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 아르테 미스터리 19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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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작가가 쓴 첫 공포 소설이다. 공포 소설을 즐겨 읽지 않지만 기회가 생기면 읽는다. 보통 예상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은 읽어가면서 그 서늘함이 가중되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이야기 속에 작가 자신을 등장시키고, 실제 출판사를 배경으로 있을 법한 이야기를 풀어내어 현실감을 높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공포 소설의 구성을 따라가지 않아 조금 낯설지만 미스터리 작가의 구성력으로 마지막에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보여주면서 이전 상황을 돌아보게 한다. 현실과 상상력이 잘 결합했고, 괴담의 서늘함도 잃지 않았다.  


여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연작이다. 각각 독립된 이야기이지만 등장인물들이 겹치고, 앞 이야기 덕분에 듣게 된 것을 좇아 경험하고 기록하는 형식이다. 다섯 편은 잡지 <소설 신초>에 발표했다고 말하는데 처음에는 이 말을 믿었지만 살짝 의심이 들면서 확인의 필요성을 느낀다. 책 마지막 장에 <소설 신초>에 발표 연월이 나와 무작정 믿었던 것이다. 이런 의심을 하게 된 데는 마지막 단편 <금기>의 역할이 컸다. 각각의 단편 속에서도 추리를 풀어놓았지만 <금기>는 고전 미스터리의 마지막 반전과 같은 역할을 한다. 자신이 듣고 경험한 괴담들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풀어낸다. 반전 같은 추리의 서늘함은 공포 소설의 전형적인 문장과도 이어진다.  ‘오컬트 미스터리 소설’이란 단어가 생긴 것도 이 때문이다.


<얼룩>에서 2016년 5월 26일 <소설 신초>에서 단편소설 청탁 메일을 받았다는 내용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가구라자카 괴담 특집 기획이다. 8년 전 우연히 친구에 들은 괴담이 머릿속에 떠올라 그것을 글로 썼다. 점쟁이의 말을 듣고 사귀던 남친과 헤어진 쓰노다 씨에 대한 이야기다. 남자의 집착이 부담되어 연락을 받지 않았는데 사고로 죽었다. 이때부터 괴이한 일이 생긴다. 쓰노다 씨가 작업한 포스터에 이상한 얼룩이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글자다.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나오코와 그 점쟁이를 소개한 친구의 죽음이다. 작가는 점쟁이나 쓰노다 씨의 일을 과학적인 것으로 살짝 분석하지만 정밀하지는 않다. 이 단편 발표 후 괴이 현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저주>는 자신에게 씐 저주가 가족에게 번지지 않게 액막이를 부탁하는 여자 이야기다. 안전 운전하는 남편의 기묘한 충돌 사고, 아들의 몸에 난 상처. 신사에 있는 고마이누상의 꼬리를 밟아 저주를 받았다는 그녀의 절박함은 단지 이와 관련된 글을 썼다는 이유로 작가의 지인 기미코가 긴 압박을 받는다. 남편과 아들의 사건은 이 단편집에서 놀라운 직관력과 통찰력을 보여주는 사카키가 쉽게 풀어낸다. 하지만 괴담은 그 이후에도 이어진다. <망언>은 사카키 씨가 글로 쓰지 않고 남겨둔 괴담이다. 운 좋게 자신들이 원하는 구조와 위치의 집을 싸게 사서 이사한 부부가 옆집 사람의 말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 단편집의 제목도 여기서 나왔다. 그녀가 길에서 본 모습의 기이한 설명은 사건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악몽>은 네일숍에서 일하는 도모야 씨가 시댁에서 살게 되면서 꾸는 꿈과 연결된다. 이 이야기 속 설명이 이 책 표지의 그림과 이어진다. 도모야 씨가 꾼 꿈을 시어머니도 이전에 꾼 적이 있었다. 이 단편에서 진나이 씨가 등장해 이 집의 문제점을 말하고 이사를 추천한다. 시세보다 싸게 집을 팔려고 내놓았는데 사려고 한 친척들을 찍은 사진에 이상한 모습이 보인다. 구매자 입장에서는 불길한 일이다. 거래는 중단되고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트릭과 추론 속에 진나이 씨가 작가에게 한 질책이 강하게 와 닿는다. <인연>은 싸게 집을 구한 대학생이 집에서 경험한 괴이한 일들을 다룬다. 옆집에서는 어린 딸이 오래 전에 죽은 가족이 살고 있다. 이 단편에서도 추리와 괴담이 오고 간다. 단순한 괴담의 전달이 아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서 현실감을 더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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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날 정해연의 날 3부작
정해연 지음 / 시공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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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하고 먹먹한 소설이다. 낯익은 이름에 비해 정해연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는 스타일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밝은 느낌의 소설을 더 재밌게 읽었는데 이번에는 무거운 이야기다. 구원이란 단어를 보면서 처음에는 가벼운 이야기를 떠올렸는데 좀더 깊이 생각하면 이 단어가 얼마나 무거운 상황에서 비롯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부모가 아이를 잃는다는 것은 그의 삶과 세계가 파괴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실종된 지 3년이 지난 후 강에서 발견된 아이의 유골에서 시작한다. 이 유골을 발견하는 때는 남자가 프로포즈를 하려는 순간이다.


