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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히스토리 -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의 대응 방식
세르히 플로히 지음, 허승철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6월
평점 :
내가 기억하는 체르노빌은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더 놀라운 것은 체르노빌 방사능 누출 사건이 일어난 후에도 계속해서 원자력 발전소를 유지하고 운영했다는 점이다. 완전히 멈춘 것이 2000년이라고 한다. 이 책은 체르노빌의 건설부터 시작하여,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던 밤과 그 이후 일어난 대응과 수습 등을 다루고 있다.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시간 순으로 하나씩 따라가는데 읽다 보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 방사능 누출이 인류 최초의 사건도 아니라는 점도.
우리에게 다시 방사능 누출 문제가 다가온 것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무너진 때다. 얼마 전에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로 많은 문제가 있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체르노빌 이전에 미국에서 핵발전소 문제가 있었지만 큰 이슈가 되지 않았고, 가장 안전하고 저렴한 전력 생산설비로 각광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도 원자력발전소 홍보를 할 때면 언제나 안전하고 저렴하다는 것을 내세운다. 하지만 매몰비용이 얼마나 들지 모른다는 것과 향후 수만 년 동안 방사능 누출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은 의도적으로 누락하고 가린다. 저자가 체르노빌 사고 이후 유럽의 핵발전소들이 불안해한 것을 지적한 것도 이 누락되고 가려진 정보 때문이다.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전 정기점검을 위해 원자로 4호기 가동을 중지한다. 원자로의 결함으로 핵분열 반응이 증가하고 제어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원자로가 폭발한다. 원자로를 덮고 있던 200톤의 콘크리트 덮개가 날아간다. 방사능이 열린 하늘로 분출한다. 사상 처음 겪는 사건에 원전 직원들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사고가 일어난 후 방사능 누출 정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는데도 실패한다. 화재가 발생했다고 소방대원들이 달려와 불을 끄려고 한다. 이들은 고농도의 방사능에 노출되었다. 방사능 피폭이 많이 된 이들은 나중에 사망한다. 핵분열 반응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 사실은 소련은 국제사회에 숨긴다. 방사능은 바람을 타고 스웨덴까지 날아갔고, 그곳 직원들이 이상 상황을 알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체르노빌의 원전은 RMBK원자로 사용한다. 물이 아닌 흑연으로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원전 설립 비용이 적게 되는 장점이 있지만 안정성 문제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소련은 자신들의 기술을 서방에 알리기 위해 더 빠르고 싸게 원전을 건설한다. 빠른 속도와 싼 비용은 원전의 안전을 갉아먹는 요인이다. 한 겹 더 씌워야 할 콘크리트 벽을 세우지 않는다. 건설과정에도 수많은 문제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자료가 넘쳐난다. 원자로 설계의 문제도 있지만 건설, 운영, 관리 등에도 문제가 있었다. 사고 이후 이 문제를 처리할 때 각자의 계산에 의해 표면적 원인이 다르게 부각된다. 소련 입장에서는 설계 문제보다는 운영의 실수를 더 부각한다. 역사의 기록은 이 차이를 놓치지 않는다.
사고 이후 핵분열 반응이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방사능의 유출도 심해진다. 원자로가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잘못하면 방사능이 지하수로 흘러갈 수 있다. 이것을 막고, 원자로의 폭발도 멈춰야 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모래를 원자로 속에 붓는 것이다. 헬기를 동원해 붓는다. 쉬운 일이 아니다. 헬기 조종사들이 방사능에 노출된다. 만약 해당 원자로뿐만 아니라 옆의 원자로까지 폭발한다면 유럽 전체가 방사능에 완전히 오염될 수 있다. 무시무시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 원자로를 멈출 방법도,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방사능 누출이 줄어든다.
이 사고로 가장 많이 피해를 본 곳은 체르노빌이 있는 우크라이나와 원전과 가장 가까운 나라인 벨라루스다. 저자의 재미 있는 관점 중 하나는 구 소련의 해체의 시발점으로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말하는 부분이다. 원전 폭발 이후에도 제대로 된 정보를 시민들에게 전달하지 않은 관료들은 이 피해 규모를 더욱 키웠다. 이때 방사능 피폭 당한 피해자 등을 처리하기 위해 국가 예산의 10퍼센트까지 사용해야 했다는 부분은 이 사고가 얼마나 거대하고 지속적인지 알려준다.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해당 원자로를 덮는 것인데 두 번이나 진행했다. 유럽의 지원으로 두 번째 덮은 보호막에서 최근 핵분열 반응이 감지되었다는 소식은 공포 영화의 클리세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은 준다.
저자는 체르노빌 사고의 근원적 원인으로 “소련 정치 체제의 중대한 결함과 원자력 산업의 중대한 결함의 상호작용에 있었다.”고 말한다. 발전소 직원의 절차와 안전 규칙 위반도 말하는데 이 부분은 나의 이해 부족이 조금 있다. 사고 이후 체르노빌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우크라이나와 안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유럽이 폐쇄를 둘러싼 밀당을 한다. 여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곳은 역시 유럽의 원자력 발전소들이다. 원전 산업이 사라질 위협을 제거해야만 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유럽에서 원전은 퇴출 대상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더 공부해야 할 것 같다.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시간 순으로 사건의 진행과 의사 결정 과정을 멋지게 그려내었는데 머릿속에서 이 정보를 소화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