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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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오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제는 고인이 되었지만 그는 한때 매년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꼽혔다. 그의 인지도를 생각하면 내가 읽은 책은 거의 없다. 집을 뒤지면 몇 권의 소장 도서들이 나오겠지만 이상하게 손이 잘 나가지 않는다. 단순히 읽기 힘들어서도 아니고,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면 낯익은 표지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확실한 것은 한 권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저질 기억력이지만 아마도 맞을 것이다. 그의 책이 출간되면 늘 관심을 두었다. 읽어야지 생각을 그 당시는 했을 텐데 그 결과는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번 책도 받기 전 쪽수를 보고 읽기 힘들 것이란 짐작을 미리 했다. 착각이었다. 물론 역주를 모두 찾아가면서 읽었다면 두 배 정도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르지만.


유다. 예수를 떠올리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유다하면 배신자가 먼저 떠오른다. 유다를 다른 식으로 해석한 책들이 나오는 소개를 봤지만 그 내용까지 읽은 적은 없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 쉽게 잊고 있는 유대인 예수를 이 소설은 정면에 내세운다. <다빈치 코드> 같은 스릴러 등에서 내세우는 음모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바라본 유대인 예수를 다룬다. 긴 세월 동안 유대인 학자들이 예수를 어떻게 보았는지 학술적인 차원에서 하나씩 풀어내는데 그 속에는 야훼의 아들이자 신인 예수의 모습은 없다.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발칙하고 무례한 소설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유대인들마저도 잘 다루지 않는 유다를 다루면서 아주 논쟁적인 소설로 만들었다.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 인물은 유다를 연구하는 대학원생 슈무엘 아쉬다. 집안이 몰락하고, 여친이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그러다 학식이 높은 장애인의 입주 말동무를 구하는 공고를 보고 그 집에 간다. 그를 고용한 여인은 아탈리야 아브라바넬이고, 마흔다섯 살의 미망인이다. 슈무엘이 돌봐야 할 인물은 그녀의 시아버지인 게르숌 발드다. 슈무엘은 아탈리야에게 매혹되고, 발드는 그 매혹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가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 배신자로 낙인 찍인 쉐알티엘 아브라바넬임을 알게 된다. 그는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 아랍인들과 화해를 주장했던 인물이다. 그 또한 유다처럼 유대인들의 역사 속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있었다.


두 배신자들의 과거를 파헤치고, 그들의 사상 이면을 파고든다. 작가는 유다를 첫 번째 기독교인이자 마지막 기독교이고, 유일한 기독교인이라고 말한다. 기존의 인식을 완전히 뒤바꾸는 주장이다. 슈무엘과 발드의 대화 속에 기독교가 가진 역사적 문제점들이 간략하지만 날카롭게 지적된다. 학문적이고 이성적인 관점에서 본 문제점들이다. 아브라바넬의 경우는 현실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 이스라엘 전체와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다비드 벤구리온은 아랍과의 평화적 공존이 결코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굉장히 이상적인데 현실의 이스라엘 국가 수립에서는 불가능한 주장이다. 물론 그가 염려한 미래의 모습은 현재도 진행중이다. 지금 시점에서 봐도 아브라바넬의 주장은 너무 급진적이다.


유대인들이 수천 년을 떠돌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유다와 유대인을 동일시한 기독교인들의 시선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도 유대인이었고, 기독교를 전파한 인물들도 유대인이었다. 이런 사실은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가려질 뿐이다. 유다에 대한 유대인들의 암묵적인 침묵을 다룬 부분은 그들이 겪은 역사적 고난과도 관계가 있다. 아브라바넬이 잊혀지고 배신자로 인식되는 과정에서 그 가족들 또한 유배자처럼 지낸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글들을 없앴고, 그 흔적은 사라진다. 그가 주장했던 의견들은 정치적 이유에서 역사 속으로 묻혔다. 작가는 유다처럼 그도 시간의 흐름 속에 다시 재평가 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주장한 아랍인들과의 공존은 긴 세월 동안 중동에 머물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것이다.


