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을 빕니다
김이환 지음 / 들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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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나온 <오픈>이 제목을 바꿔 나왔다. 이 사실이 작가의 이야기에 나온다. 보통 인터넷 서점에 이런 정보가 잘 올라오는 편인데 이번에는 보이지 않는다. 김이환 팬이라면 참고할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에 대한 환상이 있다. 아마 작가가 장편들을 낼 당시 이런 장르가 그렇게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장편은 제대로 읽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계속 관심을 두고, 가끔 사 놓는다. 집에도 몇 권이나 있다. 읽어야지 하면서 늘 미루어 두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단편들은 여기저기에서 읽었지만 장편은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솔직히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데는 작가 이름 때문이다. 최근에도 그의 단편들이 여러 앤솔로지에 실렸고, 그 중에서 몇 편을 읽었다. 기대한 만큼의 완성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그 단편집들의 성격도 한 몫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번 단편집도 연작이지만 묵직한 느낌보다 가볍고 익숙한 내용들의 변주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이야기 속에 전래동화 제목이 나온다. 작가 이야기에도 전래동화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작업들을 좋아한다. 낯익은 이야기를 낯설게 느끼게 만들면서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하는 작업들 말이다. 


열 편의 연작 단편들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하얀 상자다. 이전 작품에서 <오픈>이란 제목을 붙였는데 이 상자 위에 open이란 단어가 있다. 빈 상자이지만 자신의 소원을 빌면 그것이 현실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대가는 있다. 그런데 작가는 이 대가 부분을 각각의 단편에서 다르게 풀어낸다. 첫 단편 <그의 상자>에서는 부모가 가장 바라지 않는 부분으로, <다른 사람의 상자>는 더욱 끔찍한 결말로 이어진다. 하지만 어떤 단편들은 유쾌하고, 기발하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읽으면서 나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텐데 생각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 때문에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잠시 되기도 했다.


하얀 상자와 ‘행운을 빕니다’라는 말이 엮일 때, 나의 일상에서 불만이 폭증하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아쉬움이 강하게 남고, 결정 장애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생각하면 이런 이야기도 가능하다는 부분이 재밌다. 물론 선택이 너무나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있다. <아들의 상자>는 한 심리학 문제를 노골적으로 이야기 속에 풀어놓았다. 개인과 대의란 전통적인 문제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 사고 실험이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나의 삶을 조금 더 즐길 수 있게는 만들 것이다.


읽으면서 심리적으로 가장 잔혹하게 다가온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상자>였다. 도입부와 마무리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하나의 사건과 그 사건의 내용이 나를 섬뜩하게 만들었다. 몰라도 되는 부분을 알게 되면서 겪게 될 그 상황을 생각하면 그 처참하고 잔혹한 상황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아마 이런 작품들이 더 나왔다면 이 단편집 전체 분위기가 바뀌었을 것이다. 반면에 <노인의 상자>와 <아내의 상자>는 현재의 삶을 더 생각하게 만든다. 그때 하지 않아 느낀 아쉬움과 그리움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아내의 상자>는 앞에 나온 아홉 편을 소설 속에서 간단하게 정리까지 해준다. 


전체적으로 밀도가 높은 단편들은 아니다. 작가의 이야기처럼 가볍게 읽을 수 있게 쓴 글들이다. 그 목적에는 맞다. 가득 채운 이야기가 아니고, 전래동화 등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어 나의 상상력이 충분히 덧씌워질 수 있었다. 실화도 있다고 하니 한 번 검색해보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복잡한 구성이 아니라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지만 이 부분에서 개인적인 호불호가 생길 것 같다. 다양한 직업과 연령대와 성별 등은 이 단편집의 또 다른 재미다. 시간 내어 장편도 빨리 읽어봐야겠다. 올해 안에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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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세습 - 중산층 해체와 엘리트 파멸을 가속하는 능력 위주 사회의 함정
대니얼 마코비츠 지음, 서정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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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릿속은 복잡하게 엮이기 시작했다. 나 자신도 어느 정도는 능력주의를 신봉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 속에서 보여주는 미국식 능력주의를 신봉하지는 않는다. 상위 1% 이상이 얻는 연봉을 보면 일단 반감부터 생긴다. 그들이 보여준 능력이 과연 그 정도일까 하는 의문도 같이 따라온다. 이런 반감을 뒤로 하고 이 엘리트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이 권력을 자신의 자식들에게 이어주려고 하는지 차분히 들여다볼 때 내 삶도 같이 돌아본다. 내가 늘 주장하는 자식의 교육법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제는 586 세대로 불린 사람들이 그들의 자식을 어떻게 키웠는지 떠올리면서 미국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는다.


