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도시의 아이들 바다 도시의 아이들 1
스트루언 머레이 지음, 마누엘 슘베라츠 그림, 허진 옮김 / 위니더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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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려고 선택한 책이다. 청소년 판타지 소설을 잘 읽는 편이 아닌데 왠지 모르게 끌렸다. 분량이 좀 되는 책인데 청소년 판타지라 그런지 가독성이 상당히 좋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청소년 판타지의 설정을 따라가는데 세계관이 흥미롭다. 가파른 산 위에 세워진 도시, 바다 위에 우뚝 솟은 산이다. 뭐지? 하고 읽다보면 이 세계가 대홍수 이후 생존한 사람들이 높은 산 위 도시에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도시의 성당 지붕에 고래가 걸리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부족한 상상력에 도움을 주는 그림이 나온다. 소설 속 삽화는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발명가 소녀 엘리는 고래가 부패해 폭파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고래를 찌른다. 그런데 그 속에서 손이 나오고, 한 소년이 나온다. 인공호흡으로 이 소년을 구한다. 이 소년을 본 재판관은 악마의 화신이라고 부르면서 화형에 처하려고 한다. 엘리는 그 소년이 화신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구하려고 한다. 왜 이런 확신을 하게 되었는지는 읽다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리고 핀이라는 소년이 등장해 그 소년을 구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한다. 엘리는 거부한다. 발명가 소년은 발명가 엄마가 만들어 놓은 기계들을 손보면서 산다. 물론 자신의 발명품도 만든다. 작가는 천천히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 하나씩 보여준다.


화신. 악마의 화신이다. 이 존재를 잘 알려주는 것이 클로드 헤스터메이어 교수의 일기다. 절친의 죽음과 그 후 찾아온 친구의 모습을 한 악마를 일기에 기록했다. 이 세계에서 세상을 물속에 빠트리고 신들을 죽인 존재가 악마다. 이 화신을 죽이면 죽은 후 성자가 된다. 지금까지 많은 화신이 나타났고, 재판관들은 이 화신을 죽이는 존재다. 하그레스 재판관은 가장 최근에 나타난 화신을 죽였고, 그 과정에 자신의 한쪽 팔을 잃었다. 화신은 악마에게 자신을 내어주면 폭발한다. 화신을 찢고 나온 악마의 힘은 엄청나다. 이 세계를 물에 잠기게 한 악마에 대한 두려움은 화신에 대한 두려움과 맞닿아 있다.


소년을 살리기 위해 엘리는 소년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 화신이 아니라는 확신은 재판관들이 화신이라고 판단하면서 충돌한다. 세스라고 부르는 이 소년은 바다와 연결되어 있다. 화형에 처해지기 전에는 아직 이 능력이 발현하지 않았다. 이 특별한 능력은 이 소설에서 몇 번이나 멋진 장면과 활약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 이전에 세스를 구해야 한다. 이때 다시 핀이 나타나 그를 구하는데 돕겠다고 한다. 그리고 화형식 바로 전 세스가 사라진다. 엘리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세스를 발견한다. 고래의 몸에서 나왔고, 바닷물을 조정할 줄 아는 특별한 소년이다. 화신을 찾아 죽이려는 재판관들과 이 소년을 지키려는 엘리의 대결이 펼쳐진다. 이 사이에 클로드 헤스터메이어 교수의 일기는 이 악마의 힘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려준다.