선준에게 경찰이 전화를 한다. 발견된 유골에 걸려 있던 목걸이 때문이다. 아내 예원이 만든 유일한 물건이기에 이 유골이 자신들의 아이인 선우일 수 있다. 유전자 검사를 해야 정확한 답을 알 수 있다. 미친 듯이 선우를 찾는 예원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그 순간 예원은 이 실종 사건 담당 형사의 차를 들이박는다. 어느 순간 흐지부지된 수사에 화가 났다. 경찰서에서 악다구니를 써는 그녀를 보면서 완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형사의 입장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읽고 난 후다. 양 형사의 한 마디가 정말 가슴을 아리게 한다.


보안회사 직원인 선준은 예원을 데리고 경찰서에 나온다. 그리고 정신 병원에 입원시킨다. 지난 3년 동안 이 부부는 미친 듯이 선우를 찾아다녔다. 정신 병원에서도 그녀가 붙인 전단지를 뗀 환자 한 명을 때려 진정제 주사를 맞았다. 어느 순간 그녀의 집착은 광기처럼 보였다. 이 둘 사이를 보면 일상이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안다. 나중에 일상을 행복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이 일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병원의 한 아이가 부른 노래에서 시작한다. 선우가 부르던 개사곡이다. 이 아이가 자폐증상이 있는 로운이다. 로운의 엄마는 열여섯에 아이를 낳았다. 며칠 전에 읽었던 소설 <보통의 노을>과 완전히 다른 전개다. 예원은 로운을 데리고 병원에서 탈출한다. 문제가 커진다. 유괴다.


로운이 부른 노래와 선우를 안다는 사실만으로도 희망을 가지기 충분하다. 로운의 엄마를 찾아가지만 그녀는 입금을 요청하는 통장번호만 전달한다. 5천만 원이란 거액이다. 이미 가정경제가 박살난 이들에게 너무 큰 돈이다.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예원은 아파트 밖으로 몸을 던진다. 다행히 낮은 층수와 다른 변수로 크게 다치지 않는다. 읽는 내내 이 모습을 보고 답답했다. 작은 희망의 불씨에 모든 것을 걸기에는 유골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아직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병원장에게 경찰 신고를 유예해달라고 요청한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로운과 함께 아이를 찾으러 간다. 쉽지 않은 길이다. 경찰에 신고하면 바로 유괴범으로 잡힐 수 있다. 하지만 가지 않을 수 없다.


읽으면서 두 가지 가정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양 형사에게 로운이 엄마 주희에게 받은 통장 주인을 확인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선우의 실종 이후 공중전화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다. 하지만 이 가정보다 왜 이들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형사는 격무에 시달리고 누군가의 통장번호를 열람하는 것은 개인정보법 위반이다. 또 얼마나 많은 사기들을 마주해야 했던가. 말없는 전화도 마찬가지다. 두려움과 공포가 말문을 막았다. 이 모든 것은 모두 결과론이다. 이 이전으로 돌아가면 왜 불꽃놀이를 갔을까? 남편의 사고가 업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하는 원망과 아쉬움이 계속 터져나온다. 불안하고 불편하다.


