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와 맥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4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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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4권이다. 정말 오랜만에 서머싯 몸의 소설을 읽었다. 한때 그의 대표작인 <달과 6펜스>를 아주 재밌고 읽은 후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가 꼽은 열 명의 위대한 작가와 작품 목록을 보고 열심히 찾았던 적도 있다. 헨리 필딩의 <톰 존스>릉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원서라도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 이 소설은 10년 전에 출간되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이 관심은 어느 순간 사그라들었다. 다른 작가로 관심이 옮아갔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신간이나 구간에서 그의 소설이 보이면 자연스럽게 위시리스트에 올린다.


언제부터인가 고전들이 잘 읽히지 않는다. 가끔 읽지만 학창 시절처럼 빠져들지 못한다. 그때처럼 시간이 남아돌지 않기 때문인지, 아니면 고전이 풀어내는 이야기 방식이나 구성이 맞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도 잘 읽히는 책들이 나온다. 이 소설도 그런 종류 중 하나다. 고전임에도 상당히 가독성이 좋아 재밌게 읽었다. 작가의 작품에 대한 정보를 업데이트 하려고 검색하니 <달과 6펜스>와 한 권으로 묶은 책도 보인다. 예전에는 무심코 본 것 같은데 이번에는 그 차이가 눈에 들어온다. 즐거운 일이다. 아는 것의 즐거움 중 하나다.


작가는 서문에서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평론가나 역자의 주장에 따르면 그들이 맞다. 가끔 문제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작가는 이런 거짓말(?)을 덧붙인다. 물론 완전히 그들은 아닐 것이다. 작가의 상상력이 덧붙여지고, 윤색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상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나의 지식이 많이 짧아 더 말할 수 없지만 작품 해설을 참고하면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가 나온다. 토마스 하디가 에드워드 드리필드의 실제 모델이고, 작가 엘로이는 작가의 친구인 소설가 휴 월폴의 판박이라고 한다. 휴 월폴의 작품을 찾아보니 표지가 낯익은 작품이 몇 권 보인다,


평론가들이 거장으로 꼽은 에드워드 드리필드가 죽은 후 그 아내가 엘로이에게 전기 작업을 의뢰한다. 앨로이가 어셴든을 만나 그의 정보를 얻기를 바란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어센든의 과거로 흘러가 자신의 삶과 그가 자랐던 마을의 모습과 드리필드와의 만남 등이 하나씩 흘러나온다. 읽다 보면 시간의 흐름 속에 사람들의 인식이 자연스럽게 바뀌는 것이 나온다. 작가가 정확한 시간을 표시하지 않아 극중 사건 등을 참고해서 거꾸로 추론해야 하지만 가장 가까운 시대도 20세기 초반을 넘지 못한다. 이 소설이 1930년에 발표되었으니 어느 정도 기준은 알 수 있다.


이 소설은 <인간의 굴레에서>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풀어낸 작품이다. 솔직히 말해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워낙 오래 전에 <달과 6펜스>를 읽었기 때문이다. 아마 문고판으로 읽은 것 같은데 확신할 수 없다. 그것과 상관없이 몸은 이 소설에서 자기의 작가론에 대해 조금씩 풀어낸다. 드리필드가 위대한 것은 위대한 작품을 쓴 것도 있지만 그가 오랫동안 책을 출간했다는 점이다. 단지 몇 권으로 불멸의 명성을 유지하는 작가들이 있지만 긴 세월 동안 작품을 쓴 작가들이 거장으로 이름을 남긴다. 그리고 베스트셀러가 된 작가들이 후대에 재평가를 받거나 거장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지적에 고개를 끄덕인다.