비밀처럼 숨겨둔 몇 가지 설정은 쉽게 알 수 있다. 작가가 아이들을 위해 비교적 쉽게 그 단서를 앞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종말 후 세계를 그려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미래 소년 코난>이 떠오른다. 아이들의 활약 때문일까? 물에 잠긴 세계에서 섬들은 경작지가 되고, 도시가 된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아직 먼 곳까지 갈 마음이 없다. 아니 다른 섬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어쩌면 일부러 숨긴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는 나중에 나오고, 화신을 둘러싼 대결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바다 도시 속에서 세스를 숨기고, 비밀을 찾아내고, 화신과 싸워야 한다. 전형적인 설정이지만 화신이란 존재가 색다르다. 화신이 사람 몸속에서 꿈틀거려 그 몸을 빼앗으려고 하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아마존으로 검색하니 얼마 전 2편이 나왔다. 1권을 모두 읽은 지금 과연 작가가 이 세계를 어떤 식으로 그려내고, 풀어내었을지 궁금하다. 소설 속 세스의 능력과 그가 나오면 처음 내뱉은 말들이 어떻게 연결될지도. 그리고 엘리의 발명품들이 완성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아주 재미있는 역할을 한다. 다만 엄마였던 한나의 실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아! 엘리의 절친 안나에 대해 이야기를 다루지 않은 것은 스포가 너무 많을 수 있기에 뺐다. 표지 그림 속 한 명은 분명 안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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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 스톡홀름신드롬의 이면을 추적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
롤라 라퐁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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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아마도 퍼트리샤 허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그녀의 사건을 인식한 것은 한 팟캐스트에 이 이야기가 소개된 것을 들었던 그때다. 그리고 얼마 후 이 소설이 출간되었다. 인터넷에 퍼트리샤 허스트를 검색하면 그녀를 납치한 공생해방군과 스톡홀름 증후군이 함께 나온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녀의 행동을 스톡홀름 증후군이 아니라고 보면서 그 이면을 추적한다. 대부호의 딸이 갑자기 극좌조직의 일원이 되어 강도짓을 하는 상황을 단순하게 보면 협박과 세뇌 말고는 쉽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단순화를 피해 그 당시의 사건들을 하나씩 검토하고 분석한다.


‘17일’이란 제목은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가 아닌 체포된 퍼트리샤 변호에 사용될 내용을 취합하기 위한 작업 일수다. 이 작업을 의뢰받은 인물은 진 네베바이고, 그녀는 작업 도우미로 비올렌을 선택한다. 이 소설의 앞부분에서 네베바의 자료를 찾고 요약하는 일들 비올렌이 한다. 네베바와 함께 한 시간이 17일이다. 퍼트리샤의 납치와 그녀가 처음 보낸 비디오 성명서 등이 나온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것을 활자로 읽게 되면 나의 의미가 전달되는데 이 테이프들이 그런 역할을 한다. 납치된 후 그녀가 자발적으로 SLA(공생해방군)에 참여하는데 걸린 시간도 불과 두 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녀의 참여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그녀 재판의 핵심이다.


1974년 2월 4일 미국 언론재벌 상속녀 퍼트리샤 허스트가 납치되었다. 보통의 납치범들은 돈을 요구할 텐데 이 조직은 조금 다르다. 극좌 조직인데 돈 대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것을 요구한다. 이 선언문을 보고 비올렌이 놀라는 것은 미국에 존재하는 빈곤자의 숫자다. 비올렌은 68혁명의 나라에서 정치적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소녀다. 수많은 자료 속에서 퍼트리샤의 심리 변화를 따라가고, 그 이면에 놓여 있는 감정을 파헤친다. 이것은 다시 네베바의 저서 <머시, 메리, 패티>로 이어진다. 그들은 각각 다른 시간 속에서 기존의 질서를 거부한 여자들이다. 물론 머시와 메리 이야기는 아주 간결하게 다루고 있다.


퍼트리샤의 전향을 두고 보여주는 부모의 모습은 다음의 문장으로 대변된다. “부모는 자기 자식을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자식이 부모가 마련해놓은 정체성을 거부하고 다른 정체성을 가지려 하면 부모는 자식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요.” 실제 이 문장의 많은 부분이 사실이다. 하지만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이 문장을 단순화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그리고 전향한 그녀를 두고 과거의 그녀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와 감상이 뒤섞여 나온다. 약혼자에 대한 퍼트리샤의 신랄한 비판은 실제 가부장적 남성의 모습 그대로다. 어머니가 걱정하는 것도 딸의 안위보다는 자신들의 위신이지 않는가. 딸의 변론에 많은 돈을 쓴 것도 딸에 대한 사랑보다는 다른 감정이 더 우선했을 것이다.