선준이 울면서 예원에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때 이 부부는 다시 하나가 된다. 예원이 미친듯이 선우를 찾아다닐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선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준은 자신이 선우 찾는 것을 포기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두려워한다. 로운이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해를 하고, 이런 아들을 돌보는 것이 버거워 주희는 아이를 기도원과 병원에 맡겼다. 선우의 실종도 육아의 어려움에서 비롯한 작은 실수 탓이다. 잠시 놓은 손이 실종으로 이어졌다. 작가가 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 것도 바로 진심과 용기가 있다면 다시 잡을 수 있다고 한 말 덕분이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부모들의 액션이나 어렵고 힘든 과정을 다룬 스릴러를 기대한 사람에게는 아쉬울지 모르지만 상실과 용서와 일상의 행복을 돌아볼 사람에겐 짧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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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가 이끄는 돈의 미래 - 비트코인에서 구글페이까지
라나 스워츠 지음, 방진이 옮김 / 북카라반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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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현찰을 들고 다닐 일이 점점 줄어든다. 신용카드 등을 사용하면서 현금이 더 줄어들었다. 스마트폰 속에 간편결제 시스템을 다운 받은 후에는 더욱 줄었다. 몇 년 전부터 회사 직원들은 토스를 이용해 점심값을 보냈다. 아니면 카카오톡으로 보냈다. 한국의 현실처럼 미국도 이제는 많은 젊은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돈을 보낸다. 그런데 재미 있는 점은 이 지불이 소셜미디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돈과 빅데이터를 다룬 장에서 이 부분을 잘 보여주는데 나 같은 구식 인간이 보기엔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너무 쉽게 노출하고 있다. 저자는 돈의 탄생부터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포인트나 마일리지까지의 변천과 발전사를 보여준다.


나의 기억이 부정확하지만 우리들 삶 속에 신용카드가 자리잡은 것은 불과 수십 년에 불과하다. 한국은 세수 확대와 거래의 투명성 등의 목적으로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한다. 이제는 다른 결제수단을 통해 지급해도 그 거래 내역이 바로 전달되지만 한때는 사람들이 현금만 사용했다. 지금처럼 카드나 간편결제 시스템만 사용한 사람에게는 낯선 이야기이겠지만. 이 책에도 나오지만 아멕스 카드 같은 경우는 발급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웠다. 지금도 돈을 낸다고 쉽게 발급해주지 않는 카드가 있다고 들었다. 연회비보다 더 많은 혜택을 주는 방식이라고 하는데 실제 이런 사람들은 엄청난 금액을 쓴다. 우리가 카드 혜택을 받기 위해 월 정액 이상을 사용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카드의 발전사를 보여주는데 상당히 재미있다. 사용하면서 한번도 생각하지 않은 부분이다.


선불카드를 받아 사용한 적이 있다. 솔직히 매장에서 사용이 되지 않는 곳도 있고, 잔액 확인도 쉽지 않아 불편했다. 그런데도 선불카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한국과 다른 문화인 미국에서는 높은 수수료에도 불구하고 이 선불카드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단순히 경제적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카다시안 카드 이야기는 소셜미디어가 얼마나 위력적인지 잘 보여준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소셜의 세계는 이미 엄청난 돈이 오고 가고 있다. 아프리카 TV.나 유튜브를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조금 앞으로 돌아가자. 지폐가 국가의 피부라고 한 부분은 아주 인상적이다. 지폐나 동전에 누구의 얼굴이 들어갈 것인가 하는 부분은 언제나 논쟁거리다. 5만 원 지폐에 신사임당이 들어가기 전까지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미국의 경우 새커거우아 논쟁이다. 현금 없는 사회가 된다면 어떨까? 아마 상당히 투명한 사회가 될 것이다. SF에 나오는 것처럼 모든 거래와 잔고가 투명해져 돈의 부정 문제는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박정희의 화폐개혁이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지 알려준 부분을 참고하면 이해가 조금 쉽다. 그럼 이 지폐 등을 대신할 화폐는 무엇일까?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 화폐. 아니면 다른 대안화폐일까? 리워드 프로그램은 최근에 알게 된 부분이지만 놀랍다.


