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관 - 국내 최초 군대폭력 테마소설집
윤자영 외 지음 / 북오션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낯익은 작가들이 군대 폭력을 대해 이야기를 썼다. 소개글에 넷플릭스 드라마 애야기가 계속 나온다. 아마 넷플릭스 드라마 <D.P>의 영향으로 기획되었을 것이다. 군대 폭력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수많은 작품들에 나왔다. 나에게 특별한 내용은 아니지만 이렇게 군대 폭력만 다룬 소설집은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발 빠른 기획이다. 이 네 편의 소설들은 그 시대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읽다 보면 과거 이야기도 나오고, 비교적 요즘 이야기도 다룬 것 같은데 특정 시대를 알려주지 않는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에게 이 시대는 상당히 예민한 부분이다. 속된 말로 ‘나 때는 말이야’란 단어를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의 경험에 따라 각각 다르게 그 시간을 받아들일 수 있다.


윤자영이 쓴 단편 <살인 트리거>는 현재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는다. 국민학교란 명칭이 나왔다는 것부터 오래 전이란 사실을 알려준다. 작가는 이 단편에서 작은 서술 트릭을 이용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정충식과 최호남의 악연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최호남이 어떻게 머리를 써 자신의 위치를 높였는지 하나씩 보여주는데 치밀하고 교묘하게 친구들을 이용한다. 자신이 권력을 직접 쥘 수 없기에 권력자 옆에 붙어 호가호위한다. 국민학교, 중학교 등에서도 문제였지만 군대에서는 더욱 악질적인 행동을 한다. 첫 장면에서 최호남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한 이유를 보여준다. 작가는 단순하고 직선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고 살짝 가리고 비틀면서 예상 외의 반전을 펼친다.


박해로의 <고문관>의 무대는 다시 섭주다. 군대보다 의경으로 이야기를 옮겼지만 내부반의 폭력은 여전하다. 설마 섭주일까 했는데 그 동네가 나오자 섭주에 대한 집착에 살짝 감탄했다. 계부가 무당인데 그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대에 간 심소남은 군대 폭력의 희생자가 된다. 계부가 준 부적을 가지고 생활하는데 헛것이 보인다. 의경의 고문관으로 불리는 그를 고참과 동기들이 그를 갈군다. 빽 좋은 후임은 하극상을 저지른다. 작가는 점점 더 상황을 악화시킨다. 각자의 사연 속에 허세를 집어넣어 살짝 부풀린 부분도 있지만 폭력의 아래로 흐르는 성향을 그대로 적용한다. 이 소설의 파국은 우연인지 모르지만 정명섭의 <사라진 수첩>과 닮은 꼴이다. 물론 지향하는 바는 다르지만.


<불청객이 올 무렵>의 문화류씨는 처음 만났다. 개인적으로 공감할 부분이 많지만 설정 부분에는 살짝 거부감이 든다. 아마 개인 취향 문제일 것이다. 제대 후 예전에 있었던 군대 폭력을 다룬다. 때린 놈은 잊어도 맞은 놈을 잊지 않는다는 설정이다. 가장 높이 날고 행복한 순간 추락하는 과정을 한 편의 연극처럼 보여준다. 박종운은 크리에이터로 성공하고, 학창시절 짝사랑했던 여자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약속한 상태다. 군 후임들을 불러 여자 친구를 소개하고 행복한 꿈을 꿀 때 불청객처럼 초대하지 않은 후임이 나타나 그가 저지른 군대 폭력을 까발린다. 최근 연애인들이 성공한 후 학폭으로 추락한 것과 닮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지독하다.


