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8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
김백상 외 지음 / 마카롱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까지 문학상 수상 단편집에 잘 손이 나가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문학상 수상 단편집은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같은 것들이다. 그렇다고 단편집 자체를 읽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장르 쪽으로 넘어가면 꾸준히 읽고 있다. 작가의 단편집도 시간이 되면 읽는다. 단지 기존의 문학상 단편집만 읽지 않을 뿐이다.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의 경우 단편의 매력과 장르의 특성을 잘 품고 있어 쉽게 손이 나간다.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읽은 단편집들 거의 대부분이 이런 장르 문학이다. 이 작품집을 읽기 시작한 것도 작년인데 이 정도 수준이라면 계속 읽을 것 같다.


올해도 다섯 편이 실려 있다. 다양한 장르를 다루고 있다. 현 시대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과 현실을 판타지와 엮은 작품 등이 먼저 시선을 끈다. 김백상의 <조업밀집구역>의 경우 제목에서 바다를 연상시키지만 실제는 치열한 편의점 경쟁을 다루고 있다. 각 점포의 거리가 가깝다는 것은 한정된 시장을 나눠 먹을 수밖에 없고, 결국 모두가 패자가 되는 수순이다. 이런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 알 수 없는 역공으로 마무리되는 마지막 장면은 씁쓸하다. 하지만 이야기의 진행 과정에서 보여주는 유쾌발랄한 문장과 캐릭터들은 만화적인 설정이 엿보이지만 즐겁고 재미있다. 신의 한수라고 한 것이 오히려 패착으로 귀결된 그 상황도 웃픈 현실이다.


윤살구의 <바다에서 온 사람>은 인어였던 외할머니 이야기다. 옛날에는 인어가 뭍으로 올라와 사람처럼 살았다고 말한다. 정말? 이 단편 속에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할머니가 얼마나 대단한 노래 실력을 가졌는지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살짝 궁금하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인어와 사람의 차이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죽어가는 할머니가 바다로 가서 다시 인어가 되면 살 수 있지만 그 이전의 기억을 잃게 된다는 설정은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몇 가지 다른 동화나 만화 등에서 본 듯한 설정이 있지만 안정적인 이야기 전개와 할머니의 삶이 진한 여운을 준다.


김혜영의 <토막>은 소위 말하는 지잡대 출신의 레벨업을 다룬다. 144번의 입사 실패, 온라인 게임의 레벨업 등을 엮고, 지하 자취방에 어느 순간부터 존재하게 된 토막(머리)에 대한 이야기다. 이 머리 토막이 보이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정신과도 가고, 퇴마사도 부르고, 교회도 나가보지만 모두 실패한다. 그처럼 손 토막과 함께 사는 유튜버를 만난다. 그녀가 사는 곳은 택시조차 바로 앞에 갈 수 없는 산꼭대기 지하방이다. 서늘해야 할 이야기가 약간은 코믹하게 흘러가지만 토막들이 증식하면서 상황이 바뀐다. 그리고 자신이 몇 년에 걸쳐 힘들게 키운 계정을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을 다룬 장면은 토막들과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박선미의 <귀촌 가족>은 어디에선가 본 듯한 설정이다. 교장 출신 가족이 귀촌한다고 소문난 마을, 한 번 결혼한 미모의 딸과 그녀와 엮어주려는 마을 사람들. 순수한 마음인 듯하지만 그 속에 감추어져 있던 마음은 자신의 이익이다. 그리고 시골 마을의 암묵적인 성추행과 말하지 않은 비밀들. 어떻게 보면 딸이 사람들의 성화에 끌려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상황들. 성폭력이 드러날 때 분노하지만 그 사실도 알면서 결혼하려는 딸의 알 수 없는 심리. 이런 것들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마지막 반전은 낯익지만 통쾌하다. 이익 앞에는 시골도 도시도 없다는 사실을, 탐욕의 크기만큼 당하는 것도 크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잘 보여준다.