슈무엘의 아탈리아에 대한 열정과 아탈리아의 냉정한 시선은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다. 그 이전에 이 집에 온 남자들은 모두 아탈리아에 의해 내쳐졌다. 발드가 슈무엘에게 이를 경계하라고 한 것도 이유가 있다. 그는 벤구리온의 주장에 동조한 인물이지만 그의 아들이 죽은 후 생의 의욕을 많이 상실한 상태다. 이 끔찍한 사고의 기억은 아탈리아와 발드의 삶을 완전히 뒤흔든다. 입주한 젊은 이들과의 대화는 그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일이다. 각자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할 일만 하는 약간 기묘한 동거가 깨어지는 것은 슈무엘의 사고 때문이다. 아브라바넬의 방이 열린 것도, 아탈리아가 다가온 것도 이 사고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들은 그가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몬다. 갇힌 세계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다듬었지만 밖으로 나아가지 못한 그가 이 집을 떠나 자연을 보면서 아름다움과 새로운 삶을 생각하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결코 가벼운 소설이 아니다. 이번에는 주석을 대부분 스쳐 지나갔지만 나중에 천천히 읽으면서 더 많은 생각을 해보고 싶다. 어느 부분은 나의 편향적 시선이 작용했다는 것을 느끼는데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전에 생각보다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시간 내어 한 권씩 읽어보고 싶다. 묵직한 내용이지만 주석에 집착하지 않으면 가독성이 생각보다 좋아 잘 읽힌다. 작가의 배신자에 대한 경험이 이 소설 속에 녹아 있을 테지만 다시 한 번 배신이란 단어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스라엘 건국을 다른 시각에서 보는 시간도 되었는데 역시 더 공부가 필요한 부분이다. 공부할 거리를 잔뜩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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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나무
아야세 마루 지음, 최고은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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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예상하지 못한 단편 일곱 편이 실려 있다. 이 단편집은 나오키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고교생 나오키상을 수상했다는 소개 때문에 선택했다. 이 선택은 모두 읽은 지금 작은 감탄으로 이어지고, 작가가 그려내는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사람들의 신체를 분리시키고, 남녀의 시간대가 나누어져 있고, 물고기처럼 알을 낳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고민을 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물론 그 이면에는 사랑이란 감정과 일상적 삶이 놓여 있지만 이 강렬한 세계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당연히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검색해본다. 한 권 더 번역된 책이 있지만 역시 단편이다.


표제작 <치자나무>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뭐지?’였다. 내연녀가 요구한다고 자신을 한 팔을 내어주는 남자보다 너무 쉽게 분리해서 주는 장면에 놀랐다. 이 세계에서는 이런 분리가 아주 특별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여자는 이 팔을 애지중지 가꾸는데 그 남자의 아내가 찾아온다. 남편의 팔이 사라졌으니 당연히 알지 않겠는가. 이 특이한 세계 속에 작가는 사랑이란 감정을, 그 흔적으로 좇는다. 이 단편의 놀람은 조금은 낯익은 설정의 <꽃벌레>로 이어진다. 운명의 상대에게서 꽃이 피는 것과 그 향기를 맡게 되는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페르몬과 이전에 벌레가 사랑의 감정을 조종한다는 소설을 읽었기에 낯설지만은 않다. 그런데 이 꽃과 향기의 정체를 알게 된 후에 벌어지는 상황은 또 다르다. 자신들의 사랑이 단지 벌레의 조종이란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의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사랑의 스커트>와 <가지와 여주>는 엇갈린 사랑 이야기다. 평범하지만 이 평범한 속에 담긴 작은 감정들의 표현이 좋다. 이 두 작품은 평범한 세계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자가 자신의 감정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어떻게든 그 관계를 이어가려고 하는 모습이 시선을 끈다면, 후자는 새로운 시작을 바라지만 다른 상황의 두 남녀를 보여준다. 2-30대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전자이고, 후자는 50대의 사랑 이야기다. 후자는 가지색 염색과 여주 요리를 뒤섞어 중년 이후의 삶을 조용히 그려내었는데 전자는 머리 커트와 스커트 제작이 이 관계를 이어준다. 작은 인연의 끈이 조용하게 떨린다. 담백한 표현으로 가득하지만 아련한 감정이 단편 속에서 꿈틀거린다. <얇은 천>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권태와 공허함을 느낀 중년 부인의 어린 소년을 대상으로 한 인형 놀이를 다룬다. 남편의 막말과 아들의 막말 이면이 서로 다르다.


