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고양이 칭화
바오둥니 지음, 황지에 그림, 웃는땅콩 옮김 / 엔씨소프트(Ncsoft)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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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둥니란 아동문학 작가는 낯설다. 아동문학에 큰 관심이 없으니 아주 유명한 몇 명을 제외하면 거의 모른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흔히 만나기 힘든 중국 아동문학 작가다. 이력을 보니 화려한 경력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 동화책에서 글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림을 그린 황지에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 이 책을 아이에게 읽어주면서 그림체가 중국풍이란 생각을 했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재밌는 것은 번역을 한 웃는땅콩이다. 엔씨소프트의 어린이집 이름이 웃는땅콩이다. 인터넷 검색하면 웃는땅콩이란 책도 나온 것 같다. 엔씨소프트가 출간하고 자신들의 어린이집 권장도서라고 광고하는 부분은 그렇게 보기 좋지만은 않다.


최근 내가 동화를 읽어주는 것은 아이가 잘 때나 TV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 몸부림 칠 때다. 내가 궁금해서 선택한 책을 읽어주면 한 번은 재밌게 듣지만 두 번째는 거부한다.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도 억지로 두 번 읽어줬는데 다시 읽자고 하니 싫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공룡이나 강아지를 둘러싼 해프닝을 다룬 책은 다시 읽어달라고 한다. 이 책을 선택한 것도 아이에게 읽어주기 위해서인데 한 번은 재밌게 들었다. 한 번 더 읽자고 하니 싫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동화 속 내용 하나를 엄마에게 재밌게 말한다. 이 동화의 하이라이트가 아주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칭화는 도자기로 만든 고양이다. 4월의 어느 날 칭화가 봄바람에게 말을 걸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바람과 꽃에 대한 것인데 유채꽃도 봄바람이 불어서 핀 것인지 묻는다. 이때 나타난 것이 꼬마 얼룩 고양이다. 꼬마 얼룩 고양이는 도자기 고양이 칭화를 보고 “너처럼 움직이지 않는 고양이는 본 적이 없어.”라고 말한다. 도공들이 청화백자로 구운 고양이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만남을 통해 칭화와 꼬마 얼룩 고양이는 유채꽃 가득한 꽃밭을 보기위해 함께 모험을 떠난다. 그런데 칭화와 얼룩 고양이는 칭화가 진짜 고양이가 되는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이 부분을 보면서 ‘왜?’라는 의문 부호가 달렸다. 이미 고양이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데 그처럼 변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다.


얼룩 고양이가 칭화를 데리고 간 곳은 바로 도자기를 굽는 할아버지의 공방이다. 얼룩 고양이는 몇 번이나 할아버지에게 칭화를 ‘진짜 고양이’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다. 할아버지는 얼룩 고양이의 말을 듣지 못한다. 일하느라고 바쁘기도 하고, 고양이 말을 듣지도 못할 것이다. 이 부분에서 그림작가의 아름답고 화려한 그림이 빛을 발한다. 표지의 그림도 이때 나온다. 고양이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 도자기가 진열되어 있는 곳이 나타난다. 뭐 대부분은 고양이 도자기이지만. 그 도자기 고양이 중 한 마리는 일본풍이다. 그리고 도방 그림을 통해 어떻게 칭화 같은 도자기 고양이가 탄생하는지 그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읽을 때 이 부분을 아이에게 알려주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 동화의 하이라이트는 예상밖의 전개다. 아주 인상적이다. 논리와 이성으로 풀면 말도 되지 않는 내용이지만 멋진 장면이다. 사실 이 하이라이트를 제외하면 아이가 좋아할 장면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예쁜 스티커가 같이 왔는데 이 스티커를 가지고 엄마와도 한 번 읽어라고 살짝 유혹해봐야겠다. 스티커만 들고 가서 이리저리 붙일 가능성이 더 많지만 그래도 다른 관심거리를 말한다면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화려하고 푸르고 밝은 그림이라 그림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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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전쟁 - 모든 것을 파멸시킨 2차 세계대전 최대의 전투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오키 다케시 지음, 박삼헌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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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이와나미 시리즈 59번째 출간작이다. 한국에서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라는 출판사가 이 시리즈를 꾸준히 내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일본 출판사들을 잘 모르지만 이와나미문고라는 이름은 여러 번 다른 책에서 본 적이 있다. 내가 이 책에 끌린 이유 중 하나도 이와나미문고란 이름 때문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2차 대전 당시 왜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전의 침공들처럼 독일이 패배하게 되었는지 하는 부분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모두 읽은 지금 그 의문의 상당 부분이 해소되었고, 독소전쟁의 내용을 새롭게 업그레이드했다.


