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 다섯 작가가 풀어낸 다섯 가지 짜장면 이야기
정명섭 외 지음 / 북오션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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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을 테마로 한 앤솔로지다. 몇 년 전 안전가옥에서 <냉면>에 대한 앤솔로지가 나왔던 것이 떠오른다. 최근에 이런 테마 소설집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테마 소설집을 좋아한다. 이런 소설집을 통해 새로운 작가들을 만나고, 읽어야 할 작가군들이 늘어난다. 가끔 이 작가들의 소설을 읽으면서 장편이나 연작소설을 기대하기도 한다. 다섯 작가 중 세 명은 이미 장편에서 만난 작가이고, 한 명은 어딘가에서 본 듯한 작가이고, 다른 한 명은 조금 낯설다. 본 듯한 작가는 조동신이고, 낯선 작가는 은상이다.


<공화춘 살인사건>의 작가는 정명섭이다. 정말 다작의 작가다. 내가 읽은 기존 작가들이 쓴 테마소설집에서 그의 작품을 거의 매번 만난다. 장편 소설도 꾸준히 나오는 것 같은데 대단하다. 이 대단함과 달리 작품의 질은 굴곡이 심한 편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소설들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는 않지만 부드러운 문장과 가독성은 아주 뛰어나 순간적으로 끝까지 읽게 된다. 이 단편도 그렇다. 1920년대 짜장면의 시초라고 홍보하는 공화춘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다룬다. 주인공은 조선인 변호사 홍주원인데 그렇게 민족 감정이 강하거나 독립의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모던 보이다. 그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홈즈의 가설을 따르는데 범인을 추론하고, 그 추론의 결과가 작은 역사적 사실을 일깨운다.


은상의 <원투>는 마라도 출신인 열일곱 살 강다래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녀는 모델이 되고 싶은데 키가 160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다이어트 목적으로 권투를 시작했는데 재능을 보여준다. 이런 그녀에게 허약한 최솔과 스파링을 한다. 오디션 때문에 얼굴은 때리지 말라고 했는데 때린다. 화가 나 스트레이트 한 방 코에 날린다. 이렇게 둘은 엮인다. 그리고 마라도 짜장면 이야기가 펼쳐지고, 과거사가 나온다. 한반도 최남단에서 맛없는 짜장면이 가장 맛있는 줄 알고 자란 다래의 이야기가 말이다. 여기에 최솔을 찾아오는 아이들이 있고, 그를 돕게 되면서 상황은 더 꼬인다. 하지만 짜장면은, 마라도의 추억은 예상하지 못한 결말로 이끈다. 작위적인 느낌이 있지만 뭐 어떤가! 인생 어딘가에 이런 인연도 있는 것이지.


<철륭관 살인사건>의 조동신은 이름이 낯익어 찾아보니 <아귀도>의 작가다. 그런데 이번에 쓴 단편은 청춘미스터리 작품인데 개인적으로 연작소설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춘장을 직접 담가 짜장을 만드는 철륭관에서 도장이 깨어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을 보게 되고 해결하게 된 것은 이 중국집의 딸 혜진의 미모에 빠진 주인공 때문이다. 수수께끼 풀이처럼 이야기를 풀어내고, 짜장에 대한 일반 상식을 글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조금은 낯선 철륭에 대한 용어도 같이 다루면서 무겁지 않고 유쾌한 미스터리물로 만들었다. 이 둘의 미래가 어떻게 풀릴지 궁금하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강지영의 단편이다. 소아당뇨환자인 유교수는 짜장면을 먹지 못한다. 그녀에겐 한 가지 트라우마가 있는데 삼 년 전 한 제자에게 억지로 술을 권했고, 그녀가 실종된 일이다. 이 경험이 그녀로 하여금 전국의 영안실을 돌게 만들었고, 한 영안실에서 죽은 자를 볼 수 있게 만드는 물건을 얻게 된다. 이 물건을 소지한 채 귀신을 실어나르는 택시기사로 일한다. 이유는 죽은 제자를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조금은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사연을 이야기를 풀어가다 어느 순간 이야기의 분위기가 바뀐다. 민속학이 등장하고, 저주와 주술과 무속 신앙이 엮이면서 서늘한 느낌으로 이어진다. 공포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이 단편도 역시 과거의 인연을 다시 연결하는데 뭐 어떤가!