<짐승들>은 여자가 뱀으로 변신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에 분노한 여자가 뱀으로 변해 그 남자를 먹는다. 이 격렬한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남자들이 낮을, 여자들이 밤을 지배하는 세계이지만 서로 부부가 되어 살아간다. 여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남편을 통해 낮의 시간 이야기를 듣는다. 낮에 나타나 남자들을 공격하는 괴물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정체는 쉽게 알 수 있다. <산의 동창회>는 읽으면서 의인화한 동물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알을 낳고, 몇 번 낳고 나면 죽는다고 한다. 바닷가 마을이 배경이고, 바다에서는 이들을 잡아먹는 거대한 황금 지느러미가 있다. 무론 이들을 지켜주는 해수도 존재한다. 이 해수는 이들 중 일부가 변신한 것이다. 주인공은 다른 친구들처럼 알을 낳지도, 유모가 되지도, 해수로 변신하지도 않고 기록만 할 뿐이다. 이 기록하는 삶이 왠지 모르게 조용한 울림을 준다.


일곱 편 중 네 편이 판타지 소설처럼 다가온다. 작가는 세계를 확장하지 않고, 축소해서 그 사회 속 사람들의 감정을 간결하게 풀어놓았을 뿐이다. 기이하고 묘하고 어떻게 보면 섬뜩한 세계다. 하지만 이 기괴한 세계를 지우고, 사람들의 감정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감정들이 보인다. 사랑, 질투, 그리움, 공허, 분노 등의 감정이다. 여기에 옆에 머물면서 죽음을 관찰하고, 그것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한 편씩 천천히 읽었는데 어느 순간 단숨에 달렸다. 매력적인 이야기들이다. 뒤섞인 이야기와 감정들이 머릿속에서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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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
S. K. 본 지음, 민지현 옮김 / 책세상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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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스릴러란 설명에 혹했다. <마션>을 아직 읽지도, 영화를 보지도 않았지만 어떤 내용인지는 알고 있다. <마션>같은 생존 스릴러란 소개는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펼쳐질지 상상하게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나의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약간은 아쉬움을 남겼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할리우드에서 각본가로 일한 경력이 이 소설 속에 녹아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 고립되고 멀고 홀로 남은 승무원의 힘겨운 귀환을 다루었을 것이란 기대를 어느 정도는 충족시키지만 어느 순간 분위기가 바뀌면서 전체 이야기가 흔히 보는 할리우드 공식처럼 흘러갔다. 덕분에 가독성이나 재미는 있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욕심이 너무 과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로 우주 탐사선 호킹 2호가 떠났다. 유로파에서 과학 실험을 진행하고, 그 자원을 채취하기 위한 우주선이다. 이 우주선의 선장은 메리엄 녹스다. 그녀는 흑인에 여성이지만 탁월한 업적으로 심우주 탐사선의 선장이 되었다. 소설의 시작은 메이의 어릴 때 사고 기억이다. 자신의 수영 실력을 뽐내다 연못에서 허우적거렸던 기억이다. 우주선의 흔들림에 그녀는 깨어난다. 현실로 돌아왔다. 다른 승무원들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주선의 인공지능이 그녀를 돕는다. 메이는 인공지능에게 자신의 어머니 이름을 붙인다. 이브다. 만능일 것 같은 인공지능은 충분한 자료가 없고, 메이는 역기억상실에 걸렸다. 자신이 왜 병실에 누워 있었고, 무슨 사고가 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우주선의 상태도 나쁘다. 살아 돌아가기 위해서는 나사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기억상실과 우주공간에서의 생존이란 두 가지 키워드에, 그녀의 과거사가 끼어들고, 하나의 음모가 그 바탕을 이룬다. 폭주하는 우주선을 안정화시켜야 하고, 이 우주선을 지구로 돌려야 한다. 이렇게 적으면 쉬워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춥고 망막한 우주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작은 실수가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주선에 난 작은 구멍 하나로 사람이 빨려 들어가면 죽는다. 멈춘 상태라면 이 구멍이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주선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고 있다. 다른 승무원들도 찾아야 한다. 우주선이 완전하게 기능한다면 이브가 전체를 스캔해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보고할 수 있지만 이브의 기능도 제한적이다. 어렵고 아주 힘든 상황이다.


