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시 물어도, 예스
메리 베스 킨 지음, 조은아 옮김 / 황금시간 / 2021년 9월
평점 :
절판
멋진 소설이다. 가볍게 페이지를 넘기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이야기가 점점 더 진행되면서 삶을 돌아보고 생각하게 한다. 선택과 기억의 퇴적들을 길게 늘어놓지 않고 간략하고 핵심만 풀어놓으면서 변하는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작은 실수, 혹은 잘못된 한 발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틈새로 어떻게 비극이 들어오는지, 이 비극을 마주 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 마주하는 순간조차도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한 순간들을 보여주면서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불완전하고 불안해하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마주 보기를 포기한 사람은 이야기 속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그조차 그 감정 속에서 살았고, 그가 기억하고 추억한 것을 보여주면서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프랜시스 글리슨과 브라이언 스탠호프는 신입 경찰로 처음 만났다. 둘을 파트너가 되어 움직였지만 곧 다른 곳으로 배치된다. 프랜시스는 브라이언에게 교외 마을 길럼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듣는다. 레나와 결혼한 후 길럼으로 이사한다. 레나는 낯선 마을에서 아이들을 낳고 키우지만 외로움을 느낀다. 이때 옆집에 브라이언 가족이 이사온다. 동료 경찰의 아내 앤과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앤이 거부한다. 앤은 유산 경험이 있다. 레나가 셋째 케이트를 낳기 얼마 전 앤이 피터를 낳았다. 작가는 여기서 말한다. 피터와 케이트는 그들의 시작부터 함께 했다고. 이 아이는 아주 친하게 지낸다. 같이 성장한다. 둘은 너무나도 밀착되어 있다. 앤은 이런 케이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프랜시스는 차곡차곡 자신의 경력을 쌓아가지만 브라이언은 그렇지 못하다. 브라이언은 앤과 불화가 있지만 정면에서 이 상황을 마주하기보다 회피하기만 한다. 앤은 약을 먹는데 먹지 않을 때 문제가 생긴다. 한 마트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 어린 피터에게 상처다. 여기에 케이트까지 만나지 못하게 하니 어린 피터는 둘만의 도피를 생각한다. 이 순수한 열정이라니. 어린 소년 소녀가 늦은 밤 처음으로 키스를 하고 집에 들어오는데 우연히 이 장면을 레나가 본다. 감정은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앤에게 말한다. 상황은 더 악화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피터가 프랜시스 집에 와 경찰에 연락해달라고 한다. 비극의 시작이다.
그날 밤 사건은 두 가족을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한다. 앤은 정신병원으로, 피터는 조시 삼촌의 집으로. 아빠와 함께 살던 피터는 브라이언이 경찰을 그만 두고 떠나면서 삼촌과 살게 된다. 엄마를 방문하지만 그녀는 원하지 않는다. 상처받은 소년은 공부도 잘하고, 달리기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은 좁다. 엄마를 보고 싶어하고, 케이트를 그리워한다. 인생의 전환점 중 하나에서 그는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다행이라면 삼촌 조지가 그의 학업을 계속 이어가게 했고, 아빠와 엄마가 자신들이 처한 문제를 몰랐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작가는 피터의 삶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면서 그가 받은 상처와 그리움을 차분하게 드러낸다.
케이트도 피터를 그리워하지만 그녀의 곁에는 가족이 있었다. 아빠는 재활을 열심히 했고, 그녀는 이런 사고의 원인이 궁금했다. 자라면서 그녀는 앤과 피터를 구분했다. 사건을 일으킨 것은 앤이지 피터가 아니라고. 이성은 이 사실을 알려주지만 감정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다른 가족들은 그렇다. 뉴욕에서 다시 피터를 만나 사귀고, 둘이 결혼한다. 피터 주변을 맴도는 앤을 발견한 것도 케이트다. 앤에게 주의를 주지만 결혼 후 도시 외곽에 살 때 다시 찾아온 앤을 발견하고 무시한다. 그녀에게 도움을 손길을 바랄 때조차 그녀의 마음 속에는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작가는 순간의 감정 표현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다. 쉽게 용서하거나 두려움을 떨쳐내지 않고 그 감정의 흔들림을 직시한다.
삶은 자주 충동을 불러온다. 이 작은 충동에 굴복하는 순간 삶은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 작은 행위들이 쌓여 거대한 퇴적물을 만든다. 이때 다시 되돌기에는 너무 힘들다. 우리는 흔히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알리고 주변의 도움을 받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문제 인식이 아주 늦을 경우가 너무 많다. 문제를 인식하지만 충동에 굴복하는 경우도 많다. 작가는 이런 삶의 모습을 긴 세월 동안 두 가족을 통해 잘 보여준다. 이 책의 제목이 나오는 장면을 보면서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묻지만 쉽게 ‘예스’라고 말하지 못한다. 노년의 레나와 프랜시스가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데 소설을 읽다 보면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담담하게 삶을 풀어내면서 긴 여운을 남긴다. 다시 한번 더 말한다. 멋진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