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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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이란 공포 소설을 읽었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를 처음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작가로 검색하니 낯익은 책이 한 권 보인다. 재밌게 읽은 <아마리 종활 사진관>이다. 최근에 나온 소설을 제외하면 네 권이 출간되었는데 3권이나 읽었다. 많다고 생각하면서 출간된 연도를 확인하니 처음 읽은 소설을 제외하면 모두 올해 출간되었다. 단순히 추세만 본다면 내년에도 상당한 소설이 번역되어 나올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소설들을 재밌게 읽었기에 반가운 부분이다. 만약 추세가 꺽인다면 많이 아쉬울 것 같다.


띠지의 문구가 상당히 자극적이다. “오늘 밤 그를 죽이지 못하면 그녀가 죽는다. 이번에도 신은 답을 알고 있을까?” 표지에 나온 두 소년을 생각하면서 머릿속에 그린 이미지는 과거의 사건과 성장 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 펼쳐 읽으니 그 속에 나온 이야기는 소년 명탐정 이야기다. 역자도 쓴 것처럼 소년판 셜록 홈즈다. 4부와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는데 모두 다섯 개의 사건을 다룬다. 죽는다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렇게 자극적인 내용으로 가득 찬 연작집이 아니다. 학원물과 성장을 같이 묶은 조금은 아기자기한 소설이다. 그렇다고 신이라고 불리는 미즈타니의 추리가 허술한 것은 아니다. 아주 뛰어나다.


친구들 사이에 미즈타니는 신이라고 불린다. 문제가 생겼을 때 상의하면 그 답을 내주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사토하라가 미즈타니에게 처음 도움을 청한 것은 할머니가 만들어 놓은 벚꽃절임을 흘렸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을 찾아갔는데 사토하라가 이 절임을 만드는 방법을 잘 기억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며칠 여행 간 사이에 같이 절임을 만든다. 그리고 유기 고양이 한 마리를 할아버지에게 전달하기로 한다. 할아버지가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고 좋아하면서 고맙다고 벚꽃차를 만든다. 그런데 할아버지 몸에 이상이 생긴다. 약을 먹고 괜찮아진다. 여기서 미즈타니가 얼마나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을 가지고 있는지 드러난다.


띠지에 나온 이야기를 다룬 것은 2부다. 아이들의 작은 배려가 이상한 모습으로 드러나는데 이것을 미즈타니가 알아챈다. 자신의 추론을 말하는데 그 대상이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부탁한다. 파친코에 다니는 아버지를 멈추게 해달라는 것이다. 새로운 가게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란 가와카미의 의견이다. 이 아이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한 가지 방법을 찾아낸다. 하지만 실행일에 벌어진 사건 하나와 가와카미의 집을 방문해서 마주한 사실들은 단순히 파친코에 가는 문제가 아니다. 가정폭력 아래 놓여 있는 가와카미의 현실이 나타난다. 사토라하가 낸 아이디어는 정답에 가깝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이 이야기는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도 조금씩 영향을 미친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학교 기마전과 학교 괴담 등을 다룬다. 약간 소소한 에피소드인데 학원물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재밌게 풀어낸다. 예상한 반전 하나와 예상하지 못한 마무리가 나온다. 이 에피소드들을 읽으면서 잠시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고 하면 과한 반응일까? 특히 기마전 이야기는 미즈타니의 전술과 상관없이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학교 괴담은 가와카미와 이어져 있는데 괴담을 미즈타니에게 상담하러 온 소년의 진술과 허세가 재밌다. 그리고 찜찜한 사실 하나가 남는다. 그 찜찜함은 화자인 사토하라가 미즈타니에게 숨긴 사실에서 비롯한 것이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캐릭터들이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시리즈가 계속 나와 ‘신’의 활약을 보고 싶다. 멋진 캐릭터가 활약하는 학원 미스터리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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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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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이 책을 사 놓고 잊어버렸다. SF 문학상인 네뷸러상을 수상했다는 소식과 좋은 평가가 이 책을 사게 만들었다. 늘 그렇듯이 사 놓고 묵혀두기만 했다. 다시 이 책을 받았을 때 예전 기억을 잠시 떠올린 것은 이번에는 완독할 기회가 생겼다는 반가움이다. 실제 읽으면서 예상한 것보다 더딘 속도를 보여주었는데 한 자폐인의 언어와 생각을 표현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상인이란 표현을 사용해도 될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이 소설 속 주인공 루 애런데일이 보여주는 행동은 이성적이고 훌륭하다. 다만 이성과 감성의 불일치가 만들어낸 상황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리고 당연하게 이 소설이 SF가 맞는지 묻게 된다. 자폐인을 다룬 다른 소설과 순간적으로 비교한다. 그 소설은 <앨저넌에게 꽃을>이다.


