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토 폴앤니나 소설 시리즈 6
규영 지음 / 폴앤니나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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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영화 <부산행>의 제작사가 드라마 제작을 결정했다고 한다. “길몽 팔아서 1억 번다고요?”란 문구가 아주 노골적으로 시선을 끈다. 이 두 가지가 이 책을 선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생각한 것과 조금 다르지만 책장은 술술 넘어갔다. 곁가지가 많이 빠지고, 약간 허술한 듯한 구성이지만 높은 가독성과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이것을 충분히 덮어준다. 드라마 제작 때문인지 읽으면서 누가 옥토를 할 것인지, 마담은 누가 맡을 지, 꿈을 사고 파는 과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등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젊은 배우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가상 캐스팅에 실패했다. 아쉽다, 하지만 다른 독자들이라면 자신만의 캐스팅이 가능할 것 같다.


옥토. 평창동 꿈집의 마담이 달샘의 태몽을 듣고 지어준 별명이다. 하지만 옥토가 바로 이 꿈집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작가는 달샘의 이야기와 꿈집을 이야기를 같이 풀어내면서 자연스럽게 둘이 어울리게 만들었다. 달샘의 집은 떡집이고, 꿈집의 시작도 떡집이었다. 그리고 평창동 꿈집이 과거 받게 된 저주를 살짝 끼어 넣어서 미스터리와 무게를 더한다. 평창동 꿈집이 파는 꿈들이 얼마나 비싸고, 효과가 영험한지 말하고, 과거 저주가 4대 마담에서 실현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야기가 가볍고 빠르게 진행되면서 생긴 빈틈을 이런 설정들이 잘 메운다.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설정과 캐릭터의 힘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다.


달샘은 쌍둥이다. 남동생 환희가 태어난 후 부모님은 떡집 이름을 환희 떡집으로 바꾸었다. 아들 환희가 제주도에서 살겠다고 하자 아들 따라 제주도로 내려갔다. 이 환희 떡집이 상당히 잘 되어 그 동네가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사실 떡도 특별한 날에 먹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거나, 승진하거나, 시험을 치거나 할 때 그 바람을 담아 주문한다. 부모님이 제주도에 내려갈 때 떡집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달샘이 거절했다. 자신이 벌어서 월세를 내겠다고 한 것이다. 떡을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혼자 하기 힘들다. 그러다 사고가 난다. 앞 이빨 두 개가 날아가고, 팔을 깁스를 해야 한다. 달샘이 꿈집에 가게 된 이유다.


꿈을 파는 일을 처음 한 곳이 평창동 꿈집이다. 길몽 하나의 가격이 최소 5백만 원이나 한다. 꿈을 파는 것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안 1대가 옆집과 다투다 저주를 받아 대대로 문제가 생기지만 꿈집의 성공은 시대를 지나면서 더욱 커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저주가 그대로 현실화되었다는 것이다. 이 꿈집을 무너트릴 인물로 달샘이 선택받는다. 달샘이 꿈집에 온 이유는 단순히 돈이었는데 그를 둘러싼 상황이 그의 용도를 바꾼다. 작가는 이 상황을 복잡하게 풀어내기 보다 간결하게 다룬다. 그 바탕 중 하나는 오해가 겹쳐 있고, 그 사이를 탐욕이 채운 것이다. 소설 속 달샘이 보여주는 순수함은 어떻게 보면 어리숙하고, 어떻게 보면 현실 인식 부족이다.


인간의 욕망은 시간의 흐름 속에 뒤틀리고 바뀐다. 첫 바람이 무엇인지 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진실은 수면 아래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다. 좋은 꿈의 가격이 최소 5백만 원이란 사실은 서민은 꿈도 꿀 수 없다는 것이다. 1억에 옥토의 꿈을 사겠다는 제안은 불가능을 넘으려는 욕망에서 비롯한 것이다. 한 사람의 미래에 대해 길몽과 흉몽이 동시에 나오는 경우도 보여주는데 선택은 그 꿈을 사는 사람이 한다. 그리고 분명하게 말한다. 길몽을 산다고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길몽은 그 노력에 작은 결과를 덧붙여주는 것이라고. 이 소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지점들이다.


