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선 열차와 사라진 아이들
디파 아나파라 지음, 한정아 옮김 / 북로드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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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21년 에드거 상 수상작이다. 놀라운 것은 이 소설의 앞부분만으로 몇 개의 문학상을 탔다는 것이다. 흔한 일은 분명 아니다. 물론 나의 시선은 에드거 상에 더 가 있다. 간단한 책소개를 하면 인도 빈민가에서 잇따르는 아동 실종 사건을 수사하는 어린이 탐정단의 이야기다. 어린이 탐정단하면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를 생각하고 읽다 보면 여러 곳에서 낭패를 본다. 이 탐정단의 활약이 추리를 해 나가면서 작은 사건들을 쉽게 풀어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도 빈민가에서 움직여야 하는 상황들이 이것을 더 어렵게 한다. 어떤 대목에서는 이 소설이 추리소설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내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처음에 넝마주이들의 대장 멘탈 이야기가 나오길래 넝마주의들이 탐정단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이야기가 네 생명을 구할 거야’란 장은 각 꼭지의 첫머리에 나온다. 실제 멘탈은 죽었고, 그 후배들이 자이와 그 친구들을 만난다. 그들이 만난 순간은 사라진 친구를 찾아 보라선 열차까지 모험을 떠났을 때다. 한 아줌마가 사탕으로 아이들을 잠들게 해서 납치하려는 순간이다. 선의 뒤에 끔찍한 얼굴이 숨겨져 있다. 이런 사고가 빈번한 듯해 더 놀랍다. 학교에서 이런 상황에 대한 알려주는데 우리나라에서 어린이 유괴 등과 관련해서 교육하는 부분과 연결된다.


빈민가는 외국어로 된 고층 아파트와 분리되어 있다. 그 사이에 쓰레기장과 꼭대기에 가시철사를 두른 높은 벽돌담이 있다. 이 높은 담이 냄새까지 막을 정도는 아니라고 하는데 아파트 건설 당시 쓰레기장 철거가 합의되었다는 부분이 나온다. 인도의 느린 행정에 대한 지적은 이것 외에도 수시로 나온다. 진짜 문제는 이것이 아니라 경찰들의 태도다. 처음 아이가 실종되었을 때, 이 실종이 이어졌을 때 경찰은 적극적으로 수사에 임하지 않는다. 오히려 빈민가에 와서 사람들을 겁박하고 삥을 뜯어간다. 빈민가에 자신들의 시간과 정성을 들일 필요도 열정도 없다. 아이들을 잃은 부모가 울부짖어도 남의 일일뿐이다. 그리고 이 사이에 종교 갈등이 살짝 끼어든다.


자이는 친구 바하두르가 실종되자 TV에서 본 것을 흉내 내어 어린이 탐정단을 만든다. 스스로 탐정이라 말하고 두 친구 파리와 파리즈를 조수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두 친구는 별로 탐정단에 관심이 없다. 파리즈는 잡일을 하면서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고, 파리는 공부하는데 더 관심이 많다. 결성부터 삐거덕거린다. 어린 아이들이다 보니 어떤 부분에서는 한계가 분명하지만 그 가족들을 만날 때, 특히 동생들을 만나 다른 이야기를 듣기에 효율적이다. 경찰이 달아 붙어 수사를 했다면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겠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경찰은 관심이 없다. 연쇄 실종이 발생해도 그들이 보여준 반응은 처음과 별 차이가 없고, 그 가족이나 사라진 아이들 탓을 할 뿐이다. 암담한 현실이다.