근미래에는 자폐를 모두 치료할 수 있게 된다. 이 치료 전에 태어난 사람들만 현재 자폐인으로 살아간다. 루와 그의 직장 동료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 자폐인들은 특수부서에 일한다. 정상인처럼 소통하는 것은 힘들지만 패턴을 발견하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수익이 상당하지만 새롭게 부임한 관리자 크렌쇼는 이들이 누리는 특별한 복지 혜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자폐인을 치료할 수 있다는 의료 기술을 이들에게 시험해보고 싶어한다. 만약 이들이 이 수술을 거부한다면 해고도 할 마음을 품고 있다. 이 부서를 관리하는 부하 직원에게 이 정상화 수술을 받게 하라고 명령한다. 이 부서가 얼마나 생산성이 높고 회사의 이익에 기여하는지는 크렌쇼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루는 직장을 다니고, 운전을 하고, 취미 생활로 펜싱을 한다. 회사에서 자폐인 동료들과 잠시 피자 등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 이외의 관계는 맺지 않는다. 외부에서 루가 펜싱으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그의 진짜 친구들이다. 루는 펜싱을 하기 전 꼼꼼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상대방의 움직임 속에서 패턴을 발견한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훈련을 했기에 그의 실력은 점점 좋아진다. 그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 돈은 운동 전에 스트레칭도 하지 않고, 연습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루보다 먼저 펜싱을 했지만 실력은 뒤쳐진다. 그는 나중에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괜히 루 탓으로 돌리면서 그를 괴롭힌다. 돈을 친구로 생각한 루는 이 가능성을 애써 부인하려고 한다.


소설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간다. 하나는 루가 속한 회사가 자폐인에게 강요하는 수술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루가 배우는 펜싱과 그 친구들이다. 루가 펜싱 대회에 나가 보여준 실력은 첫 출연에 비해 아주 뛰어나다. 하지만 그를 가르친 톰의 말 실수가 돈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 이후 루의 차 타이어가 모두 터져 있거나 차 앞유리창이 깨지거나 배터리가 없어진다. 이 상황을 경찰에 신고한다. 읽으면서 범인이 누군지 금방 알게 된다. 하지만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누가 범인인지가 아니다. 누가 경험하는 일들과 감정들이다. 읽으면서 답답한 점도 있지만 그 순수하고 이성적인 마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루는 펜싱 모임의 마저리를 좋아한다. 자신이 자페인이라 사실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아주 이성적으로 상황을 마주하는 루이지만 마저리와 관계된 일에는 허둥지둥한다. 재밌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 감정이 자신에게 강제적으로 다가온 자폐 개선 수술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한다. 연구원이 주는 자료를 바탕으로 다시 기초 공부를 하는데 이때 그가 보여준 놀라운 학습 능력은 어떤 기대를 품게 만든다. 작가는 천재의 기발한 발상이나 환상적인 치료보다 자폐인의 삶과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엮어 갈등 등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 소설의 제목은 실제 작가의 아들이 물은 질문에서 비롯했다. 빛과 어둠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흔히 어둠을 장소로만 간주하는 것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한다. 이것을 조금 비틀면 자폐인과 정상인의 관계도 설명 가능할까? 앞으로 자폐인이 생길 가능성이 없는데 현재 있는 자폐인을 고칠 수술을 연구한다는 설정은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지만 뇌 수술을 둘러싼 과거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생각하면 꼭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들의 잣대로 평가하려는 모습을 감안하면 이 소설 속 루와 자폐인 동료들의 대화 속에 드러난 감정들은 아주 솔직하다. 묵직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근미래 SF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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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이 기도할 때
고바야시 유카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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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작가다. 작가의 다른 소설을 찾아보니 <저지먼트>가 보인다. 책소개를 보니 ‘동해복수법’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서늘한 이야기가 먼저 거부감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번 소설을 읽다 보면 복수에 긍정하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법은 반대하면서 복수에는 찬성한다는 이상한 반응이다. 하지만 이렇게 된 데는 소설 내용을 아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저지먼트>는 읽지 않았고, <죄인이 기도할 때>는 그 참혹한 소년 범죄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차이가 이런 괴리를 불러왔다. 학습된 이성과 부모의 감성이 충돌하고, 상황에 따라 이성이 다른 감정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소설 속 몇 가지 상황들이 나를 흔든다.


