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유리창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강지영 외 지음 / 몽실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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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라인업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들이 대부분 참여한 미스터리 단편집이다. 이 단편집의 무대는 학교다.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도 나지 않는 공간이지만 선생을 하는 친구 덕분에 가끔 학교와 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 때와 많이 달라진 현실 이야기를 듣지만 아직 그 변화가 실감나지 않는 부분도 많다. 가장 크게 변화를 절감하는 부분은 쓰는 단어들이다. 줄임말과 속어 등은 너무 낯설다. 그리고 무심코 보고 지나간 부분을 짚고 넘어가는 단편들도 있다. 각자의 스타일대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이 부분이 이 앤솔로지의 매력이다.


<어느날 개들이>는 강지영의 단편이다. 예전에 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개는 등장하지 않는다. 학교 수행평가 주제가 ‘어느날 개들이 인간과 대화를 할 수 있다면?’이란 가정이다. 풋풋한 청춘들의 일상과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나올 것이란 기대를 빠르게 접게 만들고, 서늘한 이야기가 바로 흘러나온다. 읽다 보면 강지영의 느낌이 확 다가오지만 단편이란 아쉬움을 더 느낀다. 정해연의 <넌 몰라>는 마지막 쪽을 덮을 때 제목의 의미가 강하게 다가온다. 서울대 음대를 목표로 하는 화자가 유튜버로 뜬 친구 배도혁을 질투하면서 생긴 일을 다룬다. 질투의 감정을 부인하고,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화자가 사건의 이면을 깨닫는 순간 반전이 펼쳐진다. 사람들은 늘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것을 갈망하는 모습을 잘 그려내었다.


조동신의 <참수>는 섬뜩한 제목이지만 실제 사람의 목을 치지는 않는다. 그 대상은 학교에 있는 단군 동상이다. 쉽게 생각하면 광신자의 행위일 것 같지만 목을 자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역사 선생이 이 사건을 전에 살인사건을 해결한 적이 있다는 학생에게 의뢰한다. 의뢰비는 자신의 사촌여동생 소개다. 학생 탐정의 활약은 현장 조사와 추리를 통해 빛을 발한다. 그런데 어떤 소설에서 이 학생이 살인사건을 해결했을까? 궁금하다. <선생님은 술래>의 작가 최동완은 아주 낯설다. 이력을 검색하면 이 책이 처음이다. 이 소설에서 다루는 것은 학교의 흡연 문제다. 흡연 학생을 적발하려는 노력을 다루는데 아주 현실적으로 문제에 다가간다. 학교 내 분위기와 학생과 선생의 갈등 등도 잘 다루고 있다. 트릭만 놓고 보면 뛰어난 부분이 없지만 이 트릭을 풀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과 과정이 강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정명섭의 <ㄷㅇ의 비밀>은 초성만 보내 놓고 사라진 친구를 찾는 내용이다. 작가 특유의 가독성 있는 매끄러운 진행과 새로운 문제를 던져 놓은 부분은 단편이란 공간에서 잘 어울린다. 그리고 마지막에 살짝 풀어놓은 ‘방과후 탐정단’은 후속작을 기대하게 한다. 아이돌 산업이 만들어낸 폐해 중 하나를 다루는데 솔직히 몰랐던 내용이다. 물론 아이돌의 앨범이나 굿즈가 어떤 식으로 팔리는지는 알고 있다. 회사 직원이 자기 딸 학교 전교생에게 강다니엘 앨범을 돌린 학생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 이면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윤자영의 <학교가 공정하다는 착각>이란 제목을 보면서 내가 과연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살면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사회인 학교가 얼마나 불공정한지는 수없이 경험했다. 내때보다 더 심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성적 바꾸치기는 처음 본다. 갑을의 대립에서 을의 반격과 새로운 갑의 등장을 알리는 마지막은 서늘하고 씁쓸하다.