장아미의 <환상의 날>은 아버지의 7번째 기일에 일어난 작지만 환상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눈치 없는 남자 친구의 프로포즈를 차버리고, 연하의 미국인과 결혼한 엄마의 사연도 흘려버린다.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고, 우연히 산 책의 ‘작가와의 대화’ 행사 서점에 들어간다. 어떻게 보면 일상의 작은 이탈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행사 뒤풀이를 위해 그곳을 떠나면서 경험하게 되는 환상은 그녀의 작은 바람을 담고 있다. 무심코 걷던 낯익은 길도 낯선 시각으로 보게 되면 예상하지 못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단편은 그것을 극대화하고 판타지를 가미했다. 오래 전 아버지와 먹은 짜장면과 군만두의 기억을 보면서 잠시 추억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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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맨드 - 제1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채기성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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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제17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상을 수상한 작품들을 읽을 때마다 말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이 문학상 수상작들을 좋아한다. 가끔 취향에 맞지 않는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 좋았다. 이 작품도 결론만 먼저 말하면 나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다. 좋았던 부분도 있지만 소설 속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이 기존에 알고 있던 사건과 겹치고, SF적 상상력이 나의 예상과 달리 큰 발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여러 편의 SF 소설이나 판타지의 설정들이 떠올랐는데 그 소설들보다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가독성이 좋고, 섬세한 심리 묘사는 순간적으로 아주 마음에 와 닿았다.


인텔리전스 유니언(IU)은 로봇 산업을 주도한다. 이곳에서 만든 어시스턴트 로봇들은 구매자의 삶에 큰 도움이 된다. 이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이 로봇을 구매해 자신의 삶이 좋아졌다. 한 명은 새로운 서비스 분야의 진출 때문에 계속해서 밀려난 업종에 종사하는 영기다. 영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대학에서 강의를 했는데 로봇들의 뛰어나고 정확하고 빠른 문장 교정 때문에 대학에서 잘렸고, 배달업체에서 일하는 지금은 IU의 무인배달 로봇 때문에 또 직장을 잃는다. 거대한 시대의 흐름 탓으로 돌리면 간단하지만 관련된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다. 이들이 집회에 모인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곳에서 반IU 단체인 휴먼 라이츠의 도정우를 만난다.


하정은 동업자와의 다툼으로 인간관계가 힘들어진다. 그녀에게 엘비는 자신의 행동 패턴 등을 파악해 알아서 일하는 멋진 조수다. 그런데 이 엘비가 반려묘 람시를 굶어 죽였다. 왜 지시한대로 밥을 주지 않았을까? 우서운 것은 IU가 엘비에 대한 무오류를 지적하면서 인간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경찰에 신고해도 로봇을 구속할 방법이 없다. 집에 있는 로봇 청소기가 청소를 하지 않았다고 경찰에 신고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IU와 논쟁을 벌이고,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다. 그녀의 사건에 도정우가 관심을 가지고 엘비를 자신이 데리고 있겠다고 말하는데 어느 날 엘비가 사라졌다. 원칙적으로 엘리는 IU의 중앙통제소에 동기화가 되어 있어야 한다. IU조차 어디 있는지 모른다.


김승수는 화가다. 아티스트 계열 로봇 그리드를 조수로 쓴다. 그의 밑에는 조수 화가가 네 명 있었는데 그리드의 발전이 이들을 자르게 한다. 그 중 한 명이 김승수의 그림은 그리드가 그린 것이라고 말하면서 문제제기를 하고, 검찰은 화가를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한다. 이 사건의 모티브를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너무 빤하게 알 수 있다. 바로 조영남 사건이다. 소설은 현대 예술계의 창작의 원천에 대한 것으로 넘어간다. 이것과 별개로 화가는 그리드가 필요하다. 노쇠한 육신을 대신해 자신이 바라는 대로 그림을 정확하게 구현하는 로봇이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어떻게 보면 자신의 영감에 더해 더 뛰어난 작품을 만드는지도 모른다. 검찰의 기소로 그리드가 사라지고, 새로운 로봇이 오는데 기존의 그리드와 다른 행동을 보여준다.


IU에서 판매한 로봇들은 각 고객의 정보를 모아서 보낸다. 이들의 불법적인 행동도 같이 전송된다. 이런 정보들이 모여 나중에 IU에 대한 클레임을 막는 방패로 사용된다. 이런 불법적인 정보 수집보다 작가의 시선이 간 곳은 로봇들이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장면과 인간을 없애려는 IU 의장의 의지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인간이 인간이게 하는 것을 추억과 감정으로 규정하고 단순히 데이터의 전송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억의 대상이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고 말하지만 세상은 이미 자신의 기억과 추억 등을 온라인으로 옮겨 놓고 그 감정도 담아 놓고 있다. 작가 또한 인간이기에 인간의 감성을 내려놓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니 이 충돌을 만든다. 공존보다는 한쪽의 소멸로.