정명섭의 <사라진 수첩>은 군대 내 폭력과 왕따의 희생자가 소총으로 부대원들을 죽인 후 그 이유를 파헤치는 내용이다. 군대 폭력과 한 사병의 일탈로 간단하게 마무리하려는 사단장 등의 의도를 깨트리는 헌병 강민규 상사의 수사를 다룬다. 관심사병 정 이병이 왜 이런 참혹한 살인을 저질렀는지, 그 살인을 막을 수는 없었는지를 파고든다. 실제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어디까지 옷을 벗는지 모르겠지만 사단장 등은 사건을 축소시킨다. 군의 폐쇄성과 군 폭력의 확대 등이 왜 계속 발생하는지 그 이유 중 하나를 보여준다. 읽으면서 생기는 호기심 중 하나는 어떤 이유로 사단장 등과 강 상사의 뒤틀린 관계가 생겼을까 하는 것이다. 강 상사가 전역 후 탐정으로 활동하겠다고 했는데 그가 주인공이 소설이 있는지 모르겠다. 있다면 읽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엘리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사 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많아지면서 가능한 두툼한 책들은 뒤로 미루어 둔다. 이 책처럼 600쪽짜리 책은 더욱 그렇다. 가성비 때문에 사 놓고 묵혀둔 책이 얼마나 책장에 많은 지 생각하면 늘 두툼한 책은 뒤로 밀린다. 그런데 왠지 모르겠지만 표지의 사진과 1968년이란 연도와 뜨거운 시대에 두 여성의 엇갈린 삶과 우정이란 단어가 가슴에 와 닿았다. 예전처럼 시간이 많으면 이틀 정도면 모두 읽을 수 있을 텐데 생각보다 이틀 정도 더 걸렸다. 재미가 없거나 지루해서 가 아니라 읽을 시간 부족과 내 저질 체력 때문이다. 읽으면서 시간의 순서가 뒤섞이면서 혼란을 잠시 겪기도 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이 혼란은 금방 사라진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면 아주 멋진 소설 한 편을 읽었다는 감동에 빠진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조지의 시선으로 끌고 간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나오는 경우는 조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앤을 본 경우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앤은 자신의 신분에 불만이 많다. 자신의 가계에 드리운 남부 농장주의 흔적으로 지우기 위해 중간 이름 앤으로 불리길 바랐다. 기숙사 배정에서도 자신과 신분이 다른 학생이 같이 배정되길 바랐다. 조시는 대학에 오면서 생각조차 못한 일이다. 같은 방을 사용하면서 둘은 절친한 친구가 되지만 어느 순간 삶의 길이 갈라진다. 갈라지기 전까지 대학에서 그들이 경험한 것들은 반전 시위, 민권 운동, 히피, 우드스톡, 대마초와 마약 등이다. 작가는 이 시대의 한 장면을 아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당연하다는 듯이 보여준다. 이제는 점점 희미해지는 시대다.


기본적으로 조지의 삶을 따라간다. 변혁의 시기에 대학을 다니면서 그 시절 대학생들이 추구하던 것을 그대로 누린다. 그러다 한 잡지사에 비서로 들어가면서 경력을 쌓는다. 학창 시절 경멸하던 사람들의 삶을 다룬 잡지이지만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다. 좋은 상사가 있지만 그들의 결혼 이면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올 때면 그 허상이, 허영이 그대로 드러난다. 남성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여성을 성추행하거나 성 관계를 갖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것은 일시적이지 않고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상황을 하나의 회사 전설처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당사자에게 왜곡된 채로 전달된다. 웃게 만드는 후일담이다.


그 당시에도 기존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모든 대학생이 히피처럼 살고, 민권운동에 헌신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80년대 학번들이 모두 학생운동에 참여해 데모한 것처럼 묘사하지만 그 당시에도 많은 학생들은 보통의 대학생활을 했다. 물론 대학에 제대로 가지 못한 시절도 있지만. 조지가 대학을 떠나 잡지사에서 마주한 현실세계가 바로 이런 곳이었다. 하지만 문화와 가치관의 변화는 조용하지만 빠르게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든다. 우리가 흔히 옛날엔 말이야 같은 말을 하는 일이다. 그리고 작가는 서로 다른 두 태생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보여준다. 가정 내 폭력이 일상이었던 조지와 흑인 하인에게 거리를 둔 채 주인처럼 살았던 앤의 삶을 말이다. 앤의 에피소드 중 하나에서 그녀가 왜 그렇게 부모에게 더 적대적이 되었는지 알려준다.


