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 창비시선 468
심재휘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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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2022년) 두 번째 읽는 시집이다. 매년 년초가 되면 한 달에 시집 한 권은 읽자고 다짐하지만 권수를 채운 적은 없는 것 같다. 작년과 올해도 시집을 몇 권 구해 놓았지만 욕심만큼 읽지 못했다. 그리고 시집을 읽을 때면 언제나 나의 감수성 부족과 감정이 메마른 듯한 느낌을 받는다. 서평을 쓰려고 하면 읽은 시들이 갑자기 증발한다. 난감하다. 언제부터 인가 시집 마지막에 나오는 해설을 읽지 않다 보니 시 해석이 더 어렵다. 한 자리에서 다 읽지 않고 며칠에 나눠 짬을 내어 읽다 보니 시집의 흐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읽으면서 좋았던 시나 문장을 기록해 놓았다면 좋았을 텐데 게으름이 그것을 막는다. 시집을 뒤적이면서 읽고 난 후 놓아버린 시어들을 다시 찾는다.


모두 3부로 나누었다. 장소를 배경으로 나누었는데 그 장소들은 서울, 런던, 강릉이다. 시인의 근황을 잘 알지 못하다 보니 시만 가지고 해석해야 한다. 이 세 장소의 의미도 마찬가지다. 런던에 대한 시를 읽다 보면 그렇게나 비가 자주 왔는지 묻고 싶어진다. 사흘째 가는 비가 왔다는 소식보다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창문의 발견>에 나온 관찰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창문을 말하려네 / 빗소리는 비가 내는 것이 아니라 / 창문이 내는 아픈 소리 / 그러니까 내 방에 기대인 창문은 / 내 곁의 먼 곳이었네”(부분) 비와 창문의 결합을 아픈 소리라고 불렀는데 왜일까? 창문에 비가 와서 부딪히는 소리를 듣던 순간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1부 서울에서 “맹물 마시듯 / 의미 없는 날도 있어야지 / 잘 살려고 애쓰지 않는 날도 있어야지” (<행복>의 부분) 라고 말한다. 바쁜 일상을 넘어 존재의 인정을 받고 실다. 사람들이 얼마나 의미를 찾고, 잘 살려고 애쓰는 지 역설적으로 알려준다. <어떤 면접>은 읽으면서 가슴이 아팠다.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면 요양원들을 다니면서 / 집 나간 아버지를 찾겠단다”. “국영수보다 어려운 가족이라는 과목의 등급”은 평범한 가정을 대상으로 할 이야기는 아니다. 실제 가족 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린 가족이란 존재에 대해 수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지원자의 말에 “질문도 대답도 머뭇거린다.”


3부 강릉의 첫 시는 <외할머니의 허무>다. 허무는 호미의 방언이자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허무다. 이 이중적 의미를 시 속에 녹여내었다. 이 3부의 시들은 그의 유년의 기억들이 녹아 있다. 행정구역의 변경(<주문진, 조금 먼 곳>, <묵호>)을 알려주고, 친구들과의 추억을 환기시킨다. <불멸의 동명극장>을 읽다 보면 내 고향에서 사라진 만남의 장소였던 극장이 떠오른다, 예전에 남대천에서 멱 감다 아이들이 빠져 죽는 교각에 대핸 말할 때(<철다리의 일>) 방송에 나온 저수지, 강 등에 빠진 사람들 뉴스가 생각난다. 물론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임당동 장칼국숫집 광고>란 시는 그가 살던 집에 대한 추억을 다룬다. 아버지가 팔 수밖에 없었던 그곳이 남아 있어 다행이란 감정 속에 ‘매워서 눈물 나는 맛’이란 시어가 가슴에 파고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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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내가 달라졌다 생각학교 클클문고
김이환 외 지음 / 생각학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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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명의 작가가 10대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단편소설집이다. 이번 단편집에 참여한 다섯 작가들은 이미 다른 소설집이나 장편으로 만난 적이 있다. 그리고 각 작가들의 인지도가 상당히 높다. 이 작가들이 다루고 있는 장르도 모두 다른데 이것이 이 단편소설집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어떤 단편은 살짝 미스터리하고, 어떤 단편은 sf적인 요소가 강하다. 하지만 각각의 신체 부위(가슴, 눈, 머리카락, 발, 손 등)에 대한 10대의 고민 등을 사실적으로 다루면서 신체 변화에 대한 섬세한 심리를 그려낸다. 독자 각각의 경험에 따라 각각의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가 다를 것이다.


