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성동물
황희 지음 / 몽실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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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색다른 좀비 소설이다. 사회파 SF 미스터리란 혼종 장르다. 이 소설 속 좀비는 마약에 의해 만들어진 좀비다. 작가는 이것을 과거의 사실과 상상력의 결합으로 이어간다.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설명 중 하나는 바로 마약성 진통제다. 최근 읽은 책에서 미국에서 마약보다 더 문제가 되고 있다는 글을 읽을 적 있다. 처방전만 있으면 살 수 있고, 이것은 중독으로 이어진다. 합법적인 유통이란 점에서 더 무섭다. 이 마약성 진통제 때문에 중독되고, 죽은 사람은 있지만 이것을 제대로 파헤치고 배상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듣지 못했다. 이 소설이 다른 좀비 소설과 다른 점은 바로 이 지점을 정확하게 말하고, 좀비를 반드시 죽여야 하는 존재로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나는 미국 텍사스 주 엘파소 국경수비대로 일한다. 국경을 넘나드는 차들을 이용해 마약을 반입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단란한 일가족으로 위장했지만 금발 들킨다. 그러다 누군가 좀비처럼 경비대를 공격한다. 총격이 가해진다. 계속 움직인다. 머리를 맞은 후 완전히 멈춘다. 전형적인 좀비 사냥법을 제시한다. 한나는 사무실에서 마약 봉투를 발견한다. 동료가 흘린 것이다. 그 동료가 한나에게 가지고 있는지 묻는다. 모른다고 대답하는데 그가 협박한다. 근무시간을 마친 후 집에 돌아온다. 집에는 딸 러너가 있다. 부모의 마약 중독 때문에 하반신 마비로 태어났다. 아이 아버지 제이콥은 야행성동물1을 먹고 좀비처럼 사람을 공격하다 총에 맞아 죽었다. 이들이 마약에 중독된 이유가 바로 학교 총격 사건의 트라우마 때문인데 말이다.


더욱 강해진 야행성동물 마약이 엘파소를 덮친다. 좀비가 되어 사람들을 물어뜯는다. 위기에 상황에 그녀를 도와주는 남자가 등장한다. 하진이다. 한나는 하진에게 끌리지만 하진은 귀국해야 한다. 명함 한 장 남기고 그는 떠났다. 엘파소의 마약 좀비는 한나를 귀국하게 만든다. 그녀의 부모는 흰섬이란 곳에서 살고 있다. 귀국해 평화롭게 살고 있는데 백병원이란 곳에서 마약 좀비가 확산된다. 작가는 여기서 SF적인 요소 하나를 집어넣는다. 바로 고대의 ZED 바이러스다. 야행성동물2가 ZED 바이러스 보유자에 투여되면 좀비로 변하고, 그에게 물린 사람도 좀비로 변한다. 한나가 머무는 흰섬은 이제 좀비들로 가득 찬다.


좀비가 생긴 이후 벌어지는 상황은 일반 좀비 소설과 별 차이가 없다. 사람을 공격하는 좀비와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대결 구조가 이어진다. 고립된 섬에서 일부 사람들이 경찰서의 무기를 탈취해 좀비들을 사냥한다. 정확히 머리를 노리고 쏜다. 한나는 흰섬에서 다시 하진을 만나고, 좀비로 변한 가족의 공격을 받고, 다리가 불편한 딸 러너를 찾아다닌다. 미국 시민권 때문에 군에 들어가 훈련을 받은 그녀는 일반 시민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액션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좀비로 변한 사람들이 바닷물에 들어가질 않는다는 것이다. 일정 시간이 되면 한 곳에 모여 있는다. 이런 좀비는 총을 가진 무리에게 좋은 사냥감이 된다. 인간의 잔혹함이 드러나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영화 한 편이 스쳐 지나갔다. 바로 <웜 바디스>다. 원작 소설이 있는데 영화만 봤다. 좀비가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다룬 영화인데 이 소설 속 좀비들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좀비의 광란에서 진정된다. 물론 이런 사실을 사람들은 모른다. 다만 한나는 치료제가 개발되면 이들이 보통 사람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좀비를 죽이기보다 가두는 방식을 사용한다. 당연히 총으로 죽이는 것보다 가두는 것이 더 힘들다. 그리고 흰섬에 일제강점기 당시 만들어 둔 지하 통로가 있는데 작가는 이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한나가 섬을 떠나면서 흐지부지된다. 아쉬운 대목이다.


