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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아내
세라 게일리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월
평점 :
아주 인상적인 문구로 나를 유혹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 그것도 내 복제인간과.” 이 문장을 보면서 머릿속에는 의문 부호가 생겼다. 아내가 있는데 왜 복제인간과 바람을 피웠을까? 표지처럼 복제인간을 쉽게 만들어낸다면 이 자체가 엄청난 산업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다. 전자는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이니 뒤로 넘기자. 후자의 경우 소설 속에도 나오지만 복제인간을 만들어 의료용 등으로 이용하는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내용을 주로 다룬 소설과 영화가 많으니 그쪽을 참고하는 편이 더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론 복제인간의 감정이 이 소설에서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왜 아내의 복제인간과 바람을 피웠을까? 띠지에 나오는 “그의 꿈을 비추는 수단일 뿐이었다.”에 답이 있다. 현실의 아내에게서 얻지 못한 것을 그가 만든 복제인간을 통해 얻으려고 한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아내의 복제인간은 그가 만들기 쉽고 관리하는 것이 편하지만 다른 여성의 경우 그 유전자를 얻고, 기억을 업로드하는 등의 일이 힘들다. 현실 아내 대용품으로 만들어진 복제인간 아내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하고, 이것이 사건의 시작이자 숨겨진 과거를 파헤치는 시발점이 된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드러나는 사실들은 서늘하고 잔혹하다.
뛰어난 여성 과학자 에벌린 콜드웰은 복제인간 연구 성과로 바라던 과학상을 수상한다. 그런데 이 과학상에 기록될 성은 전 남편의 성이다. 자신의 복제인간과 바람을 핀 남편의 성이다. 그녀의 이름은 마르틴이다. 남편이 바람 핀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자신의 연구에 필요한 머리카락을 실험할 때다. 실제 마르틴을 만났을 때 그녀는 깜짝 놀란다. 복제인간 마르틴이 임신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복제인간이 임신하지 못하게 프로그램했다고 한다. 어떻게 한 것이지? 이 만남 이후 걸려온 전화 한 통은 그녀의 삶을 뒤흔든다. 마르틴이 남편 네이선을 죽인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네이선이 그녀에게 폭력을 가했고, 마르틴은 우발적으로 그를 죽였다.
보통의 스릴러라면 이 살인을 숨기고, 알리바이를 만들고, 실종 사건으로 일어나는 문제를 통해 긴장감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복제인간을 다루는 SF소설이다. 남편이 사라진 후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네이선의 복제인간을 만든다. 몰래 만들려고 실험실에 들어가지만 연구 조수 세예드가 그곳에 있다. 이유는 실험 재료를 훔쳐 팔기 위해서다. 그녀의 뛰어난 연구 성과는 수많은 지원자들을 불러오지만 세예드는 그녀와 마음이 맞는 좋은 조수였다. 이 사실이 둘 사이에 은밀한 비밀 유지로 이어지고, 네이선 복제인간을 만드는 일에 협력한다. 이 과정은 단순히 복제인간을 배양해서 만드는 일뿐만 아니라 실패한 복제인간을 처리하는 부분도 같이 다룬다. 읽으면서 섬뜩했던 대목 중 하나다. 인간을 닮은 존재를 죽이고, 해부하고, 폐기 처리하는 과정이 너무 건조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네이선을 복제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기억을 다루는 장면들이다. 혹시 DNA에 각인된 정보가 클론을 통해 발현되는 것일까? 생각했는데 연구자가 하나씩 입력하는 것으로 나온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 과학적으로 허술한 부분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 과정은 두 여성, 에블린과 마르틴이 알고 있는 네이선을 복기하는 순간이란 점이 중요하다. 이전에 네이선이 보여준 행동 등을 프로그램 과정에서 삭제한다.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가정폭력과 가스라이팅 등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했을 때 그가 보여준 행동이 어떠했는지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이 나올 때 다시 복제인간과 윤리문제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은 가정폭력과 가스라이팅에 대응하는 여성들의 은밀한 반격을 다룬다.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가능한 좁혀 놓고, 그 문제의 일부를 정원 밑에 묻어둔 채 넘어간다. 자신의 복제인간 마르틴의 존재를 다른 사람에게 알릴 경우 생기는 윤리적 도덕적 문제보다 자신의 연구 성과가 파묻히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 장면은 아주 현실적이다. 관계나 공간을 좁혀 네이선 살해와 복제 문제를 비교적 가볍게 처리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리고 작가의 말에 나오는 고백들은 아주 의미심장하고 무겁다. 분명 이 소설의 자양분들이다. 많은 소설의 흔적이 보이는 작품이지만 다른 작품에 아이디어를 제공할 부분도 많은 소설이다. 가독성도 상당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