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는 소녀와 축제의 밤
아키타케 사라다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25회 일본 호러소설대상 대상 수상작이다. 작가의 데뷔작이다. 네 개의 에피소드가 실려 있는데 분량이 각각 다르다. 마지막 제4화가 가장 분량이 많다. 앞의 3화가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를 전개한다면 마지막 이야기는 앞에 출연한 인물들이 모두 모인다. 이들을 모은 인물이 읽다 보면 계속해서 등장하는 마쓰리비 사야다. 솔직히 말해 그녀의 이름을 정확하게 인식하게 된 것은 세 번째 에피소드였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처음에 등장한 이야기를 다시 되돌려보았고, 각각의 에피소드에 그녀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이런 괴이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각 에피소드의 화자가 다르다. 첫 번째 화자는 고등학교 수학선생 사카구치다. 학교 여선생의 새 책상 옮기는 것을 도와주러 갔다가 마쓰리비 사야를 만난다. 착하지만 약간 어색한 이미지를 받는다. 그런데 사야가 교실 바닥의 보면서 나무 바닥판을 뒤집는 기이한 존재에 대해 말한다. 이 괴물을 피하는 방법은 뒤집은 판에 그대로 머무는 것이다. 하지만 급박한 상황은 자신이 예상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소년은 매일 밤 지네 모습의 생물체에 쫓긴다. 잠만 들면 나타난다. 이 존재를 아는 친척 누나가 절대 신사에 가지 말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느 날 지각하기 전에 선배 한 명이 그의 손을 잡고 지름길이라고 말하면서 신사를 통해 끌고 간다. 그 선배가 바로 사야다. 이때만 해도 사야가 반복해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세 번쩨 에피소드는 10년 전 한 존재로부터 작은 도움을 받고 10년 후 그 대가를 지불하기로 한다. 여섯 살 어린 소녀가 맺은 계약은 정보 부족으로 인한 불공정계약이다. 하지만 그 존재에게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3년, 7년마다 나타나 계약을 상기시키고, 더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묻는다. 이 존재는 나타날 때마다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런 7년이 지난 시점에 그녀에게 작은 조언을 하는 동기가 나타난다. 역시 사야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앞에 나온 세 명과 사야가 함께 사야의 오빠를 구하기 위한 계획에 동참하는 것이다. 축제의 밤에 마물의 미끼가 되어 밤새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인물은 사카구치 선생이 유일하다. 이 이야기는 대부분 사카구치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각각의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작가가 살짝 흘린 단서를 금방 알 수 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 모인 인물들은 모두 사야의 도움을 받았고, 위험한 순간이 되면 마물의 미끼를 버리면 살 수 있다고 믿는다. 해가 진 후부터 해가 뜰 때까지 운전을 하면서 마물을 피해야 한다는 설정을 보면서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운전을 장시간 해본 사람이라면 최소 열 시간 운전이 얼마나 힘든 지 알 수 있다. 여기에 사카구치는 사야가 말한 내용의 잘못된 부분을 알고 있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기이한 마을 풍경이 의미하는 바도 깨닫는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몰입감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물의 모습은 내가 본 영화 등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상상하면서 긴장감을 계속 유지했다. 몰입감이 대단히 좋다.


소설 속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여러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예상 가능한 부분도 많지만 순간적으로 공포감을 불어오는 장면 연출이 뛰어나 순간 서늘함을 느낀다. 뻔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뻔함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방법이 뻔하지 않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작은 의심의 씨앗이나 공포스러운 존재를 완전히 사라지게 하지도 않는다. 실제 마지막에 이런 정보를 어디서 얻었는지 알려줄 때 책 첫 부분으로 돌아간다. 그 이야기를 알려준 새가 나타났다고 했을 때 다음 이야기를 기대한다. 실제 일본에서는 이 다음 이야기도 나왔다. 이런 정도의 완성도와 재미라면 다음 작품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두 거장 미야베 미유키와 기시 유스케의 평에 동의한다. 새로운 여성 캐릭터가 등장했고, 공포의 형태가 한껏 다채로워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수의 일 (반양장) 창비청소년문학 109
이현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인상적인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다.” 얼어붙은 호수를 생각하면 그 차가움과 서늘함이 먼저 느껴지는데 안전을 먼저 말하다니 어떤 이유일까? 마지막 문장을 읽고 처음엔 그냥 지나갔지만 계속 읽으면서 이 문장을 새롭게 이해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나의 경험을 통해 얼어붙은 호수와 얼지 않은 호수 밑 상황을 엮으면서 새로운 해석을 만들기 시작했다. 과연 소설 속 호정은 얼어붙은 호수 같이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을까 하는 의문과 얼어붙은 호수가 깨어진 후 겪게 되는 삶의 아픔은 얼마나 강렬할까? 하는 것이다. 과거형의 그 문장은 이야기가 하나씩 풀려날 때마다 호정이 얼마나 차가운 현실 속에서 살았는지 알게 된다.