삶은 언제나 선택과 실패의 연속이다. 조지가 두 번이나 결혼했지만 두 남자 모두 문제가 있었다. 두 남편에게서 딸 하나, 아들 하나를 얻었는데 이것이 그녀의 행복 중 하나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만남 하나가 툭 튀어나온다. 앤의 아버지 터너와 조지의 사랑 이야기다. 우연한 만남은 둘을 사랑으로 이끈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남녀의 사랑일까 하는 부분에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이디가 “결혼은 당신들 두 사람의 무의식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지 못해요. 조젯은 당신에게 딸을 대신할 수 없고, 당신은 조젯에게 그를 버린 아버지를 대신 할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정곡을 찌른 말이다. 작가는 여기에 살짝 유머 하나를 얹는다. 이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작가 지망 웨이터가 이 말을 기억해 자신의 작품에 활용하려고 한다고.


조지와 앤의 사이가 틀어진 것은 앤이 선택한 남편의 눈동자에 대한 칭찬이 불러온 오해가 원인이다. 단순한 칭찬이 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편에 대한 무시로 받아들인다. 이후 이들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다. 앤의 소식을 듣게 되는 것은 뉴스를 통해서다. 경찰 살해범으로 신문에 나온다. 이 사건을 다룬 기사와 재판 장의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그 남편과 살고 있었다는 것에 먼저 놀라고, 그녀의 진술이 주는 강한 독선과 아집이 사실처럼 다가왔다. 현재도 비백인에 대한 경찰들의 시선과 폭력 행위가 수많은 사건 사고를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녀가 수감 생활하는 동안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여주는데 그 강철 같은 의지와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갑자기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앤을 보여줘 놀랐는데 이 이야기가 끝날 때 고개를 끄덕였다.


68년 이후 우리의 삶은 분명히 엄청나게 풍족해졌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감옥의 모습은 점점 더 늘어나는 죄수의 숫자로 현실을 대변한다. 경제적 풍요는 상대적 빈곤으로 이어졌고, 사회는 점점 더 양극화가 심화된다. 이런 현상을 작가는 세밀하게 보여주기보다 간략하지만 분명한 현실의 일부를 보여주면서 강한 인상을 준다. 이 소설에서는 남녀의 인칭 구분이 없다. 여성이라고 그녀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제목에는 ‘her’이 들어가지만 내용에는 문맥으로 그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알아내야 한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지 않아 일반적으로 이렇게 표현하는지, 이번 작품에만 적용되는지는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읽고 난 후 소설 속에 나온 이야기와 인물들과 사건들이 머릿속에서 회오리친다. 멋진 소설이다. 현대 미국의 한 단면을 알고 싶은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구독해줘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7
김하율 지음 / 폴앤니나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쩌다 가족>의 작가가 쓴 소설이다. 이전 소설을 재밌게 읽었는데 제목은 기억해도 작가는 잊고 있었다. 나의 저질 기억력 탓이다. 보통 관심 있는 소설을 발견하면 작가 이력을 보는데 이번에는 놓쳤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받을 때 예상한 쪽수보다 조금 더 많았지만 가독성이 좋아 아주 잘 읽혔다. 재미있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요즘이 아니라는 생각을 바로 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코로나 19 때문에 외국 관광객들이 한국에 오지 못하는 상황이니까. 그리고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머릿속에서는 이렇게 많던 중국 판매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다. 오래 전 명동을 가게 되면 호객을 하는 사람들과 길 양옆에 가득한 화장품 가게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다니기 힘들 정도로 노점들과 관광객으로 가득했다. 일본 엔화의 가치가 낮아지고, 중국 관광객들이 늘어나던 시기의 이야기다. 주인공 소민은 서른 살이고, 공시생 생활을 접고 친구 유화의 부모님 도움으로 명동 코스메로드 화장품 매장 페이스페이스 직원으로 취직한다. 이 매장에서 소민은 유일한 한국인 직원이다. 다른 직원들은 조선족이거나 한족이다. 가장 중요한 고객이 중국인이다 보니 이렇게 구성되었다. 한때 면세점 직원들이 대부분 중국어 가능자들도 채워진 것도 생각난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그녀가 화장품 매장에서 바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이론을 먼저 공부한 후 실행으로 옮기는 성격도 현장 적응에 더디게 만들었다. 이 이론을 작가는 이야기 사이 사이에 넣어서 재밌는 상식들을 알려준다. 주요 고객들이 중국인이니 중국어를 해야 매상을 올리고 인센티브도 받을 수 있는데 그녀는 중국어를 못한다. 다른 직원들 과도 거리감이 조금 있다. 고시원을 나와 갈 곳 없는 그를 구해준 것은 부랄 친구라 부르는 강하오다. 그는 날씬한 몸매, 큰 키, 작은 머리를 가진 한마디로 모델 같은 외모를 가진 남자다. 그를 보고 한족인 빙빙이 소개시켜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뭐 이 때문에 나중에 오해를 받는다.


