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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1 ㅣ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평점 :
전작 <고양이>를 읽고 이상하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다음 이야기가 나왔다. 전염병, 테러, 폭동 등으로 문명이 조금씩 사라진 프랑스 파리 배경에서 조금씩 공간이 확장된다. 확장된 공간만큼 다른 동물들이 등장해 인간과 인간의 잔혹한 문화에 대한 강한 비판이 이어지고, 뒤바뀐 생태계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그려낸다. 전작과 다른 점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대목은 하나의 이야기가 끝난 후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백과사전은 이 소설 속 상황이나 존재에 대한 거대한 주석이다.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책 제목을 여기서 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전편에서 끝난 다음 이야기가 펼쳐진다. 쥐들의 공격을 물리친 바스테트가 세느강 위에 있는 작은 시뉴섬에 자신들만의 낙원을 만든다. 이 섬에 고양이와 인간이 점점 많아지면서 시테섬으로 옮길 필요성이 생긴다. 이들은 배를 타고 다른 섬으로 옮긴다. 이 두 섬에 대한 정보가 없는 독자라면 아주 먼 거리이거나 아주 큰 섬을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 거리도 멀지 않고, 크기도 그렇게 큰 섬이 아니다. 이 시테섬에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데 화재 후 복원되었고, 고양이와 인간 생존자들은 이 섬의 물자와 강의 물고기로 생존한다. 쥐들이 섬 주변을 포위하고 있지만 아직은 안전하고 풍족하다. 쥐들이 섬으로 넘어오는 것을 경계하면 된다.
평온한 일상에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영원할 것 같은 섬 주변으로 쥐들의 공략이 시작된다. 상류 측에 강의 흐름을 막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위험한 상황이다. 영원히 안전할 것 같은 섬에 위기 상황이 발생했다. 여덟 마리의 고양이 특공대를 밖으로 내보내 다른 아군의 도움을 받고자 하지만 이들은 모두 살해당한다. 그리고 쥐들의 새로운 지배자 티무르가 등장한다. 이 쥐는 피타고라스처럼 제3의 눈을 가진 쥐다. 인간의 지식을 가진 쥐는 본능이 아닌 전략과 전술로 이 시테섬을 공략한다. 거대한 쥐 떼의 위협은 미래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새로운 아군을 모으기 위해 바스테트가 직접 떠나기로 한다. 방법은 열기구를 만들어 하늘로 날아가는 것이다.
이 열기구를 만드는 법을 인터넷으로 찾아 바스테트와 그녀 집사와 피타고라스가 타고 떠난다. 이 기구를 타고 가다 비둘기의 공격으로 추락한다. 실제 멀리까지 가지 못한다. 이 추락을 통해 바스테트 일행은 티무르의 존재를 강하게 인식한다. 주변에 고양이 무리들을 만나 동맹을 제안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요새가 안전하고, 쥐들과의 관계가 좋다고 하면서 오히려 이들을 제물로 바치려고 한다. 어렵게 탈출한 이들의 새로운 모험은 결국 바스테트마저 제3의 눈을 가지게 만들고, 인간이 동물들을 식용으로 개량하기 위해 저지른 잔혹한 행위들에 대한 적나라한 사실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런 곳에는 피타고라스처럼 실험체로 제3의 눈을 가진 동물이 있다. 이 소설의 중요한 설정 중 하나가 바로 인간의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동물들의 지식과 각성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처럼 가독성이 좋아 빠르게 읽힌다. 고양이 바스테트가 제3의 눈을 가진 후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자신의 본능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는다. 인간처럼 말하는 고양이의 솔직한 속내가 얄밉고 잔인하게 보이지만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살짝 비튼 것에 불과하다. 중반 이후 라 퐁텐의 우화가 나오는데 이 소설 자체도 거대한 한 편의 우화다. 그리고 작가의 다른 작품에 등장했던 인물이나 주제 등이 이 소설 속에 조금씩 스며들면서 자신이 구축한 세계를 더욱 굳건하게 만든다. 몇 권 읽지 않은 작품들이 나오는데 살짝 호기심을 자극한다. 언젠가 읽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늘 그렇듯이 기한은 알 수 없다.
작중에 바스테트가 자신의 이야기를 <성경>처럼 기록하고자 하는 욕심을 낸다. 그 이야기의 서막이 <내일은 고양이>인데 전편 <고양이>의 원제라고 한다. 소설 초반에 미국에서 쥐들에게 효과가 뛰어난 쥐약을 만들어 쥐들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쥐약을 실어 유럽으로 보냈다고 하는데 그 약이 파리까지 도착하지 않고 있다. 쥐들의 가공할 번식 속력과 티무진의 지식이 결합해 만들어낸 쥐떼는 더욱 무서워졌다. 인간이 가진 모든 지식 정보를 하나의 USB에 담았는데 이것을 목걸이 형태로 만들어 바스테트의 목에 걸고 다닌다. 과연 이 지식들이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 어떤 반전을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이 소설의 최종 평가는 마지막 한 편이 더 나와야 할 것 같다. 현재는 만족감보다 아쉬움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