독소전쟁의 시작은 1941년 6월 22일이다. 나치 독일과 동맹국 군대가 소련을 침공했다. 이 이전에 스탈린에게 독일의 침공 정보가 도착했지만 그는 이 사실을 무시했다. 영국의 허위 정보란 잘못된 믿음이 큰 역할을 했다. 초반 독일의 전격전은 이전부터 알고 있던 그대로였다. 독일이 강한 것도 있었지만 소련의 문제가 더 큰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가장 큰 이유로 스탈린의 숙청으로 군 고위 장교들이 사라지면서 전력이 많이 약화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자주 이야기하는 부분 중 하나가 장교의 존재다. 소련이 초반에 고생한 것이나 진격한 독일군이 중간급 장교들의 죽음으로 지휘 등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가끔 멍청한 장교들이 사병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지만 훈련받은 장교의 중요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강해진다.


경이적인 초반의 진격도 소련군의 반격과 길어진 병참과 러시아의 자연 환경 등으로 점점 그 위력이 감퇴한다. 통계자료를 보면 엄청난 숫자의 소련군 포로를 가지고 있지만 사망자의 숫자도 그에 못지않다. 군단이 패배한 상태에서 각 생존자들은 유격전으로 독일군과 싸운다. 이때 장교들 상당수가 죽는다. 또 하나 더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러시아의 날씨다. 추위가 문제가 된 것은 41년의 겨울이 아니다. 전쟁이 고착되고, 병참에 문제가 생기면서 일어난 일이다. 병참의 문제는 전쟁사를 읽다보면 언제나 만나게 된다. 혹자는 전쟁의 승리는 병참의 승리라는 말까지 한다. 러시아의 철도와 독일의 철도 폭이 달랐고, 진흙길은 독일군의 진격 속도를 늦추어주었다.


여기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당시 소련이 가지고 있던 용병 사상이다. 바로 작전술이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과 전투에서 이기기 위한 전술 사이에 존재하는 사상이다. 저자는 작전술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우선 전쟁의 목적을 정하고, 그것을 위해 국가 자원을 전력화하는 것이 ‘전략’이다. 작전술은 그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전선의 각 방면에 ‘작전’ 또는 ‘전역’을 상호 연관되도록 배치한다. 각각의 작전을 실행할 때 발생하는 전투에 이기기 위한 방책이 ‘전술’이다.” 작전술의 대가들도 대숙청으로 물러나 있었지만 연속적인 패전으로 다시 전선으로 복귀한다. 이 작전술과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 히틀러의 무리한 고집 등이다.


나폴레옹도, 1차 대전 당시 독일도 러시아를 침공하고는 패배했다. 물론 2차 대전의 독일도 패배했다. 왜 이런 무리한 공격을 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수탈전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나치가 정권을 잡은 후 독일은 점점 성장했지만 엄청난 부채 등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소련 침공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여기에 히틀러의 세계관이 엮이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절멸전쟁으로 나아간다. 독일군과 소련군 모두 이 대학살을 시도하는데 그때 죽은 사망자의 숫자가 어마어마하다. 두 독재자가 독소전쟁 당시 보여준 모습은 무능과 탐욕으로 가득하다. 물론 독일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길을 가고 있었지만 히틀러가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많은 군인들이 러시아 땅에서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공개된 사료들은 이 독소전쟁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만든다. 독일의 패배 원인을 단순하게 히틀러의 잘못으로 몰빵했던 이론이 깨어지고, 소련이 숨겼던 사실들이 하나씩 밝혀졌다. 이 사실들이 저자가 보여준 전장의 지도보다 나를 더 흥분하게 만들었다. 사실 전쟁 지도는 꼼꼼하게 읽어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쉽게 발견할 수 없다. 그리고 중요한 전쟁 사이사이에 정치적 선택과 경제문제 등이 이 전쟁의 이해를 돕는다. 레닌그라드 포위전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알려주는 대목은 그 긴 시간보다 더 놀랍다. 인육 이야기도 처음 들었다. 독소전쟁사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가진 독소전쟁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2차 대전 당시 가장 치열했고, 많은 사망자를 낸 전쟁이 궁금하다면 이 책이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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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 남성작가 편 - 세계문학의 흐름으로 읽는 한국소설 12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이현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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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초에 발간된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 개정판이다. 먼저 여성작가 편에 글을 썼지만 실제로는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이 먼저다. 이번 개정판은 여성작가 편과 연도 등을 맞추면서 50년대 작가 손창섭을 빼고, 70년대와 80년대와 2000년대 작가들을 한 명씩 더 넣었다. 전체적인 작가 숫자는 개정전보다 2명이 더 늘었다. 인터넷 서점 소개글에 올라온 연대표를 보면 70년대와 80년대는 남성작가의 숫자가 많지만 90년대는 여성작가가 더 많다. 단순히 판매부수만 생각해도 90년대 이전과 이후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시대와 성별 작가를 나눈 표는 생각보다 흥미롭다.


