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속가능한 영혼의 이용
마쓰다 아오코 지음, 권서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3월
평점 :
처음에 제목을 보고 오해했다. 나중에 이 소설의 분류가 SF란 것을 보고 신청했다. 일본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읽다 보면 그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은 아주 재밌다. “’아저씨’의 눈에 소녀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약간의 소란이 일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소녀들이 아저씨 눈에 보이지 않게 되면서 일어나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알려준다. 좋게 포장하면 소녀들의 복수이자 반격이지만 다른 형태의 단체 폭력과 닮았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해를 기억하라고 한 후 현재와 미래의 두 시점이 나란히 진행된다.
아저씨의 눈에 소녀들이 보이지 않게 된 후 소녀들만 사는 곳이 한정된다. 이때 든 의문 둘. 새롭게 태어난 여자 아이들은 몇 살부터 이곳으로 가게 될까? 소녀들은 몇 살이 되면 이곳을 나오게 될까? 작가는 이런 세부적인 항목은 알려주지 않는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도 말해주지 않는다. 불친절한 설명이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것이 아니다. 일본 사회에서 소녀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무섭고 힘들고 편파적인지 보여주려는 것이다. ‘일본의 성차별적 현실을 날카롭게 들여다보고 폭로하는 소설’이라는 소개는 내용과 아주 부합한다. 후반부에 일본 여자 아이돌과 한국 여자 아이돌을 비교한 부분은 솔직히 말해 조금 과장된 부분이 있다. 물론 그 차이가 극명한 지점도 있을 것이다.
미래의 소녀들이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현재를 해석하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에는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과거의 문제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녀들처럼. 일본 여성들이 결혼 후 남자의 성을 따라 하는 문제와 남자인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문제를 동시에 지적한 부분은 발표회의 소녀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임의적으로 지어 부르는 장면과 이어진다. 문제를 인식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경우 그 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바로 이어졌다. 현실의 한계 속에서 나의 생각들은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다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게이코. 어쩌면 주인공이라고 불러도 될 유일한 등장인물이다. 게이코는 비정규 직원이었다. 직장의 한 남자의 은밀한 성희롱과 성차별에 의해 직장을 그만 두어야 했다. 성희롱의 가해자는 이 둘의 관계를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게끔 행동했다. 소설 속 다른 화자 가가와도 이 둘의 관계를 보고 사귀는 사이라고 오해했다. 게이코가 성희롱을 고발했을 때 이런 오해가 게이코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가가와가 분홍빛 스턴건을 보여주었을 때 게이코가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물은 것도 이런 일의 연속 때문이다. 지하철 치한이나 밤거리를 돌아다닐 때 느끼는 공포 등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이런 일들의 중심에는 아저씨들이 있다.
작가는 아저씨를 단순히 남성과 나이로 구분하지 않는다. 행동과 생각 등으로 구분한다. 아저씨들의 행동을 보면서 ‘개저씨’란 단어가 떠올랐다. 혹시 나도 이제 이런 부류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느낀다. 일본에 살면서 느낀 불안감과 차별을 게이코가 캐나다 한 달 살기를 한 후 절실하게 깨닫는다. 강요된 겸손이 의사소통과 자신을 흐리멍덩하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게이코가 느끼는 많은 부분에서 한국 사회가 그대로 투영된다. <82년생 김지영>을 두고 판타지라고 비판하는 남자의 말이 떠오른다. 자신이 느끼지 못했다고 그 현실이 없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게이코가 일본에 돌아와 갑자기 한 아이돌 그룹에 빠진다. 그 아이돌의 이름도 나오지 않고, 센터는 단순하게 XX라고 표기된다. 기존의 일본 아이돌과 다른 노래와 무대 매너를 보여준다. 솔직히 일본 아이돌에 대해 무지해 그들의 어떤 활동을 하는지 모른다. 가끔 나오는 기사만 보고, 졸업이란 단어만 익숙할 뿐이다. 일본 시장이 한국보다 몇 배가 크기 때문에 한국 아이돌이 현지화한 후 공략한다는 것 정도가 단편적인 지식의 전부다. 앞에서 말한 한일 아이돌 차이에 대해 과장되었다고 생각한 것도 어쩌면 아저씨들의 기사나 게시물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극단적으로 치닫는다. 아저씨들이 다스리는 나라가 어떤 파행을 하는지 아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아이돌에게 권력이 넘어간다. “이래도 낳을 테냐, 아직도 낳을 셈이냐, 그렇다면 더욱 낳기 어렵게 만들어주마.”라고 말한 대목은 아주 놀랍다. 현실 속에서 과연 맞는지 모두 확인해보지는 못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자연분만을 비보험으로 처리한다는 글이 보인다. 조금 과장된 표현이지만 놀라운 대목이다. 페미니즘에 입각해 쓴 소설이지만 이 소설 속 문제 제기는 현재 한국도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가독성도 상당히 좋다. 페미니즘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