소설은 단순히 퍼트리샤 허스트 사건에 국한해서 머물지 않는다. 네베바가 경험했던 처참한 현실과 체제를 흔들 수 있는 조직에 대한 강력한 조처 등이 눈길을 끈다. 70년대 중반은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릴 때다. 인종 차별 문제가 사회적 문제가 되던 시절이다. 작가는 이 SLA 조직을 무너트리는 과정을 생중계로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몇 명의 SLA 조직원을 무력진압하기 위해 FBI 둥이 사용한 금액이 6백만 불이 넘는다. 이 조직이 요구한 것을 실행하는데 드는 비용이 훨씬 저렴하다. 물론 이 조직을 요구 사항을 따라하면 그 여파는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체제는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가끔, 아니 자주 상상도 할 수 없는 돈을 쓴다.


제목과 퍼트리샤 허스트란 이름이 나에게 작은 선입견을 불어넣었다. 단순히 퍼트리샤 허스트가 SLA에 가담하고 활동한 내용만 다룰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스톡홀름 신드롬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 이 사건을 단순화했다. 개인적인 습관 중 하나가 단순하게 보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이런 단순함의 집합들이다. 퍼트리샤가 타니아로 이름을 바꾸고, 은행 강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것을 많은 사람들이 세뇌라고 말하지만 작가는 그녀의 자유의지란 결론에 도달한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인물인 화자가 긴 세월을 지나 이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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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 - 탐정 아이제아 퀸타베의 사건노트
조 이데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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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멋진 소설이다. 화려한 수상 이력은 거짓이 아니었다. 재미와 가독성을 모두 놓치지 않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 속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콤비의 멋진 활약이 돋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한다. 셜록 홈즈 식의 추리와 거친 액션이 어우러지면서 펼쳐지는데 벌써 다음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생긴다. 오랜만에 취향에 딱 맞는 시리즈가 등장했다. 개인적인 아쉬움이라면 내가 LA를 몰라 그 재미의 상당 부분을 놓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솔직히 말해 내가 좋아했던 시리즈들이 나오다가 중단된 적이 많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현재 5권까지 나왔다.


IQ는 아이제아 퀸타베의 앞글자를 딴 별명이다. 하지만 그에게 사건을 의뢰하거나 아는 사람들에게는 머리가 좋다는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아이제아는 무면허 탐정이다. 동네에서 생기는 사건이나 문제를 해결해주고 작은 수수료를 챙긴다. 돈을 받기도 하지만 의뢰 내용에 따라 음식물로 수수료를 대체한다. 그가 어떻게 무면허 탐정의 길로 들어오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이야기는 과거의 실수를 들려주는 이야기 끝부분에 나온다. 주변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주었고, 이것이 입소문으로 퍼져 해결사가 되었다. 그가 돈을 요구한 사건을 해결하는 한 장면은 기발하면서도 그가 유지하는 철학이 보인다. 현재의 시간이 하나의 의뢰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과거는 현재의 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첫 장면만 보면 하나의 사건만 나올 것 같다. 아이제아가 우연히 한 여학생이 납치된 사실을 알고 뒤좇는데 대단한 속도감과 확신으로 가득하다. 생각보다 빠르고 확실하게 해결한 후 바람처럼 사라지는데 이때부터 IQ에 반했다. 그리고 그는 장애 소년을 위해 해변가 리조트를 구하려고 한다. 목돈이 필요하다. 학창 시절 친구이자 악연으로 이어져 있는 도슨이 말한 사건을 맡는다. 그것은 유명 래퍼 캘빈을 죽이려는 사건이다. 표지의 그림이 핏불이 맞다면 괴물 같이 거대한 핏불이 캘빈을 물어 죽이려고 한 사건이다. 이 모든 장면이 CCTV에 찍혔다. 아이제아는 이 영상부터 시작하여 암살자를 찾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그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일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이야기의 한 축인 과거는 아이제아의 형 마커스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머리가 좋고, 일도 열심히 하면서 동생과 함께 살던 형은 뺑소니 차에 치여 죽었다. 뒤로 봤다면 죽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동생에게 이야기하면서 뒤로 걷다가 차에 치였다. 형의 죽음은 그의 삶을 완전히 뒤흔든다. 형의 바람은 좋은 대학에 진학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인데 이 죽음이 그를 나락으로 떨어트린다. 형의 죽음이 미성년자인 그를 보육가정으로 보낼 수도 있다. 그 집에 머물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 이때 만난 인물이 갱의 일원인 도슨이다. 월세를 나누어 내기 위해 그를 집에 들였는데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도슨과 함께 2인조 절도범이 된 것이다.