이브가 나사에 그녀의 생존과 우주선의 상태를 알린다. 우주선 설계자 라지와 메이의 남편 스티븐 등이 이 사실을 알고 그녀의 귀환을 돕고자 한다.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주선에 이상이 생긴다. 쉽게 생각하면 인공지능의 해킹으로 문제를 만드는 것이지만 이것은 정답이 아니다. 이 과정에 메이는 거의 죽음 직전까지 도달한다. 나사의 직원들은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한다. 이때부터 스티븐의 분량이 늘어난다. 메이와 스티븐이 어떻게 만났고, 둘이 어떤 식으로 사랑을 쌓았는지, 그들 사이에 이혼 이야기가 오고 간 이유 등이 과거와 현재의 뒤섞인 구성 속에서 하나씩 펼쳐진다. 긴박함에 양념처럼 끼어든 로맨스는 뒤로 가면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과 이곳에서의 생존만 다루어도 결코 지루하지 않을 텐데 작가는 여기에 음모와 뒤틀린 욕망과 새로운 과학기술을 뒤섞었다. 현실적인 기술 문제는 뒤로 밀리고, 스릴러와 액션이 앞으로 튀어나온다. 이야기에 가속도는 붙지만 전체적인 구성이나 사실성 등은 조금씩 힘을 잃어간다. 너무 많이 욱여넣은 느낌이다. 기대한 바와 다른 전개다. 물론 이런 식의 전개가 더 대중적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본 장면들이다. 작가는 시간과 공간을 뒤섞고, 과거와 현재를 엮으면서 음모의 실체를 찾아낸다. 하지만 왜 그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내가 놓친 것일까? 취향을 많이 탈 SF 스릴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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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어하우스 - 드론 택배 제국의 비밀 스토리콜렉터 92
롭 하트 지음, 전행선 옮김 / 북로드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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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으로 물품을 배송하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다. 지금도 언론을 통해 아마존 등의 거대 기업들이 드론 택배 시도하고 있음을 보도하고 있다. 코로나 19 이후 한국의 각 가정은 마트보다 인터넷 배송으로 식품 등을 구입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가 점점 더 비대면 영업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 소설은 이런 현실보다 더 나아가 지구 온난화, 엄청난 실업난, 대량 총기 사건 등으로 불안정해진 미래 세계의 한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이야기는 클라우드란 대기업을 무대로 펼치는 SF 스릴러다. 가독성이 뛰어나고, 자신도 모르게 점점 바뀐 체제에 익숙해져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블랙프라이데이는 미국 최대의 판매 행사일이다. 이 날 대량 학살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사람들로 하여금 열린 광장으로 나가길 주저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생필품 등을 클라우드의 드론 택배로 구입한다. 클라우드는 점점 거대해지고, 클라우드의 지점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도시를 이룰 정도까지 커졌다. 높은 실업률은 안정적인 직장인 클라우드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향하게 만든다. 이 소설의 두 주인공 팩스턴과 지니아도 이렇게 입사 시험을 치른다. 입사 시험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가끔 시험에 떨어지는 사람이 생기고, 한 달 뒤나 되어야 재시험의 기회가 생긴다.