황성식의 <알프레드의 고양이>도 씁쓸하지만 유쾌하게 마무리한다. 작은 사실 하나를 숨긴 채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히키코모리인 화자는 고양이에게 웨인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배트맨의 본명 말이다. 알프레드는 배트맨의 집사 이름이다. 어느 날 웨인이 다친 채 와서 몸에 작은 카메라를 달았다. 화자에게 여기에 녹화된 동영상을 보는 것이 하나의 일상이다. 화자의 생계는 숫자에 탁월한 감각 덕분에 주식 거래로 이어간다. 웨인이 돌아다닌 영상을 보던 중 한 중딩들이 웨인의 집사 중 한 명의 집에 몰카를 설치하는 것을 발견한다. 화자가 히키코모리가 된 이유 중 하나는 정의감에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든 과거 때문이다. 세상이 정의감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대비도 보여준다. 히키코모리가 된 이유도 정의감이지만 집밖으로 나가게 만든 것도 정의감이란 사실은 재밌다. 웨인 시리즈로 만들어도 재미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 방
구소은 지음 / ㈜소미미디어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구소은 작가의 전작들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 기억이 이 책을 선택하게 했다. 여전히 잘 읽힌다. 그런데 다루고 있는 소재는 매번 바뀐다. 이것의 작가의 발전으로 봐야할까? 아니면 다르게 해석해야 할까? 아직은 이 판단을 유보하고 싶다. 이전 작품들의 무대가 외국이었다면 이번에는 한국이다.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떠나야했던 사람들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자 한 네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각각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다른 경험을 한 네 남녀의 우연이면서 필연적인 만남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각 인물의 이야기 첫 부분에 인생의 어떤 순간을 지울 수 있는 지우개를 말한다. 그 시간을 지운다고 과연 자신의 삶이 자신이 바라는 대로 흘러갔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이 그들의 이야기다.


네 남녀는 은채, 윤, 희경, 주오 등이다. 각각 다른 직업을 가졌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다. 은채와 주오가 유복한 환경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다면 윤과 희경은 조금 평범한 환경에서 자랐다. 경제적 환경의 차이는 비슷하지만 경험의 차이는 서로 다르다. 이 소설 속에서 그 경험의 하나로 성을 내세운다. 작가는 성과 몸에 대해 노골적이면서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환상을 지운다. 그 환상을 지운 곳에 욕망과 그 욕망의 결핍을 넣어 그 삶의 한 축을 그려낸다. 이 네 사람을 이어지는 중심 인물은 화가인 윤이다. 은채는 윤의 애인이고, 희경은 그의 누드모델이고, 주오는 같은 건물의 성형외과의사다. 시작의 문을 여는 것은 개인전을 열려고 한 윤의 그림들이 난도질당한 일이다. 누가 그런 만행을 저질렀을까? 소설 속 작은 미스터리다.


은채. 큰 유치원의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다. 힘든 일도 겪어 보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벽화 그림을 그리는 윤에게 반한다. 부모는 반대하지만 그녀는 그를 원한다. 그녀는 처녀다. 자위를 하지만 남자와 자 본 적이 없다. 윤과 첫경험을 하고 싶지만 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욕망을 자위로 달랜다. 그리고 자신의 성기와 자위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장치 중 하나다. 성형의 힘으로 예쁜 얼굴을 가졌고, 집 배경도 좋은 소위 말하는 일등 신부감이지만 그녀는 윤을 원한다. 윤이 개인전을 열기 위해 누드모델을 고용한다. 희경이다. 누드모델과 예술가의 결합을 의심하고 두려워한다. 자신이 누드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윤이 적록색맹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다. 질투와 작은 배려가 관계를 파국으로 이끈다.