빠른 전개와 좀비라는 설정은 가독성을 높인다. 다양한 사람들보다 한나 쪽에 시선을 집중하면서 몰입도도 높였다. 적절하게 마약과 권력과 비리 문제 등을 풀어놓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쉽고 빠르고 감상적으로 흘러간다. 다른 좀비 소설 등이 인간의 오만으로 더 큰 문제가 생기는 점을 부각했다면 이 소설은 통제 가능하다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다.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어느 정도 희망적인 부분을 보게 되지만 현실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해시태그 #살아있습니다 사용하는 생존자들을 보면서 하진의 희망찬 다짐을 보면서 이 이야기의 다음을 기대해본다. 2편을 쓴다면 어떤 식으로 작가가 풀어낼지 궁금하다. 그 희망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지, 아니면 그 희망이 사그라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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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오브 걸스 - 강렬하고 관능적인, 결국엔 거대한 사랑 이야기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아리(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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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가 영화로 만들어졌고, 소설도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나는 영화도 소설도 보지 않았다. 언젠가 봐야지 하는 생각만 하는 수많은 작품들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번에 신작이 나왔다. 바로 이 소설이다. 1940년대 뉴욕의 화려하지만 쇠락한 극장을 배경으로 한다는 이야기에 끌렸다. 전작의 성공도 나의 욕심을 부채질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해서 며칠만에 끝냈다. 가독성이 좋아 큰 부담이 되지 않았고,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놀랐다. 어떻게 보면 통속적이고 관능적이다. 그렇지만 그 속에는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생각들이 녹아 있다.


2010년 여든아홉 살 노인인 비비안 모리스가 안젤라라는 여성에게 회고록 형태로 쓴 글이다. 처음에 비비안이 안젤라 아버지의 불륜 상대가 아닐까 생각했다. 쉽게 생각해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는 그녀가 어떻게 뉴욕에 오게 되었고, 안젤라의 아버지를 만나 사랑에 빠졌는지, 그 사랑이 어떤 의미인지 풀어낼 것이란 도식적인 예상이었다. 실제 이 부분도 나오고 그렇게 이야기도 흘러간다. 하지만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그와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어떻게 비비안이 뉴욕에 왔고, 고모 페그와 함께 살면서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는지, 그 욕망 때문에 어떻게 추락했는지, 추락 이후 삶의 모습을 직설적이면서 노골적으로 그려내었다.


페그 고모가 운영하는 극장 릴리 플레이하우스는 동네의 작은 극장이다. 비비안은 이곳에서 쇼걸 셀리아를 만나 함께 뉴욕의 밤을 즐긴다. 첫 경험에 대한 이야기도 놀랍지만 그녀가 비비안과 함께 보낸 수많은 밤들이 내가 상상했던 1940년의 풍경과 너무 달랐다. 비비안은 거침없이 남자들을 만나고, 섹스를 한다. 사고를 친 후 이 사고를 무마하기 위해 간 곳에서 그녀가 술을 얼마나 마셨고, 남자들에게 얼마나 쉬웠는지 보여준다. 매혹적인 셀리아와 쌍둥이처럼 다니면서 남자들을 후리고 다녔다. 그러다 고모의 친구이자 배우인 에드나 파크 왓슨이 오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제목인 <시티 오브 걸스>도 에드나 때문에 만들어진 뮤지컬 제목이다.


고모부 빌리는 바람둥이에 무책임한 남편이지만 글과 연출에 대한 재능은 탁월하다. 한 여성에 차인 후 릴리 플레이스로 온다. 에드나와 빌리의 결합과 좋은 대본과 훌륭한 노래는 성공을 보장하지만 가는 과정은 삐걱거린다. 극장을 관리하는 올리브의 반발 때문이다. 뮤지컬이 성공하면 돈방석에 앉게 되지만 실패하면 작은 재산마저 사라진다. 이런 와중에 비비안은 매력적인 안소니를 만난다. 그를 통해 처음으로 절정을 맛보고, 그의 곁에 붙어서 자신의 모습을 잃어간다. 자신이 해야 할 일도 놓치고, 보통의 여자처럼 그를 소유하려고 한다. 뮤지컬은 흥행에 성공하고, 배우들도 유명해진다. 이 순간을 작가는 평론가의 글을 통해 보여준다. 가장 높은 곳에 있을 때 질투와 방탕한 생활의 연장선이 그녀를 추락시킨다. 이 장면을 보면서 작가에게 놀랐다고 하면 내가 너무 보수적인가?