좋은 머리는 보통의 절도범이 무작정 저지르는 도둑질 대신 정확한 계획 실행으로 이어진다. 첫 도둑질이 그를 움츠려 들게 하지만 곧 익숙해진다. 이 콤비의 탄생은 바로 이 절도 행위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도슨이 요리를 좋아하고 상당한 재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절도 행위 중에 주방 기구 때문에 시간을 초과한 적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훔친 장물들을 처분하는 과정에 알력이 생기면서 틈이 벌어진다. 느리지만 안전하게 장물을 처분해 돈을 만들려는 아이제아에 비해 도슨은 빨리 처분해 현찰을 쥐고 싶어한다. 쉽게 생긴 돈을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사는데 쓰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 갈등은 도슨의 어슬픈 아이제아 흉내로 이어지고, 이 사실을 안 아이제아가 이 일에 개입하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여학생 납치 사건을 가볍게(?) 해결한 후 맡은 래퍼 사건은 생각보다 쉽게 암살자를 찾아내지만 물증이 충분하지 않다. 여기에 내부자가 정보를 제공하는 듯한 장면이 나오면서 용의자들이 늘어난다. 전 아내가 가장 유력해 보이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두 명의 보디가드로 수상하다. 스킵이라고 말하는 암살자는 미친 놈 같은 행동을 한다. 번아웃에 빠진 래퍼도 정상은 아니다. 죽음의 공포와 삶에 대한 회의는 그의 삶을 잠식한다. 아이제아는 이 사건을 해결해야만 원하는 리조트를 구입할 수 있다. 스킵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도 해야 한다. 엮이고 꼬인 상황이 이어지지만 길고 짧은 장면들과 과거의 사연들이 조금씩 맞물리면서 독자의 속도를 조절한다.


작가가 셜로키언이라고 하는데 이 소설도 셜록 홈즈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 단 현대 LA를 배경으로 했다. 귀납적 추리 능력과 형를 친 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익힌 관찰력 등의 몇 가지 기술은 그가 무면허 탐정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첫 장면에서 보여준 멋진 레이싱 실력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 알려주는 마지막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사실적으로 연예인들의 삶을 다룬 장면이나 바뀐 음반 시장의 분위기 등도 눈에 들어온다. 특히 멋진 것은 아이제아의 성격이다. 자존감을 잃지 않고 의뢰인과 거리를 잘 유지하는 그를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 이후 도슨과 어떤 콤비를 이루면서 이야기를 풀어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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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센 벵거 자서전 My Life in Red and White
아르센 벵거 지음, 이성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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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프리미어 리그를 즐겨 보지는 않는다. 가끔 시간 나면, 혹은 손흥민의 경기가 있으면 보는 정도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해외 축구 정보를 꾸준히 찾아본다. 늦은 밤이나 새벽에 경기를 보면서 재미가 어느 정도 든 모양이다. 그리고 아스널을 생각하면 책에서도 나왔지만 그들의 무패우승과 티에리 앙리가 떠오른다. 앙리가 ‘무한도전’에 나와 어리둥절해하던 모습도 스쳐 지나간다. 그 당시만해도 앙리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최근에 가장 EPL 최고의 선수로 뽑혔다는 기사를 봤다. 책 부록에 나온 아스널 기록을 보면서 놀란다. 대단한 득점력이다.


