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의 비극 - 노리즈키 린타로 장편소설 노리즈키 린타로 탐정 시리즈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 / 포레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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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이다. 이전에 읽었는데 제대로 기억을 못했다. 한참 읽다가 누가 범인인지 떠올랐다. 아래 글은 이전에 쓴 서평을 조금 변형한 것이다. 이 소설은 <요리코를 위하여>란 작품의 자매편으로 평가되는 소설이다. 노리즈키 린타로란 이름을 알게 된 것도 사실 이 작품 때문이다. 작가 이름과 같은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 중 한 권인데 이번 소설에서는 출연 비중이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중요성은 뒤로 가면서 더 강해진다. 중간에 탐정이 알리바이 증명에 이용당하는 일까지 생긴다. 가끔 미스터리 소설을 읽다 보면 이런 설정이 나온다. 물론 이런 트릭은 탐정들에게 금방 깨진다.


이야기는 야마쿠라 시로의 1인칭으로 이어진다.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버지다. 그런데 가장과 아버지의 위치가 다르다. 실제 가정에서 살고 있는 아이는 자신의 친자식이 아니다. 그와 피가 이어진 아이는 다른 집에서 자란다. 도미시와 시게루. 납치되었다가 살해된 아이이자 그의 친아들이다. 소설은 납치된 아이가 시체로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 일이 어떻게 벌어졌고, 이 납치 사건 뒤에 숨겨진 비밀이 하나씩 밝혀질 때 사람들의 가면이 한 꺼풀씩 벗겨진다. 뒤틀리고 꼬인 관계처럼 사건도 그렇게 펼쳐진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위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비겁한 아버지 야마쿠라 시로가 있다. 이전에 읽을 때는 이 느낌을 읽으면서 잘 느끼지 못했다.


시로에게 전화가 한 통 온다. 아내 가즈미다. 아들이 납치되었다고 말한다. 회사를 나와 집으로 온다. 아들은 아파 오늘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럼 누구? 옆집 시게루다. 납치범이 착각한 것이다. 당연히 경찰 연락을 금지하고, 거액의 몸값을 요구한다. 몸값은 준비되었지만 경찰 신고는 이미 되었다. 시게루의 엄마 미치코는 미칠 지경이다. 아이의 아버지가 몸값을 가지고 오길 바란다. 수많은 노선 변경과 급박한 진행으로 시로는 피곤해진다. 그는 시게루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현재 가정이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미치코의 은근하면서 노골적인 협박과 시게루의 존재는 큰 부담이다. 그렇다고 돈을 전달하는 것을 실패할 수 없다. 다른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다. 몸값 전달에 실패하고 아이는 시체로 발견된다.


