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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시스터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9
김혜정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평점 :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9권이다. 무심코 본 숫자인 89가 천천히 그 의미를 음미하자 대단하다는 생각으로 되돌아왔다. 그 목록들을 대충 훑어보니 읽은 책도 몇 권 보이고, 낯익은 제목이나 표지도 몇 권 보인다. 개인적으로 청소년문학을 즐겨 읽지는 않지만 가끔 읽다 보면 인식의 틀을 깨부수는 글들을 만난다. 나이가 들면서 과거의 기억과 경험에 의존하는 경향이 심해지는 나를 생각하면 이런 생각의 환기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 소설 속 두 자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내가 잊고 있던 가치 몇 가지를 다시 되살리는 기회가 되었다.
치앙마이와 베를린. 이나와 주나 자매가 엄마와 아빠를 따라 한 달 동안 머문 도시다. 이나는 이모의 출산으로 도와주려고 온 엄마와 치앙마이에 머문다. 주나는 전시회 목적으로 온 아빠와 베를린에 있다. 한때 이 자매는 아주 친했고, 서로 의지하면서 지냈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둘 사이는 서먹해지고 함께 있기를 거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작가는 여기에 하나의 설정을 더 넣는다. 이나의 휴대폰이 물에 빠져 먹통이 된 것이다. 휴대폰이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는 이나이기에 고치지도, 새로 사지도 않고 산다. 보통의 소녀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서먹한 두 자매는 이메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밖에 없다.
치앙마이, 땡모반, 타패 등은 나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치앙마이를 몇 번 여행한 적이 있다. 어쩌면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도 치앙마이란 지명인지도 모른다. 이모의 남편은 태국 남자이고, 함께 작은 호텔을 운영한다. 이모와 엄마의 나이 차이는 열 살이다. 적지 않은 나이 차이다. 이모가 우주를 낳은 후 엄마와 이모는 자주 싸운다. 이나가 보기에 이렇게 싸우고도 같이 머무는 두 어른이 신기한 것 같다. 이나는 자신의 일상을 작은 그림으로 그리는데 이것을 본 직원 중 한 명이 그녀를 미술교실로 데리고 간다. 똥소녀 채강을 만나고, 잊고 있던 그림에 대한 열정을 되살린다.
주나. 아빠를 따라 베를린에 간 소녀는 심심하고 평온한 일상을 보내다 놀라운 소식을 SNS를 통해 본다. 자신이 짝사랑했던 서준을 절친 라임이 사귄다는 소식이다. 자신이 얼마나 서준을 좋아하는 지 아는 라임이 그 사랑을 뺏아간 것이다. 톡을 차단하고, 다른 친구를 통해 온 톡도 답신하지 않는다. 이 감정을 언니 이나에게 메일을 보낸다. 낯선 이국에서 경험한 일들이 메신저가 아닌 이메일을 통해 한 번 정제된 채 전달된다. 서로 다른 시간대이고, 아직 감정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이 방식의 교류는 서로를 조금 떨어진 상황에서 마주 보게 한다. 이 메일의 길이는 뒤로 가면서 점점 길어진다. 감정의 깊이도 더 깊어진다.
방학이라고 하지만 십대 소녀들을 학원에 돌리지 않고 장기간 해외에 머물게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둘이 함께 가지 않고 각각의 부모를 따라 가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이 이유는 나중에 나온다. 어린 소녀들의 낯선 도시 생활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맞이한다. 이나는 그림을, 주나는 한국어와 새로운 사랑의 감정을. 주나가 어릴 때 한 수술은 주나에게 부모가 좀 더 관대하게 대하게 한다. 이나가 보기엔 차별이지만 아이의 안전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 덕분에 주나는 이나보다 끈기가 조금 더 부족하다. 주나는 이 상황을 적절하게 이용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좋아한다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잊고 있었다. 어릴 때 친구들과 논다고 정신이 없었다. 시간은 그 친구들을 한 명씩 떠나가게 만들었다. 그래도 남은 친구들이 많지만 그렇게 절실했던 친구가 어느 순간 잊게 되기도 한다. 십대의 나를 돌아보면 소설 속 소녀들처럼 작은 일에 가슴 아파하고, 분노하고, 눈물을 흘렸다. 나이가 든다고 이것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생활에 파묻혀 살다 보면 정말 좋아하는 것을 잠시 잊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소설 속에 녹여내고, 어른들의 관점을 조금씩 지워나간다. 어쩌면 이 소녀들의 생각이 작가의 경험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베를린보다 치앙마이에 더 많이 마음이 가는 것은 내가 그곳에서 한 여행들이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