에드워드 드리필드가 작가로 명성을 알리는데 유력가 트래퍼드 부인의 도움이 있었지만 작품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다른 이들이 그녀를 폄하하려고 부르는 색광 아내 로지가 곁에 있을 때다. 당시 작가들이 다루고 있던 이야기와 다르게 일반 민중의 삶을 자신의 경험으로 녹여내었다는 초기 작품들은 출간 당시보다 후대에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이 당시 풍조에 대한 설명을 읽다 보면 지금 기준으로 황당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문제적 여성인 로지는 이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도덕과 윤리의 잣대로 그녀를 평가한다면 지금도 욕을 끝없이 들을 여자이지만 나름의 기준으로 남자들을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이런 여성을 1930년에 등장시켰다는데 놀란다. 작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머싯 몸의 소설에 다시 관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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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체스트넛맨
쇠렌 스바이스트루프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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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의 원작 소설이다. 넷플릭스를 보지 않지만 원작이 있다고 하면 일단 관심을 둔다. 많은 광고 문구 중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와 비견할 만한 속도감 빠른 스릴러”라는 부분이다. 한동안 너무 자주 본 문구라 조금 식상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 소설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고개를 끄덕이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대단한 가독성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너무 잔혹한 장면이 나와 서늘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기도 했지만 언제 이 작품의 후속작이 나올지 궁금해졌다.


남녀 한 쌍을 팀으로 묶었다. 이 둘은 모두 코펜하겐 경찰 살인수사과에 머물기를 바라지 않는다. 툴린은 사이버범죄센터로 부서 이동을 희망하고 있고, 헤스는 유로폴에서 좌천되어 이 부서로 오게 되었다. 하지만 이 둘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아주 뛰어난 형사란 점이다. 툴린은 서장에서 추천장을 바라면서 이동을 준비하고 있는데 코펜하겐 외곽 주택가 놀이터에서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다. 라우라 키에르다. 잔혹하게 살해되었고, 오른손이 절단되어 사라졌다. 헤스는 다시 유로폴로 돌아갈 생각만 하고 있다. 둘 사이가 좋을 리 없다. 특히 툴린은 그의 불성실한 태도가 불만이다. 삐걱거리는 모습이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도입부다. 이 살인 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피해자의 약혼자다. 출장 중 알리바이가 불확실하다.


이 둘이 하나의 흐름을 이룬다면 다른 하나는 일 년 전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열두 살 아이 크리스티네 하르퉁의 부모 이야기다. 처음에는 이들이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의문을 자아내었다. 이미 크리스티네의 살인자는 잡혔고,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 크리스티네의 엄마는 사회부 장관 로사다. 딸 살인 사건 후 일 년만에 복귀하는데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그녀를 비난하는 문구가 나온다. 라우라 키에르의 살인과 날짜가 겹친다. 이 사건은 의혹 중 하나는 크리스티네의 시신을 찾지 못한 것이다. 범인이 자백했지만 시체가 발견되지 않으면서 약간의 희망도 품고 있다. 로사의 남편이 손에서 술을 놓지 못하는 것은 이 가능성과 관계 있다.


서로 다른 두 접점을 이어주는 것은 밤인형이다. 체스트넛맨에 묻어 있는 지문이 일 년 전 죽은 크리스티네의 지문 흔적과 일치한다. 다섯 곳이 맞다. 두 번째 희생자가 나오고, 그 장소에서 발견된 체스트넛맨의 밤에 또 크리스티네의 지문이 묻어 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예전에 만들어 둔 것을 재활용하거나 자른 손가락을 이용해 의도적으로 지문을 묻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 이 지문이 일 년 이상 보존되는지 하는 문제도 생각해야 한다. 툴린과 헤스가 이 장관을 찾아가 이 사실을 알리고, 단서를 찾으려고 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물론 이미 완료된 사건을 다시 파헤치는 것을 상사인 뉠라네르는 바라지 않는다. 그의 최대 업적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연쇄살인으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공통점이 나타난다. 그 가정에 아동 학대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정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는 신고가 있었다는 것이다. 조사 결과는 모두 무혐의였다. 하지만 실제 내용이 드러날 때 독자들은 경악하게 된다. 어떻게 이런 현실을 모를 수 있는지, 어떻게 참았는지 하고 말이다. 연쇄살인범이 희생자들에게 저지르는 참혹한 살인이 의미하는 바도 조금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이 살인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대상도 잘못되었다. 이것이 크리스티네와 어떻게 이어지는 것일까? 그녀의 가정에 폭력이 있었다면 아이가 아니라 엄마가 희생자가 되어야 한다. 빠른 속도감에 머리가 제때 따라가지 못한다.


