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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스퀘어
안드레 애치먼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평점 :
두 번째 읽게 되는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이다. 처음 읽은 소설이 <수수께끼 변주곡>이었는데 상당히 재밌게 봤다. 하버드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안드레 애치먼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이집트 출신 유대인인 화자는 하버드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그 해는 1977년이고, 유난히 무덥게 느껴지는 여름이었다. 시험에서 떨어지면 대학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강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그는 프랑스어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 그때 카페 알제에서 프랑스어가 들려온다. 택시운전사이자 독설가인 칼리지의 목소리다. 이때 그는 칼리지에게 작은 인사를 한다. 이때부터 그의 삶이 뒤흔들린다.
처음에는 그의 아들과 모교에 투어를 온 것을 보여준다. 세계 최고의 대학 중 한 곳에서 청춘을 보낸 그에 비해 아들은 시큰둥하다. 추억에 잠긴 아버지가 보여주는 몇 가지 행동에 아들은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다 만난 공간들 중에서 카페 알제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한 순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칼리지와의 만남과 그와 함께 한 시간들이다. 소심하고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던 그가 칼리지를 만나면서 이전과 다른 삶으로 나아간다. 몇 개월 되지 않는 기간이지만 이 시기에 그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한다. 조금씩 성장하는 그에게서 드러나는 서로 다른 감정들은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명확하지 않기에 더 현실적인 그 감정들이다.
칼리지. 어떤 대목만 놓고 보면 오래 전 읽었던 그리스인 조르바가 떠오른다. 거침없고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다른 면에서 보면 흔하게 만나게 되는 대학의 괴짜 선배와 같은 모습이다. 분명하지 않은 이미지들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머릿속을 오갔다. 칼리지와 화자의 행동 등이 기억의 파편과 엮이면서 낯익은 감정을 느끼게 한 것이다. 처음 화자에게 칼리지의 독설은 신선했다. 그가 여자를 만나 잠깐 사귀고 헤어지는 것을 보고 부러워한다. 칼리지가 말한 대로 작은 관계를 쌓아간다.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것들을 실천한다. 불안한 마음 속에 자신감이 조금씩 자리를 잡는다.
이집트 출신의 하버드 대학생은 프랑스어를 말하고 싶어한다. 아니 프랑스를 그리워한다. 이것은 칼리지도 마찬가지다. 이 둘에게 프랑스는 “우리가 삶에서 필사적으로 붙잡으려 했던 단단한 무언가에 붙인 별명”이었다. 그들이 “꼭 붙들어야 했던 가장 단단한 것이 과거였고. 그 과거가 프랑스어로 쓰였을 뿐”이었다고 말한다. 화자가 프랑스 출신이 아니듯이 칼리지도 프랑스인이 아닌 베르베르인이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미국에 넘어왔는지 간결하게 알려준다. 현재 그는 한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미국 여자와 결혼했지만 이혼 중이라 미국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불안감은 소설이 진행되면서 점점 더 커진다.
칼리지를 만난 후 새로운 경험을 하고, 그의 세상이 넓어진다. 새로운 연인도 사귀지만 그는 정착하지 못한다. 사랑과 욕망은 흔히 뒤섞여 사람을 흔들어 놓는다. 그와 함께 머물기를 바라는 여자들이 나타날 때면 그는 머물지 않고 도망친다. 나쁜 놈이다. 하지만 자신이 나쁜 놈이 되는 것을 알고, 그 행동을 선택한다. 새로운 연인을 만날 기회는 많고, 그는 자신감이 차오른다. 그의 삶에서 문제는 풍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부유한 여자를 만나 더 높은 곳으로 갈 기회를 잡았지만 그는 주저한다. 오히려 미국에 대해 독설을 날리던 칼리지가 더 부추긴다. 가난한 택시운전사에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감을 가진 칼리지가 더 현실적이다.
지나간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순간 순간 나의 과거를 떠올렸다. 다른 시간, 다른 공간, 다른 문화 때문에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지만 그가 한 선택과 심리는 나의 과거와 조금은 이어져 있다. 추억은 그 시절의 고통과 고독과 아픔을 새로 쓰기 한다. 최소한 나한테는 그렇다. 그렇게 좋아했던 칼리지지만 어느 순간 그가 그의 삶에 끼어들지 않았으면 한다. 그가 누리는 안락과 평화가 깨어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칼리지의 정체가 들킬까 부끄럽기 때문이다. 이런 섬세하면서 사실적인 심리가 이 소설에서는 잘 표현되어 있다. 한때 그렇게 자주 갔고, 강렬한 경험을 한 곳이라면 풀려나올 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지나간 추억을 잠시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