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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턴 록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4월
평점 :
나의 취향이나 독서법과 잘 맞지 않은 작가들이 상당히 있다. 작가의 유명세나 작품의 호평에 끌려 이 소설들을 읽었을 때다. 물론 반대의 경우가 더 많지만 이런 작가나 작품을 만날 때면 한두 번 더 시도하고 긴 세월 그 작가와 떨어져 지낸다. 그레이엄 그린도 그런 작가 중 한 명이다. <권력과 영광>이란 작품이 워낙 유명해 읽었지만 솔직히 어떤 재미도 누리지 못했다, 아마 다른 작품도 그후 한 권 더 읽은 것 같은데 역시 난해하고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헌책방에서 우연히 절판된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을 발견하고 사 놓았지만 오랫동안 묵혀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긴 시간이 흘렀고, 좀더 다양한 책을 경험했기에 이번에는 하는 심정으로 도전했다. 결론만 말하면 절반의 성공이다.
영국추리작가협회(CWA)와 미국추리작가협회(MWA)에서 선정한 세계 추리소설 100선에 동시에 올라 있다는 정보는 나 같이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이 선정에 실패를 경험한 적도 여러 번 있지만 그래도 이런 리스트는 그 장르를 이해하고 즐기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 작품을 가장 잘 소개하는 것은 역시 책 소개의 한 문장이다. ‘작가는 선악, 천국, 지옥, 구원과 같은 가톨릭 교리와 도덕과 신앙에 대한 물음들을 담아냄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소설로 승화시킨다.’ 개인적으로 이런 주제를 좋아하지 않고, 예상과 너무 다른 전개로 이어지면서 상당히 나의 집중력을 깨트렸다. 물론 부분적으로 재밌고 빠르게 읽은 부분이 있지만 긴 시간을 집중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힘들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려 완독하게 된 이유다.
브라이턴이 영국의 화려한 휴양지라고 하지만 나에겐 낯설다. 이 낯선 곳에서 갱들은 영역 싸움을 한다. 패배한 조직은 승리한 쪽으로 흡수되거나 완전히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열일곱 살 소년 핑키가 조직을 이끈다. 이런 정보가 나오기까지는 지면이 더 필요하다. 신문 기자 출신 헤일이 이벤트 작업을 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그를 위협하는 조직이 바로 핑키 등이다. 카드를 발견한 사람에게 10실링을 주는 행사 때문에 그는 브라이턴을 돌면서 살짝 카드를 놓아둔다. 그러다 매력적인 아이다를 만나 호의를 배푼다. 그녀에게 경마의 승리마를 알려주는 일까지 한다. 이 짧은 만남이 헤일의 죽음을 파헤치는 탐정 역할을 그녀에게 맡긴다.
헤일의 검시 결과는 심장사이지만 그를 죽인 핑키는 완벽하기를 바란다. 헤일이 거쳐간 곳을 돌아보고 죽은 후에 가서는 안 되는 곳을 발견한다. 스노 식당이다. 이 식당에 카드를 회수하러 간다. 없다. 이미 로즈라는 웨이트리스가 그 카드를 발견했다. 카드를 놓아둔 사람도 기억한다. 경찰이 헤일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이 사건을 파헤치면 이 일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핑키는 로즈가 불안하다. 그녀의 증언이 나오면 자신이 살인자로 지명되고 교수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이 불안감이 그녀에게 호의를 배풀게 하고, 로즈는 핑키에게 끌린다. 이 둘의 나이를 보면 핑키는 17세, 로즈는 16세다. 로즈의 증언을 막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핑키와 결혼하는 것이다. 아내의 증언이 효력이 없다는 변호사의 의견이다.
미성년자의 결혼이란 문제와 함께 이 소설에서 핑키와 로즈를 괴롭히는 것이 바로 카톨릭의 죄의식이다. 핑키는 어릴 때 부모의 성교를 보고 자랐고, 이것을 끔직한 대죄로 여긴다. 여자가 자신에게 다가와도 거부한다. 술도 마시지 않는다. 그에게 각인된 교리가 그의 살인과 이율배반적으로 작용한다. 죄를 지어 지옥에 떨어질 것이란 불안은 현실이 지옥이란 속된 말에 묻힐 수 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핑키가 저지르는 살인 등을 보면서 왜 그렇게 로즈에게 집착하고 불안해하는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마 종교적 문화적 차이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런 이 커플에게 계속해서 압박하는 역할을 하는 인물이 바로 아이다다.
아이다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게 대응한다. 그녀가 헤일을 위해 살인자와 증거와 증인을 찾는데 이때의 감정은 핑키 등과 다르다. 사회적 법률과 작은 도움에 대한 호의 때문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이성에 의해 움직이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분신사바 같은 판을 이용해 정보를 얻고, 그것을 바탕으로 행동한다. 아이다가 로즈를 만나 그녀의 순수함에 경험이란 독을 던지는 장면은 현실이 지옥이란 말과 이어진다. 사람이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두 여자의 대화는 작가가 이 소설 속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순수한 사랑에 믿음과 열정을 가진 그녀가 앞으로 마주할 핑키의 욕설을 작가가 지옥이라고 표현한 것도 강한 여운을 준다. 읽기 쉽지 않고, 이해하지 못한 설정과 장면들이 많지만 곱씹어야 할 대목들이 많다. 언젠가 다시 이 작가의 작품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