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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일기 - 세상 끝 서점을 비추는 365가지 그림자
숀 비텔 지음, 김마림 옮김 / 여름언덕 / 2021년 1월
평점 :
품절
오래전 집 앞에 작은 헌책방이 있었다. 주말이면 그곳에 가서 살 책이 있는지 훑어봤다. 친구집에 놀러가면 그 동네 헌책방을 기웃거렸다. 청계천 헌책방도 자주 돌아다녔다. 아마 서점들만큼 자주 가지 않았나 생각한다. 한때 친구 등을 만날 때면 약속 장소로 대부분 서점을 선택했다. 늦어도 책을 보면서 기다리면 덜 지루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런 헌책방이나 서점들이 사라지고 있다. 내가 이사하기 전, 그 후에도 자주 이용했던 헌책방은 문을 닫은 지 오래고, 인터넷 서점의 헌책방도 문을 닫는 경우가 생긴다. 쌓인 책더미 속에서, 혹은 새롭게 묶인 책들 속에서 바라던 책을 찾아 읽던 그 시절은 사라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당시 기억들을 많이 떠올렸다.
제목 그대로 일기 형식이다. 2월 5일에 시작해서 다음 해 2월 4일까지 정확하게 1년의 기록을 담고 있다. 매일의 일상이지만 그 일상 속 작은 변화들이 추억과 엮이면서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이 서점이 얼마나 큰지도, 헌책방이란 사실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각각의 월이 시작할 때면 조지 오웰의 <서점의 추억들> 중 일부를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자신의 감상을 어느 정도 풀어낸 후 매일 매일의 이야기를 적는다. 매일의 기록에 꼭 들어가는 것은 인터넷 서점의 주문 권수와 찾은 권수, 서점 하루 매상과 구매 고객의 숫자다. 단순히 판매금액만 보면 어떻게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헌책방을 유지할 수 있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물론 이 매출에는 인터넷을 통해 판 것 등은 빠져 있다.
세계지리에 무지한 내가 스코를랜드 한구석의 위그타운을 알 리가 없다. 이곳에 자리잡은 중고 서점 더 북숍은 상당히 유명한 서점이다. 물론 한국에 살고 있는 내가 알지는 못하지만. 공식 북타운으로 지정되었다고 하는데 이때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것은 청계천 헌책방과 소문으로만 들은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이다. 하지만 단순히 규모만 놓고 본다면 더 북숍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보통의 한칸짜리 책방과 달리 건물 하나가 헌책방이다. 장서의 규모나 종류도 어마어마하다. 16세가 가죽 제본 성경부터 최근 서적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읽다보면 없지 않을까 의심하면서 물었는데 있다는 대답을 받는 경우가 대분이다. 재미있는 것은 묻고 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일기를 재밌게 만드는 것은 저자의 필력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매력적인 인물들이 계속 등장한다는 것과 내가 잘 모르는 책들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금요일에 출근하는 니키를 보면서 왜 자르지 않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다 읽은 지금은 그녀만의 매력에 살짝 빠졌다. 그리고 곳곳에 블랙유머가 넘쳐나는데 안타까운 것은 이것이 죽음과 관련된 에피소드일 때 더 부각된다 점이다. 이 에피소드에 니키의 답변이 순간 나를 멍하게 했다. 물론 다른 재미난 이야기들이 있다. 청각장애자가 자는데 진공청소기를 돌리는 이야기가 바로 떠오른다. 이 청각장애인 작가를 등장했을 때 하나의 질문으로 다시 음담패설로 넘어갔다는 대목도.
어릴 때 꿈 중에 하나는 만화방 주인이었다. 그런데 만화방이 사라졌다. 도서대여점이라도 해야지 생각했는데 역시 사라졌다. 북카페나 만화 카페 같은 것도 있지만 예전의 꿈은 이미 희미해졌다. 이 책에서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서점의 몰락이다. 책을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 싸게 책을 살 수 있는 인터넷서점이 편하고 좋지만 기존 서점들에게 이것은 재앙이다. 내가 아마존에 들어가서 본 수많은 헌책들이 어떻게 공급되는지 이 책을 읽고 어느 정도 이해되었다. 헌책방도 최근 인터넷서점 헌책방에 밀리고 있지 않은가. 수많은 헌책방들이 인터넷서점 중고책방에 가입해서 판매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현실을 적나라하게 엿보게 한다. 2만권의 장서를 매각하려는 책방 주인에게 그가 5천 파운드 정도를 말할 때 이미 가격은 25% 수준에 불과하다.
읽다 보면 내가 헌책방에서 한 행동들이 자주 보인다. 책값이 얼마인지 물어보고, 생각보다 비싸 깎아달라고 하거나 포기했던 일이나, 살 책이 없어 뒤적이다가 그냥 나온 것 등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헌책방에서 앉아 책을 오랫동안 읽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그렇게 앉아서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 헌책방을 보지 못했다. 인터넷서점 헌책방은 제외하고. 책을 팔려고 하면 그는 차를 몰고 달려간다. 그 중에서 살만한 책이 있으면 수표를 쓴다. 권수가 많은 것보다 보존과 팔만한 책인지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산 책들을 빠르게 팔아서 산 비용을 충당해야 한다. 무더기 더미에서 생각하지 못한 초판본이나 사인본이 나오지만 내가 놀랄 정도의 가격은 아니다.
늘 헌책에 대한 정보를 사후에 알게 되면서 놀라는 경우가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책이 엄청난 가격으로 거래된다는 점이다. 한때 북테크란 말이 나돌기도 했다. 희귀 고서 사인본이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는 것도 이전에 책으로 읽은 적이 있지만 이 서점에는 해당사항이 없다. 그런 책이 나왔을 때 그는 사지 않고 경매에 넘긴다. 그가 아마존 킨들에 대한 적개감을 표출한 것이 킨들을 총으로 쏜 것이다. 이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 모양이다. 가끔 많은 책들 때문에 전자책으로 완전히 갈아탈까 고민한 나에게는 섬뜩한 장면이다. 흥미로운 이야기 중 하나는 철도 덕후들처럼 특정 분야의 책들이 비싸게 잘 팔린다는 것이다. 초판본도 해리포터처럼 많이 나온 것은 가치가 없다는 부분에 동의한다. 뭐 수백 년 뒤는 다르겠지만. 이 책은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최적화되어 있다. 혹시 스코틀랜드에 여행을 가게 되면 이 서점에 가서 한국 책 있냐고 묻고 싶다. 사는 것은? 글쎄 적당한 가격과 원하는 책이 있다면 살 것이다. 아니면 이 서점에 온 다른 관광객과 비슷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