윤. 미대생이 아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재능도 있다. 그의 그림은 사실적이다. 적록색맹인데 이 사실을 속이고 있다. 빨강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하면서 그의 그림에 파란 색이 더 강해졌다. 이 색이 그림의 매력이다. 그는 연상의 미대생이자 연인을 도와주면서 데생 실력을 키웠고, 여자를 알게 되었다. 이 경험은 그녀가 떠난 후 그녀와 닮은 매춘 여성에게 집착하게 한다. 전문화가의 길로 들어선 것은 우연히 캐리커쳐를 그리는 화가 대신 인물화를 그리면서다. 은채와의 만남은 그에게 안정적인 화가 생활을 보장해주었다. 몇 년의 강렬한 성 경험 뒤 그는 그 욕망에 거세된 듯한 모습이다. 이런 그를 희경은 유혹하려다 실패한다. 은채가 생일 선물로 준 안경은 그의 삶을 뒤흔든다.


희경은 유부남의 친절과 유혹에 넘어갔다. 순진한 나이였고, 우연히 모델 일을 하면서 점점 더 성에 대담해진다. 난교 파티에도 참여해서 쾌락을 맛보지만 그녀가 바라는 것은 그런 감정이 아니다. 그녀는 전문 누드모델로 계속 활동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림의 대상이 된다는 일은 육체를 한계까지 밀고 가는 것 같다. 은채가 이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다. 그녀가 살아온 인생과 성 경험을 나란히 풀어낸다. 대단하다고 생각한 것은 꾸준히 돈을 모아 자신의 집을 산 것이다. 작은 빌라이지만. 늘 그렇듯이 자신만 잘 산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동생이 사고를 친다. 합의금 문제가 생기는데 이것을 해결해주는 인물이 은채다. 뒤틀린 욕망과 오해가 만들어낸 상황이다. 그리고 그는 자동차 접촉 사고 대상인 주오를 만나고 그에게 끌린다. 그녀의 욕망과 그의 행동이 엇갈린다. 이야기는 주오로 넘어간다.


주오. 성형외과 의사로 잘 나간다.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 아내 집에 많은 돈을 지원했고, 그녀도 풍족하게 살 수 있게 했다. 뭐가 문제일까? 그 문제를 그의 과거와 현재 행동 속에서 하나씩 드러낸다. 어릴 때 자위하다가 아버지에게 들켜 온가족이 다 알게 된 사실, 형과 누나와 달리 성적이 조금 떨어진 것 등의 과거사. 열심히 일해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내지만 과거의 트라우마는 아직도 작용한다. 이런 그에게 친구 따라 온 아내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실패한다. 정상적인 성생활이 불가능하다. 이 불능이 그의 삶을 뒤흔들고, 허위로 채운다. 그는 주변 친구들에게 자신의 문제점을 드러내지 못한다. 희경의 향기에 끌려 그녀를 만나지만 더 나아가지 못한다. 희경이 발견한 USB속 동영상에는 뭐가 담겨 있을까? 솔직하고 자극적인 행위는 뒤틀린 욕망의 발산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낯익다. 그 솔직한 설명과 묘사는 아직은 낯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은 어디에나 있어
잰디 넬슨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월 어느 날, 언니 베일리가 무대 위에서 죽었다. 사인은 치사성 부정맥이다. 언니의 죽음은 열일곱 살 레니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다. 한달 동안 집에 머물다 학교에 간다. 언니의 죽음에 대한 위로의 말들이 넘쳐난다. 레니는 이 상실감을 간결하게 시로 적어서 곳곳에 흘리고 남긴다. 이 책 사이사이에 나오는 쪽지, 메모 등은 그녀의 감정을 반영한다. 재밌는 점은 이 쪽지 등이 발견된 곳을 같이 표기했다는 점이다. 누가 썼는지는 금방 알 수 있지만 누가 이 기록을 남겼는지는 책 마지막에 가야만 나온다. 가장 친했던 언니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과 그 이후 느꼈던 감정의 소용돌이와 작은 일탈과 첫 사랑이 어두움보다 밝음 속에서 하나씩 풀어져 나온다.