미치코가 시로의 의도적인 실수를 지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시게루를 제대로 인정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의 외도로 낳은 아이를 그는 인정하지 못한다. 마음 한 곳에서는 그 아들이 사라져 주길 바랐다. 마음 한 켠에 자신의 실수로 아들이 죽은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는데 부검 결과는 그의 실수와 관계없음을 알려준다. 이미 전달 당시 아이는 죽어 있었다. 이 사실과 상관없이 그는 왜 그의 아들을 납치하려고 했는지 의문이 생긴다. 제1용의자 미우라 야스시를 찾아간다. 그는 바로 자기 가정의 아들 다카시의 친아버지다. 죽은 처제의 남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납치범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닐 당시 알리바이가 있다. 그가 바로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다. 그리고 탐정이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 소설은 아들과 가족에 대해 묻는다. 흔히 하는 기른 자식과 낳은 자식의 문제다. 작가는 무게를 가정과 기른 자식에 더 무게를 둔다.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에 더 무게를 둔 것이다. 시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내 가즈미다. 그가 잠시 바람을 핀 것도 아내와의 관계가 나빴을 때다. 아니 아내의 우울증 때문에 힘들었을 때다. 이 가정에 위기를 가져온 것은 바로 미치코다. 이것은 그의 비겁한 변명이기도 하다. 그녀의 은근한 압박은 그를 흔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납치사건은 그의 속내를 하나씩 밝혀내는 계기가 된다. 동시에 이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의 숨겨진 속마음도. 그리고 양파껍질처럼 벗겨지는 사실들은 반전으로 이어진다. 또 그 속에 시로의 집착이 담겨 있다. 이 과정을 작가는 약간은 도식적인 구성으로 풀어낸다. 1인칭의 이야기가 풀어내는 속내는 어쩔 수 없는지 모르겠다. 마지막에 다카시와 그의 대화는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의 속내와 집착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한 번 읽었던 작품이라 그때 느끼지 못한 감정들이 조금씩 가슴 속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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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그녀의 마지막 여름 - 코네티컷 살인 사건의 비밀
루앤 라이스 지음, 이미정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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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파헤친 소설이다. ‘코네티컷 살인 사건의 비밀’이란 부제를 붙였는데 원제는 “LAST DAY”다. 여성의 시체를 발견한 것은 그녀의 언니인 케이트인데 며칠 연락이 되지 않아 경찰과 함께 집에 왔다가 동생이 죽은 채 있는 것을 발견한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언니 케이트가 가장 유력한 범인이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상황 등이 23년 전 있었던 사건과 비슷한 부분이 너무 많다. 그때 그 자매를 구했던 형사 코너가 이번에도 담당한다. 그가 생각한 첫 번째 용의자는 바로 베스의 남편 피터다. 그런데 피터는 베스가 죽었을 당시 친구들과 요트를 타고 바로 나갔다. 이 알리바이는 확실하다. 그렇다면 사망추정시간이 정확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겠지만 이 소설은 그런 종류의 소설이 아니다.


23년 전 두 자매의 아버지는 도박 빛 때문에 아내에 대해 청부살인을 요청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은 두 딸이 그 장소에 있었다는 것이다. 딸들은 엄마가 죽는 장면을 보게 된다. 이후 두 딸의 삶의 방식은 갈라진다. 언니 케이트는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 과학을 신봉하며 자신의 삶을 살고, 동생 베스는 22살에 남편 피터를 만나 딸 샘을 낳고 잘 살았다. 이런 베스의 가족에게 변화가 생긴 것은 피터에게 어린 연인이 생기면서부터다. 그녀는 두 자매가 뽑은 큐레이터 니콜라다. 이 둘이 어떻게 연인이 되었는지, 어떤 감정인지에 대해서는 피터의 독백 속에 간결하게 요약되어 나온다. 그리고 임신과 출산, 아내 베스가 알게 되는 상황 등이 엮이면서 가정은 불안정해진다. 이 불안정한 가정이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불안한 모습은 또 다른 재미다.


임신 6개월, 뛰어난 미모, 대외적으로 좋은 갤러리 원장, 자원봉사 활동 등 무엇 하나 빠질 것 없는 인물이 베스다. 누구나 처음 생각한 범인은 남편이지만 그의 알리바이는 견실하고, 자신 스스로 거짓말 검사를 받겠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 있다. 물론 그의 불륜은 다른 문제다. 하지만 이 소설의 재미난 구성 중 하나인 등장인물의 심리 묘사를 통해 범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물론 많은 추리소설에서 이 장면을 반전의 도구로 삼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베스와 관련된 친구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흘러나온다. 케이트가 그들만의 비밀 장소에서 한 장의 누드화를 발견하면서 새로운 가능성과 숨겨진 비밀의 문이 열린다.