사실 작가가 모른 채 읽었다. 가독성이 상당히 좋지만 한국 소설을 자주 읽지 않는 요즘을 생각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이 없었다. 재밌게 읽은 <아몬드>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유원>을 잇는 성장 소설이란 평을 봤지만 흔한 출판사 광고처럼 다가왔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읽었는데 내 시대와 다른 학생들의 모습에 쉽게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행되고, 그들의 삶과 생각들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새로운 학생들의 삶을 보게 되었다. 다른 시절이라고 해도, 그 삶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다르지는 않는다. 호정과 은기, 나래 커플 등을 보면서 풋풋하고 알콩달콩한 사랑의 감정을 재밌게 지켜봤다.


소설을 끌고 나가는 인물은 호정이다. 수시 대신 정시를 노린다고 말하고, 콜드플레이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친한 친구는 나래와 지후이고, 다른 아이들과도 별로 사이가 나쁘지 않다. 평범한 듯한 고등학생의 삶 속에 어느 날 한 전학생이 살짝 들어온다. 바로 은기다. 처음엔 그냥 전학생이었지만 어느 순간 그 소년은 소녀의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은기는 스마트폰도 없고, 버스 대신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한다. 급식 시간에 특별한 친구와 함께 밥을 먹지 않는데 나래가 그를 자신의 테이블로 이끈 후 함께 먹는다. 이렇게 작은 행위들이 쌓이면서 호정과 은기는 가까워진다. 이때만 해도 이 감정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어렴풋이 감정이 드러날 때는 호정의 과거가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호정의 어린 시절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유망한 선수였던 부모는 호정의 임신으로 선수촌을 나와야 했고, 태권도 도장을 차렸고, 중국에 지점을 내면서 집안의 몰락을 가져왔다. 할머니의 노후를 위한 건물까지 팔아야 했고, 삼촌과 고모의 눈치를 받아야 했다. 사업 실패의 대가를 아이가 겪어야 했다. 그리고 여동생이 태어났고, 그 아이는 자신과 다르게 부모의 사랑 속에서 자랐다. 작가는 호정이 이 아이를 질투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이 호정의 마음을 얼어붙은 호수 같이 만들었다. 은기가 다른 사람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것처럼 호정도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고 살아간다. 쉽게 이런 마음이 드러나지 않는다.


은기와 만나고, 헤어지게 되는 과정을 통해 호정의 얼어붙은 호수 같은 마음은 조금씩 금이 간다. 자신이 서투르게 대답한 일과 은기를 둘러싼 소문이 호수의 단단함을 깨트린다. 깨어진 호수 속에서 감정들이 밖으로 분출될 때 그 감정은 제어할 수 없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날이 선 말을 내뱉고,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는다. 보는 사람이 안타깝다. 자책하고, 스스로 상처를 줄 때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이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잊고 살아가는 모습은 충격적이다. 그들에게는 이 혐오와 비난이 한 순간의 놀이였던 모양이다. 작가는 여기에도 살짝 진중한 소년을 한 명 끼워 놓고 사실을 알려준다.