현재까지 이 작가의 작품은 두 편 출간되었다. 한국에는 현재는 이 책이 유일하다. 가독성이 아주 좋고, 너무 솔직한 감정과 표현에 조금 낯설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 낯섦은 적나라한 표현 때문이지 그녀가 느낀 감정이나 생각 때문이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하루 종일 섹스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직 남자와 잔 적도 없고, 누구와 사랑에 빠진 적이 없는데 이런 상상을 한다. 상실의 여파일까? 언니 베일리의 연인이었던 토비 또한 갑작스러운 죽음에 긴 상실감을 느낀다. 그런데 약간은 당혹스러운 장면이 나온다, 토비가 레니를 안았을 때 그의 발기를 느낀 것이다. 나중에 둘은 키스를 하고, 누군가의 방해가 없었다면 그 이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황에 빠진다. 도덕적으로 본다면 놀랍고 크게 질책할 부분이지만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레니는 학교 밴드부에서 클라리넷 연주자다.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자신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잠시 그녀가 자리를 빈 사이 전학생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조 폰테인이다. ‘미대륙을 밝힐 듯 환하게 웃는’ 아이고, 탁월한 연주 실력도 가지고 있다. 음악 천재란 표현이 맞을 정도다. 학교 여자들이 그를 노린다. 레니는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녀에게는 지금 토비와의 관계 때문에 정신이 없다. 심리적 갈등과 육체의 반응은 다르게 작용한다. 여기에 언니와 토비 사이에 있었던 약속과 비밀은 둘 사이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언니의 공간을 정리하지 못한 그녀와 그 방을 찾아온 토비는 작은 유혹에 흔들린다. 만약 빤한 로맨스였다면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갔을 것이다.


레니에게 먼저 다가온 것은 조다. 할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나무에 앉아 있는데 그가 다가왔다. 나중에는 집까지 찾아오는데 할머니의 반응이 재밌다. 얼마나 조를 팔면 돈을 많이 벌 것이라고 했겠는가. 이런 표현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그 매력을 전달하는 데는 즉각적이다. 음악이란 공통점과 조의 한 발 다가옴이 둘을 더욱 가깝게 만든다. 레니에게 첫사랑이 날아왔다. 이들의 사랑을 지켜보면 입가에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하나의 불안감이 살짝 자리잡고 있지만 말이다. 언제나 소설은 가장 행복한 순간에 파국을 만들고, 이 파국을 해결하면서 그 사랑을 더 부각시키는데 이 소설도 그 공식을 따라간다. 책을 읽으면서 궁금해했던 것 중 하나가 밝혀지면서, 그 감정을 절실하게 느끼고 표현한 장면 등을 통해서 말이다.


레니의 엄마는 두 딸로 놓아둔 채 떠났다. 이후 소식조차 전하지 않았다. 언니는 엄마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수없이 노력했다. 언니의 유품 정리 중 그 사실을 발견한다. 엄마가 떠난 것은 알겠는데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왜일까? 이 자매를 키운 것은 할머니와 삼촌이다. 삼촌은 다섯 번이나 이혼을 했고, 할머니가 키우는 정원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할머니가 키우는 장미는 마력이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다. 감히 그 꽃을 꺽지는 못한다. 할머니가 아주 크게 분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에 눈 먼 사람들은 이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려고 한다. 이 소설의 재미 있는 이야기 중 하나가 여기서 나온다.