이번 단편집에서 가장 마음에 든 단편은 정해연의 <가슴, 앓이>다. 조영주의 <열네 살, 오드아이>도 상당히 좋았다. 다른 세 편도 나쁘지 않았지만 조금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어쩌면 내가 그 이야기 속에 완전히 빠져들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정해연이 <가슴, 앓이>가 가장 마음에 든 것은 한 장면을 아주 멋지게 연출했기 때문이다. 구부정한 몸, 가슴에 꼭 껴안은 가방, 그리고 으슥한 밤거리와 얼굴을 가린 남자. 뭔가 사건이 터질 것 같은데 선하가 안고 있던 가방만 들고 도망친다. 이때 선하를 도와준 이웃이자 새로 전학온 친구 지세린의 등장. 가슴이 커서 고민이라는 선하가 날라리처럼 옷을 입는다고 몰래 뒷담화하던 지세린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장점을 부각하고, 성장하는 모습이 훈훈하고 유쾌하다. 지세린의 구체적인 조언과 선하의 노력이 만들어낸 현재 모습은 나의 선입견도 살짝 바꾼다.


조영주의 <열네 살, 네 사랑 오드아이>는 인싸가 되기 위해 서클렌즈를 낀 열네 살 규리 이야기다. 친구들 때문에 오랫동안 서클렌즈를 끼면서 결막염이 생긴다. 두툼한 안경을 낀 그녀를 한때 친구라고 말했던 아이들이 왕따시킨다. 서클렌즈를 끼면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현실은 이야기 앞부분에 나온 계급 나누기와 비하의 연장선일 뿐이다. 그러다 규리 대신 민기라는 학생이 학폭의 대상이 된다. 규리는 자신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 안심하지만 불편하다. 아주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우연히 학교 밖에서 만난 민기와 가까워지는 규리의 모습은 풋풋하고 조심스럽다. 제목을 중의적으로 사용해 살짝 작은 재미도 남긴다.


장아미의 <소녀들의 여름>은 자신의 감정보다 함께 어울리는 친구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 하연의 이야기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그러다 그 아이돌의 춤을 추는 짧은 머리의 세아를 본다. 끌린다. 화장품 가게의 도둑질을 들켜 문제가 될 때 세아가 도와준다. 세아의 다른 친구들을 만난다. 하지만 하연과 세아 친구들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산다. 이것이 작은 갈등을 불러온다. 작가는 갈등을 부풀리고, 사건을 억지로 만들어내기보다 그 소녀들의 여름 한 순간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무론 갈등과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명섭의 <꿈속을 달리다>는 다리를 이식받은 창욱의 이야기다. 이 다리는 다른 사람의 기억을 담고 있다. 이와 비슷한 스릴러들이 한때 유행한 적이 있다. 심장이나 눈 등을 이식받은 사람들이 느낀 감정이나 본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소설들이다. 다리의 이전 주인이 어떤 인물인지 모르지만 창욱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달린다. 흔한 전개이지만 곳곳의 섬세한 설정 등이 나의 시선을 끈다. 김이환의 <지아의 새로운 손>도 sf 요소가 강하다. 기계손을 이식한 지아에게 부모는 사람 손으로 이식을 요청한다. 기계손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다른 세계에서 온 리나를 만난 후 나노기술이 일어키는 문제를 본 후 생각이 바뀐다. 이 소설에서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지아와 리나가 살고 있는 두 문명의 현실이다. 돈이 필요없고 우선권만 있는 지아의 세계와 돈을 벌어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겨우 가질 수 있는 리나의 세계다. 이 두 세계를 엮고 꼰다면 어떤 이야기가 흘러나올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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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장마르크 로셰트 지음, 조민영 옮김 / 리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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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의 작가가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제목과 소재가 늑대다. 이 만화를 읽으면서 내 속에 굳어 있던 늑대에 대한 선입견 하나를 발견한다. 중세 이후 늑대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으로 치부하고, 늑대가 위험하지 않다고 말하는 책들에 너무 기울어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늑대의 종류나 환경 등에 따라 구분해야 하는데 너무 일괄적으로 받아들인 것도 같다. 이 만화에서 늑대는 양을 공격한다. 필요한 음식을 위해 한 마리만 죽인다면 나의 기존 지식이 맞겠지만 상당히 많은 수의 양들을 죽인다. 여기서부터 나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진다.


