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 최후의 날 1 - 2022년 문학나눔 선정도서 안전가옥 오리지널 15
시아란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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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앤솔로지 <대멸종>에 실린 단편 ‘저승 최후의 날에 대한 기록’을 장편 소설화한 결과다. 이때 쓴 글을 보니 장편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감상이 있는데 생각한 것보다 몇 배나 늘어났다. 3권을 합치면 거의 1500쪽에 달한다. 단행본 출간 전에 카카오페이지에 웹소설로 먼저 연재를 했고, 한국SF어워드 웹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대단하고, 축하할 일이다. 단편을 장편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생존자들의 분량을 저승과 거의 비슷한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작가는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읽으면서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더 현실적인 설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장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요즘 개인적으로 소설이 두 권을 넘어가면 조금 버겁다. 그런데 이 소설은 무려 세 권이다. 단편을 재밌게 읽었다고 이렇게 달려들다니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이런 생각과 달리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서 빠져들었다. 교통 사고로 죽은 호연과 예슬이 저승에 도착한 그 날 지구는 알두스의 천체 폭발로 발생한 감마선에 의해 순차적으로 대멸종을 겪게 된다. 그 흔한 핵폭발이나 운석 충돌이 아니라 감마선이라니. 다른 sf소설처럼 이런 일에 대한 대비를 했다면 생존을 위한 인류의 노력을 보여줄 텐데 갑작스럽게 이 일이 일어난다. 지구의 자전속도에 맞춰 인류는 강력한 감마선으로 죽는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극소수일 뿐이다. 우리가 흔히 예상할 수 있는 곳에 머문 사람들이다.


시왕저승의 세계에 도달한 영혼들은 평소 이 세계를 믿고 있던 사람들이다. 강하게 다른 종교를 믿은 사람들은 그 종교의 사후세계로 넘어간다. 염라대왕이 사후를 다스리는 이 세계는 망자를 받아 그들이 저지른 이승의 죄에 따라 처벌한다. 쉽게 가려고 했다면 작가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후 세계를 그대로 재현하면 되지만 작가는 시대의 변화를 저승 속에서 녹여내고 있다. 현대의 문물들이 저승에서도 재현되고, 이승의 철학이나 가치관 등이 조금씩 반영된다. 저승의 최후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과 더불어 나의 시선을 가장 끈 부분은 바로 이 바뀐 저승세계다. 단순하고 자극적인 고대의 지옥 대신 작가가 보여준 지옥의 풍경은 그 지옥을 방문한 망자들의 첫 반응처럼 낯설고 거부감이 생기지만 곰곰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갑자기 죽은 자들이 저승에 도착하면서 생기는 문제를 보여주고, 망자들이 사출산 도산지옥에서 다칠 경우 영혼에 상처를 입고 원귀가 될 수 있다고 한 부분과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역사들을 동원해 칼로 된 나무 등을 모두 제거하는 행동을 한다. 처음부터 우리가 알고 있던 저승이 아니다. 그리고 갑자기 망자들이 늘어난 상황에 대한 혼란을 겪는다. 전쟁이나 재난 상황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승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거대한 의문에 대한 답을 알려주는 인물이 천문학 박사과정에 있었던 채호연이다. 하나의 과정을 내놓았고, 다른 천문학자들의 의견이 모이고, 이승에서 일어난 정보가 모이면서 사실로 판정된다. 이때 살짝 빌런이 이 모임에 끼어든다. 정상재 교수다.


방송에 나와 인기를 얻은 천문학자 정상재 교수의 첫 등장에서 작가는 살짝 속내를 드러낸다. 방송과 강연 등으로 나열된 문제 등을 요약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날카로운 통찰과 뛰어난 직관력을 보여주는 호연이 문제를 밖으로 드러내지만 이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검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인류의 종말에 대한 것과 함께 그녀가 낸 또 다른 문제는 저승에 사람들이 오게 되는 과정을 들으면서 생긴 것이다. 저승의 기반이 이승의 믿음에 기반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만약 이 저승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모두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 소설의 제목처럼 저승이 최후가 펼쳐진다. 이것이 사실인지 확인해야 한다. 여기서 정상재 교수가 보여주는 교묘한 언변과 논리는 박사과정 호연의 감정과 엮이면서 예상 밖의 상황으로 이어진다.


