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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 지성의 이야기
정아은 지음 / 문예출판사 / 2021년 10월
평점 :
책을 선택할 때 몰랐던 사실 하나. 이 소설이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과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읽으면서 어떻게 이어질까 하는 의문을 가졌는데 마지막에 오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하나의 사건을 다르게 보고 각자 자기만의 서사를 펼쳐나간다고 하는데 지성의 집에 살았던 그녀의 시선이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일단 지성의 시선을 따라 가보자. 부제도 ‘지성의 이야기’이지 않은가. 읽다 보면 내가 아는 출판사와 신문사가 자연스럽게 겹쳐지면서 소설 속에서 다룬 이야기의 사실 여부가 궁금해진다.
지성의 이야기는 크게 두 줄기다. 하나는 문학평론가였던 지성이 문화평론까지 하는 현실 속에서 마주한 출판과 진영 논리의 문제고. 다른 하나는 어느 순간 우리를 집어삼킨 미투 운동이다. 개인적으로 추론하면서 읽은 문학평론가 지성의 분석과 이해가 상당히 재미있었다. 문학세상을 문학동네로 바꿔 읽어도 될까 하는 의문이 들고, 신화일보는 조선일보로 당연하다는 듯이 연결시킨다. 소설가나 시인의 작품에 대한 정밀하면서 날카로운 분석은 나의 지적 이해와 상관없이 흥미롭고 상당한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여기에 나의 지적 허영 한 자락이 살짝 발을 걸친다.
지성이 숙취 속에서 잠을 깬다. 옆에 낯선 여자가 나체로 누워 있다. 그녀의 이름은 나채리. 지성은 그 어떤 기억도 없다. 여자의 벗을 몸으로 그의 곁에 누워 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술집에서 취한 상태로 만나 방으로 왔다는 것 정도다. 일이 있어 나가면서 그에게 나가달라고 부탁하지만 나가지 않는다. 이렇게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고, 둘은 몸을 섞고, 같이 밥을 먹는다. 아내와 별거 상태에 있는데 나채리의 약간 살집 있는 몸이 그를 안정시킨다. 지성의 나이는 53세, 나채리는 스스로 35세라고 말한다. 정확한 것은 지성밖에 없다. 지성에게 나채리의 흔적이 조금씩 스며들지만 시간이 더 걸린다.
초반 문학계 내부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나의 시선을 끌었다면 앞에 잠시 언급되었던 미투 운동이 지성을 대상으로 삼으면서 분위기가 확 바뀐다. 성공한 시인 민주를 강제로 성추행했다는 정보가 알려지면서 그의 모든 일들이 떨어져 나간다. 그는 기억도 하지 못한 일이지만 피해 여성 민주가 죽으면서 그는 모든 사람들의 질타 대상이 된다. 사실 여부에 대한 정확한 확인은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나락에 떨어진 지성의 이야기가 한 동안 펼쳐진다. 이런 그에게 힘이 되어준 인물이 나채리다. 자신은 제대로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지만.
지성은 진보 진영에서 글을 쓰고 평론을 했지만 진영 논리를 벗어나 사실을 두고 발언을 했다가 진보 진영에서 큰 반발을 마주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 자신도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많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진영의 논리가 내쪽에서 작용한 것이다. 이것은 나중에 지성의 사건에 반전이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사람들은 사실보다 자신들이 믿는 바가 더 중요하다. 이것은 지성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을 나중에 깨달았을 때 그가 보여준 행동은 그가 양심 있는 지식인이란 사실을 보여주지만 그의 삶이 과거 한국 평균 남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갑자기 성추행 등으로 무너진 민주당 대선 후보 등이 떠오른다.
자신이 내세운 가치관이, 동료와 친구들이 하나의 주장 때문에 자신을 거꾸로 찌른다. 과거의 나쁜 습관들이 미투 운동의 물결 속에 그들의 반성을 끌어내고 문제의 해결점을 찾기보다 질타하고 추락시키고 모욕하기 바쁘다. 인간과 업적을 구분하기보다 하나로 묶어 쓰레기처럼 매도한다. 이 부분은 많은 것을 생각하고 돌아보게 한다. 글과 사람을 따로 떼어내어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간단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간단하기만 하겠는가. 지성의 몰락에 동참한 문인 등의 비판에 작가의 시선이 하나씩 담기고, 피해자의 주장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문제를 돌아본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현실의 사건들과 연결된 것들이 하나씩 보인다.
지성의 이야기를 읽다가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인 나채리를 가끔 생각한다. 그녀가 왜 이 집에 따라왔을까? 그녀가 밝힌 사실 하나에 의문을 던진다. 뒤로 넘어가면서 하나의 가능성이 떠오른다. 사실 여부는 다음 이야기에서 나올까? 한 셀럽의 몰락과 기억하지 못한 대화의 기록이 반전으로 이어지지만 그 이면에 나온 또 다른 사실이 진짜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의 사건, 사실을 떠나 자신들의 생각을 내뱉고 서로 절연하고 욕하고 비난하는 댓글에 대한 짧은 묘사는 좋게 보면 공론과 토론이지만 나쁘게 보면 그냥 자기 욕망의 배설이다. 밝혀진 사실보다 자신들의 추론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또 다른 현실 사건이 떠오른다. 여러 부분에서 현실의 사건과 모습들이 이 속에 녹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