이 여섯 편의 단편에서 실제 살인을 다룬 작품은 한 편이고, 나머지는 모두 학교 내의 수많은 문제들을 다룬다. 질투, 학업 스트레스, 흡연과 교권, 학생을 노린 어른들의 탐욕, 높은 내신 등급 등이다. 누구나 읽다 보면 자신의 학창 시절과 비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마주할 것이고, 어떤 대목에서는 ‘이런 일도 있어?’ 하고 한탄하는 대목도 나올 것이다. 그리고 예전 소설에서 자주 본 교권만 내세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작가들이 섬세하게 신경 쓴 부분이 보인다. 몇몇 작품에서 후속작을 기대하게 만드는 장면을 집어넣었는데 살짝 기대를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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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소장품 -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표 소설집 츠바이크 선집 (이화북스)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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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첫 번째 소설 선집이다. 1911년부터 1925년 사이에 발표된 소설 6편을 담고 있다. 나의 저질 기억력에 의하면 츠바이크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다. 혹시 읽었다고 해도 기억하지 못한다. 워낙 유명한 작가라 몇 권의 책을 사 놓았지만 책 더미 어딘가에 묻혀 있다. 이 소설을 모두 읽은 지금 그 책들을 찾아내고 싶다. 나의 게으름과 밀린 다른 책들을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할 것 같지만 말이다. 가끔 고전이라 불리는 소설을 읽을 때 취향에 맞지 않아 고역을 치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 소설은 그런 부분이 전혀 없다. 도입부에 잠시 집중이 깨어져도 바로 흥미로운 이야기에 빨려 들어간다. 왜 많은 사람들이 거의 소설을 칭찬했는지 알 수 있다. 풍경 등에서 시대를 알아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심리 표현이나 사건을 풀어내는 대목은 아주 탁월하고 현대적이다.


6편의 단편 중에서 <세 번째 비둘기의 전설>은 아주 짧고 개인적으로 시간 나면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아의 방주에서 시작한 것이 현대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드러난 생략과 비약 때문이다. <아찔한 비밀>은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바뀌는 주인공 때문에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바람둥이가 주인공처럼 등장해 한 유대인 부인을 유혹하는 초반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바랑둥이가 아이를 통해 엄마에게 접근한 후 너무 빨리 아이를 멀리 하면서 생긴 문제를 아이의 시각으로 풀어내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두 남녀의 욕망과 그 사이에 낀 아이가 비밀에 점점 다가가면서 깨닫게 되는 삶의 다른 모습은 너무 빠른 것 같지만 성장은 늘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어난다.


<불안>은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겁박하는 여자를 등장시켜 그 여성의 불안한 심리를 섬세하게 다룬다. 자신이 가진 돈을 모두 주면서 달아나고, 점점 더 자주 돈을 요구하는 협박 여자에 휘둘리는 그녀의 심리를 긴장감 넘치게 그린다. 정해진 파국으로 달려가는 모습들이 아주 인상적이다. 이성과 감점 사이에서 선택은 언제나 감정에 우선 순위를 내어준다. 그리고 예상한 결말로 이어지는데 읽다 보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모르는 여인의 편지>는 한 여성의 절절한 사랑을 담고 있다. 어린 시절 반한 작가에게 자신의 아이가 죽었다고 말하면서 그와의 인연을 하나씩 풀어간다. 어떻게 보면 ‘미저리’의 스토커 팬을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드러나는 작가의 바람기와 무감각한 감정 등이 그녀의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몇 번의 밤을 같이 보냈지만 같은 인물이란 사실을 몰랐다는 표현을 보면서 아들의 죽음과 이 편지가 지닌 비극을 절실하게 느낀다.


표제작 <보이지 않는 소장품>은 독일의 초고도 인플레이션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화폐 가치가 너무나도 급속하게 떨어지는 상황에서 삶을 유지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취할 수밖에 없는 행위와 오랜 세월 자신의 취미로 좋은 판화들을 모은 수집가 이야기를 엮었다. 비극은 전쟁에서 비롯했지만 현실에 닥친 삶의 무게는 실명한 수집가를 속이는 상황에서 일어난다. 보이지 않는 소장품을 열렬하게 소개하는 장면을 보면서 서로 엇갈린 감정들이 주는 먹먹함을 떨칠 수 없다. <어느 여인의 24시간>은 휴양지에서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잘 생긴 남자와 떠난 여성에서 시작해 과거의 기억 속으로 넘어간다. 한 노부인이 자신의 과거 비밀을 솔직하게 풀어내는데 그 이유는 화자가 도망친 여성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고, 과거의 비밀을 밖으로 쏟아내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도박장에서 모든 것을 잃고 삶도 포기하려는 남자와 함께 한 24시간을 들려주는데 그 속에 담긴 열정과 욕망은 진솔하고 너무나도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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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너의 심장이 멈출 거라 말했다
클로에 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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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로맨스 소설이다. 로맨스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 나의 취향을 생각하면 의외의 선택이다.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지 않지만 최근 몇 년 동안 한 해에 한두 권 이상은 읽고 있다. 대부분 외국 소설인데 이번에는 한국 소설이다. 이 책을 선택할 때 소개가 마음에 들었다. 죽음을 앞둔 그녀 은제이와 매일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남자 전세계의 시한부 사랑(100일 계약)이란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독자들의 입소문으로 탄생한 종이책이라고 하니 또 마음이 움직였다. 다 읽은 지금 결론만 먼저 말하면 가독성이 좋고, 곳곳에 유머가 지루하게 하지 않지만 다른 로맨스처럼 감탄할 내용은 아니란 것이다.


