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제9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
정욱 외 지음 / 마카롱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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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수상 작품들을 자주 읽는다. 단편 수상작품집도, 장편 수상작도 기회가 되면 읽고 있다. 취향을 살짝 벗어나는 소설도 있지만 대부분 만족하면서 읽고 있다. 이번 단편집을 받고 이 수상작품집도 상당히 오랫동안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억의 혼란에 의한 착각이었다. 장편과 엮이면서 오래 전부터 읽은 것으로 헷갈린 것이다. 2021년 9회를 맞이했다는 사실도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다섯 작품이 선별되었고, 나의 시선을 끄는 작품도 상당히 많다. 개인적으로 심사평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독자와 작가의 시선이 갈리는 부분이 눈에 더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정욱의 <네 딸을 데리고 있어>란 제목을 보고 단순 유괴 사건으로 생각했다. 읽기 전에는 몰랐는데 마지막 단어 ‘있어’와 ‘있다’의 의미 차이는 상당하다. 아마 일반 유괴범이라면 ‘네 딸을 데리고 있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 의미 차이를 알려주는 과정에 흘러나오는 학교 폭력과 아동 학대는 예상을 벗어난 전개로 이어지게 한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는 평생 트라우마 속에 살지만 가해자는 인플루언서로 승승장구하는 모습은 최근 몇 년 동안 연예인에 대한 폭로와 맞닿아 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잠시 어리둥절했다. 앞의 문장을 다시 읽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최소 경장편으로 바꾸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이담의 <조립형 인간>은 생각하지 못한 설정으로 이어졌다. 힘들게 대기업 인턴에 들어갔지만 정규직 채용까지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첫날부터 희주의 눈길을 사로잡은 남자 인턴이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그의 비밀을 알게 된다. 어떻게 보면 조금 황당한 설정일 수 있지만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는 현실을 돌아보면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욕망이, 강박이 담겨 있다. 치열한 경쟁과 욕망이 뒤엉키는 와중에 생긴 작은 사건보다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정규직 채용 과정에 벌어지는 남녀 차별이다. 비극도 그 속에서 잉태했다. 의문을 품게 하는 마지막 반전도 눈길을 끈다.


청예의 <웬즈데이 유스리치 클럽>은 한방을 꿈꾸는 지우의 삶을 세밀한 심리 표현으로 보여준다. 코로나19로 중소기업에서 문자 해고된 후 취준생이 된 그가 바라는 것으 한방으로 부자가 되는 것이다. 제목의 모임에 가입해 열심히 재테크 공부를 하는 것 같지만 속내는 한방에 있다. 이 클럽에 특별 게스트가 와 주식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다른 멤버들이 연 10% 수익을 말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그에게 대박을 꿈을 불어넣으며 특별 게스트와 모임장이 유혹한다. 불안감이 강하게 느껴지지만 욕망과 분위기에 휩쓸린다. 이 소설의 강점은 이 분위기와 심리 표현에 있다. 그리고 누구나 예상 가능한 결과와 예상하지 못한 지우의 반응이 씁쓸한 재미를 준다.


오승현의 <밸런타인 시그널>을 읽고는 당혹감을 느꼈다. 천문학 전공자 조는 현재 백수다. 그의 유일한 재산은 어머니가 물려준 수도권 재개발 아파트다. 외계의 존재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하나씩 풀어놓는다. 평온한 일상 속에 유일하게 그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은 전 여친이 대학교수가 되어 방송에 나오는 것이다. 작은 열등감이 있다. 이때 윗집에 꼬마들을 데리고 한 부부가 이사 온다. 백수라 낯에도 집에 있는 그에게 아이들이 쿵쾅거리는 소리는 너무 시끄럽다. 그리고 우주로부터 이상한 신호가 잡힌다. 층간소음 문제도 발생하고, 외계의 신호는 그를 혼란으로 몰아간다. 어느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틀어진다. 부동산, 층간소음, 담배 냄새 등 공동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현실을 그려내면서 한방에 판을 돌려버린다.


