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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못한 자들의 세상에서
전건우 지음 / 북오션 / 2022년 6월
평점 :
좀비 소설만 다섯 편을 한 권으로 엮었다. 작가는 한국 호러 소설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전건우다. 개인적으로 그의 소설들을 재밌게 읽고 있다. 최근에 앤솔로지에서 자주 보지만 그의 단편집을 읽기는 오랜만이다. 어떻게 보면 좀비 소설이 요즘 너무 흔해졌지만 단순히 공포만이 아닌 다른 이야기들을 담고 나오면서 이야기가 확장되고 있다. 이번 단편집에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런 종류의 소설을 읽을 때면 늘 나라면 어떻게 할까? 하는 물음을 던진다. 실제 현실에 닥치면 몸이 마비되지 않고 제대로 움직일까 하는 의문도 있다. 팬더믹의 현실과 엮어 생각할 것도 많다.
<콜드블러드>란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트루먼 커포티의 소설이다. ‘냉혈’로 번역된 적이 있다는 것도 기억난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상태에서 청와대 지하 벙크에서 국무회의가 열린다. 좀비 바이러스를 막을 백신이 개발된 것이다. 그런데 이 백신을 대량 생산할 공장이 다른 곳에 있다. 강남역을 지나가야 한다. 헬기로 가면 간단하지만 현재 헬기 조종사도 헬기도 없다. 이 임무를 완수할 최적의 인물이 한 명 있다. 연쇄살인범 남정철이다. 그의 체온은 33도 이하다. 좀비들이 인간으로 인식하지 못해 좀비 무리 옆에 있어도 안전하다. 이 임무를 위해 특수부대를 편성했지만 갑작스러운 좀비의 난입으로 계획은 바뀐다. 육군 대위 최지호 등은 차로 남정철과 이동한다.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남정철도 믿을 수 없다.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흘러간다.
<Be the Reds!>는 제목을 보고 가장 먼저 2002년 월드컵이 떠올랐다. 실제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월드컵 16강이 벌어지던 순간이다. 장소는 거리 응원이 벌어지던 광화문역 근처다. 의경들이 배치되고, 안전사고에 주의한다. 그런데 거리 응원으로 노숙자들의 쉼터가 사라진다고 성토하는 시민단체가 나온다. 대규모 거리 응원에 묻혀 있던 다른 삶을 살짝 보여준다. 재밌는 점은 이 상황을 다루는 의경 이재호의 행동이다. 그리고 노숙자 한 명이 이상한 반응을 보여준다. 맞다. 그가 시발점이다. 월드컵 경기의 열기 속에서 노숙자에게 물린 사람들이 좀비처럼 변하고, 의경은 그 상황을 조금씩 막는다. 하지만 중대장 등이 보여주는 반응은 아주 권위적이다. 수십 만 명이 몰린 광화문과 좀비의 등장을 생각하면 멋진 공포 소설이다.
<유통기한>은 반전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소심한 아르바이트생 연지의 편의점으로 좀비를 피해 다섯 명이 들어온다. 유리창 밖에는 좀비들이 점점 늘어난다. 얇은 유리문 하나에 의지해 이들은 구조대가 올 때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먹을 것이 풍부한 편의점이라면 식량 걱정은 없겠다고 생각하는데 전원이 끊어지면서 상황이 바뀐다. 빨리 상하는 음식과 자신의 취향이 충돌한다. 음식의 유통기한과 편의점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한이 묘하게 엮인다. 편의점 안에서 각자의 욕망이 표출되는 장면은 아주 현시실적이다. 읽고 난 후 연극으로 만들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결>은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남자 친구는 임신했다는 소식에 도망가버렸고, 그녀는 아이를 포기할 마음이 없다. 숨어서 아이를 낳을 곳을 찾는다. 살아 남아 아이를 낳고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그런데 현실은 정말 지옥이다. 사방이 좀비로 가득하다. 병원에 몰래 들어가 아이를 낳고 탯줄을 자르려고 한다. 골프채를 쥐고 덤벼드는 좀비를 물리치면서 달아난다. 출산의 고통을 생각하면 그녀의 출산 소리는 분명 많은 좀비를 불러 모을 수밖에 없다. 이를 악물고 참으려고 한다. 문밖에는 좀비 떼가 가득하다. 과연 그녀의 출산은 성공할까? 작가는 긴장감을 멋지게 고조시킨다. 마지막 장면은 작은 희망을 보여준다.
<낙오자들>은 고시원에서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지만 실패한 나의 이야기다. 하지만 자살은 실패했다. 그런데 사방이 좀비로 가득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보낸 톡을 보고 친구들이 그에게 온다. 첫 위기를 넘기는 것도 친구 철권의 도움이다. 노량진을 무대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공시도, 취직도 실패한 청춘들이 생존에 몸부림치는 액션을 보여준다. 그들이 이 지옥을 벗어날 방법은 군이 보낸 트럭을 타고 가는 것이다. 7시 정각부터 10분간 기다린다. 배달용 오토바이를 타고 목적지로 간다. 쉽지 않다.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커플은 그들의 오토바이를 훔쳐 타고 달아난다. 지독한 현실이다. 이 소설을 보면서 강남의 풍경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강남 부자를 지키기 위해 군은 얼마나 많은 군인 등을 투입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마지막 세 친구가 보여준 우정은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