양치기 가스파르는 자신의 양들을 공격한 늑대를 총으로 사살한다. 어미 늑대는 죽이지만 새끼 늑대는 아직 어려 죽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린 늑대는 자라 어른 늑대가 되고, 가스파르의 일상은 그대로 진행된다. 그리고 가스파르의 일상이 다른 사람과의 만난 속에 조금씩 흘러나온다. 외아들은 군인이었는데 말리에서 전사했고, 아내는 이 사건으로 정신을 놓았다. 이런 그에게 삶은 양치기 개 막스와 양들을 키우는 것에 한정된다. 늑대와의 공존을 묻는 말에 그는 양치기와 늑대는 함께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실제 늑대가 양들을 공격했을 때 일어난 막스와 양들의 죽음은 중반 이후 늑대와의 대결로 발전한다. 이 양들의 죽음에 대해 책 마지막에 나오는 해설은 늑대의 공격보다 인간이 양들을 그런 방향으로 길들였기 때문이란 것이다. 생각에 잠긴다.


프랑스에서도 험준하기로 소문난 에크랑 국립공원. 한 겨울 아주 높은 곳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늑대의 대결을 중반 이후 그린다. 늑대는 영리하게 총의 사정거리를 벗어나 있고, 가스파르는 이 영리한 늑대를 계속 쫓는다. 서로의 복수심이 엮여 있다. 가스파르는 어미 늑대의 원수고, 늑대는 가스파르의 개와 양들의 원수다. 험준하고 날씨가 가혹한 환경 속에 인간과 늑대의 대결은 계속 이어진다. 그러다 몰아친 눈폭풍은 추위와 고립을 불러온다. 며칠 동안 이어지는데 앞사람이 남겨둔 초와 물이 없었다면 그는 동사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맹추위 속에서 가스파르는 환상에 빠진다. 막스와 죽은 아들 다미앵을 만난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예상과 달라진다.


읽다 놓친 부분 중 하나는, 아니 작가의 연출에 의해 착각한 것 중 하나는 새끼 늑대라 가스파르를 증오하고 죽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온전히 가스파르가 하얀 늑대에 대해 품고 있는 감정과 이어져 있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 오게 되면 우리가 생각한 것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게 된다. 늑대의 입장이 아닌 인간, 그 중에서도 가스파르의 감정에 너무 빠져 있었다. 이 감정을 벗어난 후에 보여주는 평화로운 모습은 대립이 아닌 늑대와의 공존이다. 사실 이 부분을 보면서 다시 첫 부분에 늑대들이 양들을 죽였던 장면을 떠올린다. 어떤 것이 사실일까?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한 장면일까? 묵직한 그림체와 함께 나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멋진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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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스퀘어
안드레 애치먼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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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읽게 되는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이다. 처음 읽은 소설이 <수수께끼 변주곡>이었는데 상당히 재밌게 봤다. 하버드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안드레 애치먼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이집트 출신 유대인인 화자는 하버드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그 해는 1977년이고, 유난히 무덥게 느껴지는 여름이었다. 시험에서 떨어지면 대학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강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그는 프랑스어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 그때 카페 알제에서 프랑스어가 들려온다. 택시운전사이자 독설가인 칼리지의 목소리다.  이때 그는 칼리지에게 작은 인사를 한다. 이때부터 그의 삶이 뒤흔들린다.


