가장 잘 파고든 작품이다. 모종의 기관 직원들이 회의실에 모여 국민 영웅 현우의 유튜브를 시청한다. 일상 브이로그로 국민 영웅이 된 후 전업 유튜버가 된 현우의 영상을 따라가면서 바뀐 초심과 코인 벌이에 대해 보여준다. 처음 그가 한 행동은 우연과 선한 마음 때문이지만 전업이 되는 순간 나온 몇 편의 영상은 의심의 눈길로 볼 수밖에 없다. 많은 시청자가 유입되면서 그의 팬덤이 생기고, 이에 반발하는 사람도 생긴다. 그러다 잠시 고개를 돌려 이 영상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굴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밝혀지는 몇 가지 사실은 제목 그대로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과거 있었던 사기극들이 떠올랐다.


정해연의 <참교육의 날>은 과거 파워 블로거의 유튜브 버전처럼 다가온다. 중학생 세환은 유튜브 알고리즘 추천으로 유튜버 ‘참교육’을 보고 팬이 된다. 후원금을 보낼 정도로 열성적이다. 참교육이 유뷰트에서 보여주는 행동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어느 날 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당이 참교육의 채널에 음식 재사용하는 식당으로 나왔다. 평소 부모님의 삶을 옆에서 본 그에게 믿기 어려운 일이다. 참교육 채널에 자신의 사연을 올리지만 금방 잘린다. 식당은 손님이 거의 오지 않고 폐업 위기에 처한다. 과거 방송 조작을 통해 망했던 업체들이 떠오른다. 세환은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한다. 결국 진실을 알게 되지만 현실은 결코 해피엔딩이 아니다.


정명섭의 <하얀 돌고래 게임>은 청소년을 자살로 몰고 가는 게임에 대한 이야기다. 상태의 친구 한우는 학교 건물에서 떨어져 죽었다. 자살이다. 학교나 집에 문제가 있었다면 이 자살이 이해가 될 텐데 상태가 아는 바에 의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친구 마리와 함께 한우의 집에 간다. 그곳에서 하얀 돌고래라는 게임을 발견한다. 미션을 수행하면 레벨이 올라가는 게임이다. 상태는 정 준혁 아저씨의 도움을 받는다. 이 앱의 정체는 자살을 몰고 간 게임의 아류작이다. 이 앱을 깔고 레벨을 올린 아이들은 그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다. 참혹하다. 편리하고 정보가 많은 틈 사이로 짙은 어둠이 자리 잡고 있다. 장편으로 만들어 긴장감을 더 고조시켜도 좋을 것 같다.


차무진의 <꼬르모의 방>은 ASMR 방송을 다룬다. 이 소설을 읽기 전 ASMR이 의학적으로 증명된 사실로 알았다. 아니다. 민주는 유튜버 ‘꼬르모’가 만든 ASMR에 중독되어 있다. 이 사실을 안 엄마가 민주의 휴대폰에서 앱을 지운다. 노특북으로 보는데 헤드폰을 뺏긴다. 불면증에 빠진 민주는 꼬르모의 ASMR을 듣고 잠에 빠진다. 읽다 보면 꼬르모의 정체는 금방 알게 된다. 판타지 설정을 넣었는데 가볍게 녹아든다. 그리고 진자 이야기가 마지막에 펼쳐진다. 왜 엄마가 민주의 유튜브 감상을 막았는지, 민주에게 어떤 일이 있는지 등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대목이 있지만 가독성은 아주 좋다. 꼬르모가 무슨 의미인지는 발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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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못한 자들의 세상에서
전건우 지음 / 북오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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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소설만 다섯 편을 한 권으로 엮었다. 작가는 한국 호러 소설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전건우다. 개인적으로 그의 소설들을 재밌게 읽고 있다. 최근에 앤솔로지에서 자주 보지만 그의 단편집을 읽기는 오랜만이다. 어떻게 보면 좀비 소설이 요즘 너무 흔해졌지만 단순히 공포만이 아닌 다른 이야기들을 담고 나오면서 이야기가 확장되고 있다. 이번 단편집에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런 종류의 소설을 읽을 때면 늘 나라면 어떻게 할까? 하는 물음을 던진다. 실제 현실에 닥치면 몸이 마비되지 않고 제대로 움직일까 하는 의문도 있다. 팬더믹의 현실과 엮어 생각할 것도 많다.


