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마이클 코리타 지음, 최필원 옮김 / 황금시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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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개봉작의 원작 소설이다. 소설을 읽기 전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으로 등장한다는 것도 알았다. 다행이라면 예고편을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전 예고편을 조금 봤는데 원작과 다른 부분들이 여러 곳 보인다. 안젤리나 졸리가 맡은 역할의 비중도 상당히 높아진 것 같다. 가장 큰 차이라면 도망다니는 제이스의 나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 속 아이는 아무리 봐도 열네 살로 보이지 않는다. 무시무시한 살인자 형제들은 블랙웰 형제도 내가 생각한 이미지와 상당히 다르다.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영화를 본 사람의 후기를 간단히 읽었는데 원작과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이런 이유들이 내가 영화를 본 후 오랫 동안 원작을 읽지 않게 만들었다.


친구들의 놀림으로 열네 살 제이스가 채석장에서 다이빙하는 연습을 하는 중 처참하게 살해된 시체를 발견한다. 그러다 두 명의 경찰이 다른 누군가를 죽이는 장면을 보게 된다. 물에 숨어 어떻게 이 위기를 피할까 고민한다. 살인자들은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그리고 장면은 바뀐다. 몬태나에서 촉법소년 갱생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문제아들에게 생존법을 가르치는 이선 서빈의 집이다. 폭설에 그를 찾아온 인물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그녀를 구하러 간다. 그에게 생존법 수업을 받은 제이미 베넷이다. 제이미는 증인보호프로그램을 믿을 수 없어 하는 부모의 요청으로 이선에게 아이를 맡기려고 한다. 이 일을 이선과 그가 가르칠 아이들에게도 위험이 될 수 있다. 결국 이선은 이 아이를 맡게 되고 문제가 생긴다.


영화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겠지만 소설은 다양한 사람들의 시점으로 이어진다. 가장 먼저 이선과 그의 아내 앨리슨, 전직 산림 소방대원이었던 해나 페이버와 증인 소년 제이스, 그리고 무시무시한 악당들인 블렉웰 형제 등이다. 졸리가 맡은 역할은 해나다, 증인인 아이가 누군지 정확하게 모른 채 이선은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 가서 생존수업을 한다. 제이스는 이선이 알려주는 지식을 습득하고, 자신의 성격을 바꾼 채 아이들과 동떨어져 있다. 물론 이름을 바꾸었다. 블랙웰 형제는 자신들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황무지 속에서 생존수업을 받고 있는 제이스의 정확한 위치 정보를 얻고 싶어한다. 보안관을 고문해서 정보를 얻고 죽인다. 이 과정에 산불이 난다. 이 산불을 해나가 본다.


이선을 이전과 달리 자신의 위치 정보를 보안관에게 보내지 않았다. 혹시하는 걱정 때문이다. 아내 앨리슨에서 GPS통신으로 문자만 보낼 뿐이다. 이 정보를 악당들이 얻고, 앨리슨을 찾아온다. 이 악당들은 아주 영리하게 같이 모여 있지 않는다. 한 명을 공격해도 다른 한 명이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다. 대화법도 상당히 특이하다. 둘이 대화를 나누면서 원하는 정보를 얻는다. 살인에 조금의 주저도 없다. 앨리슨을 만나러 오는 과정에 보안관을 망설임 없이 죽이는 장면이 두 번이나 나온다. 그런데 읽다 보면 어떻게 제이스가 이 캠프에 참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과 제이스는 어떻게 이들을 벗어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마지막에 도달하면 하나는 풀린다.


소설 후반은 도망친 소년이 해나와 만나고, 거짓말을 하고, 이 소년의 뒤를 쫓는 블랙웰 형제와 이선의 모습이 그려진다. 여기에 거대한 산불은 생명을 지닌 듯 황무지를 불태운다. 몇 가지 사건이 생기고,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섣부른 기대와 추측은 금방 사라진다. 이선의 생존수업은 제이스에게 좋은 교육이 되었다. 불타는 황무지와 고산지대를 배경으로 쫓고 쫓기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점의 변경이 만들어내는 작은 트릭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살기 위해 도망치는 해나와 제이스, 죽이기 위해 황무지 속으로 뛰어든 킬러 형제들, 어쩔 수 없이 킬러들을 인도하지만 기회를 노리는 이선 등의 심리화 행동이 엮이고 꼬이면서 박진감 있게 진행된다. 그리고 감동적인 희생 정신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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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아웃 - 권혁진 장편소설
권혁진 지음 / 스윙테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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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페이지와 CJ ENM, 스튜디오드래곤이 주최한 ‘제4회 추미스(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공모전 금상 수상작이다. 개인적으로 이 공모전 수상작들을 재밌게 읽었다. 당연히 이 공모전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는 약간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추리물이다. 10년 후 모습을 현상할 수 있는 미래 사진을 다룬다. 찍는 시점에서 10년 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때 검게 나오는 사진들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블랙아웃’이다. 이 블랙아웃이 나왔다는 것은 10년 후 그 인물이 죽었다는 의미다. 당연히 이 사진을 받은 사람들은 놀라고, 왜? 라는 의문을 달지 않을 수 없다. 소설은 이 블랙아웃과 미래 사진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찾아간다.


