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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지 않는 도시 - 세상 모든 사랑은 실루엣이 없다
신경진 지음 / 마음서재 / 2021년 7월
평점 :
이 글을 쓰기 전 작가가 낸 책이 세계문학상 수상작 <슬롯>이 유일한 줄 알았다. 7년만의 신작이란 소개가 기억에 혼선을 불러온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시간 개념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이 책도 사 놓고 오랫동안 묵혀 두고 있다. 늘 그렇듯이 인터넷서점에서 작가로 검색하니 낯익은 표지가 보인다. 이 소설이 이 작가의 처음 읽는 소설이 아니다. 저질 기억력이 책 내용까지 기억하게 할 정도는 아니다. 내가 쓴 글을 보니 작은 기억이 떠오를 뿐이다. ‘희망이 있다면 사랑뿐이다’란 문장을 적어 놓은 것이 보이는데 이 소설에서도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오래 전 <결혼은 미친 짓이다>란 소설과 이것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있었다. 원작은 이만교, 영화감독은 유하였다.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은 기억이 난다. 사랑과 결혼의 분리, 사랑의 유효기간 등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이때만 해도 결혼은 해야 하는 것으로 당연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더 각박해지고 더 힘들어지면서 결혼을 포기하거나 결혼 자체에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결혼을 한다고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족도 늘어났다. 결혼 연령도 많이 늦어졌다. 나도 여기에 일조한 사람이긴 하지만. 작가는 이런 세대의 변화를 소설 속에 압축하고 녹여내었다.
일곱 명의 남녀가 나온다. 60년대의 영임과 하욱 부부에서 시작해 21세기 한나와 태영 커플까지 3대의 이야기다. 하지만 실제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 인물은 90년대의 정우와 2010년대 한나다. 실제 이 두 사람이 교차하면서 현재 자신들의 삶을 연애, 결혼, 섹스 등과 엮어 풀어낸다. 6~70년대 고도성장기에 조금만 이재에 밝았다면 부동산으로 쉽게 큰 돈을 벌 수 있는 시대였다. 물론 지금도 부동산으로 쉽게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때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욱은 명문대 출신 쌍둥이 형 상욱의 도움으로 언론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영임과 결혼 첫날 이 사실을 말하고 그녀의 그늘 밑으로 들어간다. 그녀의 그늘 밑이라고 해도 ㄱ 시절 약간의 권력을 가진 남자들처럼 행동하고 생각한다. 낯익은 과거의 한 모습이다.
87학번 정우는 소위 운동권이다. 과후배의 초청으로 압구정으로 넘어가 세 명의 여성들을 만난다. 그 중 하 명이 영임과 하욱 부부가 형의 딸을 입양해 키운 태윤이다. 처음 태윤은 영임의 사랑을 덤북 받았다. 이 사랑은 영임이 임신해 아들을 낳으면서 식모처럼 변했다. 공주에서 부엌데기로의 추락이다. 하지만 친구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 그녀의 미모에 혹하거나 관심이 있을 뿐이다. 정우가 그녀에게 빠진다. 그리고 차인다. 이 시기는 압구정 오렌지족의 시대다. 그들의 문화 일부가 나온다. 학생 운동으로 수배자였지만 졸업 후 그는 군대에 간다. 강원도 전방에서 근무하는 그를 면회 온 여성이 있다. 바로 그때 앉아 있던 세 명 중 한 명인 은희다. 복수의 감정을 담고 그를 만나러 왔다. 인연은 이상하게 엮이고 꼬인다.
한나는 미술계 큐레이터였다. 자신보다 어린 남자 준희와 동거한다. 그런데 이 준희란 남자가 상당한 마마보이다. 문어발 연애를 한다. 그녀가 한 말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석하고 실천한다. 고객의 성희롱에 가까운 손길에 주저할 때 다른 화가의 도움으로 벗어난다. 그녀가 이 갤러리에 취직하게 된 데는 한 유명 화가의 도움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과신한다. 사표를 던진 후 현실을 마주한다. 삶이 얼마나 힘든 지, 살기 위해 바둥거리는 사람들을 마주한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 자본으로 너무 쉽게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 한때 자신에게 손길을 벋친 사람도 있다. 미술품 중개로 상당한 돈을 챙긴 그녀는 세계를 여행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실험하고, 나아간다. 그리고 임신한다. 누구의 아이인지 모른다. 낳고 나서야 그 아버지가 떠오른다.
정우와 한나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그 이전 세대와 그 세대의 삶이 조각처럼 드러난다. 정우가 과외로 돈을 벌 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은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 시대는 오지 않았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기자가 되지만 적성에 맞지 않다. 자신의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보니 관계가 자신을 옭아맨다. 이 소설에서 정우와 한나가 갈리는 지점은 결혼 유무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그 삶을 함께 할 동반자에게 기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정우는 다른 386세대처럼 뻔뻔하게 자신의 욕심만 채우지 못하고 방황한다. 힘든 길을 선택했다. 한나는 선택의 순간 좋은 친구가 있었고, 생각과 행동이 맞는 파트너를 만났다. 작가가 보여주려고 한 결혼의 다른 모습은 한나 커플이다. 사랑의 완성이 결혼이라는 과대 포장된 제도 찬양에 일침을 가한다. 결혼에 대한 의식의 변화가 눈길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