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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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역 공원 출구>의 개정판이다. 2015년에 다른 출판사, 다른 번역으로 나온 적이 있다. 이전 출간과 다른 것은 번역뿐만 아니라 2019년 작가 후기를 덧붙였다. 이 후기를 통해 몇 년 사이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후기에 따르면 후속작이 나올 것이라고 하는데 후속작에 대한 추가 정보는 없다. 일본 원작이 2020년 전미 도서상 번역문학 부분을 수상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이 역주행 베스트셀러로 이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과 다르지 않은 점을 확인하게 된다.


유미리의 소설은 정말 오랜만이다. 1990년대 말 한참 유행할 때 몇 권 읽고, 몇 권 더 사 놓고 계속 묵혀 두었다. 아마 그 당시 몇 권의 책이 나의 취향과 맞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 소설도 조금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작가가 재일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계속해서 그 부분을 찾는데 이것이 이야기에 집중하는데 방해가 될 때도 있다. 물론 이번 소설의 경우 재일한국인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 이번 소설에서는 일본 천황제와 두 번의 도쿄 올림픽과 동일본대지진 문제가 놓여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을 우에노 역 공원 노숙자로 설정한 것은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정면에서 보여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13년에 도쿄를 며칠 동안 여행한 적이 있다. 숙소가 우에노 역 근처였다. 마지막 날 우에노 공원과 동물원을 다녀왔는데 노숙자를 보지 못했다. 있는 곳을 가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인 것 불분명하지만 그 이후 우에노 역은 괜히 친숙한 느낌이다. 이 우에노공원의 노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풀어내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경제성장기 일본의 모습과 거품 경제 이후 일본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여기에 가즈의 첫 아들 출산과 천황의 아들이 태어난 날을 같이 엮어 서로 다른 신분과 다른 미래를 간결하게 보여준다. 할 수 있는 일은 몸으로 힘쓰는 노동밖에 없는 노동자의 힘든 삶이 곳곳에 녹아 있다. 아들이 바라는 것을 태워주지 못하는 아비의 심정이 짧게 표현되어 있는데 순간 뜨끔했다.


가즈의 일생을 간략하게 요약하면서 보여준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타지를 전전해야 했던 과거가 짧지만 강렬하게 나온다. 성장한 아들이 갑자기 죽는 사건과 제사를 둘러싼 이야기가 생각보다 길게 펼쳐진다. 황태자와 비교되는 삶의 순간이다. 아들이 죽었다고 일손을 놓을 수 없다. 늙어 집에 돌아와 평화로운 여생을 보낼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아내가 죽는다. 자식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우에노역 노숙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노숙자로 지내다 죽어도 자식에게 그 소식이 전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왜 이렇게까지 부담을 느끼는 것일까?


첫 번째 도쿄 올림픽 개최 시절에 그는 노동자로 그 일에 참여했다. 하지만 다시 열리는 올림픽에는 노숙자 신세다. 우에노역에서 작은 천막을 치고 노숙하지만 천황 등이 행차하면 철거를 해야 한다. 황태자 등을 가까이에서 본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는 그의 시선은 나오지 않는데 순간 같이 태어났던 아들의 이미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한때 중학생들이 노숙자를 폭행하고 살해했던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낯설지 않은 사건이다. 다른 소설 등에서 몇 번이나 본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피해자의 시선을 담고 있다. 하루 종일 빈 캔을 모아 망치로 두드려 팔아도 돈은 얼마되지 않는다. 그래도 이 돈으로 잠시나마 보통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다.


“유미리는 일본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차별의 기저에 자신들은 결코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을 거란 믿음과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란 점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이 문장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숙자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혐오와 차별의 감정은 그들이 다른 곳에서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동일본대지진을 보여주는데 솔직히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놓친 연결고리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얇은 책인데 읽다 보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유미리의 책에 다시 관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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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5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김대현 2021-10-17 05: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훌륭해요.멋진 상상력과 현장성
 