한 여성의 죽음을 파헤치는 과정이 전형적인 추리소설의 공식을 따라 가지 않는다. 각자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그 목소리의 결합으로 한 여성의 삶이 조금씩 완성된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동생의 숨겨진 비밀, 깨어진 가정으로 고통받는 딸, 23년 전 사건으로 다시 강한 책임감을 느끼는 경찰 등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과학수사가 벌어지지만 그 수사와 증거에 집착하지 않고, 각각의 인물들의 사연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강렬하고 섬세한 심리묘사는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다. 각자의 사연이 변호처럼 이어지면서 드러나는 범인의 모습은 예상 외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언제나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너무나도 강렬하고 참혹했던 경험을 한 케이트가 다시 겪는 상실감은 조용히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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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아말 엘-모흐타르.맥스 글래드스턴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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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말 화려한 수상 이력을 가진 SF소설이다. 2020 휴고상, 로커스상, 네뷸러상 등을 모두 수상했다. 이 수상 이력을 보고 SF팬이 그냥 지나가기는 힘들다. 집필과정도 재밌다. 두 작가가 각각 소설 속 주인공 ‘레드’와 ‘블루’를 맡아 서신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이 부분은 사실 문장의 차이 등을 거의 느끼지 못했는데 번역을 한 사람이 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미묘한 차이를 내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첫 장의 문장을 읽고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이 소설은 흥미로운 설정을 몇 개 풀어놓았다. 시간 여행, 다중 우주, 시간을 넘나드는 편지, 두 적대적 집단 등이 서로 엮여 있다. 레드와 블루라고 부르는 두 존재도 서로 적의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블루가 레드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관계를 맺는다. 이들은 시간의 가닥을 타고 옮겨 다니면서 자신들에게 부여된 임무를 착실하게 수행한다. 얼마나 긴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지만 서로가 보낸 편지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달된다. 이 소설 속 편지는 종이만이 아니라 빛과 나무와 열매의 씨앗, 찻잔 속 찻잎 등 다양하다. 이들이 편지를 교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당장 처형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기에는 이 둘은 실력이 너무 뛰어난 스파이들이다.


소설 속 두 진영의 정체를 잘 모르겠다. 가든과 에이전시로 대변되는 두 진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소개글에 따르면 가든은 생태학적인 조직이고, 에이전시는 기계적인 조직이다. 가든 이야기를 듣다 보면 판타지 속 세계수가 떠오르고, 에이전시는 인공 배앙된 인조인간이 연상된다. 잘못 이해한 것일까? 솔직히 이 구분은 소설을 읽다 보면 무의미하게 다가온다. 그들이 각각 지닌 특성이 이야기 속에서 조금씩 흘러나오지만 이 특성보다 더 중요한 내용들이 편지 속에 풀려나오기 때문이다. 수많은 고전에서 인용한 문장들과 점점 자라라는 감정이 더 눈에 들어온다. 만나지 않았다고 해도 이 강력한 두 스파이는 서로를 인정하고 그리워하고 사랑하게 된다. 왜 SF 로맨스라고 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책 표지에 실타래가 나온다. 소설 속에서 두 진영은 시간의 가닥을 옮겨 다닌다. 시간의 가닥을 오르고 내리는 묘사가 나오는데 솔직히 이 장면을 이미지 하는데 힘들었다. 쉽게 생각하면 거미줄을 타고 오르내리는 장면인데 시간의 가닥이 그렇게 간단하진 않을 것이다. 혹시 생각한대로일까? 두 스파이가 편지를 주고받는 과정을 보면서 어떻게 이런 교환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수없이 많은 시간의 가닥과 엄청난 공간을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소설이지 않은가. 시간의 가닥과 장소는 이들의 절실한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하나의 배경일 뿐이다. 과거의 공간이나 미래의 공간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뛰어난 스파이로 임무에 충실했던 둘이 편지 교류하면서 더 알게 되는 것은 적이나 자기 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서로가 편지로 감정을 교류하고, 정보를 교환하면서 인식하지 못한 자신을 더 알게 된다. 그리고 상대를 더 알고 싶어 한다. 이 과정에 자기 편의 정보가 흘러나오는 경우도 있다. 감정은 이성을 이해할 수 없는 방향을 이끈다. 소설의 작은 재미 중 하나는 이 두 스파이가 활약하는 공간과 시간이다. 칭기즈칸의 기마군단이 나오고, 카이사르 암살 현장에서 움직이고, 19세기 런던의 조용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신화 속 공간인 아틀란티스 대륙은 또 어떤가. 이 역사 속 장면에서도 수없이 많은 가능성이 시간의 가닥에 매달려 다른 상황을 연출한다. 멋지다.