작년에 회계사가 스타벅스 현금에 대한 이야기를 해 놀랐다. 그런데 이 책 속에 우리가 충전해 놓은 스타벅스 충전금액이 얼마나 많은 지 알려줄 때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충천해놓은 쿠팡 머니는 또 어떤가. 오래 전 OK 캐쉬백의 이 부분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수준을 이미 훨씬 넘었다. 리워드 프로그램을 황금 수갑이란 용어를 사용했는데 정확한 표현이다. 지금도 내가 쌓은 포인트 얼마의 유효기간 때문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한다. 빅데이터가 돈이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우리의 거래내역은 우리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무심코 누른 동의함은 나도 몰랐던 나의 정보를 노출한다. 런닝앱도 내 정보를 가져다 사용하겠다고 하지 않는가.


모든 것의 앱으로 중국 위챗을 말한다. 중국에서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위챗 페이를 사용해 결제한다. 단순히 톡이나 결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위챗은 중국 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완전한 상업과 국가 감찰 영역’을 만들어내었다고 한 부분은 섬뜩한 경고이자 현실이다. 카톡이 박근혜 정부에 굴복하면서 그들이 원한다면 우리의 사생활은 사라진다. 편리함의 대가는 이런 역설이 발생한다. CCTV나 차량 블랙박스가 대표적이다. 미국 벤모의 기록은 그런 점에서 놀랍다. 번역 출판하면서 저자의 의도가 살짝 왜곡된 부분이 있다. 이 제목만 보면 비트코인 같은 디지털 화폐에 더 무게를 둔 것 같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돈과 소셜미디어와 데이터의 결합이다. 이 부분에 관심 있다면 좋은 입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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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의 내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3
하라 료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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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료의 신작이다전작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가 나온 지 14년만에 나왔다한국에서는 나온 것이 2018년 6월이니 2년 8개월이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나왔다이전에 한 번 썼는지 모르겠지만 미국 고전 하드보일드 소설이 나에게 맞지 않아 읽기를 중단했던 적이 있다워낙 유명해서 몇 권을 더 읽기는 했지만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물론 최근에 나온 하드보일드의 경우 재밌게 읽은 소설들이 상당히 있다하지만 하라 료의 소설만큼은 아니다비채에서 <내가 죽인 소녀>가 나오기 전 다른 출판본으로 이 소설을 재밌게 읽었는데 그때만 해도 이 작가가 얼마나 유명한지 몰랐다그리고 하라 료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완전히 빠졌다그의 과작이 너무나도 아쉬운 사람들 중 한 명이다.

 

미국 고전 하드보일드를 읽을 때 고역 중 하나는 문장이다다시 읽으면 어떨지 모르지만 그때는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그런데 하라 료의 소설은 그 반대다너무 잘 읽힌다그리고 탐정 사와자키가 너무 매력적이다이번 소설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등의 미스터리 문학상 다수를 수상한 이력이 있는데 작가를 생각하면 당연하다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한자리에 앉아서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책이다불행하게도 일이 많은 시즌이라 며칠의 시간이 걸렸다여기에 나의 저질 기억력이 이전 작품에도 등장한 감초같은 인물들의 이미지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그 재미를 온전하게 누리지 못했다언젠가 몇 권 되지 않는 하라 료 소설을 연속적으로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의 변천사를 느껴보는 재미를 한 번 정도 경험해 보고 싶다.

 

벌써 사와자키 탐정의 나이가 오십대다몇 권 출간되지 않았는데 이 나이라니 많이 아쉽다다른 작품들처럼 어느 날 중년의 신사 한 명이 그를 찾아온다밀레니엄 파이낸스 신주쿠 지점장 모치즈키 고이치라고 소개한다그는 한 요정의 여주인에 대한 조사를 의뢰한다선수금 30만 엔을 지급하고 사라진다이전 작품처럼 이것은 그와 첫 대면이자 마지막 대면이다그리고 사와자키는 조사를 시작한다밀레니엄 파이낸스 신주쿠 지점을 찾아간다그곳에서 2인조 은행 강도를 만난다뭐지생각하는 순간 사건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지점장이 나타나지 않아 금고에 있는 돈을 인출하지 못한다은행 강도 주동자는 사라지고 다른 한 명은 자수한다가이즈를 여기서 만난다.