저자는 미국의 능력주의가 강화된 것이 불과 수 십 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점점 낮아진 세율과 중간층 노동자들이 필요 없어진 환경 등이 엮이면서 부의 지도가 재편되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일반 직원으로 들어가서 회장까지 직위가 올라갔지만 이제는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 이전에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같은 동네에 살았지만 이제는 직업과 소득 수준에 따라 거주지가 나누어진다. 거주지가 나누어진다는 것은 학교가 바뀐다는 의미다. 학교가 바뀌면 교육의 질이 달라진다. 오래전 한국도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과외수업을 받게 하고, 이사를 다녔던가. 실제 저자는 한국의 교육에 대해서 책 속에서 한두 번 인용하기도 한다.


능력주의와 대비해서 설명하는 것은 예전의 귀족주의다. 이제는 귀족주의가 누구에게나 배척받고 있지만 이전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시대의 변화가 능력주의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계속해서 이 부분이 논의되어야 바뀔 수 있다. 능력주의에 대한 믿음과 2008년 금융위기 사건과 연결해서 월가의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고 지적한 부분은 엘리트들이 정치적으로는 진보를 말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보수적이란 부분과 이어진다. 실제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다. 말로는 진보를 외치지만 부동산에 가면 누구보다 보수적인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능력주의는 귀족주의처럼 엘리트 계층과 나머지 계층을 전반적으로 분리한다. 탁월한 교육의 특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이런 능력주의도 문제가 있다. 엘리트들을 과도한 노동에 빠트린다. 어릴 때부터 치열한 경쟁에 노출면서 많은 문제들이 생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강남 어린이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정신적 문제를 겪은 아이들이 가장 많은 지역이 강남이라고 하지 않는가.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예전과 달리 엘리트 학생들만 뽑는다는 부분은 한국 대학들이 특정 지역 학생들을 선호한다는 것과 이어진다.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엄청난 부를 물려주지는 않지만 탁월한 교육을 받게 하면서 권력을 대물림한다. 이 결과 부유층과 중산층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중산층과 저소득층 간의 격차는 줄어든다. 양극화가 더 심화된다. 능력주의는 능력에 따른 불평등을 정당한 것으로 선언함으로써 ‘중산층에게 경제적 피해에 도덕적인 모욕까지 가했다’고 주장한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실제로 남녀 임금 격차가 축소되는 추세는 대학을 나오지 않은 남성의 임금 하락이 빚어낸 결과물이란 부분이다. 실제 최상위 소득자들 중 여성의 비중이 현저히 낮다는 것도 지적하고 있다. 여성들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난자를 냉동 보관해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이 비용을 회사가 내주지만 임신 결정권마저 회사로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월가의 고소득자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대목은 놀랍지만 그렇게 충격적일 정도는 아니다. 한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지금까지 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차이라면 하는 일과 엄청난 연봉 격차 정도랄까. 뭐 능력주의에서는 이것이 전부일 수도 있지만.


“능력주의에 따른 불평등은 능력주의 그 자체의 폐해”고, “무엇보다 능력에 대한 사고방식이 그 폐해의 근원”이며, “능력주의는 귀족의 정치와 경제 형태가 현대적으로 재현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능력주의가 과대평가되었다는 부분도 나온다. 조금 더 평등한 사회를 위한 방법으로 제시한 것 중 사립대학 기부금 부분이 있다. 엘리트들이 학교에 기부금을 내면서 세액 공제를 받고, 학교는 세금도 내지 않으면서 이 돈으로 차별화된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엘리트가 대물림하기 더 좋은 환경을 만든 것이다.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내 삶을 돌아보고, 미래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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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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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을 읽었다. 작가 이름을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하니 낯익은 작품들이 나온다. 대부분 가지고 있는 책들이다. 그리고 이번 소설을 읽고 <64>에 관심이 생겨 집안을 뒤져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종신 검시관>이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읽은 것 같은데 하고 검색하니 서평이 보인다. 한때 이 작가의 책이 한꺼번에 나와 열심히 모은 기억이 난다. 그 다음은 늘 그렇듯이 책의 무더기 속으로 쏙 들어갔다. 한없이 읽기가 뒤로 밀린 책들 중 이 작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신간이 나오면 눈길이 간다. 이 놈의 책 욕심은 언제 사라지려나.