미래발전공사 인화팀에서 근무하는 윤시우가 주인공이다. 보통 사람들은 평생 한 번 미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찍은 시점으로부터 10년 후의 모습을 고객에게 전달한다. 일생에 한 번이란 기회는 누구에게나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의 성적에 관심이 많다. 좋은 대학에 합격하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러다 가끔 블랙아웃된 아이의 사진을 받기도 한다. 이때 부모가 느낀 감정을 절망과 왜, 어떻게 같은 의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이들을 대처하는 인물은 민원팀이다. 그렇다고 인화팀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블랙아웃을 현상하게 되면 한동안 악몽을 꾸는 시우 같은 사람도 있다.


10년 후 사진만 나온다는 홍보와 달리 현상액의 비율을 달리하면 특정 시간의 모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국가는 인화지 부족의 이유로 국민 한 명당 한 장씩만 제공한다. 과연 여유분은 전혀 없는 것일까? 그러다 다섯 장 더 공급된 인화지로 아이가 언제쯤 죽게 되는지 알게 된다. 회사 원칙보다 자기 마음의 평화와 부모의 의문 해결에 더 우선을 둔 선택이다. 그러다 여자친구 유이가 둘의 미래를 확인해보자고 제안한다. 친구 부부의 단란한 미래 사진에 살짝 호기심이 생긴 탓이다. 함께 사진을 찍는다. 10년 뒤 시우는 유이와 닮은 여성과 앉아 있고, 유이의 사진은 블랙아웃이다. 시우는 언제, 왜라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화지가 필요하다. 바로 이때 본부장이 파견 업무에 대해 말한다. 연봉 두 배에, 수습을 마친 후 열 장의 미래 사진 인화지를 준다는 파격적인 조건이다.


그의 파견 바로 전에 파견직 직원이 사고로 죽었다. 천해일보 기자도 음주운전으로 죽었다는 기사가 나온다. 이 정보가 음모의 씨앗을 뿌린다. 그리고 시우는 파견을 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세상에 알려진 것과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마주한다. VIP만을 상대하는 이 파견직은 VIP에 한해서 무제한으로 인화지를 사용할 수 있다. 실제 그가 방문한 집에서 요청받은 것은 아이의 내일과 10년 뒤 사진인데 만약 내일 아이가 다친 흔적이 있으면 그 원인을 찾아내어야 한다. 블랙아웃된 국민에게는 추가로 한 장도 지급되지 않았는데 특권집단에게는 무제한의 인화지가 지급되는 것이다. 차별과 불평등의 현실 세계가 미래마저도 차별과 불평등하게 다루어진다.


이 소설에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설정이 있다. 바로 미래 사진을 본 후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면 미래가 바뀐다는 것이다. 결정론적 세계관에 인간의 의지와 노력을 집어넣어 운명이 변할 수도 있다는 지점을 만들었다. 바로 이 지점 때문에 누군가는 불안을 해소하고, 누구는 이것을 이용해 권력을 쥐려고 한다. 살짝 이 지점에 오게 되면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떠오른다. 정부가 원한다면 블랙아웃된 사진만으로 미래 사건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소설은 그렇게 나아가지 않고 시우의 활약으로 축소된다. 하지만 이 축소가 압축적이고 긴장감을 불러오는 전개가 아니라는 부분은 아쉽다. 음모의 주체가 너무 허술한 모습을 보여주고, 사건 해결도 긴박감이 떨어진다. 멋진 설정에 비해 밀도가 떨어지는 전개는 가독성과 별개로 아쉽다.