팩스턴은 퍼펙트에그란 제품을 발명해 시장에 내놓았던 기업의 CEO 출신이지만 클라우드의 가격 정책 때문에 망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특허를 받아 파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먹고 살기 위해 클라우드에 입사했다. 퍼텍트에그를 만들기 전 교도소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상당히 불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이 이력이 그를 클라우드의 보안요원으로 일하게 한다. 그가 바란 것은 빨간 셔츠, 즉 배송 직원이었다. 보안요원으로 그에게 배당된 첫 임무는 클라우드 내부에 유통되는 마약의 거래자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 일이 탐탁치 않지만 어느 순간 이 일에 점점 빠져들고, 자신의 등급을 올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지니아는 산업스파이다. 본명이 아니다. 거액으로 고용되었는데 이 일은 장기 프로젝트다. 배송 일에 투입되었고, 그녀의 일을 보면 업무 강도와 이 클라우드가 어떻게 노동력을 착취하는지 잘 보여준다. 매력적인 그녀의 모습은 권력을 가진 나쁜 남자가 어떤 짓을 저지르는지, 그런 인물이 어떻게 클라우드 속에서 계속 일하는지 알려주는데 이 부분이 단순히 재미만 추구하는 오락소설이 아님을 알려준다. 최저 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그들을 보면 저자의 후기를 무심코 보고 지나가기 쉽지 않다. 별 등급을 이용해 직원들을 평가하는데 아주 비인간적이다. 하지만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말한다. 최근 배달앱의 평점이 가게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기사를 봤기에 더 와 닿는다.


두 주인공이 교차하고, 클라우드의 창업자 대표 깁슨 웰스가 자신의 철학 등을 알린다. 깁슨은 암에 걸려 살 날이 1년도 남지 않았지만 그가 만들어낸 제국 클라우드는 국가의 권력을 넘어선 상태다. 국가 규제를 무력화시키고, 기업 이익 극대화를 위해 인력을 갈아 넣는다. 각 클라우드 지점의 보안 책임자들은 통계를 조작해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하게 다진다. 이 소설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바로 이 부분이다. 마약 사건이 일어나고, 성 추행 등의 범죄가 벌어져도 조용히 사건을 무마하면서 밖으로 그 사건을 내보이지 않는다. 대외적인 통계 수치에는 아주 평화로운 곳이다. 권력에 대한 견제가 없는 곳이 어떻게 타락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흔한 할리우드 영화처럼 남녀 두 주인공은 연인 관계가 된다. 지니아가 팩스턴에게 접근한 것은 그가 보안요원이기 때문이다. 만남이 이어지고, 잠자리를 가지고, 감정이 교류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감정이 생긴다. 그리고 이 둘이 나눈 대화 속에서 순간적으로 통찰력이 생기고, 자신의 일을 이룰 단서를 발견한다. 지니아가 냉정하게 자신이 목표한 바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장면이 서늘한 감정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팩스턴이 점점 클라우드를 대변할 때 답답해진다. 하지만 이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편하고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삶을 살려고 하는 우리 말이다. 거대 기업이 한 국가의 권력을 넘볼 때, 기술의 발전에 사람들이 종속될 때, 깁슨이 딸에게 기업을 상속할 때, 이 모든 장면들이 결코 낯설지 않았다. <시녀 이야기>를 비롯한 몇 권의 소설에 대한 부분은 팩스턴의 심리적 변화와 더불어 강하게 경고성 메시지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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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으로의 자전거 여행 - 2022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도서, 2022 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추천도서, 2021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 에프 그래픽 컬렉션
라이언 앤드루스 지음, 조고은 옮김 / F(에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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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재미있게 읽고 있는 에프 그래픽 컬렉션 중 한 권이다. 단순히 표지의 그림만 보면 한 편의 성장 소설 같은 내용일 것 같은데 내용은 판타지 요소로 가득하다. 첫 장을 읽을 때만 해도 밤에 자전거를 타고 자신들만의 모험을 떠나는 소년들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일정 부분 이 모험은 사실이다. 이 소년들은 두 가지 규칙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보통 아이들이 가지는 허세와 포부를 잘 보여준다. 아무도 집에 돌아가 가지 말 것과 아무도 뒤돌아보지 말 것이란 규칙이다. 그런데 이 규칙이 처음 떠난 친구들이 한 명씩 떠나면서 깨어진다.