임수림의 <너에게>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인간과 놀아줄 목적으로 만든 로봇이 인간의 감정을 가지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다룬다. 로봇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인간처럼 행동한다. 이 로봇의 외양은 만든 박사의 죽은 아들과 닮았다.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아는 순간 박사는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라고 한다. 이 호칭에 담긴 감정은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이야기는 이 로봇이 수안이란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다. 자신의 탄생과 수안에게 느낀 감정과 그 후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담담한 듯한 이야기이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혹시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연작을 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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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
곽재식 지음 / 비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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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열심히 글을 쓰는 작가다. 오래 전 <모살기>란 단편집으로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아! 이 책은 아직 읽지 않았다. 이후 그의 이름을 여기저기에서 자주 발견했다. 소설에서만 발견했다면 그냥 다작이구나, 하고 넘어갈 텐데 과학, 인문, 어린이 등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글을 쓰고 있다. 실제 이 책을 읽기 전 그의 이름만으로 나온 책을 읽은 적이 없다는 것도 조금 의외다. 혹시 그의 소설을 한 편도 읽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의심에 목록을 검색하니 다행스럽게도 몇 권의 단편집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하게 되었다. 집에 그의 소설집 몇 권이 있는데 왠지 손이 나가질 않아 아직까지 읽지 않고 있는 것은 다른 작가들과도 비슷한 부분이다.


이 단편집에 실린 글들은 모두 ‘환상문학웹진 거울’에 연재된 소설이다. 이 웹진의 이름을 자주 보지만 제대로 들어가서 소설들을 읽은 적은 없다. 이 웹진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본 것도 작가의 말이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이 단편집에 실린 소설들의 간단한 정보를 알려준다. 모두 읽은 후 보면 나의 감상과 다른 느낌과 예상하지 못한 의도를 알 수 있다. 이런 것과 상관없이 이 단편집은 재밌다. 읽다 보면 공감할 부분도 상당히 많다. 황당해서 ‘뭐야?’라고 외칠 정도의 소설도 나온다. 마지막 문장이 반전처럼 다가와 앞의 이야기를 곱씹어야 할 경우도 있다. 웃음을 터트리지만 왠지 그 웃음이 씁쓸한 경우도 있다.


헌혈을 독려하기 위해 쓴 글이 표제작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이다. 작가의 말에 나온 이야기이니 참고하시길. 이 단편의 미덕은 황당함을 능청스럽게 밀고 나간 것이다. 헌혈 후 주는 빵에 황당한 기능을 부여한 부분은 황당과 막말의 극치다. 혹시 갑자기 헌혈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면 외계인들이 문제의 빵을 획득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이상한 녹정 이야기>는 안면인식 프로그램에서 같은 사람으로 판정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1960년대, 1980년대, 2000년대에 모두 똑같이 생겼다는 설명에 다른 소설이 떠올랐지만 작가는 신라시대 최치원을 끌고 와 황당한 이야기를 펼친다. 마지막 장면을 읽은 후 인류가 모두 채식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시간여행문>은 SF소설의 흔한 소재인 시간 여행을 다룬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생각한 이 시간 여행을 위해서라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기계가 처음 생긴 시대부터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고 지금까지 읽은 시간 여행자 이야기는 모두 가짜란 말이야! 하는 의문이 들었다. <신들의 황혼이라고 마술사는 말했다>는 게임이 끝난 후 게임 속 마술사와 게임 플레이어 사이의 기묘한 관계를 간략하게 풀어내었다. 게임 속 캐릭터가 더 역동적으로 나온 것이 상당히 흥미롭다. <슈퍼 사이버 펑크 120분>은 한국의 극악적인 액티브X 정책을 아주 긴박하고 사실적으로 재현한 소설이다. 지금도 은행 사이트에서 검색이나 송금하려면 공동인증서와 보안프로그램 등을 깔아야 한다. 읽다가 나의 답답했던 경험이 울컥 치솟았다.