그렇게 두툼한 분량이 아니다. 읽으면서 더 보고 싶은 이야기도 있는데 그냥 끊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옥토의 로맨스다. 산몽가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도 더 나왔으면 좋겠는데 너무 단편적이다. 책 후반부에 옥토와 마담이 강원도 양양 낙산해수욕장에서 겨울 바다를 구경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배경음악으로 무엇이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통통하고 앞니 두 개 빠진 옥토를 떠올리면 살짝 미소 짓게 되고, 누가 이 역을 맡을 지 궁금해진다. 가끔 자신에게 온 길몽을 가볍게 차버리는 일이 생기는데 읽는 순간 안타까웠다. 좋고 나쁜 꿈을 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꿈을 해석하는 것도 이에 못지 않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좋은 꿈보다 어릴 때 꾼 악몽들이 먼저 떠오른 것은 길몽이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악몽이 너무 인상적이기 때문일까? 하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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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냅드래곤 - 2022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도서, 2022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 2022 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추천도서 Wow 그래픽노블
캣 레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보물창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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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재밌게 읽고 있는 Wow 그래픽노블 신작이다. 제목 <스냅드래곤(Snapdragon)>을 얼핏 보고 용을 먼저 떠올렸다. 드래곤이란 단어 때문이다. 사전에서 그 뜻을 찾아보면 ‘금붕어꽃’이 나온다. 인터넷 검색으로 들어가면 IT 칩이 먼저 나온다. 살짝 혼란스러운 순간이다. 책을 읽다 보면 스냅 가족들이 이름에 꽃을 붙이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상당히 특이한 집이다. 스냅은 학교에 특별한 친구를 두지 않고 있다. 어떻게 보면 왕따 느낌도 있다. 엄마와 둘이 살고 있다. 첫 문장이 ‘우리 마을에는 마녀가 산다.’이다. 어느 날 애완견 굿보이가 사라져 마녀의 집으로 용감하게 굿보이를 찾으러 간다. 마녀 잭스를 처음으로 만난다.


안대를 하고 검은 옷을 입은 잭스를 마을에서 마녀라고 부른다. 잭스는 크록스를 신고, 인터넷으로 로드 킬 당한 동물 뼈로 모형을 만들어 판매한다. 외투를 벗고 일상복으로 갈아 입은 잭스를 보고 처음에는 남자라고 생각했다. 외모가 주는 선입견이다. 이 선입견은 실제 젊었던 과거에도 혼란을 불러왔다. 짧은 단발에 남성의 특성을 더 부각시킨 외모다. 하지만 그녀는 평범한(?) 노인일 뿐이다. 잭스가 하는 일을 보게 되면서 스냅은 끌린다. 자신이 구조한 아기 주머니쥐를 돌보게 도와주면서 둘은 계약을 맺는다. 잭스가 어떻게 동몰 뼈를 구하고, 모형을 만드는지 알려줄 때 동물에 대한 강한 애정이 드러난다.


스냅이 아기 주머니쥐를 구할 때 같이 있던 남자 아이들 중 한 명이 루이스다. 그는 이런 괴롭힘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이후 루와 스냅은 친구가 되고, 루는 자신의 성향을 알려준다. 루는 여자가 되고 싶은 아이다. 스냅 엄마의 치마를 입고 좋아하고, 화장을 한다. 이런 성향을 친구들에게 알리면 놀림감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에게 스냅이 있다. 이 둘의 관계는 성별을 뛰어넘고, 사회 편견도 신경쓰지 않는다. 루의 모습과 닮은 인물이 바로 잭스다. 이야기가 더 진행되면서 잭스와 스냅의 할머니가 서로 아는 사이란 사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이들이 어떤 사이였는지도.