학교 폭력은 그치질 않는다. 얼마 전에는 사립 초등학교 학폭으로 맘 까페가 난리난 것을 아내가 알려줬다. 이 소설 속 화자 중 한 명인 도키타도 학교 불량배 류지에게 공공연한 괴롭힘과 폭행을 당한다. 소년은 오히려 죽기를 바랄 정도다. 돈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마구 때린다. 죽음을 생각하면서 웃기도 한다. 이런 소년을 피에로 복장을 한 누군가가 구해준다. 스스로를 페니라고 부른다. 페니는 소년의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을 알고 그 살인을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살인 계획을 잘 짜서 보여달라고 한다. 도키타는 살인계획을 세운다.


아들이 학교 폭력으로 죽은 후 아내마저 죽은 가자미의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아들은 자신을 괴롭힌 동급생의 이름을 적은 후 목을 베어 자살했다. 피가 튀어 그 이름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 부모들은 확인할 수 있는 한자를 단서로 폭행범을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친구들은 모두 입을 다문다. 누군가 아내의 돈과 노력으로 한 아이의 이름을 말하지만 정확한 증거가 없다. 업무 때문에 아들의 전화를 제 때 받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 된 가자미는 자살의 진상을 알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지만 아내는 진상을 밝히고자 노력하면서 그 속에 매몰된다. 결국 아내는 아들이 죽은 날인 11월 6일 자살한다. 한 가족의 처참한 파멸이다.


이야기 첫 부분에 11월 6일의 도시 괴담이 나온다. 가자미의 아들 시게아키, 그 자살한 아이의 엄마, 시게아키를 괴롭혔다고 자백한 학폭자 한 명이 같은 날 죽었다. 도키타도 이 전설을 이용해 자신을 괴롭히는 류지를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이 쉬울 리 없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실패했을 때 돌아올 보복까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최근에 자주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 범죄의 처벌 문제가 나온다. 이 폭력 살인 청소년들은 소년원에 들어가도 전과가 생기지 않고, 사회에 돌아와 이름도 바꿀 수 있다. 다시 돌아와 그 신고자와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만약 성 폭력이나 이런 사진이 인터넷에 노출된다면 어떨까? 그 피해자는 죽을 때까지 아니 죽은 후에도 그 사진이 돌아다닌다.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는 모습이다.


소설은 자살자의 아버지와 학폭의 피해자를 내세워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준다. 도키타의 가족은 아버지의 불륜으로 가족이 깨어진다. 그는 아들이 공립에 간다고 할 때도 말리지 않았고, 아들의 학교 생활에 관심이 없다.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아들이 폭행에 시달려 누군가를 죽인다고 할 때 보여준 반응은 학습된 내용 외에 아무것도 없다. 가자미의 경우는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지만 아들의 폭행 사실을 몰랐다. 아들이 피해가 가족으로 옮겨가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가자미의 후회 중 하나는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아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다. 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것보다 그것을 피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더 먼저다. 현실에서 우리가 너무 쉽게 잊는 것들이다.