<판단>은 회사 상사가 후배 직원에게 쏟아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마 나도 이런 종류의 말을 자주 했을 것이다. 당연히 많이 듣기도 했다. 이 소설의 매력은 마지막 문장에 있다. <차세대 대형 로봇 플랫폼 구축 사업>은 갑질과 아는 척이 결합해 만들어낸 황당한 상황극이다. 로봇의 원래 기능보다 자신에게 익숙한 조종법을 강요한 갑질의 끝은 황당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로봇 개발팀의 의도와 발주한 개발청의 인식 차이가 만들어낸 현실극이다. <멋쟁이 곽 상사>는 IMF 시대를 배경으로 곽 상사라는 노인과의 기억을 풀어낸다. 화자의 의욕적인 업무 추진을 안되는 사유를 찾아 사사건건 방해한다. 왜? 그런데 온 동네의 존경을 받는다. 그리고 들려주는 현대사의 비극과 이 비극을 넘어선 코미디가 재밌다. 마지막 문장은 전설을 의심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집중력이 가장 깨어진 단편이 <기억 밖으로 도주하기>다. 알 수 없는 시설에 감금된 후 탈출에 성공한 그가 기억하는 것은 한 여성의 얼굴뿐이다. 읽으면서 사이버 공간을 연상했다. 탈출한 그가 보게 되는 수많은 간판과 지역 정보가 간략하게 표기되어 이런 생각을 강화시켰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에서 아! 하고 놀랐다. <지상 최후의 사람일까요>는 사람이 단 한 명 남은 아주 먼 미래 이야기다. 최후의 인간은 치명적 바이러스도, 핵전쟁도, 로봇의 반란도 아닌 출산률 감소의 결과다. 읽다 보면 이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말이다. 홀로 남은 사람의 결단과 그 탄생 이면이 묘하게 머릿속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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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치 1 - 악당 기지로 출근하는 여자
나탈리 지나 월쇼츠 지음, 진주 K. 가디너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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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기지로 출근하는 여자’란 부제가 붙어 있다. 호기심을 자극한다. 빌런에게 고용되어 온갖 잡무를 하는 사람을 ‘핸치’라고 부른다. 영화나 만화 등을 볼 때 늘 배경처럼 생각했던 인물들이다. 대부분의 히어로물이 히어로나 빌런에 초점을 맞춘다. 조금 비중이 올라가면 악당 옆에 선 비중 있는 역할 정도가 전부다. 그런데 이 작가는 아예 우리가 눈길도 잘 주지 않는 직종을 들고 나와 히어로물의 서사를 비튼다. 히어로의 빌런 진압 과정에서 생긴 문제도 부각시킨다. 이 문제는 이미 다른 작품에서 다루어진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당사자가 주인공인 경우라면 어떨까? 주인공 프리랜서 헨치 애나는 빌런 옆 조연으로 있다가 히어로의 작은 손짓에 다리가 부러진다. 무시무시한 힘이다.


스파이더맨이었던가? 거대한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한 것이. 너무 자주 인용되는 문구라 출처를 잘 모르겠다. 애나는 주로 데이터를 다루는 업무를 담당하는 헨치다. 가장 친한 친구 준은 냄새에 대한 초능력이 조금 있지만 애나는 그런 능력조차 없다. 빌런이 죽거나 잡히면 헨치는 당연히 실직한다. 그럼 인력센터에 가야 한다. 이 세계에는 히어로도 많지만 빌런도 많다. 끊임없이 생긴다. 일자리도 계속 생긴다. 이렇게 적고 보니 이 직업이 상당히 안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히어로의 빌런 제압 과정에 죽는 헨치들이 상당히 있다. 히어로 영화 등을 보면 사무실에 일하는데 부수고 들어온 히어로에 당하는 수많은 악당 조연들이 있는 것일 생각하면 된다.


애나가 선호하는 직업은 당연히 정규직이다. 히어로에게 늘 당하는 빌런에게 정규직이 가능할까? 안전한 내근직을 선호하는데 어느 날 빌런이 그녀에게 악당 짓하는 현장으로 그녀를 데리고 간다. 흔한 악당의 협박이 벌어진다. 그녀는 어떤 일이 벌어질 지도 몰랐고, 악당의 행위를 돕는 장면이 방송에 나가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늘 그렇듯이 결정적인 순간 슈퍼히어로가 현장에 뛰어들어 빌런과 그 졸개들을 물리친다. 간단히 제압될 것 같지만 상당히 버틴다. 빌런은 달아나고, 그를 쫓는 과정에 슈퍼히어로 슈퍼콜라이더가 툭 친 동작에 그녀는 망가진다.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한다. 그리고 빌런의 인사팀에서 해고통지서가 날아온다.