작가는 평범한 소년 자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가 본 동네와 사람들과 실종 사건을 그 눈높이에서 풀어낸다. 실종자가 이어질 때마다 그 집을 찾아가 정보를 모은다. 하지만 제대로 된 질문을 하는 것은 언제나 파리다. 대신 자이는 왕성한 호기심과 행동력으로 이 수사를 이어간다. 보라선 열차가 있는 곳까지 가기 위해 엄마의 비상금에 손을 대는 대범함도 보여준다. 아이가 생각하는 수사는 방송에서 본 것이 전부인데 현실은 다르다. 이 차이가 드러날 때 작은 재미가 터진다. 그가 보라선 열차역까지 갈 때 보여준 행동은 어릴 때 나의 작은 모험을 떠올린다. 작가는 눈높이를 정확하게 표현하면서 자이의 모험을 그려낸다. 쉽게 읽히면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빈민가의 풍경과 그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빈민가에 사는 사람들은 담 너머 고층 아파트 등에서 일하면서 생계를 이어간다. 화장실이 없어 2루피(약36원)를 내고 똥을 싸야 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때리고, 아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길거리로 나간다.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들의 삶은 빈곤하다. 더러운 옷을 입고 학교에 가야 하고, 한끼를 학교에서 해결해야 한다. 학생의 폭력에 선생이 공포에 떨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사건이 터지자 종교 갈등을 이용하는 무리까지 나타난다. 경찰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였을 때는 이 종교 갈등을 이용했을 때다. 한 빈민가의 실종 사건을 보여주면서 인도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드러낸다. 예상과 다른 현실적인 결말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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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시간
유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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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실종되는 사람이 연간 10여 만 명 정도라고 한다. 예전에 본 기억으로는 이보다 적은 수였다. 소설 속에서도 나오지만 자발적, 비자발적 실종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사회가 점점 각박해지고 살기 힘들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방의 작은 소도시 인구만큼의 사람들이 매년 실종 처리된다는 사실은 섬뜩하다. 세계 최고의 자살율과 함께 높은 실종자 숫자는 통계 그 이상의 무게로 다가온다. 최근에 얼핏 자살자 숫자가 전년보다 줄었다는 기사를 본 것도 같다. 어쩌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이렇게 실종자들과 자살자가 우리 사회에 많다는 사실을 우린 쉽게 망각하고 순식간에 무디어진다. 그나마 이런 소설이라도 읽으면서 잠시 그 서늘함을 돌아본다.


실종의 이유는 다양하다. 영화 등에서 강조해서 보여주는 인신매매, 장기적출 같은 경우는 그렇게 높은 비율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 어떤 이유일까? 사회적, 경제적 이유일 것이다. 작가는 한 신문 기사에서 이 소설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소설 속 주인공인 성환이 형사 시절 경험한 일을 풀어내면서 들려준 사연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처자식, 부모를 보험 사기 속으로 밀어 넣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기억에도 생생한 자식의 신체를 손상시켜 보험금을 타낸 부모 이야기가 당장 떠오른다. 보험금을 노리고 부모를 죽인 사건도 뺄 수 없다. 물신을 숭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만약의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개발한 보험이 다른 목적으로 전용되는 경우다. 이 소설은 아내의 실종과 거액의 보험금 수령을 둘러싸고 펼쳐진다.