이전 책에서 다룬 아홉 명의 작가를 여기서 더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만약 내가 그 이후 이 작가들의 소설을 한두 권 정도 읽었다면 그 당시 감상과 지금의 것을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읽은 책이 없다.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추가된 세 명의 작가들도 내가 많이 읽은 작가들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낯익고, 나에게 영향을 끼친 작가들이라 어떤 시선으로 이들을 풀어낼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소설이 좋아 마구잡이로 읽었기에 체계도 없고, 재미를 쫓다보니 저자가 풀어낸 해석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바로 이 때문에 로쟈의 책을 읽는 것이지만.


아마도 <관촌수필>은 읽었을 것이다. 이문구의 다른 소설들은 확실히 기억나는데 이 대표작은 완전히 자신할 수 없다. 내 취향과 다른 이야기를 풀어낸 <매월당 김시습> 때문에 그 당시 읽었던 다른 작가들에 비해 더 많이 읽지 않았다. 이문열, 이청준, 박완서 등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제는 기억이 희미해진 예전 소설들이 다루고 있던 가족사와 전쟁 이후의 삶들이 조금씩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충청도 사투리를 잘 썼다고 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홍성원의 <달과 칼>에서 사투리가 사라진 것을 지적한 글이 떠올랐다. 지방 출신인 나도 이제 예전 사투리를 잊고 있기에 저자의 말에 더 공감한다.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은 읽지 않았다.(역시 확실한지는 부정확하다) 김원일에게 빠진 때는 대학 입학하고 단편을 한 번 읽어볼까 하고 도서관을 둘러보다 제목에 끌려 읽은 <환멸을 찾아서>였다. 이전까지 단편 소설을 싫어하던 나를 단편집으로 끌어당긴 그 첫 책이다. 아마 그 뒤 한두 권 정도 더 읽었을 테지만 왠지 손이 나가지 않았다. 아마도 다른 작가들이나 장르소설을 읽는다고 더 이상 읽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의 대하장편소설을 보고 늘 하는 다짐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저자의 평가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전쟁 이후 한국 사회가 재건되는 과정을 상세히 재현하고 현대 한국의 기원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의 깊은 작품”이란 글이다. 살짝 이 작품에 대한 기대를 불태워본다.


김훈의 <칼의 노래>는 읽을 때 재미가 없었다. 문체에 적응하는데 실패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 후 읽은 몇 편의 단편과 장편은 김훈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들었다. 특히 그의 산문집은 예상외의 읽는 즐거움을 주었다. 그의 문체와 잘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한다. <현의 노래>나 <남한산성> 등을 사놓고 오래 묵혀두고 있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현의 노래>의 경우는 작년 내내 옆에 두고 그냥 지나갔다. 들었다 읽으려고 마음먹은 후 그만 둔 책도 있다. “비극에 대해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 있다”라고 평가한 부분은 앞으로 그의 작품을 읽을 때 머릿속에 담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작년에 신작 한 권을 읽었는데 올해는 구작 한두 권은 읽어보고 싶다. 초기작에서 그의 문체를 다시 경험해보고 싶다. 늘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칼의 노래>를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 인데 아마도 올해 실현가능성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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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 여성작가 편 - 세계문학의 흐름으로 읽는 한국소설 10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이현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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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작년 이맘때 즈음에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이란 책을 읽었다. 현재 이 책은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 남성작가 편>으로 개정되어 나왔다. 새로운 작가 3명이 추가되어 있는데 아주 낯익은 작가들이다. 이 부분은 변경된 작가들만 가지고 서평을 따로 쓸 예정이다. 작년에 이 책을 읽으면서 여성작가들은 왜 빠졌지 생각했는데 이번에 60년대 이후 남녀 작가별로 구분해 2권으로 나왔다. 대부분 낯익은 이름들인데 작가 한 명이 낯설다. 그 낯선 작가로부터 저자는 분석을 시작한다. 이번에도 분석의 중요한 틀은 근대와 장편소설이다.