가독성은 아주 좋다. 이야기 곳곳에 미래를 알게 된다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집어넣었다. 대표적인 것인 로또다. 로또 번호를 알게 된 사람들이 그 번호로 구매하면서 배당금이 구입금액보다 떨어질 정도다. 인화팀의 경우 사건 현장 사진을 그대로 보는 경우도 있다.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사진도, 끔찍한 시체 사진도 본다. 누군가는 미래 사진으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한국의 많은 부모가 아이의 단 한 번뿐인 미래 사진을 대입에 맞추었다는 설정은 씁쓸한 현실을 반영한다. 찍는 순간과 10년 사진은 상관 관계가 없는데 사람들은 옷을 잘 차려 입고 온다. 이런 소소하지만 일어날 법한 일들을 이야기 속에 잘 녹여내고, 현실의 불평등을 잘 엮었다. 강한 스릴러에 대한 아쉬움이 있지만 읽는 동안 작은 재미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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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오브 더 시 에프 그래픽 컬렉션
딜런 메코니스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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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 그래픽 컬렉션 최근작이다. 16세기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가 언니 메리에게 체포되어 런던탑에 유폐된 것에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 영감에 상상력을 덧붙여 작은 섬을 무대로 이야기를 펼친다. 제목에서 느낀, 뭔가 좀 더 장대한 장면은 없지만 섬세한 감정과 권력 투쟁과 출생의 비밀 등이 엮이고 꼬이면서 시선을 계속 붙잡아둔다. 흔히 보는 그래픽노블과 달리 소설처럼 긴 문장을 간단한 그림과 함께 넣은 장면도 많다. 어떤 대목은 읽다가 그림 동화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상당한 두께를 자랑하는데 읽다 보니 어느새 끝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기 궁금해졌는데 과연 나올지 모르겠다.


역사 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첫 장에서 여왕인 듯한 여성이 도망치려고 한다. 자신의 충신에게 궁에 남아 첩자가 되어 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작은 섬으로 넘어온다. 너무 작아 이름조차 없지만 엘리시아 수녀회가 존재한다. 이 수녀회에는 작은 소녀 한 명이 자라고 있다. 마거릿이다. 이때부터 마거릿은 화자가 된다. 작은 섬을 돌아다니면서 섬에 무엇이 있는지 발견하고, 섬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듣는다. 작은 변화가 생기는 것은 섬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올 때다. 그 첫 번째는 같은 또래의 소년 윌리엄과 그 엄마다. 한때 귀족 가문이었던 그들은 재난을 피해 이 섬에 왔다고 한다. 순수한 아이들은 섬을 탐험하듯 돌아다니면서 재미있게 논다.


섬에 있는 자원만으로 사람들이 살 수 없다. 일년에 두 번 배가 들어와 물건을 놓고 간다. 수녀회에서도 자수 등의 물건을 내놓는다. 평온한 듯한 섬 생활에 작은 변화가 다시 생긴 것은 선장의 아들이 병에 들면서부터다. 위험한 전염병이고, 윌리엄의 엄마는 이 병을 간호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이 일이 있은 후 윌리엄의 진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 섬이 하나의 감옥이란 사실도 알게 된다. 그는 섬을 떠난다. 수녀회의 수녀들도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이 섬에 갇혔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럼 어린 마거릿은 왜 이 섬에 갇힌 것일까? 하나의 의문이 든다. 원장 수녀는 아직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다 유폐된 엘리노어 여왕이 이 섬으로 오게 되면서 분위기는 완전히 바뀐다.


권좌에서 쫓겨난 여왕 옆에는 그녀를 감시하는 수녀가 한 번 붙어 있다. 남자 감시원도 두 명 같이 왔다. 이런 상황이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과거 권력은 현재 힘이 없다. 수녀는 엄격하게 그녀를 관리한다 엘리노어는 단식 등을 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고 한다. 이때 마거릿이 그녀의 말동무가 되고, 함께 섬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된다. 물론 남자가 뒤에서 감시하는 조건이다. 마거릿은 엘리노어에게 체스를 배우고, 삶의 또 다른 모습을 깨닫는다. 마거릿이 체스를 배운 이유는 섬을 떠난 윌리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같은 감옥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과 작은 거짓말이 겹쳐지면서 마거릿은 엘리노어에게 다가간다.