 

가이오는 대학생 인력 공급회사 대표 중 한 명이다상당히 아이디어가 좋고수완도 좋다모치즈키 지점장과의 인연을 이야기하면서 사와자키와 가까워진다그리고 이 사건으로 낯익은 두 형사가 등장한다니시고리와 다지마다이 형사에게 사와자키가 있는 것이 의외다돈을 훔쳐가지 못했지만 금고는 열어봐야 한다열린 금고 속에 엄청난 고액이 들어 있다은행의 돈은 분명히 아니다그런데 지점 영업마감까지 나타나지 않은 모치즈키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다음 날 명함에 나온 전화번호와 책상 위에 있는 가족사진을 단서 삼아 지점장의 집을 찾아낸다이곳에 다지마 형사와 들어간다다지마가 욕실에서 시체를 발견한다세 들어 산다고 들은 사람의 인상과 닮았다그는 누구고자살일까?. 타살일까아니면 사고사?

 

이 소설을 읽다 보면 파출소 경찰에 대한 아주 멋진 칭찬이 나온다사와자키가 의뢰인의 요청을 수행하기 전에 요정을 살짝 둘러보러 갔을 때 그를 수상하게 느끼고 파출소 경찰이 신원조회를 한 것이다동네 사람들과 밀착되어 있고사건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경찰도 파출소 경찰이다하지만 뛰어난 순발력과 사전 지식을 가진 사와자키에 속는다그리고 모치즈키가 의뢰한 여주인의 죽음 소식을 듣는다돈을 그냥 꿀꺽하고 지나갈 수 있지만 그는 그런 탐정이 아니다조사를 더한다여기에 모치즈키 실종 사건 조사가 겹쳐진다가이즈와 만나는 횟수도 시간도 늘어난다혹시 사와자키가 자신의 아버지가 아닌지 황당한 질문까지 한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잘 짜인 구성과 전개는 여전히 뛰어나고 재미있다읽다 보면 시간의 흐름과 변화 속에 바뀐 스마트 기기에 대한 사와자키의 부적응이 나오는데 약간 씁쓸하다은행 강도 사건에서 휴대전화가 없는 유일한 인물이란 대목이 나온다낯익은 야쿠자들이 등장해 과거의 기억을 더듬게 만들고이 사건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추리하게 한다한 가지 놀라운 점은 사와자키의 애차인 블루버드가 사라진 것이다평생 그 차만 타고 다닐 것 같았는데차가 바뀐 사실이 나오기 전까지도 당연히 그가 탄 차는 블루버드라고 생각했다왠지 트릭에 당한 느낌이다그리고 하나의 의뢰가 사건으로 이어지고형사와 야쿠자와 꼬이고살짝 숨긴 비밀 하나가 엮이면서 미스터리 소설의 재미를 준다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재미는 사와자키의 말과 행동이다그가 피운 담배 한 대까칠한 대사 한 마디투철한 직업의식 등이 매혹적이다다음 책이 언제 나올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다시금 하드보일드에 대한 관심을 불러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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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노을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2
이희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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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로 강한 인상을 남긴 작가의 신작이다. 손원평이 두 권의 소설로 나를 사로잡은 것처럼 이 작가도 이 작품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최근에 나를 사로잡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은 간결하고 명확하고 읽기 편한 문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내용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다. 잘 읽히지만 읽고 난 다음에 곱씹을 내용들이 아주 많다. 왠지 모르게 처음 몇 쪽을 읽었을 때 박현욱의 <동정 없는 세상>이 떠올랐다. 희미한 기억으로 이 두 작품을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문득 이 소설이 떠올랐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으면 두 주인공의 키 차이가 상당한데. 그나저나 박현욱 작가의 신작은 언제 나오려나?