후반부가 진행되면서 나의 머릿속은 이미 결론에 대한 예측이 떠올랐다. 이 예측은 사실로 마무리되었다. 이 소설 속 두 주인공 은제이와 전세계는 엄청난 재력을 가진 여자와 멋진 외모의 남자다. 이 둘이 만나 사랑한다는 전형적인 설정에서 시작한다. 제이는 심장에 문제가 있어 죽음이 예정되어 있고, 전세계는 이런 그녀에게 빠져든다. 진행만 놓고 보면 아름다운 사랑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만남은 계약으로 맺어져 있다. 전세계가 제이와 계약을 맺고 남자 친구처럼 행동한다는 조건이다. 계약금은 3억 원, 월 3백만 원의 급여 조건이다. 엄청나다. 보통 사람에게는 비현실적인 계약이지만 현실은 가끔 상상을 뛰어넘는다.


멋진 외모를 가진 전세계는 여자를 유혹해 집도, 차도, 돈도 받는 나쁜 남자다. 그에게 빠진 유부녀가 이혼까지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런 일이 가능한 곳으로 호빠가 생각나는데 구체적인 그의 직업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여자들의 등골을 빨아먹고 내친다는 부분만 나올 뿐이다. 큰 키에 잘 생긴 외모만 부각하고, 사랑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그의 사랑을 갈구하는 여자들이 보낸 문자가 앞에 잠시 나오지만 이 소설은 그런 이야기가 중심이 아니다. 단지 그의 이전 삶이 나의 눈에 조금 거슬렸을 뿐이다. 멋진 외모로 쉽게 삶을 살아간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이런 남자와 계약을 맺은 시한부 인생의 재벌 2세 이야기라니 너무 익숙한 설정이다.


이전까지 많은 소설은 남자가 부자고, 여자가 가난했다. 영화 <프리티 우먼> 같은 설정이 많았는데 이 소설은 이것을 살짝 바꾸고, 시한부 인생과 순수한 사랑을 섞었다. 돈이 귀한 줄 모르는 제이가 전세계에게 너무 쉽게 돈을 쓰는 장면은 역시 내 취향이 아니다. 이전에 재밌게 읽은 로맨스 소설은 현실적인 일상 속에서 엮이고 꼬이면서 사랑을 만들어 갔는데 이 소설은 거침없이 나아간다. 욕망을 위해서라면 소비의 한도가 없다. 그리고 갈등을 고조시킬 악당도 없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제이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을 뿐이다. 그녀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는 평범하지만 한 번도 평범한 삶을 살지 않은 그녀에게 특별한 일이다. 소위 말하는 귀족이 평민 체험 같다고 하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앞에 나쁜 말을 잔뜩 썼지만 가독성 좋은 문장과 개성적인 캐릭터와 톡톡 튀는 대사는 확실히 눈길을 끈다. 읽으면서 드라마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했다. 오래 전 드라마를 끊었지만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잘 먹히는 것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내 눈에 거슬리는 몇 가지를 제외하면 정말 순수한 사랑 이야기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남녀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었다. 사랑하지만 죽음이 눈 앞에 있기에 조심해야 하는 그 기분과 그 아슬아슬함을 잘 녹였다. 나의 취향은 아니지만 재밌는 부분들이 많다. 과거 평범한 커플의 순애보 사랑과는 분명하게 다른 방식의 사랑이다. 나의 취향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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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의 무덤 모중석 스릴러 클럽 50
로버트 두고니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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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20년 전 사건을 파헤치는 형사 트레이시의 모습과 그녀를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서 예상한 것들이 모두 깨졌다. 음모론에 너무 빠져 들어 너무 나간 것이 실수다. 이 책의 마지막을 덮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진실은 잔인하다’는 것이다. 이 잔인한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그 당사자가 결정해야 할 부분이지만 사람들은 쉽게 그 한 발을 내딛지 못한다. 20년 전 동생의 실종 진실을 알고자 하는 형사 트레이시와 어떻게든 이 진실을 숨긴 채 넘어가려는 재판 관계자들의 대결은 멋진 법정극과 함께 계속해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마지막 에필로그를 읽고 난 다음에 남는 여운은 아련함을 남긴다.


