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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평점 :
이 글을 쓰기 전 이전에 읽었던 제시 버튼의 책들에 대한 서평을 다시 한번 훑어봤다. 그녀의 작품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나의 저질 기억력이 내용에 대한 많은 부분을 빼앗아갔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다. 읽다 보면 몇 가지 키워드가 눈에 들어온다. 성차별, 피부색 등 시대의 한계들이다. 이 소설의 두 시점 중 하나는 현재와 같은 인식이 제대로 확산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불과 40년 전인데. 읽으면서 동성애와 모성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잠시 잊고 있던 그 시절의 인식을 떠올린다. 그리고 단숨에 읽지는 못했지만 읽을 때마다 순식간에 이야기에 빠져들어 그녀들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전작 <뮤즈>처럼 두 개의 시간대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1980년의 엘리스와 2017년의 로즈다. 로즈는 엘리스의 딸이고, 이제 그녀의 나이는 35살이다. 35살은 엘리스가 콘스턴스 홀든과 사귀던 시절 콘스턴스의 나이다. 이 나이에 눈에 들어온 것은 23살의 어린 나이였던 엘리스의 선택과 35살의 로즈의 각각 다른 선택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은 책을 다 읽고 그들의 선택을 돌아보면서다. 21살에 콘스턴스를 만나 사랑에 빠진 엘리스는 그녀와 동거한다. 이 동거는 행복했다. 그러다 콘스턴스의 소설 <밀랍 심장>이 할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잠시 삶의 무대를 옮긴다. 평탄한 삶에 큰 파도가 치기 시작한다.
로즈는 엄마 없이 자랐다. 그녀의 상상력은 엄마의 부재를 다른 환상과 모험으로 채워 놓았다. 크게 엄마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남자 친구 조와 동거하고 커피숍에서 일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이 일상에 작지만 큰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 생긴다. 바로 아버지 맷이 전해준 두 권의 책과 그 작가와 관련된 엄마 이야기다. 콘스턴스가 엄마를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란 사실이다. 현재 시점의 로즈가 이 사실을 알고, 그 책을 읽고, 엄마의 흔적을 찾으려고 한다면 1980년의 앨리스 이야기는 그녀가 어떻게 로즈를 낳고, 사라졌는지를 다룬다. 이 두 가지 시점은 각각 진행되는데 흥미로운 지점은 마지막 장의 인물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성애자인 엘리스는 코니와 그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젊다고 말하는 것에 불만이다. 개인적으로 공감한다. 내가 이십 대였을 때 이 말이 불쾌했지만 지금 내가 바라보는 이십 내는 젊기에 맞는 말이다. 영화 때문에 코니를 따라 할리우드에 왔지만 그녀가 할 일은 없다. 무료함은 젊은 시절에 견디기 힘든 일이다. 사랑하는 코니가 자신을 더 많이 보아줘야 하고, 자신의 사랑을 깨닫기를 바란다. 하지만 자신의 성공과 새로운 인물과 관계를 맺는 일을 즐기고 있던 코니에게 엘리스의 이런 행위들은 투정처럼 다가온다. 어쩌면 잠깐 사랑이 식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매력적인 여배우 바버라와 점점 가까워지는 관계도 한몫했다.
현재 시점의 엘리스는 자신의 현재가 불만이다. 남자 친구 조는 뜬구름 잡는 사업 이야기만 하고, 그의 엄마는 그녀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나이도 이제 적지 않다. 경제력이 담보되지 않은 결혼은 고난일 수 있기에 결혼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그녀에게 엄마와 콘스턴스의 관계는 묻어두었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밖으로 드러내게 한다. 우연과 노력이 겹쳐 코니의 집 도우미가 된다. 그녀가 처음 바란 것은 엄마의 마지막 행방에 대한 정보였는데. 가명을 사용했고, 이력을 위조해서 잠입했지만 점점 그녀는 코니에게 빠진다. 엘리스와 같은 사랑은 아니다. 이때 코니는 새로운 소설을 쓰고 있다. 30년만의 신작이다. 로즈는 소설 속 인물 속에서 엘리스의 흔적을 찾는다.
시대를 달리한 두 모녀의 삶을 다룬다. 다른 나이와 다른 선택을 보여주고, 그 과정을 섬세한 심리 묘사와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낸다. 두 모녀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만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엘리스는 코니를 만난 후 자신의 일을 포기했고, 로즈는 조와 사귀면서 그와 침몰하는 중이었다. 이런 삶과 비교되는 인물이 콘스턴스다. 60년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힘들게 산다. 소설의 성공은 그 과정 중 하나다. 성공은 그녀를 잠시 흔들어 놓는다.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오만하고 상처주기 쉬운지 잘 보여주는 것이 코니와 엘리스의 마지막 만남을 다룬 장면이다. 나이와 상관없다. 진심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진실한 감정을 감추고 두려워하면서 생긴 돌발적인 상황이다. 그 결과가 로즈의 현재 삶으로 이어진다.
60년대에 레즈비언이 보통 사람들에게 낯선 것이었다면 80년대 산모의 산후우울증이 낯선 병명이었다. 이 두 가지 낯섦을 해결하는 방식에서 두 여인의 삶이 갈라진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엘리스와 그녀의 딸 로즈는 또 다른 선택을 한다. 작가는 콘스턴스의 작품들 속에 페미니즘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시대의 한계 속에서 싸우고 노력한 여성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아마 로즈가 그 속에서 코니와 엘리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 것은 자신이 보고자 한 것을 최대한 본 결과일 것이다. 물론 그 내용도 어느 정도 담겨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모녀의 삶을 엮어 재밌고 단순하게 풀어낸 것 같지만 세밀하게 파고들면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