큰 부상에 해고까지 당한 그녀를 돌봐주는 것은 절친 준이다. 준의 집에 머물면서 그녀는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을 깨닫는다. 슈퍼히어로의 활약으로 죽거나 피해본 사람들에 대한 수치화다. 슈퍼콜라이더가 현장에 나타나 빌런을 잡거나 죽이면서 발생한 생명과 재산 피해는 상당하다. 애나는 이것을 스프레드시트에 정리하고 블로그에 올린다. 그녀의 작은 분노에서 시작한 작업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는다. 이 작업 덕분에 애나는 최고의 빌런 레비아탄의 회사로 스카우트된다. 이제 그녀는 악당 기지로 출근하는 여자에서 슈퍼히어로를 무너트리는 계획을 세우는 잘 나가는 헨치가 된다. 다른 시각에서 본격적으로 히어로물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 세계이 숨겨진 비밀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히어로가 등장하는 소설이다 보니 그들의 능력이 소설 곳곳에 나온다. 슈퍼히어로의 이름이 상당히 낯설지만 그들의 능력까지 낯선 것은 아니다. 어떤 대목은 내가 들은 <더 보이즈>의 설정과 닮은 부분도 있다. <더 보이즈>는 좀더 은밀하게 막 나가는 부분이 있지만 말이다. 히어로물의 조연들이 주연으로 나서게 되면 인간적인 모습이 자주 나올 수밖에 없다. 그들은 노동자이기도 하다. 물론 히어로 편에서 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설 속에 히어로 편에서 빌런으로 넘어온 인물도 나온다. 슈퍼히어로의 육체적 강함은 무적이지만 정신력까지 무적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슈퍼히어로가 쉽게 악당에게 무너지지는 않는다. 작가는 여기서 크고 작은 이벤트를 넣어 시선을 계속 잡아당긴다.


히어로물에 열광하면서 자랐다. 악당을 물리치는 그들에게 환호했다. 나도 그들처럼 악당을 물리치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자라면서 조금씩 희미해졌다. 히어로의 활약과 그 이면과 배경을 보면서 시선이 조금씩 바뀐 것이다. 그렇다고 악당을 응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악당을 응원했다. 일반적인 히어로물의 이분법적 세계가 이 소설 속에서 깨지고, 남성우월주의 타파도 눈길을 끌기 때문이다. 초인의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인간(?)의 삶을 살면서 겪게 되는 일들은 우리와 별다르지 않다. 작가는 곳곳에 정치적인 문제들을 넣고, 판타지의 재미를 풀어놓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슈퍼히어로의 이미지를 대입해서 읽어도 재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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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스테이트 오브 테러
힐러리 로댐 클린턴.루이즈 페니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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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힐러리 클린턴이 대중에게 더 유명하지만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루이즈 페니란 작가 이름이다. 그녀의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는 아주 매혹적인 시리즈다. 이전에 두 권 정도 읽고 그녀의 팬이 되었다. 그 후의 일은 다른 작가들처럼 책을 모으고, 읽기는 뒤로 미루는 일상으로 이어졌다. 책장 옆 책탑에 쌓여 있던 그녀의 책들이 유혹하지만 이런 저런 핑계로 읽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힐러리 클린턴과 공동 집필한 소설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운 좋게 이벤트에 당첨되었고, 재밌게 열심히 읽었다. 읽으면서 힐러리가 경험한 정부의 일들과 현실 정치에서 트럼프 등을 연상시키는 인물 등이 나왔다. 이 부분은 이 소설이 단순한 상상력에 기댄 창작물이 아니고 아주 현실적인 사안을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정치인이 소설가와 협력해서 미스터리를 내는 것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힐러리의 남편도 유명 작가와 이미 스릴러를 내었다.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빌 클린턴과 재임스 패터슨의 공동 집필 소설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진짜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가 이 소설 속 주인공 엘런 애덤스로 변신했다. 앨런은 언론 재벌 출신이고, 대통령에 의해 예상하지 못한 국무장관에 발탁되었다. 첫 장면이 한국에서의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듯한 인상을 준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언론사를 통해 선거 운동 중 얼마나 대통령을 강하게 헐뜯었는지 알려준다. 물론 이렇게 그를 공격한 이유도 나중에 나온다.