장대한 소설의 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작가가 설정한 종말의 모습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지만 사고실험은 가능하다. 감마선이 지구의 종말을 가져온다는 설정 중 일부를 보면서 <삼체>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작가는 상상력을 우주로 보내기보다 저승의 모습을 최대한 현실의 반영으로 그려내면서 몰입도를 높였다. 저승이 존속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이승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도움을 바란다. 이 과정을 보여주는 데 전문가로 뽑힌 사람들이 상당히 한정적이다. 의도적인 설정인 듯한데 살짝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물론 너무 많거나 권위적인 인물들이 모인다면 일이 잘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 읽고 난 후 마지막 한 문장이 계속 머릿속에 남는다. 왜 이런 장면을 넣었을까? 기독교 사후 세계에 대한 묘사가 한정적인 것도 조금 아쉽다. 생존자 그룹 중 하나였던 솔개부대 대위 인영이 시왕저승의 사자에게 보여주는 종교적 반응은 살짝 반발감이 생긴다. 오해와 이해 부족이란 단어가 나오지만 그의 반말과 함께 눈에 거슬린다. 독자적 사후세계를 이루고 살아가던 망자들이 나중에 너무 쉽게 이승에 나타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살짝 균형이 깨어진 모습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이야기가 더 풍성해지고 재밌어졌다. 작가는 곳곳에 권위주의를 무너트리는 장면을 넣었다. 현실에 대한 반발이 아닐까? 이 글을 쓰는 지금 마지막 장면과 더불어 혹시 하는 기대를 품는다. 시왕저승의 최후 이후 다시 만들어지는 시왕저승의 모습을 그린 소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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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장성주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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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발표작이다.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2024년부터다. 기후 변화로 폐허가 된 미래를 설정하고 그려낸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겨우 2년 남았지만 시간을 조금 더 뒤로 미룬다면 생각할 거리가 많다. 핵 전쟁이나 외계인의 침입 등보다 훨씬 현실적인 설정이란 생각이 든다. 읽다 보면 의문이 드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소설 속에서 해결되거나 생략된 것들이다. 가장 흥미로운 설정은 국가가 존재하지만 공권력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약탈을 저지르고, 경찰이 약탈자처럼 변한 것들이다. 그리고 마약의 부작용으로 태어나면서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초공감자들의 존재다.


책을 펼치면 만나게 되는 낯선 단어 하나가 있다. 바로 ‘지구종’이다. 이 단어를 만들어낸 인물은 바로 주인공이자 기록자인 로런이다. 소설은 로런의 2024년부터 2027년까지 일기로 이루어져 있다. 열다섯 살 생일날의 기록으로 시작한다. 일기라고 해서 매일을 기록한 것은 아니다. 사건에 따라 각각의 분량도 다르다. 어떻게 보면 그냥 평범했던 소녀가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가 되는 과정으로 요약할 수도 있을 테지만 그 사이에 그녀의 성장과 고난과 현실에 대한 참혹한 묘사와 설명은 그 단순한 요약 이상을 담고 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한 듯이 누리고 있는 문명의 혜택이 무너진 후의 삶을 아주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생각할 거리를 쉴 새 없이 던져준다.


로런의 아버지는 침례교 목사다. 목사라고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대학에 강의를 나가야 한다. 로런의 엄마가 죽은 후 새로운 여자와 결혼했고, 로런 밑으로 동생이 네 명이나 있다. 어릴 때 로런의 초공감증후군은 아주 심했다. 피까지 흘릴 정도였다고 한다. 다른 대상의 고통을 자신도 똑같이 느끼는 증후군인데 옆에 누군가가 없으면 이 무시무시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고 할 때 그를 고통스럽게 한다면 자신도 똑같이 그 고통을 느끼니 상대가 둘만 되어도 목숨이 위험하다. 이야기 도중에 그녀가 명사수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누군가가 즉사하지 않으면 그 고통 때문에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다.