34살의 엄마, 18살의 아들. 나이 차이는 16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자 사이가 아니다. 16살에 임신한 최지혜 씨는 아빠 없이 아이를 낳고 힘들게 아이를 키웠다. 이제 아들 최노을은 엄마가 애를 낳은 나이를 넘었다. 이 소설은 이 두 사람이 옷가게에서 고가의 패딩을 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보통(?)의 엄마들이 들었다면 좋아했을 누나란 표현을 그녀는 아들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이 모자의 삶이 하나씩 흘러나온다. 왜 지방 도시로 이사 왔는지, 그녀가 어떤 일을 하는지, 노을이 알바를 하는 중국집 짜장짬뽕집 이야기 등이 말이다.  


노을에게는 이 도시에 이사 왔을 때부터 친해진 친구가 있다. 중국집 딸 성하다. 처음에는 남자인가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 소설에서 자주 나오는 선입견에 대한 것 중 하나가 남녀 사이에 친구가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노을은 성하와 절대 연인 관계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너무 허물없는 사이라 주변에서 오해도 많이 한다. 성하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려는 순간 무심코 한 행동 하나가 관계의 발전을 망쳤다. 성하가 노을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은 쉽게 납득할 만한 내용이 아니지만 이 둘은 최고의 친구다. 이런 둘 사이에 새로운 친구가 한 명 끼어든다. 반 친구에게 매를 맞고 있던 동우다. 공부 잘 하고, 얼굴 하얗고, 어딘가 공허한 눈빛을 가진 그는 노을에서 성하를 소개해 달라고 말한다. 기존의 드라마라면 이때부터 성하에 대한 애정이 샘솟겠지만 이 소설은 그런 전개가 아니다.


이 소설에서 노을이 계속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엄마의 나이 어림과 동안의 얼굴이다. 둘 사이를 착각한 수많은 이야기와 더불어 엄마에게 관심을 보였던 남자들 이야기가 나온다. 심지어 열 살이나 어린 남자까지 있었다. 엄마가 여자로써 누군가를 만나길 바라지만 진짜 누군가가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가 관심을 가지자 불안해한다. 그 인물이 바로 성하의 오빠 성빈이기 때문에 더 불안하다. 무려 5년 동안 그녀를 진심으로 다가간 인물이다. 여섯 살 연하란 사실은 소설 속에 나오는 것처럼 남자 연상인 경우를 생각하면 별 문제가 아니다. 다만 어릴 때 아이를 낳은 애엄마란 사실이 문제다. 아니 정확하게는 사람들의 시선과 그 시선에서 비롯한 상처를 엄마가 받게 되는 미래를 걱정한다.


일상 속에서 작은 파란이 일어나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다시 묻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보통’이 그렇다. 보통의 가족, 보통의 사랑 등이 대표적이다. 보통이란 단어 대신 일반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여기서 다시 평균이란 단어가 대체하는 경우가 있다. 이 모든 단어를 우린 무심코 사용하는데 이 기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난 사람들에게 우린 엄격한 잣대를 가져다 댄다. 엄마 지혜와 성빈의 사랑이 가져올 미래의 일들이 대표적이다. 가족들보다 제3자들이 더 무서운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보통을 작가는 중국집 배달에서 또 한 번 이용한다. 이 중국집은 배달을 하지 않는데 고객들은 배달하지 않는 중국집이라고 욕한다. 뒤틀리고 왜곡된 이미지가 그들의 말 속에 나온다. 그리고 왜 배달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려줄 때 울컥했다. 쥐고 있으려고만 할 때는 결코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 것들을 말한다.


노을이 처한 상황만 보면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그는 밝다. 하지만 그는 남에게 호의를 받는 것을 싫어한다. 타인들의 다른 시선이 왜곡되는 것을 많이 보았기에 사전에 조심한다. 이것이 엄마의 연애와도 연결된다. 동우가 사랑은 특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 사랑을 지켜보고 지켜주는 것도 쉽지 않다. 우린 많은 경우에서 자신과 다른 삶의 길을 가는 사람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한다. 자신의 잣대로 재고, 자신의 무리 속으로 들어오라고 외친다. 이 소설은 그런 점에서 보통(?)적이지 않은 노을을 통해 여전히 보통을 찾고 묻는다. 어느 순간 내가 내뱉는 말들에 다른 무게감을 느낀다. 짧은 소설이지만 다양한 인물의 삶을 함축적으로 잘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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