오랜만에 읽은 작가의 신작은 잡지 연재한 것을 거의 대부분 개작한 후 내놓았다고 한다. 처음 쓴 문장의 10퍼센트만 남았다고 하니 실제 다시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이야기를 읽다 보면 괜히 잡지 연재한 원본(?)을 읽고 싶어진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고 싶다. 이런 관심을 뒤로 하고, 소설 속으로 들어가면 묵직한 문장과 강한 흡입력을 발휘하는 이야기 속에 빨려 들어간다. 미스터리라고 하지만 살인은 없고, 자신이 지은 집 주인 일가가 사라진 흔적을 쫓으면서 자신을 삶을 돌아보고, 건축이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작가가 이야기 속에 풀어놓은 근대 건축의 거장 브루노 타우트 부분은 읽으면서 엄청나게 공부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참고자료를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건축사 아오세 미노루는 거품 경제 붕괴 후 여러 일을 전전하다 동기 오키지마의 설계사무소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러다 요시노라는 의뢰인이 ‘당신이 살고 싶은 집을 지어달라’고 의뢰한다. Y주택으로 불리는 이 집은 북향 목조 가옥이다. 나 자신도 남향의 신화에 빠져 있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더 집의 방향을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남향은 과거 빛이 귀한 시절의 최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지은 집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건축 200선에도 뽑힌다. 이런 집을 지어달라는 요청이 또 온다. 그런데 Y주택에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여기서부터 미스터리는 시작한다.


오키지마와 함께 Y주택에 간다. 사람의 흔적은 없다. 2층에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이 의자에 앉으니 평온하다. 오키지마가 이 의자가 타우트의 의자 같다고 말한다. 만약 진품이라면 희귀한 유물이다. 아오세는 요시노의 이전 집을 찾아간다. 조금이나마 흔적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그러다 한 남자가 그를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혹시 사채를 빌린 것일까? 하지만 건축 비용은 완납했다, 타우트의 의자는 또 뭐지? 완공 후 메밀집에 함께 왔다는 아내는 자신의 기억과 다르다. 작가는 의자부터 시작하여 타우트의 건축과 가구에 대한 이야기를 연결시키고, 이 미스터리를 그 속에 녹여낸다.


설계사무소가 하나의 공간이다 보니 사라진 의뢰인 찾기만 할 수 없다. 오키지마는 공공건물 입찰을 따내기 위해 열심히 영업한다. 또 다른 이야기의 한 축이다. 사라진 의뢰인과 새로운 건축설계가 연결되고, 은연중에 타우트가 점점 지분을 넓혀간다. 그가 지은 휴가장이란 곳에 가고, 새로운 단서를 얻고, 이전엔 몰랐던 타우트를 알게 된다. 의자는 아주 중요한 단서다. 읽다 보면 약간 의뢰인이 이렇게 한 이유가 짐작되지만 그것은 거의 끝에 도달했을 때다. 그리고 이 일은 아오세의 과거와 연결된다. 화려했던 시절에 취해 자만했고, 아내와도 헤어졌던 그 시간들. 묵직하지만 부드럽게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정신없이 빠져든다.