목사의 딸이란 설정은 소설 속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장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에서 자란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장벽을 쌓은 이유도 부랑자나 도둑들이 침입해서 훔치고 약탈하고 폭력을 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혼자 집을 지키기는 너무나도 무력한 시대다. 기후 변화로 물과 식량이 귀해졌다. 물의 경우 우물이 없다면 사서 먹어야 한다. 비라도 자주 온다면 좋겠지만 비도 거의 오지 않는 환경이다. 삶이 너무나도 힘들다 보니 사람들은 좀더 좋은 환경을 가진 것처럼 알려진 캐나다로 달려간다. 캐나다도 이런 사람들을 막아야 한다. 이 부분은 현재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는 중남미 사람들과 대비된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안전하게 노동을 제공하고 먹고 사는 것이다.


일상의 기록은 혼란의 시대일수록 가치가 있다. 그 시대의 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로런은 이 시대를 보면서 하나를 깨닫는다. 그것은 세상의 변화다. 절대적인 것이 없다고 믿고, 변화의 힘을 믿는다. 이 부분을 보면서 불교의 ‘무상’이란 개념이 떠올랐는데 나중에 살짝 이 지적도 나온다. 변화는 세상 속에서 그대로 순응하면 그 변화에 휩쓸려 들어가지만 그 변화의 힘을 자신들로부터 시작한다면 어떨까?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공동과 연대의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생존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튼튼한 것처럼 보였던 장벽이 무너지고, 아버지의 생존을 알 수 없는 현실이 일어난다. 이런 가능성을 늘 대비했지만 그 충격은 언제나 상상을 초월한다.


황폐해진 환경 속에 사람들의 삶은 각자도생이 된다. 부모가 자식을 팔고, 새로운 노예 제도가 생긴다. 거대 기업들은 자본의 힘으로 시대를 뒤로 돌린다. 야생 개들이 길에서 죽은 사람들을 먹고 산다. 그런데 장벽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이 개를 잡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미 다른 곳에서 식인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개를 인간의 친구라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들은 아직 그런 허기를 마주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국가가 존재하고, 바닷물을 담수화해서 보급 가능하고, 우주선을 우주로 보낼 수 있는 시대이지만 눈을 조금만 옆으로 돌리면 야만의 풍경으로 가득하다. 갑자기 생각이 문명과 야만의 충동이란 판타지로 빠진다.


이 우화 시리즈는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겨우 반이 지났다. 소설 곳곳에 깔아 둔 몇 가지 이야기들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새로운 대통령의 등장이나 대기업의 공격적 식민화나 인종 차별 등의 문제 등이다. 살짝 보여준 캐나다 국경 지역의 설명도 더 필요하다. 다음 이야기에서 어디까지 나올지 모르겠다. 읽으면서 이렇게 많은 유민들을 조직해서 기업 등을 공격하는 인물이 나오지 않나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는데 국가가 군대를 동원해 진압했다는 내용을 보고 생각을 접었다. 아직 완전히 국가 권력이 해체된 것이 아니다. 경찰이 시민을 약탈해도 문제가 없는 시대라는 것도 무섭다. 지구종의 씨앗이 어디까지 뿌려지고 싹을 틔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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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피터의 고백 - 프란츠 카프카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마히 그랑 지음, 서준환 옮김, 프란츠 카프카 원작 / 늘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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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래픽노블의 원작은 프란츠 카프카다. 부제로 ‘프란츠 카프카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가 붙어 있다. 솔직히 말해 표지만 보고는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래픽노블이란 사실을 모른 채 부제를 보곤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오래 전 읽었던 카프카의 소설들을 생각하면 난해한 책에 대한 거부감이 점점 심해지는 나에게 맞지 않은 책이다. 그런데 출판사 리뷰가 나를 유혹했다. 그래픽노블이고, 책장을 덮고 나면 정말로 무대에서 상연되는 한 편의 모노드라마를 감상한 듯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유혹에 살짝 넘어갔다. 그리고 기대한 것처럼 빠르고 재밌게 읽었다.