유럽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많은 미국인들은 전쟁에 참여하길 바라지 않는다. 이 분위기를 바꾼 것이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다. 오빠 월터가 해군 장교로 입대하고, 그녀가 친 사고는 더 이상 고모와 함께 살 수 없게 만든다. 그녀의 삶을 오빠가 알게 되면서 보여주는 장면은 도덕적인 평범한 오빠의 행동이다. 집에 돌아와 향수병 때문에 돌아온 것처럼 연기하면서 조용히 살지만 그녀 속에서 꿈틀거리는 욕망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약혼자에게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할 때 장면은 내가 알던 그 시절의 모습이다. 그녀의 삶을 변하게 만든 것은 역시 전쟁이다. 고모가 그녀의 도움을 바라고 오면서 상황은 또 바뀐다.


한 소녀가 여자로 변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과격하면서 직설적이고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실수도 하고, 실패도 경험한다. 하지만 자신만의 기술을 가진 그녀는 기존의 도덕 속에 갇혀 있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찾아 움직인다. 할머니에게 배운 바느질은 그녀를 홀로 서게 만들었다. 극장의 의상 감독이 되었다가, 친구들의 웨딩드레스를 만들어주었다가, 결국 웨딩드레스 제작 업체까지 차린다. 안젤라에게 자신의 삶을 하나씩 풀어내는데 도덕적 가치관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삶이다. 과거와 현재의 아픔에 매몰되지 않고, 마주보면서 나아갈 때 그녀는 어른이 된다. 사랑은 그렇게 찾아온다. 그 시대와 삶이 가진 아픔과 상처를 껴안고 받아들이면서 그녀와 친구들은 성장하고 앞장섰다. 매혹적인 인물과 상황들이 무겁지 않은 이야기로 나를 끌어들였고, 머릿속에서 그들이 춤추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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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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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 3부작 중 2번째 작품이다. 작가의 두 번째 발표작이기도 하다. 다 읽은 지금은 상당히 만족하지만 읽을 때는 엄청 고역이었다. 느리고. 답답하고, 어둡고, 억눌린 듯한 분위기가 계속 나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세라 워터스의 소설을 3권째 읽는데 늘 중반까지 더딘 진행과 장황한 묘사 등을 보면서 힘겨웠다. 한참 고전소설을 탐닉할 당시라면 이런 묘사들이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겠지만 최근 빠른 전개와 진행에 익숙해지다 보니 이런 문장에 쉽게 몰입을 하지 못한다. 주인공이라도 전작 <티핑 더 벨벳>처럼 변화가 심한 삶을 살았다면 더 흥미로웠겠지만 마거릿은 그런 삶과 상관없는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 노처녀 숙녀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삶도 살지 못하는 그녀의 심리를 일기라는 형식으로 섬세하게 표현했다.


일기란 형식으로 두 여인의 삶을 그려낸다. 주로 나오는 것은 마거릿이다. 그녀의 일기는 현재를 다룬다. 밀뱅크 감옥에 갇힌 셀리나의 일기는 과거의 일을 다룬다. 재밌는 것은 셀리나의 일기나 현재와 만나지 않고 과거의 한 시점에서 멈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일기와 문장에서 이 고딕풍의 심리 스릴러가 서술 트릭을 사용했고, 멋진 반전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을 단숨에 드러낸다. 물론 마거릿을 둘러싼 일들을 보면서 그 가능성을 충분히 생각했다. 하지만 열정이 욕망으로 피어나고, 심리적으로 완전히 사로잡힌 사람의 열정이 빚어내는 파국을 이렇게 마무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읽지 않았다면 누리지 못한 재미다.