이 소설을 읽으면 두 죽음이 나온다. 하나는 아오세의 아버지고, 다른 하나는 설계사무소 소장 오키지마다. 아오세의 아버지는 사라진 구관조를 찾으러 갔다가 떨어져 죽었고, 오키지마는 뇌물수수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은 후 병원에 입원했다 추락해 죽었다. 실제 오키지마가 제공한 뇌물은 택시비 정도 밖에 없다. 하지만 정치와 언론이 결탁해 그를 극단으로 몰고 갔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자살과 실수로 나누어진다. 경찰은 자살로, 아오세는 실수로 추락했다고 본다. 이 두 아버지는 모두 아들을 아주 사랑했다. 실수는 있을 수 있지만 둘 다 자실은 아니다. 오키지마 이야기는 더 복잡한 사연이 엮여 있는데 읽으면서 아버지란 존재를 돌아보게 한다. 기념관 설계를 위해 전력을 다하는 마지막 몇 십 쪽은 숨 막힐 정도로 멋지고 열정적이다. 빨리 <64>를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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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의 달
나기라 유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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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서점대상 수상작이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가장 주목하고 있는 일본 문학상이다. 인터넷으로 목록을 검색하면 낯익은 작품들이 주루룩 나온다. 재밌게 읽은 책들과 읽으려고 사 둔 책들과 사야할 책들이 나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그런데 이번 수상작의 작가 이력에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이전까지 BL소설을 썼다는 부분이다. 특정 장르의 전문가가 대중적인 소설로 이런 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이 나의 편견이나 선입견일 수 있다. 가끔 웹소설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작품들을 발견하지 않았던가. 인기 작가의 글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도 경험했지 않은가. 잠시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소설은 두 사람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대부분은 여자의 이야기이지만 남자의 이야기는 여자 이야기의 빈 부분을 채워준다. 소설의 첫 부분은 마지막 이야기와 이어지고, 읽으면서 느낀 답답하고 암울한 기분은 드러난 현실 앞에서 조용히 사라진다. 작가는 하나의 사건을 편견과 엮었고, 이런 편견이 차라리 나은 인물을 등장시켜 우리 삶의 다른 모습을 차분하게 파고든다. 이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보면 사람들이 가진 선입견과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사라사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낀다. 아마 나 자신도 이런 신문 기사를 읽었다면 이 소설 속 일반 사람들과 다름없이 행동했을 것이란 부분에 섬뜩했다.

 

자유로운 부모님 밑에서 자란 사라사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아빠가 병으로 죽고, 엄마는 아이를 버리고 떠난다. 이모 집에서 살지만 그 집에서 사촌 오빠가 그녀를 성추행한다. 이모가 내뱉는 말과 다른 가치관과 성추행은 집이란 공간을 두려움의 장소를 바꾸어 놓았다. 이런 현실에서 공원에서 노는 어린 소녀들을 늘 지켜보는 한 대학생이 있다. 아이들은 그를 로리콘이라 부르면 멀리하려고 한다. 하지만 비 오는 날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그녀에게 후미가 내민 작은 손길은 일상을 벗어난 큰 도움의 손길이다. 이때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는 흔히 상상하는 소아성애자의 추악한 행동이나 심리가 아닌 한 소녀의 편안함과 자유에 대한 일상 기록이다. 하지만 이 일상은 그녀의 실종 신고와 더불어 언젠가 깨어질 수밖에 없다.

 

사라사의 바람대로 동물원에 갔다가 후미는 잡히고, 사라사는 이모의 집에 돌아간다. 소녀가 진실을 내뱉어 현실을 조금이나마 바로 잡으려고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후 진행되는 이야기를 보면 그녀의 말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많아 보인다. 성추행의 사실을 알고 이모네가 보여준 행동은 또 어떤가. 이렇게 후미와 헤어진 후 15년이 지나간다. 그런데 이 긴 세월 동안 그녀에 대한 기록은 영원히 박제되어 인터넷을 떠돈다. ‘디지털 문신이란 표현이 정말 맞다. 그녀가 회사에 다닐 때도 이 일은 그녀의 삶을 뒤흔든다. 물론 이 일이 새로운 남자 친구를 만들어주지만.

 

남자 친구와 동거하는 중에 사라사는 알바를 한다. 이 알바 현장에서 동료들이 보여주는 관심은 호기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단 한 명 딸을 둔 엄마의 솔직한 행위를 제외하면 말이다. 이 엄마가 보여준 솔직한 행동은 그녀를 편하게 만든다. 남자와 여행을 가기 위해 사라사에게 딸을 맡기기도 한다. 이런 그녀의 일상에 다시 후미가 끼어든 것은 여직원들과 함께 간 특이한 커피숍에서다. 그곳은 후미가 운영하고 있었다. 15년의 세월이 흘러도 그녀는 그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를 몰래 따라다닌다. 그녀의 삶이 안정적인 같은데 과거의 기록들이 삶을 계속 흔든다. 작가는 이 흔들리는 삶을 두 사람의 심리를 따라가면서 세심하게 그려낸다.