한때 연극배우 추송웅 씨가 이 원작을 연극으로 올렸었다. 추송웅이란 이름보다 나중에는 영화배우 추상미의 아버지로 더 알려졌지만 나는 그 이름을 기억한다. 카프카의 단편집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데 아직 읽지 못했다. 이 그래픽노블을 읽기 전이나 읽은 후 원작을 한 번 읽었다면 이해의 폭이 더 넓어졌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게으름을 생각하면 가능성이 없는 일이지만. 작가 마히 그랑이 해석하고 연출한 그래픽노블로 이해해야 한다. 몇몇 대목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 이 소설에서 그것은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빨간 피터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해야 한다.


턱 수염이 덥수룩한 한 남자가 연설 연습을 한다. 그가 간 곳은 한 학술원이다. 담배를 물고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5년 전 사냥꾼들에게 포획될 때부터다. 맞다. 그는 사람이 아니다. 침팬지였다. 총에 맞은 후 배에 실려 옮겨진다. 처음에는 나무 상자에 갇혀 있었고, 나중에는 철창에 갇힌다. 그가 왜 빨간 피터로 불리는지도 이때 알려준다. 두렵지만 호기심 많은 그는 뛰어난 관찰을 통해 선원들의 행동을 모방한다. 처음에는 동작을 따라한다. 작가는 이 부분을 아주 간결하게 보여준다. 선원들이 피우는 담배를 건내줄 때 실수를 하기도 한다. 술은 또 어떤가. 그러다 인간의 말을 내뱉는다.


원숭이가 인간의 말을 한다고? 대단한 흥행의 요소다. 쇼는 성공하고, 점점 인간의 삶을 모방하고 배우는 빨간 피터는 사람의 모습을 닮아간다. 암컷 침팬지와 하룻밤을 보내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특히 낮 동안은 대면하고 싶지 않다. “그 망연한 표정, 길들여진 짐승의 눈길에 어쩔 수 없이 고여 있는 슬픔 때문이죠.” 빨간 피터도 인간의 말을 하지 못했다면 우리에 갇힌 채 이 암컷과 비슷한 표정과 눈빛을 가졌을 것이다. 그럼 그는 인간성을 가졌을까? 인간성의 정의는 또 무엇일까? 장 지로두의 “인간성이란 인간적 한계를 넘어서려는 어떤 시도이다.”란 정의는 인간적 한계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간다. 그 학술원에 있는 학자들이 빨간 피터의 보고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알려주지 않는 것도 재밌는 부분이다.


이 그래픽노블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진화론을 인용한 그림과 만나게 된다. 인류가 유인원에서 진화했다는 사실을 빨간 피터의 보고를 통해 간결하게 보여준다. 물론 5년만에 말을 배우고 인간처럼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지는 않다. 현실을 여기에 대입하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그를 작가는 아주 멋지게 표현한다. 가독성을 높이고, 곳곳에 의미 있는 그림을 넣어 놓았다. 성공한 원숭이가 인간처럼 행동하다가 원숭이의 옷을 입고 무대로 나가는 마지막 장면은 아주 의미심장하다. 카프카의 소설을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왠지 모르게 카프카의 소설을 이해한 듯한 착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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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크 머리를 한 여자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 지음, 이지민 옮김 / 혜움이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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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자신이 북아메리카 원주민이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도 아메리카 원주민과 관계 있다. 화려한 추천글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호로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나도 이렇게 끌려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이 소설의 구성과 전개 등이 예상과 달랐다. 과거의 실수에 대한 복수극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심리와 행동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가해자들이 느낀 혼란과 공포 등이 뒤섞여 풀려나오는 이야기는 나에게 낯설었다. 왠지 모르게 잘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어떤 대목은 빠르게 읽을 수 있었지만 가해자들이 느낀 감정들이 흘러나올 때, 그 감정이 예상하지 못한 행동으로 이어질 때 몰입감이 떨어졌다. 어쩌면 좀 더 천천히 읽어야 했는지 모르겠다.


