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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 다섯 작가가 풀어낸 다섯 가지 짜장면 이야기
정명섭 외 지음 / 북오션 / 2021년 6월
평점 :
짜장면을 테마로 한 앤솔로지다. 몇 년 전 안전가옥에서 <냉면>에 대한 앤솔로지가 나왔던 것이 떠오른다. 최근에 이런 테마 소설집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테마 소설집을 좋아한다. 이런 소설집을 통해 새로운 작가들을 만나고, 읽어야 할 작가군들이 늘어난다. 가끔 이 작가들의 소설을 읽으면서 장편이나 연작소설을 기대하기도 한다. 다섯 작가 중 세 명은 이미 장편에서 만난 작가이고, 한 명은 어딘가에서 본 듯한 작가이고, 다른 한 명은 조금 낯설다. 본 듯한 작가는 조동신이고, 낯선 작가는 은상이다.
<공화춘 살인사건>의 작가는 정명섭이다. 정말 다작의 작가다. 내가 읽은 기존 작가들이 쓴 테마소설집에서 그의 작품을 거의 매번 만난다. 장편 소설도 꾸준히 나오는 것 같은데 대단하다. 이 대단함과 달리 작품의 질은 굴곡이 심한 편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소설들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는 않지만 부드러운 문장과 가독성은 아주 뛰어나 순간적으로 끝까지 읽게 된다. 이 단편도 그렇다. 1920년대 짜장면의 시초라고 홍보하는 공화춘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다룬다. 주인공은 조선인 변호사 홍주원인데 그렇게 민족 감정이 강하거나 독립의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모던 보이다. 그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홈즈의 가설을 따르는데 범인을 추론하고, 그 추론의 결과가 작은 역사적 사실을 일깨운다.
은상의 <원투>는 마라도 출신인 열일곱 살 강다래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녀는 모델이 되고 싶은데 키가 160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다이어트 목적으로 권투를 시작했는데 재능을 보여준다. 이런 그녀에게 허약한 최솔과 스파링을 한다. 오디션 때문에 얼굴은 때리지 말라고 했는데 때린다. 화가 나 스트레이트 한 방 코에 날린다. 이렇게 둘은 엮인다. 그리고 마라도 짜장면 이야기가 펼쳐지고, 과거사가 나온다. 한반도 최남단에서 맛없는 짜장면이 가장 맛있는 줄 알고 자란 다래의 이야기가 말이다. 여기에 최솔을 찾아오는 아이들이 있고, 그를 돕게 되면서 상황은 더 꼬인다. 하지만 짜장면은, 마라도의 추억은 예상하지 못한 결말로 이끈다. 작위적인 느낌이 있지만 뭐 어떤가! 인생 어딘가에 이런 인연도 있는 것이지.
<철륭관 살인사건>의 조동신은 이름이 낯익어 찾아보니 <아귀도>의 작가다. 그런데 이번에 쓴 단편은 청춘미스터리 작품인데 개인적으로 연작소설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춘장을 직접 담가 짜장을 만드는 철륭관에서 도장이 깨어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을 보게 되고 해결하게 된 것은 이 중국집의 딸 혜진의 미모에 빠진 주인공 때문이다. 수수께끼 풀이처럼 이야기를 풀어내고, 짜장에 대한 일반 상식을 글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조금은 낯선 철륭에 대한 용어도 같이 다루면서 무겁지 않고 유쾌한 미스터리물로 만들었다. 이 둘의 미래가 어떻게 풀릴지 궁금하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강지영의 단편이다. 소아당뇨환자인 유교수는 짜장면을 먹지 못한다. 그녀에겐 한 가지 트라우마가 있는데 삼 년 전 한 제자에게 억지로 술을 권했고, 그녀가 실종된 일이다. 이 경험이 그녀로 하여금 전국의 영안실을 돌게 만들었고, 한 영안실에서 죽은 자를 볼 수 있게 만드는 물건을 얻게 된다. 이 물건을 소지한 채 귀신을 실어나르는 택시기사로 일한다. 이유는 죽은 제자를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조금은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사연을 이야기를 풀어가다 어느 순간 이야기의 분위기가 바뀐다. 민속학이 등장하고, 저주와 주술과 무속 신앙이 엮이면서 서늘한 느낌으로 이어진다. 공포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이 단편도 역시 과거의 인연을 다시 연결하는데 뭐 어떤가!
장아미의 <환상의 날>은 아버지의 7번째 기일에 일어난 작지만 환상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눈치 없는 남자 친구의 프로포즈를 차버리고, 연하의 미국인과 결혼한 엄마의 사연도 흘려버린다.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고, 우연히 산 책의 ‘작가와의 대화’ 행사 서점에 들어간다. 어떻게 보면 일상의 작은 이탈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행사 뒤풀이를 위해 그곳을 떠나면서 경험하게 되는 환상은 그녀의 작은 바람을 담고 있다. 무심코 걷던 낯익은 길도 낯선 시각으로 보게 되면 예상하지 못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단편은 그것을 극대화하고 판타지를 가미했다. 오래 전 아버지와 먹은 짜장면과 군만두의 기억을 보면서 잠시 추억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