매력적인 인물과 캐릭터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재미있게 끌고 나간다. 레니가 큰 상실감에 좌절할 때 할머니와 삼촌은 묵묵히 자신들의 삶을 산다. 그렇다고 이들이 상실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표현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과거의 시간에 멈추고, 슬픔에 빠진 레니에게 자신의 상실감을 드러낸 할머니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슬프다. 이 슬픔과 아픔을 유머 등으로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상실감을 지나가려고 한다. 이때 발생하는 감정의 혼란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도구 중 하나가 시로 표현된 쪽지와 메모 등이다. 멋진 설정이다. 그나저나 표지의 난해함은 다시 봐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만 그런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족국가 대한민국 - 부족주의의 노예가 된 정치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준만의 글을 좋아한다. 오랫동안 읽어왔다. 그가 보여준 새로운 시각은 나를 일깨워주는 경우가 많아 특히 더 좋아한다. 작년에 읽었던 책도 내 속에 가득한 편협함을 많이 깨트려주었고, 이번 책도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읽다 보면 그가 말하는 주장들에 반감을 가지는 부분이 점점 더 늘어난다. 내가 알고 있는 부분과 달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의 주장들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다가 온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의 이상적인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태클을 걸고 싶지는 않다. 이런 주장도 있어야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첫 문장으로 “나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구분에 대해 냉소적이다.”라고 적었다. 자신도 진보 진영에 기울어져 있다고 생각할 테지만 이 진영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비판적 입장을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이 진영 없음이 가져다주는 한계가 점점 눈에 들어온다. 정론과 긴 세월을 본다면 그의 말이 맞겠지만 현실 정치에서 우선 순위를 정하고 협상해야 하는 부분과 또 그런 인물들만 국회로 진출시키는 민중이란 허상에 너무 많은 기대를 담고 있어 씁쓸함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다른 방송이나 책에서 얻은 정보의 한계란 점이 있지만 이 글 또한 그 답답함을 날려줄 정도의 대안이나 힘이 있지는 못하다. 강준만의 글을 보면서 늘 느끼는 아쉬움 중 하나다.


<나꼼수>의 열렬한 애청자였다. 이후 딴지에서 나온 팟캐스트들을 재밌게 들었다. 정치 관련 팟캐스트보다는 문화, 예술 쪽이 대부분이었지만 <나꼼수>의 강렬함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정봉주 사건이 터졌을 때 그의 말을 더 신뢰했다. 이런 신뢰는 박원순 사건이 터졌을 때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의심들은 하나씩 사라졌다. 어쩌면 아직 마음속으로 판결까지 기다려보자는 마음이 있을지 모른다.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문제가 생겼을 때는 진보 진영의 멍청함을 탓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막아버린 그들이 원망스러웠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길을 그들이 눈앞에서 하나씩 닫는 느낌이었다. 이 책에서 김어준과 박원순에 대해 그가 쓴 글 모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우주 최강 미남 문재인’이란 글을 보고 쉽게 문빠를 떠올렸다. 그런데 이 글을 적고 팻말을 든 인물이 공무원이라고 한다. 아산 반찬가게 주인을 괴롭힌 이유는 더 황당하다. 문재인 정권의 컨트롤 타워가 되었다는 주장에는 반대하지만 이 문빠들이 벌인 문제들이 지금은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 때문에 그들이 더 강하게 밀집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성을 찾아야 한다. 집단의 소속감은 쉽게 넘어갈 수 없다. 나의 정치관이나 윤리관이 집단 속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아무리 간 큰 직원이라고 사장이나 상사의 정치관에 정면으로 부딪혀 싸우기는 힘들다. 사소한 비리는 또 얼마나 많은가. 한때 이런 비리들을 견딜 수 없었는데 나 자신이 흙탕물 속에 잠기다 보니, 현실을 더 알다 보니 무기력해진 부분이 있다. 변화와 진보가 나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지만 실천으로 옮기기는 너무 힘들다. 중늙은이의 구차한 변명이다.