네 명의 원주민들이 엘크 떼를 사냥한다. 금지 구역에 들어가 사냥을 하면서 부족 전체에 엘크 고기를 먹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사냥을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사냥하지 말아야 할 것을 사냥한다. 이 실수를 묻어둔 채 이 네 명의 남자들은 헤어져 각자의 삶을 산다. 이들은 캐시, 리키, 루이스, 게이브 등이다. 10년이 지난 후 이들은 한 명씩 죽는다. 가장 먼저 죽는 것은 리키다. 술집 밖에서 몸싸움 도중 사망했다는 기사 보도가 있지만 그가 그날 본 것은 다른 것이다. 엘크 머리를 한 여자를 봤고, 그가 저지르지 않은 행동이 술집 손님들과 다투게 만들었다. 읽다 보면 그가 환상을 보고 저지른 잘못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루이스는 백인 아내와 잘 살고 있다. 리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10년 엘크를 죽였고, 문제의 엘크 가족을 여전히 보관하고 있다. 그날의 실수를 가슴속에 품은 채 살고 있고, 이 사실을 그의 아내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팬을 고치려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가 엘크의 환영을 본다. 그 동안 숨겨둔 죄의식이 고개를 든다. 루이스의 이야기를 통해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독자들은 알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때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참혹한 장면이 나오지만 그것이 평소의 사냥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죄의식과 공포가 만들어내는 참극은 아주 잔혹하다. 그가 오해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야기 마지막까지 읽게 되면 의문을 다시 품게 된다.


두 사람이 죽은 후 남은 두 명은 같은 곳에 여전히 살고 있다. 캐시와 게이브는 절친으로 잘 살고 있지만 현실과 환영이 뒤섞인 일로 서로 의심한다. 호칭에도 변화가 있다. 엘크 머리를 한 여자를 ‘너’라고 부른다. 루이스가 죽을 때 데리고 있던 엘크 새끼와 관련이 있다. ‘너’는 마지막 복수를 위해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이 복수는 두 사람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공간 중 하나가 등장한다. 스웨트 로지란 문화적 공간과 그곳에서 경험하는 환상 체험이다. 빅터 옐로 테일 경관이 아들 네이트를 위해 계획한 것이다. 설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증막이 떠오른다. 캐시와 게이브의 개인사가 조금씩 드러나고, 불안감이 고조된다.


10년 전 엘크를 죽인 후 네 명 모두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 유일하게 그 전에 아이를 가진 인물이 게이브다. 그의 딸 데노라는 아주 뛰어난 농구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뛰어난 실력은 백인들이 혐오 감정을 담아 노래를 할 정도다. 이 소설의 제목과도 관계 있는 “좋은 인디언은 오로지 죽은 인디언뿐”이란 노래다. 농구는 루이스의 이야기에서도 중요한 장면이다. 하지만 데노라가 나온 이후는 엘크 머리를 한 여자와 1대1 농구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이 농구와 함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그들의 미래가 얼마나 닫혀 있는지 등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엘크 머리를 한 여자의 참혹한 복수극이다. 하지만 그녀를 화자로 두지 않고, 화자를 그녀에게 좇기는 사람들에게 두면서 다른 감정으로 이 장면들을 보게 한다. 그리고 내가 평면적으로 인식한 아메리칸 원주민의 삶을 엿보게 한다. 강한 집중력으로 읽어야 하는 부분이 많다.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장면에서 잠시 한 눈을 팔면 나처럼 의문을 더 품게 된다. 단순히 표면적으로 드러난 장면 너머의 의미도 파악할 수 있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의문을 품게 하는 장면들이 많지만 지금 이 순간 몇 장면이 머릿속에서 여운을 남기고 강하게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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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제9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
정욱 외 지음 / 마카롱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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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수상 작품들을 자주 읽는다. 단편 수상작품집도, 장편 수상작도 기회가 되면 읽고 있다. 취향을 살짝 벗어나는 소설도 있지만 대부분 만족하면서 읽고 있다. 이번 단편집을 받고 이 수상작품집도 상당히 오랫동안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억의 혼란에 의한 착각이었다. 장편과 엮이면서 오래 전부터 읽은 것으로 헷갈린 것이다. 2021년 9회를 맞이했다는 사실도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다섯 작품이 선별되었고, 나의 시선을 끄는 작품도 상당히 많다. 개인적으로 심사평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독자와 작가의 시선이 갈리는 부분이 눈에 더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정욱의 <네 딸을 데리고 있어>란 제목을 보고 단순 유괴 사건으로 생각했다. 읽기 전에는 몰랐는데 마지막 단어 ‘있어’와 ‘있다’의 의미 차이는 상당하다. 아마 일반 유괴범이라면 ‘네 딸을 데리고 있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 의미 차이를 알려주는 과정에 흘러나오는 학교 폭력과 아동 학대는 예상을 벗어난 전개로 이어지게 한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는 평생 트라우마 속에 살지만 가해자는 인플루언서로 승승장구하는 모습은 최근 몇 년 동안 연예인에 대한 폭로와 맞닿아 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잠시 어리둥절했다. 앞의 문장을 다시 읽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최소 경장편으로 바꾸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이담의 <조립형 인간>은 생각하지 못한 설정으로 이어졌다. 힘들게 대기업 인턴에 들어갔지만 정규직 채용까지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첫날부터 희주의 눈길을 사로잡은 남자 인턴이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그의 비밀을 알게 된다. 어떻게 보면 조금 황당한 설정일 수 있지만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는 현실을 돌아보면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욕망이, 강박이 담겨 있다. 치열한 경쟁과 욕망이 뒤엉키는 와중에 생긴 작은 사건보다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정규직 채용 과정에 벌어지는 남녀 차별이다. 비극도 그 속에서 잉태했다. 의문을 품게 하는 마지막 반전도 눈길을 끈다.