어느 날 아나히타 다히르에게 숫자로 표시된 메일이 하나 온다. 19/0717, 38/1536, 119/1848. 수상한 숫자와 메시지다. 일단 상관에게 보고한다. 정보원의 메시지가 아니란 이유로 지워라고 한다. 혹시 몰라 아나히타는 종이에 적어둔다. 그리고 유럽의 도시 런더과 파리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한다. 미국은 전임 대통령이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외교 괸계와 행정부 조직을 빠르게 재건해야 한다. 하지만 무능한 대통령과 그 밑에서 일한 공무원들은 이런 돌발 사항에 대처할 능력이 없다. 보통의 테러라면 테러 조직이 자신이 한 일이라고 외치면서 나타날 텐데 이번에는 그런 성명 발표조차 없다. 두 번의 테러로 그친다면 좋겠지만 상황은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유럽 각국의 정보기관 관료들과 화상회의를 하면서 단서를 어떻게 찾아내려고 한다. 그러다 엘런의 아들 이름이 나온다. 테러 조직에 잡혔다고 탈출한 적이 있기에 모두 그가 어떤 단서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들 길은 엄마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이때 국무부 직원인 아나히타가 숫자의 비밀을 밝혀낸다. 이 정보를 상관에게 보고하려고 하지만 막힌다. 그녀는 두려움을 느낀다. 이 정보를 어떻게 해서라도 전달해야 한다. 상황이 아주 긴박하게 전개된다. 엘런에게 전달된 이 정보는 각국의 정보기관에 알려진다. 그런데 테러가 예정된 버스에 빌이 타고 있다. 그는 다른 단서를 쫓아 그 버스를 탔다. 다른 전화는 무시하고, 여동생의 전화만 받는다. 버스에 폭탄이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사람들에게 이 위험을 알리려고 한다.


세 번의 폭탄 테러. 하나의 메시지. 아나히타의 부모가 이란 출신이란 이유로 감금되고, 심문을 받는다. 아니히타도 마찬가지다. 누가 이 정보를 보냈는지, 혹시 스파이가 아닌지 묻는다. 과거의 기록들이 그녀를 휩쓴다. 장관은 에어포스3을 타고 폭탄이 터진 프랑크푸르트로 간다. 길이 좇는 인물이 누군지, 혹시 이 폭탄 테러의 배후가 누군지 알고 싶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감정은 사랑하지만 틀어진 아들의 안위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 일정에 엘런은 그녀의 절친이자 고문인 벳시와 암호 메시지를 받은 아나히타를 데리고 간다. 길에게 그가 쫓던 일에 대한 정보원을 묻지만 대답이 없다. 다만 샤라는 파키스탄 핵물리학자의 이름이 정면에 등장한다. 샤와 엘런은 악연으로 이어져 있다.


엘런은 핵 폭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이란에 가고, 파키스탄도 간다. 나중에는 러시아까지 간다. 이 모든 국가가 그녀의 방문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미국 본토에서 핵폭탄이 터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녀가 외국을 돌면서 단서를 찾아다닐 때 벳시는 엘런의 요청으로 샤를 풀어주는데 공헌한 정보 관료를 찾아내려고 한다. 죽음의 무기 상인을 풀어준 인물은 전임 대통령이지만 그를 조종한 사람들은 다른 인물이다. 작가는 전임 대통령 던을 상대방 약점 파악에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업무 능력은 형편없다고 깎아내린다. 현실적이지만 사심 가득한 표현들이 나온다. 만약 핵폭탄이 미국 안에서 터진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극우주의자는 이들의 죽음을 순교로 본다고 말한다. 이 부분은 정말 섬뜩하다. 한국의 극우들 모습이 겹쳐지면서 더 무섭게 다가온다.


두 작가의 후기를 보면 어떻게 이런 공동집필이 가능했는지 알려준다. 소설 속에 등장한 인물의 이름들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미국 행정부에서 일한 경험이 곳곳에 녹아 있다는 느낌을 주는 대목들이 많이 나온다. 루이즈 페니의 필력은 이것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여기에 그녀가 탄생시킨 아르망을 카메오로 등장시킨다. 재밌다. 몇몇 설정에서 황당하다고 느끼는 부분도 있지만 긴박하게 몰아치는 이야기는 책에서 쉽게 눈을 뗄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을 보면 속편을 기대하게 한다. 힐러리의 남편 빌도 속편을 내었다고 하니 이 공동 집필자들도 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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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지식사전 - 애호가들을 위한 위스키 상식 324
한스 오프링가 지음, 임지연 옮김 / 미래지식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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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을 잘 못 마신다. 소주 한 잔에 얼굴이 붉어지고, 몇 잔 더 마시면 잠든다. 술을 잘 마시고 싶었지만 몸이 받아들이질 못한다. 그래도 사람들을 만나 한 잔 하면서 나누는 이야기가 좋았고, 야구를 보면서 맥주 한 캔 먹고 잠드는 것을 즐겼다. 이런 내가 위스키란 술을 제대로 알 리가 없다. 속된 말로 양주로만 알고 있었다. 위스키와 코냑의 차이도 모르고, 싱글 몰트 위스키란 것도 겨우 몇 년 전에 알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발렌타인’이나 ‘시바스 리갈‘같은 위스키가 블렌디드 위스키란 사실도 그때 알았다. 뭐 이때도 살짝 아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이런 나에게 이 책은 위스키의 문을 살짝 열어주었다. 아마 술을 잘 마셨다면 크게 열렸을 것이다.