처음에는 그의 아들과 모교에 투어를 온 것을 보여준다. 세계 최고의 대학 중 한 곳에서 청춘을 보낸 그에 비해 아들은 시큰둥하다. 추억에 잠긴 아버지가 보여주는 몇 가지 행동에 아들은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다 만난 공간들 중에서 카페 알제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한 순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칼리지와의 만남과 그와 함께 한 시간들이다. 소심하고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던 그가 칼리지를 만나면서 이전과 다른 삶으로 나아간다. 몇 개월 되지 않는 기간이지만 이 시기에 그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한다. 조금씩 성장하는 그에게서 드러나는 서로 다른 감정들은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명확하지 않기에 더 현실적인 그 감정들이다.


칼리지. 어떤 대목만 놓고 보면 오래 전 읽었던 그리스인 조르바가 떠오른다. 거침없고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다른 면에서 보면 흔하게 만나게 되는 대학의 괴짜 선배와 같은 모습이다. 분명하지 않은 이미지들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머릿속을 오갔다. 칼리지와 화자의 행동 등이 기억의 파편과 엮이면서 낯익은 감정을 느끼게 한 것이다. 처음 화자에게 칼리지의 독설은 신선했다. 그가 여자를 만나 잠깐 사귀고 헤어지는 것을 보고 부러워한다. 칼리지가 말한 대로 작은 관계를 쌓아간다.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것들을 실천한다. 불안한 마음 속에 자신감이 조금씩 자리를 잡는다.


이집트 출신의 하버드 대학생은 프랑스어를 말하고 싶어한다. 아니 프랑스를 그리워한다. 이것은 칼리지도 마찬가지다. 이 둘에게 프랑스는 “우리가 삶에서 필사적으로 붙잡으려 했던 단단한 무언가에 붙인 별명”이었다. 그들이 “꼭 붙들어야 했던 가장 단단한 것이 과거였고. 그 과거가 프랑스어로 쓰였을 뿐”이었다고 말한다. 화자가 프랑스 출신이 아니듯이 칼리지도 프랑스인이 아닌 베르베르인이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미국에 넘어왔는지 간결하게 알려준다. 현재 그는 한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미국 여자와 결혼했지만 이혼 중이라 미국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불안감은 소설이 진행되면서 점점 더 커진다.


칼리지를 만난 후 새로운 경험을 하고, 그의 세상이 넓어진다. 새로운 연인도 사귀지만 그는 정착하지 못한다. 사랑과 욕망은 흔히 뒤섞여 사람을 흔들어 놓는다. 그와 함께 머물기를 바라는 여자들이 나타날 때면 그는 머물지 않고 도망친다. 나쁜 놈이다. 하지만 자신이 나쁜 놈이 되는 것을 알고, 그 행동을 선택한다. 새로운 연인을 만날 기회는 많고, 그는 자신감이 차오른다. 그의 삶에서 문제는 풍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부유한 여자를 만나 더 높은 곳으로 갈 기회를 잡았지만 그는 주저한다. 오히려 미국에 대해 독설을 날리던 칼리지가 더 부추긴다. 가난한 택시운전사에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감을 가진 칼리지가 더 현실적이다.