청예의 <웬즈데이 유스리치 클럽>은 한방을 꿈꾸는 지우의 삶을 세밀한 심리 표현으로 보여준다. 코로나19로 중소기업에서 문자 해고된 후 취준생이 된 그가 바라는 것으 한방으로 부자가 되는 것이다. 제목의 모임에 가입해 열심히 재테크 공부를 하는 것 같지만 속내는 한방에 있다. 이 클럽에 특별 게스트가 와 주식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다른 멤버들이 연 10% 수익을 말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그에게 대박을 꿈을 불어넣으며 특별 게스트와 모임장이 유혹한다. 불안감이 강하게 느껴지지만 욕망과 분위기에 휩쓸린다. 이 소설의 강점은 이 분위기와 심리 표현에 있다. 그리고 누구나 예상 가능한 결과와 예상하지 못한 지우의 반응이 씁쓸한 재미를 준다.


오승현의 <밸런타인 시그널>을 읽고는 당혹감을 느꼈다. 천문학 전공자 조는 현재 백수다. 그의 유일한 재산은 어머니가 물려준 수도권 재개발 아파트다. 외계의 존재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하나씩 풀어놓는다. 평온한 일상 속에 유일하게 그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은 전 여친이 대학교수가 되어 방송에 나오는 것이다. 작은 열등감이 있다. 이때 윗집에 꼬마들을 데리고 한 부부가 이사 온다. 백수라 낯에도 집에 있는 그에게 아이들이 쿵쾅거리는 소리는 너무 시끄럽다. 그리고 우주로부터 이상한 신호가 잡힌다. 층간소음 문제도 발생하고, 외계의 신호는 그를 혼란으로 몰아간다. 어느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틀어진다. 부동산, 층간소음, 담배 냄새 등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현실을 그려내면서 한방에 판을 돌려버린다.


임수림의 <너에게>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인간과 놀아줄 목적으로 만든 로봇이 인간의 감정을 가지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다룬다. 로봇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인간처럼 행동한다. 이 로봇의 외양은 만든 박사의 죽은 아들과 닮았다.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아는 순간 박사는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라고 한다. 이 호칭에 담긴 감정은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이야기는 이 로봇이 수안이란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다. 자신의 탄생과 수안에게 느낀 감정과 그 후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담담한 듯한 이야기이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혹시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연작을 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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