위스키 관련 주요 관심 주제를 9장 324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위스키를 즐겨 마시지도 않고, 투자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나의 관심은 위스키가 무엇인지,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지, 숙성이 많이 된 위스키가 더 좋은 술인지 등 기초적인 정보가 더 궁금했다. 작가는 이 부분을 아주 간략하면서도 잘 알려준다. 재료는 당연히 맥아가 주다. 내가 관심을 가졌던 싱글 몰트 위스키는 100% 맥마로 제조한다. 옥수수나 밀 같은 곡물이 원료인 위스키도 있다. 이들을 혼합해 병입한 위스키가 바로 블렌디드 위스키다. 단순히 설명했지만 제조 공정을 들여다보면 상당히 높은 기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소한 재미와 정보도 깨 많다. 위스키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어딜까? 예상 외로 인도였다. 가장 많은 양의 위스키를 생산하지만 거의 대부분 내수로 사용되고, 수출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는 어딜까? 빅 파이브는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미국, 캐나다, 일본 등이다. 의외의 나라가 두 곳 있다. 캐나다와 일본이다. 일본 위스키가 상당히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책에 나올 정도 수준인지는 몰랐다. 작가는 이 이외에도 위스키를 생산하는 많은 나라들을 말한다. 생각하지 못한 나라들이 나온다.


한때 나의 무지는 와인과 위스키의 제조 공정이 같다고 생각했다. 증류주와 희석주와 발효주의 차이도 몰랐다. 다른 사람들의 설명을 듣고 겨우 조금 아는 수준이 되었다. 맥아 등을 증류한 후 오크통에 일괄적으로 넣는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다양한 통과 제조 공정이 가미된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어떤 나무를 사용해 오크통을 만드는지, 오크통 내부에 어떤 작업을 하는지 이번에 알았다. 그리고 이전에 부분적으로 알고 있던 다른 술통을 위스키 통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배웠다. 오크통 속에 베여 있는 것을 진동으로 긁어내어 다른 위스키 원액과 섞어 또 다른 위스키를 만든다고 할 때 상당히 재미 있었다.


실제 우리가 알고 있는 위스키가 제조된 지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200년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솔직히 말해 위스키를 전혀 모를 때는, 아니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숙성 연수가 오래 된 위스키가 더 좋은 술이라고 생각했다. 저자는 개인의 취향과 입맛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했는데 아직은 모르겠다. 다른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발렌타인 30년 산을 마셨을 때 그 묵직하고 밀도 높은 맛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 첫 맛을 다시는 느끼지 못했다. 30년 산을 계속해서 마실 재력도 되지 않고, 그렇게 술을 자주 마시지도 않고. 싱글 몰트 위스키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이 이후였다. 더 빨리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이 지식사전을 읽으면서 원문에 나온 내용인지, 편집 중에 들어간 것인지 의문이 생기는 내용들이 나온다. 샷 글라스 설명에서 “한국에서는 ‘샷잔’으로 불리고 있다”는 내용 때문이다. 그리고 258번째 질문에서 국내는 어디에서 위스키를 구입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과 답을 보면 전혀 저자가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주석으로 들어갈 부분이 본문에 들어간 것 같다. 남대문 수입 상가를 추천한다는 글을 보면서 이 책을 펜데믹 이전에 알았다면 입국할 때 면세점에서 위스키를 매번 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랬다면 아마 지금 작은 잔에 위스키를 조금 따라 놓고 취한 듯 취하지 않는 듯하면서 이 글을 썼을 것이다.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어 내가 완전히 소화를 못하지만 옆에 두고 궁금할 때 펼쳐서 정보를 얻고, 혹시 외국에 나가게 되면 한 병 정도 부담 없이 사 올 수 있을 것 같다. 위스키를 좋아한다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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