묵직하고 간결하게 표현된 장면들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집중을 요구한다.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은 낯선 세계와 연출로 머릿속 조립이 더디었다. 시간의 패권을 다툰다고 하지만 그 방대한 시간과 공간을 완벽하게 제압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이 부분에서 소설 마지막 장면은 강한 인상과 여운을 남긴다. 이 두 작가가 만들어낸 두 존재, 레드와 블루의 편지는 원작은 어떻는지 모르지만 한국판에서는 두 색깔로 표기되었다. 개인적으로 푸른 색 글씨가 더 읽기 힘들었다. 그리고 시공간을 넘나드는 편지를 보고 이전에 읽었던 소설 몇 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 소설은 그것과 다른 방식으로 편지가 교류한다. 언제 시간이 난다면 다시 읽으면서 내가 놓친 이야기들을 한 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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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들
태린 피셔 지음, 서나연 옮김 / 미래와사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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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스릴러란 점과 남편에게 다른 아내들이 있다는 소개글이 나를 유혹했다. 아내 모르게 다른 아내를 둔 이야기라면 여기저기에서 본 적이 있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이 조금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주인공의 이름은 써스데이다. 그녀의 남편, 정확하게 표현하면 혼인신고는 하지 않은 세스와 매주 목요일을 함께 한다. 그녀는 만날 때부터 세스에게 다른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세스는 유타주 출신이고 자신의 부모님도 일부다처제로 살고 있다고 말한다. 당연히 자신의 아내도 써스데이를 만나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현실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중동에서 법적으로 부인으로 셋까지 두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들은 한 집에서 산다. 그런데 이들은 서로에 대해 모르고, 다른 아내들이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다. 시선을 끌기 충분한 도입부다.


일주일에 하루 오는 남편을 위해 정성스럽게 저녁을 차리고 멋진 밤을 보낸다. 그러다 남편의 주머니에서 한 청구서를 발견한다. 해나란 여성의 것이다. 자신이 동의한 관계이지만 다른 아내들에 대한 관심과 질투가 조금씩 자란다. 이 청구서를 발견하기 전까지 다른 아내들의 이름을 몰랐다. 이제 이 이름을 단서로 세스의 다른 아내를 인터넷에서 검색한다. 젊고 예쁜 여성이 시애틀에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세스가 약속한 여행을 다른 아내의 임신 때문에 취소하면서 질투의 감정은 더 커진다. 그리고 화해의 마음으로 함께 시애틀에서 하룻밤을 보내자고 할 때 그 집을 찾아간다. 멋진 집과 아름답고 친절한 해나, 그런데 팔에 멍자국이 보인다. 해나는 아직 그녀의 정체를 모른다. 그들은 연락처를 주고받는다.


작가는 써스데이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시선이 한 곳에 있다 보니 사실보다는 그녀가 보고 느끼는 감정에 더 휘둘린다. 세스의 말을 통해 첫번째 아내를 온라인에서 발견하고, 가공의 남성을 내세워 데이트 앱으로 접근한다. 세스의 법적 아내가 바람을 피우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란 속내가 담겨 있다. 그리고 해나를 다시 만났을 때 그녀에게 상처가 더 있는 것을 발견한다. 세스가 폭력을 휘두르는 것일까? 아직 한 번도 그녀에게 폭력을 휘두른 적이 없는데. 해나와 저녁을 함께 하는 중 갑자기 그녀가 사라진다. 집을 찾아가도 해나가 없다. 무서운 마음에 든다. 세스를 만났을 때 충돌이 발생한다.


세스와의 충돌 후 그녀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정신병원에 입원했는데 세스가 자신의 폭행을 감추기 위해 억지로 입원시킨 것 같다. 여기서 한 번 이야기의 분위기가 바뀐다. 작가는 교묘하게 분위기를 바꿔 누가 사실을 말하는 지 의문 속으로 던져 놓는다. 그녀의 망상일까? 아니면 세스의 치밀한 작업의 결과일까? 병원을 퇴원한 후 그녀는 진실을 찾아 다닌다. 이 과정은 상당히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솔직하게 말해 이 소설의 알부분은 상당히 지루한 편이다. 그녀가 풀어내는 감정들이나 상황이 나의 공감을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했다. 더딘 책읽기가 될 수밖에 없었고, 긴 집중력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러다 마주한 마지막 전개와 구성은 뒤틀리고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튀었다.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조차도 의심의 눈길로 바라봐야 했다. 취향을 많이 타는 심리 스릴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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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 기억을 지우는 자
김다인 지음 / 스윙테일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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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페이지 등에서 주최한 추미스 소설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이란 점과 심리 스릴러란 소개가 시선을 끌었다. 개인적으로 카카오페이지 추미스 소설 공모전 소설들을 재밌게 읽었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인간의 내면 세계를 탐사하는 나비라는 설정을 호접몽에서 빌려와 엮은 부분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런데 소설이 중반 정도 지나면서 기대한 심리 스릴러보다 판타지 액션 성격이 더 강한 것을 보고 조금 의아했다. ‘뭐지?’ 심리 스릴러라고 했는데 나비가 되어 트라우마 속으로 들어가 부딪히는 상황과 장면은 판타지와 액션의 결합이다. 고전적인 무기인 칼과 도끼 등에 총까지 가지고 지옥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들어가 악마들을 무찌르는 그녀를 보고 내가 생각한 심리 스릴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었다.