마거릿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우울증에 빠진다. 그녀의 우울증 원인 중 하나는 동생과 결혼한 헬렌이다. 그녀의 키스는 그녀를 과거 속에 머물게 하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게 한다. 화려한 미모를 가진 여동생에 비해 자신은 너무 평범하다. 누군가에게 구애를 받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긴 채 살아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녀는 그렇게 살지 못한다. 이 우울증을 해결하기 위해 간 곳이 바로 감옥인 밀뱅크다. 이 당시 숙녀들에게 감옥은 하나의 관광지 같았던 모양이다. 소장이 아버지의 지인이다 보니 이곳을 방문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다. 작가는 마거릿을 통해 빅토리아 시대 여자 감옥의 풍경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물론 그 감옥 속에는 다양한 범죄를 저지른 여성들이 갇혀 있다. 셀리나도 그 중 한 명이다.


셀리나가 마거릿의 시선을 끈 것은 그녀가 가진 꽃 때문이었다. 감옥에서 도스라고 불렸던 그녀가 마거릿에게 셀리나로 불리기 원한다. 첫 방문은 일반적인 감옥의 분위기 파악이었다면 횟수가 늘어나면서 여죄수들과 그곳의 삶이 눈에 들어온다. 가장 그녀의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도스다. 도스는 영매였지만 사고로 그녀와 함께 살던 여인이 죽으면서 사기 등의 혐의로 갇혔다. 셀리나의 일기는 그녀가 어떻게 영매로 살게 되었는지, 그 생활들이 어떤 것인지 하나씩 적어낸다. 이 일기의 분량은 마거릿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마거릿의 일기가 너무 사실적이고 적나라하다고 해야겠다. 그녀의 열망과 비밀들이 그대로 적혀있다.


빅토리아 시대를 다룬 소설을 읽다 보면 여성들의 삶은 굉장히 정적이다. 이 소설에도 나오지만 그녀가 결혼하면 그 재산은 남편에게 귀속된다. 여성의 사회 활동에 제약이 많다 보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 아버지와 함께 연구하던 것도 그녀 혼자서 할 수 없다. 그녀가 아버지와 함께 이탈리아 여행을 가려고 짠 세부적인 계획도 아버지의 죽음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이 아쉬움을 동생의 신혼여행 일정에 잠깐 털어놓는다. 그녀의 자살시도와 실패는 그녀의 일상을 더욱 옥죈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는 그녀에게 어머니는 수면제를 먹인다. 남동생과 결혼한 헬렌은 볼때마다 고통이다. 헬렌을 보면서 전작의 키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전작이 엄청나게 노골적인 장면들로 가득하다면 이 소설은 그런 것이 없다. 영매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초현실적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혹시’ 하는 가능성을 떠올리지만 너무 뻔한 트릭이다. 물론 이 트릭이 가능한 것은 작가가 마지막에 말한 하나의 사실 덕분이다. 내가 서술 트릭이라고 말한 것도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어둡고 답답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따라가다 보면 마거릿의 심리에 공감하게 된다. 다른 가능성도 계속 머릿속에 담고 있고, 파국을 예상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거짓을 간파하지 못하면서 너무 쉽게 속았다. 거짓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진실을 알게 하는 것은 마지막 문장이다. 이제 3부작 중 가장 번역 출간되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핑거스미스>만 남았다. 두께를 보니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좀 한가해지면 3부작을 마쳐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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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비메탈 계보도 - 1970~90년대를 관통하는 헤비메탈을 추억하다
사은국 지음 / 도서출판 11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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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반 정도에 헤비메탈에 대해 알고 싶어 이 장르를 좋아하는 후배에게 음반을 추천받은 적이 있다. 지금 기억나는 앨범은 건즈 앤 로지스의 <November Rain>이 들어 있었다는 것 정도다.  이 음악에 꽂혀 한참 들었던 기억이 난다. 솔직히 말해 다른 음악들은 취향에 맞지 않아 어떤 노래가 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앨범을 찾아보니 낯익은 표지가 보인다. 바로 <Use Your Illusion Ⅰ>이다. 그 후 헤비메탈에 작은 관심을 두었지만 나의 장르는 아니었다. 락 발라드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지만 이 책의 저자가 말한 헤비메탈 밴드의 앨범들은 나에게 소음처럼 다가왔다. 물론 아무것도 모른 채 들은 음악도 상당히 있지만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2000년대 초 힙합도 헤비메탈처럼 이런 경험을 한 번 했다. 추천 앨범을 사고 열심히 들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장르의 음악들이 나의 귀에, 가슴에 와 닿는 것은 그로부터 한참 지난 후다. 헤비메탈도 유행이 지난 후 조금씩 내가 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 당시 주워들은 몇 가지 이야기들 덕분에 이 책에 나오는 헤비메탈 밴드들 이름이 낯설지 않다. 집 어딘가를 뒤지면 오래전 사놓고 묵혀두고 있는 CD 등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다시 들으면 그때와 다른 느낌일 텐데 살짝 궁금하기도 하다. 이 책을 헤비메탈 참고서로 활용해도 좋을 것 같은 이유도 여기 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헤비메탈의 탄생과 전성기와 퇴조를 다룬다. 1970년대 락 밴드를 과연 헤비메탈 밴드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 들지만 현재 헤비메탈의 기원이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는 잘 알려준다. 70년대 밴드 이야기는 나 같은 사람에게 추억을 불러온다. 어릴 때 베스트 모음집을 통해 들었던 음악들의 밴드를 다시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그때도 지금도 음악 하나만 듣지 앨범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데 이런 음악사를 듣다 보면 큰 장애가 된다. 물론 더 큰 문제는 중구난방으로 음악을 듣고, 쉽게 들리는 음악을 더 선호했다는 것 정도다. 나이가 들면서 아이돌 음악에 다가가지 못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최근에는 음원 위주로 듣다 보니 더 심해진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헤비메탈 밴드들의 결성과 성공을 이야기하는 방식의 글인데 이 성공 뒤로 사라진 수많은 헤비메탈 밴드들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제대로 들은 적 없이 이름만 아는 밴드들, 블랙 사바스, 주다스 프리스트, 모터헤드, 판테라 등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제목대로 계보도에 더 초점을 맞추다 보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읽으면서 왜 밴드 멤버들이 탈퇴하고, 다시 재결성하게 되었는지 저자가 설명하는데 쉽게 이해가 되었다. 아쉬운 대목이라면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명반들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고, 들었다고 해도 거의 기억하지 못해 저자가 풀어낸 이야기에 쉽게 공감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마 음반을 잦아 들으면서 이 책을 읽는다면 1년도 더 걸릴 것이다. 이 글을 적고 보니 그렇게 하고 싶은 욕심이 살짝 고개를 들기도 한다.