조그만 섬에서 자란 순수한 소녀가 약간은 지루하지만 평온한 삶을 살다가 외부의 인사들 때문에 자신의 삶이 바뀌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자신의 출생 비밀도 같이. 이 비밀이 알려지는 순간은 우연과 작은 의도가 섞여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비밀을 알고, 그녀의 상상력은 또 다른 미래를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러다 엘리노어 여왕의 신하 한 명이 난파되어 섬에 도착한다. 마거릿의 모험심이 그를 구한다. 하지만 그녀의 힘만으로 그를 구할 수는 없다. 수녀들의 도움을 받는다. 이제 이야기는 이전 여왕과 신하의 관계와 권력에 대한 것으로 넘어간다. 이 작품에서 마거릿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행동가다. 작가는 이 장면을 그녀의 계획인 것처럼 설명하는데 그대로 실현된다. 재미있는 연출이다.


16세기 영국의 역사를 잘 몰라도 이 그래픽노블을 읽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알면 더 재미 있을지 모르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이 작품에서 눈길에 끄는 장면들이 여러 곳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엘리노어가 여왕이 되기 위해 알아야 하는 것을 말하는 장면이다. 교육을 통해 수많은 지식을 얻지 못하면 여왕의 자리에 앉아도 허수아비와 같다. 이런 지식을 얻는 데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좋은 선생도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발전시키겠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 한가한 자리가 아니다. 제대로 된 권력자라면 말이다. 제목에서 풍기는 모험과 판타지에 대한 기대는 어느 순간 사라졌고, 작가가 유머와 비판을 집어넣은 시대상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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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스테프 차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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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LA폭동과 그로부터 1년 전에 일어난 ‘두순자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두순자는 한정자로 바뀌고, 피해 여자 아이는 에이바란 이름과 작은 디테일이 바뀐다. 이야기는 그 사건으로 고통을 겪은 흑인 가족들과 한정자의 딸 시선으로 이어진다. 화자는 에이바의 동생 숀과 한정자의 딸 그레이스로 교차하고, 이 교차는 다른 두 피부색의 입장과 생각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들의 행동과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순간 순간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사건의 이면을 살짝 들춘다. 잉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위로 올라가면 백인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비백인들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는 술책들이 하나씩 나오겠지만 작가는 거기까지 올라가지는 않는다. 결국 피해자가 된 흑인과 한국인의 삶을 보여줄 뿐이다.


에이바의 동생이었던 숀은 누나의 죽음 이후 갱에 가입하고, 감옥에 다녀온 후 정신을 차린다. 이삿짐 회사에서 오랫동안 잘 일하고 있다. 강도 사건으로 수감된 사촌 레이가 출소한다. 숀은 실라 이모집에서 같이 살았고, 누나가 죽은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 숀은 누나가 한정자의 슈퍼에서 한 행동들을 옆에서 본 아이다. 그때 그의 나이는 열네 살이었다. 두순자 사건에 나온 것처럼 에이바의 죽음은 정당방위가 아니었다. 그녀가 자신보다 큰 흑인 아이에게 폭행을 당했지만 총을 쏠 당시는 그 위협이 끝난 시점이다. 에이바의 정면도 아닌 뒤에서 쐈다. 작가는 한정자가 이때 어떤 생각을 했고, 왜 쏘게 되었는지 말하지 않고 넘어간다. 추측으로 이 장면을 해석할 경우 생길 문제점들을 피하려고 한 것이다.


한정자의 딸 그레이스는 한인타운의 우리약국 약사다. 언니 미리엄은 2년 전 가족을 떠났다. 이본 박으로 개명한 엄마와 퇴근하는데 누군가가 나타나 엄마에게 총을 쐈다. 강도라면 돈을 강탈해야 하는데 그냥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는 엄마가 한정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언니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엄마가 다행스럽게 죽지 않게 되면서 그녀 속에는 증오와 분노의 감정보다 오래 전 사건을 돌아보고, 생각하고, 용서를 빌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물론 이 이전에 한정자가 총에 맞았다는 사실을 안 인터넷 언론의 공격을 받는다. 그녀의 엄마에 대한 변명과 옹호는 가족이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사람들에게 이것이 중요하지 않다. 엄마를 옹호하는 발언을 타고 들어가서 만나게 되는 사실은 인종차별주의자의 말일 뿐이다.