앙리를 떠올리면서 아르센 벵거의 위대함을 몰랐다면 나의 축알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축구에서 감독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축구보다 야구를 훨씬 더 좋아하고 즐겨보는데 야구는 감독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약한 종목이다. 축구가 점점 더 상업적으로 변하고, 높은 주급을 받게 되면서 유명 선수들과 함께 높은 연봉을 받는 감독들 이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축알못이지만 이제는 왜 그들이 그런 연봉을 받는지 이해한다. 감독들이 상대방에게 이기기 위해 어떤 전술을 짜고, 어떻게 선수들을 내세우는지, 선수 교체 타이밍과 왜 바꾸는지도 조금씩 이해한다. 이 책은 한 위대한 감독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 이해의 깊이를 더해준다.


솔직히 말해 벵거 감독이 프랑스 사람이란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 책의 제목도 그가 뛰거나 감독한 팀들이 입은 유니폼 색과 관련 있다. 벵거 감독은 엄청나게 긴 세월 동안 한 팀의 감독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을 제외하면 그 다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시대에 맨유의 퍼거슨 감독이 있었다는 것은 또 다른 불행이다. 여기에 책에서 언급조차 하지 않은 천적 무리뉴 감독까지 더하면 그가 그 기간 동안 이룬 대단한 성적은 정말 엄청난 것이다. 엄청난 선수들과 유명 감독으로 무장한 팀마저도 계속적으로 1위를 하지 못하는 EPL을 생각하면 1위를 하지 못한 것만으로 평가하기에는 너무나도 뛰어난 성적이다. 물론 늘 우승을 바라는 팬들의 입장에서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두툼한 책은 아니지만 이 책 속에는 그가 걸어온 인생이 담겨 있다. 출생부터 어린 시절과 선수의 추억과 어떻게 감독이 되었는지 등이 나온다. 지금과 사뭇 다른 상황의 그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 정도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얼마 전 영국의 한 팀이 토트넘과의 경기 결과로 몇 년 동안 운영할 자금을 얻었다는 기사를 봤기에 조금은 이해가 된다. 하부 리그 선수들은 열정은 가득하지만 자금 부분은 상대적으로 많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금이 풍부하지 못한 팀은 저비용 고효율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다. 벵거의 아스널이 지속적으로 유지했던 정책이다. 새로운 축구장을 짓고 그 비용을 모두 상환했다는 자랑이 꾸준히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된다. 미 프로야구에서 <머니볼> 신드롬을 불러온 오클랜드 어슬래틱스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르센 벵거하면 자연스럽게 아스널이 떠오르다 보니 그가 일본 나고야팀 감독이었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온다. 그 당시 이미 젊고 재능 있는 감독이자 유명한 클럽으로 감독 제의를 받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흥미로운 점이다. 그리고 그가 EPL 감독이 될 당시만 해도 외국인 감독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도 지금의 상황과 비교하면 정말 하늘과 땅 차이다. 그가 아스널 감독을 하는 사이에 구단들은 외국 자본에 팔려 나갔고, 유명한 외국 감독들이 취임했다. 그 감독들 대부분은 성적 부진의 이유로 몇 년을 머물지 못했다. 이것은 상위권 팀의 경우에 더 심하다. 가끔 현 맨시티 감독인 펩 과르디올라가 음식 조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기사를 보는데 EPL에 식단 조절 등의 시스템을 가져온 인물이 아르센 벵거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스카우팅 시스템과 데이터를 이용한 것 등이다. 이렇게 좋은 시스템 등은 금방 다른 팀에도 전파된다.