읽다 보면 어떤 대목에서는 <매트릭스>가 떠오른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연상하면서 글을 썼다고 하지만 IU가 세상을 점령한다면 이런 통제가 불필요할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사람들의 단순한 노동을 대체하고, 이익에 기반한 일들을 좀 더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현실에서 어떻게 보면 이 소설은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런 장르에 낯선 독자라면 작가가 풀어내는 미래의 모습이 신선하고 재밌을 테지만 이런 소설을 많이 읽었던 나에겐 아쉬운 대목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만약 IU가 세상을 점령한다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하는 상상을 먼저 한다. <터미네이터> 속 반군이 생길까? 아니면 다른 전개일까? 묵시론적인 상상력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런 영화 등이 더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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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한 숫자들 - 통계는 어떻게 부자의 편이 되는가
알렉스 코밤 지음, 고현석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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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통계를 잘 믿지 않는다. 완전히 신뢰하기에는 통계 작성에 ‘어떤 의도’가 너무 많이 개입한 것을 보았다. 의도적인 누락이나 오류를 집어넣어 자신들이 원하는 숫자로 바꾸는 것도 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계는 무시할 수 없다. 현대의 과학이나 사회의 발전 등에 통계가 기여한 바가 너무 크고, 제대로 된 자료들은 현실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에 끌린 이유도 이런 통계의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부는 숨기고, 가난은 감춰라.”란 문장은 왜곡된 통계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이 책은 이런 편향적인 데이터 수집의 문제와 그 대안을 이야기한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재미있게도, 자극적으로도 서술하지 않았다. 현실과 문제를 담담하게 보여주고, 이 개선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말한다. 빠른 개선이란 것도 몇 년의 시간이 걸려야 시작할 수 있다는 표현을 보고 아주 현실적으로 문제를 본다고 느꼈다. 집계 불이행. 이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저자는 지속적으로 풀어낸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수많은 용어들, GDP, 지니 계수, 인구조사, 출산율 등이 정확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누락된 숫자들은 제 시간에 통계에 반영되지 않거나 왜곡된 의미를 지닌다. 대표적으로 GDP의 경우 최상위와 최하위 문제가 어떤 식으로 변했는지 알려주지 않고 있다. 최근 부의 불균형을 말할 때 1 대 99가 아닌 10 대 90 혹은 20 대 80을 말하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언피플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가려진 최빈층을, 언머니는 감춰진 부자들의 돈을 가리킨다. 언피플을 읽으면서 우리나라를 떠올렸다. 우리에겐 해당사항이 없다고 처음에는 자신했지만 세부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면서 이 자신감은 조금씩 사라졌다. 제대로 집계되지 않은 부분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와 닿는 문장은 현실적으로 집계하기 힘들다는 기술적 핑계다. 일하면서 나 자신도 많이 내뱉은 말이다.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제대로 국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나라를 대상으로 한 글이란 것을 알 수 있다. 2부의 언머니와는 완전히 반대에 있다.


언머니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풀어내는 것은 소득 이전과 조세회피다. 우리가 흔히 조세피난처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독재자나 마피아의 검은 돈을 떠올리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다국적기업의 과세되지 않는 자금이라고 말한다. 국내외 법적 허용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조세회피는 법의 테두리를 공고화시키면서 계속 유지되고 있다. 자신들의 숨겨진 부가 밖으로 드러나고, 과세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부자들은 강력하게 저항하면서 이 자금의 흐름을 숨기고 정당하다고 말한다. 이런 숫자들이 한 국가의 GDP까지 왜곡시킨다는 점은 눈여겨볼 필요 있다. 언론에 자주 나오는 애플을 떠올리면 쉽다. 불평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지니 계수 대신 팔마 비율을 대안으로 제시한 부분은 개인적으로 공부가 더 필요하다.