시애틀 최초의 여성 강력계 형사 트레이시는 고등학교 화학 교사를 하다 경찰이 되었다. 경찰이 된 이유는 동생 세라가 실종되었는데 마을 보안관 등이 성범죄 전과가 있는 에드먼드 하우스를 살인자로 찍고 이상한 재판을 진행한 것 때문이다. 동생이 실종된 후 세라에 대해 방송된 것을 모두 스크랩했고, 재판 기록을 뒤지면서 이 재판의 허점을 무수히 보았기에 충분히 납득할 수 없었다. 마음 한 곳에서는 혹시 세라가 살아 있을 지 모른다는 희망도 품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낮다. 그러다 고향 시더 그로브에서 시체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간다. 세라의 유골이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를 섞어 가면서 트레이시와 세라의 관계를 보여주고, 이 사건을 다룬 재판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알려준다. 시체 없이 정황증거만으로 에드먼드는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갇혀 있다. 트레이시가 원하는 진실을 위해서는 에드먼드가 받은 재판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동생의 유해가 발견되고, 장례를 치른다. 이때 어린 시절 친구였던 댄을 만난다. 그의 직업은 변호사다. 그녀는 댄에게 자신이 가진 자료를 주고 검토를 부탁한다. 그리고 살짝 자신의 감정을 흘린다. 상당히 유능한 변호사인 댄은 이 재판의 허점을 많이 발견한다. 이런 이들의 행동이 마을 보안관의 눈에는 거슬린다.


한 소녀의 실종과 허술한 재판 진행은 한 가족을 완전한 파멸로 이끈다. 언니 트레이시는 20년 동안 진실을 찾아 돌아다니고, 실종 당시 아내와 함께 여행을 간 아버지는 자살했다. 얼마 후 엄마마저 죽었다. 그렇게 원했던 화학 교사도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그만 두었다. 보안관은 그녀가 이 사건을 더 깊이 파고들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런 상황들이 의혹의 눈길을 보안관에게 돌리기 딱 좋게 만든다. 음모론의 많은 조건을 갖추었다. 다시 재판을 받기 전 증인 등을 찾아간 그녀에게 그들이 보인 반응은 상황을 더 의심스럽게 한다. 사실이 거짓과 뒤섞이면 사람들은 사실조차 거짓이라고 판단한다. 비극의 발단 중 하나다.


형사 트레이시의 활약보다는 과거 의혹을 파헤치는데 더 집중하고 있다. 시애틀 형사이지만 자신의 사건을 파고들기 보다 시간을 내어 고향에 와서 과거 사건을 다시 검토하는데 더 시간을 쓴다. 여기에 새로운 로맨스를 하나 집어넣고, 눈 폭풍 속에 갇히게 되는 마을을 만든다. 그리고 그녀를 싫어하는 상사가 동생의 유해 발견에 따른 재조사를 불쾌하게 생각하면서 빚어지는 갈등도 같이 보여준다. 아마 다음 시리즈에서는 이 부분들이 좀더 부각되어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거사가 아닌 현재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이러저리 뛰어다니는 트레이시의 모습을 보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 소설의 백미 중 하나는 법정 장면이다. 존 그리샴의 후계자로 불리기도 한다는데 공감한다. 개인적으로 ‘데이비드 슬로언 시리즈’도 읽어 보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이 시리즈의 다음 작품이 더 궁금하다. 시애틀 최초의 여성 강력계 형사의 진한 활약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스릴러 소설을 읽으면서 쓸데없이 의심만 늘어난 나 자신을 발견한다. 물론 작가가 살짝 밀어 넣은 장면들이 그 의심을 부채질했지만 말이다. 후반부 눈 폭풍 속에서 펼쳐진 잔혹한 진실은 긴박감과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로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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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숨 - 혼자하는 숨바꼭질
전건우 외 지음 / 북오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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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흥행에 발 맞춘 기획 소설집이다. <오징어게임>을 보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몇 가지 추억 놀이가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소재로 활용되었다는 것은 안다. 이 앤솔로지도 추억의 놀이들을 배경으로 호러, 공포, 미스터리 등을 풀어낸다. 읽으면서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거나 사라진 놀이들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늘 반가운 작가들과 새로운 작가들의 만나게 되어 신났다. 예전이라면 이런 기획을 좋게 보지 않았는데 이제는 이런 종류의 출판이 재밌어진 것을 보면 나도 많이 바뀐 모양이다.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은 대박 영화나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는 것 정도랄까!