부족주의. 학연과 지연을 통한 인맥 쌓기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인맥이 형성되는 이유는 서로의 이익이 맞기 때문이다. 동창회, 동문회 등의 모임은 이런 이익의 교환장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나가면 쉽게 낭패를 본다. 저자가 “부족의, 부족의 의한, 부족을 위한 진보”란 소제목을 낸 것도 이해가 된다. 새롭게 법이 만들어지고, 통과하는 과정 속에 얼마나 많은 로비가 들어가고,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는지 셀 수 없이 많이 봐왔다. 인간들의 욕망은 진보니 보수니 상관없이 자기 이익이 우선이다. 집값 문제만 해도 너무 높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집이 더 올라가길 바라고, 한 채 더 사는 경우도 봤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인 이유 중 하나가 금리인데 이번에도 기준 금리가 동결되었다. 민주당 의원이 종부세 기준 금액을 올리겠다는 법안을 발의한다고 하는데 황당하다. 신도시 문제에 대한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검찰 개역에 대해 김웅의 <검사 내전>을 인용해 말하는데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기소 독점권을 가진 검찰이 어떤 행동을 해왔는지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검찰 조직이 점점 비대해지고, 점점 정치권에 줄을 대고 있는 현실을 볼 때 개혁은 이루어져야 한다. ‘검찰 공중분해’란 표현을 쓰면서 ‘그간 잘 해온 기존 수사 역량을 해체’한다고 했는데 과연 그랬는지 묻고 싶다. 김웅이 자신의 책에서 검사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보여주었는데 현장에도 나가지 않는 검사들이 무슨 수사를 한다는 말인가. 일이 너무 많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이 일의 일부를 경찰에 넘기고 서로 견제하게 만든다면 더 좋은 수사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면 ‘기소하지 않을 권리’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일이 많이 줄어 들 것이다.


윤석열에 사람들이 분노한 것은 그의 수사가 너무 저열하고 뚜렷한 목적을 가진 채 비인권적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다른 정치인들에 대해, 아니 삼성이나 이재용에 대해 그 반만큼이나 했는지 묻고 싶다. 교수 기득권층이 저지르고 있던 불합리한 관행에 대한 질타가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은 부분은 놀랍고 지금은 조용히 묻혔다. 금태섭에 대한 옹호는 다른 정치인의 형태와 어떻게 다른지 묻고 싶다. 내 눈에는 그 놈이 그 놈인데. 너무 편협된 시각일까? 기레기 부분도 단순히 진영 논리로 말할 부분이 아니다. 물론 이런 점이 전혀 없지 않다. 아니 많을 것이다. 하지만 기자들이, 데스크가 자신들의 진영 논리나 이익을 위해 글을 쓰는 부분을 뭐라고 할 것인가? 사실을 적었다면 반박이라고 할 텐데. 그리고 현실에서 많은 언론사들이 어뷰징 하고 있고,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는데 이들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훌륭한 기자가 많다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이 이런 기사들에 가려진 현실을 생각하면 이 단어를 쉽게 내려놓을 수도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을 쓰기 전 이전에 읽었던 제시 버튼의 책들에 대한 서평을 다시 한번 훑어봤다. 그녀의 작품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나의 저질 기억력이 내용에 대한 많은 부분을 빼앗아갔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다. 읽다 보면 몇 가지 키워드가 눈에 들어온다. 성차별, 피부색 등 시대의 한계들이다. 이 소설의 두 시점 중 하나는 현재와 같은 인식이 제대로 확산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불과 40년 전인데. 읽으면서 동성애와 모성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잠시 잊고 있던 그 시절의 인식을 떠올린다. 그리고 단숨에 읽지는 못했지만 읽을 때마다 순식간에 이야기에 빠져들어 그녀들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전작 <뮤즈>처럼 두 개의 시간대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1980년의 엘리스와 2017년의 로즈다. 로즈는 엘리스의 딸이고, 이제 그녀의 나이는 35살이다. 35살은 엘리스가 콘스턴스 홀든과 사귀던 시절 콘스턴스의 나이다. 이 나이에 눈에 들어온 것은 23살의 어린 나이였던 엘리스의 선택과 35살의 로즈의 각각 다른 선택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은 책을 다 읽고 그들의 선택을 돌아보면서다. 21살에 콘스턴스를 만나 사랑에 빠진 엘리스는 그녀와 동거한다. 이 동거는 행복했다. 그러다 콘스턴스의 소설 <밀랍 심장>이 할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잠시 삶의 무대를 옮긴다. 평탄한 삶에 큰 파도가 치기 시작한다.