마지막에는 집계 이행을 촉구한다. 누락되고 감춰진 수자들을 포함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소득 이전을 끝내는 방법으로 합산 과세를 주장하는데 각 나라의 협동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집계 불이행에 정치적 동기가 포함되어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도 정치적인 행동이란 지적은 가슴에 새겨둘 필요가 있다. “순위, 지수를 비롯한 기타 데이터 도구들이 환영을 받는 것은 현재 권력의 시각에 도전할 때가 아니라 부합할 때다.”란 지적은 가슴 아픈 현실이다. 왜 집계 불이행이 정치적인 문제인지 알려준다. 쉽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개선하고 바꿔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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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에서 잠시 멈춤
구희상 지음 / 이담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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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은 내가 처음 해외여행으로 간 곳이다. 방콕은 내가 처음 배낭여행으로 갔다 온 곳이다. 첫 배낭여행 이후 몇 년 동안 매년 태국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보통 치앙마이나 파타야 등을 다녀왔는데 태국에서 그 출발지점은 언제나 방콕이었다. 작은 배낭 하나를 매고, 겨우 며칠 머무는 방콕이었지만 여행의 방법이나 시선을 조금만 바꾸어도 달라진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그리고 8년 전 마지막으로 방콕을 다녀온 후 그 지독한 매연과 불편한 택시 등에 질려 가고 싶은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누군가 짧은 여행으로 어딘가를 간다고 할 때면 방콕을 추천한다. 그리고 몇 년이 시간이 흐른 후 그곳에 대한 그리움이 생긴다. 몇 번을 다녀왔지만 아직 가보지 못하고, 맛보지 못한 음식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방콕에서 한 달 살기. 해보고 싶은 여행이다. 한때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가 유행한 적이 있다. 코로나 19 이전까지만 해도 나의 눈길이 간 부분이다.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은 언제나 나를 유혹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내가 방콕에 약간의 거부감을 느꼈다고 해도 그것은 잠깐의 일이다. 이후 방콕이나 태국 다른 지역은 늘 관심지역이다.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해야 하는 지금은 휴양지 위주로 바뀌었지만 방콕의 저렴하고 훌륭한 호텔 등은 쾌적한 여행에도 상당히 도움을 준다. 내가 가지 않는 동안 그랩으로 이동하는 방법이 보편화되어 택시의 바가지 요금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말이다. 이런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면서 이 책을 읽었다. 내가 잘 모르는 방콕과 즐겁게 경험한 방콕의 여기저기를 다시 보고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이 예상은 책을 읽으면서 점점 사라졌다.


단순한 여행에세이가 아니다. 인문 여행서 두 번째 티켓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예상한 방콕의 모습은 많이 발견하지 못했지만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정보들을 새롭게 인식하고 많이 보고 배웠다. 세 파트로 나누어 풀어내는 방콕 이야기는 내가 갔다 온 시간의 흐름만큼 차이가 많이 난다. 물론 변함없는 부분도 많다. 여행 에세이에 인문을 붙였는데 읽다 보면 이 부분이 더 눈에 많이 들어온다. 방콕에 대한 인물 사회 정보에 더 집중하고 있어 여행의 추억이나 정보를 얻는 대목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있다. 물론 여행을 가기 전 그 나라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얻기를 바라는 독자라면 아주 좋은 기초서적이 될 수는 있다.


그가 꼽은 방콕의 여행지 중 하나가 국립박물관이다. 처음 배낭여행을 갔을 때 이곳을 방문했었다. 낯선 문화재는 신기했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왕궁과 사원들을 해상보트를 타고 이동하면서 관광했던 것이 기억난다. 학교 선생하는 친구와 가서 그런지 왠지 수학여행의 느낌이 있었다. 충실한 일정이었다고 자평하는데 실제 방콕 사람들의 삶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본 것은 그 뒤에 다시 방문했을 때다. 카오산 로드 근처에 머물면서 발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강의 지선에서 운행하는 보트를 타고 시내에 나가기도 했고, 가장 저렴한 버스를 타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이런 나의 행동은 하나의 간단한 체험이었지 삶이 아니었다. 필요하면 바로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낡고 작고 화면도 흐린 테레비로 한국 드라마를 보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 당시에도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크기였다.