 

가정 폭력, 친척의 성추행,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고착화된 시선과 편견들, 디지털 문신, 친절로 포장한 호기심 등이 소설 속에 녹아 있다. 소아성애자의 삶을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것처럼 그려내지만 실제 사연은 다른 곳에 있다. 걱정하는 듯하는 시선과 관심의 속내는 호기심과 이야기 거리일 뿐이다. 평범한 삶을 살려고 해도 사람들의 호기심은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하는 행위들이 이어지지만 사라사 등에게 해가 될 뿐이다. 일단 선입견에 빠지면 모든 이야기는 자신들의 이해 속에 짜맞춘다. 이런 뒤틀린 현실 속에서 이 둘의 미래는 결코 평화롭지 않다. 하지만 작가는 다른 삶을 그려내면서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진한 여운을 남기고, 생각할 거리가 많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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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우주선의 시간 - 제1회 카카오페이지×창비 영어덜트 장르문학상 수상작
이지아 지음 / 스윙테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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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1회 카카오페이지×창비 영어덜트 장르문학상 카카오페이지 특별 선정작이다. 얼마 전 대상 수상작인 <스노볼>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취향에 더 맞는 작품은 이 작품이다. 아마 조금 더 낯설고 문장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분량이 적은 것은 빠르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과 디테일이 생략되어 있다는 단점으로 다가온다. 비어 있는 공간이 많아 나의 상상력으로 그곳을 채워야 하는데 설정마저 그렇다는 부분에서 조금 아쉽다. 어떻게 보면 sf형식만 빌린 한 편의 성장 소설일지 모른다. 잃어버린 물건의 복수극을 꿈꾸면서 글을 썼다고 하지만 말이다.


기본적으로 소녀 룻과 티스테라는 정찰 우주비행선이 화자로 등장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룻는 티스테와 함께 우주를 누볐던 다비드 훈의 손녀딸이다. 티스테(TST1)는 훈이 돌아올게란 약속을 믿고 기다리다 토성의 상트레겐 계곡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던 정찰 우주선이다. 버려진 우주선을 안드로이드로 재생하는 에레스 박사의 도움으로 인간 남성으로 다시 태어났다. 인공지능에 감정까지 가진 티스테는 훈의 귀환을 기다린다. 하지만 훈은 이미 죽었다. 이 사실을 숨긴 채 룻이 티스테를 찾아오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룻은 뛰어난 해커다. 신선한 공기가 부족한 동네에 살고 있다. 돈을 벌면 엄마를 신선한 공기가 있는 곳 근처까지 옮기려고 한다. 해킹 신고로 돈을 벌지만 이사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다 우주로직사를 해킹하려다 감지되고, 우주로직사가 엄청난 보상금을 건 것을 발견한다. 그 대상은 티스테 1이다. 이 보상금이 룻으로 하여금 훈 할아버지의 낡은 우주선을 떠올리게 만든다. 처음에 룻은 티스테를 우주로직사에 데리고 갈 목적으로 이 여행을 계획했다. 하지만 인간의 감정은 서로 교류하면서 관계를 맺고. 같은 인물을 추억하고, 함께 위험한 경험을 하면서 변한다.


작가는 룻과 티스테의 기억 속에서 훈을 불러온다. 훈이 한 일과 대화 등은 이 둘이 만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룻이 티스테를 만나고 지구로 돌아오는 과정까지 모두 다섯 행선지다. 이 각각의 행선지는 새로운 이야기와 추억이 교차하고, 룻이 사실을 말할 기회를 제공한다. 머릿속에 완벽한 문장이 만들어졌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이러면서 감정은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고, 사실에 다가간다. 하지만 우주로직사의 진짜 목적이 드러나면서 이 상황은 알 수 없게 된다. 작가는 다섯 행선지 모두에서 작은 이벤트를 만들어 재밌게 읽을 수 있게 만든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대목을 아주 멋진 문장으로 썼다. “이 아이는 어떻게든 빛을 찾아내려는 연약한 새싹의 모습을 감추려 하지 않은 채 순수하게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이 드러냄이 성장으로 바뀐다. 사실은 안 티스테가 과거의 흔적에 집착하고 상처받았을 때 현실을 깨닫게 한 것도 이 감정을 실천으로 옮긴 룻 덕분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을 배우고, 인간처럼 행동할 때 아직 채우지 못한 부분들을 채우는 것도 룻과의 행동 덕분이다. 버려진 존재란 것을 알고, 이 상실감을 채우려고 하는 모습과 다시 신뢰를 얻으려는 진심이 간결한 이야기와 여백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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