한정자 총격으로 가장 먼저 용의자로 지목되는 것은 당연히 숀이다. 이 사실을 숀은 이전 친구들의 메시지메 알게 되었다. 한때 그도 한정자를 찾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그런데 그렇게 멀지 않는 곳에 그녀가 살고 있었다. 누나에 대해 책 낸 저자가 가족을 찾아와 대화를 나눌 때 그가 품은 감정은 미화되고 왜곡된 누나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반감이다. 가장 아프고 힘든 것은 자신인데 말이다. 그 감정을 폭발시킬 때 마주한 한인가게의 장면은 여러 모로 가슴 아프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진다. 가까운 가게에 가지 않고 한정자의 가게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이 사건의 판결 때문에 부채감을 가진 한인들의 감정이 진하게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그레이스가 엄마의 숨겨진 과거를 알게 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겪는다. 아버지는 경찰에 비협조적이다. CCTV 자료 제출을 거부한 것이다. 하지만 CCTV 영상은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경찰들이 레이를 용의자로 잡아갔을 때 그녀는 그가 범인이 아니라고 진술하겠다고 마음을 먹기도 한다. 적극적인 행동도 한다. 에이바의 이모를 찾아가 용서를 빌려고도 한다. 그녀의 행동을 보고 숀은 복잡한 감정을 느끼지만 용서할 마음은 없다. 이런 그녀의 행동에 큰 변화가 오는 것은 엄마가 갑자기 패혈증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상실감, 증오, 분노 등의 감정이 그녀를 사로잡는다. 범인이 누군지 알기에 이 감정들은 더욱 불타오른다. 이성은 언제나 감정 앞에 너무나도 무력하다.


정말 많은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다. 레이가 보호관찰 중인데도 총을 차에 둔 이유로 내뱉은 말이 미국총기협회의 논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적들로부터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정자 사건이 로드니 킹 판결 1년 전이었는데 언론사에서 부각된 것은 흑인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것이란 사실도 지적한다. 한정자의 사건의 문제점을 그대로 덮자는 말이 아니다. 언론의 선택이 LA 폭동 당시 한국 가게들의 피해로 이어졌고, 경찰은 부자 백인들을 지키는데 집중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도입부에 자기 집 마당에서 경찰에 의해 죽은 10대 흑인 소년을 내세운 것은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이전의 문제들이 아직도 진행 중이란 의미다. 작가가 “Black Lives Matter” 운동을 글 속에 녹여낸 것도 이것과 관계 있다.


LA폭동 이후 한인과 흑인 사이에 많은 교류가 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그 교류가 상당히 지엽적이거나 효과가 미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과 별개로 두 인종과 두 가족의 이야기는 사실적이고, 강렬하고, 어둡다. 격렬한 증오와 분노의 감정이 솟구치는 순간 마주잡은 손으로 느끼는 열기는 위에서 말한 희망의 씨앗인지도 모른다. 용서를 빌고, 용서를 한다는 행위가 얼마나 힘든 지, 복수란 행위가 얼마나 위험하고 의미 없는 것인지 소설은 잘 보여준다. LA란 대도시를 또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되고, 서로 다른 두 문화의 조각을 살짝 엿보았다. 멋지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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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4 - 의사의 길 아르테 오리지널 9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김수지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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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시리즈 최근작이다. 이 시리즈를 자주 보았고, 집 어딘가에 시리즈 다른 권이 한두 권 정도 있을 테지만 아직 읽은 기억은 없다. 아마 시간이 된다면 역주행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즘 이렇게 역주행하고 싶은 시리즈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언제 읽으려나!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 작가의 소설은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한 편이다.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이번 소설을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가슴이 따스해지는 소설이 최근에 다시 눈길을 끄는데 이 작품도 그렇다. 그 따스함은 현실에 바탕을 두고 펼쳐지기에 더 긴 여운과 감동을 준다. 뛰어난 가독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시리즈 전작을 읽지 않아 구리 짱이 어떤 활약을 했는지 모른다. 전작에서는 24시간 365일 불이 꺼지지 않는 혼조병원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대학병원에 들어와 그는 대학원생이 된다. 거의 월급은 19만 엔이다. 의사라는 직업을 생각하면 박봉이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대학원생 의사에게는 이런 월급도 주지 않았던 적이 있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시절이었다.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구리하라 이치토는 이 월급으로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래서 비번이면 아르바이트를 한다. 학위를 따야 하니 실험도 해야 한다. 이 소설의 상당히 많은 부분이 실험실에서 일어나는데 개인적으로 병리의 후타바가 시간나면 읽는 sf 작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로 보였기 때문이다.