처음 읽다 보면 학교 폭력자들에게 치밀하게 복수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소설은 복수가 목적이 아니다. 피해자들을 구제하고, 어떻게 하면 그들이 이 고통을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담고 있다. 그리고 학교 폭력의 진상을 파헤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지를 보여준다. 특히 학교가 보여주는 행동은 늘 그렇듯이 아주 방어적이고 기만적이다. 그들은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이 없다. 빨리 이 사건이 지나가고 잊혀지길 바랄 뿐이다. 진상을 알고, 그 대상자가 처벌받기를 바라는 희생자 가족들의 마음은 그들에게 닿지 않는다, 읽으면서 가장 울컥했던 부분도 이런 대목이다. 법을 내세워 말하지만 그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 언론과 행정 사법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가독성이 좋다. 예상한 대로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는데 어떤 대목에서는 긴장감이 떨어져 아쉽다. 두 아버지의 모습을 대비해서 보여주는 장면은 누가 진짜 아버지인지 금방 알 수 있게 한다. 흔히 쉽게 말하는 죽을 마음이면 그 마음으로 살아라는 대목에 대한 가장 적절한 반론을 보여준다. 서늘함과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보다 오히려 감성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마무리한 것은 의미 있지만 개인적으로 약간 아쉽다. 가자미의 입장으로 많은 부분 읽었으면서 감정 이입을 많이 했다. 이런 소설을 읽다 보면 늘 소년법과 피해자 구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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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
에릭 재거 지음, 김상훈 옮김 / 오렌지디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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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소설에 리들리 스콧 감독이 영화화했다는 사실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철저한 고증’에 기반했다고 하니 더 관심이 갔다. 그런데 실제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이 책 소설이 맞아?’ 하는 의구심이다. 일반적으로 역사 소설하면 떠오르는 전개나 표현들이 이 책에서는 많이 부족하다. 오히려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고 재구성한 역사서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 시대를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하나씩 재구성하는 부분은 역사 덕후들에게 즐거움이 되겠지만 일반 역사 소설 애호가라면 조금 지루할 수도 있다. 전개와 마무리도 다양한 의견을 넣어서 역사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14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카루주 – 로그리 결투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이 분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상당히 흥미로운 전개일지 모르지만 이 역사에 무지한 나에게는 그냥 늘 있었던 결투 중 하나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이 결투가 제목처럼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사적 결투를 영화나 소설 등에서 많이 봐서 그런지 늘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예상 외의 사실이다. 기사들끼리의 대결이 하나의 축제처럼 다루어지는 후반부는 흔치 않은 일이기에 더 열광했는지 모른다. 이 대결의 결과에 서로의 목숨과 판결의 승패가 달렸다는 사실은 이 결투 이전에 얼마나 엄밀한 소송전이 있었는지, 그 이면에 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를 묻어버리기 좋다. 작가는 이 마지막 결투까지 가는 과정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도입부에서 카루즈 가문이 어떤 곳인지, 그가 어떤 인물인지, 그의 가문이 어떤 영주에 소속되어 있는지 알려준다. 실제 이 시대 계급 제도나 전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읽다 보면 나의 편향된 지식을 확인하게 된다. 백 년 전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잔다르크가 활약하기 한참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책 속의 전장 중 한 곳은 영국이다. 프랑스 군이 영국을 침공해 벌인 학살과 약탈이나 동맹군으로 참여한 스코틀랜드 군의 모습은 이들이 단순한 피해자로만 인식했던 나의 지식을 어느 정도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장 드 카루주는 자신이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영지를 친구였던 자크 르그리에게 계속 빼앗긴다. 이 둘은 모두 피에르 백작의 봉신인데 백작이 르그리를 계속 우대하면서 이 둘의 관계는 조금씩 금이 간다. 이 파국이 완전해지기 전에 화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카루즈의 아내 마르그리트가 르그리를 처음 본다. 두 번째 보는 것은 르그리가 마르그리트를 강간할 때다. 자신의 음욕을 채우기 위해 치밀한 준비를 한 후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 강간한다. 이 과정에 부하의 도움이 있었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아내가 남편에게 이 사실을 말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말한다. 이 사건은 보통 일이 아니다. 고소한다고 바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처음 이 사건을 다룰 인물이 피에르 백작임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실제 첫 판결은 무죄가 되었고, 카루주는 상고한다.


14세기 재판이라고 대충 하지는 않는다. 원고와 피고의 의견을 듣고, 변호사들이 대동하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한다. 이 모든 재판 기록은 그대로 남아 있었고, 이 자료가 이 책을 쓰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서로 의견이 갈라지는 부분에서는 작가의 상상력이 끼어들고, 진술의 일관성과 그 시대의 상황을 감안했다. 이 부분은 에필로그에 잘 나온다. 르그리의 후손이나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의견이 지닌 허점도 같이 지적하면서. 그리고 이 대결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당시 국왕이 얼마나 이런 대결을 좋아하는지 보여주면서 어떻게 이런 판결로 이어지게 되었는지 말한다. 그리고 나의 머릿속에서 판타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이 제도를 악용하는 귀족 등의 모습이 떠오른다.