추분 축제가 열리는 밤, 아이들은 마을에서 강에 띄운 종이 등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이 무리와 뒤떨어져 너새니얼이란 아이가 따라오고 있다. 학교에서 이 아이와 친하게 지내면 쉽게 왕따당할 수 있어 벤은 무리에 껴주지 않았다. 보통 자전거를 타고 종이 등을 따라가다 멈춰 집으로 돌아가는 바위상도 지나간다. 하지만 불안감을 느낀 소년들은 한 명씩 집으로 돌아간다. 마지막 아이가 떠난 곳은 다리다. 부모들이 건너지 말라고 경고했던 그 다리다. 이 다리를 건너야 종이 등이 가는 곳까지 갈 수 있다. 너세니얼이 다가와 말을 건내고 둘은 다시 모험을 시작한다. 밤의 어둠 속 다리 뒤편에 거대한 괴물 같은 형상이 서 있지만 아이들은 모른다.


다리를 건넌 그들이 처음 만난 것은 낚시꾼 곰이다. 정장을 차려 입은 진짜 곰이다. 곰이 말을 한다. 벤은 다가가길 주저하지만 너새니얼은 주저하지 않고 다가간다. 이 그래픽노블에서 새로운 모험을 향해 거침없이 발을 옮기는 아이는 너새니얼이다. 자신을 반기지 않지만 늦은 밤 자전거를 타고 벤 일행을 따라온 것도 그렇다. 앞으로 펼쳐질 모험에서 항상 먼저 다가가 곰과 대화를 하면서 함께 동행이 되는 것도, 낯선 곳에 발을 내딪는 것도 너새니얼이다. 이 친화력과 적극성은 벤이 가지지 못한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벤이 자신의 감정을 생각없이 내뱉는 실수를 저지르지만 이것은 누구에게나 흔히 있는 일이다. 다만 용기를 내어 사과하는 것은 흔치 않다.


아이들이 종이 등을 쫓은 것은 하나의 동요 때문이다. 동요에 대한 이야기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환상을 품고 있다. 종이 등이 강의 끝에 도착하면 하늘에 올라가 별이 된다는 이야기다. 곰은 물고기를 잡아가기 위해 여행을 왔다. 그의 아버지가 알려준 곳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야 한다. 서로 다른 목적을 가졌지만 함께 간다. 밤의 안개가 이들로 하여금 길을 잘못 들게 한다. 높은 벽 앞에서 아이들은 멈추고, 곰은 절벽을 올라간다. 그러다 옆에 있는 물가를 너새니얼이 걸어 들어가면서 새로운 모험이 시작된다. 호기심 왕성한 아이의 무모함으로 느껴질 정도지만 이 장르는 그런 내용이 아니다. 새롭게 내딛는 한 발은 용기가 필요하다. 읽다 보면 내가 누구와 닮았는지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된다.


너새니얼에 비교해 벤이 주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도 다른 친구에 비하면 상당히 모험심이 강하다. 모든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갔을 때 마지막으로 남고, 그 다리를 건넜다. 이런 용기가 너새니얼의 도전에 동참할 수 있는 힘이었다. 낯선 곰을 경계하고,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 움직이는 것을 주저할 뿐이다. 이들의 모험을 에상하지 못한 전개로 이어지고, 어느 순간 판타지 세계에 점점 익숙해진다. 이 익숙함의 한 부분은 지브리 영화 속 장면들과 이어진다. 그리고 이들의 모험을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내고, 예상하지 못한 만남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화려하고 섬세한 그림들이 어우러지면서 끝까지 쉼없이 달려가게 한다. 재미있는 그래픽노블이다. 여기에 사족 하나를 달면 왠지 모르게 벤의 모습을 보면서 해리 포터의 이미지가 겹쳐 보인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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