개인적으로 파트 1 부분이 가장 재밌었다. 자신의 경험이 많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파트 2와 3으로 넘어가면 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보고서처럼 다가온다. 태국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알면 좋지만 몰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인문’에 초점을 맞춘 부분이다. 개인의 경험이 조금 묻어 나오지만 연구원의 기록처럼 다가와 재미는 떨어진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지식들이 반복되는 부분도 많다. 몇 년 사이에 바뀐 문화도 업데이트가 되어 다시 간다면 참고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태국 민주화와 왕에 대한 부분은 내가 갔다 온 이후 많이 바뀌었고, 잠시 그 당시의 기억을 더듬게 한다. 연구자의 시선보다 여행자의 시선이 더 많이 담겨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의 말처럼 방콕의 매연 냄새가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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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일기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지나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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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싼마오의 에세이를 읽었다. 인터넷 서점 기록을 뒤져보니 2009년에 <사하라 이야기> 2권인 <흐느끼는 낙타>를 읽었었다. 2권을 재밌게 읽어 1권은 사 놓았는데 역시 쌓아두기만 했다. 어딘가에 묵혀 두고 있는 모양인데 현재 찾을 수 없다. 전작도 재밌게 읽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재미있다. 사하라를 떠난 후 카나리아 섬의 작고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에 터를 잡고 사는 이야기다. 열두 편의 에세이는 이 알콩달콩한 부부의 삶과 이웃 이야기를 맛깔나고, 현실적으로 풀어낸다. 읽으면서 1970년대를 감안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읽는데 이질감이 전혀 없다.


이 부부가 카나리아 섬으로 오게 된 이유는 사막의 내전 때문이다.  섬에 집을 구한 후에도 호세는 사하라에서 한동안 일을 한다. 위험의 정도가 심해지자 그 일을 그만 두는데 그들의 친구는 아내의 닦달에 계속 그 위험한 일을 한다. <대부여 돌아와요>에 실린 이야기다. 친구가 자신의 모습을 잃고 누군가의 남편으로 변했다고 지적한 부분을 읽고 안타까웠다. 이 이야기를 한국의 수많은 엄마에게 적용한다면 누구 엄마로 전락한 여성들이 떠오른다. 싼마오는 부부가 누군가에 종속된 관계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그녀도 시어머니와 시누이 부부가 왔을 때 보여준 모습은 문화적 차이와 함께 시대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호세와 그 누나 등이 보여준 행동은 놀라울 정도로 이기적이다.


<플라스틱 아이들>을 읽으면서 현재 아이들이 유튜브와 게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과 겹쳐졌다. 나라고 뭐 특별히 달랐겠는가 말이다. <수호천사> 이야기는 자신이 나이가 들고, 부모가 되는 순간 쉽게 깨달을 수 있는 에피소드다. 호세의 비중이 가장 많은 이야기는 아마도 <가출한 아내에게>일 것이다. 대만으로 온 싼마오에게 보낸 편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호세의 절실한 마음과 예상 외의 전략이 읽는 재미를 북돋아준다. 아내의 답장이 없어 괴로워하다 낸 작은 잔략은 아내의 화를 북톧고, 온갖 욕설을 내뱉게 한다. 덕분에 집ㅇ로 돌아오는 시간이 상당히 많이 단축되었다. 그 전략은 이 에세이를 천천히 읽으면서 반전 같은 재미를 누리면서 즐기길 바란다.


이 책에서 가장 먹먹한 이야기는 <작은 거인>과 <어느 낯선 사람의 죽음>일 것이다. <작은 거인>의 마지막 장면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열두 살 아이가 엄마와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쪼개 일하고, 가정폭력을 견뎌내는 모습은 대단하다는 감탄을 넘어 가슴을 아리게 한다.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느 낯선 사람의 죽음>은 카나리아 제도에 온 수많은 북유럽 남성 중 한 명의 죽음을 다룬다. 자식에게 버림받고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노인의 마지막 모습은 씁쓸하다. 하지만 이 모습보다 이 노인의 최후를 대하는 이웃들의 너무나도 개인적인 모습이 더 인상적이다. 싼마오와 호세가 이 노인을 병원에 데리고 가고, 장례식까지 처리한다. 영사관마저도 노인의 병원 문제는 관여하지 않았다.


<상사병>은 호세의 입을 통해 싼마오가 꿈꾸는 미래의 한자락을 풀어낸다. 뭐 거기에 살짝 호세의 바람도 묻어있지만 구체적이고 꼼꼼한 계획은 ‘뭘 그렇게까지?’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카나리아 제도 유람기>는 두 부부가 카나리아 제도를 돌면서 각 섬에서 보고 느낀 점을 기록한 것이다. 섬의 관광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고 지적하는 대목과 관광지로 발전한 섬으로 이탈하는 다른 섬주민들 이야기가 각 섬의 특징들과 함께 어우러져 잘 요약되어 나온다. <털보와 나>는 간략한 그들의 결혼 에피소드다. 이 이야기에서 여성이 독립된 존재란 사실을 분명하게 말한다. 아마 이런 사실들이 그녀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한 에세이 속에 다양한 형식으로 재밌게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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