지나간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순간 순간 나의 과거를 떠올렸다. 다른 시간, 다른 공간, 다른 문화 때문에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지만 그가 한 선택과 심리는 나의 과거와 조금은 이어져 있다. 추억은 그 시절의 고통과 고독과 아픔을 새로 쓰기 한다. 최소한 나한테는 그렇다. 그렇게 좋아했던 칼리지지만 어느 순간 그가 그의 삶에 끼어들지 않았으면 한다. 그가 누리는 안락과 평화가 깨어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칼리지의 정체가 들킬까 부끄럽기 때문이다. 이런 섬세하면서 사실적인 심리가 이 소설에서는 잘 표현되어 있다. 한때 그렇게 자주 갔고, 강렬한 경험을 한 곳이라면 풀려나올 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지나간 추억을 잠시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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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브랜든 1~2 세트 - 전2권 사람 3부작
d몬 지음 / 푸른숲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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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몬 작가의 ‘사람 3부작’ 마지막 편이다. 앞의 두 편 <데이빗>과 <에리타>는 아직 읽지 않았다. 이 시리즈첫 권인 <데이빗>은 2020년 네이버 웹툰에 처음 연재를 했는데 상당히 좋은 평점을 받았다. 이번 책을 읽기 전 어떤 내용인지 잘 몰랐다. 웹툰과 사람 3부작이란 단어에 혹했다. 솔직히 말해 이런 스타일의 웹툰은 거의 보지 않는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네이버 웹툰을 보는 작품은 몇 개 되지 않는다. 보다 중단한 작품도 있고, 연재가 끝난 작품도 있다. 아마 중단한 웹툰들은 언젠가 한 번 몰아서 볼 예정이다. 정말 취향이 아니면 손이 가지 않겠지만.


이 웹툰을 보고 처음에는 놀랐다. 대충 훑어본 그림체와 내용은 예상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어린 브랜든이 갑자기 차원의 문을 열고 들어가 마주한 곳은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다. 여기서 브랜든은 성인으로 변한다. 이곳에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존재 올미어를 만난다. 생긴 것만 놓고 보면 간단한 골격에 머리처럼 생긴 검은 구체가 있다. 칼처럼 생긴 팔로 지구와 같은 행성을 관찰하고 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올미어가 자신을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브랜든도 당연히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나중에 올미어가 다른 행성라키모아에서 한 생명체를 데리고 왔을 때도 반복된다.


여기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단어가 하나 있다. 사람이란 단어다.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단어다. 인간들이 다른 동물들을 볼 때 생각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이야기가 풀려간다. 올미어에게 인간은 그들 기준으로 사람이 아니다. 일반 사람들이 볼 때 라키모아 행성인들도 아마 그럴 것이다. 외계생명체를 사람이라고 부를 이유는 없다. 흔히 SF소설 등에서 말하는 외계의 지적생명체라고 불러도 된다. 이런 의미라면 사람이란 지적생명체로 해석해도 된다. 이전 작품들을 읽지 않아 작가가 풀어내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정의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이 작품만 놓고 보면 협소하게 해석할 여지가 많다.


올미어는 강철보다 강한 몸체에 비해 약간 머리를 가지고 있고, 이것이 약점으로 작용한다. 브랜든이 올미어를 죽일 수 있었던 것도 이 약점 때문이다. 올미어가 보여준 세계는 증식이 아니라 단일복제를 하고 자신들이 얻은 정보를 공유한다. 브랜든이 자신이 방문한 곳 이외에 나가는 경험을 하는데 다른 올미어들이 그를 애완동물처럼 쳐다본다. 이성이 아닌 감정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브랜든이 올미어 입장에서는 하등동물 같다. 그리고 올미어를 죽이고 지구로 돌아간 그는 놀라운 과학적 성과를 이루지만 외롭고, 평생 사람을 죽였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급속한 전개다.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가 개인적으로 더 흥미로웠다.


사람이란 단어보다 내가 이 웹툰을 읽으면서 더 관심이 간 부분은 라키모아에서 숭배하는 존재에 대한 것이다. 올미어가 라키모아에서 불러온 존재를 구해주는데 이 경험이 그들 문화에 하나의 신화처럼 작용한다. 브랜든의 신상을 조각하고 그가 강림하길 바란다. 그의 경험이 그 문화에 하나의 종교로 뿌리내린 것이다. 여기에 브랜든이 올미어를 죽인 사건이 하나의 죄의식으로 작용하면서 낯익은 종교의 모양을 갖춘다. 잠시 종교 만화인가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기득권의 대립과 충돌을 보여주면서 액션으로 넘어가는데 결국에는 ‘당신은 무엇?’이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으로 마무리한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마무리다.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선 이전 작품들을 한 번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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