로즈는 엄마 없이 자랐다. 그녀의 상상력은 엄마의 부재를 다른 환상과 모험으로 채워 놓았다. 크게 엄마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남자 친구 조와 동거하고 커피숍에서 일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이 일상에 작지만 큰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 생긴다. 바로 아버지 맷이 전해준 두 권의 책과 그 작가와 관련된 엄마 이야기다. 콘스턴스가 엄마를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란 사실이다. 현재 시점의 로즈가 이 사실을 알고, 그 책을 읽고, 엄마의 흔적을 찾으려고 한다면 1980년의 앨리스 이야기는 그녀가 어떻게 로즈를 낳고, 사라졌는지를 다룬다. 이 두 가지 시점은 각각 진행되는데 흥미로운 지점은 마지막 장의 인물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성애자인 엘리스는 코니와 그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젊다고 말하는 것에 불만이다. 개인적으로 공감한다. 내가 이십 대였을 때 이 말이 불쾌했지만 지금 내가 바라보는 이십 내는 젊기에 맞는 말이다. 영화 때문에 코니를 따라 할리우드에 왔지만 그녀가 할 일은 없다. 무료함은 젊은 시절에 견디기 힘든 일이다. 사랑하는 코니가 자신을 더 많이 보아줘야 하고, 자신의 사랑을 깨닫기를 바란다. 하지만 자신의 성공과 새로운 인물과 관계를 맺는 일을 즐기고 있던 코니에게 엘리스의 이런 행위들은 투정처럼 다가온다. 어쩌면 잠깐 사랑이 식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매력적인 여배우 바버라와 점점 가까워지는 관계도 한몫했다.


현재 시점의 엘리스는 자신의 현재가 불만이다. 남자 친구 조는 뜬구름 잡는 사업 이야기만 하고, 그의 엄마는 그녀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나이도 이제 적지 않다. 경제력이 담보되지 않은 결혼은 고난일 수 있기에 결혼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그녀에게 엄마와 콘스턴스의 관계는 묻어두었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밖으로 드러내게 한다. 우연과 노력이 겹쳐 코니의 집 도우미가 된다. 그녀가 처음 바란 것은 엄마의 마지막 행방에 대한 정보였는데. 가명을 사용했고, 이력을 위조해서 잠입했지만 점점 그녀는 코니에게 빠진다. 엘리스와 같은 사랑은 아니다. 이때 코니는 새로운 소설을 쓰고 있다. 30년만의 신작이다. 로즈는 소설 속 인물 속에서 엘리스의 흔적을 찾는다.


시대를 달리한 두 모녀의 삶을 다룬다. 다른 나이와 다른 선택을 보여주고, 그 과정을 섬세한 심리 묘사와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낸다. 두 모녀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만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엘리스는 코니를 만난 후 자신의 일을 포기했고, 로즈는 조와 사귀면서 그와 침몰하는 중이었다. 이런 삶과 비교되는 인물이 콘스턴스다. 60년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힘들게 산다. 소설의 성공은 그 과정 중 하나다. 성공은 그녀를 잠시 흔들어 놓는다.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오만하고 상처주기 쉬운지 잘 보여주는 것이 코니와 엘리스의 마지막 만남을 다룬 장면이다. 나이와 상관없다. 진심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진실한 감정을 감추고 두려워하면서 생긴 돌발적인 상황이다. 그 결과가 로즈의 현재 삶으로 이어진다.


60년대에 레즈비언이 보통 사람들에게 낯선 것이었다면 80년대 산모의 산후우울증이 낯선 병명이었다. 이 두 가지 낯섦을 해결하는 방식에서 두 여인의 삶이 갈라진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엘리스와 그녀의 딸 로즈는 또 다른 선택을 한다. 작가는 콘스턴스의 작품들 속에 페미니즘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시대의 한계 속에서 싸우고 노력한 여성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아마 로즈가 그 속에서 코니와 엘리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 것은 자신이 보고자 한 것을 최대한 본 결과일 것이다. 물론 그 내용도 어느 정도 담겨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모녀의 삶을 엮어 재밌고 단순하게 풀어낸 것 같지만 세밀하게 파고들면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마주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