소민은 직원의 인스타를 통해 드래그퀸 버거에 대해 알게 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버거가 자신과 같은 옥탑방에 사는 부랄 친구 강하오다. 왜 하오가 자신의 방을 꼭꼭 닫고 다닌 것도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소민은 하오에게 자신의 맨 얼굴을 화장해 인스타에 올리자고 말한다. 이 시도는 좋은 반응을 얻지만 소민의 정체가 밝혀지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된다. 하지만 좋은 점 하나는 소민의 매출 실적이 올라간 것이다. 하오가 사용한 화장품이 페이스페이스 것이다 보니 회사 회장의 관심을 끌기도 한다. 소민의 본사 정직원 채용을 미끼로 인스타에 많이 알려진 버거를 광고에 활용하려고 한다. 이 일은 이후 이런 저런 사건을 마주하면서 새로운 길을 열게 한다.


소설은 가볍고 경쾌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그 속에서 삶을 이어가는 청춘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조선족 아줌마와 그 딸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그냥 무심코 본 사람들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소민의 절친 유화는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부모님 식당에서 불판을 뒤집고 있고, 하오는 미대생이지만 호텔에서 일한다. 이들에게 대학 전공은 그냥 하나의 시도였을 뿐이다. 전공한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간결하게 녹아 있다. 다행이라면 이들은 절망하면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유화에게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이 있고, 하오는 옥탑방이, 소민의 경우는 일단은 하오가, 정 안 되면 이혼한 부모 둘 중 한 명을 찾아간다는 계획이 있다. 이런 현실 때문인지 아주 힘든 현실에서 무거운 어둠을 안고 살지 않는다. 물론 좋은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잘 읽히고 어떻게 보면 뻔한 전개이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와 톡톡 튀는 문장들이 시선을 계속 끈다. 감상적인 부분은 최대한 절제하고 상황을 밝게 그려내고, 다양한 캐릭터를 잘 배치해 이야기를 재밌게 만든다. 현실에 대한 묘사도 잊지 않는다. 사실대로 보여준다. 소민의 해고가 왜 문제없는지 말할 때, 해고 통지가 문자로 올 때 낯익은 과거의 한 장면을 만난다. 버거에 대한 소문의 원천을 찾았을 때 그 상황은 또 어떤가.  읽으면서, 모두 읽은 후 나의 머릿속은 이 소설을 영상으로 옮기면 재밌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들이 선택한 길은 이 소설의 제목과 이어진다. ‘구독과 좋아요’를 이 작가의 다음 작품에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먼바다의 라라니 미래주니어노블 9
에린 엔트라다 켈리 지음, 김난령 옮김 / 밝은미래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뉴베리상을 3년 동안 2번이나 수상한 작가다. 사실 이 문학상에 관심은 있지만 꾸준히 읽는 편이 아니라 그 정보를 띄엄띄엄 알고 있다. 이 소설을 선택할 때도 뉴베리상을 수상한 작가란 부분과 판타지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읽고 난 다음에 알게 된 몇 가지 정보는 읽으면서 느낀 의문을 풀어주는데 도움을 많이 주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필리핀의 수많은 섬들의 신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는 부분이다. 내가 가장 먼저 생각한 지역은 폴리네시아 섬들이었다. 작가 이력을 꼼꼼하게 확인하니 작가의 어머니가 필리핀 사람이다.