형사를 그만두고 민간조사원으로 일하는 성환에게 한 남자가 실종자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한다. 실종자 문미옥의 오빠 문창수의 부탁이다. 그는 동생이 남편에게 죽었을 것이란 가정을 하고 이 조사를 의뢰했다. 성환은 아내가 죽게 되면 30억 원의 보험금을 타게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법에 의해 실종 신고 후 5년이 지나면 법적으로 사망 처리되는데 이때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남편이 살해하고 시체를 숨긴 것이다. 성환은 남편 오두진을 찾아가 면담을 한다. 그는 아내의 실종 이후 거짓말 탐지기까지 이상 없이 통과했다. 혐의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같이 일했던 직원과 식사를 하면서 묘한 이야기를 듣는다. 문미옥이 회사에서 일할 당시 사장과 직원 사이에 연예를 한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재 문미옥의 흔적을 찾기 위해 성환이 선택한 것은 과거 기록을 되짚어 가는 것이다. 그녀의 이력을 받아 과거의 인물을 찾아간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조금씩 윤곽이 드러난다. 발로 뛰면서 조사할 때마다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그러다 알게 되는 몇 가지 사실들은 그녀의 실종을 새롭게 보게 한다. 이 사실이 드러날 때 형사였던 보험조사원 민홍기를 만나게 되고, 서로의 정보를 교환한다. 민홍기는 솔직히 특별한 역할을 하지 않지만 한국의 보험 사기 문제를 적절하게 설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튀지 않는 조연이다. 그러다 우연히 이 조사에 대해 알게 된 학생이 문미옥의 홈피를 해킹한다. 그녀가 살아 있다는 분명한 증거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생존을 증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소설은 문미옥의 실종을 해결하려는 성환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중간에 문미옥의 작은 이야기를 넣었다. 자발적 실종으로 가게 된 이유와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외로움이 강하게 드러난다. 여기에 한 탈영병이 끼어들면서 그녀의 고독한 실종에 작은 불빛이 반짝인다. 이 이야기에서 또 다른 실종자를 만난다. 군 탈영병이다. 한 해 탈영병 숫자가 700명이 넘는다는 사실은 아주 낯선 정보다. 이 둘이 경찰의 불심검문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은 왠지 애잔하다. 한국이 점점 본인인증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들이 신분을 숨길 곳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작가는 등장인물 개개인의 과거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현재를 만들어낸다. 오두진의 경우는 그의 형을 만나 그의 과거를 알게 된다. 오두진이 만드는 디오라마에서 느낌 감정에 공감하는 것은 그 자신도 딸을 잃은 상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작가에게 딸의 죽음과 연관 있는 학폭 등을 다룬 이야기를 보고 싶다. 이 소설 속 성환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읽다 보면 곳곳에서 의혹의 시선을 보내게 되는 곳이 생긴다. 일부는 스포라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자신이 조사한 내용을 이웃 사람에게 자세하게 말하는 것은 보기 조금 불편하다. 의뢰자의 동의 문제도 있고,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한 여성의 실종과 발견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치밀하게 꾸미고, 반전을 만들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실력이 아주 탁월하다. 가독성도 뛰어나 술술 넘어간다. 개인적으로 성환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리즈를 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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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선샤인 어웨이
M. O. 월시 지음, 송섬별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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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소설이다. 가독성도 좋고, 재밌고, 한 시대의 모습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읽으면서 감탄했고, 과연 둘의 운명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호기심을 자극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한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인데 그 대상이 누구인지 마지막에 드러난다. 그 과정에 한 소년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도 같이 나타난다. 어떤 대목을 읽을 때는 80년대 미국 청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1인칭으로 전개되는데 하나의 사건에 대한 미스터리를 파헤치면서 진행된다. 하지민 미스터리보다 더 시선을 끄는 것은 그 소년의 심미 묘사와 그 시대의 풍경을 탁월하게 묘사한 것이다.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의 배턴루지란 마을이 배경이다. 나에겐 낯선 지명이지만 소설 속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어딘가 익숙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평화로운 마을이지만 1989년 여름에 발생한 한 강간 사건이 한 소년의 삶을 완전히 뒤흔든다. 당연히 그 피해 여성과 가족의 삶도 마찬가지다. 강간 당한 소녀는 육상부 스타 린디 심프슨이다. 주인공이 짝사랑하는 여학생이다. 동네에서 같이 놀면서 함께 자랐다. 어린 시절 이들이 함께 논 장면을 보여줄 때 그들의 순수함과 빛나는 모습은 지금도 머릿속에서 환하다. 이 찬란함이 한 비극적 사건과 엮이면서 뒤틀리고 추락한다.


