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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스테프 차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평점 :
1992년 LA폭동과 그로부터 1년 전에 일어난 ‘두순자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두순자는 한정자로 바뀌고, 피해 여자 아이는 에이바란 이름과 작은 디테일이 바뀐다. 이야기는 그 사건으로 고통을 겪은 흑인 가족들과 한정자의 딸 시선으로 이어진다. 화자는 에이바의 동생 숀과 한정자의 딸 그레이스로 교차하고, 이 교차는 다른 두 피부색의 입장과 생각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들의 행동과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순간 순간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사건의 이면을 살짝 들춘다. 잉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위로 올라가면 백인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비백인들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는 술책들이 하나씩 나오겠지만 작가는 거기까지 올라가지는 않는다. 결국 피해자가 된 흑인과 한국인의 삶을 보여줄 뿐이다.
에이바의 동생이었던 숀은 누나의 죽음 이후 갱에 가입하고, 감옥에 다녀온 후 정신을 차린다. 이삿짐 회사에서 오랫동안 잘 일하고 있다. 강도 사건으로 수감된 사촌 레이가 출소한다. 숀은 실라 이모집에서 같이 살았고, 누나가 죽은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 숀은 누나가 한정자의 슈퍼에서 한 행동들을 옆에서 본 아이다. 그때 그의 나이는 열네 살이었다. 두순자 사건에 나온 것처럼 에이바의 죽음은 정당방위가 아니었다. 그녀가 자신보다 큰 흑인 아이에게 폭행을 당했지만 총을 쏠 당시는 그 위협이 끝난 시점이다. 에이바의 정면도 아닌 뒤에서 쐈다. 작가는 한정자가 이때 어떤 생각을 했고, 왜 쏘게 되었는지 말하지 않고 넘어간다. 추측으로 이 장면을 해석할 경우 생길 문제점들을 피하려고 한 것이다.
한정자의 딸 그레이스는 한인타운의 우리약국 약사다. 언니 미리엄은 2년 전 가족을 떠났다. 이본 박으로 개명한 엄마와 퇴근하는데 누군가가 나타나 엄마에게 총을 쐈다. 강도라면 돈을 강탈해야 하는데 그냥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는 엄마가 한정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언니는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엄마가 다행스럽게 죽지 않게 되면서 그녀 속에는 증오와 분노의 감정보다 오래 전 사건을 돌아보고, 생각하고, 용서를 빌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물론 이 이전에 한정자가 총에 맞았다는 사실을 안 인터넷 언론의 공격을 받는다. 그녀의 엄마에 대한 변명과 옹호는 가족이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사람들에게 이것이 중요하지 않다. 엄마를 옹호하는 발언을 타고 들어가서 만나게 되는 사실은 인종차별주의자의 말일 뿐이다.
한정자 총격으로 가장 먼저 용의자로 지목되는 것은 당연히 숀이다. 이 사실을 숀은 이전 친구들의 메시지메 알게 되었다. 한때 그도 한정자를 찾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그런데 그렇게 멀지 않는 곳에 그녀가 살고 있었다. 누나에 대해 책 낸 저자가 가족을 찾아와 대화를 나눌 때 그가 품은 감정은 미화되고 왜곡된 누나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반감이다. 가장 아프고 힘든 것은 자신인데 말이다. 그 감정을 폭발시킬 때 마주한 한인가게의 장면은 여러 모로 가슴 아프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진다. 가까운 가게에 가지 않고 한정자의 가게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이 사건의 판결 때문에 부채감을 가진 한인들의 감정이 진하게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그레이스가 엄마의 숨겨진 과거를 알게 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겪는다. 아버지는 경찰에 비협조적이다. CCTV 자료 제출을 거부한 것이다. 하지만 CCTV 영상은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경찰들이 레이를 용의자로 잡아갔을 때 그녀는 그가 범인이 아니라고 진술하겠다고 마음을 먹기도 한다. 적극적인 행동도 한다. 에이바의 이모를 찾아가 용서를 빌려고도 한다. 그녀의 행동을 보고 숀은 복잡한 감정을 느끼지만 용서할 마음은 없다. 이런 그녀의 행동에 큰 변화가 오는 것은 엄마가 갑자기 패혈증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상실감, 증오, 분노 등의 감정이 그녀를 사로잡는다. 범인이 누군지 알기에 이 감정들은 더욱 불타오른다. 이성은 언제나 감정 앞에 너무나도 무력하다.
정말 많은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다. 레이가 보호관찰 중인데도 총을 차에 둔 이유로 내뱉은 말이 미국총기협회의 논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적들로부터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정자 사건이 로드니 킹 판결 1년 전이었는데 언론사에서 부각된 것은 흑인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것이란 사실도 지적한다. 한정자의 사건의 문제점을 그대로 덮자는 말이 아니다. 언론의 선택이 LA 폭동 당시 한국 가게들의 피해로 이어졌고, 경찰은 부자 백인들을 지키는데 집중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도입부에 자기 집 마당에서 경찰에 의해 죽은 10대 흑인 소년을 내세운 것은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이전의 문제들이 아직도 진행 중이란 의미다. 작가가 “Black Lives Matter” 운동을 글 속에 녹여낸 것도 이것과 관계 있다.
LA폭동 이후 한인과 흑인 사이에 많은 교류가 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그 교류가 상당히 지엽적이거나 효과가 미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과 별개로 두 인종과 두 가족의 이야기는 사실적이고, 강렬하고, 어둡다. 격렬한 증오와 분노의 감정이 솟구치는 순간 마주잡은 손으로 느끼는 열기는 위에서 말한 희망의 씨앗인지도 모른다. 용서를 빌고, 용서를 한다는 행위가 얼마나 힘든 지, 복수란 행위가 얼마나 위험하고 의미 없는 것인지 소설은 잘 보여준다. LA란 대도시를 또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되고, 서로 다른 두 문화의 조각을 살짝 엿보았다. 멋지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