<콜드블러드>란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트루먼 커포티의 소설이다. ‘냉혈’로 번역된 적이 있다는 것도 기억난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상태에서 청와대 지하 벙크에서 국무회의가 열린다. 좀비 바이러스를 막을 백신이 개발된 것이다. 그런데 이 백신을 대량 생산할 공장이 다른 곳에 있다. 강남역을 지나가야 한다. 헬기로 가면 간단하지만 현재 헬기 조종사도 헬기도 없다. 이 임무를 완수할 최적의 인물이 한 명 있다. 연쇄살인범 남정철이다. 그의 체온은 33도 이하다. 좀비들이 인간으로 인식하지 못해 좀비 무리 옆에 있어도 안전하다. 이 임무를 위해 특수부대를 편성했지만 갑작스러운 좀비의 난입으로 계획은 바뀐다. 육군 대위 최지호 등은 차로 남정철과 이동한다.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남정철도 믿을 수 없다.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흘러간다.


<Be the Reds!>는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2002년 월드컵이 떠올랐다. 실제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월드컵 16강이 벌어지던 순간이다. 장소는 거리 응원이 벌어지던 광화문역 근처다. 의경들이 배치되고, 안전사고에 주의한다. 그런데 거리 응원으로 노숙자들의 쉼터가 사라진다고 성토하는 시민단체가 나온다. 대규모 거리 응원에 묻혀 있던 다른 삶을 살짝 보여준다. 재밌는 점은 이 상황을 다루는 의경 이재호의 행동이다. 그리고 노숙자 한 명이 이상한 반응을 보여준다. 맞다. 그가 시발점이다. 월드컵 경기의 열기 속에서 노숙자에게 물린 사람들이 좀비처럼 변하고, 의경은 그 상황을 조금씩 막는다. 하지만 중대장 등이 보여주는 반응은 아주 권위적이다. 수십 만 명이 몰린 광화문과 좀비의 등장을 생각하면 멋진 공포 소설이다.


<유통기한>은 반전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소심한 아르바이트생 연지의 편의점으로 좀비를 피해 다섯 명이 들어온다. 유리창 밖에는 좀비들이 점점 늘어난다. 얇은 유리문 하나에 의지해 이들은 구조대가 올 때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먹을 것이 풍부한 편의점이라면 식량 걱정은 없겠다고 생각하는데 전원이 끊어지면서 상황이 바뀐다. 빨리 상하는 음식과 자신의 취향이 충돌한다. 음식의 유통기한과 편의점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한이 묘하게 엮인다. 편의점 안에서 각자의 욕망이 표출되는 장면은 아주 현시실적이다. 읽고 난 후 연극으로 만들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결>은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남자 친구는 임신했다는 소식에 도망가버렸고, 그녀는 아이를 포기할 마음이 없다. 숨어서 아이를 낳을 곳을 찾는다. 살아 남아 아이를 낳고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그런데 현실은 정말 지옥이다. 사방이 좀비로 가득하다. 병원에 몰래 들어가 아이를 낳고 탯줄을 자르려고 한다. 골프채를 쥐고 덤벼드는 좀비를 물리치면서 달아난다. 출산의 고통을 생각하면 그녀의 출산 소리는 분명 많은 좀비를 불러 모을 수밖에 없다. 이를 악물고 참으려고 한다. 문밖에는 좀비 떼가 가득하다. 과연 그녀의 출산은 성공할까? 작가는 긴장감을 멋지게 고조시킨다. 마지막 장면은 작은 희망을 보여준다.