목차를 보면 1989년만 연도가 나오고, 이후는 일자만 나온다. 그 사이에 거의 30년이 흘렀다. 그리고 무심코 본 일자와 요일은 읽기 전에는 긴박한 느낌을 주는데 실제 며칠의 간격이 있는 경우도 몇 번 있다. 작은 트릭이다. 뛰어난 가독성과 함께 결코 빠트릴 수 없는 것이 두 형사의 콤비와 캐릭터다. 삐걱거린 도입부 이후 서로 합을 조금씩 맞추어 간다. 헤스가 LOL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 그 게임의 우상으로 한국 프로 게이머를 말할 때 낯설지만 반가웠다. 그 낯섦은 내가 아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곳곳에 단서를 숨기고, 어둡고 뒤틀린 인간의 욕망을 풀어낸다. 서늘하고 잔인하고 참혹하다. 마지막 장면을 마주할 때는 뭉클해지고 엇갈린 감정에 눈길이 간다. 멋진 스릴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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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입김으로 구성된 미래 창비시선 463
이근화 지음 / 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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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이전 시집은 읽은 적이 없다. 최근에 한국 시인들의 시집을 다시 읽고 있다. 낯선 것은 당연하다.

며칠 동안 조금씩 읽었는데 뭔가가 잡힐 듯하면서 잡히지 않았다.

첫 시 ‘악수’를 읽을 때 악의 한자가 무엇인가 궁금했다. 惡인지 握인지.

일상을 풀어내고, 귀신 이야기가 나오고, 고양이가 한몫 거든다.

엄마의 말실수가 한 편의 시(<1918>)로 탄생하고, <건전한 시민으로서 골목길에 애완견의 배설물을 방치하지 않고 엘리베이터 문에 기대지 않으며 소방도로에 주정차하지 않고 대피로에 사유물을 적치하지 않으며 야간에 피아노를 두들기지 않고>와 같이 긴 제목의 시도 있다.

“빈 화분에 물을 주며/ 나는 하루하루 시들어간다/ 최선을 다해 말라간다”(<빈 화분에 물 주기>부분)고 할 때 가슴 한 곳이 아렸다. 가끔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름이 말라가는 사람들”(우리는 영원히> 부분)을 읽으면서 내 휴대폰 속 수많은 이름들이 떠오른다.

<세상의 중심에 서서>에서 “혼자 기고 긴 산책을 합니다/ 멀리서 책을 한권 또 주워 왔습니다” 했을 때 열심히 책을 모았던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좋은 이웃들>은 읽으면서 괜히 뜨끔했다. 우리 애가 얼마나 힘차게 아파트 바닥을 굴리는지 알기 때문이다.

<노력하는 삶>에서 “세상은 어려운 참고서 같고, 다 보지도 못했는데 시간은 빨리도 지나간다”고 했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편집부가 시집 제목으로 ‘검고 매끄러운 가능성’을 뽑아주었다고 하는데 알다시피 시인이 생각했던 제목이 선택되었다. 솔직히 이 두 제목 모두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읽을 때 느낀 점이 사라진 후 이 글을 쓰면서 대충 훑어보니 생각하지 못한 문장에 끌리는 나를 본다.

한때 시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었는데 점점 더 무너진다. 다시 열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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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생활기록부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나혁진 지음 / 몽실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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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작은 착각을 먼저 말하고 지나가자. 제목에 붙어 있는 ‘생활기록부’란 단어 때문에 유령이 된 주인공이 학교에서 사건을 푸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죽음 이후 유령이 되고서야 살아보는 새로운 삶이란 소개는 순간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나의 나쁜 습관이 이런 착각을 불러왔다. 흔한 일이지만 늘 반복된다. 낯익은 작가의 작품일 경우 더 심하다. 그리고 소설 전체가 그의 죽음을 파헤치는 쪽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연작 소설의 형식을 가지고 있고, 평범한 추리력을 가진 유령의 활약을 보여준다. 평범하다고 하지만 집중력을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하면 해결하기 쉽지 않은 사건들이다. 왠지 작가의 경험과 생활이 많이 녹아 있는 것 같은 소설이다.