10명의 여성작가들 중 두 명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최소 한 권씩은 읽었다. 사실 확실하게 읽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인물은 한 명이다. 바로 전혜린이다. 강신재의 경우 낯설지만 그녀의 단편을 읽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한때 아주 열심히 한국 단편소설을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전혜린을 내가 인식한 것도 사실 여성작가들의 글을 통해서였다. 소설가도 아니고 번역가이고, 수필집도 사후 두 권 나온 것이 전부이다 보니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도 유명하다고 하니 오래전 2권을 사놓기는 했다. 지금 감성으로 읽는다면 어떨까? 사실 소설가도 아닌 전혜린을 넣은 이유를 저자는 그녀가 표시하는 지점 때문이라고 말한다. 서구문학이 일어중역판으로 나오던 그 시절 그녀는 자신이 직접 번역했다. 그리고 그녀가 선택했던 작품들이 독일에서 중요하게 평가하지 않는 작가를 한국에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재밌는 부분은 그 두 권의 소설들이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해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은 재미가 없었다. 당시 갑자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워낙 <토지>가 유명해서 읽었다. 기대를 너무한 것인지, 아니면 취향이 다른 것인지. 어쩌면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재미없었던 이유에 대한 답을 조금은 찾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토지>는 지금도 읽지 않았다. 박완서의 <나목>은 읽은 것 같은데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때 열심히 박완서의 초기 소설들을 읽었는데 어느 작품에서 어린 내가 충격을 받았다. 아직 지금처럼 거장으로 인정받기 전이었는데 그 당시 말로 통속적이고 너무나도 환멸을 느끼게 만들었다. 읽다 그만 둔 작품도 몇 권 있다. 그 후 그녀의 작품들을 새롭게 읽으면서 인식을 새롭게 하는데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을 받을지 늘 궁금하다.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오정희의 <유년의 뜰>도 솔직히 기억에 없다. 아마 읽었다고 해도 재미없었을 것이다. 워낙 유명한 작가라 큰 기대를 했는데 너무 기대에 뒤처지는 책을 한 권 읽은 후 관심을 많이 접었다. 그녀의 대표작을 읽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강석경의 <숲속의 방>은 어느날 집 책장에 꽂혀 있어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래되어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재밌게 읽었고, 작가의 다음 작품도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80년대 두 작가를 내세워 둘의 차이를 들려줄 때 내 취향은 강석경임을 분명하게 느낀다. 갑자기 한창 이름을 날리다가 작품 활동이 뜸해진 양귀자가 떠올랐던 것은 왜일까? 서점에 양귀자의 책들이 다시 나오고 있던데 로쟈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났다.


한때 아주 열심히 읽은 작가가 공지영과 은희경이다. 아직도 공지영의 초기 3권을 정신없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세부적인 내용은 당연히 기억나지 않지만 표지에 실린 예쁜 얼굴과 높은 가독성이 떠오른다. <우행시>로 다시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저자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 집중한다. 저자의 줄거리 내용과 분석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재밌게 읽었다. 친구가 추천하기도 했다. 이후 내가 한국 소설을 떠나게 만든 인물들 중의 한 명이 바로 은희경이다. 90년대 여성작가들의 소설은 계속 읽기 너무 피곤했다. 그리고 읽을 때는 몰랐는데 저자의 분석에서 사라진 20년 부분은 공감하면서 왠지 모르게 반발심을 느끼게 만든다.


표절작가로 낙인찍힌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나는 눈물 흘리며 읽었다. 이 책을 추천했을 때 눈물 흘린 사람과 재미없다는 사람으로 나누어졌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실제로 신경숙의 책을 여러 권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읽은 것은 몇 권 되지 않는데 표절 사건 이후 더 손이 나가지 않는다. 필사를 하면서 문장을 연습한 것이 자신도 모르는 표절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분석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최근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작가가 황정은이다. 어쩌다보니 3권의 장편소설을 읽었다. 두 권은 경장편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계속해보겠습니다>도 읽었는데 솔직히 쉽지 않았다. 그녀의 소설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것은 <디디의 우산>인데 이 책에서는 잠시 언급만 하고 지나간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분석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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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성동물
황희 지음 / 몽실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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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색다른 좀비 소설이다. 사회파 SF 미스터리란 혼종 장르다. 이 소설 속 좀비는 마약에 의해 만들어진 좀비다. 작가는 이것을 과거의 사실과 상상력의 결합으로 이어간다.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설명 중 하나는 바로 마약성 진통제다. 최근 읽은 책에서 미국에서 마약보다 더 문제가 되고 있다는 글을 읽을 적 있다. 처방전만 있으면 살 수 있고, 이것은 중독으로 이어진다. 합법적인 유통이란 점에서 더 무섭다. 이 마약성 진통제 때문에 중독되고, 죽은 사람은 있지만 이것을 제대로 파헤치고 배상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이 소설이 다른 좀비 소설과 다른 점은 바로 이 지점을 정확하게 말하고, 좀비를 반드시 죽여야 하는 존재로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나는 미국 텍사스 주 엘파소 국경수비대로 일한다. 국경을 넘나드는 차들을 이용해 마약을 반입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단란한 일가족으로 위장했지만 금발 들킨다. 그러다 누군가 좀비처럼 경비대를 공격한다. 총격이 가해진다. 계속 움직인다. 머리를 맞은 후 완전히 멈춘다. 전형적인 좀비 사냥법을 제시한다. 한나는 사무실에서 마약 봉투를 발견한다. 동료가 흘린 것이다. 그 동료가 한나에게 가지고 있는지 묻는다. 모른다고 대답하는데 그가 협박한다. 근무시간을 마친 후 집에 돌아온다. 집에는 딸 러너가 있다. 부모의 마약 중독 때문에 하반신 마비로 태어났다. 아이 아버지 제이콥은 야행성동물1을 먹고 좀비처럼 사람을 공격하다 총에 맞아 죽었다. 이들이 마약에 중독된 이유가 바로 학교 총격 사건의 트라우마 때문인데 말이다.


