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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시간
유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평점 :
대한민국에서 실종되는 사람이 연간 10여 만 명 정도라고 한다. 예전에 본 기억으로는 이보다 적은 수였다. 소설 속에서도 나오지만 자발적, 비자발적 실종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사회가 점점 각박해지고 살기 힘들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방의 작은 소도시 인구만큼의 사람들이 매년 실종 처리된다는 사실은 섬뜩하다. 세계 최고의 자살율과 함께 높은 실종자 숫자는 통계 그 이상의 무게로 다가온다. 최근에 얼핏 자살자 숫자가 전년보다 줄었다는 기사를 본 것도 같다. 어쩌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이렇게 실종자들과 자살자가 우리 사회에 많다는 사실을 우린 쉽게 망각하고 순식간에 무디어진다. 그나마 이런 소설이라도 읽으면서 잠시 그 서늘함을 돌아본다.
실종의 이유는 다양하다. 영화 등에서 강조해서 보여주는 인신매매, 장기적출 같은 경우는 그렇게 높은 비율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 어떤 이유일까? 사회적, 경제적 이유일 것이다. 작가는 한 신문 기사에서 이 소설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소설 속 주인공인 성환이 형사 시절 경험한 일을 풀어내면서 들려준 사연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처자식, 부모를 보험 사기 속으로 밀어 넣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기억에도 생생한 자식의 신체를 손상시켜 보험금을 타낸 부모 이야기가 당장 떠오른다. 보험금을 노리고 부모를 죽인 사건도 뺄 수 없다. 물신을 숭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만약의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개발한 보험이 다른 목적으로 전용되는 경우다. 이 소설은 아내의 실종과 거액의 보험금 수령을 둘러싸고 펼쳐진다.
형사를 그만두고 민간조사원으로 일하는 성환에게 한 남자가 실종자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한다. 실종자 문미옥의 오빠 문창수의 부탁이다. 그는 동생이 남편에게 죽었을 것이란 가정을 하고 이 조사를 의뢰했다. 성환은 아내가 죽게 되면 30억 원의 보험금을 타게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법에 의해 실종 신고 후 5년이 지나면 법적으로 사망 처리되는데 이때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남편이 살해하고 시체를 숨긴 것이다. 성환은 남편 오두진을 찾아가 면담을 한다. 그는 아내의 실종 이후 거짓말 탐지기까지 이상 없이 통과했다. 혐의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같이 일했던 직원과 식사를 하면서 묘한 이야기를 듣는다. 문미옥이 회사에서 일할 당시 사장과 직원 사이에 연예를 한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재 문미옥의 흔적을 찾기 위해 성환이 선택한 것은 과거 기록을 되짚어 가는 것이다. 그녀의 이력을 받아 과거의 인물을 찾아간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조금씩 윤곽이 드러난다. 발로 뛰면서 조사할 때마다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그러다 알게 되는 몇 가지 사실들은 그녀의 실종을 새롭게 보게 한다. 이 사실이 드러날 때 형사였던 보험조사원 민홍기를 만나게 되고, 서로의 정보를 교환한다. 민홍기는 솔직히 특별한 역할을 하지 않지만 한국의 보험 사기 문제를 적절하게 설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튀지 않는 조연이다. 그러다 우연히 이 조사에 대해 알게 된 학생이 문미옥의 홈피를 해킹한다. 그녀가 살아 있다는 분명한 증거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생존을 증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소설은 문미옥의 실종을 해결하려는 성환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중간에 문미옥의 작은 이야기를 넣었다. 자발적 실종으로 가게 된 이유와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외로움이 강하게 드러난다. 여기에 한 탈영병이 끼어들면서 그녀의 고독한 실종에 작은 불빛이 반짝인다. 이 이야기에서 또 다른 실종자를 만난다. 군 탈영병이다. 한 해 탈영병 숫자가 700명이 넘는다는 사실은 아주 낯선 정보다. 이 둘이 경찰의 불심검문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은 왠지 애잔하다. 한국이 점점 본인인증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들이 신분을 숨길 곳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작가는 등장인물 개개인의 과거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현재를 만들어낸다. 오두진의 경우는 그의 형을 만나 그의 과거를 알게 된다. 오두진이 만드는 디오라마에서 느낌 감정에 공감하는 것은 그 자신도 딸을 잃은 상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작가에게 딸의 죽음과 연관 있는 학폭 등을 다룬 이야기를 보고 싶다. 이 소설 속 성환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읽다 보면 곳곳에서 의혹의 시선을 보내게 되는 곳이 생긴다. 일부는 스포라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자신이 조사한 내용을 이웃 사람에게 자세하게 말하는 것은 보기 조금 불편하다. 의뢰자의 동의 문제도 있고,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한 여성의 실종과 발견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치밀하게 꾸미고, 반전을 만들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실력이 아주 탁월하다. 가독성도 뛰어나 술술 넘어간다. 개인적으로 성환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시리즈를 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