어떻게 보면 평범한 할머니와 소녀의 만남을 작가는 마법을 집어넣으면서 조금씩 변화시킨다. 잭스가 왜 눈 한쪽이 없는지 알려주고, 스냅이 본 동물 영혼에 대한 이야기도. 처음에는 이 마법을 보고 약간 어리둥절했지만 읽다 보니 어느새 그들의 능력에 거부감 없이 적응했다. 이것은 잭스와 루이스의 성 정체성 문제와도 이어진다.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 끌고 들어와 평범하게 풀어낸다. 이들의 성 정체성을 놀리거나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처럼 그려내고 보여준다. 그리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동이나 문제들을 마법으로 해결하는데 화려하게 포장하기 보다 소소한 재미와 유머로 풀어내었다.


노인 잭스와 소년 스냅의 결합은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 잭스가 만드는 모형이 정적이었는데 동적인 모형을 스냅이 제안한다. 이 작은 실험이 잭스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다. 스냅에게는 잭스와 함께 로드 킬 당한 동물들을 묻고, 시간이 지난 후 뼈를 발굴해 동물 뼈 모형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잭스가 펼치는 마법을 배우는 것이다. 마법 수련은 생각처럼 쉽지 않지만 많은 노력 끝에 우연히 발화한다. 그 변화 중 하나가 루이스의 외모 변화다. 이 변화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녹여 내었는지 전체 흐름을 천천히 읽지 않으면 그 차이를 알 수 없다. 마지막 장면으로 넘어가면 생각하지 못한 만남과 기묘한 결합을 보게 된다. 작은 판타지가 만들어낸 작지 않은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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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없는 월드 클래스 안전가옥 쇼-트 9
류연웅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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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쇼-트 9권이다. 이 책 이전에 류연웅의 소설은 모두 앤솔로지에서만 봤다. 안전가옥 오리지널도 한편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일단 찜해 놓았다. 찜을 한 이유는 이번 소설을 아주 재밌게 읽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미래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대패한 이후 축구가 사회 5대악으로 지정된 후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고 있다. 작가는 직선적인 구성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고, 이야기에 주석을 달고, 복선을 알려주고,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한다. 이 전개가 전혀 무겁지 않고 코믹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패러디와 변주도 이 소설의 재미 중 하나다.


대학의 조별 과제. 나에겐 낯설지만 많은 대학생들이 이 조별 과제 이야기를 한다. 소설 속 주인공 채연이 조별 과제 A학점을 내걸고 조원들에게 50만 원 비용을 청구할 때만 해도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A를 받지 못하면 200배 배상하겠다는 조건이 붙는다. 모두가 송금하고, 과제 헌터 채연은 득의양양하다. 자신이 이미 만들어 놓은 하윤주 다큐멘터리를 내면 당연히 A 받을 것이라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수가 상황을 비튼다. 각조에서 내놓은 기획안을 섞어 뽑게 한 것이다. 이때 뽑은 인물이 김덕배다. 채연은 당연히 누구지? 하는 의문을 갖는다.


PD의 후기를 보면 김덕배란 이름을 맨시티의 케빈 더 브라위너에서 따왔음을 알려준다. 실제는 상관관계가 없다. 가까운 미래의 한국은 축구가 사회 5대악으로 지정되어 월드컵도 축구 경기도 없다. 공원이나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것도 금지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채연이 김덕배를 찾기 위해 인터뷰한 두 인물을 통해서 나온다. 한 명은 그 당시 축구팀 감독이고, 다른 한 명은 축구협회 회장이다. 김덕배란 선수를 선발하게 된 경위와 그가 불러온 가공할 참사 등을 이 인터뷰를 통해 알려준다. 그런데 이 둘도 김덕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인터뷰를 하지 못하니 영상을 조작한다. 그런데 이 다큐를 교수가 자기 유튜브에 올리면서 상황이 바뀐다.