성폭행 사건이 일어난 후 경찰은 열심히 범인을 수사했지만 잡지 못했다. 소년은 네 명의 용의자 있다고 말하면서 한 명씩 그들을 용의선상에서 지운다. 재밌는 점은 화자도 그 대상 중 한 명이란 것이다. 처음 경찰이 그에게 강간 사건을 물었을 때 그가 한 대답 때문에 용의선상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뜻도 모르고 그 단어를 사용하는 소년이니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소년이 린디에게 가지는 마음을 하나씩 풀어내면서 의혹의 불씨를 살린다. 엄마에게 결정적으로 의심을 사게 되는 것은 그가 숭배하고 사랑한 린디에 대한 자료 모음을 본 후다. 이 사건으로 이야기를 밀고 당기는 실력이 정말 좋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을 위해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린디가 강간당했다는 소식을 학교 친구들에게 퍼트린 실수까지 저지른 소년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이 사건과 소문이 한 소녀의 삶을 완전히 뒤흔들고 미래의 가능성까지 지워냈다. 탁월한 육상 선수였던 린디는 그 꿈을 포기하고 어두운 소녀가 된다. 그 소녀를 위로한답시고 소년은 린디처럼 외모를 꾸미고 비슷한 음악을 듣는다. 십대 소년이라면 흔히 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소년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옆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주춤하고 두려워하고 경계한다. 생각만 하면서 나아가지 못한다. 이 떨리고 순수한감정이 가슴 속에 와 닿는다.


소설은 또 가족과 상실을 깊숙하게 다룬다. 린디의 사건이 그 가족을 뒤흔들고, 화자 가족의 경우는 아버지가 십대 소녀와 바람이 나 이혼한다. 여기에 누나까지 교통 사고로 죽으면서 상실은 더 깊어진다. 이 충격을 가장 많이 겪은 것은 엄마와 다른 누나다. 주변의 다른 가족의 경우는 입양아가 있는데 문제가 많다. 그 가족의 아버지 랜드리가 몰래 찍은 사진 한 장을 좋아라 하고 몰래 가져온 소년의 심리가 풋풋하지만 자라면서 이 사진의 의미가 달라진다.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바로 랜드리 가족과 관계 있다. 실수와 죄책감과 짝사랑의 감정이 뒤섞인 소년이 선택할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다.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새로운 진실을 밝혀준다.


작가와의 인터뷰를 보면 허리케인 카트리나 발생 후 뉴올리언즈와 배턴루지를 다룬 한 장에 엄청난 공을 들였고, 결코 지울 수 없다고 한 부분이 나온다. 자연재해 이후 바뀐 도시의 풍경과 그 상황을 둘러싼 사람들 이야기는 아주 인상적이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 이야기는 그의 현재 삶을 조금 드러낸다. 이렇게 조금씩 드러난 현재의 그가 완전하게 나오는 것은 루이지애나주립대가 미식축구에서 우승한 그 날이다. 이 날의 짧은 이야기는 그 힘들고 어두운 시간이 지난 후 성장한 소년의 모습을 아주 잘 보여준다. 어느 정도 학창 시절의 내 모습과 닮은 곳도 보인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성장한 것이다.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작가는 한 번도 주인공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읽는 동안 그 소년에, 그 시대에, 그 마을에 푹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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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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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1996년에 나온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있었다. 한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에 빠져 있던 시기고, 이런 종류의 잡다한 지식 쌓기를 할 때였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처럼 늘 사 놓고 묵혀둔 책들이 있었고, 뒤로 밀리고 밀렸다. 그러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이란 두툼한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잠시 이 작가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 때였다. 잘 읽히지만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라 그때 나의 취향과 조금 달랐다. 이전이라면 당연히 사서 모셔두었을 텐데 이번에는 참았다. 그리고 다시 원래 제목으로 이 책이 나왔다. 훨씬 두툼한 분량으로. 사실 이전 책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책소개를 보니 아주 많은 내용이 보강되었다고 한다. 실제 처음보다 두 배 정도 늘었다. 워낙 두툼한 분량이다 보니 띄엄띄엄 읽었다.