카루주와 로그니는 모두 중기병이다. 완전 무장한 채 거대한 말을 타고 적에게 달려가는 중세의 탱크 같은 존재다. 이 둘의 마상시합처럼 싸우는 장면은 박진감 넘치고, 땅에 떨어져 싸우는 장면은 화려한 대결과 거리가 있다. 죽이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행동도 가능하다. 주변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자신이 소유한 무기만으로 싸워야 한다. 당연히 좋은 장비와 힘이 중요하지만 경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런 대결에 대한 예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생사대전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준다. 작가는 이 대결의 승자를 끝까지 숨긴 채 이야기를 이어가고, 그 시대의 비과학적 인식들을 나오는 상황에 맞춰 하나씩 풀어낸다. 일반 역사 소설처럼 빠르게 읽을 수는 없지만 중세 기사들과 귀족들의 인식과 문화를 아는 데는 많은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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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나 홀로
전건우 지음 / 북오션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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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가 전건우 단편집이다. 표지가 촌스럽지만 섬뜩하다. 일곱 편이 실려 있다. <괴담수집가>를 제외하면 장편소설 두 권을 재밌게 읽었다. 장편소설이라고 하지만 이 작품들은 단편처럼 구성되어 있다. 이런 연작소설을 좋아하는데 전건우는 이 부분에 상당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내가 작가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괴담수집가>는 조금 실망했다. 이전 작품들에 비해 너무 동네 괴담처럼 허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단편집을 읽으면서 서늘하고 음침하고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아쉬운 점은 표지인데 작가를 모른다면 표지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히치하이커(들)>은 한적한 산길을 차가 지나가는데 산에서 비린내를 풍기는 남자가 내려와 탄다. 라디오에서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차에는 두 남자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산에서 내려온 남자가 위험해 보인다고 말한다. 실제 검문소에서 이 남자가 보여준 행동은 아주 위험하다. 연쇄살인범 방송과 이 남자가 연결되고, 차 속의 두 남자와 작은 행동이 어느 순간 어긋나면서 예상외의 장면으로 이어진다. 잘 짠 트릭과 구성이다. <검은 여자>는 스티븐 킹의 소설 <미저리>가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시간과 기억을 뒤섞는다. 검은 여자로부터 달아나려는 남자와 그 남자를 뒤좇는 여자의 추격전은 전형적인 귀신 영화의 구조를 따라간다.


<마지막 선물>은 뭉클한 느낌이다. 과거 태풍이 몰아치던 날 있었던 무시무시한 경험을 들려주고, 이 단편의 제목이 지닌 의미를 반전으로 풀어놓는다. <취객들>은 늦은 밤 편의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들을 다룬다. 진상처럼 찾아온 손님, 자신을 무시했다고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손님, 편의점에서 일하는 여성 아르바이트생만 노리는 살인범 뉴스 등이 엮이고 꼬인다. 알바생을 죽이기 위해 달려는 손님과 그 대결은 무시무시하다. 이 단편의 마지막 장면은 공포영화의 클리셰 중 하나다. <Hard Night>는 조폭의 비밀장부를 가지러 갔다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마주한 부패경찰 이야기다. 부패경찰에게도 사연 하나를 넣어주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펼쳐지면서 아직 힘들고 긴 밤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구멍>은 구멍에 팔 하나가 박힌 남자 이야기다. 어떻게 이 팔이 박힌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와 왜? 가 중요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남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평범하고 소심한 남자가 술이 들어가면서 바뀐다. 한때 아니 최근에도 심신상실이란 이름으로 술에 관대했던 일들을 돌아보게 한다. 이 관대함은 어느 순간 자신을 변호하고 옹호하는 벽이 된다. <크고 검은 존재>는 그슨대라는 악신을 의미한다. 하지만 단순히 이 악신만 이야기 속에 다룬다면 괴물소설이 될 것이다. 작가는 왜 희수라는 여자가 깊은 산속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어떻게 길을 잃게 되었는지를 같이 엮어 악신과 인간의 악함을 같이 엮었다. 그슨대를 그슨새로 읽은 것은 아마도 신비아파트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일곱 편의 단편들은 서술 트릭과 직설적인 공포를 같이 엮고, 스릴러와 귀신 등의 다양한 장르를 섞었다. 낯익은 장면들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낯익음은 우리의 주변에서 항상 마주하는 공간들에서 비롯한 것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만났다. 다양한 직업과 사람들을 등장시켜 사회 문제를 비틀고 꼬아 서늘하게 느끼게 한 부분은 분명 작가의 능력이다. 아직 읽지 않은 작품들이 있는데 과연 어떤 서늘함을 전해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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