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엘리 / 2021년 12월
평점 :
요즘 사 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많아지면서 가능한 두툼한 책들은 뒤로 미루어 둔다. 이 책처럼 600쪽짜리 책은 더욱 그렇다. 가성비 때문에 사 놓고 묵혀둔 책이 얼마나 책장에 많은 지 생각하면 늘 두툼한 책은 뒤로 밀린다. 그런데 왠지 모르겠지만 표지의 사진과 1968년이란 연도와 뜨거운 시대에 두 여성의 엇갈린 삶과 우정이란 단어가 가슴에 와 닿았다. 예전처럼 시간이 많으면 이틀 정도면 모두 읽을 수 있을 텐데 생각보다 이틀 정도 더 걸렸다. 재미가 없거나 지루해서 가 아니라 읽을 시간 부족과 내 저질 체력 때문이다. 읽으면서 시간의 순서가 뒤섞이면서 혼란을 잠시 겪기도 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이 혼란은 금방 사라진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면 아주 멋진 소설 한 편을 읽었다는 감동에 빠진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조지의 시선으로 끌고 간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나오는 경우는 조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앤을 본 경우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앤은 자신의 신분에 불만이 많다. 자신의 가계에 드리운 남부 농장주의 흔적으로 지우기 위해 중간 이름 앤으로 불리길 바랐다. 기숙사 배정에서도 자신과 신분이 다른 학생이 같이 배정되길 바랐다. 조시는 대학에 오면서 생각조차 못한 일이다. 같은 방을 사용하면서 둘은 절친한 친구가 되지만 어느 순간 삶의 길이 갈라진다. 갈라지기 전까지 대학에서 그들이 경험한 것들은 반전 시위, 민권 운동, 히피, 우드스톡, 대마초와 마약 등이다. 작가는 이 시대의 한 장면을 아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당연하다는 듯이 보여준다. 이제는 점점 희미해지는 시대다.
기본적으로 조지의 삶을 따라간다. 변혁의 시기에 대학을 다니면서 그 시절 대학생들이 추구하던 것을 그대로 누린다. 그러다 한 잡지사에 비서로 들어가면서 경력을 쌓는다. 학창 시절 경멸하던 사람들의 삶을 다룬 잡지이지만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다. 좋은 상사가 있지만 그들의 결혼 이면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올 때면 그 허상이, 허영이 그대로 드러난다. 남성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여성을 성추행하거나 성 관계를 갖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것은 일시적이지 않고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상황을 하나의 회사 전설처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당사자에게 왜곡된 채로 전달된다. 웃게 만드는 후일담이다.
그 당시에도 기존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모든 대학생이 히피처럼 살고, 민권운동에 헌신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80년대 학번들이 모두 학생운동에 참여해 데모한 것처럼 묘사하지만 그 당시에도 많은 학생들은 보통의 대학생활을 했다. 물론 대학에 제대로 가지 못한 시절도 있지만. 조지가 대학을 떠나 잡지사에서 마주한 현실세계가 바로 이런 곳이었다. 하지만 문화와 가치관의 변화는 조용하지만 빠르게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든다. 우리가 흔히 옛날엔 말이야 같은 말을 하는 일이다. 그리고 작가는 서로 다른 두 태생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보여준다. 가정 내 폭력이 일상이었던 조지와 흑인 하인에게 거리를 둔 채 주인처럼 살았던 앤의 삶을 말이다. 앤의 에피소드 중 하나에서 그녀가 왜 그렇게 부모에게 더 적대적이 되었는지 알려준다.
삶은 언제나 선택과 실패의 연속이다. 조지가 두 번이나 결혼했지만 두 남자 모두 문제가 있었다. 두 남편에게서 딸 하나, 아들 하나를 얻었는데 이것이 그녀의 행복 중 하나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만남 하나가 툭 튀어나온다. 앤의 아버지 터너와 조지의 사랑 이야기다. 우연한 만남은 둘을 사랑으로 이끈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남녀의 사랑일까 하는 부분에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디가 “결혼은 당신들 두 사람의 무의식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지 못해요. 조젯은 당신에게 딸을 대신할 수 없고, 당신은 조젯에게 그를 버린 아버지를 대신 할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정곡을 찌른 말이다. 작가는 여기에 살짝 유머 하나를 얹는다. 이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작가 지망 웨이터가 이 말을 기억해 자신의 작품에 활용하려고 한다고.
조지와 앤의 사이가 틀어진 것은 앤이 선택한 남편의 눈동자에 대한 칭찬이 불러온 오해가 원인이다. 단순한 칭찬이 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편에 대한 무시로 받아들인다. 이후 이들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다. 앤의 소식을 듣게 되는 것은 뉴스를 통해서다. 경찰 살해범으로 신문에 나온다. 이 사건을 다룬 기사와 재판 장의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그 남편과 살고 있었다는 것에 먼저 놀라고, 그녀의 진술이 주는 강한 독선과 아집이 사실처럼 다가왔다. 현재도 비백인에 대한 경찰들의 시선과 폭력 행위가 수많은 사건 사고를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녀가 수감 생활하는 동안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여주는데 그 강철 같은 의지와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갑자기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앤을 보여줘 놀랐는데 이 이야기가 끝날 때 고개를 끄덕였다.
68년 이후 우리의 삶은 분명히 엄청나게 풍족해졌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감옥의 모습은 점점 더 늘어나는 죄수의 숫자로 현실을 대변한다. 경제적 풍요는 상대적 빈곤으로 이어졌고, 사회는 점점 더 양극화가 심화된다. 이런 현상을 작가는 세밀하게 보여주기보다 간략하지만 분명한 현실의 일부를 보여주면서 강한 인상을 준다. 이 소설에서는 남녀의 인칭 구분이 없다. 여성이라고 그녀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제목에는 ‘her’이 들어가지만 내용에는 문맥으로 그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알아내야 한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지 않아 일반적으로 이렇게 표현하는지, 이번 작품에만 적용되는지는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읽고 난 후 소설 속에 나온 이야기와 인물들과 사건들이 머릿속에서 회오리친다. 멋진 소설이다. 현대 미국의 한 단면을 알고 싶은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