읽다 보면 어딘가에서 본 듯한 학생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소녀가 나래다. 활발하고 부유하고 이벤트에 목숨을 거는 소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듯한 나래다. 하지만 단순히 본 듯한 소녀에 그치지 않고 그 또래 소녀의 연애 모습을 보여준다. 조금 무거울 듯한 이야기에 경쾌함을 덧붙인다. 밝고 유쾌한 그녀를 보면 얼어붙은 호수 위를 지치는 썰메나 스케이트를 보는 것 같다. 지후가 한남이란 표현을 하는데 발끈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재밌다. 상처 입고, 아프고, 그리워하고, 사랑한 소년과 다시 만난 후 그들이 보여준 아주 성숙한 모습은 지금의 나라도 감히 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앞으로 얼어붙은 호수를 보면 왠지 이 소설이 떠오를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멸망 이전의 샹그릴라
나기라 유 지음, 김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짜 지구 종말 전 모습을 다룬다. 소혹성이 충돌해 지구 멸망이란 흔한 설정이다. 지구 종말이란 표현보다 인류의 종말이란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지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최근에 이런 설정을 다룬 소설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사고 실험으로 달이 쪼개져 지구로 떨어져 인류가 멸망하는 설정도 있다. 이런 소설이나 영화의 경우 대부분 인류의 생존이나 보존에 초점을 맞춘다. 소혹성 출동이 예정된 상태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소설도 있다.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야기들이 주로 나오는 이 장르에서 이 소설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남은 기한은 한 달. 이 시간 속에 각자의 사연이 흘러나오고, 가족이 만들어진다.


네 명의 화자를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낸다. 고등학생에서 시작해 야쿠자와 고등학생의 엄마를 지나 인기 초절정의 가수까지 이어진다. 앞의 세 명 이야기는 서로 연관성이 있지만 마지막 Loco는 조금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인류의 멸망 이전 마지막 무대를 펼치면서 멋지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읽다 보면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누군가의 죽음에 무뎌진 사람들의 감각이 나온다. 도덕과 윤리보다는 생존(?)이 우선이다. 죽을 날을 받아둔 상태에서 뺏고 빼앗고 죽이는 상황이 나오는데 인간이 지금까지 쌓아올린 문명이 얼마나 허약한 기초를 가졌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이 문명이 마지막 순간에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첫 이야기의 주인공 에나 유키는 학교 폭력의 피해자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최고 미녀 후지모리를 짝사랑하고 있다. 그녀를 좋아하게 된 사연이 나오는데 이 일이 다시 그녀를 짝사랑하게 만든다. 후지모리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 Loco의 도쿄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을 돕겠다고 몰래 따라간다. 사회 기반 시설 일부만 운영되고, 폭력과 약탈과 강간 등이 판치는 현실에서 그녀의 기사가 되고 싶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깡패 메지카라 신지다. 싸움에 탁월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가정 폭력에 휘둘리면서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고, 자신의 감정도 다스리지 못한다. 머리 좋은 야쿠자의 도구가 될 뿐이다. 소혹성 충돌이 발표되기 전 받은 마지막 임무는 선배의 걸림돌이 될 야쿠자 중간 보스를 죽이는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에나 유키의 엄마다. 그녀가 어떤 가정에서 자랐는지 간략하게 나오고, 어떤 마음으로 에나를 키웠는지 들려준다. 자신과 에나의 생부와 다른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 나오고, 삶이 얼마나 무겁고 힘든 지도 표현된다. 하지만 다시 이룬 가정과 Loco의 마지막 공연을 보러 가기 전까지 일상은 그녀가 오랫동안 꿈꾸었던 것이다. 마지막 장에 나온 Loco 이야기는 실패와 성공을 간략하게 풀어내면서 거대한 침몰과 멸망의 순간을 같이 놓아둔다. 성공의 가도를 달릴 때 몰랐던, 혹은 무시했던 감정들이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는 순간 밖으로 표출된다. 외롭고, 두렵고, 거식증으로 고생하는 그녀의 비참한 삶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 읽고 난 후 만약 나에게 이런 상황이 생긴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하고 묻게 된다. 일상을 이어가려고 하겠지만 아마 힘들 것이다. 사회 기반 시설을 유지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간략하게 나오는데 작가는 이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로 다른 할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단지 그런 이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방송이 중단된 상태에서 사람들이 정보를 업데이트 하는 방법은 SNS 같은 것밖에 없다. 확정된 멸망 아래 절망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은 다른 소설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작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고, 행복한 순간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같이 보여준다. 진한 여운과 감동을 주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멋진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승총을 가진 사나이 - 조선을 뒤흔든 예언서, <귀경잡록>이야기
박해로 지음 / 북오션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귀경잡록>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이 시리즈 첫 권 <전율의 환각>을 아직 읽지 못했지만 전래 소설을 비튼 <신 전래특급>은 읽었다. 이 시리즈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기서가 바로 ‘귀경잡록’이다. 조선 선비 탁정암이 약초를 먹고 신비한 경험을 통해 얻은 정보를 기술한 책이다. 재밌는 부분은 이 책이 세종 시대에 나왔다는 것이다.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이 건국신화를 부정하고 백성들을 미혹시킨다고 금서로 지정되었다. 금서로 지정되었지만 이 책을 몰래 읽는 사람들이 있다. 몰래 이 책을 읽고 연구하는 ‘토린결’이란 비밀 모임까지 생겼다. 이 시리즈를 읽다 보면 계속해서 만나게 될 이름들 중 하나다.