처음부터 단숨에 읽을 생각을 못했다. 이런 종류의 책을 단숨에 읽기에는 나의 머리가 많이 부족하다. 새로운 정보, 감탄할 내용들이 나왔지만 읽다 보니 새로운 정보가 이전 정보 위에 덧씌워진다. 원래 의도는 정보의 축적인데 새로 쓰기가 되다니. 그래도 읽는 동안은 즐거웠다. 그리고 이번 책은 이전에 그가 낸 책들의 순서와 반대로 편집되어 나온다. ‘죽음’ 이후 나온 소설들도 많은 것을 생각하면 다음에 새롭게 덧붙여진 책이 나올 것 같다. 아마 그때 다시 옛 기억을 더듬으면서 읽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 바람이라면 이 내용들이 새롭게 읽는 듯한 느낌을 받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나의 저질 기억력을 감안하면 자신할 수 없다.


그의 책을 읽다 보면 늘 에드몽 웰즈의 백과사전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냥 가상의 책이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실체를 마주하니 느낌이 새롭다. 이번 책에서 다루고 있는 몇 권의 소설은 읽은 적이 없기에 다음에 읽을 때 이 내용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프롤로그에 이런 종류의 글을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좋아한다고 이렇게 계속 내용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일본의 예를 생각보다 많이 넣었고, 한국의 것을 거의 찾아보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그의 책이 한국에서 늘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감안할 때 더욱. 물론 이것은 그가 정보를 모을 자료들이 한국보다 일본 것이 더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542항목이지만 분량은 제각각이다. 많은 것은 몇 쪽이나 되지만 한두 줄로 끝나는 것도 있다. 긴 분량의 경우 관심이 있는 분야면 집중해서 읽게 되지만 어떤 항목은 대충 훑고 만다. 반성할 부분이다. 그리고 읽다 보면 기억을 새롭게 하고,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고, 나의 기억과 비교하는 부분들이 나온다. 읽으면서 이 부분은 글 쓸 때 인용해야지 해 놓고 그냥 지나간 항목이 셀 수 없다. 이 놈의 귀차니즘은 어쩔 것인지. 귀차니즘을 뚫고 기록해 놓은 것이 딱 두 개 있다. ‘장거리 경주’와 ‘복식호흡’이다. 복식호흡은 최근 체한 듯한 몸 상태 때문이고, 장거리 경주는 실제 삶과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목표만 생각할 경우 그곳만 가는 것을 생각하다 더 높은 곳을 놓친다. 자신의 한계를 정해 놓고 거기에 맞추는 것이다. 우리 삶에서 가장 자주 보게 되는 모습이다.


오랜 세월의 기록을 반영하고 있다. 과거 기록을 새롭게 변경해야 할 부분도 있는 듯한데 수정이 없다. 내가 수정된 것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죽음>까지만 반영되어 있다. 최근 <고양이> 등을 읽으면서 본 내용은 없다. ‘천안문 사태’ 같은 이야기는 기억을 되살리고, 놓친 부분을 채워준다. 너무나도 유명한 사진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그 인물의 행방을 지금도 알 수 없다는 대목에서 중국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실제 중국인들을 만나면 공산당의 통제에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계급 간의 다툼을 다룬 ‘이스터 섬’ 을 읽으면서 발해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책장에 두고 다른 책을 읽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가끔 찾아보기에 좋을 것 같다. 제목에 상대와 절대 두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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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Killer's Wife 킬러스 와이프 라스베이거스 연쇄 살인의 비밀 1
빅터 메토스 지음, 최호정 옮김 / 키멜리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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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을 다루는 소설이다. 소개글에 법정 스릴러라는 대목이 나오지만 보통의 연쇄살인범을 다룬 소설들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보통의 연쇄살인을 다룬 스릴러는 살인범과 경찰의 치밀한 싸움이 주는 긴장감과 예상 외의 범인이 주는 재미로 이런 장르에 빠져들게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런 장르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연쇄살인범 추적이 전반부라면 법정 싸움이 후반부를 차지한다. 여기에 중요한 설정 하나를 넣었다. 바로 연쇄살인범의 아내였던 제시카 야들리를 연방검사로 등장시킨 것이다. 제시카의 남편 에디 칼은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이 둘 사이에 높은 지능을 가진 딸 타라가 있다.