<낙오자들>은 고시원에서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지만 실패한 나의 이야기다. 하지만 자살은 실패했다. 그런데 사방이 좀비로 가득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보낸 톡을 보고 친구들이 그에게 온다. 첫 위기를 넘기는 것도 친구 철권의 도움이다. 노량진을 무대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공시도, 취직도 실패한 청춘들이 생존에 몸부림치는 액션을 보여준다. 그들이 이 지옥을 벗어날 방법은 군이 보낸 트럭을 타고 가는 것이다. 7시 정각부터 10분간 기다린다. 배달용 오토바이를 타고 목적지로 간다. 쉽지 않다.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커플은 그들의 오토바이를 훔쳐 타고 달아난다. 지독한 현실이다. 이 소설을 보면서 강남의 풍경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강남 부자를 지키기 위해 군은 얼마나 많은 군인 등을 투입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마지막 세 친구가 보여준 우정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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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 마블 1 - 비정상 시공그래픽노블
G. 윌로우 윌슨 지음, 애드리언 알포나 그림, 이규원 옮김 / 시공사(만화)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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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팟캐스트에서 ‘미즈 마블’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 마블 세계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에게 이 이야기는 캡틴 마블과 미즈 마블은 같은 것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말해 이 그래픽노블을 읽기 전에는 이 둘의 차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단지 기억나는 것은 이슬람 소녀가 주인공이란 것 정도였다. 마블과 DC 코믹스에서 아시안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다는 소식도 함께 말이다. 아시아 시장이 커지고, 인종 차별 등의 문제가 엮이면서 일어난 일이다. 기존 캐릭터에 새로운 캐릭터까지 더해지면서 너무 복잡해져서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일단 이번에는 미즈 마블이라도 따라가고 싶다.


마블과 DC 코믹스를 조금씩 읽거나 사 모으지만 수십 년 동안 쌓인 것을 쫓기엔 나의 능력이 부족하다. 어린 시절 추억의 캐릭터들이 나오는 것 우선으로 모았는데 이제는 조금 바뀌었다. 영화조차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미즈 마블>도 디즈니+에서 최근 방영하고 있는 모양인데 아직 보지 않았다. 보고 읽어야 할 책들이 점점 늘어난다. 현재 <미즈 마블> 시리즈도 4권까지 번역되어 나와 있다. 그렇게 많은 분량이 아니라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지만 어떨지 모르겠다. 읽게 되면 간단하게 감상을 남기고 싶다. 이 만화를 읽으면서 아주 익숙한 문화를 만났기에 다음엔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하다.


이 만화의 주인공 카말라 칸은 어벤저스 덕후다. 팬픽 사이트에 자신만의 팬틱을 올릴 정도다. 현재 성공한 팬픽은 일반 시장으로 출간될 정도다. 카말라가 자신이 쓴 글이 많은 조회를 기록한 것을 보고 기쁘하는 장면이 나온다. 온라인과 집밖에서 그녀는 일반 미국 소녀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집에 들어오면 파키스탄 이슬람 가정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된다. 열여섯 소녀에겐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두 문화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식탁 풍경 중 재밌는 장면이 하나 있다. 취직하지 못한 오빠가 율법에서 금지하는 이자를 받는 것을 말하는데 아버지는 금융권에서 일한다. 율법의 방패 뒤에 숨겨진 취업하지 못한 현재가 있다. 이 만화는 이런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는 장면들이 곳곳에 나온다.


히어로 물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그들이 어떤 능력을 발휘할까 하는 것이다. 그 능력을 얻게 되는 과정도 나온다. 카말라는 부모가 외출을 금지한 밤에 나갔다가 인휴먼을 각성시키는 안개 속에서 초능력을 얻는다. 이 장면에서 캡틴 마블과 캡틴 아메리카 등이 등장하지만 주로 캡틴 마블과 대화한다. 그리고 껍질을 깨고 나온다. 그녀의 초능력은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외모만 놓고 보면 그녀가 바라는 금발의 미녀인 캡틴 마블을 닮았다. 그런데 그녀의 변신은 자신이 바라는 데로 이루어진다. 크기 조절도 가능하다. 아주 작아지거나 아주 커진다. 순간 ‘앤트맨’이 떠올랐다. 부분적으로 손만 커져 상대방을 손아귀 속에 잡는 것도 가능하다. 미즈 마블의 공식 첫 활동은 술에 취해 물에 빠진 친구를 커진 손을 넣어 퍼올리는 것이다.


각성했다고 그녀의 삶이 완전히 바뀌는 것은 아니다. 집에서는 여전히 부모의 간섭을 받고, 외부 활동은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한다. 능력에 대한 정확한 측정도 필요하다. 친구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도움을 요청한다. 기존 히어로와 다른 점 중 하나다.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알고, 활용도를 높이고, 가족의 문화 속에서 아직은 살아야 한다. 이 만화의 작가들은 이것을 간결하면서도 핵심적으로 잘 포착해 보여준다. 아직 미즈 마블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펼쳐지지 않았고,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던 어벤저스와도 만나지 않았다. 다음 이야기는 과연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만화가 의미하는 바도 생각할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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