표제작 <화승총을 가진 사나이>는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괴현상을 다룬다. 이들이 사라지기 전 육십오능음양군자(六十五能陰陽君子)를 찬양하고 외친다. 이들은 모두 건장한 남녀다. 자식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돈 있는 부모가 이런저런 방편을 사용하지만 그들은 모두 갑자기 사라졌다. 그런데 이 사건을 수사하던 조사관이 뇌성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 총을 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귀경잡록에 나오는 원린자의 무기가 분명하다. 보통 이런 총이 나오면 사람이 소멸한다고 생각하는데 작가는 이 총에 맞은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설정한다.


존비(尊卑)라는 이름의 좀비도 등장한다. 귀갑자란 존재가 죽은 자를 부린다. 존비가 섭주에 등장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이 소식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좀비와 닮았다. 작가는 단순히 좀비물로 이야기를 만들지 않고, 이 속에 인간의 욕심을 집어넣어 좀더 복잡하게 만든다. 건장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존비들이 얼마나 강력한 군대가 되는지 보여줄 때 이것이 잘 드러난다. 이 사건을 해결하려는 포도청 조사관들의 노력과 열정도 살짝 흘러나온다. 하지만 여기서 작가는 또 한 발 나아가 인간의 욕심과 의심을 풀어낸다. 공포와 두려움이 뒤섞여 있다.


<암행어사>는 토린결에 참여한 사람 중 한 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섭주 현령 이응수는 모임에서 다른 참여자와 싸우다 자신의 정체를 살짝 드러내었다. 그가 왜 이런 위험한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대목은 뒤에 가면 자세하게 나온다. 모임은 이 이후 해체되었지만 조정은 이 모임에 참여한 사람을 잡아낸다. 이 사실을 안 가형이 그에게 암행어사에 대한 언질을 주면서 조심시킨다. 이응수는 암행어사가 누구인지 자신의 조직을 통해 알게 된다. 그런데 그 암행어사가 토린결 모임에서 자신과 싸웠던 인물이다. 잘못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가문이 박살날 수도 있다.