미엔 라임 청소년 문학 53
김아영 지음 / 라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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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책이다. SF 소설이다. 청소년 문학에 SF 설정이 최근에 종종 보인다. 개인적으로 반가운 일이다. 모두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첫 부분을 읽을 때는 선택을 잘못한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끝까지 읽으면서 이 생각이 바뀌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이야기를 비틀어 풀어낸 상상력은 박수를 칠 만하다. 개인적으로 <좀비 바이러스>와 <대화>가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이 두 편을 장편으로 개작했으면 좋겠다. 나머지 세 편도 뛰어난 가독성과 예상하지 못한 전개를 보여주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위기의 인간>은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은 <로드 킬>이 먼저 떠올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생명체가 인간을 수집해 동물원처럼 만든다는 설정은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이 동물원에 갇히면서 우리가 가두어 둔 동물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것이 얼마나 잔혹한 일인지. 표제작 <미엔>은 우주에서 온 미엔인이 지구인과 공존하면서 생기는 문제를 다룬다. 제멋대로인 인간을 미엔인의 마을에 보내 미엔인으로 교체한다는 부분은 서늘하다. 마을에 머문 인간이 자신의 모습을 한 미엔인을 보고 놀라 정신 조작이 깨어진다는 부분과 미엔인이라는 착각이 불러온 기억은 결국 우리는 특별하고 다르다는 인식을 깨트린다.


<유로파>는 인간이 아직 가보지 못한 심해에서 발견한 룻이란 생명체와 목성의 위성 유로파를 엮었다. 여기서도 인간은 인간의 욕망에 의해 다른 생명체를 거세하고 실험에 투입한다. 85년 동면이란 SF 설정을 같이 묶고, 인간의 사이보그화를 당연시한다. 이것은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결과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이 너무 낯익다. <대화>는 인류가 멸망한 이후 외계생명체가 아이폰 속 데이터를 불러낸다. 시리다. 시리가 말하는 이야기는 외모 차별과 학내 폭력 등이지만 결국 친구였던 재원의 꿈이다. 인류가 멸망한 이후 인류가 남길 유산들을 생각하면 이 소소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들이 더 필요하다.


<좀비 바이러스>는 읽으면서 가장 먼저 흔히 본 좀비물을 떠올렸다. 인간이 좀비가 되어 사람에게 달려드는 그 좀비 말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 좀비 바이러스를 인간이 아닌 인간을 닮은 안드로이드에 심었다. 자신이 인간이라고 착각하는 안드로이드의 존재는 인간들에게 위협이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안드로이드가 보여주는 행동은 예상하지 못한 몇 가지 상황을 만나면서 우리의 고정 관념을 깨트린다. 안드로이드가 인간성을 가지는 문제에 대한 또 하나의 변주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섯 편을 읽었는데 천천히 돌아보면 우리가 앞으로 마주할 일이거나 이미 마주한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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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마주치지 않았을 순간들
송인석 지음 / 이노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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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코로나 19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얼마 전까지 해외 여행의 길은 거의 막혔었고, 국내 여행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들이 이제 해외로 나가는 경우를 본다. 자가격리 면제는 나도 한 번 도전해 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준다. 이 팬데믹 시기에도 여행을 계속한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나갔지 하는 의문에 답은 간단하게 돌아왔다. 그 이전부터 나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도 코로나 19 이전에 세계 여행을 떠났다. 국경이 막히고, 이동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그는 열심히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어쩔 수 없이 긴 시간을 머물러야 했던 조지아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이전에 읽었던 여행 에세이와 다른 느낌이다. 정보의 나열은 거의 없고, 감상도 간결하다. 반 이상을 사진으로 채웠다. 덕분에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사진을 보면서 감탄하면서.


출발 전 저자가 엄마와 찍은 사진을 보는데 아주 해맑다. 그의 경로를 따라 가면 내가 여행한 곳도 나온다. 많은 도시와 나라를 여행한 그가 보여준 풍경 사진은 그 도시의 일상을 기대한 나의 기대와 다르다. 사람들의 얼굴이 나오지만 글은 간략하다. 그가 인연을 맺은 사람들 몇 사람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만 나온다. 아쉽다. 하지만 긴 시간을 여행한 그의 시간을 생각하면 이 기록은 소중한 것이다. 터키에서 그에게 버스표를 끊어준 선생님을 생각하면 여행자에게 따스한 마음을 나눠주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음을 느낄 수 있다. 조지아의 꼬마들은 또 어떤가. 가슴 아픈 경험도 같이 나온다. 224일간 머문 조지아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것도 아쉽다. 몇 년 전 이곳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궁금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세계여행을 시작한 저자가 카우치 서핑을 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정보에 놀랐다.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는 말에 그가 번역기를 돌리면서 열심히 대화를 나누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히치하이킹 경험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경험 정도로 시도했는데 나중에는 필요에 의해 한 모양이다. 카우치 서핑과 히치하이킹으로 세계를 여행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서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일까? 비용과 시간과 자신만의 공간 등을 감안하면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읽으면서 여러 생각들이 오고 간다. 내가 그처럼 20대였다면 어떤 여행을 했을까? 아마 떠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배낭 두 개를 매고 사진을 찍은 그의 모습과 깔끔하게 차려 입고 찍은 여행지 사진은 상당히 비교된다. 그 배낭 속에 그 옷들이 들어있었던 것일까?


