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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
이서현 지음 / 마카롱 / 2021년 8월
평점 :
제8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대상 수상작이다. 대상 수상작을 모두 읽은 것은 아니지만 현재까지 읽은 수상작 중 개인적으로 최고다. 약간 촌스러운 듯한 제목이지만 이 한 단어가 우리 사회의 가족과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나게 한다. 사제 폭탄이 하나 ‘펑’하고 터지면서 벌어지는 상황들은 덮어두고, 묵혀두고, 숨겨둔 감정들이 밖으로 튀어나오게 하고, 사람들은 익명이나 관심이란 가면 뒤에서 온갖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퍼트린다. 이 소문과 거짓말들도 폭발의 부산물이다. 읽다 보면 너무나도 낯익은 장면들이다. 피해자 가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그들의 시선과 말들은 그 가족을 다시 한번 더 ‘펑’하고 터트린다.
평범한 5인 가족. 그냥 평범하다고 했지만 아빠는 대학교수, 엄마는 약사, 쌍둥이 큰딸은 보조 방송작가, 아들은 스타트업 공동대표이고, 늦둥이 막내는 고등학생으로 강남의 부유한 아파트에 산다. 남들이 보기엔 부러워 보이는 집이지만 그들의 삶속으로 들어가면 보통 사람들의 삶보다 결코 낫다고 말하기 힘든 삶들이 드러난다. 비교 당하는 것이 싫어 아등바등 살아온 쌍둥이 남매, 대학생 때 임신으로 학업을 마치지 못한 엄마와 그 아내에 대한 미안함에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산 아빠, 친구가 생일날 장난처럼 불러준 노래 ‘왜 태어났니’에 공항장애에 빠진 막내 등의 사연과 감정 등이 폭발한다. 여기에 사람들의 무책임한 발언과 음모론 등이 불을 끼얹는다.
배송된 택배 상사를 집안에 들여놓고 막내 승아는 옥상에 올라간다. 잠긴 자물쇠는 유튜브 영상을 따라해 푼다. 그 사이 방송작가 아라는 공모전에 작품을 힘겹게 제출한다. 33살, 독립을 못하고 부모님께 빌붙어 산다. 자신이 한심하다. 그러다 사제폭탄이 터진다. 다행히 큰 부상은 입지 않았지만 문과 집안이 엉망진창이다. 가까운 코엑스에서 인공지능 박람회가 열리면서 테러의 가능성이 주목받는다. 대테러부대와 인근 경찰서가 출동해 가능성을 조사한다. 사건이 생기면 최근에는 어디에나 등장하는 1인 미디어 유튜브도 등장한다. 여과되지 않은 정보들이 흘러 넘치고, 피해자 가족들은 다양한 언론(?)에 의해 재단된다. 폭탄 테러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의심하는 시선들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읽으면서 분노한다.
처음에는 방송작가가 의심을 받고, 그 다음은 막내 승아가, 다음은 쌍둥이 현이, 대학교수인 아빠도, 약사인 엄마도 폭탄테러범으로 의심받는다. 경찰의 조사가 가장 먼저 가족들에게 향하면서 사람들의 의심도 그들에게 향한다. 작가는 이 다섯 가족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그 사이사이에 폭발사건을 다룬 방송 프로그램 인터뷰와 경찰의 시선을 넣어 이야기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이 인터뷰는 보통 이 가족들의 지인들이 등장하는데 자신의 상황에 따라, 이해에 따라 내용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악의적인 말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은 스스로 피해자로 규정하고 있기에 더 과격하다. 어쩌면 그들도 경찰의 수사 정보 누출의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책을 읽다 보면 누가, 누구에게, 왜 사제 폭탄을 보냈는지 의문이 생긴다. 범인이 빨리 잡히면 이 가족들이 온갖 음모론에 희생당하는 일이 사라질 텐데 수사가 더디기만 하다. 테러의 가능성이 지워지면서 일선 경찰서가 수사를 하는데 단 두 명이 전담한다. 이 형사들이 이 가족들을 대하는 장면을 보면 결코 호의적으로 볼 수 없다. 실제 경찰이 이렇게 접근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의 말과 시선은 이 가족 중 한 명이 저지른 사건처럼 단정하는 모습이 살짝 보인다. 모든 가능성을 지워가는 것이 경찰의 일이라고 하지만 그 피해가 피해자 가족에게 그대로 전가되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 경찰과 언론 등이 보여주는 행동을 보면서 왜 이가족은 변호사를 선임해 수많은 가짜 뉴스와 음모론을 확대재생산하는 사람들을 고소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뭐 읽다 보면 이 콩가루 같은 집안 분위기에서 그런 대응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처음에는 폭탄 테러란 소개에 조금 가볍게 생각했다. 그 가족들의 비밀이 드러난다고 해도 폭발이 중심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숨에 읽으면서 범인 찾기를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작가는 부러울 것 없는 듯한 가족의 비밀을 터트리고,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가짜뉴스와 경찰의 수사 정보 누출 등을 유기적으로 엮어 이야기의 밀도를 높였다. 부분적으로 가독성이 좋지만 읽으면서 이 가족이 처한 상황과 읽으면서 느낀 감정들 때문에 잠깐 숨을 고를 필요가 있었다. 이야기는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을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