섬을 무대로 할 경우 그 섬의 크기를 언제나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려진 지도를 보면 라라니가 사는 산라기타는 그렇게 큰 섬이 아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이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멘요로라는 지도자 투표를 봐도 그 숫자는 많지 않다. 많지 않다고 해서 그 섬 사람들의 삶이 다르지는 않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땅에서는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른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자신의 능력에 따라 앞으로 할 일이 정해진다. 뱃사람, 배목수, 낚시꾼, 길쌈꾼, 빨래꾼, 농사일 등으로 나누어진다. 태어나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란 점이 조금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산라기타에 극심한 가뭄이 든다. 농사를 지을 수 없어 먹을 것이 귀해진다. 배급제가 실시되고, 이 가뭄이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이 섬에는 한 가지 전설이 있다. 가려진 바다 너머에 있는 아이사산에 만복이 있다는 것이다. 섬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배를 타고 가려진 바다를 건너 아이사산으로 가려고 한다. 이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읽으면서 왜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인류의 개척 정신과 관계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전설과 관습에 의한 반복일까? 멘요로 투표에서 다른 의견을 내놓은 후보가 나오면서 다른 시각에서 이 일을 돌아보게 된다.


이 소설의 흥미로운 설정 중 하나는 이야기로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라라니가 들은 이야기도 나오고, 그녀가 들은 이야기를 전달하기도 한다. 그리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괴물 같은 존재들의 이야기가 같이 나온다. 이렇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하나의 시선만이 아닌 다른 시선으로 그 존재를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하면서 그 존재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든다. 단순히 라라니만 내세우지 않고, 사회의 필요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아이까지 등장시켜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덕분에 앞부분을 읽으면서 잠시 헤맸다. 익숙하지 않는 이름과 상황 덕분이다.