축구가 5대악으로 지정된 데는 한국 축구팀의 패배도 있지만 사람들이 경기에 엄청난 베팅을 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에서 엄청난 사상자가 생기고, 축구는 근절되었다. 읽으면서 야구나 다른 스포츠 종목도 토토가 있는데 하고 토를 달아봐야 소용없다. 그냥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작가가 풀어낸 미래는 작은 기본소득도 지급한다. 그렇다고 학비 대출 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뒤로 가면 화폐 가치가 뒤섞이고 과장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작가의 실수인지, 의도적인 연출인지 의문이 생긴다. 뭐 이 부분도 대충 넘어가자. 중요한 것은 채연의 다큐가 불러온 여파다. 그리고 채연의 과거와 김덕배의 아버지가 등장해 상황을 살짝 비틀고 꼰다.


채연의 시선을 따라 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유쾌하다.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 이어지지만 재미 있는 반전도 펼쳐진다. 김덕배를 뽑아라고 첫 댓글을 남긴 인물의 정체가 밝혀지고, 누가 인천공항에서 삶은 달걀을 던졌는지도 알려진다. 개인들에게 쌓였던 감정이 하나의 발화점을 통해 폭발한 것이다. 한때 <동상이몽>에 출연해 미디어소녀로 불렸던 적이 있고, 작은 성공이 다시 엄마와 화해하는 모습을 연출하려고 하는 등 삶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재밌게 보여준다. 읽다 드는 생각 중 하나 ‘그래서 김덕배는 언제 등장하는가?’ 하는 의문에 작가는 마지막에 살짝 등장시켜 멋지게 마무리한다. 그리고 새롭게 사회 5대악으로 선정된 것을 알려주는데 왠지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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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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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역 공원 출구>의 개정판이다. 2015년에 다른 출판사, 다른 번역으로 나온 적이 있다. 이전 출간과 다른 것은 번역뿐만 아니라 2019년 작가 후기를 덧붙였다. 이 후기를 통해 몇 년 사이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후기에 따르면 후속작이 나올 것이라고 하는데 후속작에 대한 추가 정보는 없다. 일본 원작이 2020년 전미 도서상 번역문학 부분을 수상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이 역주행 베스트셀러로 이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과 다르지 않은 점을 확인하게 된다.


유미리의 소설은 정말 오랜만이다. 1990년대 말 한참 유행할 때 몇 권 읽고, 몇 권 더 사 놓고 계속 묵혀 두었다. 아마 그 당시 몇 권의 책이 나의 취향과 맞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 소설도 조금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작가가 재일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계속해서 그 부분을 찾는데 이것이 이야기에 집중하는데 방해가 될 때도 있다. 물론 이번 소설의 경우 재일한국인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 이번 소설에서는 일본 천황제와 두 번의 도쿄 올림픽과 동일본대지진 문제가 놓여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을 우에노 역 공원 노숙자로 설정한 것은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정면에서 보여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13년에 도쿄를 며칠 동안 여행한 적이 있다. 숙소가 우에노 역 근처였다. 마지막 날 우에노 공원과 동물원을 다녀왔는데 노숙자를 보지 못했다. 있는 곳을 가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인 것 불분명하지만 그 이후 우에노 역은 괜히 친숙한 느낌이다. 이 우에노공원의 노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풀어내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경제성장기 일본의 모습과 거품 경제 이후 일본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여기에 가즈의 첫 아들 출산과 천황의 아들이 태어난 날을 같이 엮어 서로 다른 신분과 다른 미래를 간결하게 보여준다. 할 수 있는 일은 몸으로 힘쓰는 노동밖에 없는 노동자의 힘든 삶이 곳곳에 녹아 있다. 아들이 바라는 것을 태워주지 못하는 아비의 심정이 짧게 표현되어 있는데 순간 뜨끔했다.


가즈의 일생을 간략하게 요약하면서 보여준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타지를 전전해야 했던 과거가 짧지만 강렬하게 나온다. 성장한 아들이 갑자기 죽는 사건과 제사를 둘러싼 이야기가 생각보다 길게 펼쳐진다. 황태자와 비교되는 삶의 순간이다. 아들이 죽었다고 일손을 놓을 수 없다. 늙어 집에 돌아와 평화로운 여생을 보낼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아내가 죽는다. 자식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우에노역 노숙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노숙자로 지내다 죽어도 자식에게 그 소식이 전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왜 이렇게까지 부담을 느끼는 것일까?