다섯 꼭지로 나누어져 있다. 각 꼭지의 제목이 아주 낯익다. 3장의 말 없는 사나이만 낯설고 다른 제목들은 영화 제목이 바로 떠올랐다. 주인공 허영풍이 연쇄살인범에게 살해되고, 유령이 된 후 마주한 사건들을 다룬다.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일본 소설이나 만화가 떠올랐다. 정확하게 어떤 제목이 확 떠올랐으면 좋겠는데 희미한 기억만 있다. 소설의 시작은 그가 연쇄살인범에게 죽는 장면부터다. 그는 그 살인범을 보지 못했고, 왜 유령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 유령에게 재밌는 설정을 몇 개 덧붙였다. 바로 죽기 직전의 체력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령이니 하루 종일 걸어도 되고, 잠을 잘 필요가 없지만 머리에 각인된 기억은 무의식 중에 행동으로 나타난다.


죽으면 누구나 유령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교통 사고 당한 노인이 유령으로 나타나지 않았고, 집에서 죽은 초등학생의 경우는 유령이 되었다.초등학생이 죽은 후에도 유령으로 학교에 가고, 집에서 잠을 자는 등의 행동을 반복하는데 인간에게 각인된 학습의 효과를 아주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우리가 무의식 중에 하는 수많은 행동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중학생만 되어도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란 작가의 지적에 동의한다. 죽음의 비밀을 밝히는 순간은 무겁지만 전체 분위기는 찌질한 백수의 일상을 나열한다. 그가 죽은 후 셋방에 들어온 경찰들의 간결한 조사를 보고 순간적으로 살짝 웃었다. 한때 커뮤니티에서 유행했던 유머가 떠올랐다.


2장 사랑과 영혼에서 ‘뭐지?’ 하는 문장을 하나 읽었다. 그가 유령 생활 20년 동안 유일하게 물리력을 발휘한 순간이란 표현이다. 아니 20년 동안 자신을 죽인 범인을 잡지 못하고 떠돌이 유령 생활을 했단 말인가? 유령이 되어 못 갈 곳이 없어진 그가 5년 전 헤어진 여친을 찾아간 것은 생전의 미련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 <사랑과 영혼>의 일부와 닮아 있다. 영풍의 과거가 일부 흘러나오고, 후회와 질투의 감정이 넘실거린다. 이번 장을 보면서 나의 감정을 살짝 대입했는데 나도 그와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바탕으로 타인을 바라본다는 것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시간의 제약이 없는 그가 대학 동창을 만나러 가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 것이 ‘말 없는 사나이’다. 친구 혀가 근무하는 우유 회사의 밀어내기를 보면서 머릿속에 남양유업이 떠올랐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흘러나오는 진짜 이야기는 영풍의 학창 시절과 저 잘 생겼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친구의 잿빛 얼굴의 이유를 알게 된다.



연쇄살인의 피해자가 유령이 되어 일상의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보통 이런 설정이라면 자신의 죽음에 대한 원인을 파헤치고, 범인 잡기에 빠져야 하는데 그 부분은 살짝 빗겨간다. 가지 못하는 곳이 없어지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한 듯한 부분이 마지막 장에 나오는데 투명인간이 되면 할 것들 같은 일들이 많다. 그 중 일부는 속된 말로 귀신만 아는 사실일 뿐이다. 물리력을 발휘할 수 없다 보니 보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동료 유령들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살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물론 예외 적인 상황 두 개가 단편 속에서 다루어진다. 전체적으로 무겁지 않고, 찌질한 주인공의 삶을 잘 보여줘서 공감하는 부분도 많다. 소소한 유머가 주는 재미도 상당하다. 지금까지 읽은 작가의 소설과 다른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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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네 산부인과
고다 도모 지음, 김해용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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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독특한 산부인과를 배경으로 출산과 육아에 대해 솔직하게 풀어낸 소설이다. 이 독특한 산부인과 의료진들은 대부분 LGBT다. 여기에 주인공 다치바나 쓰구오는 태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무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이 산부인과에 오기 전에 큰 시련을 겪었다. 실제 이 병원에 일하는 의료진들이 LGBT란 사실은 사회 인식이 최근에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그들이 살아오면서 이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의미다. 작가는 이런 사실을 소설 속 상황에 적절하게 잘 녹여내었다. 너무 과한 감정 이입을 어느 정도 차단하면서 말이다.