판타지 소설에서 항상 만나는 것이 모험이다. 자신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그들은 떠날 수밖에 없다. 집에서 키우던 가축을 찾아가다 들어가지 말아야 하는 카나산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아이사산 출신의 사람을 만난다. 그를 통해 비가 내리게 되지만 홍수가 날 정도로 내린다. 마법이 살짝 이야기 속에 끼어들고, 그와의 작은 다툼이 새로운 사건을 만들어낸다. 사건은 변화를 요구하고, 이 변화 중 하나가 라라니가 배를 타고 떠나는 것이다.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항해를 떠난다. 그녀의 모험을 보다 보면 기존의 판타지 모험과 많이 다르다. 다르지만 그 모험은 위험이 있고, 친구가 함께 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의외의 장면으로 꼽고 싶은 것은 새롭게 뽑힌 멘요르를 몰아내는 장면이다. 섬 아이 중에서 가장 겁 많고 의지가 약한 것 같은 헤츠비가 낸 아이디어가 섬 사람들의 의지와 결합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만든다. 자신들의 투표로 독재와 철권 정치를 불러왔지만 그들의 의지와 협력이 독재자를 물리친다. 그 방법도 그가 내세운 가치를 이용한 것이다.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들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소설 곳곳에 구전 전설의 재미와 우리의 현실에 대비할 이야기 거리가 가득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른 고도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 작가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다 작품 목록을 보고 아! 하고 감탄사를 터트리는 경우가 있다. 그들 중 한 명이 모리사와 아키오다. 몇 편은 분명하게 기억하는데 목록을 보다 보면 이 책도 그의 소설이었어! 하고 놀란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소설을 읽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물론 아직 읽지 않은 소설이 더 많은 것 같지만. 최근에 읽은 소설의 영향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 작가의 소설은 가독성이 아주 좋고,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이번 소설도 그렇다. 재미까지 가지고 있으니 몇 권 사놓고 책에 대한 권태기가 오면 꺼내 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제목과 표지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띠지에 나오는 BTS란 이름이다. <매직 숍>이란 노래의 가사에 위로를 받았다는 문구는 아주 강하게 다가온다. 실제 소설 속에서 이 매직 숍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단순히 한 번 말하고 지나가는 설정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문구보다 더 강하게 끌어당긴 것은 역시 작가 이름이다.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 7년 차 직장인 다스쿠의 좌천과 새로운 결심이 먼저 만나지만 진짜 시선을 끌어당기는 것은 금발의 미녀인 루이루이 씨다. 뱃멀미로 고생하는 그를 도와주는 미녀, 그가 준 게임에 빠진 절세미녀. 둘은 같은 섬에 가게 되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고오니가시마란 섬은 본토에서 아주 먼 오지이자 섬이다. 인구는 200명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작은 섬이지만 섬 사람들은 동과 서로 나눠 대립한다. 다스쿠가 이 섬에 온 이유는 이 섬의 활성화를 위해서다. 이벤트 회사에서 근무하는 그는 다른 업무가 있지만 누구도 가길 원하지 않는 곳에 좌천되어 왔다. 우울하고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 생각을 살짝 바꿔 유급 휴가처럼 이 섬에서 쉬고 가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 작은 섬이 그를 편하게 쉬게 놓아두지 않는다. 아름다운 풍광과 기묘한 관습을 가진 이 섬과 사람들이 그를 뒤흔든다. 여기에 섬의 무녀가 예언하는 야릇한 말도 나중에는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좋은 풍광을 가진 섬들은 많지만 거리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정부에서 예산이 내려왔는데 이 섬 활성화 계획에 참여한 업체는 다스쿠의 회사가 유일했다. 먼 섬 활성화 계획에 처음부터 사장은 관심이 없었다. 예산만 따먹으면 그만이다. 다스쿠는 휴가가 목적이지만. 사람을 만나고, 관계가 맺어지고, 마음이 움직이면서 상황은 바뀐다. 처음에 섬 활성화를 위해 온 그를 구세주라고 불렀다. 마트도 하나, 주유소도 하나 밖에 없고, 인구도 200명이 되지 않는 작은 섬이니 이 단어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사장이 회사의 에이스라고 큰 소리까지 친 상태이니 더욱 그렇다. 서로 다른 생각이 빚어낸 오류는 시간이 지나면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 섬의 가장 큰 문제는 당연히 동과 서로 나누어진 관계다. 술집도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다. 다스쿠는 촌장이 속한 서쪽에 강제 편입된다. 이 섬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목을 조르는 교수라는 관습이 있다. 겨자 가득한 초밥을 먹고 그들의 편이 된다. 그의 바람은 상관없다. 다스쿠를 데리고 섬을 돌면서 설명하는 역할을 촌장의 아들 쇼가 한다. 그런데 촌장과 쇼의 성이 다르다. 호기심이 일지만 묻기 어렵다. 섬 사람들의 갈등과 모두가 믿는 무녀를 만나고, 아름 풍경을 열심히 구경한다. 다스쿠가 만들 섬 활성화에 대한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섬 일주 관광이 끝난 다음은 혼자서 다녀야 한다.


절세미녀 루이루이 씨는 다스쿠가 머무는 방의 건너편에 산다. 루이루이 씨는 동쪽 사람들이 다니는 술집에서 알바를 하는데 섬 남자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BTS의 <매직 숍> 가사를 알려준 인물도 루이루이 씨다. 미모만으로도 충분히 존재감을 풍기는 그녀가 진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후반부에 동서 갈등을 해결하려는 계획을 세울 때다. 그리고 나의 머릿속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누가 루이루이의 역할을 하면 좋을까 하는 것이다. 털털하고 뛰어난 미모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그녀는 평범하지만 진솔한 다스쿠와 대비되면서 좋은 콤비를 이룬다. 후반부에 예상한대로 진행되지 않는 계획을 보면서 재밌게 웃었다.


화려함은 없지만 소소한 재미로 가득하다. 멋진 반전은 없지만 작은 반전은 곳곳에 있다. 앞에 풀어놓은 작은 설정이 뒤로 가면서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만든다.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고오니가시마의 멋진 풍경을 내가 본 이미지로 대체하고, 이 마을 사람들의 대립을 어떻게 해결할까 하고 생각한다. 이 작가의 소설들을 읽다 보면 악당이 등장해 갈등을 고조시키기 보다 일반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잘 만드는데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다. 진실한 마음과 사람들의 관계를 다루면서 재미를 멋지게 뽑아낸다. 편안하면서 따뜻한 마음을 느끼며 즐겁게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