582일간의 세계여행은 서쪽으로 나아가다 코소보에서 막힌다. 그가 조사한 내용과 현지 사정이 달랐던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터키에서 파키스탄 친구를 만나 화상 통화하는 것을 보고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을 보고 그의 둔감함에 조금 놀랐다. 나도 이런 사람 중 한 명이란 자각에 뜨끔했다. 여행에세이라고 하지만 실제 내용은 여행 포토에세이에 더 가깝다. 그가 조지아에 대해 풀어낸 감상들을 보면서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궁금했지만 더 나오는 이야기는 없다.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아름다운 사진에 감탄하면서도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이런 내밀한 사연이 생략된 것이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울었다는 글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공감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 팬데믹이 끝난 후 다시 행복한 여행길을 떠난 그의 소식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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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5 1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잊지 않음 - 타인의 역사, 나의 산문
박민정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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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만 놓고 보면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읽다 보니 속도가 나지 않았다. 첫 글에서 박서원 시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솔직히 아주 낯선 시인이다. 덕분에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몇 가지 정보도 얻고, 시인의 얼굴이 나온 책 표지도 볼 수 있었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얼굴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시집에 외모를 내세우면 눈길을 잘 주지 않는다. 어쩌면 집 안 책장을 뒤지면 박서원 시인의 책 한 권 정도 나올지 모르지만 자신할 수 없다. 나의 수집은 언제나 편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서원 시전집>에 자꾸 눈길이 갔다. 두툼한 분량을 생각하면 다 읽을 자신이 없는데 괜한 수집욕이 생긴다.


무심코 내뱉은 말 한 마디가 남성의 시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다. 자주 마눌님의 타박을 받는다. 이 산문집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완전히 고친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내 머릿속을 점령한 작가에 대한 인식을 다시 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박민정 작가는 문창과를 나온 후 등단했는데 글쓰기 외에 다른 경험이 없다고 말한다. 글쓰기 경험을 얻기 위해 한 행동에 대한 반성은 읽으면서 그래도 그 지점까지 가지 않았냐고 말해주고 싶다.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면 삶의 방향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동의한다. 이 솔직함이 좋다.


해외 입양에 대한 글은 놀랍다. 사촌 언니들이 해외 입양되어 떠난 후 다시 한국에 돌아와 보여준 감정의 편린들은 냉정하고, 현실적이고, 아련하다. 작가가 읽고 본 소설이나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적은 글들은 호기심을 불러오고, 그 깊이나 다른 해석에 고개를 끄덕인다. 개인의 기억과 사회의 역사를 혼동하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 분석들은 날카롭고 나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게 한다. 그녀가 여성이었기에 겪어야 했던 혐오와 여성 착취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우리 사회의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 일상 속에 그 뿌리가 얼마나 깊은 지 알게 된다. 쉽게 빠르게 읽기에는 담고 있는 이야기가 무겁다.