더욱 강해진 야행성동물 마약이 엘파소를 덮친다. 좀비가 되어 사람들을 물어뜯는다. 위기에 상황에 그녀를 도와주는 남자가 등장한다. 하진이다. 한나는 하진에게 끌리지만 하진은 귀국해야 한다. 명함 한 장 남기고 그는 떠났다. 엘파소의 마약 좀비는 한나를 귀국하게 만든다. 그녀의 부모는 흰섬이란 곳에서 살고 있다. 귀국해 평화롭게 살고 있는데 백병원이란 곳에서 마약 좀비가 확산된다. 작가는 여기서 SF적인 요소 하나를 집어넣는다. 바로 고대의 ZED 바이러스다. 야행성동물2가 ZED 바이러스 보유자에 투여되면 좀비로 변하고, 그에게 물린 사람도 좀비로 변한다. 한나가 머무는 흰섬은 이제 좀비들로 가득 찬다.


좀비가 생긴 이후 벌어지는 상황은 일반 좀비 소설과 별 차이가 없다. 사람을 공격하는 좀비와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대결 구조가 이어진다. 고립된 섬에서 일부 사람들이 경찰서의 무기를 탈취해 좀비들을 사냥한다. 정확히 머리를 노리고 쏜다. 한나는 흰섬에서 다시 하진을 만나고, 좀비로 변한 가족의 공격을 받고, 다리가 불편한 딸 러너를 찾아다닌다. 미국 시민권 때문에 군에 들어가 훈련을 받은 그녀는 일반 시민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액션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좀비로 변한 사람들이 바닷물에 들어가질 않는다는 것이다. 일정 시간이 되면 한 곳에 모여 있는다. 이런 좀비는 총을 가진 무리에게 좋은 사냥감이 된다. 인간의 잔혹함이 드러나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영화 한 편이 스쳐 지나갔다. 바로 <웜 바디스>다. 원작 소설이 있는데 영화만 봤다. 좀비가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다룬 영화인데 이 소설 속 좀비들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좀비의 광란에서 진정된다. 물론 이런 사실을 사람들은 모른다. 다만 한나는 치료제가 개발되면 이들이 보통 사람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좀비를 죽이기보다 가두는 방식을 사용한다. 당연히 총으로 죽이는 것보다 가두는 것이 더 힘들다. 그리고 흰섬에 일제강점기 당시 만들어 둔 지하 통로가 있는데 작가는 이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한나가 섬을 떠나면서 흐지부지된다. 아쉬운 대목이다.


빠른 전개와 좀비라는 설정은 가독성을 높인다. 다양한 사람들보다 한나 쪽에 시선을 집중하면서 몰입도도 높였다. 적절하게 마약과 권력과 비리 문제 등을 풀어놓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쉽고 빠르고 감상적으로 흘러간다. 다른 좀비 소설 등이 인간의 오만으로 더 큰 문제가 생기는 점을 부각했다면 이 소설은 통제 가능하다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다.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어느 정도 희망적인 부분을 보게 되지만 현실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해시태그 #살아있습니다 사용하는 생존자들을 보면서 하진의 희망찬 다짐을 보면서 이 이야기의 다음을 기대해본다. 2편을 쓴다면 어떤 식으로 작가가 풀어낼지 궁금하다. 그 희망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지, 아니면 그 희망이 사그라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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