첫 단편은 반가운 작가 전건우의 <얼음땡>이다. 이 단편에서 추억의 놀이 얼음땡은 솔직히 말해 많이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더 많이 했다. 추억은 잠시 뒤로 하자. 소설 속 주인공 조상우는 나이 마흔에 사채업자에게 쫓긴다. 이 모든 상황에서 달아나기 위해 선택한 것이 목을 매어 죽는 것이다. 목을 매는 순간 친구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30년 전 친구들과 함께 얼음땡 하던 시절로 돌아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인가에게 쫓긴다. 살기 위해 얼음을 외친다. 이 얼음을 풀어주는 누군가가 땡을 외쳐야 한다. 이 게임은 30년 동안 끝나지 않았다. 약간 감상적인 면이 있지만 서늘하고 긴박감 있게 상황이 전개된다.


처음 만나는 작가는 홍정기다. 사실 이 이름보다 네이버 블로거 ‘엽기부족’이 더 친숙하다. 작가로 등단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의 소설은 처음 읽는다. 그가 선택한 놀이는 숨바꼭질이다. 그것도 혼자하는. 이 혼숨은 일본 도시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일본어로는 ‘히토리카쿠렌보’이다. 작가는 학교 괴담과 학교 폭력을 엮어 이야기를 풀어낸다. 인형을 이용하 주술은 낯설지만 쫓고 달아나는 과정은 상당히 긴장감 넘친다. 일본 도시전설을 끌고 온 것은 조금 아쉽지만 섬뜩한 살인과 그 이유를 알려주는 마지막 설명은 멋진 반전으로 작용한다. 개인적으로 다른 작품들도 읽고 싶다.


<야, 놀자!>의 양수련도 반가운 작가다. 그의 바리스타 탐정 소설을 재밌게 읽었다. 이 단편에서 추억의 놀이는 ‘땅 따먹기’다. 이 놀이가 묘 뺏기 놀이로 변주했다. 묘를 밟고 논다는 것이 조금 낯설지만 나중에 그 사연이 나와 뭉클했다. 주인공 혁이 평생 잊지 못하는 소녀가 묘이다. 잠시 논 친구지만 강하게 각인되었다. 40년 전 사천 외할아버지댁에 놀러가서 한동안 즐겁게 보낸 추억을 바탕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그때 기존 놀이를 변형해서 즐겁게 친구들과 놀았던 윤이 입원했다는 현실은 과거의 향수를 더욱 부채질한다. 매끄럽게 전개되면서 중늙은이의 향수를 자극한다. 예상한 존재이지만 예상하지 못한 과거사가 반전처럼 흘러나온다.


다른 앤솔로지에서 만난 작가가 조동신이다. <불망비>는 ‘비석치기’를 소재로 한다. 기본적으로 탐정물이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민속놀이 축제가 벌어지는데 그중 하나가 비석치기다. 결승전에 참가한 정두수가 니코틴 중독으로 죽는다. 모든 사람들이 보는 와중에 죽었다. 살인도구는 보이지 않는다. 완전범죄처럼 보인다. 하지만 경찰이 이 놀이에 참가한 두 여자를 용의자로 생각하자 부모는 탐정에게 사건해결을 의뢰한다. 탐정 조대현이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이 콤비 상당히 매력 있다. 정두수의 바람기와 과거의 자살 사건 등이 엮인다. 문장이나 전개가 조금 거친 면이 있다. 트릭을 보면서 시체 검시할 때 그 흔적을 왜 발견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놓친 부분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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