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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 사는 네 여자
미우라 시온 지음, 이소담 옮김 / 살림 / 2020년 11월
평점 :
거의 1년만에 미우라 시온의 새로운 소설을 읽었다. 전작 <사랑 없는 세계>도 흥미로웠지만 이번 작품도 재밌다. 너무 낯익은 작가 이름이라 많은 소설을 읽은 것 같은데 집에 사놓은 책들이 많은 것이지 읽은 책은 몇 권 되지 않는다. 사실 이런 작가들의 작품들이 책들이 상당히 많다. 한두 권 읽고 마음에 든 작가들의 작품을 한때 열심히 사 모은 덕분이다. 뭐 지금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작가가 나오면 이런 책더미는 더 쌓이는데 요즘 조금 절제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실제는 잘 되지 않고 있다. 몇 번이나 글로 쓴 듯한데 어느 순간에는 읽었는지 불명확한 경우도 있다. 다행이라면 한때 열심히 서평을 쓴 덕분에 대부분 확인이 가능하다는 정도랄까.
신간의 경우 독서 여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재간이 아닌 경우에 한해서다. 이 소설이 2019년 일본 드라마 원작이었다고 하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드라마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열심히 일본 드라마를 봤기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 글을 쓰면서 드라마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반가운 배우 이름이 보인다. 한때 그녀의 출연작을 열심히 찾아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원작과 다른 설정들이 눈에 들어온다. 개인적으로 원작의 이미지가 많이 바뀔 것 같다. 정확한 평가는 드라마를 본 후에 바뀔 수도 있다. 특히 유키노의 경우에 말이다.
소설의 분위기는 크게 두 번 바뀐다. 첫 번째는 열리지 않는 방이 열리면서 갓파 미라가 발견되고, 이 순간 화자가 까마귀로 바뀌면서부터다. 그 다음은 위기에 처한 사치의 상황에서 나온다. 화자가 영혼이란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처음 읽을 때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와 구성이다. 그런데 이런 전개에도 불구하고 크게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야기의 전개 과정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장면에서는 초자연적 현상이라고 불릴만한 사건도 있다. 그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공포스럽게 다가왔을지 모르지만 작가는 보는 시각에 따라 코믹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과 이후 벌어지는 몇 가지 에피소드가 아주 재밌었다.
한 집에 네 명의 여자가 사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네 명의 여성들이 어떻게 모였는지, 그들의 일상이 어떻는지 들여다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자수를 놓는 사치를 중심으로 놓고, 그녀의 엄마인 쓰루요, 이상하고 우연한 만남을 통해 알게 된 유키노, 유키노를 통해 다시 연결된 다에미 등이 한 집에 같이 산다. 그런데 이 집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작은 주택이 아니다. 도쿄에 위치해 있지만 넓은 부지를 가지고 있다. 소위 말하는 땅부자인데 이 부동산 개발을 통해 자산을 늘릴 생각을 이 모녀는 하지 않는다. 현상 유지하고 노년에 자금이 부족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물론 불안감은 있다. 사치의 불안감이 몇 번이나 나올 정도니까.
네 명의 여자가 함께 살지만 연애 비슷한 것을 그려내는 인물은 세 명이다. 당연히 엄마인 쓰루요가 있고, 전 남친의 스토킹 때문이 이 집에 들어와 살게 된 다에미와 집에서 자수만 놓으면서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거의 없는 사치 등이다. 미녀이지만 존재감이 거의 없는 유키노의 연애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드라마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설정이 나오지만. 작가는 이 네 명의 연애 이야기는 작은 에피소드 정도로 다룬다. 진짜 이야기는 이 네 명의 여성들이 함께 머물면서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일들을 그려내는 것이다. 느슨한 연대라는 표현이 딱 맞다. 하지만 이 연대는 아주 강력하게 힘을 발휘한다. 언젠가 서로 헤어질 수 있지만 지금 현재 그들의 빈 공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상당히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쓰루요의 과거,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없었던 사치, 늘 경비실 같은 곳에 살면서 이 모녀 주변에 머문 야마다 등이 미묘한 관계 속에서 상상력을 북돋는다. 그리고 순간 순간 일어나는 작은 에피소드는, 특히 유키노의 물재난 이야기는 하나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유키노에겐 사치가, 사치에겐 가지가 등장한다. 도배를 위해 온 가지에 대한 연심을 품고 있는 사치의 순수하고 엉뚱한 행동은 또 다른 재미다. 이런 그녀를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인물은 유키노다. 다에미가 전 남친에게 스토킹 당하면서 흔들리자 이것을 바로 잡아준 인물도 역시 유키노다. 드라마에서는 불륜녀로 만들어 놓았으니 내가 불만일 수밖에.
느슨한 연대 속 네 여자의 관계는 어떤 특별한 감정에 휘둘리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모녀지간인 사치와 쓰루요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각자 역할과 순서를 정하고 집안에서 행동한다. 다만 남자가 없다 보니 다에미의 스토킹이 신경 쓰인다. 자신들이 사는 곳을 숨기기 위해 택시를 타면서 경제에 큰 타격을 입자 역공을 멋지게 펼치지 않았던가. 그리고 각자 자신들의 삶에 충실하다.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같이 살아간다. 이것이 이들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새로운 가족의 모습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최근 가족을 다양한 형태로 다루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데 더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