솔직히 말해 스래시메탈, 헤어메탈, 글램메탈, 데스메탈 등을 어떻게 분류하는지 모른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모른다. 계보도를 읽으면서 잘 모른다고 하니 조금 부끄럽지만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앨범을 듣고, 음악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있어야 머릿속에 들어온다. 이런 점에서 나에게 이 책은 지난 과거의 추억을 돌아보고, 다시 한 번 더 헤비메탈을 들고 싶게 만드는데 멈춰 있다. 물론 헤비메탈 밴드에 대한 풍부한 정보들은 읽는 내내 나를 즐겁게 만들었고, 찾아 들어야 할 음반의 목록을 늘려주었다. 실천 여부는 나의 수많은 다짐들처럼 실현가능성이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어느 날 CD를 찾게 되면 이 책의 기억이 머릿속에 들어올 것이다. 즐겁게 들었던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이 헤비메탈 장르로 분류된 것은 조금 의외다. 이런 의외의 정보들이 예상한 것보다 큰 즐거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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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개
하세 세이슈 지음, 손예리 옮김 / 창심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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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63회 나오키상 수상작이다. 나오키상을 받았다는 것과 함께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은 작가 이름이다. 불야성 3부작의 작가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불야성>을 펼쳐 카페에서 단번에 읽었던 그 작가다. 이후 나온 작품들은 살 타이밍을 놓쳤고, 절판되었다. 나의 안일함이 만든 잘못이다. 다행이라면 전자책은 구입이 가능하다. 한자로 쓴 작가의 필명을 보니 이름에 에피소드도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홍콩배우 주성치를 꺼꾸로 읽은 것이다. 인터넷서점 작가 소개에 이 이야기도 나온다. 가끔 이런 작가들이 어떤 상을 받았다는 기록을 보면 ‘받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든다. 유명해서 생긴 착각이다.