제시카에게 FBI요원 볼드윈이 다가온다. 그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두 건의 살인 사건 현장을 둘러보고 감상을 말해달라는 것이다. 이 사건 현장이 야들리의 남편 에디 칼이 저지른 살인과 닮았다고 하면서 말이다. 14년 동안 잊고자 했던 전 남편의 기억이 다시 돌아온다. 처음에는 거부하지만 이 사건을 맡게 된다. 참혹하게 부부가 죽은 현장을 돌아본다. 남편의 흔적들이 보인다. 볼드윈은 이 사건을 범인을 잡고 싶다. 그의 욕심이 야들리의 죄책감을 자극하면서 에디를 찾아가게 한다. 다시 에디를 만나 도움을 요청한다. 에디는 딸 타라를 보고 싶다고 말한다. 이 거래 조건을 야들리는 거절한다. 감옥에 에디를 찾아온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보면 이상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연쇄살인범을 잡으려는 마음은 조급하게 상황을 이어가게 한다. 에디에게 온 메일 하나로 용의자를 잡지만 허술한 구석이 많다. 공범의 가능성을 남겨두지만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 범인은 현장에 그 어떤 증거물도 남기지 않았다. 몇 가지 의심스러운 대목이 있지만 그것 만으로 범인을 잡기는 부족하다. 몇 가지 상황을 보면 수사 관련자가 범인일 가능성이 있다. 범인이 세부 사항을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추가적인 살인을 막기 위해서는 에디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요구 조건을 내세우면서 누가 범인인지 말하지 않는다. 에디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고, 어떤 음모를 꾸민다는 것을 살짝 풀어놓는다.


에디의 모방범일 가능성이 높다. 이때 학교에서 말썽을 부리던 딸이 사라진다. 혹시 범인이 납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던진다. 문제아와 사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한 소리 했는데 사라졌다. 그 남자 아이도 사라졌다. 혹시 하는 불안감이 야들리를 사로잡는다. IQ 170대인 딸이지만 감정은 십대인 타라다. 에디에게 가 사라진 딸 이야기를 하면서 연쇄살인범이 누군지 알려달라고 한다. 경찰에 연락해 실종자 명단에 올리고 도움을 요청한다. 동거남 웨슬리도 함께 찾는다. 웨슬리는 에디 때문에 남자에게 마음을 문들 닫고 있던 그녀를 보듬어준 남자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서 야들리가 이 사건에서 손을 떼기를 바란다. 둘은 충돌한다.


수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또 한 번 살인 시도가 생긴다. 아이가 많은 집이라 곳곳에 놓여 있던 장난감이 경보음처럼 작동한다. 남편과 살인자가 싸우고, 경보음이 울리면서 살인자는 달아난다. 경찰들은 더 조급해진다. 동시에 더 많은 단서가 나온다. 피해자 가정의 공통점이 보인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 수 있는 인물들에 대한 정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범인의 집에서 증거 동영상을 보고 놀란다. 범인이 잡히지만 끝이 아니다. 법정 싸움이 남았다. 작가는 여기에 연방검사실의 성차별과 정치를 뒤섞는다. 연쇄살인범이 뻔한데 법적 문제 때문에 풀려날지도 모른다. 소설의 진짜 이야기는 여기에서 다시 시작한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 풀려나려는 살인범과 검사의 대결이 펼쳐진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뛰어난 가독성을 보여준다.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소설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에디의 모습에서 <양들의 침묵> 속 한니발 렉터를, 법정 싸움은 한동안 열독했던 존 그리샴의 소설들을. 그리고 마지막 반전을 읽으면서 새로운 악의 탄생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 많은 설정을 넣고, 비틀면서 생략된 부분들이 순간의 비약처럼 다가온다. 더 풍성한 이야기를 보여주려면 후속작이 필요하다. 어쩌면 후속작 자체가 반전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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