아직 박민정 작가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기에 작품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다. 출간된 목록을 찾아보니 <멜랑콜리 해피엔딩>에서 한 번 읽은 적 있는데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쓴 서평에도 박민정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말했듯이 나의 한국 소설가에 대한 시간은 너무 더디게 나아간다. 모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소설에서 작가의 동생과 인터뷰한 내용이 나오는데 생활인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작가나 모델이나 불러주지 않으면 생계가 힘들다. 그리고 예상 외의 인물이 쓴 글이 하나 나온다. 최은영 작가다. 역시 사 놓고 몇 년 동안 묵혀 두고 있지만 박민정 작가보다는 개인적으로 인지도가 더 높다. 이들의 인연을 풀어낸 소소한 글은 삶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 안에 이 두 작가 중 한 명의 소설은 읽고 싶은데 과연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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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물어도, 예스
메리 베스 킨 지음, 조은아 옮김 / 황금시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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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소설이다. 가볍게 페이지를 넘기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이야기가 점점 더 진행되면서 삶을 돌아보고 생각하게 한다. 선택과 기억의 퇴적들을 길게 늘어놓지 않고 간략하고 핵심만 풀어놓으면서 변하는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작은 실수, 혹은 잘못된 한 발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틈새로 어떻게 비극이 들어오는지, 이 비극을 마주 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 마주하는 순간조차도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한 순간들을 보여주면서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불완전하고 불안해하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마주 보기를 포기한 사람은 이야기 속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그조차 그 감정 속에서 살았고, 그가 기억하고 추억한 것을 보여주면서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프랜시스 글리슨과 브라이언 스탠호프는 신입 경찰로 처음 만났다. 둘을 파트너가 되어 움직였지만 곧 다른 곳으로 배치된다. 프랜시스는 브라이언에게 교외 마을 길럼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듣는다. 레나와 결혼한 후 길럼으로 이사한다. 레나는 낯선 마을에서 아이들을 낳고 키우지만 외로움을 느낀다. 이때 옆집에 브라이언 가족이 이사온다. 동료 경찰의 아내 앤과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앤이 거부한다. 앤은 유산 경험이 있다. 레나가 셋째 케이트를 낳기 얼마 전 앤이 피터를 낳았다. 작가는 여기서 말한다. 피터와 케이트는 그들의 시작부터 함께 했다고. 이 아이는 아주 친하게 지낸다. 같이 성장한다. 둘은 너무나도 밀착되어 있다. 앤은 이런 케이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프랜시스는 차곡차곡 자신의 경력을 쌓아가지만 브라이언은 그렇지 못하다. 브라이언은 앤과 불화가 있지만 정면에서 이 상황을 마주하기보다 회피하기만 한다. 앤은 약을 먹는데 먹지 않을 때 문제가 생긴다. 한 마트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 어린 피터에게 상처다. 여기에 케이트까지 만나지 못하게 하니 어린 피터는 둘만의 도피를 생각한다. 이 순수한 열정이라니. 어린 소년 소녀가 늦은 밤 처음으로 키스를 하고 집에 들어오는데 우연히 이 장면을 레나가 본다. 감정은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앤에게 말한다. 상황은 더 악화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피터가 프랜시스 집에 와 경찰에 연락해달라고 한다. 비극의 시작이다.


그날 밤 사건은 두 가족을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한다. 앤은 정신병원으로, 피터는 조시 삼촌의 집으로. 아빠와 함께 살던 피터는 브라이언이 경찰을 그만 두고 떠나면서 삼촌과 살게 된다. 엄마를 방문하지만 그녀는 원하지 않는다. 상처받은 소년은 공부도 잘하고, 달리기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은 좁다. 엄마를 보고 싶어하고, 케이트를 그리워한다. 인생의 전환점 중 하나에서 그는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다행이라면 삼촌 조지가 그의 학업을 계속 이어가게 했고, 아빠와 엄마가 자신들이 처한 문제를 몰랐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작가는 피터의 삶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면서 그가 받은 상처와 그리움을 차분하게 드러낸다.


케이트도 피터를 그리워하지만 그녀의 곁에는 가족이 있었다. 아빠는 재활을 열심히 했고, 그녀는 이런 사고의 원인이 궁금했다. 자라면서 그녀는 앤과 피터를 구분했다. 사건을 일으킨 것은 앤이지 피터가 아니라고. 이성은 이 사실을 알려주지만 감정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다른 가족들은 그렇다. 뉴욕에서 다시 피터를 만나 사귀고, 둘이 결혼한다. 피터 주변을 맴도는 앤을 발견한 것도 케이트다. 앤에게 주의를 주지만 결혼 후 도시 외곽에 살 때 다시 찾아온 앤을 발견하고 무시한다. 그녀에게 도움을 손길을 바랄 때조차 그녀의 마음 속에는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작가는 순간의 감정 표현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다. 쉽게 용서하거나 두려움을 떨쳐내지 않고 그 감정의 흔들림을 직시한다.


삶은 자주 충동을 불러온다. 이 작은 충동에 굴복하는 순간 삶은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 작은 행위들이 쌓여 거대한 퇴적물을 만든다. 이때 다시 되돌기에는 너무 힘들다. 우리는 흔히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알리고 주변의 도움을 받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문제 인식이 아주 늦을 경우가 너무 많다. 문제를 인식하지만 충동에 굴복하는 경우도 많다. 작가는 이런 삶의 모습을 긴 세월 동안 두 가족을 통해 잘 보여준다. 이 책의 제목이 나오는 장면을 보면서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묻지만 쉽게 ‘예스’라고 말하지 못한다. 노년의 레나와 프랜시스가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데 소설을 읽다 보면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담담하게 삶을 풀어내면서 긴 여운을 남긴다. 다시 한번 더 말한다. 멋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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