미미 여사가 쓴 심사평이 인상적이다. “개를 의인화하지 않고”란 대목은 동물들이 나올 때 의인화를 당연한 듯이 하는 작품들을 자주 본 탓에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솔직히 말해 작가 이름과 나오키상 수상작이란 이유로 책 소개를 대충 읽었다. 소설을 다 읽을 때까지 ‘동일본대지진으로 주인을 잃은 개 다몬이 친구인 소년 히카루를 다시 만나기 위해 5년 동안 일본 전역을 떠돌며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란 것을 몰랐다. 물론 첫 이야기를 읽고 목차 속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 이야기란 것은 알았지만 5년이란 긴 시간이란 생각은 못했다. 마지막 이야기를 읽고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는 것도 덧붙인다.


작가는 한국판 서문에 개와 25년을 함께 살았고, 부정기 연재를 했다고 말한다. 소설 속 5년의 시간도 이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일본 느와르 소설을 주로 쓴 작가의 이력을 생각하면 이런 고백은 조금 낯설다. 나오키상 수상은 책 판매에도 많은 영향이 끼쳤고, 자신이 한때 오만했다고 말한다. 이런 이야기가 제목과 함께 왠지 모를 훈훈한 이야기 전개를 머릿속에 만들었다. 하지만 첫 단편 <남자와 개>를 읽고 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소설 속에 강하게 자리 잡은 동일본대지진의 여파를 조금씩 느꼈다. 첫 단편과 마지막 단편이자 표제작인 <소년과 개>는 쓰나미 이후 무너진 삶과 그 이후를 다룬다.


개의 이름은 다몬이다. 개 인식표에 이 이름이 적혀 있다. 몸에 인식칩도 심어져 있어 이름과 주인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주인은 연락이 되지 않고, 어떤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른 채 이 개와 함께 산다. 다몬이란 이름을 알아도 자신이 부르고 싶은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이 있다. 인식표가 사라져 자신들이 좋아하는 이름을 붙인 경우도 있다. 이렇게 이어진 여섯 개의 인연과 이야기는 다른 분위기와 상황을 보여준다. 변치 않는 것은 다몬이 늘 한 방향을 쳐다본다는 것과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안식을 준다는 것이다. “개는 훌륭하다” 것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준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와 간병에 지친 누나를 생각하며 절도범 차를 운전하는 남자, 생존을 위해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었고 배신을 당한 도둑, 자신밖에 모르는 남편과 그를 사랑했던 아내의 지친 삶을 다룬 부부 이야기, 자신을 매춘부로 타락시킨 남자를 죽인 후 다몬을 만난 매춘부, 아내를 췌장암으로 잃고 자신도 췌장암을 걸려 홀로 살아가는 사냥꾼 노인, 그리고 다몬이 긴 세월과 거리를 지나 만나고자 한 소년 이야기가 다른 분위기를 풍기며 펼쳐진다. 이 단편들 한 편 한 편이 아주 매력적이고 뛰어난 가독성을 보여준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가 뭉클해지고, “왜 그렇게 살까!” 하는 한숨을 내뱉고, 읽다가 “뭐지?’란 의문을 던진다. 이 순간들에 다몬은 최고의 친구이자 가족이자 위안이다.


작가는 다몬의 가족으로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을 다루지 않는다. 동일본대지진으로 삶이 힘들어지거나 어쩔 수 없이 도둑이 되거나 매춘부가 되는 등 각자의 사연으로 낮은 곳에 머문 사람들을 다룬다. 이들은 다몬을 가족으로 대한다. 이 감정은 개와 함께 산 사람이라면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몬을 잘 훈련되고 친밀하게 그리고 전혀 의인화하지 않은 것도 이런 감정을 잘 표현하기 위한 한 방편일 것이다. 작가가 개를 등장시킨 다른 소설도 있다고 하니 출간을 기대해본다. 그리고 번역에서 ‘하느님’과 ‘하나님’을 혼용해서 사용하는데 등장인물이 일본 기독교 신자가 분명하지 않다면 ‘하나님’이란 표현은 올바르지 않다. 좋은 가독성에 작은 방해가 되어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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