그가 하고 싶어하는 축구는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축구로 승리하는 것이다. 이 축구를 위해 많은 자금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아스널은 늘 자금 부족에 시달렸다. 아스널이 최고액으로 영입했다는 선수들의 이적 자금은 보면 유럽 빅리그 우승팀들의 이적 자금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이 스카우트 속에 한국의 박주영이 들어가 있는데 그는 겨우 교체 포함 일곱 경기만 뛰었다. 재능은 있지만 자신감이 부족했다는 지적은 기회의 부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가 영입해서 대단한 성적을 거둔 선수들에 대해 쓴 글을 보면 비교되는 부분이다. 최근, 아주 가끔 유럽 축구에 대한 책을 읽는데 읽을 때마다 파편적으로 알고 있던 사실을 하나로 꿰고, 추억 속 선수들을 마주한다. 그와 관련된 선수와 감독들 자료를 혼자 열심히 검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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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뭇 강펀치 안전가옥 쇼-트 7
설재인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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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쇼트 7권이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를 재밌게 읽고 있다. 한동안 안전가옥 책들을 찾아보지 못한 사이에 몇 권이 더 나왔다. 그렇게 두툼하지 않으니 언제 시간 나면 한 권씩 읽어야겠다. 이번 작품의 작가는 사실 낯설다. 이전에 읽은 작가들은 다른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완전 처음 읽는다. 작가 이력을 보면 특목고 수학교사가 보인다. 대책 없이 사표를 내었다는 것도, 어쩌다 복싱을 수학 교육보다 오래하게 되었다는 정보도 신선하고 놀랍다. 단편 세 편이 실린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인 <사뭇 강펀치>가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아마도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표제작 <사뭇 강펀치>는 한국 교육과 체육계의 부폐와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현진과 윤서란 두 여중생을 화자로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다루고 있는 내용에 비해 이야기는 조금 가볍게 풀어낸다. 여중생의 시선으로 그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는데 이 단편을 읽으면서 몇 개의 체육계 비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좋은 대학을 들어가는 방법 중 하나로 체육을 이용한다는 것을 이전에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비인기 종목이 더 좋다는 표현을 보면 괜히 암울해진다. 윤서 이모가 나서야만 하는 상황이란 부분도 그렇다. 스스로 자정능력을 잃은 체육계와 그 속에서 자신들의 꿈을 위해 열정을 다 바치는 선수들을 떠올리면 암담하다. 하지만 강단 있는 현진의 행동을 보면서 작은 희망을 불씨를 엿본다.


<그녀가 말하기를>은 도입부와 본격적인 이야기가 왠지 유리되어 있는 것 같다. 경찰 이야기에서 그녀의 이야기로 넘어간 후 마무리가 왠지 모르게 뚝 끊어진 느낌이다. 하나의 음모론과 그 음모론에 기댄 사이비종교단체를 배경으로 한 여성 주리의 삶을 들려준다.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고, 온라인으로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사람들에게 이 모든 일들은 하나의 볼거리일 뿐이다. 하지만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알려줄 때 그 참담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자신이 보고 믿고자 하는 것만 믿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 자신의 삶도 잠시 돌아본다. 그처럼 중증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에서 그런 점이 있다. 불편하지만 완전히 낯설지만은 않다.


<앙금>은 쌍둥이 이야기다. 동생 미단이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서 동생을 찾으려고 미진은 처음으로 동생방에 들어간다. 2년제 대학 졸업 후 회사 취직해 대리를 단 그녀에 비해 미진은 4년제를 나왔지만 취직을 못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극단의 삶과 성격을 가진 둘을 미진의 시선으로 풀어내는데 작가는 미단의 삶을 하나씩 꺼내 보여준다. 그냥 회사 일에만 빠져 있는 것 같은 그녀의 다른 과거나 삶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다. 그리고 그녀가 사라지기 전에 있었던 사건을 알게 되면서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마주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마무리가 낯설고 어색하다. 최소 중편 분량으로 늘려 사건을 더 파고들고, 두 쌍둥이가 가진 감정의 골을 더 자세하게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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