구리 짱의 취미는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를 계속해서 읽는 것이다. 이 소설의 재미난 대목 중 하나는 이런 소설 속 문장을 인용해서 들려주는 것이다. 한 작가의 작품만 나오지 않고 상당히 다양한 작가의 문장이 인용되는데 재밌다. 책과 더불어 자주 나오는 것이 술을 마시고, 일본 사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 애정은 읽다 보면 술을 잘 못 마시는 내가 한 잔 맛을 보고 싶을 정도다. 좋은 쌀로 빚은 맛 있는 술 이야기는 언제나 나의 입맛을 다시게 한다. 물론 어떤 대목에서는 의국에서 술 마시는 장면이 나와 음주 의사의 진찰 같은 상황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걱정할 정도의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하얀거탑이라고 불리는 대학병원 의사들과 환자에 대한 이야기다. 드라마 <하얀거탑>과 같은 자극적이고 권력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보다 뜨겁거나 냉정한 열정을 가슴에 품은 의사들 이야기다. 그들이 매일 진찰하고 치료하는 환자들 이야기다. 판타지 소설처럼 이 의사들은 모든 환자를 치료하지 못한다. 조직 간의 갈등도 존재하고, 쌓이고 쌓인 관료적 행동들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차를 잘 우려내어 마셔 리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의사는 너무 열정적이고 바른 의사라 좌충우돌하는데 왠지 모르게 이전 작품에서 구리 짱이 그런 의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환자를 끌어당기는 구리하라라는 별명은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데 이 소설 속의 상황을 보면 좋은 쪽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직 의사가 쓴 소설이라 전문적인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 의학 소설이나 드라마 등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인데 몰라도 읽는데 문제없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환자는 29살의 4기 췌장암 환자인 후타쓰기 씨다. 그녀의 질환은 쉽게 고칠 수 없는데 그녀가 구리 짱을 지명하면서 인연을 맺는다. 하지만 그 인연은 생각보다 오래 전에 있었고, 그때의 감정이, 경험이 구리 짱으로 이어졌다. 작가는 이런 환자들의 사정을 자극적으로 그려내지 않고, 상당히 담담하게 보여준다. 물론 서로의 감정과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도 생긴다. 그렇지만 냉정한 열정과 환자에 대한 애정이 많은 구리하라는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 문제를 돌파한다. 순간 통쾌한 장면이지만 뒤에 드러나는 현실은 또 다른 문제를 담고 있다.


“본디 의료라는 것은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좌우한다는 터무니없는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문장은 대학병원의 일그러진 구조물 이야기로 넘어간다. 빵집 교수가 병상 확보를 위해 환자들의 퇴원을 독촉하는가 하면, 어떤 환자는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겠다고 하는데 다른 조직들이 자신들의 가이드라인을 이유로 막는다. 병원과 의사 존재 이유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라는 기본을 어느 순간 잊는데 우리는 현실에서 자주 만난다. 지방 대학병원이 더 많은 의사들의 자신들의 의국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은 인원이 곧 힘이라는 논리와 함께 변하는 전공과 선호도와 연결되면서 생각이 복잡해진다. 인턴들이 전공을 자신들의 과로 오길 바라는 그 욕심이 그렇게 나쁘게만 다가오지 않는 것도 이 소설의 매력이다. 그리고 열악한 지방 병원 환경 부분은 작년도 공공의대 논쟁과 엮이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한다.


의사는 죽음을 늘 가까이하고 있다. “죽음은, 스쳐가는 경치에 지나지 않는다.”란 문장은 그 죽음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 없다는 사명감이자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환자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이 문장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리고 박봉의 의사 아내가 보여주는 너무나도 현명하고 따뜻한 모습은 왠지 모르게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더불어 재미난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여러 장면들은 조금은 무거울 수도 있는 장면들을 작은 웃음으로 넘어가게 한다. 오니키리 호조 선생이나 다른 의사들이 구리 짱이 친 사고를 무마하고 막아주는 장면을 보면서 좋은 의사란 한 사람만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는다. 구리 짱이 복마전 같은 대학병원의 뛰어난 점과 문제점들을 조금씩 보여주는 장면은 내가 대학병원에 가지고 있던 몇 가지 시선을 살짝 바꿔주었다. 구리 짱의 냉정한 열정을 다른 소설에서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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