시작부터 이 소설은 강렬한 액션을 보여준다. 총으로 악당들을 신나게 무찌른다. 이 장면을 블랙박스에 담았다. 그런데 이 상황이 현실이 아니다.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고치기 위해 내면세계 속에 들어간 호접자, 이른바 나비가 연출한 장면들이다. 이 소설의 재밌는 설정 중 하나는 이 나비들이 블랙박스를 통해 촬영이 가능하고, 이 영상이 법적 증거자료가 된다는 점이다. 나비는 소수만 가진 재능이고, 트라우마를 잘못 다루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직업이다. 당연히 고소득이 보장된다. 주인공 고유진은 나비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여동생과 살았는데 병으로 죽었다. 그녀는 나비가 되어 대상의 내면세계에 들어가 트라우마를 고치고, 증거자료를 촬영한다. 대부분 일은 경찰을 통해서 들어오는데 그 능력을 사적으로 이용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목사 박재영은 지옥에서 살아온 아이 최서연의 내면세계를 통해 지옥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한다. 만약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면 점점 기울고 있는 교세를 더욱 확장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형사를 통해 사적으로 들어온 일이고, 엄청난 소득이 보장된다. 유진에게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염마라고 칭하는 이상한 소녀를 만난 다음 이 일을 맡기로 한다. 유진 이전에 몇 명의 나비들이 서연의 내면세계에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유진은 스스로 지옥에서 왔다는 서연의 마음을 조금씩 연다. 니바가 내면세계로 들어갔을 때 그 대상자의 신뢰를 얻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약한 시간보다 떠 빠르게 최서연의 내면세계로 들어간다.


목사가 바란 지옥의 풍경처럼 서연의 내면세계는 어둡고 악마들로 가득하다. 현란한 액션과 전투 장면이 펼쳐지는데 읽으면서 영화로 잘 만들면 멋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심리 스릴러를 생각한 나에겐 조금 어리둥절한 장면들이다. 내면세계 속에서 고유진이 보여주는 액션은 판타지 속 최고 여전사의 모습 그대로다. 조금의 주저함도 없고, 물러남도 없이 악마들을 무찌른다. 만약 이 부분만 떼어내어 읽는다면 멋진 판타지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한 사람의 내면세계란 설정을 감안하면 진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유진이 깬 후에도 강렬하고 잔혹한 액션을 집어넣었다. 무협, 판타지. 액션을 좋아하는 애 취향에는 맞지만 앞의 의문이 반복되었다.


앞에 깔아 둔 어색한 장면들에 대한 답을 후반부에 내놓지만 현실과 연결시키면 생각을 한 발 더 내딛어야 한다. 현실이 아니기에 있을 수 있는 장면들이란 사실은 너무 쉽게 트라우마를 인격화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하나의 의문이 해소된다고 해도 다음 의문이 나오는 구성이다. 기억과 트라우마를 엮어 앞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해석처럼 풀어낸 마지막 장들은 소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종교인과 정치인의 결탁과 비리를 간결하게 녹여내면서 탐욕에 물든 인간들이 만들어낸 현실의 지옥 풍경 중 일부를 보여준다. 작가가 설정한 내면세계와 나비란 존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많은 변주가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이 멋진 세계를 다르게 활용한 작품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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