작가는 여기서 또 귀경잡록 속 존비 이야기를 풀어낸다.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는 구성 속에 과거는 귀경잡록과 관련된 괴사건들을 다루고, 현재는 이 귀경잡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서로의 욕망을 풀어놓는다. 서로 다른 욕망이 충돌하고, 두려움은 오해와 비틀린 행동으로 표출된다. 섬세하게 상황과 장면을 연출하지 않았는데 이 거칠고 옛 소설을 읽는 듯한 분위기 연출은 읽다 보면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이 소설의 백미는 마지막에 존비들과 함께 외치는 ‘암행어사 출도요!’이다. 그리고 이응수가 탐한 양기를 솟게 하는 약은 현재의 비아그라를 떠올리게 한다. 다른 약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검은 황무지
S. A. 코스비 지음, 윤미선 옮김 / 네버모어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1년 범죄문학상 5관왕이다. 화려한 수상 이력인데 다루고 있는 소재처럼 대단한 속도감을 가지고 있다. 늦은 밤 마지막 몇 십 쪽을 다음 날로 넘기려고 하다가 그냥 읽고 말았다. 가끔 이런 책들을 만나면 다음 날 일정이 깨어진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미 알고 있던 부분이지만 실제 체감하는 것은 다르다. 보러가드가 달려나가는 속도와 화려한 운전 실력은 작가의 설명과 묘사를 통해 그대로 나에게 전달된다. 거침없고, 잔혹하고, 인정사정없다. 범죄인들을 다루고 있기에 크게 거부감이 생기지 않지만 어떤 대목에서는 약간의 반발감도 있다. 전적으로 주인공 손을 들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 뭐 같은 현실은 한 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보러가드는 자동차 수리센터를 운영한다. 하지만 그가 가장 잘 하는 일은 사설 레이싱과 범죄자를 태우고 달아나는 것이다. 소설의 첫 장면에서 그는 멋진 레이싱을 보여준다. 그의 성격을 알려주는 잔인한 행동도 같이 보여준다. 이렇게 그가 사설 경주에 온 이유는 자동차 수리센터 운영이 힘들기 때문이다. 백인이 운영하는 경쟁업체가 생기면서 그의 고객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돈이 들어갈 곳은 많고, 나올 곳은 점점 메말라 가는 와중에 이전에 그를 속인 적 있는 로니가 그를 찾아온다. 보석상을 털자는 계획을 가지고 말이다. 로니의 애인 제니가 내부자 정보를 알려준 것이다. 보통 때라면 당연히 그를 내쫓았겠지만 지금은 돈이 급하다. 이 절도 행위에 참여한다.


정말 뛰어난 드라이버인 그는 보석상을 보고 도주로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때 작은 에피소드도 생긴다. 어떤 식으로 도주할 지 궁금했는데 사건 당일 그가 보여준 곡예 운전은 영상으로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멋지다. 아마 영상이라면 더 화려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몫을 잘 챙긴다고 생각한 보러가드를 공범인 로니는 또 속인다. 실제 보석상 금고에는 많은 현찰과 그가 말한 것 이상의 다이아몬드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속인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이 보석상이 몰래 숨겨둔 다이아몬드의 주인이 문제다. 갱들이 자신들의 돈세탁을 위해 놓아둔 것인데 이런 사실을 모른 채 훔친 것이다. 이야기는 이제 더 잔혹하고 빠르게 펼쳐진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미국 남부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놀라운 운전 실력이 아버지의 유산이란 사실과 그가 몰고 다니는 차 더스터도 아버지가 남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뛰어난 재능이 있다고 해도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흑인이 갈 곳을 많지 않다. 그가 소년 시절 낳은 딸은 또 어떤가. 그가 소년원에 다녀오게 된 사연을 말할 때 현재 그가 보여준 잔인한 폭력성의 기원을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보러가드는 이것을 몽타주 가문의 유전적 특성이라고 말하지만 환경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유전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상황이 생기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


철저하게 속도감과 재미를 추구한다. 이 사이를 채우는 것은 보러가드가 느끼는 두 개의 삶이다. 한 가정의 아버지로 사는 삶과 폭주하는 차를 몰면서 스릴을 즐기는 버그의 삶이다. 그가 살아 있다고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순간은 아쉽게도 버그의 삶이다. 물론 바라는 삶은 좋은 아버지이자 남편이다. 이런 삶을 흔드는 것이 돈이다. 환경이다. 그의 아내 키아도 버그의 삶을 알고 있다. 불안해하면서도 현실 때문에 멈추게 하지를 못한다. 어쩌면 버그가 원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두 삶은 결국 충돌할 수밖에 없고, 처절한 복수의 총구는 이렇게 불을 품는다. 독자는 이 살육에 몰입해 열광한다. 거침없이 펼쳐지는 마지막 부분은 정말 눈을 뗄 수가 없다.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것이 벌써 너무 길게 느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