첫 대목을 보면서 실제 이런 출산 장면이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다. 서퍼 부부의 출산 장면인데 남편이 출산하는 아내 앞에서 파도를 타는 것 같은 행동을 한다. 의사가 이것을 말리지 않고 같이 응원한다. 출산의 위험과 엄숙함을 생각하면 황당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행동들은 병원과 임산부 등이 합의한 것이다. 즐겁고 유쾌한 상황 속에서 큰 탈 없이 출산하고 병원의 아카펠라 합창단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다. 쓰구오가 첫날 출근하면서 바로 경험한 일이다. 그리고 거구의 트랜스젠더 조산사가 출산에 임박한 임산부를 안고 달려오는 장면을 마주한다. 오케이 씨다. 오케이 씨는 이전에 쓰구오와 함께 근무한 적이 있다.


이 산부인과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온 쓰구오는 문화 충격에 휩싸인다. 오케이 씨나 다른 의사가 주고받는 용어들이 낯설고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원장은 이 산부인과에서 스트레이트가 오히려 마이너리티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의료진이 LGBT이나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자잘한 장난과 유머를 섞어 유쾌하고 즐거운 상황을 연출한다. 원장이 근육을 앞세우는 행동을 늘 하는데 왠지 만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이런 유쾌하고 즐거운 모습 뒤에는 누구나 사회의 편견이나 실수 등의 과거가 숨겨져 있다. 조금씩 그들의 삶이 흘러나온다. 고개를 끄덕인다.


한 임산부가 나타나 출산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 쓰구오의 트라우마가 폭발한다. 이전 병원에서 그가 출산을 도와준 임산부가 산후 우울증으로 자살을 한 것이다. 그 남편이 나타나 아내의 일기를 가지고 의사 탓을 한다. 의사로써 섬세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을 지 모르지만 의사 탓을 하는 것을 말이 되지 않는다. 이것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임산부를 마주하면서 쓰구오의 과거가 흘러나오고, 육아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적나라하게 말한다. 심리상담 중에 아내와 남편의 서로 엇갈리는 부분들이 나오는데 보면서 순간 뜨끔한 부분이 많다. 아주 현실적인 문제들을 간결하면서도 적절하게 잘 요약해서 다루었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누군가는 아이를 갖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지만 실패하고 또 실패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너무 쉽게 의도하지 않는 임신을 한다. 작가는 이 부분은 다루지 않지만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무섭고 힘든 지는 보여준다. 그리고 산후 우울증이 단순히 호르몬의 변화만이 아니라 부모와의 관계와 가족 간의 관계 등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많은 도움이 필요한 데 이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그 혼란과 두려움과 공포 등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 아내의 출산 이후 이 장면들을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보았기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무적의 능력처럼 보이는 태아의 목소리 듣기가 그 자체로 완벽한 능력은 아니다. 그 목소리를 듣고 현실에서 잘 적용할 때 그 능력이 빛을 발휘한다. 작가는 이것을 극적인 순간에 가끔 써먹는다. 그리고 태아와 엄마의 관계에 대해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이것은 쓰구오와 엄마와의 관계에도 적용되는 부분이다. 소설 후반부에 엄마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감정을 억누르고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그 진심을 아는 것이 쉽지 않다. 그 작은 표현과 작은 접촉이 진하고 강한 울림을 다가오고, 한발 더 성장한다. 이 성장은 나이와 상관없다. 임신, 출산, 육아 등에 대한 좋은 안내서 역할을 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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