첫 번째 도쿄 올림픽 개최 시절에 그는 노동자로 그 일에 참여했다. 하지만 다시 열리는 올림픽에는 노숙자 신세다. 우에노역에서 작은 천막을 치고 노숙하지만 천황 등이 행차하면 철거를 해야 한다. 황태자 등을 가까이에서 본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는 그의 시선은 나오지 않는데 순간 같이 태어났던 아들의 이미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한때 중학생들이 노숙자를 폭행하고 살해했던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낯설지 않은 사건이다. 다른 소설 등에서 몇 번이나 본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피해자의 시선을 담고 있다. 하루 종일 빈 캔을 모아 망치로 두드려 팔아도 돈은 얼마되지 않는다. 그래도 이 돈으로 잠시나마 보통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


“유미리는 일본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차별의 기저에 자신들은 결코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을 거란 믿음과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란 점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이 문장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숙자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혐오와 차별의 감정은 그들이 다른 곳에서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동일본대지진을 보여주는데 솔직히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놓친 연결고리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얇은 책인데 읽다 보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유미리의 책에 다시 관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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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5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김대현 2021-10-17 05: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훌륭해요.멋진 상상력과 현장성
 
미엔 라임 청소년 문학 53
김아영 지음 / 라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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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책이다. SF 소설이다. 청소년 문학에 SF 설정이 최근에 종종 보인다. 개인적으로 반가운 일이다. 모두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첫 부분을 읽을 때는 선택을 잘못한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끝까지 읽으면서 이 생각이 바뀌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이야기를 비틀어 풀어낸 상상력은 박수를 칠 만하다. 개인적으로 <좀비 바이러스>와 <대화>가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이 두 편을 장편으로 개작했으면 좋겠다. 나머지 세 편도 뛰어난 가독성과 예상하지 못한 전개를 보여주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위기의 인간>은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은 <로드 킬>이 먼저 떠올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생명체가 인간을 수집해 동물원처럼 만든다는 설정은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이 동물원에 갇히면서 우리가 가두어 둔 동물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것이 얼마나 잔혹한 일인지. 표제작 <미엔>은 우주에서 온 미엔인이 지구인과 공존하면서 생기는 문제를 다룬다. 제멋대로인 인간을 미엔인의 마을에 보내 미엔인으로 교체한다는 부분은 서늘하다. 마을에 머문 인간이 자신의 모습을 한 미엔인을 보고 놀라 정신 조작이 깨어진다는 부분과 미엔인이라는 착각이 불러온 기억은 결국 우리는 특별하고 다르다는 인식을 깨트린다.


<유로파>는 인간이 아직 가보지 못한 심해에서 발견한 룻이란 생명체와 목성의 위성 유로파를 엮었다. 여기서도 인간은 인간의 욕망에 의해 다른 생명체를 거세하고 실험에 투입한다. 85년 동면이란 SF 설정을 같이 묶고, 인간의 사이보그화를 당연시한다. 이것은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결과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이 너무 낯익다. <대화>는 인류가 멸망한 이후 외계생명체가 아이폰 속 데이터를 불러낸다. 시리다. 시리가 말하는 이야기는 외모 차별과 학내 폭력 등이지만 결국 친구였던 재원의 꿈이다. 인류가 멸망한 이후 인류가 남길 유산들을 생각하면 이 소소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들이 더 필요하다.


<좀비 바이러스>는 읽으면서 가장 먼저 흔히 본 좀비물을 떠올렸다. 인간이 좀비가 되어 사람에게 달려드는 그 좀비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좀비 바이러스를 인간이 아닌 인간을 닮은 안드로이드에 심었다. 자신이 인간이라고 착각하는 안드로이드의 존재는 인간들에게 위협이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안드로이드가 보여주는 행동은 예상하지 못한 몇 가지 상황을 만나면서 우리의 고정 관념을 깨트린다. 안드로이드가 인간성을 가지는 문제에 대한 또 하나의 변주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섯 편을 읽었는데 천천히 돌아보면 우리가 앞으로 마주할 일이거나 이미 마주한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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